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장난치는 자들

무궁화와 환경(제16회)

오선닥 2018. 11. 15. 22:46

무궁화 삼천리강산
지태풍과 이단아는
그런 나라를 만들고 싶은데…


▲고목에 핀 무궁화




제16회



무궁화와 환경


우리의 호프 지태풍과 이단아는 어떻게 지낼까.


그들은 열심히 환경운동에 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딴 일로 바빠 그들의 활동 상황을 블로그에 오랫동안 게재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작가는 딱 일 년 만에 나타난 셈인데 모처럼 친가에 들른 새댁 기분이다.


이건 순전히 작가의 잘못이지 그들에겐 전혀 오류가 없다. 지열과 태양열, 풍력을 상징하는 이름을 지은 부모의 선견지명 덕분에 지태풍은 환경운동 분야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진 편이다.


“독자 여러분, 작명 부분은 완전 거짓말입니다.”


불현듯 누군가 악을 쓰는 것 같아 작가는 깜짝 놀랐다.
사실 지태풍의 부모는 ‘아기가 세상을 태풍처럼 힘차게 살아라’ 뜻으로 작명했는데 환경 소설을 쓰는 작가가 엉뚱한 해석을 하여 많은 사람을 의아하게 한다.


지태풍과 이단아가 애인 관계라는 것은 독자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시죠?


혹시 주인공의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불평하시는 분들이 있을까 해서 언급해두는 것뿐이다.


듀엣을 다시 불러내는 것은 그들이 연애만 할 것이 아니라 빨리 결혼하여 인구절벽에 허덕이는 조국(청와대 조국 수석이 아님)의 인구 회복에 일조하라는 뜻은 아니다. 결혼하여 2세를 얻어 아기 울음소리를 들으면 가족은 물론 이웃, 나아가 대한민국이 환호해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듀엣이 미래 대한민국의 환경을 책임질 사람들이니 전면에 나서라는 것이다.


두 주인공을 이야기하다 보니 글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려 해서 이제 본론에 들어갈까 한다.


무궁화와 환경?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뭘까. 궁금하기만 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벚꽃으로 도배된 전국의 공원과 가로수를 나라꽃 무궁화로 바꾸어 무궁화 강산의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법으로 제정된 국화는 아니지만(현재 법제화 진행 중) 무궁화는 이미 국화로 인식되어 왔으므로 이제는 법으로 나라꽃 대접을 제대로 받아내는 것이다.


매년 봄이면 여의도 윤중로의 벚꽃축제를 본다. 지금은 봄꽃축제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이름이 바뀌었다고 벚꽃의 사쿠라 이미지를 훌훌 벗어던질 수는 없다. 일본이 벚꽃 씨와 묘목을 공짜로 한국 땅에 얼마나 공수했는지 한국은 벚꽃 강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0년 10월 16일부터 18일까지 3일간 여의도공원에서 나라꽃무궁화국민대축제가 열렸다. 무궁화 시민단체가 합동으로 주관하는 행사이다. 주말 휴일이 끼어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태풍과 이단아는 사명감과 호기심으로 개막식에 참석했다.
나라사랑이라는 거룩한 정신을 앞세워 그들은 기꺼이 동참했다.


무궁화 단체를 이끌어온 대표들은 물론 국회의원이 많이 참석했다. 그들의 눈에 표가 보이고, 더욱이 지난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시민 동원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실감했기 때문이다.


식이 끝난 후 광장에 전시해 놓은 무궁화 사진을 감상했다.
건축가이면서 사진작가인 이봉식 선생은 무궁화만 35년간 촬영해 왔다.
작품 중에는 수령 100년의 무궁화 사진이 있는데, 이 무궁화는 수년 전 군 직원의 무지로 베어버려져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오래된 무궁화로는 강릉 방동리의 110년 수령의 4미터 크기의 천연기념물 520호가 자랑스럽다. 독립기념관의 수령 70년, 제주 중문단지 현충원의 수령 80년 홍단심계가 나라꽃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제주도 마라도에도 무궁화가 있으니 한반도 전체에 무궁화가 있다는 뜻이다. 이는 국화로서 하나의 조건인 국토 전체에 분포돼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원산종으로 민족을 상징하고, 민족과 더불어 애환을 함께하며, 이름과 모양이 모두 아름다운 꽃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는 셈이다.


