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의 아라빙호는
한국 최초 쇄빙선 아라온호를 표본 삼은 것
남극 탐사 항해의 내용은
고득종 기자와 양외란 이항사 간에
인터뷰 형식으로 시작된다
이번 호의 남극 탐사 항해 스토리는
아라빙호의 처녀항해 때
대학 선후배 관계인
선배 장세빈 연구원과 후배 양외란 항해사가
주축이 돼 전개된다
세 번에 걸쳐 연재합니다
남극 탐사 항해(상)
고득종 기자는 양외란 이항사의 내공이 감탄스러웠다.
여자의 뿌리가 궁금하기도.
설마 자기가 추측하는 바와는 다르겠지 생각하면서도 물어본다.
“혹시 이항사님의 고향이 제주도 아니세요?”
“어떻게 아셨어요?”
의외로 양외란의 반응이 빨라 고득종이 오히려 놀라기도 했다.
“제 고향이 제주돈데, 고-양-부 성에 속할 것 같아서요.”
“그럼 제주도 고씨와 양씨가 만난 셈이네요.”
양외란은 반가워 고득종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고득종은 그녀의 손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인터뷰가 부드러워지는구나.
“이제 고향 친구로서 편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무례했었나요?”
양외란의 멋쩍은 웃음에 고득종은 넉넉한 용기를 얻었다.
“제가 편안함을 느낀다는 뜻이지요.”
그는 자세를 고치고 “그럼 본격적으로 아라빙호의 남극 탐사 항해에 대해서 질문드리겠습니다”로 말머리를 세웠다.
“그러시지요.”
양외란의 자세에는 변함이 없는데 고득종은 그 특유의 제스처인 어깨 돌리기로 몸을 풀었다. 근육 움직이는 소리가 4번 타자가 의자에서 엉덩이 빼는 소리를 닮았다.
“극지탐험 연구선이라 연구장비가 꽤 비쌀 것 같은데……?”
“그러네요. 바다 위의 연구소니까 연구장비만 110억원가량?”
아라빙호 선가가 1100억원에 이른다는 얘기는 선장의 브리핑에서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 선가의 10퍼센트를 차지하는 셈.
이런 배의 선박제원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리빙호
다목적 쇄빙연구선, 2009년 6월 진수
길이 111m, 폭 19m, 배수톤수 7480톤
최고 시속 15노트, 항속능력 2만 해리(70일), 연간 300일 운항 가능
탑승정원 85명(승조원 25명+연구원 60명)
쇄빙선은 3천톤급에서 2만톤급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아라빙호는 크다고 할 수 없지만 해양연구·음파탐지·지구물리탐지·관측 및 모니터링 장비 등 60여 종의 첨단 연구장비를 탑재해 세계 최고수준의 연구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시속 3노트로 1m 두께의 얼음을 연속하여 깨면서 나아갈 수 있다.
“다른 쇄빙선에서 볼 수 없는 유일한 시스템이 있다던데요?”
“DP시스템이라는 건데, 선교에서 조작하는 것으로 본선의 자랑거립니다.”
DP(Dynamic Position)는 배를 50㎝ 오차 내에서 지정 위치에 있게 하는 장치를 말한다. 연구를 위해 정확한 위치 설정이 자주 요구되기 때문이다.
“항진 중에 얼음이 깨지지 않으면 어떡합니까?”
자기 몸이 배라도 되는 듯 고득종은 얼굴을 앞으로 내미는 시늉을 했다.
하마터면 머리가 여성의 가슴에 닿을 뻔.
양외란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답변에 충실했다.
“선체 앞머리를 최대 5m 높이로 들어올려 얼음을 짓눌러 깰 수도 있고, 선체를 좌우로 흔들어 양옆의 얼음을 깰 수도 있지요.”
여성 항해사지만 얼음을 짓누른다는 표현을 쓸 때는 그녀의 체격이 스포츠 강사로 연상되어 현실감으로 다가왔다.
