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장난치는 자들

원자력(제14회)

오선닥 2017. 9. 3. 15:18

탈원전이냐 반대냐
정답은 없다
상황이 말해줄 것이다





제14회



원자력


2020년 가을 문턱은 선선하다.
여름 내내 열대야로 고생한 끝이라 코스모스만 보아도 기분이 맑아온다.


3년전 새롭게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대놓고 탈원전 기조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수명연장을 해오던 고리원전 1호기는 연장이 끝나자 곧바로 영구 정지됐다.


“10년 재연장을 위해 고가의 부속품을 갈아 끼웠는데?”
“누가 갈아 끼우랬어? 니들 맘대로 해놓고.”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과 청와대는 티격태격했었다.


다행히 -한수원 입장에서- 25% 공정률을 보이고 있던 새울5‧6호기는 공론조사를 통한 사회적 합의로 공사를 재개했다. 설계 단계에 있던 신한울3‧4호기는 취소됐지만.


이로써 2020년 한국 원전 수는
(1) 고리(부산) 3기 (2) 새울(울산) 4기(+2기 건설중), (3) 한빛(영광) 6기 (4) 월성(경주) 6기, (5)한울(울진) 6기  총 25기(+2기 건설중)


2030년이 되면 원전 비중은 20%로 내려간다. 그때까지 폐쇄되는 원전은 12기이지만, 이번 정부 동안에는 2기(고리1호‧월성1호)가 폐쇄된다.


한국 원자로의 변천
가압경수로 → 가압중수로 → KSNP(OPR1000) → KNGR(APR1400)


1978년 고리에 가압경수로형, 1983년 월성에 가압중수로형, 90년대 초 울진에 한국표준원전(KSNP)을 만들고, 2012 이후 건설하는 원전들은 대부분 한국차세대원자로(KNGR)이다. UAE에 수출한 기종도 이 노형이다.


원전에 대한 시각은 두 줄기가 있다.
환경단체의 탈원전 정책과 주민들의 탈원전 반대정책,


2020년 현재도 같은 장소 또는 다른 장소에서 두 주장의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만료 원전의 해체 정책으로 나아가자 차세대 원전 개발이 중단될 전망이다. 역대 정부 에너지 정책의 연속성이 끊기는 것은 물론 4세대 원전의 대표적인 소듐냉각고속로, 초고온가스로, 파이로프로세싱 등의 연구가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


탈원전 논리는 이렇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핵폐기물 처리나 원전 폐로 비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사고 위험과 사회적 갈등 비용까지 포함하면 원전은 결코 값싼 발전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전 해체비용은 1조원이 들 수 있고, 후쿠시마 원전의 수습비용은 700조원 추정하는 마당에.
 
탈원전 반대 논리도 만만치 않다.


유가가 상상을 초월하는 상황에서는 원전을 포기할 수 없다. 원전을 포기하고 다른 발전, 소위 친환경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은 오히려 환경이 파괴된다. 태양열이나 풍력은 가성비가 끔찍하게 떨어져서 대규모 발전에는 부적합하다. 많은 저명한 기후학자들도 지구 온난화보다는 진전된 기술로 원전의 위험성이 오히려 낮다고 주장한다.


미래 에너지 기술은 아직 멀다.


친환경에너지는 아니지만 핵융합발전이나 수소가스 기술이 가능하다면 에너지 문제가 단방에 해결된다. 핵융합은 태양의 불타는 원리에서 착안한 것이다. 태양 중심에서 수소의 핵융합 반응으로 엄청난 열과 에너지를 쉼 없이 내뿜는다. 원료인 중수소는 바닷물에서 얻을 수 있고 삼중수소는 인공적으로 만들면 된다.




원전에 대한 찬반 여론이 팽팽하자 지태풍은 녹색미래의 태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겠다는 뜻에서 우선 원자력발전소를 탐방하기로 했다.
 
「원전따라 길따라 문화탐방」
 
제목을 정하고, 단체 탐방자를 모집했다.
올레길이나 둘레길도 아니고, 원전 따라 문화탐방이라니?


