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남극탐사 항해

남극 탐사 항해(중)

오선닥 2013. 3. 24. 20:12

인천을 출항한 아라빙호는 뉴지에서

보급품 적재 및 극지요원 탑승하고

남극으로 향함.

 

중도에 러시아 쇄빙선 상봉하여

안내를 받아 케이프벅스에 도착

 

쇄빙능력시험과

대륙기지 후보지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는 정밀조사가

아라빙호의 주요 임무.

 

제2 남극기지 선택을 위해

케이프벅스와 테라노바베이가 경합을 벌이다가

최종적으로 테라노바베이 선정

 

 

아라빙호 처녀항해 여정

 

인천(2009.12.18 출항) → 크라이스트처치(2010.1.8 - 1.12) → 남위 63도(1.17 도착) → 남위 72도(1.22 페도로프호 상봉) → 케이프벅스(1.26 - 1.30) → 테라노바베이(2.7 - 2.10) → 크라이스트처치(2.18 - 2.23) → 인천(2010.3.15 도착)

 

두 번째 연재입니다 

 

 

 

 

남극 탐사 항해(중)

 

 

남위 60도부터는 긴장감이 감돈다.

얼음이 떠다니기 시작하기 때문.

얼음이미지 화면을 받아야 한다. 전자해도에는 위도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뉴지에서 남극으로 향하는 선박은 보통 남위 62~63도에서 정동향으로 돌려 등위선(等緯線)을 따라 1300해리쯤 진행한 후 다시 남하하곤 한다.

 

“얼음을 피하기 위해서니 그냥 열심히 따라오세요.”

 

앞서가는 러시아 쇄빙선 페도로프호가 아라빙호더러 묵묵히 따라오라고만 한다.

얼음바다만큼은 자신이 있다는 거만함이 풍겨 나온다. 쇄빙항해(碎氷航海)의 경험을 한국선에 한 수 가르쳐준다는 거만함.

 

아라빙호는 엄마를 따라가는 아이처럼 속력을 맞춰가며 열심히 페도로프호를 뒤따른다.

 

배는 남위 70도 해역을 지나고 있다.

디지털시계는 2010년 1월 21일 오전.

뉴지를 출항한 지 열흘째.

 

선상생활에서 최대 애로 사항은 뭘까?

뭐니 해도 통신과 인터넷 사정이 너무 열악하다는 점이다.

선원들은 이런 불편함에 익숙해져 있지만 탑승객들은 고통에 가깝다. 지금이 21세기 아닌가.

 

“왜 갑자기 인터넷이 안 되지?”

 

여기저기서 야단들이다. 친구와도 같은 인터넷이 말을 듣지 않으니 답답해지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기자단이 발을 동동거린다. 남위 60도부터 간헐적으로 말썽을 부리던 것이 이젠 하루 종일 불통일 때가 있다. 적도 상공에 떠있는 인공위성이 아라빙호의 이동항로 반경을 제대로 커버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것.

 

인터넷 전화로 가족들과 안부를 주고받던 탑승자들에게는 청천벽력이자 그야말로 맥 빠지는 상황이다.

 

“언니, 형부한테 안부 전화 어떡하죠?”

 

“얘들이 걱정되기도 하네. 큰애가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인말샛으로 해야 될까봐. 카드가 좀 비싸더라도.”

 

“그러세요. 그리고 형부 목소리도 들어보시고요. 목소리만 들어도 형부가 집인지 바깥인지 알 수 있잖아요.”

 

“얘가~ 어디 내가 귀신이야?”

 

양외란과 장세빈의 대화는 옆길로 빠질 때가 자주 있다.

인말샛 카드마저 남위 70도 이상에선 접속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저녁식사 후 휴게실에 사람들이 모였다.

양외란은 직업 선원으로서 지금 배를 타고 남극에 왔지만 수입이 좋은 의사가 구태여 배를 탈 필요가 있을까 궁금했다.

 

“박사님, 왜 사서 고생하십니까?”

 

의사는 양외란이 씩씩해서 괜찮은 여자 항해사라고 생각해왔던 터다.

 

“일상에서 벗어나 남극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싶었지. 기회만 되면 북극에도 가보고 싶은데……."

 

의사는 너스레를 떨었다.

 

극지 항해에 동참한 동기는 가지각색이다.

 

- 손이 고운 조리장은 금강산관광 유람선에서 5년정도 근무하다가 아라빙호 승조원이 됐다.

