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북극탐사 항해

북극 탐사 항해(중)

오선닥 2013. 7. 5. 18:59

2010년 여름

배는 알래스카 놈 항에서

장비와 선식과 탑승자를 싣고

북극으로 출항하여

북극의 얼음과 해수와 기상 연구에 착수

 

 

두 번째 연재

 

 

 

북극 탐사 항해(중)

 

 

놈(Nome) 출항

 

2010년 7월 17일(토) 오전 알래스카 놈을 출항했다.

북극에서 주어진 임무를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다.

 

배가 갑자기 엉덩이를 들썩인다. 인천을 떠난 후 이렇게 건방지게 흔들리는 것은 처음이다. 북극으로 가는 게 만만치 않다는 걸 가르쳐주는 것 같다. 북극의 해신이 파도를 충동질해서 겁을 먹이는 건가.

 

점심시간에 식당에 갔더니 처음 보는 얼굴들이 많았다.

5명이 내리고 34명이 새로 승선했다. 결국 배의 식구는 선원 25명과 탑승원 46명, 도합 71명이 되었다. 사람 사는 맛을 느낀다.

 

식당 벽에는 탑승자들의 사진들을 붙여놓았다. 모두 어제 찍은 사진들이다. 여럿이 찍은 것과 혼자 찍은 것, 배경이 해안인 것과 갑판인 것 가지각색이다. 얼굴의 주인공을 화살표로 끌어내 이름을 영문으로 적어놓았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발상이 좋다.

 

여자의 머리수를 세어보니 모두 7명.

외국 여자는 중국과 필리핀이 각각 한 명씩이다.

 

“이들 중 가장 스마트한 여자는……?”

 

동기생 남성 삼기사가 엉뚱한 질문을 했다.

그러곤 양외란을 가리켰다.

그녀의 반응이 부드러울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

 

“가장 예쁜 여자라고 하면 덧나니? 인색하긴…….”

 

“스마트한 거나 예쁜 거나 같은 뜻 아냐?”

 

“말 돌리지 마. ……어쨌든 고마워.”

 

둘은 동시에 이빨을 드러내면서 웃었다.

 

외국인은 모두 10명으로, 중국 연구원 3명, 필리핀 여학생 한 명, 러시아 유빙항해사 2명, 나머지 4명은 미국인으로 헬리콥터 조종사 두 명, 정비사 그리고 북극곰감시인이다.

 

파고 2m를 헤치고 북북서 방향으로 가던 배는 베링해협 중앙에 있는 디오메드(Diomede) 섬을 지나자 정북 방향으로 변침했다. 큰 디오메드(러시아)와 작은 디오메드(미국) 사이에는 날짜변경선이 지나는데, 두 섬은 4km 거리를 두고 이산가족이 되고 만 것이다.

 

베링해협은 지금은 해협이지만 마지막 빙하기에는 아시아대륙과 북아메리카대륙을 잇는 다리 역할을 했다.

 

“수심이 46m밖에 되지 않으니 옛날에는 육지가 됐을 법합니다.”

 

러시아 유빙항해사로부터 설명을 들은 선장은 수긍했다.

 

베링해를 빠져나온 배는 바로 북극권(66°33‘)에 진입한다. 한여름에는 낮만 계속되는 지역이다. 북위 68도를 지나자 인터넷이 뚝 끊어졌다. 문명세계는 이렇게 끊어진다.

밤에도 훤한 북극 바다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선교로 올라오는 일이 잦다.

 

『선교출입은 수석 연구원의 허락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결국 선장은 방을 붙이고 말았다. 사람들이 들락거려 배 운항에 지장이 있다는 것이다.

당직항해사한테 귀찮게 질문 안 할 테니 사진 한 장만 찍으면 안 되느냐고 사정하는 사람도 있다.

 

 

 

비빔밥

 

놈을 출항한 지 이틀째.

수온 7.6도, 염분 30.1‰, 기온 4도 부근

물은 그다지 짜지 않다.

 

점심 메뉴는 뭘로 할까. 매끼마다 주방장의 단골 고민이다.

 

“그까짓 거 비빔밥으로 하죠. 각 나라 재료 하나씩 넣어서…… 그럼 누구도 불평이 없을 테고.”

 

옆에 있던 한 연구원이 쉽게 말했다.

 

“그것 괜찮네요. 저도 비빔밥 좋아하는데.”

