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기회의 땅 러시아

기회의 땅 극동러시아(제18회)

오선닥 2016. 7. 27. 17:38

패전국 일본이 버린

사할린 한인

일본인도 러시아인도 아닌

그렇다고 한국인도 아닌

유랑아로 남은

한인들의 이야기



 


제18회

 

 

사할린 도착

 

사할린은 참 얄궂다.

 

사공박이 다섯 개의 사업을 시도했다가 하나밖에 성공하지 못한 곳이다. 실패를 자주 안겨준 사할린은 그에게 별로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사할린이 땅이 아니고 사람이었더라면 알리나 타이슨의 핵주먹 같은 것으로 실패한 숫자만큼 세게 갈겨주었을지 모른다.

 

“무턱대고 덤벼드는 네가 잘못이지.”

 

사할린은 사공박을 비웃는 것 같다. 남녀가 맞선을 보는 데도 족보, 신분이라든지 학벌, 취미 등을 알아보곤 하는데 “너는 뭐 하나 제대로 알아보기나 했어?”라는 식이다. 하긴 그렇기도 하네. 실패를 안겨 놓고 풀이 죽어 있는 그의 모습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덤벼들다가 일이 어긋나 버린 것이 한둘이 아니니까. 사람 관계만 해도 그렇다. 자본주의 사람들은 만나고, 식사하고, 상담하고, 계약서 쓰면 웬만큼 일이 진행되지만 당시 러시아인들은 그런 부류가 아니다. 현금이 계약서보다 먼저 효력을 발휘할 때는 힘이 쪽 빠지기도 한다.

 

유즈노사할린스크 부시장

카자크 용병 대장

사할린한인회 회장

사할린 한인교회 목사

 

이들은 사공박이 사할린에 진출했을 때 도와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사업 실적은 좋지 않았다. 물정 모르고 무모하게 낯선 땅에 뛰어든 잘못이 컸음을 자백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무용지물이었다고 표현하기는 이르다. 이들은 앞으로 전개될 사할린 이야기에 많이 관여하므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패를 통해서 사업수행 능력의 근육을 키우고, 마지막에 하나라도 건진 것은 사할린이 결코 그를 외면하지 않았음을 증명해준다.

 

그가 사할린을 들락날락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무렵이다. 그로부터 5년 동안 동토의 땅 사할린을 안방 드나들 듯 하다가 2005년 기반을 잡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른 것이다.

 

2009년 2월 늦은 오후

 

사공박 일행이 사할린의 주도 유즈노사할린스크에 도착했다.

겨울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사할린은 흰색의 도시.

비행장은 활주로를 빼고는 온통 눈과 얼음으로 덮인 상태.

사할린에 와서 그가 무엇을 할 건지 독자는 궁금하기만 하다.

 

일행의 구성은 지난번 연해주나 사하공화국의 방문 때와는 성격이 아주 다르다. 희망교회의 교인들로 구성된 점부터 그렇다.

 

유학준(42) 목사

한민희(32) 성도

방노찬(57) 장로

박영진(43) 박사

이사라(40) 여사

 

다섯 명의 교인을 사할린으로 안내한 사람은 사공박이다. 그는 희망교회의 교인이긴 하나 교회의 재직회 간부는 아니다. 다만 동북아선교부의 간사를 맡았을 뿐인데, 이것도 사할린 선교가 시작된 이후의 직분이다. 중국, 몽골,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국가 선교활동을 하는 동북아선교부의 필요에 의해 잠정적으로 맡겨진 사명이다.

 

희망교회는 일찍이 사할린의 한인교회를 통해 선교활동을 해왔으나 한 한인교회가 선교자금만 받아 가지고 선교에 진척을 보이지 않자 고민에 빠졌다. 그때 사할린 지역 사업을 한다는 사공박과 접촉이 이뤄져 그의 자문을 구하게 된 것이다.

 

“시작이 중요하므로 현지 사정에 능통한 종교인과 접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공박이 유학준 목사에게 제안했다.

 

“혹시 적합한 분을 알고 계십니까?”

 

“현지 러시아인 목사가 있습니다. 굉장히 열정적인 분이죠.”

 

이렇게 해서 사할린의 오순절교회의 빅토르 세르게이(43) 목사가 소개되었고, 한인교포 알라(39)가 통역을 맡게 되었다.

 

체제 개방 이후 러시아는 종교의 자유를 허락했으나 정교회 외는 법적 보호나 혜택을 주지 않았다. 불평등 속에서도 오순절교회는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교회 건물이 없어 체육관이나 교실을 빌려 예배를 드리면서도 아마추어 밴드를 결성해 찬양했다. 정교회의 정적이고 미지근한 예배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젊은이들이 록 밴드 공연 같은 예배에 심령이 자빠졌다. 자연스럽게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로 변해가고.