그래도 그는 이 플래카드를 버스 앞에 달기로 했다. 원전을 단순히 폐기 대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전력문화라는 관점에서 객관적 평가가 필요했다.


목적지는 영광에 있는 ‘한빛원자력발전소.
이미 발전소와는 연락을 취했다. 버스 1대에 탐방자 35명.
 
간단한 간식과 음료가 차에 실리고 예정대로 7시 30분 버스는 서울을 출발했다.
하늘에는 흰 뭉게구름, 길가에는 분홍빛 코스모스.
 
“오늘 영광원전 문화탐방에 참여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1박2일의 탐방을 환영하며 안내를 드리겠습니다.”
 
안내자는 영광원전의 홍보실 여직원 박보라.
홍보실에는 예쁜 아가씨들만 있나?
코스모스 무늬가 새겨진 원피스를 입은 안내자를 향한 탐방객들의 한결 같은 찬사다.
 
문화탐방이라는 용어에 거부감은 없을까. 아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인간 활동은 문화의 고려 없이는 소통하기가 어렵다. 원전의 경우 발전소를 중심으로 주민의 생활, 환경, 교육, 편의시설 등이 문화와 연관된다. 문화와의 접목이 없으면 원전 건설은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제1조가 표명하는 권위는 지고하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제2조가 가세하면 님비(NIMBY) 시설은 주민의 동의가 없으면 터 잡기조차 어렵다.
 
방사성폐기물처리장 건설에 부안군이 결사 항전하는 바람에 경주가 새치기로 낚아채 3,000억원의 지원금을 따먹은 걸 보면 님비를 역이용한 재주꾼도 있다.


정부 정책은 가동 원전은 1차 수명 후 폐쇄하는 것이 원칙이다. 신울 5‧6호기는 공론화 끝에 건설을 계속하기로 했는데, 사업비 8조원 중 1.5조원을 이미 쓴 것이 참작된 것 같다.


탈핵으로 가는 데 독일, 스위스, 스웨덴은 국민투표나 공론화 과정을 거쳤다. 대만은 선거 공략이었다.




시민사회단체가 원전을 방문하는 진정한 목적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규정에 따라 엄격하게 설계되고, 또 안전수칙에 의거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는가를 감시‧비판하는 것이 시민단체의 몫이다.
 
원전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다. 국가 주요 기간시설이라 감시를 위한 접근도 쉽지 않다. 원전 부품 조달의 비리가 생기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시설 접근 제한성과 극도의 전문성 탓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믿어도 되지 않나?


원자력계를 견제, 규제하고 단속해준다면 국민은 원안위 판단에 의지할 수 있다. 소모적 논란을 피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런데 원전비리를 들춰보니 원안위가 사업자 측을 대변하는 구도였다.
 
“원전은 궁극적으로 폐기돼야 합니다.”
 
원자력문화재단에서 파견한 교수의 탐방버스 강의 중에 지태풍이 손을 들고 말했다. 탐방단체 인솔자로서 또 환경운동가로서 한마디 한 것이다.


같은 좌석에서 엉덩이를 함께 붙이고 있던 안내자 박보라가 지태풍의 갑작스런 발언에 움칫했다. 교수는 어떻게 대꾸할까 약간 신경 쓰는 것 같다.
 
“대체에너지가 충분할 때까지 원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교수는 서두를 꺼내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만약 원전을 중단하면 전력공급 부족과 전기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오죽하면 일본이 원전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가 재가동했겠는가. 원전 중단은 화석연료 발전소를 증가시켜 탄소배출권을 구입해야 하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원전 수출은 한국의 효자 수출 상품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도 원전 포기를 쉽게 할 수 없게 한다.
 
“원전은 환경문제가 아니라 건강과 안전의 문젭니다. 1979년 스리마일아일랜드와 1986년 체르노빌,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경험했잖습니까.”
 