 

한국대학에서 유학 중에 있는 필리핀 여학생이 동조했다.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듯 주방장은 당장 비빔밥 요리에 들어갔다.

 

칠월칠석날도 아닌데 여덟 가지 이상의 나물이 동원됐다.

시금치, 고사리, 도라지, 버섯, 호박나물, 콩나물, 가지, 무채…….

고추장과 참기름은 필수 첨가물.

참, 김도 썰어 넣네.

 

비빔밥은 졸지에 다국적 메뉴로 등장했다. 모두들 맛있다(delicious)는 말을 연발했다.

오후 5시 배가 유빙해역에 들어가 얼음에 부딪쳐 크게 흔들렸으나 비빔밥의 힘 때문인지 탑승자들은 잘 견뎌냈다. 10%쯤 깔린 유빙은 쇄빙선이 깨기에는 시시한 얼음이다.

 

선령 28년의 독일 쇄빙선에서 연구한 바 있는 한 연구원은 독일은 7천억 원짜리 쇄빙선을 건조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라빙호의 거의 6배나 되는 가격. 최첨단 극지탐사선이 될 거라고 하는데, 도대체 선박에 보석이라도 박아넣겠다는 건가.

 

 

 

해빙(海氷)

 

북위 72도를 지났을 때 유빙이 많이 보였다.

아침 시간 수온 0.6도 염분 28.9%, 기온 -2.3도.

처음으로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다. 여름 세종기지보다 낮은 온도라고 한다.

 

해빙(海氷)이 덮인 북극의 바다는 남극의 바다와 다르다.

바닷물이 얼어서 생긴 것은 같지만 남극의 해빙은 대개의 경우 빙붕에서 갈라져 나온 탁상형 빙산으로 높이 수십 미터, 폭이 수십 킬로미터인 것이 있다. 시야에 빙산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지나면 기울어지고 부서져서 원래의 평탄한 모습은 사라진다.

 

그러나 북극 해빙은 두께가 일 미터도 안 된 조각 얼음들로 늘려져 있다. 물론 그린란드나 캐나다 북쪽 섬에서 떨어져 나온 빙하가 바다에 들어와 생긴 불규칙한 빙산이 있지만 크기 면에서 남극의 것과 비교되지 않는다.

 

위도가 낮은 척치해는 그런 빙산마저 없다.

 

“북극의 해빙은 정말 질서가 없군요. 해류에 따라 떠다니다가 이리저리 부딪히고 다시 얼음이 엉켜 붙으니 말입니다.”

 

남극에도 갔다 온 양외란은 남극에 가본 적이 없는 연구원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남극의 해빙은 대륙을 중심으로 한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 잘 부딪히지 않는다.

 

 

 

생존장비 가방

 

만약(if)이라는 단어가 없다면 보험회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배에 비치해둔 생존장비 가방은 몇 ppm에 해당하는 위험 확률 때문에 존재하는 것일까.

 

“내용물이 뭔지 샘플을 한번 열어보겠습니다.”

 

일항사가 안전훈련의 한 과정으로 플라스틱 밴드를 풀고 지퍼를 열었을 때 내용물이 드러났다. 스위스나이프, 방한복, 수밀성냥, 구급상자, 스카프, 낚시도구, 손전등, 바느질, 비상신호…….

 

로빈슨 크루소가 이런 장비만 가졌더라도 문명생활을 했을 것 같다.

 

“내용물의 가격이 350만 원어치나 돼 하선할 때 꼭 반납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장비지요.”

 

“제발 그 350만 원짜리를 사용하지 않았슴 좋겠네요.”

 

선내에서 손 여사로 통하는 연구원이 일항사의 설명에 반응한 것이다.

 

“저도 그런 행운을 빕니다.”

 

일항사의 능청도 수준급.

 

배가 쉬지 않고 쿵쿵거린다. 미국의 배타경제수역을 벗어나 40해리쯤 됐을 때 각종 연구 장비들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유빙항해사는 지금 깨고 있는 얼음이 두께 60센티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얼마쯤 가던 배는 속도가 느려졌다. 얼음 두께가 1.2미터로 두꺼워진 탓이다. 백 미터가량 뒤로 물러나 다시 전진했을 때 바닷물이 심하게 요동치고 얼음덩어리가 구르면서 밀려났다.

