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기회의 땅 러시아

기회의 땅 극동러시아(제16회)

오선닥 2016. 6. 30. 14:44

러시아에서 가장 추운

사하공화국

한국 사람과 한류에

관심이 많은 나라

생김새도 비슷하고...

2회에 걸쳐

사하 이야기 나누렵니다


  


 

제 16회

 

 

사하 공화국(1)

 

연해주 역사탐방과 아무르 호랑이와 철새 탐방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사공박(司空 博)은 휴식 시간을 가지면서 앞으로의 사업에 대해 구상해 보았다.

 

“왠지 끌리네. 그곳에 가야 해!”

 

숨소리 크게 독백하고는 벌떡 일어났다.

사무실 벽에 걸린 러시아 지도 쪽으로 가서 손을 짚었다.

러시아의 북동쪽에 있는 사하공화국.

자석처럼 끌리는 곳.

 

이듬해 2008년 11월 말 그는 주저 없이 나설 채비를 했다.

 

이번에는 단신으로 사하공화국에 들어간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모피를 사거나 어획물을 수입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땅속에 묻힌 것들로 인해 동토(凍土)가 명당으로 변하는 걸 직접 눈으로 보고자 한다. 사업이란 미래를 보는 눈에서 출발하니까.

 

인천공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야쿠츠크로 향하는 비행기를 갈아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야쿠츠크까진 3시간 비행이다. 귀국 시에는 하바롭스크를 통해 인천공항으로 가는 항공편을 이용하기로 했다. 2008년 당시는 직항이 없었다. 그러나 2016년 러시아의 야쿠티아항공이 주 1회 인천과 야쿠츠크 간을 직항한다.

 

극동러시아는 사공박에게 숙명과 같은 지역이다. 마치 극지를 탐험한 피어리나 아문센, 스코트 같은 탐험가의 사명감이 그의 핏속을 흐르고 있는 것처럼.

 

한인 교회의 선교사가 안내를 맡았다. 여선교사 김야월은 3년 전 단신으로 동토의 도시 야쿠츠크로 왔다. 밤과 달을 사랑할 운명이지만 남자를 사랑할 팔자는 아니라고 스스로 말하곤 하는 여자다.

 

“결혼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결론이 나고 말았지요.”

 

어떤 결론인가 했더니, 러시아어를 전공한 약혼자는 모스크바라면 모르지만 시베리아의 동토에 가서 냉동되고 싶지는 않으니 약혼은 없던 걸로 하자며 매정하게 돌아섰다는 것이다.

 

“이십대 여성으로서 어떻게 이 오지에 올 생각을 하셨어요?”

 

스물아홉도 20대에 속한다. 처녀의 몸으로 러시아의 제일 추운 곳에 와서 살고, 그것도 샤먼이 뿌리박힌 곳에서 전도하겠다니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어려움을 안고 가는 것 같아 애처롭기도 하다.

 

그는 질문을 해놓고 김야월을 비교적 찬찬히 훑어보았다. 여자를 너무 섬세하게 보는 건 아닌지 오해받을 정도로 아래위로 시선을 내보냈다. 약간은 안심할 수 있는 구석을 발견한 것은 다행이다. 그녀가 적당한 지방질과 무시당하지 않을 크기의 체격을 가졌으며, 비교적 둥근 달 모양의 얼굴을 한 것은 현지에 적응하고 현지인과 어울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현재 한인 교회에는 천 명 정도 있는데 중국에서 온 조선족 성도도 40여명이나 돼요. 이들은 중국에서 값싼 물건들을 들여와 현지인들을 상대로 물건을 팔기도 합니다.”

 

그녀의 현지 설명은 비교적 구체적이다.

 

“야월 선교사님은 개척정신이 투철하신가 봐요.”

 

사공박이 말하자 김야월은 입에다 손을 대고 웃는다.

 

“갑자기 이름을 부르니 이상하네요. 촌스럽기도 하고…….”

 

그녀는 선교사가 된 후 이름을 바꿔볼까도 생각했으나 뭘 바꾸기를 싫어하는 성미라 반쪽짜리 쌍꺼풀도 손대지 않았다고 한다.