이번에는 끔찍한 사고의 예를 들며 지태풍이 대응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세계 원전 440기 중 미국 104기, 프랑스 58기, 일본 54기, 러시아 32기, 한국 21기, 중국 13기였으나 2020년 판도가 많이 달라졌다. 중국, 인도, 러시아가 계속 건설 중이어서 독일과 일본이 대대적으로 폐로를 함에도 전체 숫자는 비슷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한국 원전의 안전성이 최고라는 평가다. 격납용기 크기가 5배나 되고 벽의 두께가 120cm나 돼 수소폭발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1979년 미국의 TMI 원전사고 시 내부 수소폭발이 일어났으나 격납건물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전기가 끊어져도 수소제거 설비가 돼 있어 일본 원전의 폭발과 같은 사고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원전 증가가 편서풍을 고려할 때 한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한국의 원전은 총전력소비량 7500만KW의 30%를 차지한다. 여름철 전력 예비율은 5% 정도다.
 
원자력 전문 교수의 주장은 지태풍의 의견에 대해 감정을 드러낸다.
 
“사람들이 대체에너지를 자꾸 주장하는데, 대체에너지가 아니라 보조에너지라고 해야 합니다. 신재생에너지는 가동률이 낮아 대체가 될 수 없으므로 원전이 주축이 돼야 합니다.”
 
이제 교수는 직업관과 국가관을 보태어 열강을 이어갔다.
 
“한국이 천연자원이 있습니까, 땅덩어리가 넓습니까? 원전 없으면 하루도 못 견딥니다.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최초 한국표준형원전 울진 3호기(1998)



탈원전을 가로막는 첩첩장벽이 있다. 태양광과 풍력은 땅 잡아먹는 하마다. 태양광 발전은 봄이 제일 좋은데 전력소비 피크인 여름과 겨울에 효율이 떨어진다. 한국처럼 인구밀도가 높고 산지가 많은 곳에서는 용지 확보가 쉽지 않다.


“중동 사막의 나라는 태양광발전을 위한 천혜의 땅이 될까요?”


한 여성 탐방객이 질문하자 교수의 대답은 의외였다.


“태양광 모듈은 섭씨 25도를 넘기면 온도가 올라갈수록 발전효율이 떨어집니다. 여기에 모래폭풍이 자주 불면 패널을 망가뜨리고요. 겨울철 밤 전력공급은 아예 불가능하고요.”


태양에너지는 현재로선 고비용 저효율의 대명사다. 같은 양의 전기를 만든다고 치면, 효율은 석탄이 4배, 풍력이 2배 더 좋다. 게다가 밤에 불가능하고 날씨에도 영향을 받는다. 태양광 가동률은 12%로 주요 에너지원 가운데 가장 낮다.


“한국은 여러모로 불리합니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여름에도 비 오고 흐린 날씨가 많고 인구밀도가 극히 높으니까요.”


교수의 이어지는 대답에 여성은 또 질문한다.


“우주 기반 태양력이 진짜 상용화되면 그것만큼 좋은 대체에너지는 없겠죠?”


“날씨 영향 안 받고 태양에너지를 직통으로 받을 수 있는데다가, 우주의 크기는 무한대, 면적당 생산 에너지는 지상의 10배, 매력 있어 보이죠?”


“네, 그래 보입니다.”


“우주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전지판의 빠른 부식, 우주 쓰레기, 전송 시 주파수 분리, 지구온난화의 위험, 자재 운반과 운영 관리의 문제 등이 따릅니다.”


여성은 이제 한숨까지 쉰다. 궁금증을 끝까지 풀려는 듯 계속 질문한다.


“전력은 어떻게 수집하죠?”


“초단파 파동을 이용해 무선으로 끌어옵니다. 전송 시는 다른 위성들과 기지의 주파수를 격리시켜야 하고요.”
 
우주 태양전지판은 고에너지 입자 폭격을 받기 때문에 10배나 부식 속도가 빨라서 연간 약 2%씩 효율이 저하된다. 때문에 인공위성에 설치하는 태양전지는 25% 정도 더 많이 설치한다. 인공위성의 수명을 10~15년 정도로 보고 설계한다.


우주쓰레기 문제가 있다. 이미 지구 저궤도 중1000km, 1500km 구간은 임계밀도를 돌파한 상태로 보고 있다. 자재의 단가와 건설 및 유지비가 10배는 들 것이다.