무궁화의 종류에는 순백색의 배달계, 단심인 단심계, 단심과 붉은색 띠를 한 아사달계가 있다.


▲무궁화국민대축제 개막식(여의도)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 무궁화



시월의 가을은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가을이라는 화가는 주황색을 유난히 많이 쓰는 것 같다.
여기에 주황색이 아닌 노란색을 즐겨 쓰는 사람이 있으니, 그는 바로 이단아이다. 공무원이 노랑머리를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러나 2020년은 개인의 몸치장은 물론 이념의 자유가 드론처럼 나돌아 다니는 자유분방한 시대다.


그녀는 요즘 들어 노란색 염색 머리를 많이 하고 있는데, 염색은 환경에 좋지 않다고 말해도, “가을 색깔을 즐겨 보려 하니 용서해주면 안 되겠어요?” 지태풍에게 미안한 마음을 드러내니 애교로 봐줄 수밖에 없다.


지태풍은 이런 노랑머리를 데리고 가을을 즐기고 있다.


“우리 몽촌토성 산책길 걸어보지 않으렴?”


탄력근무제가 공무원들에도 허용되는지라 이단아는 오늘 휴가를 얻었다.
지태풍의 제안에 그녀는 대뜸 “왜, 하필 그쪽이야?” 질문했다.


“거기 은행나무 단풍이 좋다니까 한번 가 보자는 거지.”


지태풍은 거기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를 말하지 않았고, 이단아의 노랑머리가 은행잎과 조화를 이루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 걸고 있었지만, 그는 속내를 말하지 않았다.


노거수(老巨樹) 은행나무 옆에 왔을 때 지태풍은 그녀의 노랑머리를 스마트폰에 한번 담았는데 사람과 나무와 땅이 온통 노란색으로 덮어 버려 색깔이 ‘아니올씨다’였다. 

차라리 무궁화 앞에 서자.


“올림픽공원 무궁화도 구경하자꾸나. 30년 전에 심은 나무가 얼마나 컸는지 보고 싶군.”


여름 백일 동안 꽃봉오리를 계속 피워나가는 무궁화이지만 시월 중순에 피는 무궁화가 간혹 보인다. 몇 송이 남아 있는 무궁화에서 민족의 은근과 끈기를 보는 것은 하나의 자부심이다. 이런 꽃 앞에 서면 서슴없이 가슴이 뭉클해진다.


▲무궁화 사진찍기 대회


▲올림픽공원 무궁화



무궁화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3가지가 있다. 즉 태극기와 애국가, 무궁화.
여기에 덧붙여 한복과 호랑이가 대한민국을 스토리텔링 할 때 양념으로 등장할 것이다.


무궁화는 애국가에 등장하고, 국가 중요 문서의 문장, 대통령 표장, 국회의원 배지, 법원 마크, 지금 희귀하게 쓰이는 1원 동전에도 그려져 있다. 당연히 우리나라 국화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무궁화는 공식 국화(國花)가 아니다. 대부분 나라와 마찬가지로 법으로 제정하지는 않았다.


