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알갱이
미세먼지
코로 들어가면
안 좋아요
제4회
미세먼지
겨울 들어 미세먼지가 부쩍 많아졌다.
밤새 자동차가 뿌예졌고, 낮에 늘어놓은 빨래는 먼지를 덮어써 주부들을 골탕 먹였다. 편서풍을 타고 황사에 묻혀 날아오는 중국의 스모그 때문이라고 불평한다.
미세먼지 예상 외로 무섭다.
70년 전 런던 스모그로 4천 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다.
먼지가 작다고 얕보면 낭패 당한다.
시대가 2020년인데 뭐라고?
천만에 말씀.
사흘 전 중국의 23개 대도시에는 스모그 1급 경보가 내려졌다. PM2.5(지름 2.5µm 이하 초미세먼지)의 농도가 500µg/㎥을 넘어섰으니 ‘아주나쁨’ 100을 훨씬 넘어섰다. 이는 세계보건기구 기준치의 40배를 웃돈다.
그럼 먼지 종류에는 어떤 것이 있기에?
- 먼지(PM50, 머리카락 크기): 황사 먼지
- 미세먼지(PM10, 머리카락 1/5): 먼지, 꽃가루, 곰팡이
- 초미세먼지(PM2.5, 머리카락 1/20): 연소입자, 유기화합물, 시멘트가루, 금속
베이징 시내는 적색경보를 발령했고, 중국 수도권 노후차량 운행 중단과 승용차 홀짝수제 운행을 일주일째 실시하고 있다. 적색스모그로 학교가 쉬고 입시생은 인터넷 강의에 의존한다. 마스크와 생수가 불티나게 팔린다. 가시거리는 50미터도 안 되고, 교차로 신호등이 잘 보이지 않아 차량이 엉켜 거북이 운행을 한다. 중국 밖으로 여행 하려는 항공권이 매진 상태다.
대기질 측정을 위해 이단아는 세종시에서 서울로 출장 왔다.
중국에서 날아온 미세먼지와 국내에서 발생한 미세먼지의 비율을 조사하는 게 요즘의 과제다.
“먼지에 번지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구분해?”
광화문 근처 카페에서 지태풍이 이단아를 만났을 때 물었다.
“그건 쉬운 일이 아니죠. 그래서 미국 나사와 한국이 협력해서 대기질을 측정하고 있는 거예요. 300개 이상의 지상과 바다에서 측정해서 연구하는 중이고요.”
나사 항공기 3대와 한국의 환경과학원 관측 장치가 협력한단다.
한반도를 연구 장소로 택한 이유는 도시화된 서울과 농촌지역의 차이를 쉽게 관측할 수 있고, 중국 공업지대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와 한국 내 발생 분을 비교하기에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비교 결과는 어느 정도?”
결과가 궁금한 지태평의 질문이었다.
“미세먼지 영향은 평균적으로 국외가 40퍼센트, 국내가 60퍼센트라고 하죠.”
“외국의 영향이 더 크다고 생각들 하는데…….”
“봄과 겨울에는 국외 영향이 클 때가 있고요. 주로 중국에서 강한 편서풍을 타고 올 때 말이죠.”
“미세먼지만 덮어쓰면 중국을 욕하는데?”
겨울 난방용으로 석탄을 때고 자동차 매연이 많은 중국이 미운 것은 사실이다. 2020년 현재 한국엔 친환경차가 250만 대로 전체의 10퍼센트 정도 되고, 공공기관은 50퍼센트 정도로 많아졌다. 이에 비해 중국은 경유와 휘발유 차가 많으니 아직 갈 길이 멀다.
“바다가 없었더라면 우리나라 피해가 더 컸을 테고요.”
중국과 한국 사이에 서해가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댕큐다.
“봄과 겨울에 미세먼지가 많은 이유는?”
“알면서 묻는 거죠?”
“다소, 응. 전문가의 의견을 한번 듣고 싶어서.”
자주 만나면 ‘사랑의 개론’쯤 다룰 만한데 두 사람은 언제나 그렇듯 환경지식 교환에 화제의 초점을 맞춘다. 수시로 의견을 나눠 환경의 추이를 알아야 한다면서. 환경파괴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것도 80퍼센트 정도로 믿는 수준이고, 지진 예측에 기술의 한계를 느끼고 있는 마당에 환경 분야에 절대 지식이란 정착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커피 한 모금 들이키며 대답하는 그녀.
“겨울과 봄에는 이동성저기압으로 황사와 먼지를 많이 몰고 오고, 또 화석 연료 사용이 많기 때문이라지요.”
