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북극탐사 항해

북극 탐사 항해(하)

오선닥 2013. 8. 1. 07:36

 최초 북극 탐사 항해는

 

2010년 7월 1일 인천을 출항하여

8월 25일 부산에 입항함으로서 완료.

 

이번 탐사 항해는 시작일 뿐이고

앞으로 수없는 항해가 계속될 것이다.

 

북극항로개척과 북극개발이라는

두 개의 커다란 과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마지막 연재

 

 

 

북극 탐사 항해(하)

 

 

얼음 찾아

 

배는 북위 76도를 따라 정서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멀리 해빙(海氷)이 보이나 그리 단단하지는 않은 것 같다.

약한 얼음을 밀고 지나갈 때 해면에서 스삭스삭 얼음 갈아내는 소리가 들린다.

 

당직을 마치고 아침을 먹을 때 양외란은 러시아 유빙항해사와 마주했다.

 

“북극과 남극의 얼음 차이는 어떻습니까?”

 

양 극지를 다 경험한 그녀로서는 얼음의 차이를 분명히 보았다.

유빙항해사는 질문이 당연하다는 듯 설명을 시작한다.

 

“남극의 얼음이 빨리 녹습니다.”

 

남극의 해빙에는 해조(海藻), 크릴 등이 섞여 있어 빨리 녹는다는 것.

해조는 해빙의 바닥이나 가운데에 들어있다.

 

북극의 얼음에는 눈이 10~20센티 정도만 쌓이지만, 남극에는 눈이 50센티 이상 쌓인다.

 

북극의 겨울이 끝나는 5월 초순이면 일 년 된 얼음은 1.2~2미터 정도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두꺼워져 2년생은 2~3미터 정도 된다. 2년 된 얼음은 염분이 모세관현상으로 빠져나가 민물 얼음이 되므로 녹여서 마실 수 있다.

 

얼음의 연구는 발전을 거듭했다.

쇄빙선이 없을 때는 얼음 위 기지에서 얼음 연구를 했다고 한다.

이로 인한 에피소드도 있다.

 

70년대 초 러시아 과학자들은 북극점 해빙덩어리 위 ‘떠다니는 기지’에서 연구했다.

처음 한 개였던 얼음덩어리가 두 개로 나누어져 서쪽으로 떠내려가다가 한 개는 북극에서 사라지고, 다른 한 개는 놀랍게도 4천 킬로 이상 떨어진 그린란드 동안까지 떠내려가 녹았다고 한다.

 

한 소년이 러시아 기지의 주소가 적힌 편지봉투를 주워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쇄빙선 안전설비

 

오전 과업이 시작할 무렵 갑자기 화재경보가 울렸다.

당직항해사 양외란이 확인한 결과 세탁실의 스팀이 과하게 발생한 탓이었다.

 

계단에서 각 복도로 들어가는 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평소에는 자석으로 문을 열어놓지만 불이 났을 때는 복도로 불이 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동으로 폐쇄된다.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됐다는 뜻이다. 실제상황은 아니었지만 안심이었다.

곧 선내방송을 통해 경위를 설명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다가 화재로 감지할 정도로 센서는 예민하다.

 

“불감증이 아닌 것을 고맙게 여겨야 하지 않을까요?”

 

경보기의 민감한 작동에 불만을 표시하려는 사람이 있자 전자장이 아예 선수를 쳤다.

 

뱃머리가 얼음판에 부딪칠 때마다 쿵쿵 소리와 함께 선체가 심하게 요동했다.

일반 상선이라면 외판 손상 염려에 깜짝 놀랄 수도 있다.

 

그런데 본선은 쇄빙연구선으로 선급규칙 PL-10 및 IMO의 극지빙해역 선박운항 기준의 선체 강도를 갖추고 있다.

 

선수 측에는 얼음칼(Ice knife)이 설치돼 있어 얼음을 쪼개고 또 선박이 얼음판 위로 높게 올라가는 것을 방지한다.