 


사하공화국(야쿠티야)은 극동 연방관구에 속하지만 지리적으로는 극동러시아가 아닌 시베리아에 속한다. 인구 100만 미만의 작은 공화국이지만 땅덩어리는 한반도의 15배나 되고, 러시아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넓은 행정구역이다. 3시간 시차 영역은 땅덩어리의 크기를 짐작할 만하다. 공화국의 수도 야쿠츠크(Yakutsk)는 인구 26만에 불과하나 동면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뒷다리에 힘을 주고 도약할 자세를 취하는 것처럼 활력이 보인다.

 

사공박이 김야월에게 물어볼 것은 많다.

 

“왜 춥고 문명과 동떨어진 곳에서 고생하시나요?”

 

“우선 이 공화국은 잘살아요. 공기도 좋고요.”

 

종교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던지 그녀는 이어서,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라는 사명도 받았고요.” 스스럼없이 말했다.

 

사하공화국은 일인당 소득이 연해주의 두 배에 달한다. 영역의 40퍼센트가 북극권에 속하고 남쪽 초원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영구동토지대다. 여름에도 2미터만 파내려 가면 얼음층을 만난다. 전면적의 3분의 2는 산지고원이고 중앙지역과 북동쪽에는 평지가 있다.

 

“사하(Sakha)는 야쿠트(Yakut)의 별칭이군요.”

 

설명을 들으면서 사공박이 터득한 부분이다.

야쿠트족은 투르크 계 민족으로 전통적으로 반유목생활을 해 왔다. 13세기 바이칼 호수 근처에서 사하로 이주해 와서는 퉁구스족과 동화되었다. 구소련 시절 야쿠티아 공화국이었던 것이 소련이 붕괴한 후 1992년 사하공화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야쿠트족은 스스로 사하족이라 불렀는데 퉁구스족이 야쿠트족이라 불러 러시아도 따라 부른 게 시초가 됐다. 그러므로 그들은 야쿠트보다는 사하로 불리길 좋아한다.

 

시베리아 원주민 역사는 투르크족이 초원지대로부터 천여 킬로미터나 떨어진 레나 강변에서 퉁구스족 사이에 끼여 살면서 활기를 찾았다. 사하공화국을 관통하는 레나강은 바이칼호 부근에서 발원하여 북동으로 가면서 남쪽 지역에 낙엽송, 자작나무, 소나무, 가문비나무 숲을 만들고, 북쪽 지역에 이끼와 키작은 관목 등 툰드라 식물을 다독거려 놓고 북해로 빠져나간다. 감자·귀리·호밀·채소 등 작물은 자연히 남쪽 지류 주변에서 재배된다.

 

야쿠트인은 1620년대부터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러시아가 모피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자 반란을 일으켰으나 곧 진압 당했다.

 

“그때부터 러시아인의 유입이 시작된 거로군요.”

 

“그렇습니다. 19세기 중반 극동 쪽 우편 체계 확립, 정치범 수용시설 건설, 금광 발견 등으로 러시아인의 유입이 크게 증가하자 야쿠츠카야주가 설치되었고, 19세기 후반 시베리아 철도 건설과 레나강 상선 운항으로 러시아인들의 유입이 더욱 증가하였지요.”

 

“몽골인이라는 주장도 있던데 얼굴 생김 때문인가요?”

 

“투르크족이나 퉁구스족은 다 유목민들이니까 섞이다보면 비슷해지겠지요.”

 

사하공화국엔 대부분이 야쿠트인(50퍼센트)과 러시아인(38퍼센트)이다. 소수 민족은 우크라이나인(7퍼센트), 중앙아시아인, 나나인, 축치인, 고려인, 중국인 등으로 사하에는 120여 민족이 살고 있다.



 


사람들이 사하공화국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야쿠트족으로도 불리는 사하족 때문이다. 사하족은 원주민 중에서 근면하고 영리하다는 평을 들어왔다.

 

야쿠트족에게는 종교의식을 집행하는 샤먼이 있다. 의복, 북, 관습 등이 퉁구스족과 매우 유사하다. 퉁구스족과는 달리 자연현상 어디에나 편재해 있는 정령(精靈)들을 믿고 다른 시베리아 종족들과 마찬가지로 야생동물들, 특히 곰, 독수리, 까마귀 등을 숭배한다. 기마 민족인 이들이 천계의 영들에게 말을 희생물로 바쳤다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투르크족이었다면 왜 그 들은 스스로를 사하(Sakha)라고 생각했을까요? 혹시 인도의 사카족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인류사를 연구해보면 알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독특한 민족인 것만은 사실인 것 같아요.”