선체 앞머리 부분은 군함의 2배에 해당하는 두께 4㎝의 고강도 특수강으로 제작돼 영하 30℃에서 영상 50℃까지 견딜 수 있다. 그러므로 극지와 적도를 가리지 않고 전천후로 연구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
선수(船首)는 돌머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갈비뼈 같은 프레임이 촘촘히 설치되어 강한 구조를 형성한다.
“배가 두꺼운 얼음에 갇히면 어떻게 빠져 나옵니까?”
“배에는 100여톤의 물이 담긴 탱크 두 개가 배 좌우에 설치돼 있어서 배를 좌우 3.5도까지 흔들어 3분 내에 두께 1m의 얼음도 탈출할 수 있지요.”
선미의 주 추진장치 2기와 선수의 보조 추진장치 2기를 작동해 선체를 360도 회전시키는 것도 가능해 탈출에 도움을 준다. 선수 아래에 있는 10m 길이의 아이스나이프(Ice Knife)로 부딪쳐 쇄빙하며, 깨진 얼음덩어리가 다시 얼어붙지 않도록 후미의 프로펠러를 이용해 배 옆으로 밀어낸다.
“아라빙호는 고가에다 운항비가 많이 들 텐데 선주가 누굽니까?”
“한국해양연구원 소속 극지연구소예요. 예산 배정을 많이 받아야겠지요.”
“국민의 세금이 남극까지 미치는군요. 선원들도 세금을 많이 내시겠군요.”
“외항선원은 을종근로소득에 해당되니까 세금이 좀 적지요.”
그런 차이도 있구나.
한국은 1988년 남극 진출 20년 만에 쇄빙선을 갖게 된 것이다. 이전엔 다른 나라의 쇄빙선을 빌려 사용했다. 남극에 상설기지를 운용하고 있는 국가는 모두 20개 국으로 이 중 쇄빙선 보유국은 한국과 폴란드를 제외한 18개국이었다.
북극 탐험의 역사와 함께 탄생한 쇄빙선은 현재 미국과 러시아와 노르웨이 등에서 40여 척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북극 항로 개척과 북극해 자원개발, 해양환경 연구용 쇄빙선이며 10척 정도만 남극용 쇄빙선으로 쓰이고 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벽에 걸려 있는 배의 설계도면으로 향했다.
배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기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21억원짜리 음파측심기를 비롯한 최첨단 연구시설이 빼곡한 선상 1층 내부는 떠다니는 연구소다. 배 뒤쪽은 물과 관련된 습식연구실로, 배 앞쪽은 건식연구실로 꾸며졌다. 앉은 자리에서 해저지질, 해양, 생물, 대기, 지구물리 등 초정밀 연구가 가능하다.
“아라빙호는 항해 계획을 어떻게 세웁니까?”
“남극과 북극의 여름을 이용하니까 매년 10월에서 4월까지는 남극세종과학기지에 물자보급 및 연구항해를, 5월에서 6월까지는 인천 모항으로 들어와 정비 등을 하고, 다시 7월에서 8월까지는 북극 연구를 위해 출항했다가 9월에 다시 인천 모항으로 복귀하는 스케줄이 되지요.”
남극 진출
1986년 세계에서 33번째로 남극조약 가입
1988년 남극세종과학기지 건설
2010년 아라빙호 최초 남극 탐사
남극은 대륙과 빙붕을 합해 넓이가 1360만 km²다. 지구 육지면적의 약 9.2%로 유럽이나 호주대륙보다 넓다. 한반도 면적의 약 60배 규모다. 평균 2400m 두께의 빙상으로 덮여 있는 만년빙하 지역.
“추위 강도가 감이 잡히지 않은데 도대체 얼마나 춥습니까?”
“남극 최저기온이 1983년 7월 21일 영하 89.6도 기록이 있더라구요. 겨울 평균기온이 영하 60도라나요. 이 온도 이하로 내려가면 자연 섬유 즉, 솜이나 양털, 가죽 같은 것만 빼고는 작은 충격에도 부스러진다는 뜻이지요.”
고득종은 추위가 피부에 느껴진다는 듯 몸을 움츠리는 시늉을 한다.
“추위가 느껴지는데 따뜻한 커피 한 잔 부탁해도 되나요?”