 

추진기는 얼음 충돌에 견디도록 스테인리스로 제작돼 있다. 빙해선급규정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일만 킬로와트 추진기 출력은 두꺼운 얼음판을 쩡~ 쩡~ 조각낼 정도로 힘차다. 선수 측 외판두께 40밀리 고급강재는 영하 40도를 견뎌낼 정도로 강하다.

 

 

 

 

특별한 맛

 

2010년 8월 초하루의 아침은 서늘하다.

기온은 영하 1.5도.

상갑판에는 모처럼 살얼음이 깔렸다.

 

살얼음은 자주 보는 광경이 아니다. 안개나 비, 눈이 와야 볼 수 있지만 간밤에 기상이 어떠했는지 얇은 얼음이 필름처럼 입혀졌다. 발밑의 갑판 바닥이 미끄럽다.

 

정오 무렵 기온이 영(零) 도 가까이 올라갔지만 바지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은 속살을 차갑게 쓸고 지나가는 느낌이다. 여름의 바람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냉냉하다.

 

갑판 난간에 매달린 작은 고드름이 눈에 띄었으나 녹기 직전이다. 고드름은 간밤에 내린 가랑비의 빗물이 흐르면서 젓가락처럼 길게 얼어붙었다.

 

오후 2시 상갑판 난간을 기대며 성(姓)이 같은 두 여성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언니 약간 추우시죠? 지금 아이스크림 생각 안 나셔?”

 

양외란이 해양생태 연구원 양지원에게 제안했다.

제주도 양씨에 나이가 세 살 많은 양지원을 양외란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언니로 불렀다.

 

“이런 날씨에 웬 아이스크림이야?”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데, 아이스크림이 곧 품절된대요.”

 

어렸을 때 울보였던 양외란은 아이스크림에는 무조건 울음을 뚝 했다. 호랑이가 아닌 곶감에 울음을 뚝 그친 옛날 아이처럼.

 

“아이스크림은 추울 때 먹는 것이 제맛이라우.”

 

둘은 만 원짜리 한 통을 한자리에서 쓱싹했다.

품절되기 전에 급히 먹어야 되는 것처럼.

 

“이젠 과일 칵테일 생각이 나네.”

 

양지원은 다른 것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들은 체리, 바나나, 파인애플이 섞인 칵테일을 주문했다.

처녀들의 별스런 간식 시간은 북극해의 오후를 잠시나마 즐겁게 했다.

 

하늘은 흐렸지만 해는 숨바꼭질하다가 무궁화꽃(?)이 필 무렵 구름을 비집고 나왔다. 바다의 얼음은 40% 정도밖에 덮이지 않아서인지 배는 얌전하게 북으로 달리고 있다.

 

 

 

 

 

외로운 사람들

 

북위 76도 바다 한가운데서 새를 봤다면 기적이 아닐까.

새 두 마리가 사이좋게 물 위에 떠 있다.

날개 위쪽은 하얗고, 머리와 부리는 검은색이다.

물 아니면 얼음 위일 텐데 겨울 추위에 어떻게 이겨내나? 어쩌면 겨울에는 남쪽으로 내려갈지도.

 

“저 물새는 두 마리인데 울 엄마는 혼자서 살아야 하나?”

 

양외란은 엄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배에는 독신이 한둘이 아니다.

나이 많은 미혼 여성도 있고, 북극곰감시인 같은 할아버지 총각도 있다.

 

필리핀 여학생이 따뜻한 커피를 들고 헬리콥터 갑판에 혼자 있는 북극곰감시인에게 다가갔다.

 

“할아버지, 커피 한잔 드세요.”

 

그녀의 커피 대접은 이번만이 아니다.

할아버지는 미안한 나머지 ‘북극곰이라도 한 번 보여줘야 하는데’ 라고 웃으면서 잔을 받았다.

 

멀리서 이 광경을 본 양외란은 두 사람에게 다가가서 사진을 찍었다.

얼굴도 예쁘고 미소가 입가에 붙어 다니는 필리핀 아가씨를 예쁘게 담고 싶었다.

고운 마음씨는 사진에 담을 수 없나.

 

헬리콥터 조종사 하워드 씨는 사람 많은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알라스카에 정착한 지 30년 동안 대자연에 익숙해져 사람 속에 사는 게 아직 미숙하다.