무궁화는 언제부터 국가 상징물로 쓰였을까?
단군조선 시대에는 환인의 나라꽃, 신의 꽃으로 인식하여 환화(桓花)라 했다. 신라시대 최치원이 우리나라를 ‘근화향(槿花鄕)의 나라’로 부른 문서가 남아 있고, 일제의 <조선총독부 고등경찰사전>에도 “고려조시대에는 전 국민으로부터 열광적 사랑을 받았다”고 나와 있다. 그러다 조선시대 국화를 이화(배꽃)로 정하매. 무궁화는 점차로 세력을 잃어가다가 19세기 말(구한말 개화기) 무궁화가 다시 우리 민족을 대표하게 됐다. 일본의 상징인 벚꽃에 대항하기 위해 무궁화가 선택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무궁화를 국화로 했을까?
우선 꽃의 생태적 특징 때문이다. 깨끗한 흰꽃과 깊숙이 자리잡은 붉은색 무늬가 오히려 열정과 순결을 대변한다. 무궁화는 어디서나 잘 자라는 것은 물론, 석 달간 매일매일 새로운 꽃을 피운다. 근면하고 생명력 있는 모습이 민족 수난기를 이겨내는 우리 민족의 은근·끈기와 닮아 있다고 해서 일제강점기에 민족정신의 상징으로 더욱 굳어지게 됐다.


“일제가 이를 악물고 무궁화를 탄압한 이유가 뭘까요?”


지태풍이 일 년 전 홍천 한서남궁억기념관에 들렀을 때 무궁화 전문가에게 물어본 질문이다.


“독립협회 등이 강연회에서 ‘무궁화동산’, ‘무궁화 삼천리 강산’ 등의 문구로 민족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으니, 일제는 이 표현을 불온 문구로 규정하며 무궁화를 탄압했지. 민중은 자연스럽게 무궁화를 애국심과 연결하면서 사랑하게 되었거든요.”


선생은 설명을 이어갔다.


“대표적인 사례가 1933년 <무궁화사건>으로 낭궁 억 선생을 투옥한 사건이죠.”


일편단심 무궁화정신을 꺾으려는 비열한 탄압이었다.


“일제가 무궁화묘목 8만 그루를 불태우고 독립정신을 고취시킨다는 이유로 남궁 선생을 투옥했는데 3년간 옥살이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1939년 돌아가셨지요.”


한국 전쟁 이후 일각에서는 무궁화가 아름답지 못하고, 향기가 없으며, 단명허세한 점 등을 들어 국화 논쟁을 벌였다.


아름다움을 떠나 어떤 역사성이 결부되어 있다면 국화로서의 자격을 갖춘 것이라고 유달영 박사는 주장했다. 국회에서 무궁화를 국화로 공식 제정하자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다른 사안에 밀려 보류되어 있다.



▲무궁화 그림그리기 경연


▲국혼웅비도



국화(國花)를 보면 그 나라의 지형과 국민성을 대충 가늠할 수 있다.


미국과 영국은 장미를 국화로 정했다.
네덜란드는 튤립, 캐나다는 단풍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겨울해가 짧은 러시아는 해바라기, 일본은 벚꽃, 중국은 모란과 매화를 국화로 삼는다.
알프스의 나라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는 에델바이스, 프랑스는 아이리스(무지개의 여신)를 나라꽃으로 했다.
인도와 베트남은 연꽃,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재스민.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는 노랑꽃을 좋아한 나머지 각각 코하이와 골든와틀을 나라꽃으로 정했다.
같은 미국이라도 주마다 꽃이 다르다. 알래스카는 물망초, 캘리포니아는 금영화, 애리조나는 선인장 등이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 말은 어릴 때 숨바꼭질 놀이에 이용하기도 했고, 소설 제목으로 쓰이기도 했다.
백단심은 ‘흰옷 속의 붉은 마음’을 내포하고 있어 꽃에서 정절이 느껴진다.


무궁화는 외국에서 샤론의 꽃으로 불린다.
인도와 중국의 서남부에서 한반도로 이동한, 2500년 전 한반도에서 개화한 것으로 알려진 무궁화는 은자의 풍격, 은은한 향기, 순결한 꽃으로 압록강과 흑룡강 사이 나라인 ‘배달’의 꽃으로도 불렸다.