 

얼음 속에 갇히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연구의 공유

 

배가 거의 멈춰 있는 틈을 타서 연구원들은 20리터짜리 채수통 12개로 된 로제트 샘플러를 내려 채수하기 시작했다. 바다의 모든 생물을 먹여 살리는 바닷물은 생물학자, 화학자, 물리학자들이 그 성분을 알고 싶어 한다.

 

극지연구원들은 얼음 등 연구재료를 채집했다. 사진을 찍어두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 여자 과학자는 오염물질을 연구한다. 연구 공유를 위해 승선한 것이다.

 

“외국 연구원을 태우면 연구자료는 잘 줍니까?”

 

궁금했던 사항을 양외란이 수석 연구원에게 물었다.

 

“그게 좀 민감한 부분인데, 다 주는 것은 아니지. 일정 부분 양해하는 것으로 약정을 한다든지……. 그래서 연구원을 교차 승선시켜 자료를 주고받는 방안을 협의하곤 하지.”

 

해빙의 감소 원인을 분석하는 데 특수한 장비가 필요하다. 스코틀랜드 해양연구소는 해빙질량평형측정기 2대를 빌려주었는데, 한 대 일억 원이나 하는 고가 장비를 대여해주는 대신 측정된 자료를 공유하는 조건이다.

 

“세상에 공짜가 없군요.”

 

“그러니까 우리가 자체 쇄빙선을 보유하는 거랍니다.”

 

옆에 있던 한 연구원이 대화에 끼어드는데,

 

“저는 외국 탐사선에 편승해 자료를 가져나오다 빼앗긴 적이 있습니다.”

 

수석 연구원은 35년 전의 일을 상기시켰다. 미 의회에서 로비활동을 벌이다가 스파이 혐의로 구속된 박동선 씨는 진정한 애국자라는 것이다.

 

장소를 옮겨 이번에는 퇴적물 채집에 들어갔다. 멀티 코어러(Multi-corer)는 한 번에 한 개가 아니라 8개를 시추하는 새로운 시추기이다. 처음 사용해보는 것이라 반 정도의 성공이었다.

 

시료는 실험실에서 1센티씩 잘라서 보관해뒀다가 현미경으로 연구한다. 수천 년 전의 기후와 변화를 알아낸다.

 

 

 

늦잠

 

고문 중에 가장 고통스런 것이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잠으로 고생해본 적이 없는 양외란은 오늘은 불면으로 고문을 당하고 있다.

배는 진동하고, 밖은 훤하고…….

새벽 4시가 됐는데도 눈이 멀뚱멀뚱하다.

 

머리맡에 있는 형광등마저 오늘따라 유난히 떨고 있다.

책상 위에 걸어놓은 엄마의 사진이 자꾸 웃으면서, 오늘은 제발 이야기 좀 하자고 눈꺼풀을 잡아당기는 것 같다.

 

‘너 맘대로 배 탔으니 오늘 내하고 대화 좀 하자.’

 

엄마는 그렇게 태클을 거는 자세로 비쳤다.

양외란은 이렇게 잠을 설쳐본 경험이 없다.

정말이지 엄마가 지금쯤 저녁 밥상을 차려놓고 딸과 대화할 준비를 하고 있는 걸까.

외로운 사람끼리 인생 좀 논하자 하면서.

 

식당에 갔더니 여자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필리핀 여학생과 중국 여자 과학자.

역시 밤이 없는 여름 북극 밤은 적응이 잘 안 된다고 호소한다.

 

“지금이 4 AM예요. 안 주무실 거예요?”

 

양외란이 말을 걸자, 필리핀 여학생이 웃으면서 반응한다.

 

“전 2PM을 좋아해요. 그들의 팬이라요. 4AM은 싫어하는데…….”

 

잠을 못 자서 헛소리하는 것 같지는 않다.

 

세 여성은 합석하여 죄 없는 와인을 삼켰다.

와인 덕분에 두 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몽롱한 채로 아침을 맞이했다.

 

아침식사에 참석한 인원은 2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잠을 설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젊은 연구원들이 아침 먹기를 포기하고 대신 잠을 선택한 것이다.

 

 

 

특별한 전문가

 

북극 탐사를 하는 데는 특별한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유빙항해사와 북극곰감시인이 바로 그들이다.

 

러시아인 유빙항해사는 축적된 경험이 많다. 북극항해 경험만 43년.

유빙항해연구소에는 70년 된 자료가 있다고 한다.

