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기회의 땅 러시아

기회의 땅 극동러시아(제17회)

오선닥 2016. 7. 9. 20:38

사하공화국 수도

야쿠츠크

가장 추운 마을

오이먀쿤


 

 

   

제 17회

 

 

사하 공화국(2)

 

 

수도 야쿠츠크 시내에는 북동연방대학이 있다. 2010년 3개 대학이 통합된 후 학생수 2만명의 숫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인구 26만의 도시에서 2만명의 대학생은 솟아오르는 향학열이 시베리아 얼음을 녹일 정도의 열기를 보여주는 것인지도.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는 야쿠츠크(Yakutsk)이고, 가장 추운 마을은 오이먀콘(Oymyakon)으로 알려져 있다. 야쿠츠크에서 900킬로미터 떨어진 인구 500명의 이 작은 마을은 사람 사는 마을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추운 곳이다.

 

“더 북쪽 마을도 있을 텐데, 왜 그렇죠?”

 

“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의 대륙성기후 때문이랍니다.”

 

야쿠츠크 관광 안내를 맡은 사하한국어학교 따마라 여선생이 사공박의 질문에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북극에는 육지가 없고, 남극은 섬이긴 하지만 탐사가의 왕래뿐 주민은 상주하지 않으니 오이먀콘과 비교할 수는 없다.

 

러시아의 두딘카 마을에서 수도관이 터져 온 마을이 얼어붙은 일이 있었다. 아파트 벽은 고드름으로 덮인 황당한 광경이었다. 침수 피해는 흔히 있다지만 얼음이 마을을 덮은 침빙(?) 피해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국에선 영하 10도가 3일만 계속되면 동파주의보를 내리는데, 여긴 수도관 파열 대비책은 어떤가요?”

 

사공박이 따마라에게 질문했다.

 

“오이먀콘 같은 작은 마을은 그런 걱정 없습니다. 아예 수도관을 설치하지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야쿠츠크는……”

 

그녀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수도관을 설치해봤자 얼어붙을 게 뻔하다. 지천에 널린 얼음을 깨 녹여서 물로 사용한다. 뜨거운 물을 하늘에 뿌리면 바로 얼음이 되어 흩날리는 곳이 사하 지방이다.

 

그러나 큰도시 야쿠츠크에는 상하수도 시스템이 있다..

 

“수도관 관리에 엄청난 비용이 들지요. 말하자면 에너지 비용 같은 것…….”

 

동파를 방지하기 위해 상수도관에는 물을 가열해서 보내고, 하수도관에는 뜨거운 물을 보낸다는 것이다.

 

레나강은 자주 범람한다. 범람한 습지가 방대하여 야쿠츠크의 레나강 유역은 매우 넓다. 이 때문에 강에는 아직 다리가 없다. 강폭이 넓고 봄에는 홍수가 반복되어 다리 건설이 어렵다. 10년 내 다리를 만든다고 하나 장담할 일은 아니다.

 

“그래도 크게 답답할 것은 없습니다. 여름에는 페리, 겨울에는 강이 단단히 얼어붙어 곧바로 도로가 되니까요.”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김야월이 말했다.

따마라가 추가로 덧붙인다.


“강이 범람하는 것은 북쪽 하류의 얼음이 녹지 않은 상태에서 남쪽 상류의 얼음이 먼저 녹아 중류인 야쿠츠크에서는 범람하기 일쑤랍니다.”

 

언젠가 야쿠츠크가 절반 물에 잠겼을 때 러시아 정부는 폭격기와 헬리콥터를 동원하여 하류의 얼음을 깨기도 했으나 홍수를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야쿠츠크는 다양한 문화의 결집이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공존한다. 외모도 동양인과 백인이 섞여 있고,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야쿠트어와 러시아어를 함께 배운다. 북동연방대학교는 여러 나라와 자매결연을 맺은 탓에 외국 유학생이 많아 국제교류가 많다. 혹한이 교류에 방해가 되지 않음을 강조한다.

