소설/장난치는 자들

제로하우스(제3회)

오선닥 2016. 12. 9. 19:01

태양광발전 비리

김영란법 적용에도

장난치는 자들이 있네요


 

 

 

 

제3회

 

 

 

제로 하우스

 

오선덕 회장은 조간신문을 앞에 두고 뭔가 열심히 읽고 있다.

읽어나가면서 빨간 형광펜으로 팍팍 그어가는 부분.

 

태양광 선로 전력용량 편의제공 대가 뇌물수수’

 

내용인즉 대한전력 직원 및 지방 공무원이 간 크게 5억원을 챙기다가 경찰에 적발됐다는 것이다.

 

김영란법이 빡세게 적용되는 2020년에 이런 일이?

들키면 작살나는 세상이니 아예 통 크게 하자는 의도일까.

 

오 회장이 왜 이 문제에 대해 유달리 관심을 많이 가질까?

사무총장 지태풍이 문제 적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돼 있기 때문이다.

 


 

2020년 6월

녹색미래 사무실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지태풍이 수화기를 들었을 때 흥분된 목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떤 일인지 찬찬히 말씀해보세요.”


지태풍은 자신의 목소리를 일부러 낮춰서 반응했다.


“전화상으로는 곤란하고, 만나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전주역에서 조금 떨어진 수수한 음식점에서 두 사람은 만났다. 커피숍보다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좋다는 상대의 의견을 존중한 결과다.

 

식당 한쪽 구석에 있는 탁자를 좌석으로 잡았다. 식사류와 함께 소주 한 병을 올려 놓은 것은 누가 봐도 친한 사람간의 식사로 생각할 만하다.

 

“우리 회사가 먼저 서류를 제출했는데 허가는 다른 회사가 먼저 받았단 말입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비교적 가냘프게 생긴 40대 중반의 남자는 목소리 톤을 높였다.

목소리에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거친 숨소리가 섞여 있었다.

 

“혹시 서류에 미비점이 있었던 건 아닌가요?”

 

분위기를 진정시키는 목소리로 지태풍이 물었다.

 

“아닙니다. 대한전력 여직원이 서류 완비를 이미 알려왔어요.”

 

이 사람은 전주에 소재하는 소형 태양광발전 회사의 대표이다.

태양광 발전사업 허가와 관련, 도청 공무원과 대한전력 직원이 개입한 정황이 의심된다고 말한다. 비교적 구체적 증거가 있지만 확인이 끝나기 전에는 이름을 공개하기는 곤란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알겠습니다. 이 정도로도 방송에는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날 오후 지태풍은 ‘녹색고발’이라는 자신의 일인미디어를 통해 태양광발전 허가권의 비리 가능성에 대해 방송했다. 방송은 유튜브를 통해 전파되었고, 그 파급 영향이 엉뚱한 곳에서 나타났다.

 

“지태풍 사무총장님이시죠? 일광에너지의 임원인데 한번 만나뵐까 하고요.”

 

일광의 임원이라는 사람은 전주 소재 대형 태양광발전 회사의 책임자였다.

몸집이 비교적 크고 눈이 매서워 보이는 그는 서울 소재 녹색미래 사무실까지 찾아올 정도로 열정과 동시에 긴박성을 보였다.

 

“제가 일인미디어는 잘 시청하지 않지만, 우리 직원의 이야기가 혹시 우리 회사를 염두에 두고 방송하신 게 아닌가 해서 확인하러 온 겁니다. 뭐, 그런 건 아니시죠?”

 

이런 건 많이 경험하는 터라 지태풍에겐 항상 준비된 말이 있다.

 

“저희 단체는 지방에도 네트워크가 있습니다. 그들은 지역 태양광발전 회사들과 교류가 있기 때문에 지방 사정을 수시로 보고해줍니다. 가능성을 방송했을 따름이므로 관련이 없으면 무시하셔도 됩니다.”

 

그럴 리가 있나. 벌써 냄새 맡고 방송하는 건데. 이 친구 단수가 보통이 아니네, 생각하면서 일광 임원은 목소리를 다듬어서 말한다.


“그렇지만 분명하지 않은 걸로 지역 분위기가 흐려지니까요. 방귀만 뀌어도 화장실 가는 줄로 아는 세상 아닌가요.”