그러나 입지가 좋거나 기존의 전력 방식이 힘든 지역에서 태양광 에너지가 분명히 써먹을 구석이 있고, 반드시 붙잡고 가야 할 에너지이다.


풍력은 입지조건만 맞으면 무한에 가까운 무료 무해 자원이다. 지면을 차지하는 면적이 적어서 발전, 송전설비를 갖추기 힘든 산간, 섬에도 갖출 수가 있다(저용량이지만).


“남한 땅 전체를 풍차로 도배해도 전력 공급량이 달립니다. 원자력을 대체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죠.”


교수는 보충 설명해 나갔다.
바람이란 24시간 꾸준히 부는 것이 아니고 바람의 세기도 다르니 공급이 불안정하다. 또 수십 미터의 날개 때문에 도시 근처가 아닌 산지에 짓다 보니 산림 파괴라는 환경파괴로 이어진다. 그리고 소음이 많다.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사는 주민들이 못 견딜 정도다.


그렇지만 최근 각광받고 있는 해양 풍력의 경우 많은 단점이 해결된다. 육상보다 훨씬 양질의 강한 바람이 꾸준하게 불고 날개 크기가 100미터가량 되는 커다란 발전기를 설치할 수 있다. 소음문제도 자유로운 편이다. 단점으론 육상과 거리가 있는 만큼 전력송전에 손실이 발생하고 건설비가 많이 든다. 소음과 발전기 하부지지대가 해양생태계에 악영향을 준다는 견해도 있다.


다른 신재생에너지 즉, 화력, 수력, 조력, 지열 등이 있지만 나름의 한계가 있다.


수력과 조력은 댐을 건설하거나 갯벌을 메울 때 2차 탄소배출이 된다. 그래서 청정이란 표현을 쓰기가 부끄럽다. 원자력 때우려고 갯벌을 덮고 댐을 도배할 수는 없다.


현재 대한민국 전기는 화력발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체 발전 설비용량의 70%를 차지한다. 한번 가동하면 점검 때까지 켜두는 원자력에 비해 출력조절이 가장 쉽기 때문에 거의 모든 나라의 발전의 근간은 화력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심심하던 차에 교수는 퀴즈 문제를 낸다.


“원전에 가장 크게 의존하는 나라는?”
“프랑스.”
“순전히 수력과 지열에 의존하는 나라도 있다는데?”
“아이슬란드.”


석탄 발전의 가장 큰 단점은 탄소배출이다.
뿌린 탄소를 다시 잡아오면 되잖나?
실망스럽게도 아직은 포집 계획이 실패했다.


지열은 열이 분출되는 몇몇 지점에만 가능하다는 약점이 있다. 지하 4천~5천 미터를 시추해 지열에너지 저장 공간을 만든 뒤 물을 흘려보내 만들어진 증기로 발전한다. 이 방식은 전 세계 50%에서 가능하다.


“독일이 원전을 2022년까지 폐기할 거라는데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에 앞장서면 몇 년 후 우리가 그 열매를 따먹으면 되지 않습니까?”


지태풍의 생각은 이처럼 간혹 지름길로 간다.


“궁극적으로 지열,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려야 하겠지요.”


우연인지 모르지만 교수는 지태풍의 이름자 순서대로 나열했다.
혹시 의도적?




원자력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가장 큰 논거는 무엇보다도 연료비가 싸다는 것이다. 즉, 경제성이다. 아쉽게도 사후연료관리나 해체비용 등이 원전 신화를 깨려 한다.


원자력이 관리가 까다롭다고 하나 인간의 힘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지만, 화석연료로 인한 기상이변은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에는 할 말이 없다.


“인구 70억 시점에서 막대한 에너지 소모량을 줄일 수 없다면 원전은 필요악이 아닌가요?”

나이 지긋한 분의 의견에 공감하는 청중이 많았다.


“핵융합 발전까지 기다리면 안 될까요?”

한 젊은이의 의견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세계는 원전을 중지해야 한다는 압력은 커지고 있다. 한국은 지형상 태양광이나 수력은 부적이나 해상풍력은 서해안과 제주에 도배해서 신재생에너지 발전의 5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외국의 사례를 살피는 것도 의의가 있겠지요.”