 

노래방에서 나오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는 것 같다.

선원들이 뭔가 터뜨리고 싶은 심정인가 보다.

집 떠난 지 한 달이 지났고, 또 7개월 예정의 남극 항해를 해야 한다니 마음이 착잡할 수도 있다.

 

 

 

얼음팀

 

쇄빙능력시험이 몇 번 더 필요하다.

새로운 목적지 북위 77도 서경 160도 부근에 다다랐다.

 

북쪽으로 올라감에 아침 기온은 영하 4도까지 내려갔다. 낮이 되자 햇빛이 나오고 갑판에 쌓였던 눈이 많이 녹았다. 눈은 철판의 색깔에 따라 온도가 다른지, 하얀색의 구조물엔 눈이 그대로 있었으나 초록색 갑판엔 눈이 녹았다.

 

헬리콥터가 빙빙 돌아다니다가 괜찮은 얼음덩어리를 발견했다고 연락해 왔다.

미국인 얼음팀은 오랜만에 밥값을 하게 됐다고 좋아한다.

 

곰감시인은 갑판 4층 연돌 옆에서 곰이 다가오는지 망을 보기 시작했다.

이젠 자신의 임무가 주어져 보수를 받아도 미안하지 않다고 너스레.

 

“그렇지만 북극곰 한 마리는 데리고 와야 하는데…… 이거 잘못하면 일자리가 사라질지도.”

 

먹는 문제는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다.

농담하는 그 얼굴에는 진담의 흔적도 스며있다.

‘노인과 바다’의 노인도 그랬으니까.

 

저녁식사가 끝난 후 시작한 쇄빙시험은 3미터 두께의 얼음을 만났다. 배가 부딪혀 옆으로 미끄러졌다. 이런 두께는 쇄빙시험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배의 위치를 옮겨 조금 얇은 곳에서 몇 번의 쇄빙시험을 했을 때 감동적이었다.

 

쪼개진 얼음에서 은은한 황혼의 빛이 반사했다.

8월 초순 밤 10시의 북극 하늘에서 낮게 내려앉은 태양 빛으로 얼음은 엄청 황홀했다.

아름답다!

 

그 밤이 지나고 이튿날.

밤사이 배의 항적을 보니 거대한 뱀처럼 S자를 그리며 움직였다. 10분 동안 백 미터도 채 움직이지 않았는가 하면, 10분 동안 몇 킬로를 움직인 적도 있다.

 

옆으로 밀리고, 휘어지고, 꼬여서 배는 소주를 몇 병 마신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갈지자로 항적을 그렸다.

 

8월 4일 오후에도 헬리콥터는 얼음을 찾아다녔다.

날씨가 나빠 얼음상태를 파악할 수 없어 한 시간 만에 돌아왔다.

 

얼음연구는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쇄빙선, 날씨, 얼음이 적당해야 하는 것.

 

오후 얼음팀과 생물팀이 배 근처의 얼음 위로 내려갔다.

얼음팀은 얼음을 뚫어 얼음 두께를 재고 특성을 알아보고, 생물팀은 얼음 아래의 미생물을 채집했다.

 

 

 

북극곰 발견

 

배는 또 다른 목적지 북위 78도 서경 160도에 다다랐다.

얼음 책임자 이 박사를 태운 헬리콥터가 얼음을 찾아 나섰다. 날씨가 좋아 50분 이상 날아다니며 배에서 7킬로 떨어진 곳에 쓸 만한 얼음을 찾아냈는데, 신기하게도 북극곰을 발견했다.

 

“과연 북극에 오긴 왔군.”

 

곰감시인의 존재 가치를 보여줄 때가 온 것이다.

 

지금까지 북극 탐사에서 발견된 단 한 마리의 북극곰이 되었다.

몸집은 그다지 크지 않으나 헬리콥터 소리에 놀라 곧 돌아서 멀어져 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저녁때 곰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시간당 4킬로를 걷는 곰이 배의 주방에서 나오는 음식 냄새를 맡고 나타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헬리콥터에서 찾아낸 얼음은 길이 300미터에 폭 150미터 정도였다.