 

“실명 거론이 없으므로 예민하게 반응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혹시 지역 단체 실무자 이름을 말해주실 수 있나요?”

 

방문자는 매우 끈질긴 모습을 보였다.

 

“저희 활동은 익명으로 하기 때문에 그건 좀 곤란합니다.”

 

“전력회사와 공무원을 지칭해서 그럽니다. 우리 일이란 게 공무원과 협의하는 거여서요. 앞으로 모호한 방송은 삼가주시면 좋겠습니다.”

 

일광 임원이 돌아간 후에도 녹색고발 일인방송은 계속됐다. 클릭 수는 증가하여 닷새 만에 백만을 넘어섰다. 연기가 나오면 불을 누가 때는지 상상하기 마련이다.

 

오후 늦게 지태풍은 세종시를 찾았다.

제로 하우스 관련 탄소배출권에 관해서 이단아와 의논하기 위해서다. 친환경 활동을 할 경우 환경부는 ‘탄소포인트제’, 서울시는 ‘에코마일리지’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환경부 탄소포인트에 관한 자료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단아는 퇴근하여 그녀의 원룸에 있었다.

원룸은 정부 세종청사 공무원들을 위한 임대주택이다.

지태평은 오면서 흘린 땀을 식히고 싶었다.

 

“샤워기 좀 쓰겠는데, 괜찮겠지?”

 

“새삼 물으시고 그래요. 노 하면 어쩌려고요.”

 

주인한테 물어보는 것은 당연하지, 하면서 그는 샤워장에 들어갔다. 물 절약 코크를 붙여놓은 샤워기 압력이 시원찮았으나 환경운동가는 이 정도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고 하면서 짧게 샤워를 끝냈다.

 

샤워를 마치고 소파에 앉자마자 이단아는 준비한 커피를 내 놓았다.


“오빠 일인방송 녹색고발 잘 들었어요. 발음이 좋았어요.”

 

“지금 좋아할 때가 아닌 것 같아. 지역 업체가 눈치를 채고 벌써부터 항의하고 있어. 익명으로 하는데도 다들 민감하군.”

 

“돈도 안 되는 환경운동하시니 첩첩산중이네요.”

 

“그러게. 단아씨가 도와주니 그나마 위안이 돼.”

 

내일 환경 세미나가 하루 종일 예정돼 있어 지태풍은 ‘탄소제로제’ 파일을 다운받고 일어서려 했다.

 

“저녁 같이 먹고 가심 안 돼요? 주문하면 드론으로 배달해오는데…….”

 

“시간 없어. 집에서 컴퓨터 작업할 게 많아.”

 

그가 가방을 들고 일어나는데 이단아가 앞을 막는다.

 

“그럼…… 오빠, 잊은 거 없어요?”

 

아기도 귀여우면 다독거려주는 법.

그는 살짝 그녀를 끌어안고 놓아주었다.

그들의 포옹은 연인도 친구도 아닌 애매한 경계에서 늘 아쉬움만 남긴다.

 

서울 효창공원 녹지를 돌아서 집 대문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건장한 남자 두 명이 그의 앞에 떡 버텨 섰다. 그리고 그들은 공손히 허리를 숙이고 인사 했다.

 

“지태풍씨죠? 잠시 이야기 좀 나눌까 해서요.”

 

효창공원 벤치까지 가는 동안 그들은 외관상으로 보면 귀빈을 모시는 자세였으나, 갑자기 나타난 점, 장정 두 명이 동행했다는 점은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지태평을 가운데 두고 그들은 각각 양쪽에 앉았다.

 

“녹색고발 방송 중단하십시오. 지역사회 숙원사업을 아무렇게나 매도하시면 지역주민이 조용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 드리려고 여기 왔습니다.”

 

해가 질 무렵 낮선 사람을 만나는 것은 마음 편한 일은 아니다.

언제부터 기다렸고, 어디서 왔는지 그들은 말하지 않았고 그도 묻지 않았다. 집 주소까지 알고 있는 걸 보면 사전에 리허설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실명 거론한 것은 아니니까 노골적으로 이르시면 안 됩니다. 괜히 침소봉대 되는 수가 있으니 오히려 불리할 수 있어요. 환경 문제는 사전 예방이 중요합니다.”