그는 다년빙의 구분을 얼음의 두께와 색깔로 가능하다고 한다. 일 년 된 얼음의 색깔은 초록색이지만, 2년 된 얼음은 새파란색을 띤다.

 

“이 부근의 얼음은 8월이 돼야 녹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채수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하면서, 얼음 연구와 해수 연구는 시기를 달리하는 게 좋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세워둔 배는 바람과 물결에 따라 표류한다.

원래 위치(73N, 168W)에서 상당히 많이 움직였다.

 

해양지질조사팀에서 찍은 사진이 북극곰인 줄 알았는데 해표였다. 물속을 드나드는, 회색에 검은 점으로 알 수 있다.

 

북극곰감시인은 키가 190센티, 몸무게가 100킬로에 가까운 거구이다. 독신으로 혼자서 먹다보니 무제한으로 커졌다고 농담한다. 지금까지 흑색곰과 갈색곰을 30마리가량 잡았는데 미안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원주민 이누이트는 북극곰을 잡을 권한이 있으나 자신은 생명이 위급한 경우에만 잡을 수 있다고 한다.

 

가지고 있는 총에는 3발이 장전돼 있고 4발이 호주머니 안에 있다. 유효사정이 200미터이상이다. 동시에 8마리가 달려들면 한 마리는 태권도로 제압하겠다고 엉뚱한 포즈를 취한다.

 

알래스카, 알류샨, 캄차카의 대자연을 촬영해온 일본 사진작가가 북극곰에게 공격당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 사람은 죽었지만 그의 작품은 알래스카대학교박물관에서 남아 인기를 얻고 있다.

 

저녁식사 후 사람들은 케이지(Cage)를 타고 얼음 위로 내려갔다.

 

“사다리로 내려가면 되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물었다.

사다리는 얼음이 배에서 멀어지면 위험하다.

 

길이 300미터의 얼음 위에 올라와 있다. 얼음 두께는 1~3미터 정도.

해빙(海氷)은 기온이 올라가면 녹고, 어떤 곳에는 작은 연못이 생기기도 한다.

하트 모양을 보면 사랑할 징조라면서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도 있다.

 

얼음 위는 갑판 위보다 더 춥다.

해양시스템안전연구원은 계속 얼음 위 실험을 해나갔다.

연구와 관계없는 사람도 나들이 겸 얼음 위로 내려갔다.

 

양외란은 얼음 위에서 선체 주위를 훑어보았다.

 

“아이, 불쌍해라. 선체가 온통 찰과상이네!”

 

선체는 초콜릿색 페인트가 벗겨져 회백색의 금속살이 보였다. 얼마나 날카로운 얼음에 긁혔으면 저럴까. 여기까지 온 것이 장하기만.

 

그런데 바다의 얼음에서 붉은색을 보았다. 처음엔 바다표범의 피라고 생각했으나 알고 보니 얼음이 선체 페인트를 갉아먹은 것이다.

 

북극곰감시인은 바람이 부는 반대쪽 먼 위치에서 외롭게 보초를 서고 있다. 곰은 후각이 아주 좋아 바람 따라 흘러간 냄새를 잘 맡기 때문이다.

 

“감시업무는 매우 지루하지만 신나는 일입니다.”

 

자기 직업에 자부심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얼음 위는 평탄하기 때문에 바람이 세고 추위를 더 느낀다. 그럼에도 연구원들의 생명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곰을 노려보고 위험 거리까지 온 곰을 잡을 때는 쾌감을 느낀다는 것.

 

 

 

새우깡

 

저녁 메뉴로 참치, 멍게, 주꾸미 등이 나오자 사람들은 뭔가 부족함을 느꼈다.

주방장은 금방 눈치를 채고 소주를 가지고 와서 모든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오늘 술은 프리 페이로 드리겠습니다. 초복이고 하니 즐겁게 드십시오.”

 

소주는 ‘처음처럼’이었다.

주방장은 소주병을 들고 엉덩이를 흔들어 보였다. 개그맨 기질이 있는 사람이다.

 

“여러분, 이효리처럼 흔들어주세요.”

 

웃음이 그치기 전에, 술이 따라졌다.

술을 마시든 말든 각자 앞에 한 잔씩.

 

이번엔 누군가가 건배사를 제의했다.

평소 술을 마시지 않는 나이 많은 해양 연구원이 지목되었다. 그는 기독교인이다.

갑자기 건배사를 제의받고 그는 망설였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처음처럼 살지 말고 마지막처럼 사십시오! 건배!!”