얼음-물-얼음 3층으로 언 것으로 두께는 평균 2미터가량.

얼음은 깨어졌다가 다시 다른 얼음과 닿아 어는 경우가 많아 두께는 들쭉날쭉이다.

 

도대체 쇄빙능력시험은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배가 얼음을 깨는지 아니면 깨어진 얼음끼리 부딪쳐 깨지는 건지 알 필요가 있다. 또 그때 배의 힘과 속도를 알아봐야 한다.

 

북극의 수평선은 직선이 아니고 울퉁불퉁하다. 얼음 봉우리 때문이다.

얼음봉우리 뒤에 북극곰이 숨어 있을 법도 하지만 헬리콥터에서 보았다는 북극곰은 끝끝내 배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까이 나타나도 문제가 되겠지만.

 

 

 

북극 하늘

 

8월 8일(일)

오늘 아침처럼 하늘이 높고 화창한 날은 북극에 온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북위 75도의 바다이지만 바람이 적고 기온은 2도로 아주 상쾌하다. 바닷물은 반짝거린다.

 

생물팀은 채수기를 내려 그물에 걸린 플랑크톤을 채집하느라 분주하다.

얼음구멍 아래로 보이는 시퍼런 바다가 무서운 입을 벌리고 있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삼키기도 한다>

전국시대 순자는 배를 잘 알고 말한 것일까.

 

러시아 유빙항해사가 한국 얼음팀 연구원 두 명과 함께 선교로 올라왔다.

그는 연구원들에게 해빙분포도를 그리는 법을 가르쳤다. 이를 위해 해빙의 두께와 위치 파악과 경험, 그리고 얼음분포에 관한 기본 자료 축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녁 메뉴로 나온 삼겹살이 소주를 친구 삼았다.

하늘이 높고 맑을 때는 술이 한잔 들어가면 하늘은 끝없이 넓은 바다로 보이는가.

 

“연거푸 마셨더니 머리에 쥐가 나려고 하네.”

 

선의(船醫)가 주기의 오름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양외란이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럼 아스피린 드실래요?”

 

“의사는 내야. 약 먹을 일 없어. 쥐났을 땐 주물러주는 수밖에.”

 

“이땐 머리를 주물러야 하나요?”

 

“보통은 쥐난 곳의 반대쪽을…… 근데 이런 경우엔?”

 

“……”

 

“다리에 쥐가 났다면 반대편 다리를 주물러 주는데…….”

 

“머리의 반대쪽은 발이 되나요?”

 

“그건 좀 애매하네.”

 

누가 대표로 부끄러워해 주고 웃어줄 사람 없나.

 

 

 

빙하 소멸

 

지구 온난화의 비극을 확인하는 땅이 바로 극지이다.

북극의 얼음이 예상보다 빨리 녹아내리고 있음은 온 지구가 다 아는 사실이다.

30년 전부터 위성에서 촬영해온 북극해의 얼음 표면적 변화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얼음면적은 30년 전의 것에서 1/4로 줄어들었다.

2030년 여름엔 북극해에서 빙하가 완전히 사라질지 모른다는 경고는 현실이다.

 

북극 빙하의 소멸은 두 가지 큰 변화를 가져왔다.

북극해 항로 개척과 북극해 연안 자원개발.

 

현재 북극해의 얼음은 여름철 두 달 남짓한 짧은 기간만 녹았다가 가을부터 봄까지 다시 얼어붙어 쇄빙능력을 갖추지 않은 선박은 운항할 수 없다.

 

날씨는 구름이 많이 끼고 안개가 자욱한 날이 많았으며 변덕도 심했다. 여름철 북극은 백야 현상으로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는다.

 

북극해의 해빙(解氷)이 가속화되고 있다. 2100년엔 지금보다 기온이 4도 상승하고 해수면이 1미터 상승한다는 예상이다.

 

“대한민국은 서울시의 5배되는 넓이의 해안이 수몰한다지요. 살고 있는 곳이 해면에서 일 미터이상 되는지 확인해봐야겠네요.”