 

환경단체 활동에서 배어난 자연스런 화법이다.

 

그들은 사건의 냄새가 어느 정도까지 풍겼는지 타진하는 정도에서 대화를 끝내고 돌아갔다.

 

이후 일인방송은 숨고르기 형태로 다소 소극적으로 다루었다.

 

그러나 사건은 공중파 방송에서 다루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은 커지고 말았다.

방송사가 어떻게 정보를 입수했는지는 모른다. 일인미디어가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고, 허가 받지 못한 회사가 직접 고발할 수도 있다.

 

사건은 6월에 연기를 피우기 시작하여 결국 12월에 경찰에 적발되고 말았다

 

사필귀정

 

5억원을 챙긴 사람은 대한전력 팀장, 도청 공무원, 그리고 브로커였다. 경찰은 태양광발전소 시공업자 두 명도 뇌물을 건넨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수법은 전산 접수를 무시하고 직접 서류를 접수하게 한 뒤 허가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 주고 다른 업자에 대해서는 관련 서류를 방치한 뒤 반려 처리한 것으로 밝혀졌다.

 

선로 전력용량을 저렴하게 몰아주고 전력수급계약의 편의를 제공해주는 대가로 그와 같은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언론은 공직자들이 허가가 필요한 업자들에게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뇌물을 수수한 전형적인 갑질 범죄라며 김영란법 적용을 두려워하지 않은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범죄라고 했다.

 

 

 

 

2020년 겨울 동지를 하루 지난 저녁.

 

판교에 있는 오선덕 회장 댁에 녹색미래 직원이 모였다.

다섯 명이 모였으니 회식이라 해도 좋다.

요즘 이슈화되고 있는 태양광발전 비리 문제를 들어보기 위한 자리다.

 

판교 신도시에서 약간 벗어난 언덕배기에 위치한 회장의 집은 제로 하우스로 설계된 주택이다. 환경운동을 주도하는 입장에서 탄소배출 감축과 에너지 절약에 앞장서고 있다.

 

에너지제로 하우스란?

 

태양열‧지열과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여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액티브(active) 기술’과 고단열‧고효율 제품을 이용하여 열과 에너지 손실을 방지하는 ‘패시브(passive) 기술’이 접목된 에너지 자립형 주택을 말한다.

 

제로하우스에 대한 질문이 있자 오 회장은 힘주어 말한다.

 

“거주에 필요한 에너지를 친환경 자연에너지로 자급자족 할 수 있고 이산화탄소 발생률을 ‘0’에 가깝게 줄일 수 있다는 거지.”

 

“그렇다면 외부와의 전기선은 없는 겁니까?”

 

기후팀 김정언이 물었다.

 

“과부족 전기를 보내기 위해 대한전력망과 전선이 연결돼 있지.”

 

오 회장의 집은 2층 단독주택으로 대지는 80여평 된다.

 

에너지를 얻는 엑티브 방법은 다음과 같다.

- 땅 100미터 깊이에 파이프를 꽂아 끌어올린 지열(약15도)을 히트펌프를 거쳐 겨울 바닥 난방이나 여름 냉방열로 이용

- 건물 지붕의 태양광발전시스템으로 얻은 전기는 LED조명을 통해 집안을 밝히고, 태양열로 데운 물은 온수로 사용

- 집 부근 밭에 설치한 풍력발전기에서 얻은 전기는 대한전력에 판매

 

한편 에너지를 절약하는 패시브 방법은 다음과 같다.

- 요리기구, 보일러 등의 폐열가스를 환기 시스템에 이용

- 고성능단열재 벽체나 창호는 외부 열 차단

 

결국 외부로부터 별도의 열과 전기 없이도 스스로 냉난방할 수 있는 미래형 주택이다.

 

“미래 환경에 대해서 생각하는 나의 열정을 알겠지요?”

 

오 회장은 평소 환경을 보존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해 온 사람이다.

 

이 주택을 건설하는 그는 정부로부터 30퍼센트의 비용을 보전 받았고, 풍력발전이 만든 전기는 대한전력에 팔아 수익을 올린다고 한다. 풍력발전기 소음이 약간 있기는 하나 이웃이 참아준 고마움 표시로 수익금의 일부를 경로당이나 마을 독서실에 기부해 왔다.