 

시내 중심부인 레닌 광장의 주위에는 백화점과 대형마트, 카페들이 있는 현대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시내에서 10분 정도만 걸어가면 바로 전통 집들이 보인다.

 

러시아에는 어디를 가나 레닌광장이 있다. 방문 인증샷은 이런 데서 하는 걸로 고집하면서 사공박, 김야월, 따마라 세 사람은 사진을 찍었다.

 

“따마라 선생님의 샤프카가 멋집니다.”

 

사공박이 칭찬 한마디를 했다. 얼굴 모양은 몽골형인데 코는 러시아형이라 샤프카 모자를 쓴 그녀의 옆모습이 예뻤다.

 

겨울 동지 무렵엔 해 뜨는 오전 11시까지는 침대에서 뭉개도 될 것이다. 지금도 10시 무렵 해가 뜬다. 겨울 거리는 집, 사람, 자동차의 뜨거운 공기가 공중의 찬공기 때문에 상승할 수 없어 안개에 가려진다. 이런 걸 두고 오리무중이라고 하던가.

 

“사장님은 야쿠츠크에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세요? 예를 들어 박물관, 오페라, 민속무용이라든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왕이면 민속무용이 좋겠네요.”

 

야쿠츠크의 문화생활은 활기차다. 겨울 어둔 저녁에도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그들은 민속무용을 관람하기 위해 댄스극장으로 갔다. 사하인의 화려한 민속 복장이 인상적이다. 민족은 국가에 우선하는구나.





 

 

야쿠츠크 시내의 사하한국어학교는 해외에 세워진 여느 한국 학교와는 달리 러시아의 정규 학교이다. 제1외국어로 한국어를 가르친다. 학교 설립을 현지 정부가 주도했고 예산 및 운영도 그들이 책임을 지고 있다. 학생들도 90퍼센트가 현지 러시아인이다.


“사하정부에서 외국인학교를 지원한 것은 파격적입니다.”

 

러시아에서 외국인 학교를 이렇게 지원하는 학교는 없다고 따마라는 자랑삼아 말한다.

 

이곳 고려인들은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 나머지 우선 고려인 협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후손들에게 한국말을 배우게 하고 싶었다. 다른 소수민족처럼 자기 말을 공부할 기회를 달라며 학교 설립을 요청하였는데 자치 정부는 고려인들의 청원에 근거가 있다며 기꺼이 받아들였다.

 

“고맙긴 하나, 정부가 지원하는 이유라면?”

 

고려인을 특별 대우한다는 느낌 때문에 사공박의 궁금증이 커진 것이다.

따마라는 대답에 적극적이다.

 

“구소련 붕괴 후 사하공화국은 국가의 근대화가 시급했지요. 사하한국어학교가 그런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어요. 러시아연방의 유일한 한국어전문 공립 외국어학교가 된 것도 이 때문이랍니다.”

 

학교는 1994년 설립하여 현재 학생은 300명쯤 된다. 학생들은 한국에 관심이 많아 한국에 관한 것이라면 어떤 것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한류의 영향과 무관치 않다. 휴대폰에 저장된 노래는 모두 한국 노래로서 아이돌 가수는 이들의 우상이다. K팝을 능숙하게 따라한다.

 

“태극기가 걸려 있는 집도 있어요.”

 

그 학생은 상류층 가정의 자녀로 한국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꿈이라며 한류에 미친 아이다.

 

“고려인이 한국어를 지키려고 하니 일제하에서도 조선말을 지키려는 선조들의 뜻을 알겠군요.”

 

사공박은 감동을 먹었다.

 

교통은 철도가 없으므로 하천과 항공편이 큰 역할을 한다. 화물의 90퍼센트가 하천운송에 의존한다.