 

- 한 신학생은 아라빙호 명칭공모 포상자의 신분으로 남극행을 체험하는 기회를 얻었다. 하나님이 남극 추운 지방에도 계시는지 확인해볼 참이라는 여유 있는 농담도.

 

- 어떤 참여교수는 연구조교를 비서같이 대동하여 조교의 앞길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주고 싶다나.

 

- 세종기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승조원도 있다. 조리원, 기관사, 조타수 등등.

 

남극은 지금 한국과 정반대인 여름철로 거의 낮만 계속되는 백야현상을 보인다.

남극권(66°33'S)을 넘어서면 동지 무렵엔 해가 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구가 삐딱하게 기울었기 때문.

 

“의외로 잠을 못 자는 사람이 많군.”

 

선장이 선교에 올라와서 오전 당직 중인 양외란 삼항사에게 걱정스런 말을 건넸다.

선장은 보통 이 시간에 선내를 한 바퀴 돌아보곤 한다. 선내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밤은 사라지고 낮만 있으니 그런가 봐요.”

 

“선원은 잠을 잘 자야 해. 삼항사는 잘 자지?”

 

“저는 요즘 커튼을 내리고 잠을 청합니다. 베개를 안고 자는 버릇이 있어요.”

 

“엄마 생각 혹은 애인 생각?”

 

“아녜요. 아들 생각합니다.”

 

“아가씨가 별소리를?”

 

“거짓말 아, 아네요.”

 

“선장을 놀리면 안 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요. ……놀라셨죠?”

 

말을 해놓고 어이없어 양외란은 배꼽을 눌려야 했다.

선장은 의외라는 표정이다.

 

“너, 신학생한테 전도 당했구나. 원래 교회 안 다녔잖아?”

 

“간혹 선데이 교인…… 섬유 용어로 나일롱 아시죠?”

 

이 능청스런 아가씨를 선장은 미워할 수가 없다. 남성 항해사를 능가하는 지식과 추진력을 가지고 있어 언제나 든든하다. 어쩌다가 술을 좀 마시긴 해도.

 

“잠을 청하려고 술을 마시지는 않겠지. 술은 스토킹을 잘해 밤낮 없이 따라붙어.”

 

선장은 초급항해사일 때 시차적응을 못해 불면으로 고생한 경험을 들려줬다. 다행히 삼항사는 취침기술은 좋은 것 같다.

 

대화하는 중에 앞 유리가 희뿌옇게 변했다. 해수가 튀어 올라 서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겨울이라면 당장 얼어버렸을 것이다.

 

추운 지방을 다니는 선박이 겪는 어려움은 무엇보다 결빙이 문제다. 갑판상에 눈과 얼음이 쌓이면 배가 무거워져 감항성(항행 안전성)이 악화된다. 원목선의 경우는 중심(重心)이 올라가 전복의 위험이 있다.

 

“열선 스위치를 켜겠습니다.”

 

극한의 추위에 견딜 수 있도록 아라빙호는 선교 유리창과 출입문, 갑판 전체에 열선을 깔아놓았다.

 

이번 항해에서는 남위 62도 해역에서부터 유빙을 접하기 시작했다. 남위 70도를 지나면서 유빙은 무수히 늘어났고, 남위 72도 해역부터는 그야말로 얼음천지를 이루었다. 남위 72도에서 73도를 넘어오는 결빙해역에서는 남극해가 온통 하얀 얼음으로 뒤덮인 진풍경을 보였다.

 

 

 

배는 속력 12노트로 남극으로 꾸벅꾸벅 접근하고 있다.

선내 6층의 선교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색다른 풍경이다. 시계(視界) 밖까지 펼쳐지는 청백의 대형 화면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

 

잔물결이 만들어내는 파도소리.

빙하가 쩡 무너지는 소리.

 

다른 세상의 소리 같다.

남극해에 떠다니는 빙산들은 그야말로 탄성을 자아낼 만큼 장관이다.

 

서남극에 위치한 케이프벅스(74°45'S, 136°48'W)가 첫 목적지다.

케이프벅스(Cape Burks)는 남극 킹조지(King George) 섬의 세종기지에 이어 남극 제2기지 후보지로 유력시되는 곳이다.

 

“기존 세종기지가 있는데 구태여 제2기지가 필요할까요?”

 

양외란이 장세빈에게 물었다.