휴면기가 너무 길고 봄에 싹이 늦게 돋지만, 앵두, 살구, 복숭아가 한창일 무렵 무궁화는 움트고, 라일락, 황매, 장미가 한창일 때 비로소 잎새를 갖춘다. 꽃피는 것이 무척 더딘데 봉오리 맺기 시작하여 한두 주일 후 꽃이 핀다. 이 무렵이 7월 초순이다.


새 송이가 잇대어 피고 8월이 가고 9월이 가고 10월에 들어서도 흰무명 저고리가 차가울 때까지 끊임없이 피어 천송이, 만송이가 된다. 백대, 천대 자자손손으로 이어나간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천자만홍(千紫萬紅)의 모든 꽃이 화무십일홍으로 피었다가 지는 꽃이나 무궁화만은 여름에서 초가을까지 우리 곁에 머문다.


토지의 후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배수가 잘되면 좋다. 울타리 옆, 거친 들판, 외로운 길가에 피어, 쓸쓸하고 거칠며 외로운 사람에게 동무가 돼주기도 한다.


이 부분에서 이단아는 무궁화와 같은 여성임을 자부하려 한다.


무궁화는 강렬한 생명명력이 있다. 단명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피는 꽃이다. 민족의 줄기찬 심성이 있고, 진딧물이 끼고 거미줄을 쳐도 벌레 때문에 마르지 않는다. 까탈을 부릴 줄 모른다. 매연 공기 속에도 강하니, 길가에 심어 환경을 개선하는 데 이용하면 좋다.


겸허한 자세인 듯 조용히 피었다가 곱게 지는 수준 높은 꽃이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피어나고, 새벽 5시경에 피는 부지런한 꽃으로 육안으로가 아니라 심안으로 보는 꽃이다.


“저를 닮았나 봐요.”


무궁화 식재 전문가 백일환 선생으로부터 무궁화 설명을 열심히 듣던 이단아가 어린애같이 웃는다.


장미, 황매 등은 낙화가 추하나 무궁화는 곱게 오므라진 뒤 꼭지가 빠져 깨끗하게 진다. 화무십일홍이 아니라 영구무상이다.


“내 스타일인가 보다.”


이번에는 지태풍이 말한다.


꽃잎은 다섯인데 의미하는 바가 많다. 오행, 오륜, 오복, 오곡, 오관, 오상(五常), 오계(五戒) 등 다섯을 생각하도록 한다. 우리민족은 원래 다섯을 좋아한다. 홍익인간, 한민족이라서 그런가.


▲개막식 합창단


▲무궁화 한복의 어울림



잘못된 상식으로 무궁화는 핍박을 받고 있다.
일제가 왜곡한 이미지가 많다. 보거나 만지면 꽃가루로 핏발이 선다거나 진딧물이 많은 꽃으로 공격받고 있다, 사실 모든 식물은 병충해가 있고 장미와 국화도 악성 진딧물이 있음을 감안하면 편견이 심하다.


진딧물은 새싹이 나는 5월 가장 심하고 10월께 다시 늘어난다. 역설적으로 진딧물이 많다는 것은 영양이 풍부하고 약재나 화장품 재료로 이용할 만하다는 뜻이다.


무궁화는 관상용, 특히 분재로 아름답게 재배할 수 있다.
꽃은 꽃차와 사혈을 멎게 하는 약용으로 이용하고, 풋잎은 나물이나 차대용으로 쓴다. 껍질과 뿌리는 상처 치유, 옴 치료, 제사제, 고급제지 등으로 쓰면 좋다.


아모레화장품인 마몽드모이스처 무궁화크림은 보습제로 유명하다. 무궁화 꽃을 따서 만든 것이다. 매일 새롭게 피는 꽃의 생명력만큼이나 강렬한 보습효과가 있다.


“그대의 피부가 촉촉한 이유를 알겠군.”


“마몽드 50밀리리터에 29,000원, 좀 비싸요.”


“사 달라는 건가? 알았어.”