 

“그럼 인도양에 있는 인구 30만의 몰디브 운명은?”

 

“스리랑카에 토지를 매입했다던데…….”

 

“남태평양의 작은 섬들은 어떡하고? 호주나 뉴지로 대피해야겠지요.”

 

작은 섬들이 수몰의 공포에 떨고 있는 가운데 북극에는 새로운 현상이 생겼다.

북위 80도까지 얼음이 녹아 푸른 바다로 변하고, 북극점 부근도 곳곳이 녹아 호수처럼 보인다.

 

“북극점에서 폭염 현상을 경험하는 날이 오겠군요.”

 

북극에서는 지금 하루에 서울의 백배가 넘는 면적의 얼음이 녹아내리고 있다.

아리빙호는 이런 현상을 직접 목격했다.

전 지구 담수(지하수 포함)의 70%가 빙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북극의 기후변화와 빙하, 생물종, 해류, 자원 등에 대한 연구를 위해 한국은 2002년 북극의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제도에 다산과학기지를 설치했다. 프랑스와 공동으로 건물을 사용하면서 북극의 모든 것을 연구하고 있다.

 

 

 

북극항로

 

북극항로가 열리는 것은 확실하나 언제, 어느 정도냐가 문제다.

빙하 때문에 막혔던 바다가 열린다는 것은 신천지가 등장하는 것과 같다.

러시아와 알래스카, 캐나다는 북극해 연안에 여객선이 마음대로 왕래하는 날을 상상하며,

 

“얼음 땅이 이렇게 될 줄이야!”

 

마치 환상을 보듯 감탄한다.

 

2012년 9월 최초로 북극항로 전 구간이 해빙된 적이 있다. 전문가들은 오는 2020년엔 연간 6개월, 2030년엔 연중 항해가 가능하다는 대담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어쩜 이런 현상이?”

 

지구상 바다에 배가 못 다니는 구간은 없어진다는 뜻인가. 탐험가들의 초능력을 테스트하던 신비의 극지는 없다는 것인가. 북극해 항로 탐험이 시작된 이후 많은 탐험가들이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으로 귀중한 목숨을 잃었다.

 

양외란은 북극해에 상선이 쉴 새 없이 왕래한다는 것은 상상해보지 않았다.

 

“북극항로란 어떤 겁니까?”

 

러시아 유빙항해사가 제일 잘 알 것이다.

북극항로는 러시아 동쪽 해협을 지나 북쪽 북극해를 지나가는 항로를 말한다.

부산항을 출발해 유럽까지 가는 북극항로는 동남아시아와 수에즈운하를 거쳐서 가는 경우보다 거리와 시간이 크게 단축된다.

 

북극항로는 극동지역과 서유럽 국가를 연결하는 가장 짧은 항로다. 전세계 공업 생산의 80%가 북위 30도 이북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북극항로로 인해 뱃길의 40%가 단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변화의 재앙 뒤에 북극항로 개척이라는 아이러니가 있다. 부산항은 북극항로의 최대 수혜자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북극항로에 다니는 쇄빙유조선은 전 세계 3척인데 모두 삼성중공업이 만들었다지요.”

 

유빙항해사는 최근 추세를 아는 것 같다.

쇄빙유조선은 스스로 얼음을 깨면서 전진할 수 있어 일반 유조선보다 선가가 3배 이상 비싸다. 선박건조에서 고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북극항로를 거리 개념으로만 보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가 아닐까요?”

 

역시 선장은 운항비와 안전성을 고려해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 북극 항해를 위해서는 악천후에 필요한 특수선박((耐氷船)의 도입 비용, 유빙(流氷)으로 인해 느려지는 속도, 연료비의 증가를 따져보면 그리 매력적인 조건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선박건조 비용만 20~30% 정도 더 비싸고, 극한지역 투입 인력 비용까지 산출해야 한다.

 

상선으로서는 2009년 여름 독일 선박 두 척이 북동항로 전구간을 항해하는데 성공했다.

 

북극해의 얼음이 녹는다고 해서 바로 북극해 항로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에서는 1991년 북극해 항로 사용허가절차 및 기타 제규정을 제정했다.