능청이 고수가 된 그는 양외란을 쳐다보았다.
“이런 추위에 심부름시키는 거 실례 아닌가요.”
그러면서 양외란의 몸은 이미 주방 쪽으로 향했다. 커피 두 잔을 만들었다.
커피를 받아든 고득종은 온기를 되찾았다는 듯 농담을 하고 싶었다.
“양외란 씨, 이런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갑자기 이름을 부르고 그러시네.”
양외란은 기자의 숨은 질문이 우선 궁금했다.
“뭔데요, 고득종 씨?”
어느새 이름이 물물교환으로 호칭되기 시작했다.
그는 엉뚱했다.
“제주 삼성 간의 결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양외란은 제주 삼성(三姓)에 대한 유래를 들은 적이 있다.
“본관이 같은 제주도니까 당연히 안 되죠.”
“고지식하시군. 동성동본 8촌 이내만 금혼입니다. 양씨와 고씨는 동성이 아니잖아요.”
“하필 고-양을 예로 드시는 거예요?”
“이 자리에 둘밖에 더 있습니까? 그리고 여긴 8촌은 고사하고 사돈의 8촌도 없습니다.”
양외란이 남자 같은 여자라는 것이 고득종의 어깨에서 증명됐다.
“무슨 여자의 주먹이 이렇게!?”
양외란의 일격은 정도가 심했던가 보다.
이제 진지한 인터뷰를 하자는 데 두 사람은 동의했다.
“지금부터 실제 남극 탐사 항해 과정을 얘기해 주시지요. 아라빙호의 처녀항해 때는 삼항사로서 경험을 하셨다고 했는데 남극 탐사 대장정 이야기가 흥미진진할 것 같네요.”
“한 자리에선 지루하니까 장소를 옮기죠. 선교와 기관실, 갑판을 천천히 돌아다니면서 인터뷰하는 것은 어떠세요?”
“외란 씨의 아이디어가 좋네요.”
두 사람은 선박 구석구석, 밝고 어두운 곳을 불문하고 두루 돌아다니면서 선박 견학 겸 인터뷰를 진행해나갔다. 좁은 곳이 너무 많은 선박은 두 사람이 지나가기는 불편하고, 또 어둔 곳은 남녀가 함께 가기엔 부적절하다. 헬멧을 쓰긴 했으나 천정 프레임에 머리가 부딪힐 때는 눈에 번갯불이 지나가곤 했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인연이 위험한 외줄을 탈 때가 있다.
고득종이 그녀의 가장 예쁜 사진을 골라서 기사에 싣겠다고 하면서 사진 한 장을 달라고 부탁했다.
“기사 올린 다음 사진은 제가 보관해도 되지요?”
고득종의 갑작스런 제의에 양외란은 멈칫했다.
근데, 두 사람 왜 이러지?
드디어 처녀출항.
한국의 최초 쇄빙연구선 아라빙호
2009년 12월 18일 남극을 향해 인천항을 출항했다.
인천에서 탑승한 인원은 30명이다. 승조원 25명과 견습선원 2명, 그리고 극지연구소 해무담당 요원 3명이다. 20일 후 뉴질랜드에 배가 도착하면 한국에서 항공편으로 온 연구요원들이 합류할 것이다.
출항한 지 사흘째 한 선실에서 두 여성이 오미자차의 다섯 가지 맛을 즐기면서 저녁 담소를 나누고 있다. 두 여성은 장세빈과 양외란.
“외란아, 너 정말 해낼 수 있겠어?”
“언니는 제 스타일 잘 아시잖아요. 염려 접어세요. 분명히 해낼 수 있다니까.”
양외란은 S사에서 근무하는 중에 아라빙호의 삼항사로 선발됐다.
팔씨름해서 뽑힌 것이 아니다. 남성 항해사 못지않은 그녀의 담대함은 어릴 때부터 길러진 기질이다. 남성으로 태어났더라면 칭기스칸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S사의 김선봉 선장이 아라빙호의 첫 선장으로 공채 선발되자 그의 추천이 선발 평점에 도움이 된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다.