괜히 크림 자랑했나? 지태풍은 웃었다.
무궁화는 그리스에 특히 많은데 해안 별장 울타리와 정원, 큰길가에도 심는다.
요즘같이 일자리가 부족할 때는 무궁화 조화에 일자리를 확대하면 좋지 않을까.


무궁화는 쉽게 지는 것이 아니라 새벽에 피었다가 오후에 오므러들었다가 해질 무렵에 꽃이 떨어짐으로 매일 피기를 100일간 반복 지속한다. 1950년 태극기의 깃봉이 무궁화 모양으로 한 것은 무궁화의 자존심을 팍 살린 셈이다.


심은 무궁화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100주 심어 방치 말고 1주 심어 관리 잘하자”로 대변된다.
새순이 연하고 무독성이라서 해충, 벌레가 좋아한다. 목화진딧물의 월동기주(越冬寄主)로서 싹 트기 전 2, 3차례 분사해주는 것이 좋다. 

식재 구덩이는 직경 90센티와 높이 90센티로 파고, 시비는 뿌리 주변에 뿌린다.
전정이 필요한 원예수종이므로 매년 전정이 필요하다.


▲무궁화한복패션 모델 단체사진


▲무궁화한복패션쇼



축제의 마지막 날.
이날의 백미는 ‘무궁화 한복 패션쇼’다.
무궁화로 수놓은 한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인식시켜주는 시간.
국가상징물을 한복에 접목시키는 애국 디자이너의 노력을 읽을 수 있다.


태극기가 보수 우파의 이념을 상징한다고 하여 진보 좌파의 정부가 의식적으로 회피하는 데 비해 무궁화는 이념의 편향에 서지 않아 모든 국민들에게 거부감 없이 수용된다.


무궁화 한복의 모델은 어떤 사람이 설까 궁금한 마음을 안고 이단아는 축제장에 들어섰다. 중년의 여성만 등장할 거라는 선입감을 깨고 다양한 연령층에다 노소 남녀가 등장했다. 아이돌 얼굴의 청년 모델이 들어섰을 때는 무궁화에 대한 자긍심이 솟아올랐다.


“뭘 그리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니?”


뒤에서 들리는 익은 목소리에 이단아가 고개를 돌렸을 때 친구가 허리를 감쌌다.
절친한 고교 동창 친구.
어떻게 여기 왔느냐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가 물었다.
친구는 자기 남친이 무궁화한복패션쇼에 출연했다는 것.


“저기 키 큰 머슴애 보이지? 저 애야.”


앳돼 보이는데 아마도 연하 남친일 거야.
모델이라 역시 키가 크고 곱상하게 생겨, 수수한 모습의 친구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네”라고 소리 내어 친구를 칭찬할 뻔했다.


패션쇼가 끝난 후 친구의 남친이 모델끼리 애프터를 하는 동안 두 사람은 광장에 전시된 무궁화 사진을 감상하기로 했다.


100여 점의 사진 속에는 대한민국의 대표적 무궁화가 망라돼 있다. 100년 수령의 고목 무궁화가 있는가 하면 3년생 묘목에 핀 어린 무궁화의 사진도 있다. 길이 3미터 사진까지 갖다 놓은 이봉식 사진작가는 할아버지로부터 내려온 무궁화사랑 정신을 이어받아 35년간 무궁화 사진작가로 추앙받고 있다.


그리하여 대통령 인사말이 들어간 350페이지가 넘는 대형 무궁화 화보집을 발간했다. 우수도서로 취급받는 것은 물론이다(가격 120,000원).


한 우물을 파도 이 정도는 파야 전문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이단아는 칭찬해 주고 싶었다.


작가는 강원 홍천 무궁화동산은 물론, 제주도 무궁화동산까지 카메라를 메고 가서 새벽의 무궁화를 찍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왜 새벽에 찍느냐고? 무궁화는 그때 피기 시작하니까.