 

선교사 김야월인들 사하의 뿌리를 다 알기란 쉬울까마는.

사공박은 대화를 할수록 사하족의 매력에 끌려들었다.

 

“러시아 극동지역의 사하족이 인도와 관련 있다고요? 불가사의하네요.”

 

교회 관사의 응접실에서 마주하고 있는 두 남녀.

사하국의 전통차 대신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다. 사공박이 한국에서 가져온 커피다. 늦은 11월의 창밖은 싸늘하고 시베리아 하늘의 별은 유난히 총총하다.

그녀는 사하족의 본질을 요약해 나간다.

 

“민족의 이름은 이란계로 간주되는 스키타이의 이름을 연상케 하고, 언어는 투르크계 언어를 사용하고, 사는 곳은 러시아의 극동지역이며, 생김새는 몽골족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흥미진진한 혼합이라고 할까요.”

 

스키타이는 사르마트에게 멸망한 이후 일부는 인도로, 일부는 알타이 지역 등으로 흩어져 이동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그녀는 부가 설명했다. 선교사로 오기 위해 역사 공부를 많이 한 흔적이 이런 대목에서 엿보인다.

 

“멸망한 민족에게 이동은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겠지요.”

 

사공박이 그녀의 동의를 물었다.

 

“살기 위해 정착지를 찾아 나서는 것은 유목민족의 생활 방식이니까요.”

 

시중드는 원주민 아가씨가 자주 응접실 앞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은 혹시 야밤에 있을지 모르는 늑대의 공격 때문이 아니라, 두 남녀가 필요 이상의 대화를 할까 파수하는 느낌이 들어 사공박은 원주민 아가씨의 호기심 넘은 경계심에 약간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사하공화국은 얼마나 추울까? 어제도 눈이 내렸다.

 

이곳은 10월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7개월간 겨울이다. 시장판에 물고기를 꽂아 놓으면 돌처럼 굳는다. 물고기가 아니라 막대기가 된다. 1월 평균기온 영하 40도이고 심지어 영하 71도까지 내려간 기록이 있다. 7월 평균기온 19도이고, 연간 강수량 200밀리.

 

혹독한 추위에도 양과 말, 소가 겨울을 견딘다. 순록은 추위를 잘 견디도록 진화된 동물처럼 보인다.

 

어제는 야쿠츠크에서 북동쪽에 있는 순록마을을 찾았다. 원주민 안내인이 순록을 잡는 광경을 보여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유목생활을 하면서 야생순록을 잡기도 하지만 이놈들의 힘이 너무 세어 잡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야생순록을 잡아 길들인 것을 보고 사공박은 궁금증이 많아졌다.

 

“시베리아 야생동물이 집에서 잘 키워집니까?”

 

“비결이 있어요. 순록은 어릴 때부터 소금을 맛들이면 사람을 잘 따른답니다.”

 

야쿠트족 주인이 말했다.

풀에 소금을 뿌리면 순록이 잘 먹는다는 것이다.

 

순록을 사람이 키우기 시작한 것은 불과 50년 전. 근력이 좋아 사람을 태우고 짐을 운반한다. 순록은 고기와 가죽, 뿔을 제공한다. 순록 가죽은 특유의 부드러움과 방한성으로 러시아 모피의 5분의 1을 차지한다. 보호가 필요한 어미와 새끼를 남기고 수컷은 숲에서 방목한다. 종을 울리면 순록은 목장으로 돌아온다.

 

유목민은 목장과 별도로 시내에 따로 집을 두기도 한다.


 


목장에서 야쿠츠크 시내로 오는 길에 해무리가 들어섰다. 위도가 높은 극한 땅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숲속을 지날 때는 아담한 통나무집이 보였는데 노천온천이 있는 곳이다. 영하 40도에서 노천 온천물에 들락날락 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남자들이다.

 

숲을 지나자 눈 덮인 하얀 길로 들어섰다.