 

“누구나 궁금해하지. 세종기지는 섬에 있고, 또 위도도 낮아 남극대륙의 특성 연구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라구.”

 

남극 세종기지(남위 62°13′, 서경 58°47′)는 남극에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1988년 2월 건설됐으니까 꼭 22년이 지난 것. 세종기지와 제2기지 후보지와의 위도 차이는 12도 이상 되는 셈이다.

 

“남극점에 연구기지가 있으면 더 좋겠네요.”

 

“남위 90도를 말랑하게 보지 마. 추위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워. 또 지대도 높고. 미국과 중국이 시도하고 있긴 하지만.”

 

“그러네요. 동태가 될 각오를 하면 모르지만요.”

 

양외란은 금방 남극점의 추위를 상상했다.

 

두 여성이 선내 휴게실 창가에서 커피향을 즐기며 대화하고 있는데 갑자기 테이블에 희미한 그림자가 다가왔다. 그리고 숨소리가 섞인 약간 터프한 목소리.

 

“남극점 연구기지 건설은 앞으로 당신들의 과제로 남겨둘게요.”

 

남극통인 수석연구원이 풍성한 몸집을 앞세워 두 여성 앞에 나타났다. 두 여성은 엉겁결에 약간 서는 자세로 예의를 표시하고 의자 하나를 내밀었다. 선내에서 남의 대화에 끼어드는 건 실례가 아니다. 너무 자주 보니까.

 

“수석님은 처음 남극에 오셨을 때 두렵지 않았어요?”

 

수석이 자리에 앉자 양외란의 궁금증이 발동한 것이다.

 

“러시아 사람들한테 많이 배웠지. 그 양반들은 얼음 전문가들이니까.”

 

곧 은퇴를 앞두고 있는 그는 남극 전문가로서 남극에 관한 한 개척자임에 틀림없다.

장세빈은 커피를 타서 수석 앞에 내려놓았다. 설탕 한 스푼을 넣어야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상사의 커피성향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게 그녀의 커리어우먼 직업관이다.

 

양외란은 연예기자처럼 언제나 질문에 끈질기다.

 

“페도로포프호의 선장과 다정한 통화를 하시던데 친하세요?”

 

“우리의 만남이 세 번째이니 이젠 확실한 친구가 된 거지.”

 

수석연구원은 페도로포프호를 빌려 타고 2007년과 2009년 남극대륙 후보지 현장답사를 한 각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남위 73도를 지나는 저녁.

양외란은 습관적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늦은 저녁인데도 바깥은 훤하다.

선상 시차는 국내보다 4시간 빠르다.

 

엄마라는 존재는 선주협회연구소에서 뭔가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것이다. 차라리 ‘남편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연구과제로 했더라면 아빠와 다시 결합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해 저녁을 먹을 때면 외동딸을 옆자리에 두는 착각에 빠질지도 모른다. 딸을 너무 사랑해서 탈이다.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포장마차에선 더 생각난다는 것. 술 때문이라고 고백할 때도 있다. 그럴 땐 퍽 고독해진다나. 딸 몫까지 합해 두 배로 고독해진다는 말까지.

 

“오선덕 선장은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딸이 사춘기를 넘기고 고3을 통과하고 대학에 들어갔을 때 엄마가 한 말이다. 대학생이니 사랑이라는 단어를 써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용어 사용의 타이밍을 잘 맞추는 엄마 전계린 박사니까.

 

'엄마, 사랑해' 를 말하기 전에 화창한 날씨가 그녀의 집생각을 흐트려놓았다.

 

지금의 남극은 여름철이라 기상이 좋다.

그러나 역시 극지인지라 평균 풍속이 강하다.

아직까진 예상보다는 파도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남극의 일기는 변화무쌍해 상황을 장담할 수 없다. 현장에서 쇄빙을 많이 하려면 기름을 절약해야 한다. 그래서 기상은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고, 선원들은 남극 항해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아라빙호와 페도로프호는 나흘간 동행했다.

 

 

 

 

 

 

2010년 1월 26일 케이프벅스 도착.

 

앞으로 약 10일간 본격적인 쇄빙능력시험과 후보지로서의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는 정밀조사가 이뤄진다.

 

아라빙호의 연구단 일부는 쇄빙기술을 배우기 위해 페도로프호로 건너갔다.

 

남극대륙기지건설후보지 정밀조사단원 22명은 케이프벅스에 내렸다.