 

“하나님도 팬을 몰고 다니고 싶어 하니까요.”

 

세르게이 목사는 유모러스하게 말하면서, 성도들과 함께 기타 들고 발을 구르며 부흥사처럼 설교했다. 200여 명의 젊은 구름떼가 혼불의 도가니에 들어가곤 했다.

 

평일 저녁 목사의 2층 아파트에 교인들이 모여 예배를 드릴 때는 방언이 터지곤 했다. 초대교회 다락방 기도가 이런 것이라고 목사는 강조했다.

 

희망교회가 한인교회 대신 러시아 개신교를 지원하려는 이유는 단순하다. 땅끝까지 전도하는 데 국가의 이름이 걸림돌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열정적인 교회라면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사할린 호텔

 

희망교회 일행은 호텔에 짐을 풀었다. 여행하기 좋은 여름철을 두고 하필 추운 2월에 방문하느냐, 불평이 있을 만하나 방문의 목적을 듣고는 수긍이 간다. 오순절교회와 부설 한국문화원을 짓는 게 주요 목적이다. 여름 공사를 위해 겨울에 준비하기 위함이다.

 

정교회가 아닌 교회의 건립 허가는 쉽지 않다. 한국문화원의 허가도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우선 ‘한러문화연구원’으로 등록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벨카호텔로 들어서자 일행은 코를 벌름거리기 시작한다. 나무 냄새가 물씬했기 때문이다. 보아 하니 온통 통나무로 지은 호텔이다. 자재가 백송이냐 미송이냐 가문비나무냐를 가릴 필요 없이 캠프장에 들어온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방노찬 장로는 첫인상을 그렇게 피력하면서 곧 추위를 걱정한다.

 

“겨울에 단열은 잘될까요?”

 

“걱정 마세요. 콘크리트의 다섯 배 단열효과는 있을 겁니다.”

 

사공박이 대답했다.

 

“근데 아무래도 나무집이니까 화재에 취약?”

 

“신기하게도 통나무집이 안전합니다. 직경 3, 40센티 통나무가 타들어가려면 쉽지 않아요. 그리고 유독가스도 나지 않고요. 만약의 경우 대피가 쉽다는 뜻도 됩니다.”

 

통나무집에 조예가 깊다는 사공박의 설명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다. 각자의 짐을 풀고 호텔 주위를 둘러보는 사람들은 눈 덮인 침엽수림의 경치에 감탄한다.

 

잠자리에 들어가기 전 세 사람이 2층 응접실에서 티타임을 가졌다.

그들은 유학준 목사와 한민희 그리고 사공박이다.

회계 사항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다른 사항은 분위기에 맞춰서.

 

“이번 사할린 방문은 박영진 박사님의 후원이 물꼬를 튼 셈이죠.”

 

사공박이 화두를 꺼낸 후 유학준 목사를 쳐다보았다.

 

“귀한 헌금입니다. 일억 원을 일시에 쾌척하시니 감사할 따름이죠.”

 

안과의사로서 열심히 모은 돈을 통 크게 사할린 선교를 위해 기부한 박영진 박사와 이사라 여사 부부는 건넌방에서 지금 쉬고 있다.

 

한민희는 눈치 빠르게 서류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일억 원이 표기된 수표이다.

 

“목사님, 내일 전달식을 위해 증정 표지도 준비했어요.”

 

한민희는 회계로서 충분한 역할을 하는 재치 만점의 아가씨다.

서른두 살의 그녀는 광고회사 직원으로 일하면서 열심히 교회봉사도 한다. 휴가를 내어 자비로 사할린 방문에 합류할 정도로 열성이 대단하다.

 

바깥은 영하 15도를 가리키지만 통나무 호텔의 실내는 포근하다.

공적인 업무 이야기가 끝나자 세 사람은 바깥의 추위와 실내의 더위를 비교라도 하듯 움직임을 작게 하며 차를 마시는 데 열중했다. 찻잔을 들고 있는 손들은 병아리 감별사처럼 예민해지려는 듯 찻잔의 밑을 받치고 있었다. 사공박이 감지한 분위기는 유 목사와 한민희의 시선이 정제된 순간에만 마주친다는 사실이다.

 

“잠시 손 좀 씻고 올게요.”

 

한민희가 화장실에 가겠다고 일어났다. 땀이 난 손을 물로 씻어 내리지 않으면 거북스러울 것 같아서일까.