김야월이 길 위의 작은 집 하나를 가리켰다.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이곳은 길이 아니라 레나강이랍니다. 저기 보이는 것은 낚시집이고요. ”

 

얼음강 위의 작은 집 가까이 갔을 때 한 할아버지가 집 안에서 불을 피워 놓고 드릴로 얼음 구멍을 내어 그물을 넣고 있었다. 잡힌 물고기를 건져 올리자 바로 얼어 죽었다. 지느러미는 사각사각 부서져 버렸고.

 

“이제 얼음동굴로 가볼까요.”

 

동굴은 원래 얼음을 보관해둔 장소였다. 지금은 영구동토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지하 동굴에 내려가니 매머드의 생생한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사하 지역은 1만 년 전 빙하기 흔적을 온몸에 품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매머드 유적지이다. 발굴 당시 매머드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매머드 박물관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금광 채굴 중에 발견된 것으로, 언 땅이 녹으면서 대규모로 드러난 거죠. 빙하기 생태계를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가 된답니다.”

 

죽은 상태로 동결돼 살과 털이 그대로 붙어 있다.





사공박은 사하 땅에 한국 건설회사가 진출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건물은 어떻게 짓나?’ 의문을 가지며 몇몇 건물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몇 가지 특색이 있다.

 

야쿠츠크는 근본적으로 얼음 위에 세워진 도시다. 지하 주차장이 없다. 지하 2미터 아래는 영구동토층 툰드라이다. 지하 12미터 정도 파일을 막아 지상 일 미터 위로 건물을 올린다. 건물이 떠 있는 형태이다. 건축 비용이 높을 수밖에 없다. 십 층 이상 건물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언제부터 러시아가 이 동토의 땅에 맛을 들였을까요?”

 

사공박의 질문은 좀 지나칠 정도로 다양하다. 그러나 김야월은 준비된 선교사답게 러시아 역사에 대해서 차근차근 설명해 나간다.

 

“시베리아를 16세기 후반부터 개척하기 시작했는데 군대 진격보다 더 빨리 개발했답니다. 하루 평균 100제곱킬로미터라는 엄청난 속도로 영토가 확장됐으니까요.”

 

“그래서 큰 땅을 차지했군요.”

 

대화를 하면서도 김야월은 약간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고국에서 온 사람이라면 좀 더 관심 있는 화제가 있을 텐데, 이를테면 한국의 총각들이 사하공화국을 얼마나 알고,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며, 이곳으로 진출할 가능성은 있는지 등등. 그러다 보면 처녀가 시집갈 기회도 생길 테고.

 

사공박은 눈치 없게 땅 이야기만 한다.

 

“이곳은 많은 잠재력이 있는 것 같아요. 한국인에게는 기회의 땅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회의 땅에 한국인이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외로운 그녀에게 솔직한 심정이다.

 

1622년 2만여 명에 불과하던 인구가 100년도 되지 않아 10배로 증가했다가 지금은 50배가 된 것이다. 점령지마다 원주민에게 비버 가죽으로 세금을 내도록 했다.

 

러시아군의 지원을 받던 러시아 사냥꾼은 계속 남하를 하다가 흑룡강(아무르) 일대에서 청나라와 부딪혔다. 총포를 가지고 있는 러시아군을 당할 도리가 없는 청나라는 조선에 도움을 청했다. 이때 러시아를 쫓아내 준 것이 1650년대의 ‘나선정벌’이다. 당시 조선의 총포가 러시아보다 앞섰으니까.

 

“고것 통쾌하네.”

 

설명을 듣던 사공박은 기분이 좋아 하마터면 김야월의 말총머리를 잡을 뻔했다. 러시아군은 카자크 용병이었었는데, 말을 잘 타는 용병들을 상상하다가 그만 엉뚱한 실수를 저지를 뻔한 것이다.

 

러시아 모피상들은 이번에는 베링해를 건너 1704년 알래스카로 진출했다. 순전히 모피사냥을 위해서다.

 

“그래서 알래스카가 러시아 영토로 됐군요.”

 

“말하자면 모피를 좇다가 알래스카를 얻었으니 전화위복인 셈이죠. 나중에 720만 달러 받고 미국에 판 것은 대실수였지만요.”

 

육지 모피가 사라지자 이제는 북태평양 해안 해달에게 눈을 돌렸다.

모피전쟁은 19세기까지 시베리아의 중요한 경제활동이었다.

결국 순진한 동물들만 하나씩 피해를 보기 시작했으니 인간이 문제 중의 문제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