이들은 물자하역경로, 건설환경, 상수원, 생물상, 지질, 대기환경과 기상, 빙상 조사 등의 분야로 나눠 활동하면서 케이프벅스가 대륙기지 후보로 적합한지를 살펴나갔다.

 

쇄빙능력시험은 중요하다.

얼음 상태가 어떤지, 얼음 위에서 배의 엔진출력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등을 알아내야 한다.

 

페도로프호가 앞서고 아라빙호가 뒤따랐다.

걸음마를 배우는 심정으로 아라빙호는 뒤에서 쇄빙작업을 해나갔다.

너무 가까이 서로 근접하기는 어렵다. 충돌 위험 때문이다.

 

러시아 극지연구소 쇄빙전문가들이 헬리콥터로 정찰해 쇄빙능력 대상 평탄빙을 찾아서 드릴로 얼음 샘플을 채취해왔다. 샘플얼음은 평균 두께 1.2∼1.5m 정도로 기준보다 다소 두꺼웠지만 강도가 약해 시험대상이 될 수 있다.

 

이틀 동안 남극해에서 두 차례에 걸쳐 쇄빙능력테스트를 했으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서남극 케이프벅스 인근해역에서 1m 두께의 다년생 평탄빙(평탄한 얼음)을 연속쇄빙하면서 항해하는 데는 일단 성공했으나 원하는 속도 3노트가 나오지 않았다.

 

“연속쇄빙만으로는 안 되지요. 깨지는 방향이 배의 진행방향과 같아야 합니다.”

 

러시아 쇄빙전문가의 진단이다.

얼음이 옆으로 갈라져 아쉬움을 남긴 시험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건 별 문제가 안 된다고 했다. 아마 페도로프호도 이건 불가능했을 거라는 것. 아라빙호가 힘과 쇄빙능력 면에서 훨씬 우수하니까.

 

한국 조선소 기술자들과 함께 러시아 전문가들은 평탄빙에서 샘플얼음을 뽑아올리는 아이스 코어링(Ice Coring)을 실시했다.

 

시험에 적합한 얼음해역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년생 평탄빙은 11월께나 볼 수 있다는 것. 여름철이어서 바다 얼음이 많이 녹았기 때문이다.

 

조선소 설계팀은 쇄빙 테스트 결과에 대해서는 대체로 만족해했다.

그러나 촉박한 일정에 따른 아쉬움도 나타냈다.

 

“첫 쇄빙운항이라 쇄빙능력 외 여러 시험을 하려고 했었는데…….”

 

팀장은 엔진의 직후진, 조타각도에 따라 무려 15개나 되는 테스트를 계획했었다.

다행히 직진 및 후진 연속쇄빙시험, 릿지 충격쇄빙시험 등 핵심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릿지충격쇄빙은 빙맥이라고 하는 굉장히 두꺼운 얼음을 충격으로 깨는 걸 말한다.

 

선박 후진시험을 하려 했으나 선장의 반대로 포기했다.

 

“많은 승객을 태운 채론 위험해요. 선미 추진기 프로펠러에 충격을 줄 수도 있고.”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선장의 태도가 양외란에겐 든든한 느낌을 줬다.

 

“역시 선장은 다르구나.”

 

양외란은 대화 내용도 기록에 포함시켰다.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여러 연구진과 대화를 나눴다.

특히 조선소 설계팀의 자부심은 그의 대화에서 드러난다.

 

“첫 쇄빙선 건조 후 많은 해외 선사에서 배를 건조해달라는 문의가 잇따르고 있어요.”

 

H조선은 독도함에 이어 국내 최초로 쇄빙연구선인 아라빙호까지 성공적으로 건조하는 등 특수선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기술력을 입증한 셈이다.

 

양외란은 추진기의 특성이 궁금했다.

 

“본선 엔진의 특성을 말하신다면?”

 

“일반 엔진이 아닌 고압발전기 4기를 이용한 전기추진 방식이죠. 적은 소음으로 전·후진뿐만 아니라 순간적인 좌우 이동은 물론 360도 회전이 자유롭습니다. 한마디로 저소음과 저진동, 유연한 변속이 특징이죠.”

 

이미 예상했던 대로 전기추진의 장점을 이용한 것이었다.

 

“배 밑바닥에 특이한 장치가 있다지요?”

 

“다중빔 해저지형 탐사기기를 비롯한 멀티빔이 설치돼 있습니다. 해저 목표지점을 거의 한치의 오차 없이 탐사할 수 있고, 음파를 이용해 해저 형상을 3차원으로 생생하게 재생할 수 있지요.”