 

한민희가 나가자 사공박은 기다렸다는 듯 속도를 내어 말했다.

 

“목사님, 이제 매듭을 지으셔야 합니다.”

 

매듭지어야 할 내용은 목사가 더 잘 알고 있다.

 

한 달 전의 일이다.

저녁 10시 무렵 교회 건물 지하 2층에서 유학준 목사와 한민희 성도는 선 채로 손을 마주잡고 기도하고 있었다. 교회에서 흔히 있는 좋은 광경이기도 하다. 다만 불이 꺼진 상태에서, 공교롭게도 그때 부서 사물함을 챙기러 지하로 내려갔던 사공박이 스위치를 켰다는 사실이 문제의 소지가 될 뿐이다.

 

다음날 유 목사는 사공박을 자기 사무실로 불러 한민희와의 어설픈 관계를 설명했다. 그는 목사답게 다 털어 놓았다. 유일한 목격자에게 모두 털어 놓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한민희를 여러모로 달래보았으나 “사랑에도 세 발 자전거가 있잖아요” 혹은 “도형 중에도 삼각형이 제일 안전하잖아요” 하면서 그의 곁사랑을 받아 달라고 했다. 더구나 삼위일체 이론도 있지 않으냐고 말할 때는 목사는 “하나님 이름을 망령되게 한다”고 화까지 내었다고 한다.

 

유학준 목사는 얼마간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사공 사장님 말씀대로 당연히 그래야죠. 이번에 한민희를 데려온 것도 아름다운 매듭을 짓기 위한 뜻이 있고요.”

 

“그러시군요. 한민희는 제가 잘 말해볼게요. 목사님을 편하게 풀어주도록 말입니다.”

 

자녀를 가진, 전도유망한 목사가 이런 일을 만난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두 남녀가 잘 생겨도 문제가 되는구나. 사공박은 인연의 속성이 자꾸 궁금해졌다. 어쩌면 이런 고비를 넘기면 전화위복이 되지 않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 사람은 다 죄인이다. 목사도 죄인이다. 죄인이 없으면 교회는 존재하지도 지탱하지도 못한다. 교회는 죄를 씻는 곳이다⌟

 

교회를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한민희에게 사공박이 맑은 톤으로 말을 가다듬었다.

 

“한민희 씨, 조금전 목사님과 유익한 말씀 나눴어요. 무슨 뜻인지 알겠지요?”

 

“알겠습니다.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말귀를 알아먹는 것도 예쁘다. 감정을 주체 못한 그녀는 눈시울을 적셨다가 엽차 두어 모금의 시간이 지난 후 미소를 지었다.



 

유즈노사할린스크

 

인구 60만의 사할린 주는 남한 크기에 약간 못 미친다. 섬의 남북 길이가 한반도 길이와 비슷하다. 인구 대부분이 러시아인이고 한인은 6퍼센트로 두 번째이다. 한인 비율이 크다는 것은 자랑스러우면서 슬픈 일이다. 일제에 의한 강제징용이라는 역사 때문이다.

 

사할린은 북위 50도를 기준으로 남북을 일본과 러시아가 나눠 가졌다가 일본이 패전하자 섬 전체는 러시아 영토가 되었다. 주도(州都) 유즈노사할린스크는 인구 16만의 도시다. 유즈노가 남쪽을 뜻하니 이 도시가 남쪽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전쟁에 흥남 철수가 있었다면 태평양전쟁에는 코르사코프 철수가 있었지요.”

 

일전에 사공박이 사할린을 방문했을 때 한인들이 한결같이 말하던 부분이다.

 

패전한 일본은 일본인만 배에 태워 철수시키고 한인들은 일본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할린에 남겨두었다. 강제 징용할 때는 황국신민이라 하더니 철수할 때는 조선인이라 우기며 자기들만 배타고 빠져나와 버린 것이다.

 

사할린한인회 회장 공노준이 일정에 맞춰 호텔로비에 도착했다. 오순절교회 세르게이 목사가 동행했다. 공노준 회장이 안부를 물었다.

 

“편안한 밤 되셨나요? 워낙 추운 곳이라서…….”

 

“흡사 친척집에 온 기분입니다.”

 

방문팀장 방노찬 장로가 인사를 받았고, 일행은 미니합승에 올랐다.

사할린 섬에는 해방 얼마 후까지 한인 4만 명가량 살았으나 지금은 3만 명쯤 된다. 경상도 출신이 70퍼센트 된다. 한인의 반은 유즈노사할린스크에 살고 있다. 사천 명 가까이 한국으로 영구 귀국했고, 아직 귀한(歸韓)을 바라는 사람이 몇천 명 더 있다. 물론 자식들과 떨어지기 싫어 귀한을 포기하고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 사람도 있다.