 

말의 뜻도 모르고 모두들 건배를 했다.

 

“종말론적으로 살라는 뜻입니다.”

 

그가 해석을 붙이자 역시 기도교적인 건배사라고 하면서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외국인들은 뜻도 모르고 웃기만 했다. 통역을 듣고 그들도 크게 웃었다.

소주를 유난히 좋아하는 기관장이 한마디.

 

“‘참이슬’을 좋아하는 사람은 건배사를 어떻게 해야 하나?”

 

저녁식사가 끝나자 네 명이 맥주 테이블을 구성했다.

헬리콥터 조종사 두 명과 필리핀 대학원 여학생, 그리고 양외란.

 

맥주 안주로 새우깡이 나왔다.

한국에서는 맥주안주로 새우깡과 고래밥이 인기라고 양외란은 설명했다. 그리고 이런 것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라고 덧붙였다.

 

“새우와 고래가 싸우면 어느 쪽이 이길까요?”

 

양외란의 엉뚱한 질문에 외국인들은 머쓱해했다.

아이들에게 물으면 즉답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들에겐?

 

“새우깡에 고래밥이니 고래는 새우의 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양외란이 이유를 말하자 헬리콥터 조종사들은 무릎을 쳤다.

자신들은 새우깡만 먹겠다고 농을 했다.

 

그러면서 모두들 고향에 대한 향수가 술로밖에 구체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쑥스러워했다.

 

 

 

 

얼음과 안개

 

2010년 7월 23일(금) 놈을 출항한 지 일주일째다.

 

간밤 목적지로 가다가 안개가 심해 배가 멈춰 섰다. 안개는 북극해에서 종종 얼음 다음으로 문제가 된다.

 

다행히 자욱한 안개는 곧 비로 변했다. 북극에서 눈을 보기 전에 비를 볼 수 있으니 기분이 묘하다. 그러나 비는 한 시간을 못 채우고 그쳐버렸다.

 

북극 얼음은 작지만 남극 얼음보다 더 단단하다. 염분이 적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는 말한다. 얼음이 많으면 파도가 얼음에 눌려 바다는 조용해지는 법.

 

배의 여기저기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꺼운 얼음을 깨고 배는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배는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세 시간 동안 겨우 20km도 움직이지 않았다.

 

쇄빙선이 나갈 만한 길을 찾으려고 헬리콥터가 떴으나 5분도 되지 않아 돌아왔다.

 

“바다가 온통 얼음으로 둘러싸였습니다.”

 

유빙항해사의 탐사 소감이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날씨의 호전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기다리는 동안에 몇 팀이 얼음 위로 내려가서 작업하고, 북극곰감시인은 갑판 위에서 감시업무를 했다.

 

안개 사이로 해가 비치기 시작하고, 서쪽 하늘에 반원형의 무지개가 생겼다. 누군가가 눈 무지개(snowbow)라고 불렀다.

 

“환상적이네요.”

 

기상 연구원은 특별한 체험에 감동했다.

 

배가 다시 전진을 시작했고, 이젠 선체의 흔들림이 적어졌다. 유빙지역을 벗어나고 있다는 증거이다. 얼음은 해면의 70% 정도 되는 것 같다.

 

배의 앞쪽에 장착한 감지기에서 충격과 변형의 정도가 측정된다. 얼음의 두께와 강도, 비중, 온도 등에 따라 측정치가 달라질 것이다. 쇄빙선 설계에 반영된다.

 

배의 좌현에 색다른 얼음이 포착되었다. 쌍안경에 들어온 얼음은 진한 갈색의 고운 진흙과 모래가 섞여 있었다. 동시베리아 대륙붕에서 생긴 얼음이라고 얼음 연구원은 설명한다. 얼음이 얕은 대륙붕 밑바닥에 닿았다가 모래와 진흙이 묻은 것.

 

선미갑판에 새떼가 모여들어 유심히 보니 세가락갈매기들이 배의 스크루 회전 물살에서 떠오른 작은 물고기를 건져 먹고 있었다.

 

해무가 오래 끼었으나 해가 다시 나타나고, 바람이 적은 맑은 날씨로 변했다.

유빙으로 덮인 파란 바다가 파란 하늘과 맞닿아 세상은 온통 파란색이다.

 

얼음과 구름과 새를 보는 것만으로도 뱃놀이 기분.