 

“단열재 등 패시브 방법만으로도 열손실을 60퍼센트 이상 방지할 수 있다네. 환경은 관심이 중요한 거지.”

 

회장의 말에 호응하여 김정언은 기후변화에 관심이 많다.

 

“파리기후협정으로 2020년 후로는 각국이 할당된 탄소감축 노력을 해야 하는데 회장님은 미리 모범을 보이시는군요.”

 

“지구 평균기온 상승 1.5도 이하로 하려면 나부터 모범을 보여야겠지. 이런 노력은 녹색기술을 발전시켜주니까 원자력을 줄이는 첩경이기도 하지.”

 

오선덕 회장의 환경 철학은 뚜렷했다.

그는 말을 계속했다.

 

“학생들이 제로하우스 견학하러 올 때는 내가 보람을 느낀다니까. 여러분들이 열심히 활동해 줘서 고맙기도 하고.”

 

이 주택은 첨단으로 지어진 집이라 할 수 있다. 3차원기반 엔지니어링과 인테리어로 건축되었고, 스마트홈과 사물인터넷도 구축돼 있다.

 

그는 한지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한지는 통풍이 좋고, 습도 조절을 잘하며, 빛을 은은하게 투과시켜서 창과 문에 자연채광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고 하면서, 한지는 숨을 쉬는 살아있는 종이라고 말한다.

 

제로하우스 설명을 듣는 중 시민팀 주현미는 한 번씩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이윽고 입을 연다.


“지열과 태양열, 풍력을 이용하는 건데, 혹시 회장님…….”

 

회장이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귀를 세웠다.

 

그녀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혹시 아니 혹시, 이런 걸 ‘지태풍 에너지’라 하는 겁니까?”

 

이때 모두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회장을 빼 놓고, 지태풍을 포함해서 참석한 직원들 모두가 멍한 모습이었다.

코페르니쿠스적인 발견이라는 듯 깜짝 놀란 표정.

 

“사무총장도 놀라는 것 보니 미처 몰랐던가 보네. 나는 사무총장이 우리 단체에 오고 나서 곧 우연의 일치를 생각해 봤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회장의 말이었다.

 

“이런 걸 숙명이라 합니까, 혹은 예언이라 합니까?”

 

생태팀 박미생이 확인해 봐야겠다는 듯 크고 맑은 눈으로 회장을 쳐다보았다.

오 회장의 시선은 넌지시 지태풍 쪽으로 향했다.

 

“지태풍 사무총장은 운명적으로 환경운동을 할 사람이야. 이미 이름이 진로를 선택했으니까.”

 

반응을 기다리는 눈동자들이 그에게 쏠렸다.

지태풍은 직원들을 두루 쳐다보았다.

 

“이제부터 이름 가지고 ‘장난치는 자들’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이름을 잘 지었나, 못 지었나.

새삼 이름의 중요성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저녁 식단에 유기농 야채가 많이 등장했다.

주변 밭에서 키운 거라고 회장은 말했다.

 

태양광발전 비리에 대한 화제가 등장하자 오 회장은 지태풍에게 설명을 원했다.

 

“관련자들이 입건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단체 때문에 피해를 봤다고 나한테 전화하곤 하던데.”

 

“회장님 너무 신경 쓰시지 마십시오. 그들을 그냥 두면 더 큰 사고를 칩니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땝니까. 음식도 입에서 잘 씹어야 위가 생고생을 하지 않는데 그들은 날것으로 먹으려 합니다.”

 

뇌물을 준 태양광 발전회사를 두고 하는 말이었는데, 지태풍은 의분을 견디지 못해 길게 말했다.

 

“우선 자네 신변에 문제가 없도록 조심하게.”

 

회장의 한마디에 지태평은 용기를 얻었다. 이럴 때 쌓였던 피로가 가시는 느낌이다. 이단아의 원룸에서 샤워한 기분보다 더 시원하다.

 

요즘은 소액으로 후원해주는 사람이 많아졌다. 금액 크기보다 후원자의 수가 많은 것은 고무적이다. 환경운동 하랴 일인미디어 하랴 바쁘지만 이단아가 틈틈이 도와주는 것도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금년 지정기부금이 십억이 넘었다지. 기부자의 기대에 부합되게 잘 사용하도록 노력해요.”

 

오선덕 회장의 당부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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