그의 설명은 시작된다.
프랑스는 국가 전력의 80% 이상이 원전이라 이를 닫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대체 에너지에 투자한다는 기사도 있다.


독일은 부하 조절이 불가능한 신재생 에너지 특성 때문에 풍력과 태양광 발전량이 많을 때는 전력망을 통해 수출하지만, 전력망의 최소 전력량을 유지하는 기저전력은 프랑스에서 수입한 원자력에 의존한다.


영국에서는 친환경 정책과 함께 연착륙을 위한 원자력을 주장하여 반핵론자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한국은 이웃나라에서 직접 전기를 수입할 수 없는 사실상의 섬나라지요. 다른 사례가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지요.”


교수의 뜻은 한국은 독창적 방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 믹스는 안전과 환경, 경제성이 종합적으로 최적화돼야 한다. 한국의 전력소비는 GDP 비교 일본의 3배, 가격은 50% 저렴하다. 일본의 정밀공장이 한국으로 이전하는 이유가 전력의 안정적 공급이다.


탈원전 정책은 60년에 걸쳐 가동되고 있는 원전의 수명이 완료되는 대로 하나씩 문을 닫는다. 천천히 추진될 것이다. 그 동안 LNG나 신재생에너지 등 대체에너지원을 마련한다. 에너지 부족이나 전기료 상승을 동반하겠지만, 그건 마땅히 감수해야 할 요소라는 것이다.


2020년 신재생에너지 생산현황은 아이슬란드가 85%로 1위를 차지했고 노르웨이 50%, 뉴질랜드 45%, 독일 35% 순이다. 세계 평균은 25%이다.
그럼 한국은? 10% 수준. 아직도 원자력이 에너지의 30%를 유지한다.
 
교수의 40분 강의가 끝나고 차 안은 잠시 휴식에 들어갔다.




지태풍이 옆에 앉은 안내자 박보라와 대화하려는데 이단아한테서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지금 어디?’
‘버스 안.’
‘그게 아니고 어디쯤?’
‘새만금 쪽으로 가고 있어. 거기서 점심할 거야.’
‘버스 타기 지루하지 않고?’
‘약간 그렇긴 하지만 괜찮아.’
예쁜 아가씨와 엉덩이를 맞붙이고 타고 간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지.
‘원전 자료 많이 받아 와요.’
‘당근.’

싱거운 대화. 다른 여자와 같이 있는 게 CCTV에 찍히기라도 했나.


문자 메시지를 중단하고 안내자 박보라와 대화를 나누는 지태풍.


“원전을 어떻게 홍보하시나요? 궁금해요.”


“원전의 정의부터 시작해서 원전의 원리, 원전의 필요성, 원전의 전망 등에 관한 겁니다. 질문이 있으면 아는 데까지 말씀드리고요. 오늘은 교수님이 계셔서…….”


박보라 자신의 역할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도 된다.
대신 지태풍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졌다.


“전공이 뭐였는데 이런 홍보 활동을 하십니까?”


“원래 화학 전공이었는데 입사하여 원전을 조금 공부했어요.”


무릎이 너무 많이 드러난다고 여겼던지 그녀는 원피스 자락을 약간 끌어내렸다.
진즉이 그럴 것이지.
지태풍의 시선이 조금 편해졌다.


“원자력은 원자핵의 반응을 이용하여 만드는 에너지로, 제 3의 불이라고도 합니다.”


그녀는 설명을 시작한다.
발전소의 원리는 모두 비슷한데, 동력으로 터빈을 돌리면 터빈에 연결되어 있는 발전기가 돌아가면서 전기를 만들어내는 원리다. 이때 동력이 수력이냐 화력이냐 원자력이냐의 차이다.
 
원자로는 핵분열 연쇄반응이 서서히 일어나서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를 안전하게 뽑아 쓸 수 있도록 중성자와 핵분열 속도를 조절해 준다. 중성자의 속도를 늦춰주는 감속재로는 중수(重水)와 경수(輕水) 등의 물을 사용하며, 제어 기능은 원자로 속에 설치된 제어봉이 담당한다.