장세빈이 새까만 후배 양외란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보면 볼수록 담대함이 구릿빛으로 나타난다.
“그래, 나도 이 남성 세계에 끼어들어 고생깨나 할 것 같구나. 우리 힘내자.”
“홧팅!” 두 여자는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선실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이 들었다면 깜짝 놀랐을지도 모른다. 배에서는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정말 놀랄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아라빙호에는 최종적으로 네 명의 여성이 탑승하게 된다. 총 74명의 탑승자 중에 4명이라는 숫자는 주목거리가 아니지만 목적지가 남극 아닌가. 남자도 떨리고 두렵고 위험한 곳인데.
양외란과 장세빈은 함께 2인실을 사용한다. 국제해양대학교 선후배 관계로서.
배에는 1인실이 3개가 있다. 선장, 책임연구원 및 수석연구원 용이다. 나머지는 2인실과 4인실이다.
국제해양대학교의 첫 여성 입학생이었던 장세빈은 해기사 대신 연구원의 길을 택했다. 현재 한국해양연구원 부속 극지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쇄빙선에는 연구소의 해무 부책임자 자격으로 탔다.
“외란이 너 몇 살이지?”
“새삼스럽게 그걸 왜 물으세요, 언니?”
“니 나이를 알면 내 나이는 저절로 계산되니까.”
“스물다섯…… 언니 서른여섯. 이젠 됐어요?”
“열흘 후면 2010년이 되니까 한 살씩 더 보태야지.”
“언니와 저는 운명적인 관곈가 봐요. 그렇죠?”
“그렀군. 오선덕 선장님이 고리가 돼서 이렇게 운명적으로…….”
오 선장은 장세빈의 외삼촌이다. 오 선장은 또 양외란의 어머니 전계린 박사와 선주협회연구소에서 함께 연구활동을 한 인연이 있다.
“언니께서 해기사를 계속하셨더라면 제1호 여성 선장이 되었을 뻔했는데.”
“그거야 승선근무를 계속했을 경우지. 연구원이 돼 너와 함께 남극에 가니 난 행복해.”
둘은 서로 포옹했다.
가슴이 뜨거운 여성들.
배의 여정
인천 →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 러시아 쇄빙선 합류(남위 63도 부근 ) → 남극 케이프벅스 → 남극 테라노바베이 → 크라이스트처치 → 인천
총 항정 1만8000해리
일반적으로 남극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뉴질랜드를 통하는 것과 남미 루트를 통하는 것.
남극 세종기지로 들어가는 것처럼 특수한 목적의 경우는 뉴지를 통하고, 남극 크루즈의 경우라면 남미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 출발하곤 한다.
남미남단과 남극 사이는 불과 330해리밖에 되지 않으나 난폭한 바다 드레이크해협(Drake Passage)이 있어서 항해가 험난하다.
남극은 1961년 남극조약에 따라 남위 60도 이남은 누구나 남극대륙 안에서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국제적인 비군사지역이다. 그래서 여행에는 문제가 없다.
아라빙호는 뉴질랜드를 통해서 간다. 역사적인 첫 임무수행은 쇄빙능력 시험 및 남극 제2기지 후보지 탐사다.
인천 출항 후 비교적 평탄한 바다를 항해했다. 단지 뉴지 도착 이틀 전 5m가 넘는 파도와 큰 너울을 만났던 것이 유일한 악천후였다. 다행히 뒤에서 북서풍을 받아 경유지인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리틀턴(Lyttleton)항에 입항한 것은 2010년 1월 8일.
리틀턴은 크라이스트처치에게는 서울의 인천항에 해당하는 항구다.
“보급품 선적을 위해 나흘간 정박하는데 크라이스트처치 상륙이나 할까?”
입항수속을 마친 후 두 여성 후배를 위한 선장의 배려였다.
뉴지 남섬의 제1도시 크라이스트처치 시가지는 리틀턴 항구에서 2km의 터널을 통해 자동차길로 연결된다. 박물관 같은 데라도 갔다 올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해양스포츠를 좋아하는 양외란이 가보고 싶은 곳이 따로 있다.