머릿속에는 옛날의 조각난 기억이 까치놀처럼 빛을 발하며 사라지기도 한다.

 

 

 

채수기

 

배는 어느덧 얼음 바다를 지나 물이 많은 바다에 이르렀다.

위치 75N 160W, 수심 2,000미터 지점 도착.

 

아침부터 채수(採水)장치를 1,800미터까지 내리는 작업이 시작됐다.

부착된 장비는 수온, 염분, 밀도, 용존산소, 광투과도, 전도성, pH를 포함해 무려 15가지의 정보를 알려준다.

 

채집된 물은 불활성원소와 메탄성분과 미생물을 분석하는 데 쓰인다.

 

“아, 정보를 보내오는군요.”

 

연구원들의 탄성이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번 채수기를 올렸을 때는 정보를 보내오지 않아 당황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 원인을 알고 보니 2km에 가까운 케이블의 어느 한 부분에 누전이 있었던 것이다.

 

채수기에서 받은 바닷물을 조사하는 데는 식물 팀도 바쁘다. 얼음이 없는 해역에서 채수를 서둘러야 하기 때문. 세 번 이상 채수해야 연구가 원만하다.

 

수심 500미터에서 들어 올린 봉고 네트에는 작지만 경이로운 생명체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빨간 촉수의 투명 생물, 납작하면서 머리 양쪽에 눈이 있는 것들, 갈색 해파리 등…….

 

차고 깊은 바다에서 살아가는 대자연의 창조물들.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권리라고 했던가.

 

『약간의 심미적 추구를 게을리 하지 마라』

 

어느 시인의 말이 가슴에 닿는다.

 

 

 

쇄빙능력시험

 

아라빙호의 쇄빙능력시험은 1미터 두께의 다년빙 바다에서 실시한다.

목표지점에는 자정 무렵에 도착했다. 도중에 두꺼운 얼음을 피해 돌아가느라고 1시간 거리를 3시간 만에 이르렀다.

 

“최 박사님은 얼음하고 친하게 된 이유라도 있으세요?”

 

한국 최초의 얼음공학자인 최 박사의 학문 동기가 몹시 궁금했던 양외란.

결국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최 박사는 멋쩍은 웃음을 띤다.

 

“인간이 마지막으로 정복할 것은 얼음이 아닐까 생각했지. 북극, 남극, 만년설……. 자원이 무궁무진하고 지구온난화로 접근도 쉬워졌으니까. 그리고 한국에 얼음전문가 한 명 정도는…….”

 

의기양양하게도 그는 한국의 유일무이한 얼음전문가다.

얼음 관련자는 모두 대단해 보이는 것일까.

김연아도 여기에 포함되나?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양외란은?

 

이른 아침부터 중국 사람들이 뱃전에서 연구에 한창이다. 노트북을 들여다보는 한 연구원의 지시를 따라 다른 연구원은 막대기를 내밀고 있다. 모니터에는 복잡한 파형이 그려지는 걸로 봐서 쇄빙연구와 관련이 있는 모양이다.

 

오후 2시 무렵.

탑승자들은 갑판으로 나와 배가 얼음을 깨는 광경을 구경했다.

뱃머리에 닿은 얼음이 먼저 깨지고 얼음의 안쪽 약한 부분이 깨어지면서 금이 생기기 시작했다. 먼 곳에 있는 부분이 깨어지는 것은 이미 힘이 전달된 결과일 것이다.

 

남극과는 달리 북극 해빙은 얼음 능선을 가지고 있다.

모양도 작은 산, 완만한 능선, 거북 모양, 뾰족한 산 모양 등 가지가지.

얼음 능선은 바다가 녹으면 함께 사라지는 운명이라 하루살이와 같은 것.

 

 

 

북극곰

 

아침 식탁에 모처럼 세 사람이 자리를 같이했다.

선장과 양외란, 그리고 북극곰감시인.

보통은 모닝커피와 토스트 등으로 방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때우곤 하는 선장이 식당에서 합석한 것은 의외이다. 쇄빙능력시험 중이라 그는 선교에서 바로 식당으로 내려왔다.

 

북극곰감시인은 선장과 아침식사를 같이하는 게 마냥 신나는가 보다.

 

“북극곰은 8미터를 뛰어 갑판으로 올라올 수 있어요.”

 

북극곰감시인이 그렇게 말했을 때 양외란은 악 소리를 지를 뻔했다.