여름에는 강우가 많아 씻겨나가고, 가을에는 기압계 흐름이 빨라 흩어져 버린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기온이 역전층이면 미세먼지 농도가 높다는데?”
“그건 공기의 대류가 잘 일어나지 않아 정체돼서 그렇죠.”
이단아의 추가 설명은 명쾌하다.
모래나 황사 위로 이동성 저기압이 통과하면 상승기류에 의해 편서풍을 타고 한국으로 온다. 북중국과 몽골고원에서 날아오는 모래 알갱이에 공해물질이 묻으면 유해 미세먼지가 된다. 그래서 중국의 스모그가 무서운 것이다.
“먼지 알갱이가 작을수록 더 위험하겠지?”
“알갱이가 작으면 전체 표면적이 커져서 오염물질이 많이 흡착되고, 또 폐포 속으로 들어가기 쉽기 때문이랍니다.”
일단 유해물질이 몸속으로 들어오면 면역세포가 염증반응을 일으켜 폐와 심혈관, 뇌 등에 질환을 유발한다. 그러므로 만성폐질환자에게는 치명적이다.
가시거리가 짧아 자동차 운행에 지장을 주고, 토양의 산성화로 농작물에 폐해를 주며, 반도체 등 산업 활동에도 지장을 주는 죽음의 알갱이라 할만하다. 반도체는 사방 30센티 기판에 0.1µg(먼지 1개)만 허용된다는 것.
커피를 마시고 카페를 나온 그들은 서울 보라매공원 쪽으로 향했다.
대기질을 측정하기 위해서다.
이단아의 업무에 지태풍은 품앗이 역할을 한다.
공원 주차장에 세워둔 차는 쉽게 먼지를 뒤집어쓴다.
“미세먼지 ‘나쁨’ 수준이니 바깥에선 마스크 쓰세요. 이건 3중 마스크예요.”
이단아가 마스크를 건네면서 말했다.
3중구조의 황사마스크가 미세먼지를 걸러낼 수 있다손 치더라도 폐렴환자 등 숨쉬기가 곤란한 사람은 마스크 착용을 줄여야 할 것이다.
먼지 예보에는 좋음 < 보통 < 나쁨 < 아주나쁨 네 단계로 구분한다.
미세먼지(PM10) 80~150µg와 초미세먼지(PM2.5) 50~100µg는 ‘나쁨’의 구간에 들어간다. 이를 초과하면 ‘아주나쁨’에 해당할 것이다. 수치는 1제곱미터에 함유된 먼지의 무게를 말한다. PM은 입자상물질(Particulate Matter)의 약자다.
“미세먼지 110으로 나쁨에 해당하니 작업을 빨리 끝내고 실내로 들어가는 게 좋겠어요.”
이단아는 측정기의 수치를 보여줬다.
대기질에 영향을 주는 예보 대상의 오염물질은 대부분 ‘나쁨’ 수준으로 나타났다.
예보 대상 물질.
- 미세먼지
- 초미세먼지
- 오존(O3)
- 일산화탄소(CO)
- 아황산가스(SO2)
- 이산화질소(NO2)
대기오염에는 황산염과 질산염이 60퍼센트 가까이 차지하므로 자동차 배기나 공장 연기를 조심해야 한다.
“오존은 자외선을 차단해줘서 좋다고 하는데 이게 나쁘다니?”
오존의 양면성이 생각나서 지태풍이 그녀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오존이 하늘 높이 있으면 자외선 차단 효과 때문에 좋으나 지상 가까이 있으면 독성 때문에 인체나 동식물에 나쁘죠.”
“그렇게 말해주니 정확히 이해되네.”
“다행히 오존의 수명은 2~3개월밖에 되지 않아 수명이 수백 년이나 되는 이산화탄소와는 비교되죠.”
“옆에 있으니까 많이 배운다. 고마워.”
고마움은 어깨를 두드려 표시할 수도 있다.
대기질 측정을 마치고 차 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지태평의 핸드폰이 울렸다.
오선덕 회장이다.
“사무총장, 조심해서 들어요. 지금 P 레미콘 회사에서 자네를 찾고 있어. 지난번 분진 고발건과 관련해서 세 명이 사무실로 찾아 온 거야. 아무래도 오늘은 집에 들어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혹시 해코지할지 모르니까.”
환경단체에 근무하다 보면 자주 이런 일은 일어난다.
협박도 회유도 밥 먹는 것만큼이나 흔하다.