“선장님, 요트장 구경 시켜주세요.”
화산분화구에 바닷물이 들어와 형성된 리틀턴항은 태평양의 험한 파도를 막아내는 데는 천혜의 항구다. 뒤를 길게 두른 가파른 언덕은 항구를 포근하게 감싸준다.
요트 정박지로서 장점이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
남반구의 태평양 항구는 지금 여름의 평온함을 자랑한다.
요트장에 도착하자 그들은 요트 한 대를 빌렸다. 요트 항해사는 해안을 감돌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오후 두 시간은 남극 얼음바다로 들어가기 전 아름다운 태평양에서 준비운동을 한 셈이다.
리틀턴항은 태평양쪽에서 남극으로 가는 전초기지답게 여러 배들이 수시로 기항한다. 필요한 보급·급유·급수를 하고 헬기 탑재와 참여인원 승선이 여기서 이뤄진다. 인근 부두에선 미국 남극 기지로 가는 선박에 기지요원들이 탑승하고 있다.
리틀턴항에서 남극요원 47명이 아라빙호에 탑승했다.
답사단 24명, 러시아 전문가 5명, 뉴질랜드 헬리콥터 조종사와 엔지니어 4명, 그리고 언론인 14명이 포함됐다. 이들 중에 여성 탑승객 두 명도 끼어 있다. 환경연구원과 방송기자.
요원들은 인원배치표에 따라 1인실, 2인실 및 4인실로 나뉘어 거주하게 된다.
뉴지에서 많은 인원이 탑승하자 배는 분주해졌다. 마치 다양한 사람들을 한 바구니에 담아놓은 종합세트 같다.
남극 제2기지 답사단 24명은 극지연구소를 비롯해 환경정책평가연구원, 건설연구원, 대학 관계자 및 외부 전문가들로 꾸려졌다. 이들의 임무는 빙하·해빙 조사, 기상조사, 대기환경 조사, 지질조사, 상수원 조사, 물자 하역·수송, 건설환경 조사, 안전지원 등 분야가 다양하다. 쇄빙능력시험과 관련해서는 러시아 측에서 쇄빙시험 전문가 4명과 유빙항해사 1명이 합류했다. 언론사에서는 신문·방송보도팀, 다큐팀 등 총 14명이 탑승했다.
“언젠가는 탑승정원 85명을 다 채우겠군.”
선내안전 업무를 담당하는 일항사로서는 인원 증가가 부담으로 느껴졌던지 삼항사 양외란에게 토로했다.
“남극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선 많은 전문가가 필요하니 말입니다. 장세빈 언니가 해양 연구로 진로를 바꾼 건 잘하신 것 같아요.”
“장세빈 선배님에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지.”
일항사는 양외란의 6년 선배다. 그러니 장세빈은 일항사의 5년 선배가 된다.
쇄빙연구선이라는 특성상 항해·기관·조리 등 일반적인 승조원 외에도 전기·전자·유빙항해사(Ice Pilot) 및 해빙분석원이 배치된 게 일반 선박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특히 처녀항해인 만큼 극지연구소 쇄빙선 연구팀, 쇄빙능력시험 용역사, 대륙기지 답사단, 조선소 기술자 및 감리사의 활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10년 1월 12일
리틀턴항을 출항한 아라빙호는 남극으로 가고 있다. 남위 60도까지는 동경 172°38'을 따라 1000해리 정도 정남향해서 내려가면 된다.
남위 60도는 의미 있는 지점이다. 남극해의 기점이요, 인터넷이 두절되고 유빙화면을 받아보아야 하는 곳.
남극으로 향하고 있으니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하다.
“선원이 아닌 탑승객은 선내생활이 미숙하니까 안내를 잘할 필요가 있어요.”
김선봉 선장은 탑승객이 염려돼 최극진 일항사에게 지시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방송국 여기자가 궁금반 불안반으로 일항사에게 다가갔다.
“해난 중 구명정에 파도가 덮치면 어떡하죠?”
일항사는 선교에서 내려다보이는 구명정을 가리켰다.