 

- 사전 통행허가

- 내빙구조 설비

- 승무원 빙해역 교육과 운항경험

- 빙해역에서 러시아 쇄빙선 이용

 

등이 큰 골자였다.

 

 

 

 

북극 개발

 

북극개발과 북극항로 개방에 한국은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무한한 자원과 물류 수송 혁명

해양플랜트와 쇄빙선 수요 기대

새 시장 선점과 개발 참여

허브항 육성과 신공항 수요

 

한국은 국제법의 테두리 안에서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겠지?”

 

미지 지역의 개발을 위해 피 터지는 싸움이 전개되고, 이 전장에 여자 전사 양외란의 참여를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녀는 극지에서 치열한 동물의 세계를 보았다.

 

스쿠아가 새끼 펭귄을 낚아채려 하자 모든 펭귄들이 달려드는 모습.

바다표범이 펭귄을 잡아 물에 후려치는 장면.

 

승자와 패자의 구분은 처절하기만 하다.

 

북극에는 현재 세계 원유 매장량의 25%, 천연가스 45%라고 한다.

북극해 연안에는 엄청난 에너지 자원과 광물자원이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니 북극해의 무한한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가스하이드레이트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 될 수 있는 무서운 천연 자원이란 걸 기억해야 한다.

 

한국은 2013년 북극이사회에 가입하여 북극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남극과는 달리 북극에는 대륙이 없으므로 북극해 연안국인 러시아, 캐나다, 미국, 노르웨이, 덴마크, 그린란드가 한 치의 바다라도 더 차지하려고 총력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연안국들뿐만 아니라 북극해에서 멀리 떨어진 중국을 비롯하여 북극이사회의 핀란드와 스웨덴, 일본, 독일,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 아이슬란드 등 여러 나라들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북극항로의 최대 수혜자가 될 한국은 북극개발의 수혜자도 될 것이 뻔하다.

 

 

 

 

탐사 마무리

 

2010년 8월 10일(화)

마지막 탐사지점의 탐사가 끝났다.

북극탐사의 첫 항해는 이렇게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갑판원들은 장비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사소한 것들을 정리하면서 청소했다.

 

마지막을 장식하려는 듯 초속 13미터의 북동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얼음마저 적은 바다는 흰 파도를 세웠다. 배가 좌우로 많이 흔들리나 사람들은 돌아가는 길이라 그다지 부담으로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이제는 극지를 떠나 문명세계로 돌아가는 길이다.

인터넷이 열리고 배의 게시판에는 게시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생존장비와 무전기 반납을 강조하고, 놈 도착시간과 선적물품목록 작성도 게재되었다.

 

각 팀마다 계획했던 탐사 및 연구가 미흡한 점이 다소 있지만 첫술에 배부를 리 없다.

시간은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다는 데 위안을 삼고 탐사 결과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두루마리 휴지는 왜 식탁 위에 있나?”

 

식탁에 화장지가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하는 말이다.

 

“귀국할 날이 다가오니 물자가 떨어져가나 봅니다.”

 

누군가 그럴듯한 이유를 들었다.

선장은 일인당 화장지 사용을 1미터 이하로 할 것을 권유한 바 있다. 자신이 초자 선원일 때 당시 선장이 그렇게 말했는데 효과가 있더라는 것이다.

 

연구재료인 진흙과 모래를 상자에 넣어 짐을 싸는 연구원도 보인다.

상자는 항공기편으로 보내질 거란다.

 

이번 탐사는 북극항로에 관한 조사가 많지만, 북극 빙하 테스트, 기상 및 해양 연구용 염분과 수온, 화학적 및 생리적 해양환경 특성연구, 일차생산자의 종다양성, 원생동물(Protozoa)의 종다양성, 빙해역 오염물질 농도 등 다양한 조사가 이뤄졌다.

 

국제협력 연구로 영국 스코틀랜드 해양연구소(SAMS), 미국해양대기청(NOAA), 중국해양연구소(CAA) 등의 해빙 및 해양물리변화 추적용 부이 투하와, 해수 및 퇴적물의 오염물질 연구와, 북극해 미생물 다양성 연구 등의 작업도 수행됐다.