충북에 있는 P 레미콘제조공장에서 각종 분진과 미세먼지 민원이 계속 발생했다. 주민이 환경단체 녹색미래에 이 사실을 신고하여 지태평이 엄밀히 현장조사를 한 적이 있다. 500제곱미터 미만은 신고제라는 맹점을 악용하여 업체는 다량의 분진을 발생시키고도 나 몰라라 한 것이다. 오히려 직원들을 동원하여 주민들을 회유, 협박까지 했다.
행정은 유력 중견 향토기업의 행위를 눈감아주면서 주민들의 불만 사항을 기업과 주민들 간의 일이라며 방관하는 자세를 취했다.
“미세먼지가 화력발전소에서 올 수 있고 중국에서도 올 수 있는데 우리 것이라는 증거가 어딨습니까?”
업체는 주민들에게 오히려 큰소리로 따져들었다.
문제 발단이 녹색미래임을 알고는 그들은 지태풍을 찾느라 혈안이 돼 있다.
지태풍은 오 회장의 전화를 받고 잠시 다음 행동을 생각해 보았다.
찜질방으로 가겠다는 그를 막으며 이단아는 말했다.
“오빠, 그러면 제 원룸으로 가요.”
그녀가 모는 차를 타고 가면서 지태풍은 여러 생각들로 머리가 어수선했다. 죄를 짓지 않았고, 대통령이 탄핵되기도 하는 민주 국가에서 근거 없는 협박에 도피 생활을 하다니. 차라리 정면 대응해야 한다. 그의 착잡한 심정이다.
세종시의 원룸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무렵이었다.
저녁은 요리를 해먹기로 했다.
“마침 고등어 사놓은 것이 있으니 구워먹어요.”
이단아는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앞치마를 둘렀다. 일본 고등어가 싸다고 해서 사 놓았는데 언제 먹을까 걱정하던 차에 오늘 처리할 찬스가 왔다고 좋아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지 거의 10년이 됐지만 일본 수산물에 대한 선입견은 여전히 좋을 리 없다. 방사능 반감기가 30년이라고 보면 후쿠시마의 수산물은 아직 위험하다.
“일본의 다른 지역 고등어는 괜찮아요. 수입허가가 났고 방사능검사 확인증도 있으니까.”
일본산에 대해서 미심쩍어 하는 지태풍을 의식해서 그녀가 선수를 쳤다.
대형 마트에서는 검사 확인증을 부착한다.
생선에서 세슘 기준치인 1킬로그램 당 100베크렐 이상이면 시장 유통이 금지돼 있다(1초에 랴듐 방사성 붕괴가 1번 일어날 때 1베크렐).
불안정한 원자핵이 안정화하는 과정에서 방출하는 알갱이나 에너지의 흐름을 방사선이라 하고, 붕괴하는 양을 방사능이라고 한다.
인체에 미치는 방사능의 양을 시버트(Sv)라고 하는데, 1시버트는 1,000밀리시버트(mSv)에 해당한다. 방사능 물질에 가중치와 시간을 곱하여 계산될 것이다. 일반인은 연간 2.4mSv 허용되고, 방사선작업자는 50mSv 허용된다. X-레이 1회 촬영에 피폭량이 0.1mSv라 하므로 각자 연간 양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방사능이 0.1밀리시버트도 안 되니 괜찮다는 뜻이지?”
“오빠 건강은 제가 먼저 챙기니까 걱정 놓아요.”
그녀는 기름과 녹차를 고등어에 바르고는 팬에 올렸다.
“이렇게 하면 비린내를 없애줘요.”
<
그녀가 먼저 설명했기 때문에, 왜 그렇게 하느냐고 구차스럽게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고등어가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다.
이번에는 미세먼지가 걱정되는 순간이다.
“그래도 환풍기는 틀어야 하겠지?”
지태풍이 부엌 위 환풍기 버턴을 누르려는 순간, 그녀가
“여긴 우리 집이니까 오빤 TV나 보고 얌전히 계셔요.” 그를 밀어냈다.
지태풍이 거실 TV쪽으로 물러나자 그녀는 환풍기를 틀고 작은 창문을 열었다.
왜 하필 오늘 고등어구이로 야단법석이야? 그가 말하려 하다가도 여기가 이단아의 활동 구역임을 깨닫고 요리가 끝나길 기다릴 뿐이다.
그녀는 지태평의 마음을 환히 읽고 있다는 듯,
“오늘 고등어구이 요리는…….” 그러면서 측정기로 들이대고, “미세먼지 농도를 알아보려는 뜻도 있어요.” 하면서 눈금을 쳐다보았다.