“저기 보세요. 캡슐식 구명정 2대가 있습니다. 밀폐돼 있어 파도에도 안전합니다. 또 잘 뒤집히지도 않고요. 훈련만 잘 받아두시면 됩니다.”
리틀턴을 출항한 다음날 비상 퇴선 훈련을 했다. 탑승객 전원이 훈련에 잘 임해줬다. 캡슐식은 물론, 개방식 구명정과 구명벌, 구명복 등 모든 구명장비에 관한 사용 설명이 주어졌다. 안전교육 및 비상탈출 훈련은 선원법이 요구하는 필수 사항이다.
“구명정에는 일인당 사흘간 생존에 필요한 비상식량·약품·기름·낚시 등 보급품과 조난신호 장비가 들어 있습니다. 사전에 확인이 필요합니다.”
일항사의 설명에 대해 “그럼 조난 사흘 후면 구조되든지 굶든지 해야 된다는 뜻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러시아인들의 대화는 독특한 발음 때문에 때때로 싸움판을 연상시킨다.
“얼음을 정복하지 않고는 세계를 정복할 수 없습니다.”
얼음전문가를 자처하면서 다섯 명의 러시아인은 거드름을 피웠다. 지구온난화로 북극항로가 현실화돼가는 마당에 장래 북극항로 행행 선박에는 러시아 유빙항해사의 탑승이 필수라는 것을 강조했다. 북한보다 남한과 더 가깝게 된 지금이 흥미롭다고 스탈린 시대 사람이 감회를 피력하기도.
뉴지를 출항한 후 사흘이 되자 남극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배의 요동이 점차 심해지면서 여기저기서 배 멀미를 호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울렁증을 참지 못해 침실을 빠져나오는 사람이 늘어났다.
네 명의 여성이 유난히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멀미를 어떻게 이기느냐가 궁금해서다.
악천후에도 배멀미를 하지 않는 해기사 출신 여성 두 명이 화젯거리가 됐다. 생김새까지 마도로스 기질을 타고 났다니, 늘씬한 키는 배에서 필요한 체격이냐니 시비하면서.
“별종 여성들이군.”
해기사 출신 여성을 부러워하는 커리어우먼들의 코멘트다.
그들은 환경연구원과 국영방송의 과학전문기자.
배가 마구 흔들리는데도 멀쩡하기만 한 여성 해기사들이 강철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커리어우먼들은 높은 파도에 전혀 경험이 없다.
바람을 쐬면 나아지려나.
양외란은 그들 가까이 다가가 살짝 말했다.
“승선 6개월만 되면 멀미는 아듀 해요.”
아쉬운 것은 익숙하기 전에 그들이 하선한다는 점이다.
얼굴이 구겨진 백지장처럼 되어도 부끄럼이 사라져버렸다. 아라빙호에는 발에 채는 것이 남성인데 멀미로 부스스한 얼굴이 노출돼도 민망할 게 없다는 지경이 돼버렸다.
침대를 벗삼아 지낸 지 오래다.
“아이 가질 때도 입덧 한번 안했는데…….”
자신은 멀미할 체질이 아닌데, 하면서 여성 연구원은 뱃사람들이 월급 많이 받을 자격 있다고 존경심을 보였다.
출항 후 일주일이 지날 무렵 바다는 안정되기 시작했다.
뱃멀미도 수그러들었다.
양외란은 선실 점검 중에 장세빈과 마주쳤다.
“배가 인간백화점 같아 심심하진 않네요. 언니는 예뻐서 인기가 좋은 거 같아요.”
“뚱딴지같긴……. 아이가 둘인데 누가 여자로 보겠어.”
“그래도 바탕이 있잖아요. 학교 땐 인기 좋았었다면서요.”
“외란, 니야말로 인기 욱천이야. 미혼에다 피부 탱탱하지…….”
“남극 눈세계에 갔다오면 피부가 좀 하얘지려나.”
“넌 이대로가 좋아. 완전 무공해 남극 처녀로 주가가 고공 상승할 거야.”
“주가 떨어지기 전에 남자친구 좀?”