 

선내는 그야말로 유엔의 산하기관처럼 국제적인 분위기라 해야 한다.

 

 

 

환송 파티

 

지금까지와는 달리 새벽 4시는 새벽이 아닌 어둑한 한밤중이다.

드디어 밤이 있는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기온 6도에 가랑비가 내리고 파도가 낮아졌다.

 

사흘 후면 놈 항에 입항하며 많은 사람들이 하선하게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귀국일정을 헤아려보면서 비행기 시간과 호텔 예약, 서울 도착 시간을 살피면서 이것저것 생각하기에 바쁘다. 특히 여름 휴가철이라 호텔이나 항공기 예약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감안한다.

 

저녁 식당에 들어선 해양기상 연구원은 눈이 둥그레졌다.

 

“배를 탄 이래 이렇게 많은 음식 처음 보네.”

 

해삼, 장어, 육회, 연어, 새우……

쇠고기, 돼지고기…… 칠면조 고기는 웬일이람?

초밥, 김밥, 샌드위치, 장터국수……

포도, 수박, 토마토……

송편, 찰떡, 색깔떡…… 등등

 

포도주로 시작한 술은 산사춘, 복분자, 맥주, 소주……

이것도 모자라 위스키까지 꺼내 모처럼 거나한 파티가 벌어졌다.

 

한 연구원은 술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여성들에게 산사춘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인삼주보다 더 건강에 좋아요.”

그러면서 계속 권했다. 알코올 농도 13도는 음료수와 다름없다고 하면서.

 

“비아그라보다 좋다는 얘기는 안 하네.”

다른 연구원이 대화에 맥을 끊었다.

 

술 취한 분위기는 외국 사람들에게 색다르고 신기하게 보였다.

한국식 이별(Farewell)은 이렇게 요란하냐고 진지하게 묻는 외국인도 있다.

 

선장의 아이디어에 따라 양외란이 식당 벽에 커다란 천을 걸었다.

그리고 하얀 천의 맨 위쪽에 이렇게 썼다.

 

<술 마신 분은 한마디씩 써주세요>

외국인을 위해 ‘Couple of Words on this Cloth'를 부기했다.

 

먼저 선장이 큼지막하게 썼다.

“내년에는 북위 85도까지 가자!”

특히 85도를 빨간색으로 뚜렷하게 그렸다.

금년에는 북위 79도에서 멈췄지만 내년에는 기필코 북극점 가까이까지 가겠다는 각오다.

 

“지구를 지키자(Save the Planet!)"

지구기상 연구원은 영어를 괄호 속에 넣어 외국인을 위해 배려했다.

 

중국어도 등장했다.

“保八”

‘바오바’는 중국 경제성장 8% 지키겠다는 뜻이다.

경제성장과 북극탐사와 무슨 관계가 있나. 중국은 어디를 가나 돈이군.

 

글씨가 아닌 그림이 그려진 것도 있다.

따갈로어도 등장했다. 필리핀 여학생이 쓴 것이다.

 

북극곰감시인은 이렇게 썼다.

“Next Year I'll show You a Polar Bear."

내년엔 꼭 북극곰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놈(Nome) 귀항

 

입항 예정 전날 오후 5시 무렵 선장이 직접 방송을 하여 당직자를 제외한 선원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본선은 올 하반기 남극 세종기지로 가는데 내년 5월경 돌아올 예정입니다. 계속 승선할 자는 신청바랍니다.”

 

다음 남극항해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선원 25명 중 두 명뿐이었다.

 

얼음을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얼음을 헤치고 극지를 가는 스릴을 느끼며 청춘을 맡기겠다고 계속 승선을 희망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았다. 한국인의 도전정신은 높이 사야 한다.

 

8월 13일 아침이 되자 선내는 많이 분주해졌다.

놈 항에 입항했다.

하선할 사람은 발걸음이 빨라지고, 동작만으로도 하선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배에서 먼저 내리기로 한 4인승 헬리콥터가 오전 9시경 이륙했다.