 

“시청에 가서 임차 허가서를 받으시죠.” 한인회장이 안내했다.

 

일행이 시청에 도착했을 때 부시장은 3층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비서는 사공박 일행의 방문 목적을 미리 알고 있다는 듯 차를 대접하고는 오리온 초코파이로 적당히 푸짐해진 몸을 움직이며 서류 봉투 하나를 부시장에게 건넸다. 부시장은 내용물을 확인하고 방노찬 장로 앞에 놓는다.

 

“문화원 부지 허가서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는데, 교회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부시장은 거듭 당부했다.

 

그렇더라도 세르게이 목사는 교회 건립에 지장이 없을 거라고 믿고 있다. 종교 정책과 법규는 바뀌기 마련이고 설계변경의 여지도 있다는 의견이다. 사공박이 부지 건으로 해서 시청사를 얼마나 방문했는지는 정문 경비원이 잘 알고 있다.

 

시청을 나온 일행이 도착한 곳은 사할린 TV방송국에서 200미터 미터 떨어진 곳이다. 방송국 견학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근에 건축할 1200여 평의 교회 부지를 보기 위해서다. 개인 소유는 불허하므로 50년간 임차 형태이다.

 

“완전 황무지로군요. 널브러진 목재들 보세요.”

 

박영진 박사의 부인 이사라 여사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폐교된 초등학교 부지로 유령이라도 나올 법한 폐허이다.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길 망정이지 여름이면 잡초로 인해 더 황량할 것 같다. 주위에 이런 빈터가 수없이 많다. 앙상한 철골만 남은 폐발전소도 시야에 들어온다. 유령 영화 촬영하기에 어울릴 법한 곳이다. 소련 체제가 무너진 전형적 증거 현장이라 하겠다.

 

“이래봬도 땅값이 몇 배로 뛴 곳이에요. 지금 사할린은 서울 강남개발을 능가하는 붐을 일으키고 있답니다.”

 

사할린 경제동향을 잘 아는 사공박이 말했다.

 

최근 유전 덕분에 활기가 넘치는 사할린에는 연간 오천 명의 외국인 노동자와 사업가가 새로 유입되고 있다. 특히 건설업체의 진출이 활발하다. 석유개발업자와 인부들이 기거할 주택, 아파트, 호텔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부동산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저희들은 미리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아주 싼값에 임차한 것입니다.”

 

세르게이 목사는 시기적으로 적절했음을 강조한다. 더구나 방송국 옆이라 인기 지역으로 발전 가능성이 많다고 덧붙인다. 입지적으로 교회와 문화원이 들어서기에는 최적지라는 것.

 

일억 원 수표 전달식은 세르게이 목사의 사무실에서 점심 만찬을 겸해서 진행됐다. 사무실이라는 게 살림집으로 쓰는 그의 아파트이다.

 

“한국에서 온 희망교회 교우님을 소개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이룬 기적입니다.”

 

세르게이 목사는 교인들에게 한국 손님 환영을 유도했다.

 

좁은 아파트에는 이미 30여명의 남녀 교인들이 기다리고 있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청년들이다. 한국에서 온 방문 일행이 합류하니 좁은 공간은 엉덩이들이 부닥치기 일쑤다. 눈앞에서 얼굴이 맞닿을 때는 미소를 짓지 않으면 마주보기가 어색할 정도다.

 

서울의 희망교회가 큰 도움을 줬다는 사실을 듣고 교인들은 고무됐고, 힘찬 찬양으로 천장이 들썩였다. 기도 시간이 다가오자 감동된 목소리가 방안을 꽉 채웠다. 다행히 방음 문제는 걱정을 접어도 좋았다.

 

“아파트 벽이 두껍고 창문은 이중창이며 현관문은 두 개나 있어요.”

 

사공박의 설명이다.

소련 시대의 건물은 투박하지만 실용적이다. 현관문 자물쇠는 커다란 무쇠덩어리이고 열쇠는 여자의 비녀만 하다. 러시아 사람들이 외출할 때 주먹만 한 열쇠꾸러미를 챙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도둑 피해가 많았던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사공박은 다짐한다. 언젠가는 이곳에 한국식 아파트를 짓고, 디지털 잠금장치를 설치하겠노라고.

 

한민희는 이곳에서 인기인이 됐다.

대학생이냐고 누가 물었을 때 나이를 아는 일행은 놀랐다. 이런 아름다운 착각도 있구나. 그녀로서는 어제 저녁 가라앉았던 마음이 어떤 부력을 받은 느낌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