감시인은 태연하게 이야기를 계속한다.

 

“간혹 그물사다리를 타고 올라오기도 한답니다. 아마 선실 문 정도는 쉽게 때려 부술 걸요.”

 

더욱 오싹해진다.

곰이 그렇게 무서우니 우리 같은 감시인이 필요하다는 걸 강조하는 것 같다.

선장이 옆에서 겁주기에 동조한다.

 

“곰이 느린 것 같아도 3, 4미터를 한걸음에 성큼 뛰어 아주 빠르다고 하던데…….”

 

“그러기 전에 우리가 다 예방하지요. 만약 곰이 10미터 이내로 다가오면 겨자스프레이를 뿌려도 효과가 있지요.”

 

곰 감시인의 역할은 충분히 부각됐다.

양외란의 두근거리는 가슴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됐다. 한마디 할 여유가 생겼다.

 

“그래도 북극곰 한번 보고 싶어요.”

 

곰은 초식 위주 잡식성이지만 북극곰만은 육식동물이다. 갈색곰이나 흑색곰은 모두 10만 마리 정도 알래스카 등에서 볼 수 있지만, 그린란드와 캐나다에 주로 사는 북극곰은 알래스카 북쪽 해안과 연안에 5천 마리 정도 있다고 한다.

 

“추운 데서 어떻게 사시는지 궁금합니다.”

 

곰 감시인의 생활이 궁금했다.

그는 알래스카 중부의 패어뱅크스에서 작은 통나무집에서 독신으로 산다. 영하 50도에 연료가 얼려고 하면 자동 히터가 작동해 연료를 녹인다고 한다.

 

무스 한 마리 잡으면 살코기만 400킬로 이상 나오므로 혼자서 일 년은 먹을 수 있다.

 

“부수입으로 무스의 뿔이 돈이 되지요. 뿔 두 개면 200달러 정도.”

 

석유회사나 고래연구선에서 감시 업무를 부탁 받으면 먹고 사는 데는 지장 없다고 하면서 자신은 행복하다는 것.

 

중국의 설룡호는 2008년 여름에 북위 85도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그땐 운이 좋아 얼음이 많이 녹았다. 거기 가면 북극곰을 만날 수 있다는 것.

 

7월은 얼음이 녹기에는 아직 이런 계절이다.

 

 

 

해양 연구

 

연구 해역인 척치해(Chukchi Sea)는 대서양과 태평양에서 기원한 따뜻한 바닷물이 들어온 곳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분포와 경계면에 대한 연구는 계속 진행 중이다.

 

해양물리학자는 이번 항해에서 대륙붕에서 대륙사면으로 단면을 따라 해수의 물리화학 성분을 측정해본 결과 태평양과 대서양 기원의 해수가 다른 수심에서 유입되고 있다는 잠정 결론을 얻어냈다. 수심 480미터에서 최고가 되었다가 천천히 낮아지더라는 것.

 

날씨가 좋고 구름이 아름다우니 바깥 구경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남자들 위주로 슬리퍼를 준비하다보니 여자들이 발보다 큰 슬리퍼를 신고 있는 것이 많이 보였다.

 

남성이 한마디 했다.

“페디큐어가 예쁩니다.”

 

여성이 반응했다.

“연구종목에 발미용도 넣어주세요.”

 

아침식사가 끝난 후 밑도 끝도 없이 선내방송이 나갔다.

 

“내일 오전 3시간은 체육관과 사우나 사용을 삼가주세요.”

 

알고 보니 한 번 정도 여성 연구원들만 사용할 수 있도록 기회를 배려한 것이다.

 

연구에는 밤낮이 없고 공휴일이 따로 없다. 제한된 항해 기간에 연구 자료를 많이 수집하고 제때에 연구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날씨 나쁜 날이 쉬는 날이다.

 

놈을 출항한 지 열흘.

배는 어느덧 캐나다의 심해평원에 와 있다.

경위도 79N 156W, 수심 3,900미터이다.

 

“수심은 어떻게 측정합니까?”

 

“와이어에 걸리는 장력으로 알지요. 장비가 바닥에 닿으면 장력이 감소하니까요.”

 

물론 음향측심기가 있다. 음향이 반사돼 돌아오는 시간의 반에 1,500m/s(물속 음속)를 곱하면 수심이 된다. 수심이 깊으면 초음파는 에너지가 감쇠하므로 저음파(장파)를 사용한다.