 

타타르, 코미, 알타이 같은 민족들은 러시아에서 인구 면에서 사하인보다 적지 않지만 언어나 문화 정체성에서는 취약하다. 야쿠츠크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바로 언어다. 사하공화국에서 야쿠트어는 공용어로서, 문화어로서 러시아어와 대등한 대접을 받고 있다. 사하에서 러시아어는 25퍼센트 정도 사용되지만 지방으로 가면 러시아어를 몰라도 불편하지 않다. 이것은 지난 20여년 사하공화국이 이룩한 발전 중의 하나이다.

 

야쿠트어는 투르크어족에 속하나 몽골어에서 차용어가 들어왔다. 어휘와 문법에서 퉁구스어와 몽골어 양쪽의 영향을 모두 받았다.

 

“혹시 한국어와 비슷한 말이 있나요?”

 

사공박의 질문에 따마르의 대답은 친절하다.

 

“비슷한 언어가 발견됩니다. 예컨대 ‘아이카’가 ‘아이구’, ‘으추’가 ‘추워’의 뜻이기도 하니까요.”

 

“참 신기하네. 믿기질 않아요.”

 

“터키어, 몽골어, 한국어가 알타이어에서 분화됐다고 하니 유사한 것이 오히려 당연하지 않을까요.”

 

그렇기도 하겠네. 수천 년 전부터 진화해온 언어를 정확히 꼬집을 수 있으랴마는.






 

 

사공박의 관심은 아무래도 지하자원이다. 땅덩어리도 커거니와 묻힌 자원 보물들이 많다. 얼음이 얼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이 지금까지 가만히 둘 리 없었을 것이다. 동면에 있는 땅을 슬슬 건드린다.

 

“알고 보니 내가 나설 곳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나설 곳이네요.”

 

그는 김야월이 들으라는 듯 크게 말했다. 사하는 지하자원이 무궁무진하다. 자신은 한국이 진출할 수 있는 마중물 역할만 하면 족하다. 러시아 내 다이아몬드 90퍼센트, 석유 및 가스 35퍼센트, 금 20퍼센트를 차지한다는 곳이 사하공화국이다.

 

수렵이 경제에 큰 역할을 하므로 사하는 러시아산 모피의 20퍼센트를 공급한다. 툰드라에서는 순록이 사육되고 원주민들은 순록 따라 움직인다. 늑대로 인해 순록이 흩어지면 그곳으로 따라가는 것이 이들이다. 식량은 사하 정부에서 배급한다.

 

나무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이들은 숲에서 떠들지 않는다. 숲의 신을 노하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속삭이는 것은 괜찮겠지요.”

 

김야월이 엉뚱한 데가 있어 처녀다운 호기심을 보였다.

 

“아마도……?” 사공박이 응수했다.

 

자연에 순응하여 살아온 그들로서는 숲이든 물이든 어울리는 데 익숙해져 있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돈이 있어도 큰집을 짓지 않는다. 집이 크면 땔감 나무도 많이 써야 하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사하한국어학교의 응접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차를 끓이기 위해 물을 가지러 간 따마라가 한참 만에 돌아왔는데, 손에는 커다란 얼음덩어리가 들려져 있다.

 

“창고에 가서 가져 온 겁니다. 이걸 녹이면 아주 깨끗한 물이 됩니다.”

 

정말 차 맛이 좋다. 얼음물이 깨끗해서 그런가 보다.

 

“선교사님은 결혼반지로 뭘 하실래요?”

 

사공박이 김야월에게 물었다.

 

“결혼한다면, 물론 다이아몬드죠. 여기가 다이야의 최고 산지니까요.”

 

약 50년 전 레나강 지류에서 처음 다이아몬드가 발견된 이후 사하의 미르니 지역은 전 세계 다이아몬드 생산의 25퍼센트를 차지한다. 사람들은 최대 생산국을 아프리카로 잘못 알고 있다.

 

이곳에 다이아몬드와 금이 많은 이유를 전설은 말한다. 보석으로 인해 싸움이 잦아지자 천사가 지구상 보석을 싹쓸이하여 하늘로 가지고 가던 중 손이 시려 떨어뜨렸던 곳이 바로 여기 사하지방이다. 얼어붙은 땅에 묻어두면 사람들이 손대지 못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라는데.

