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장난치는 자들

지태풍과 이단아(제1회)

오선닥 2016. 11. 18. 18:20

때는 2020년 초 겨울

미리 앞서가는 게 아닐까?

근데 가까운 미래가 궁금

여전히 장난치는 사람이 많다

이들과 맞장 뜨는 것은

피 끓는 청춘의 사명이다

 

환경운동가 지태풍과

환경부 7급 공무원 이단아가

현실의 불의와 투쟁하는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해볼까요


 

 

 

 

제1회

 

 

지태풍과 이단아

 

세상에는 장난치는 자들이 많다.

 

올해 2020년은 숫자 배열이 좋은 해라 뭔가 기대했지만 실망이 크다.

정의와 자유가 세상을 받쳐 주리라 믿었지만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부도로 망해가는 회사의 임원이 거액의 상여금을 받아가고, 금융부실로 쓰러져가는 대기업이 구제금융을 얻어내고, 오염물질로 환경 문제를 야기한 기업이 작은 벌금으로 불법을 땜질하는 세상.

 

세상은 이전과 전혀 변한 것이 없구나.

 

행복과 자유와 미덕이라는 샌델의 정의는 어디로 갔는가?

 

자유만 해도 그렇다.

타인의 권리를 함께 존중한다면 우리 소유물은 우리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자유지상주의와, 금욕적 수도사 정신으로 이상화한 자유지고주의 간의 주장을 일상인의 삶의 관점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사서 고생할 필요가 있나?

 

지태풍은 지금 자신이 가는 길이 옳은지 어떤지 가늠할 수 없다.

 

정치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수도대학 정치학과에 지망했고, 열심히 공부한 덕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군대를 마친 후 첫 직장이 국회의원 보좌관이었다. 학업성적과 총학생회 간부 경력이 일부 참작돼 직장을 구하는 데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다. 중류 가정 출신의 청년을 뽑아준 데 대한 감사한 마음도 늘 그의 가슴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 직장을 박차고 나왔다.

보좌관 생활 5년은 그에게 많은 경험의 기회를 주었지만 끝내 결심하고 말았다.

사표를 내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이런 일도 포함될 것이다.

 

“지 보좌관, 원칙대로가 좋긴 하지만 결과가 잘 나오도록 노력해 봐.”

 

의원의 말이 무슨 뜻인지 처음엔 잘 몰랐다.

원칙대로 열심히 일하다가 번번이 벽에 부딪히곤 했지만 결과가 나쁘게 나오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콘크리트 벽에 못을 내리치기만 한다고 들어가지 않아. 들어갈 만한 곳을 찾아야 하는 거야.”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인 마 의원은 늘 이런 식으로 젊잖게 말을 함으로써 지태평이 말뜻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만들었다.

 

뜻을 어렴풋이 알게 됐을 무렵,

‘이건 아니다.’

그는 현실의 벽을 깨닫고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그녀를 찾았다.

 

“단아씨, 지금 내 심장이 어떻게 뛰는지 알아?”

 

정초 겨울 싸~한 바람을 피하기 위해 세종시 공원 옆 아늑한 타잔커피숍에서 두 사람이 마리한커피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았을 때 지태풍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마리한커피는 최근에 유행한 것으로 한때는 마리화나 성분이 들어가지 않았나 의심받기도 했으나 브랜드 이름의 의혹은 해프닝으로 그친 바 있다.

 

“얼굴에서 막 육수가 떨어지고 있어요. 더구나 초겨울에…… 여기까지 마라톤 했어요?”

 

정말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기도 하다.

 

“서울에서 기차 타고, 세종역에서 트램 타고, 그리곤 여기까지 뛰다시피 걸어왔지.”

 

트램은 노면 전차를 말한다. 2020년 봄에 완공하여 개통한 지 아직 일 년이 채 안 된다. 세종시의 순환 트램이다. 서울에는 1968년까지 서대문에서 청량리까지 노면전차가 운행된 바 있으나 개발논리에 밀려 사라진 교통수단이기도 하다. 파리에서도 사라졌다가 최근 다시 등장했는데 접근성이 좋고 환경친화적이며 저소음이 장점이다. 시속 30킬로미터 속력은 교통사고를 줄이며, 느림의 회귀시대에 적합하다는 평가가 있다.

 

“땀 딲으세요.”

 

이단아는 그에게 자신의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고마워.”

 

지태평은 자신의 젖은 손수건을 옆에 두고 그녀의 손수건을 받았다. 우선 이마부터 문질렀다. 남의 손수건을 쓰는 게 미안하지만 향수 냄새는 결코 싫지 않다.