“원자력을 만드는 방법은 핵분열과 핵융합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지태풍의 질문이었다.


“현재 원자력발전에 통용되는 것은 핵분열을 이용한 것이죠. 핵융합은 미래의 기술로 봐야죠.”


원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로 처음 군사적 목적이 발전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원자력의 가장 큰 장점은 적은 연료 소모로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환경오염이 적은 편이고 전기 생산 비용절감에 큰 도움이 된다.


“원전의 경제성이 설명되나요?” 그가 물었다.


“원전은 편익과 위험을 비교하기는 무리이고, 편익만 따지자면 원전은 효자 에너지죠.”


온실가스 배출은 석탄의 1/100이고, 전력단가는 원전을 1로 할 때 석탄 2, 수력 3, LNG 4라는 게 한국전력의 주장이다.
 
그런데 원전의 발전 단가가 결코 싸지 않다는 점이다. 때문에 원전의 극복 과제는 오히려 안전성이 아닌 비용이라고 주장한다. 생각만큼 경제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원전 가격 = 건설비 + 방폐물처리비 + 사용후연료관리비 + 해체비


실제로 정확히 산출 가능한 것은 건설비와 방폐물처리비 정도이고 수백세기 이상 사용후연료관리비와 폐로(廢爐) 비용, 지역주민 갈등 비용, 홍보비 등을 반영하면 적은 비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태풍은 사고를 상기시킴으로 원전의 퇴출을 강조하고 싶어진다.


“사고 났을 경우를 상상해보셨나요?”


“스리마일아일랜드, 체르노빌, 후쿠시마 대참사를 상기함이 좋겠네요.”


“사고 원인은 달랐지요?” 지태풍이 물었다.


“스리마일아일랜드는 노심이 녹아서, 체르노빌은 핵연쇄반응을 통제하지 못해서, 후쿠시마는 노심용융과 수소폭발 및 해일로 인해 고스란히 당한 겁니다.”


박보라는 원전 홍보 직원답게 비교적 많이 알고 있었다.

지태풍은 시민단체 사무총장답게 인명피해에 관해서는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사망자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소련은 30명 이상의 소방관과 원전 근무자가 사망하고 수만 명에 이르는 암환자가 발생했으며 10년 동안 주변에 풀이 자라지 않았다. 일본은 해일로 인한 원전 사망자는 직간접으로 2만 명에 이르고 회복하려면 40년은 더 걸린다.


“그렇게 상세하게 알고 계시나요. 놀랍습니다. 사무총장님.”


“사고에 관해서만 그래요. 원자력은 끔찍해요.”


“원자로 수명 연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번엔 박보라가 물었다.


“부품은 교체한다 해도 핵심부품인 원자로 격납용기 등은 교체할 수 없으므로 사용 연장은 위험하다고 봅니다.”


고리와 월성 원자력 발전소 20km 이내에 부산과 울산 인구만 합쳐도 500만에 육박한다. 좁은 땅덩어리 특성상 소련처럼 강제이주도 할 수 없다.


▲후쿠시마원전 사고



“또 한 가지 위협 요소가 있습니다.” 지태풍이 관심을 보였다.


“뭔데요?” 박보라의 눈동자가 커졌다.


“원전비리.”


“대한민국에 유능한 검사가 있는데, 비리를 이 잡듯이 파헤치면 되잖아요.”


“원전 마피아…… 들어보셨죠? 원자력업계의 윤리의식 부재가 뿌리 깊어요. 그들끼리 비리를 주고받고 하니까요.”


주요 부품의 안정성 검사결과가 위조되어, 부적합 판정을 받은 부품이 신고리와 신월성 원전 단지 건설에 사용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동일 검증기관이 내진 설계 검증까지 맡았다니 생선을 고양이 앞에 놓아둔 격이다.


으악!


문제의 제어 케이블은 방사능 유출을 막는 장비다. 다른 부서에 뿌리까지 부패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원자력계의 비리의 추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아 그녀는 일부러 주제를 바꾼다.