 

최첨단 장치들이다. 한국사람 대단하다.

팀장은 자부심으로 포장한 사람같이 시종 웃음을 잃지 않았다.

 

갑판의 대형 크레인에는 심해 6000m까지 내려갈 수 있는 무인잠수정이 달려 있다.

 

갑판 아래 1층과 갑판 위 1, 2층에는 채수실(採水室)과 극지 해양생물 실험실, 냉장·냉동실험실 등 10여개의 실험실이 밀집해 있다.

 

얼음정보 인식 장비는 결빙해역에서 안전항로를 유도한다.

 

남극의 여름은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다. 3월부터는 날씨가 급격히 나빠진다. 남극의 날씨는 겨울에 영하 60도 이하로 떨어질 만큼 혹독하지만, 여름철에는 한국의 겨울과 비슷한 기온으로 눈이 녹는다. 여름 평균 기온은 영하2도 정도지만 바람이 거세 체감온도는 실제온도보다 10~20도 낮다.

 

 

 

 

 

 

 

남극의 얼음은 크기에 따라 불리는 이름도 다르다.

 

만년빙 〉 빙붕 〉 빙산 〉 유빙

 

남극대륙의 만년빙은 매년 내리는 눈이 겹겹이 쌓여 형성된 것이다.

평균 두께가 2500m. 매년 1cm 두께의 얼음이 만들어진다면 25만년이 된다.

남극 빙하층은 최대 42만년간의 지구환경 변화를 기록한 타임캡슐인 셈이다. 빙하층에 박힌 기포가 그 비밀을 밝혀줄 것이다.

 

영구 동토 남극대륙을 뒤덮은 만년빙은 그중 일부가 해변으로 떠밀려 내려가 육지와 연결되어 해안가에 빙붕을 만든다.

 

그 빙붕이 남극해로 떨어져나가면 빙산이 된다. 계절적으로 여름철인 12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 남위 74도상의 서남극 대륙 케이프벅스 일대 인근해역에는 다양한 모양의 빙산들이 장관을 이룬다.

 

떠밀려온 빙산들은 남극대륙의 차가운 바람과 눈부신 햇볕을 받아 조금씩 부서지고 깨지고 녹아내리면서 대자연의 걸작으로 거듭난다. 이것들이 유빙이다.

 

유빙은 바닷물이 얼어서 두께가 2m 정도 되며 떠다닌다. 남극해(66°S 이상)는 절반 이상이 유빙으로 덮여 있다.

 

여름철 남극해에는 무수한 유빙들이 바다를 하얗게 수놓는다.

 

추위를 빼고 남극에서 가장 두려운 것 두 가지가 있다.

블리자드(눈폭풍)와 크레바스(얼음이 갈라진 틈).

 

남극 날씨는 무척 변덕스럽다. 특히 초속 30~40m의 눈폭풍이 불어닥치면 체감온도는 영하 60도까지 떨어진다.

 

“눈폭풍이 무서운 것은 건물을 온통 덮어씌우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전문가는 설명을 위해 러시아기지를 예로 들었다.

케이프벅스 인근에 있는 러시아의 폐(廢)기지 루스카야 기지에는 바닥에서 일정한 높이의 기둥들을 세워 그 위에 건물을 올려놓았다. 눈폭풍으로 순간 건물이 눈으로 뒤덮이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안한 특수공법이다.

 

눈폭풍이 불어닥치면 외부 일정이 모두 정지되는 것은 물론,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어 바로 옆 건물의 입구조차 찾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크레바스는 죽음의 함정과 같습니다.”

 

러시아 전문가는 이 대목을 강조했다. 눈이 얇게 덮여 있다고 하여 ‘하얀 죽음의 함정’이라고 불린다. 지나가는 차까지도 한입에 삼켜버릴 만큼 공포의 존재다.

 

남극 세종기지 인근 외국기지에서는 지난해 3명이나 크레바스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남극대륙을 덮고 있는 얼음은 전 세계 얼음의 90%를 차지한다.

극지의 얼음이 모두 녹아내려 바다로 흘러간다면 지구 해수면이 60m 정도 상승하면서 재앙이 닥친다고 과학자들은 분석한다.

 

남극에는 비가 얼마나 올까?

연간 강수량이 300~500㎜에 불과해 매우 건조하다. 그래서 남극을 '하얀 사막'이라 부르기도 한다.