 

이단아는 세중대학의 환경학과를 졸업해 환경부의 7급 공무원으로 들어간 지 2년이 된다. 대기업 부사장의 딸이면서 검소하고 정의감이 많은 여성이다. 얼굴은 수수하지만 적당한 키가 그녀를 균형 있게 보이게 하는 요소이다. 지태평을 알게 된 것은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의 보좌관인 그와 환경에 관해 협의할 일이 많다 보니 자연히 가깝게 알게 되었다.

 

만나면 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고, 간혹 흥분하여 자기주장을 강하게 개진하는 그가 너무 앞서간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나이가 7살이나 위인 그를 대놓고 조언하기가 어려웠다.

 

요즘은 세상에서 가장 예민한 부분이 환경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안보 쪽이 두드러기가 날 정도로 예민한 부분이었는데, 개성공단이 재개되고, 신의주와 나진에 제2, 제3의 공단이 생기며 DMZ에 평화공원이 생김으로 해서 예민한 분야가 이동한 셈이다.

 

32살과 25살의 피끓는 청춘은 환경 부문에서 공감하는 부분이 비교적 많다. 정의감을 주체하지 못할 때도 있다.

 

“나 이제 환경운동 할 거야. 시민사회단체에 들어갈 거라구.”

 

그가 보좌관직을 사직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진로를 결정할 줄은 몰랐던 이단아는 지금 당황하는 순간이다. 긴 숨을 들이마신 후 그녀는 말했다.

 

“앞으로 저하고 자주 충돌하겠네요. 공무원과 시민단체…… 창과 방패 관계 아닌가요?”

 

“단아씨는 나의 상대 방패가 될 수 없 없어. 내 창은 아주 날카로워 단아씨도 협조해줘야 해.”

 

“방탄 방패를 가질 거예요.”

 

마리한커피가 식어가는 줄도 모르고 대화에 열중하는 두 사람.

시간이 고무줄이라면 그들은 이야기를 더 하고 싶다.

그러나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 이단아는 확인하고 싶은 게 있다.

 

“어느 시민단체인지 말해줄 수 있어요?”

 

“작은 환경단체인데, 회장은 4대강 건설업체 사장 출신이야.”

 

“너무 어울리지 않네요. 그 회장님도 대단하시고요.”

 

“그렇지? 뭔가 어긋나는 기분이 들지? 근데 뜻한바 있어 가진 재산의 반을 희사하여 환경단체에 한몸 바치겠다는 각오이셔.”

 

지태평은 의원 보좌관의 경력을 인정받아 (사)녹색미래의 사무총장으로 영입됐다. 대표 오선덕 회장은 청년 지태평의 사람됨을 좀 안다. 4대강 사업 후 환경 조사를 하던 환노위 보좌관들과 종종 접촉해 왔는데, 그 중 키가 크고 곱상하면서도 바람에 잘 흔들릴 것 같지만, 의외로 타협이 잘 안 되는 젊은이를 눈여겨보아 왔다.

 

저 친구는 분명히 세상의 보좌관과는 달라. 이 물에 적응이 어려울 거야.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오 대표가 힘차게 돌린 안테나에 걸려 들어온 스컹크(해군에서 레이더에 포착된 의심 물체)는 지태평이 곧 사직하고 새 진로를 찾을 거라는 사실이다.

 

“어쨌든 대단하신 회장님이시네요. 전혀 물이 다른데…….”

 

“세상에는 예측이 빗나가는 경우가 많지. 트럼프가 자신이 속해 있는 공화당한테 탄핵 당할 처지에 있는 거 봐.”

 

“하긴 보좌관님이 그 좋은 직장을 뛰쳐나오는 것도 그렇고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뜸을 들였다가 “근데 활동은 어떤 방법으로 하시려고요?” 물었다.

 

“일인미디어도 함께 할 생각이야.”

 

“너무 바쁘게…… 무리하시는 건 아녀요?”

 

“SNS를 열심히 하는 친구가 있어. 그와 같이 하는 거지.”

 

“일인방송은 장비와 콘텐츠가 중요한데 두 가지를 다하려면…… 몸이 몇 개라도 모자라잖아요.”

 

“친구가 장비 쪽을 맡고 내가 콘텐츠를 맡기로 했어. 내 주특기는 환경 콘텐츠이니까.”

 

“그렇게 바쁘시면…… 제가 계속 아는 척 해도 되나요?”

 

“난, 단아씨의 도움이 필사적으로 필요해.”

 

“저는 어디까지나 공무원예요. 공무원의 한계를 잘 아시잖아요.”

 

“공무원이라고 다 같진 않아. 나에겐 이단아적인 공무원이 필요해.”

 

그의 말에 그녀는 자신이 정말 주류에서 벗어난 이단아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서로 강렬한 눈빛을 교환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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