한편 6인승 헬리콥터는 배에 남아 더 일을 해야 한다.

4인승이 먼저 얼음팀을 육상에 이송시켜 놓고, 돌아오는 길에 해산물과 양배추 등 식품을 잔뜩 싣고 왔다.

 

연구 교수팀을 비롯해 몇 사람이 배를 떠났다. 이들은 이삼 일 안에 한국에 도착할 것이다. 열흘 후 배로 부산에 도착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빨리 귀국하는 셈이다.

 

점심 무렵 손님 20여명이 배를 찾았다. 주로 백인 주민이었으나 목사를 비롯한 한국인도 서넛 명 포함돼 있었다. 제복을 입은 뚱뚱한 이누이트족은 사진 찍기에 인기였다. 날씬한 백인 아가씨와 나이어린 소년은 눈인사를 많이 받았다.

 

손님에게 내놓은 음식은 주로 한국 음식이었다.

조기구이, 삼색나물, 빈대떡, 돌김무침, 김치찌개 등.

 

신형 쇄빙선을 본 손님들은 장비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갑판에서 기념사진 찍는 것이 마냥 기뻤다.

 

함께 탐사 항해를 하고 연구해온 사람들이 잇달아 하선하자 이별의 인사가 바빠졌다.

 

헬리콥터에 마지막으로 실었던 조종사의 짐은 많았다. 알루미늄 사다리, 고압가스통, 작은 짐 상자들 등. 비행기록을 책처럼 만든 두 개의 작은 알루미늄 상자에 보관하는 것이 특이했다.

 

 

 

 

 

놈을 출항해 부산으로

 

배는 8월 14일(토) 오후 2시 놈을 출항했다.

 

남은 승선인원은 모두 37명이다.

선원 25명과 지원인력 3명에다가 승객 9명.

승객 9명은 중국학자 3명, 러시아 얼음전문가 2명, 필리핀 여학생 1명, 그리고 한국학자 3명이다.

 

필리핀 학생이 남은 것은 예뻐서가 아니라 미국 비자가 없기 때문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잘 웃고 드러내는 가지런한 흰 이빨이 여전히 인상적이다.

 

놈 항에서 34명이나 하선하자 배는 너무 조용해져버렸다.

 

점심시간에 선원들이 연구원 식당을 쓰기 시작했다. 연구원이 몇 명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선원들이 썼던 작은 식당은 회의실로 사용하려 한다.

 

출항하자 곧 시계를 한국과 6시간 차이로 조정했다.

 

항구를 출항해 베링해 깊숙이 들어서자 배가 몹시 흔들려 난간을 잡지 않으면 지탱하기 힘들 정도다.

 

저녁 기온 9도로 한국으로 가고 있음이 점점 현실로 느껴진다.

 

러시아 유빙항해사는 수온 8~14도C에서만 사는 물고기를 잡으러 캄차카 부근에 온 적이 있다고 한다. 일류신14 비행기를 타고 육백 미터 상공에서 적외선 장치로 수온을 측정하고 어군을 발견하면 어선에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바닷물은 회색이지만 어군은 보라색이어서 발견하기 쉽다고 한다.

어선은 보트를 내려 그물로 어군을 포위하여 30분이면 충분히 잡는다는 것.

 

놈을 출항한 지 일주일 후 오후 헬리콥터 격납고에서 선원들이 탁구경기를 했다.

갑판부, 기관부, 전자부, 조리부로 나누어 단식과 복식 게임을 했다.

 

출전비로 한 명당 만원을 내고, 선장과 기관장이 금일봉을 보탰다.

 

열광의 다음에는 회식이 따른다.

야외 숯불 불고기 저녁은 외식과 다름없다.

등심, 삼겹살, 큰 새우, 야채, 김밥에다 후식으로 포도, 과일칵테일, 맥주, 음료수가 나왔다.

당직자 외는 얼마간의 술로 즐거워해도 좋다.

 

배는 56일 간의 항해를 마치고 8월 25일(수) 부산항으로 돌아왔다.

 

북극탐사 항해는 이렇게 마무리됐지만 더 많은 할일이 기다리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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