 

전국 현충원을 두루 돌아다니며 찍은 무궁화에서 순국 장병의 영혼이 묻어 나옴을 느낀다. 키 낮은 무궁화를 광화문 세종대왕동상을 배경으로 담은 사진은 대왕에게 나라꽃을 바치는 방법이 이런 거로구나, 깨닫는다.


이런 모든 것은 동창 친구가 설명해줬는데, 남친이 무궁화를 사랑하다 보니 얻어 들은 정보라고 한다.
 
인천쓰레기매립장에 무궁화묘목단지가 조성됐다.
(사)무궁화총연합회 박성래 회장은 무궁화를 한반도에 도배를 하겠다고 포부를 다졌다.


“북한 땅은 어떡하고?”


이런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통일은 문재인 정부에선 불가능하고 어차피 다음 정부에서 ‘무궁화꽃이 피게 될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어쨌든 무궁화가 통일의 매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되기 전에 무궁화를 국화로 지정해두는 것이 ‘오천만 서명운동’ 캠페인의 취지라나.


▲무궁화 그림그리기 작품


▲여의도광장 무궁화 사진전



친구가 남친을 찾아간 후 혼자가 된 이단아는 잠시나마 외로운 시간을 보낼 뻔했으나 적절한 시간에 지태풍이 광장의 태극기 게양대 밑으로 와 줘서 고마웠다. 기다리는 30분 동안 공원 주위의 빌딩숲을 구경했다. 트럼프 빌딩 같은 것을 갖겠다는 꿈은 접어두기로 했다. 영원히 꿈을 꾸면 가능할지도?


“빌딩만 보고 있을 게 아니라 태극기에 경례해야지?”


지태풍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러면서 태극기에 대한 경례는 부족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나.


두 연인은 무궁화국민대축제를 보고 나서는 무궁화 사랑에 더욱 적극적이다.


“이러다간 우리 사이에 무궁화가 끼어들어 사랑을 방해하지 않을까?”


지태풍이 장난삼아 말했을 때 이단아는 단호하게,


“우리 사이에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옹호한다.


“윤중로의 벚꽃을 언제 다 뽑아버리지?”


“벚꽃축제가 봄꽃축제로 이름이 바뀐 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해야죠.”


예술은 뿌리 깊이 한 세계를 깊이 파고드는 것이라고 박수근 화백이 말했듯 두 사람은 벌써 나라꽃 무궁화 사랑에 대한 열정으로 한 세계를 깊이 파고들고 있다.


벚꽃이 자연 소멸될 때까지 여의도에는 벚꽃을 심지 않기로 지자체는 이미 결정해 놓았는데 그 자리에 무궁화가 차지할 것이다.


“우선은 국회의사당 안에 무궁화동산을 조성해야겠지?”


“동산 조성에 시일이 걸릴 테니 먼저 분재 무궁화라도 갖다 놓으면 좋겠어요.”


“의원 영감님들이 무궁화가 아침저녁으로 피고 지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으니 좋아하겠지.”


지태풍은 의원들의 무궁화 사랑이 좀 더 적극적이길 원한다.


“무궁화가 나쁜 공기를 흡수한다는 건 과학적인가요?”


그녀는 낚시바늘 같은 물음표를 찍었다.


“공기 흡수는 다른 나무와 비슷하나 매연 반응이 좋으므로 나쁜 공기를 판별하는 데 유리하지 않을까.”


“반응이 느리면 매연흡수가 좋을 텐데요.”


“글쎄, 김 안 나는 숭늉이 뜨거운 줄 모르긴 하지.”


“감정 없는 오빠의 가슴이 뜨거운 것과 같은 거로군요.”


이런 대화에 일일이 웃을 필요는 없다.
무궁화는 나쁜 공기를 정화하는 환경정화의 역할에다가 국민의 마음을 애국심으로 뭉치는 역할을 해줄 것이다.


▲무궁화한복패션쇼


▲여의도공원 무궁화한복패션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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