“원자력발전소를 없애면 비상시 핵무기 제조는 어떻게 하죠?”


그녀가 질문하고 대답한다.

우라늄은 원전용과 핵무기용의 농축 비율과 생산과정이 전부 달라 원전을 핵무기 대량생산의 기지로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플루토늄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원소로서, 원자로 내부의 U-238이 반응하여 Pu-239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핵연료 재처리를 끊임없이 경계하는 이유기도 하다.


“IS집단이나 북한 같은 막장집단이 핵을 가지면 재앙을 맞을지 모르겠네요.”


말해 놓고 지태풍은 땀이 나는지 손을 비볐다.


“21세기 최악의 환경오염은 다 쓰고 남은 핵폐기물이에요.” 박보라는 말했다.


고준위방사선폐기물이다. 방사능 차폐 시설에 보관하지마는 본질적인 처리라기보다는 그저 보관 수준이다. 언젠가는 포화상태에 다다르게 되어 무책임하게 심해 바다 한 가운데 버려진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방사성 폐기물이 현재 30만 톤.


신재생 에너지가 개발되지 않으면 이 수치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방사능 폐기물 안의 세슘은 30년의 반감기를 가지고 플루토늄은 무려 24,000년의 반감기를 가진다. 안전한 수준까지는 무려 10만 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다. 핵폐기물 보관 기간을 줄일 기술 자체는 있으나 아직은 실험단계이며 효율성의 문제도 제기된다.


“경주 방사성물폐기처리장이 있잖습니까?” 지태풍이 물었다.


“지하 130m에 있는 이 시설은 발전소 보호구 등의 저준위 폐기물 처분용이고, 고준위 폐기물 처분 시설은 2050년대 초반까지 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게 문제죠.”


“아무래도 원전을 폐기하는 쪽으로 연구가 진행돼야 하겠습니다.”


어느덧 버스는 새만금에 도착했다.
점심을 마친 후 전망대에 올라가 34km 방조제와 서울의 2/3 넓이인 매립지를 내려다보니 천지개벽의 수준이다.




탐방 일행은 오후에 영광원전 홍보실에 도착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의 홍보가 없을 수 없다..
안내자 박보라가 설명했다.


한수원은 180조원의 자산규모를 갖춘 굴지의 기업이다. 매출액은 60조원. 포스코와 맞먹는 규모다. 원전 25기 운전 중에 있으며, UAE에도 4기를 수주했다. 네팔에 수력발전소를 수주한 바 있다. 원전 운전기술은 한국이 1위다. 한국 원전역사 40년간 무사고는 이를 증명한다. 90%의 원전이용율은 세계 평균 80%를 훨씬 상회한다.
 
영광원전에 도착했을 때 원전 6호기는 정비 중에 있었다. 바깥 창을 통해 6호기의 정비 과정을 지켜보았다. 원전 내 제어봉 구동장치와 관련된 전원공급장치를 체크하고 있었다.
 
호텔에서 저녁 휴식 시간에는 환경 논쟁이 벌어졌다.


“에코 모더니즘을 들어보셨습니까?” 교수의 화두였다.


환경주의 패러다임은 반(反)산업, 반(反)기술, 반(反)문명 성향이다. 과학기술이 생태를 망가뜨리고 자연을 오염시킨다는 것이다.


반면 에코 모더니즘은 기술 낙관주의(樂觀主義)다. 경제가 선진화하고 문명이 발달하면 환경은 깨끗해진다. 방글라데시보다 뉴욕이 훨씬 깨끗하고, 남한이 북한보다 훨씬 숲이 많다는 논리다. 신사조(新思潮)의 환경운동 이론이다. 감성적 구호와 도그마에 빠지지 말고 실제 결과를 놓고 판단하자는 흐름이다.


도시는 밀집도가 높아 교통, 냉난방이 효율적이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것이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것보다 환경적이라는 것. 밀도(密度)가 곧 그린(green)이다.


원자력 대화가 환경 문제 전체로 확대된 것이다.
원전 문제는 단순하게 볼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 시각이 필요하다는 게 공론이기도 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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