 

극지에서는 외출할 때 몇 가지 철칙이 있다.

시력 보호 차원에서 고글 착용

자외선 차단을 위한 선크림 사용

 

장세빈이 양외란의 오전당직 시간에 선교갑판으로 올라왔다.

 

“외란, 니 완전 남극체질이야. 까무잡잡한 피부는 선크림이 필요 없을 걸.”

 

“저도 선크림 발라야 해요. 이 피부도 예민하다구. 자외선 노 댕큐.”

 

“그럼 선블럭 발라. 자외선 차단제 말여.”

 

“언니두. 선크림이나 선블럭이나 같은 거라구. 하긴 미인들은 이런 거 안 바르는가 봐.”

 

“언닐 놀리면 총각 소개는 손 놓을 거야?!”

 

“삐치긴. 세빈 언니만 믿어요.”

 

하루 한 번 이상은 농담을 해야 소화가 되는 선후배간이다.

 

 

 

 

대륙기지 후보지를 어디로 할 건가?

 

케이프벅스(Cape Burks)와 테라노바베이(Terra Nova Bay)를 대상으로 정밀조사를 한 다음 최종 후보지를 택일해야 한다. 둘 다 장단점을 갖고 있다.

두 지역의 위치.

 

케이프벅스: 74°45'S, 136°48'W

테라노바베이: '74°33S, 164°12E

 

남극 제2기지 후보지 확정을 앞두고 정밀조사단은 세 부문 전문가로 나뉜다.

 

건설

환경

극지연구

 

페도로프호는 케이프벅스에 이틀 머물고 러시아 남극기지 루스카야로 먼저 출발했다.

러시아 얼음전문가 5명은 아라빙호에 그대로 남았다.

 

아라빙호는 이제 케이프벅스를 빠져나와 테라노바베이로 이동하는 동안 자력으로 얼음을 깨며 항해해야 한다.

 

2010년 1월 30일

케이프벅스 출항.

케이프에 도착한 지 나흘 만에 정밀조사를 마쳤다.

 

2010년 2월 7일

테라노바베이 입항

정밀조사단은 3일가량 정밀조사를 벌였다.

 

처음엔 케이프벅스가 대세론으로 자리 잡았으나, 정밀조사단 내에서 회의론이 제기됐다.

 

극지연구소는 2008년 5월 예비후보지 자체평가 결과 케이프벅스를 유력 건설후보지로 선정했다. 하지만 당시 결과는 인공위성 자료 등에 기초한 도상조사에 주로 의존했고, 테라노바베이는 비교대상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실제와 많이 다르네요.”

 

책임연구원은 결론을 미루자고 했다.

<남극 제2기지 건설 민관협의회>에서 종합적으로 비교 평가하게 될 것이다.

 

같은 남위 74도 상에 걸쳐 있지만 케이프벅스는 서남극에, 테라노바베이는 동남극에 각각 자리하고 있다. 케이프벅스는 러시아가, 테라노바베이는 뉴질랜드가 추천한 곳이다.

 

케이프와 테라는 주변에 다른 나라의 상주기지가 없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케이프에는 러시아의 폐 기지가 있을 뿐이고, 테라에는 독일과 이태리의 하계캠프만 있을 정도다.

 

“제일 중요한 게 기상 조건이군요.”

 

책임연구원이 수석연구원의 의견을 기다린다.

 

“연평균 풍속이 케이프가 테라보다 세 배 가까이 되니 항만의 개방이나 건설작업 가능기간에 문제가 많을 것 같네요.”

 

수석연구원의 의견에 옆에 있던 건설팀장이 덧붙인다.

 

“기상상태를 볼 때 건설작업 가능 기간이 케이프는 40일인데 비해, 테라는 90일 정도 되는 것으로 계산됩니다.”

 

케이프벅스는 풍속이 연평균 초속 13m로 거센데 비해 테라노바베이는 5m로 약한 편이다. 실제로 케이프는 겨울철 최대 풍속이 초속 22m에 달하는 등 바람이 거센데다 쇄빙선이 접근해서 자재 보급·하역이 가능한 기간도 연간 50일 안팎에 불과하다. 그나마 여름철 결빙된 바다가 열리는 ‘폴리냐’(Open Sea)가 수년에 한 번꼴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특히 케이프는 여름철에도 쇄빙연구선에서 헬기를 띄워야 접근이 가능하다.