 

“여기에 다이아몬드 가공공장을 지으면 어떨까요?”

 

사공박의 사업가 정신이 급속히 발동했다.

 

“그렇지 않아도 90년초 가공공장을 세우려고 한국인이 거금을 투자했습니다.”

 

따마라가 말했다. 그녀의 한국어 실력은 수준급이다.

 

“그 한국인을 지금 만날 수 있을까요?”

 

“애석하게도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현지 공장건설 책임자가 자금을 들고 튀어버린 거지요.”

 

따마라는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얼마 후 인도 사업가가 와서 가공공장을 세웠는데 처음 다이야 부스러기를 가공하던 회사가 지금 큰 기업으로 됐죠.”

 

사업은 박자가 맞아야 됨을 새삼 느끼는 사공박, 계속 뭔가 생각해 나갈 것이다.

보석 산업에도 한류가 가능할 텐데. 한국의 5천억 원 다이아몬드 시장은 너무 좁으니까.



 

 

오이먀콘 강가에서 금광이 발견된 후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동물 사체에 독수리 떼가 몰려드는 거와 같다. 골드러시가 있었고, 금광 노동자로 정치범들이 강제노역에 동원되었다. 영하 50도에 살고 죽는 것은 독재자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곶감 빼먹듯 금이 빠져나간 폐광은 또 하나의 근사한 용도로 쓰인다.

 

“자동적으로 수용소가 되는 거죠.”

 

설명을 해나가던 따마라의 목소리에 감정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깊이 100미터나 되는 동굴은 정치범이나 강제노역자들의 거처지가 됐다. 때로는 식량 보관소로 이용되기도 하고.

 

소련 시절에는 주민의 샤먼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샤먼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마음은 장수하게 한다. 한 할머니는 115세까지 살았다.

 

혹한에서 적응한 동물은 강하다. 야쿠트 말은 강인해서 7개월 동안 한 번도 눕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다. 조랑말처럼 키가 작고, 털이 많고, 커다란 머리와 짧고 굵은 다리를 가지고 있어서 겨울에도 축사 없이 야외에서 생활할 수 있을 정도다.

 

야쿠트 순록은 순하고 참을성 많고, 영하 60도 혹한의 날씨에도 밖에서 선 채로 잔다.

 

“이곳 동물들도 자연 사랑은 알아줍니다.”

 

따마라의 설명이 궁금했다.

 

야쿠트 말과 순록은 눈 속에 묻혀 있는 풀을 먹는데, 풀 밑동까지 전부 먹는 게 아니라 끝부분만 먹어서 풀이 계속 자라게 하는 지혜로운 습관이 있다. 저인망으로 물고기를 싹 훑어가는 중국 어선들이 본받을 부분이다.

오랫동안 변방이었던 시베리아는 모든 것이 낙후된 곳으로, 90년 초 영국의 한 여행작가는 이곳을 다녀간 후 “한숨밖에 안 나온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직후 한국을 가리켜 ‘장미가 필 수 없는 쓰레기 더미’라고 표현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던 사하가 변하는 중이라고 따마라는 말한다.

 

“사하인은 돼지우리를 큰 저택으로 만드는 저력이 있습니다.”

 

독하기로는 한국사람 못지않은가 보다.

 

사하에서 뭔가를 얻어낼 것 같다고 말하면서 사공박은 두 여성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뜻에서 저녁을 크게 대접했다. 순록과 말고기, 연어와 송어 요리. 기름기가 많은 야쿠트 말고기를 대접한 것은 사려 깊은 결정이라고 봐야 한다. 한국의 보양식과 다를 바 없다. 사하인이 너무 좋아하는 메뉴에 속하니까.

 

한국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하인과 마찬가지로, 사공박도 이들을 좋아할 이유를 찾았다. 한국으로부터 근대화를 배우겠다는 이들의 희망을 꺾어서는 안 된다.

 

“장기적으로 윈윈하자.” 그는 결심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