 

떠올린 퇴적물은 갈색 진흙이었다.

물과 생물과 퇴적물을 채집하고, 해류의 이동과 혼입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쇄빙선이 있어야 가능하다. 한국이 쇄빙선을 보유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퇴적물을 채집하는 코어러는 수십 센티 채집기가 있는가 하면 20~30미터를 채집할 수 있는 자이언트 코어러도 있다. 아라빙호에 대형은 없다.

 

선교에 올라가서 배의 항적을 보니 지난 자정부터 오늘 저녁까지 20시간 동안 배는 지름 수십 km의 큰 반원을 그리며 표류했다. 해류와 조류, 바람에 따라 배가 떠돌아 다녔다는 뜻이다.

 

남극은 대륙 주위를 동쪽으로 흐르는 반면, 육지가 없는 북극은 해류가 단순하지 않다.

또 북극은 해류와 얼음이 얼 때의 압력 때문에 얼음끼리 들어붙어 남극보다 항해가 어렵다. 바닷물이 얼 때 부피가 팽창하면서 주위를 누르는 압력은 선체가 찌그러들 정도로 강하다.

 

알음 조각은 취수관을 막는 일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일상의 사건

 

중국 남성 연구원은 새벽 4시 잠이 깼다. 세 시간도 자지 못했다.

바깥이 훤하여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그는 갑판으로 나와 바다를 바라보았다. 배는 거의 얼음으로 덮인 바다 한가운데 서 있었다. 얼음 속에 있는 배가 흔들 리가 없다. 바람 한 점 없다. 이렇게 고요한 바다는 좀처럼 보기 어려우니 사진을 찍어놓고 싶었다.

 

그가 동료 여자 연구원의 방문을 두드렸을 때 마침 그녀도 잠이 오지 않아 책을 보고 있었다.

 

“사진 기사 역할을 해줘요.”

 

남자의 요청에 여자는 슬리퍼를 끌고 갑판으로 나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갑판에 내려앉은 이슬 때문에 미끄러져 슬리퍼가 바다에 떨어지고 말았다.

 

“걱정하지 말아요. 똑같은 슬리퍼가 많이 있으니 아무거나 끼어 신으면 돼요.”

 

근처에 얼음은 많지만 연구할 만한 얼음이 적어 배의 이동이 필요했다.

유빙항해사와 얼음공학자, 북극곰감시인을 태운 헬리콥터가 이륙하여 주위를 돌아보고 왔다. 쓸 만한 얼음을 찾았는데 한 시간 정도 이동해야 한다는 것.

 

뱃머리를 얼음에 대고 배는 멈췄다.

얼음 위에는 종종 연못이 생긴다. 얼음 위 눈 사이로 도랑이 생기고, 도랑은 연못으로 이어진다. 깊이가 심하면 얼음을 뚫기도 한다. 비가 온다면 얼음은 더 잘 녹을 것이다.

 

각 나라 사람마다 부여받은 업무가 달라 각양각색이다.

중국인들은 연구한 자료를 컬러로 복사한다.

미국인들은 특수한 업무라 일이 없을 때는 회의실에서 영화를 자주 본다.

러시아인들은 얼음 이야기를 빼놓으면 화제가 고갈된다.

한국인들은 연구자료를 두고 회의를 자주 하고…….

 

이른 밤에 갑자기 눈이 내렸다.

추운 북극에 눈이 많을 것으로 상상되나 의외로 눈이 적다. 눈을 보는 것은 신기하고 기분 좋은 일이다. 사진 찍기에 바쁘다.

두 시간 정도 내린 눈은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

 

필리핀 여자 대학원생이 배를 안고 뒹굴었다.

특별히 잘못 먹은 게 없다고 하나 아픈 것은 현실이다.

선내 위생담당인 삼항사 양외란이 선의(船醫)에게 보고했을 때, 의사는 청진기를 몇 번 대보고 금방 진단을 내렸다.

 

“창자가 꼬였군요. 장중첩증은 간단히 치료할 수 있으니 염려 마세요.”

 

그러고는 항문을 열라고 했다.

부끄러운 표정도 잠시, 환자는 순순히 의사에게 항문을 맡겼다.

공기를 불어넣자 환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꼬인 문제점은 이렇게 푸는구나.”

 

양외란은 감탄했다.

인천을 출항한 지 꼭 한 달째. 이 정도 환자가 생겨 치료한 것은 다행이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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