 

“케이프는 천여 마리의 펭귄 번식지가 확인됐습니다. 환경보호구역으로 묶일 경우 연구활동에도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군요. 그러나 테라는 주변에 멜버른산이 있어 미적 가치면에서도 탁월합니다.”

 

환경 교수의 지적이 나왔다.

그는 또 테라노바베이의 환경문제도 지적했다.

 

"하지만 테라 주변이 빙하로 둘러싸여서 생태계 연구에 제약을 받는 점은 예상을 해야 합니다.“

 

극지연구소는 미래 발전가능성을 거론한다.

테라는 건설부지만도 6만㎡에 달한다. 케이프의 10배가 넘는 광활한 부지를 확보하고 있다. 지면 경사도 완만하다. 테라 일원인 로스해 해저분지는 석유 등 부존자원 확보 측면에서도 국제적 관심이 높다.

 

“케이프가 기지로 확정되면 건설작업 가능 기간이 연중 50일 미만으로, 3년 안에 기지를 완성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국민의 혈세 낭비가 걱정됩니다.”

 

건설팀장의 심중엔 아예 테라만이 고려 대상인 느낌이었다.

그는 또 강조한다.

 

“테라는 작은 만(灣)을 끼고 있어 바지선이 접안하기에도 좋습니다.”

 

이에 책임연구원이 조사단 전체의 반응을 보기 위해 케이프의 장점을 일부러 거론했다.

 

“그런데 케이프가 식수원, 활주로 등의 지리적 장점도 있지 않습니까?”

 

“테라 주변에 충분한 크기의 담수호가 있어 식수에 문제가 없을 것 같네요.”

 

장세빈도 한 마디 거들었다.

 

건설공학 교수는 테라는 노출암반이 많아 지반이 안정돼 있는데다 주변에 미국·프랑스·이태리·호주·뉴질랜드 등 외국기지가 많아 헬리콥터 등을 이용한 이동이 용이하고,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주변국과의 국제공동연구 프로젝트가 활성화돼 있다는 점을 강점으로 꼽았다.

 

“현재까지 절대 비교평가에서 테라가 케이프보다 입지 여건이 단연 앞서는 걸로 나왔군요. 이로서 우리 정밀조사단은 테라를 건설지로 추천하겠습니다. 의의 없으시죠?”

 

책임연구원은 그렇게 의견을 정리한 것이다.

 

이로써 2006년 시작된 남극대륙기지 사업이 5년여 만에 결실을 앞두고 있다.

 

2010년 2월 10일

테라노바베이 출항하여 뉴지 크라이스트처치로 향한다.

 

올 때와는 달리 돌아가는 길은 순조로운 항해다.

러시아선을 동반할 필요 없으니 자유로운 항해가 가능하다.

 

두 후보지에 대한 정밀조사 결과는 3월 5일 정밀조사활동 보고 및 전문가 공청회에 이어 3월 10일 '남극 제2기지 건설 민관협의회'에서 종합적으로 비교 평가된다.

 

“민관협의회에서 건설지가 확정된다고 마음대로 건설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양외란의 궁금증은 언제나 장세빈에게 타진된다.

 

“남극은 우리나라가 아니잖아. 그래서 남극조약협의당사국회의(ATCM)에 의향서를 제출해야지.”

 

“동의를 얻으면 우리 맘대로 지어도 되나요?”

 

“집하나 짓는 데도 건축법이라는 게 있잖아. 공법이나 환경영향평가 등의 조건을 충족시켜야지.”

 

“통과 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초안 작성해서 수정 보완하다보면 2년 정도 걸리겠지.”

 

“그럼 2012년 착공되겠네요.”

 

극지연구소 대륙기지건설추진위원장은 빨라도 2014년에나 완공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무주공산 남극을 차지하자.”

 

정밀조사보고서 초안이 작성되자 선내는 여유가 생겼다.

하얀 물살을 내며 달리는 배의 뒤꽁무니를 보고 요트를 타는 기분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그러자 대화 관심은 남극 차지하기로 모아졌다.

 

테라노바베이는 뉴질랜드가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곳이다.

남극에 자국의 영토를 공식 선언한 나라는 영국,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 칠레 등 7개국이 있지만, 남극조약은 어느 나라의 주장도 용인하지 않고 있다. 영유권은 일체 유보다.