미세먼지(PM10) 농도는 200µg가량 나왔다. ‘아주나쁨’이 150µg 초과이니 고등어구이의 미세먼지 농도는 장난이 아니다.
고기를 구울 때 미세먼지 농도는 삶은 것 < 튀긴 것 < 구운 것 순으로 커진다.
기름과 재료가 연소하는 과정에서 미세먼지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 주방이 따로 분리가 되지 않은 곳의 피해가 크다.
측정을 하고 나서 그녀는 고등어 위에 3중 구조 덮개종이를 덮어씌웠다. 그러고 나서 측정해 보니 20µg정도 나왔다.
“이건 뭘 의미하느냐 하면, 3중구조 황사마스크를 쓰면 효과가 있다는 뜻이에요. 이런 걸 다 리포트 낼 거고요.”
제법 똑똑한 여자라고 지태풍은 생각했다. 뒤 목덜미에 키스라도 해주고 싶었다. 좋은 생각은 상승작용을 하는지 허리라도 껴안고 싶었다.
“따르릉~”
TV세트 옆에 놓여 있는 전화기가 그의 지나친 생각을 방해하듯 크게 울렸다.
“집전화로 전화할 사람이 별로 없는데…….”
중얼거리면서 그녀가 수화기를 들었다.
“낼 오전에 거길 가려고 하는데 괜찮겠니?”
엄마였다. 그럼 그렇지. 딸이 원룸에 잘 있는지 확인하는 효과도 있으니.
“엄마 왜? 내일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데.”
“김치랑 밑반찬이랑 가져갈까 하고. 너 없어도 그냥 갖다 놓고 가려고.”
“아니, 엄마 낼 오지 마. 밑반찬 아직 많아. 일주일은 더 먹을 수 있어.”
“이 얘가 왜 이래? 다른 때는 그냥 갖다 놓으라면서.”
당황스럽지만 이단아는 침착한 목소리를 찾았다.
“하여튼 많이 남았으니까 그렇게 해요. 엄마.”
“알았다. 계집애야. 담에 가마.”
재벌회사 부사장 부인은 원룸에 맡겨 놓은 딸이 항상 부뚜막에 올려놓은 아이 같기만 하다. 환경부가 서울에 있었더라면 이런 불필요한 걱정은 없었을 텐데.
엄마는 지태풍을 한 번밖에 보지 않았다. 그것도 여러 동료 중에 한 사람으로 봤을 뿐이다. 한 방에서 밤을 새웠다? 북한 핵폭탄을 터뜨리는 것과 다름없다. 물론 지태풍은 핵 버턴 상자의 열쇠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 아무렴 열쇠를 가지려 하지 않을 것으로 이단아는 믿고 있다.
“어머니였어? 내 얼굴이 CCTV로 중계됐나?”
“걱정 마요. 안 오시기로 했어요.”
“레미콘회사 동향을 점검해 보고 내일 일정을 다시 생각해 봐야겠어.”
두 사람은 약간 긴장했던지 저녁상을 앞에 두고 숟가락 들기를 주저했다.
그러나 서로를 위로하고 나서 맛있게 구워진 고등어의 등을 쪼개어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많은 실험을 제공하고 요리된 고등어는 입맛을 살려줬다.
“긴장을 풀기 위하여 건배!”
그녀가 꺼내 온 국산 와인으로 건배하면서 잔을 주고받았다.
마신 와인은 고등어 냄새를 입안으로 밀어 넣었고, 두 사람은 적당히 취했다.
오디오에서 ‘그대를 원해’ 클래식이 나오자 키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수없이 입술을 문질렀다.
사랑의 감정은 미세먼지가 황사마스크를 뚫고 들어가듯 가슴 깊숙이 스며들었다. 이런 사랑의 모닥불 속에서도 엄마가 걱정하는 핵폭탄 수준에는 가지 않았다. 양가의 가화만사성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고 서로 격려하면서.
다음날 그녀의 출근은 가벼웠다.
지태평은 레미콘회사와의 싸움은 지금부터라고 각오를 다지며 원룸에서 정오 커피 한잔을 챙겨 마시고 나와서 서울로 올라왔다. 당분간 사무실에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서 연락을 취할 예정이다.
‘정의는 이긴다’
마음속으로 구호를 외치면서.
<계속>
'소설 > 장난치는 자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장 폐수(제6회) (0) | 2017.01.30 |
---|---|
조류독감(제5회) (0) | 2017.01.10 |
제로하우스(제3회) (0) | 2016.12.09 |
가습기 살균제(제2회) (0) | 2016.11.30 |
지태풍과 이단아(제1회) (0) | 2016.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