“얼음 두께 재듯 남자 속은 내가 잘 재니까 좋은 신랑감 알아보마.”
뜸을 들이고
“근데 대원들 중에 총각도 있잖아. 40일 동안 잘해봐.”
장세빈은 후배를 마구 흔들어댔다.
배에는 가만히 있어도 흔들리는데.
남극과 북극은 양극에 위치한 거대한 청정환경 공간으로 기권·지권·수권·생물권·빙권의 환경 시스템을 모두 갖추고 있는 하나의 소지구적 영역이다. 모든 과학 분야의 천연실험장 역할을 한다. 현재 선진 19개국이 37개 남극권 상주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은 1988년 남극반도 킹조지섬에 세종과학기지를 세워 운영 중이다.
뉴지에서 남극 왕복 거리는 6000해리 정도로 인천에서 뉴지까지의 편도 거리와 같다. 그러나 남극 탐사 기간 20일 가량이 포함되므로 뉴지로 돌아오기까지는 40여일이 걸릴 것이다.
선상에서 바라본 남반구 태평양은 수평선과 맞닿은 온통 검푸른 망망대해다.
비바람 속에 가끔씩 갈매기 떼와 돌고래들이 외로운 처녀항해를 호위하곤 한다.
파고 10m가 선수에 자주 부딪친다.
장세빈은 양외란에게 다짐을 줬다.
“우리 배로 남극에 가기는 처음이라 험난한 대장정을 각오해야 돼.”
“언니는 가족들 걱정되지 않아요?”
“사돈 남 말하고 있네. 엄마가 외동딸 걱정 많이 하시겠군.”
“쬐금요. 아마도.”
“엄마가 딸을 대장부로 키운 보람이 있군.”
팔뚝을 들이미는 양외란.
이를 능청스럽게 만져보는 장세빈.
둘 다 물개 멍청이 같다.
“언니, 얘들한테 선물은?”
“얼음대륙에 백화점이 있냐? 선물 사게.”
“그러네요. 얼음덩어리밖에. 뉴지에서 지구본 잘 사셨네요. 얘들 좋아하겠어요.”
“남극에 대한 개념이 없을 테니 손으로 만져보게 해야지.”
“아들 둘을 피어리와 아문센으로 키우세요.”
괜히 얘들 얘기를 꺼내 장세빈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유빙해역이 가까워지는데도 남위 63도 부근 해역에서 랑데부하기로 했던 러시아 쇄빙선 아카데믹 페도로프(Academic Fedorov)호의 도착은 자꾸 늦어진다. 하는 수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러시아선과 빨리 상봉하기 위해 더 남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렇다고 항해속력을 무리하게 높일 순 없다. 아라빙호의 최고속도는 16노트이지만 경제속도는 12노트이다. 경제속도에서 하루 평균 연료 21톤을 소비하는데 여기에 3노트만 올려도 연료는 두 배 가까이 소모된다. 극한 상황을 고려해서 연료는 절약해야 한다.
결국 아라빙호는 뉴지 출항 10일 만인 1월 22일 쇄빙선 페도로프호와 랑데부했다.
위치는 남위 70도 서경 140도 부근.
예정 상봉위치보다 420해리 남쪽이고 또 더 동쪽이다.
불필요한 하루 대기가 신경을 더 건드렸다.
“밉지만 어떡허겠니. 우리가 배워야 하는 입장이니까.”
선장은 늦장 랑데부에 잔뜩 화가 나 있는 일항사를 달랬다.
러시아선도 기상 악화로 자국 기지 보급품 전달이 5일이나 늦어졌다. 극지 항해에서 이해 못할 일은 아니지만.
안전한 거리를 두고 랑데부한 후 페도로프호에서 호출이 왔다.
“유빙 항해사를 태워갈 헬기를 보내주세요.”
얼음정보를 분석·제공하는 유빙항해사((Ice Navigator) 한 명이 아라빙호가 보낸 헬기를 타고 왔다. 쇄빙 경험이 전무한 한국 쇄빙선에 추가 유빙항해사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러시아선과 동행 항해하면서 쇄빙능력시험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받게 된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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