 

남극은 1998년 남극환경보호의정서 채택을 계기로 오는 2048년까지 50년간 지하자원 개발이 금지되는 대신 과학적 연구 등 제한적 활동은 허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각국이 남극 선점 경쟁에 나서고 있는 이유는 뭘까?

각국의 복잡한 셈법이 깔려 있다.

 

-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 등 지하자원 확보

-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생물자원 전쟁

- 극지생물에서 결빙방지 물질 추출

- 저온효소 등 신소재 개발

 

선내의사는 극지 미생물에서 추출하는 인공혈액이나 인공장기, 인체 부동액 등이 산업계의 혁명을 가져올 거라고 주장한다.

 

“외란씨, 저온생물은행 얘기 들어봤어요?”

 

선내의사가 물었다.

삼항사로 부르면 안 되느냐고 몇 번 항의했지만 의사는 항상 이름을 부른다. 이름이 독특하고 귀여워서 꼭 불러주는 게 예의란다.

 

“세종과학기지에 극지생물을 보관하고 있다던데요.”

 

“그래요. 100여종이 넘는 극지식물 플랑크톤을 보관용기에 키우고 있지. 바로 그런 게 저온생물은행이지. 마치 줄기세포 보관하듯 말야.”

 

“혜택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좋은 시대에 태어났군.”

 

남극대륙에는 대규모 석탄자원이 매장돼 있다. 남극 해저에는 인류가 100년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원유와 천연가스 자원이 묻혀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질 연구원은 강조했다.

 

“남극은 지구 얼음의 90%와 담수 자원의 70%를 갖고 있지요. 철, 구리, 니켈, 금, 은 등 각종 지하자원도 풍부하고요.”

 

남극 연구는 국가 경제 능력에 비례하는 것 같다.

일례로 중국은 남극 최고점인 해발 4093m에 제3기지인 쿤룬기지를 완공해 하계기지로 운영하는가하면, 반면 이탈리아는 최근 몇년간 예산 삭감으로 남극기지 운영이 사실상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

 

“남극 선점 경쟁은 역시 돈과 직결되는가 봐요.”

 

건설추진위원장이 설명했을 때 양외란은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뭉클했다.

 

상주기지를 운영 중인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아르헨티나, 미국, 러시아, 칠레, 일본, 중국 등 20개국이다. 40개 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여름철에만 운영하는 하계기지도 무려 35개에 달한다.

 

최근 쇄빙선을 건조하거나 증설하는 것도 남극대륙 진출을 가속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신이 버린 땅이 지금 위력을 발휘하네.”

 

“이 세상엔 버릴 땅이란 존재하지 않군.”

 

사람들은 한마디씩 했다.

 

세종기지가 위치한 남극반도 위 웨델해(Weddell Sea)는 험하기로 유명하다.

지금껏 탐사에 성공한 나라는 미국 영국 독일, 세 나라 밖에 없는데 한국이 네 번째로 탐사에 도전한다.

 

“모험가가 있어야 개척가가 나오고 투자자도 생기고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법예요.”

 

남극통 수석연구원은 양외란 같은 젊은이에게 희망을 걸었다.

 

“남극을 알려면 얼음을 깨고 빙붕에 들어가야죠.”

 

양외란은 갑자기 모험심이 발동했다.

얼음을 아작아작 깨물고 싶었다.

 

아라빙호가 테라노바베이를 떠나 2월 18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로 돌아왔다. 1차 항해가 완료된 것이다.

 

임무를 마치고 3월 15일 인천항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의 첫 마디는 기대 밖이었다.

 

“널 남자처럼 키우길 정말 잘했어.”

 

“엄마, 옆에 사람들 들어요. 작은 소리로!”

 

엄마는 막무가내다. 아무나 남극에 갔다 오냐? 그것도 최초 여성 항해사로. 최초 여성 비행사 김경오씨가 그렇게 부럽더라는 것.

 

제2 남극기지는 테라노바베이를 최종선정했다.

인천에 입항한 지 이틀 만에 내린 결정이다.

 

남극 여정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다.

힘든 항해였기에 남극 대륙에서 보낸 시간은 더 없이 값진 경험이었다.

 

“우리의 힘으로 갈 수 없는 대륙은 없습니다.”

 

언론기자와 인터뷰했을 때 양외란은 당당하게 말했다.

 

이로부터 3개월 후 남극 제2기지는 ‘장보고과학기지’로 명칭이 선정됐다. 2400여 개의 명칭이 응모됐다니 관심의 열기를 알 수 있다.

 

장보고 제독이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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