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장난치는 자들

녹조(제12회)

오선닥 2017. 7. 30. 13:13


녹조라테 아시나요
4대강 보를 헌다 만다?
녹조의 이용은?


▲달성군 부근 낙동강 녹조




제12회



녹조


두 사람이 탄 지프는 세종시에서 금강의 줄기를 따라 공주보 쪽으로 달렸다. 보 근처에 이르자 그들은 강둑 위에 차를 세우고 제방 안쪽 아래로 내려갔다. 창이 넓은 밀짚모자를 쓴 그들은 영락없이 농부로 보이기에 충분하다. 삽을 들었다면 더 근사할 뻔했다.

 

“쉬는 날에 우리가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


“이건 오빠가 제안한 거잖아요. 평일에는 세미나 계획이 있다면서…….”


“뭐, 그렇긴 하지만.”


지태풍과 이단아는 주말을 공주보 유원지에서 보내기로 했다. 다만 놀러 가는 것이 아니고 절반은 업무의 연장이라고 해도 좋다. 언젠가 그들은 업무와 휴식의 관계에 대해서 제법 진지하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지태풍이 바쁜 현대인은 주말을 일과 휴식을 병행하는 것을 일종의 추세로 봐야지 희생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자, 이단아는 현대인은 직업의 경계가 애매한 세상에서 살고 있으므로 다른 업무가 주어진다고 해서 불평하면 안 된다며 서로를 옹호했다. 의견의 접근에 흐뭇했는지 결혼을 했더라면 부부의 장단이 잘 맞을 수가 있겠구나, 남자는 생각했다.


“이곳에 녹조측정기를 대 보자.”


비교적 녹조가 많이 몰려 있는 쪽에 이르렀을 때 지태풍이 측정기를 들이댔다.

 

클로로필a 20mg/m3, 남조류 3,200 cell/ml
(남조류 세포수가 1,000개 이상 2주 동안 지속되면 조류경보 발령)


녹조는 하천과 강에서 남조류(藍藻類)가 크게 늘어나 물빛이 녹색이 되는 현상이다.
풍부한 유기물과 무기물을 바탕으로 수생생물의 광합성 활동이 왕성해진다. 이런 수생생물이 녹색을 띠면 녹조, 갈색을 띠면 갈조, 적색을 띠면 적조가 된다.


이틀 전 인근 마을 송아지 한 마리가 강물을 마시고 폐사했다.


이후 주민들은 녹조 농도에 대해 극도로 예민해졌다. 녹조에서 나온 독소가 강물을 오염시킨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녹조라고 다 독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나 위험한 것은 사실이다. 상수도의 물은 이상이 없을까. 다행히 녹조는 물 상단에 위치해 있고 사람이 마시는 물은 그 이하 2~3미터에서 취수를 한다.


폐사 문제를 특별히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은 이 지역 출신 도의원 배달호다. 그는 4대강 보를 철거해야 한다는 집권여당의 슬로건을 가장 열심히 배달해 나르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소속당으로부터 행동대장 칭호를 받기도 한다. 환경운동단체 출신이라서 일이 생기면 전위부대로 자원하기도 한다. 그의 주장은 이렇게 귀결된다.


“보를 철거해서 강을 원시 상태로 돌려놓아야 한다.”


한편 이에 극구 반대하는 인근 마을 이장 강창보가 있다. 4대강 634km 사업 이후 농업용수가 풍부해졌고, 홍수피해가 거의 없어졌으며, 보가 생기기 전부터 녹조가 있었는데 왜 호들갑을 떨고 야단이냐고 하면서 주민들에게 호응을 구한다. 16개 보의 수문을 개방해도 물만 허비하지 녹조 제거에는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수문을 너무 많이 열 수도 없다. 취수구와 어도(魚道)가 무용지물이 되면 어떻게 할 거냐고 침을 튀긴다. 보 찬성 근거는 분명하다


“녹조는 하나의 자연현상인데 보로 인해 녹조가 더 심해졌다고 할 순 없다.”


마을 주민들은 보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눠져 서로 불편한 분위기에서 대등한 비율을 유지해 오다가, 최근 폭염 아래 녹조현상이 심해지고 송아지가 죽게 되자 잠정적으로 보 철거파가 약간 우세를 점하는 상황이다.


녹조 물을 마시고 가축이 죽은 사례가 외국에도 있다. 호주에서 녹조 강물을 마신 소와 양 1,600마리가 죽었다. 보가 있는 강에서는 멀쩡한데 보가 없는 강에서 죽었다는 게 의문이며 논쟁거리가 되었다.


지태풍과 이단아는 녹조 측정을 마치고 자료 조사차 마을 이장을 찾았다.
그는 의외로 수자원환경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강물에서 식수 취수는 지역 형편에 맞게 해야 하는데 강변여과나 인공함양, 전용댐 중 적합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면서 그는,


“만약 낙동강에 보가 없다면 개천으로 변합니다.”

 

악센트를 넣어 두 방문객 앞에서 강변했다.


조선시대에는 낙동강에 배가 다닐 만큼 강물이 풍부했으나, 지금은 인구 증가로 물을 뽑아가는 곳이 많고, 포항제철, 울산공단, 창원공단 등에서 공업용수로 대량의 강물을 끌어가기 때문에 강바닥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제 외국의 큰 강에 보가 있는 이유를 아시겠죠?”


라인강, 템즈강, 센강, 미시시피강 등에 보들이 40개 이상씩 있는 이유도 물그릇을 키우고 갑문을 만들어 배가 다닐 수 있게 하기 위함이란다. 그의 설명을 듣고 있노라면 그는 마치 보 찬성을 위해 모든 지식으로 무장한 사람 같아 보인다.


“외국에선 지금 보를 다시 철거하는 강들도 있잖습니까?”


환경운동가답게 지태풍이 따져도 그의 설명은 탄탄하기만 하다.


“일부 지류에서는 그렇긴 해요. 근데 본류의 수로는 여전히 갑문을 설치하여 운하로서 역할을 합니다.”


초원에 풀이 적당히 자라야 하듯 수중에는 녹조가 적당히 자라야 한다. 식물성 플랑크톤은 90%는 생물이 먹고 10%만 남아야만 한다. 강은 7가지 기능, 즉 취수, 배수, 정화, 생태, 유락, 발전, 주운 등을 중심으로 이수와 치수를 잘해야 한다. 팔당댐에 연간 2,000톤의 쓰레기가 쌓이는데 이는 지류 경안천에서 내려오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그의 주장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토목공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소규모 토건회사를 경영하다가 새 정부 들어 토건 일감이 줄어들매 귀농을 하게 되었다.


“천둥 번개가 치면 농사가 잘되는 이유를 아십니까?”


이장의 엉뚱한 질문에 지태풍도, 이단아도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그건 천둥 번개가 칠 때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공기 중 질소를 압축, 고정(이온화)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나. 질소는 공기 중에서는 쓸모가 없지만 암모늄이나 질산염 형태가 되면 비료 역할을 한다. 한국은 비료를 EU보다 10배 많이 쓰는데 이것이 녹조의 영양이 되고 또 하천의 경사가 심해 잘 흘러든다는 것이다.

 

그가 화학지식까지?


▲4대강 보(16개) 위치



강 중류에는 4, 5학년쯤의 초등학생이 모여 있다. 근처 공주에서 단체로 견학 온 학생들이다. 한 반 학생 전체를 인솔해온 여선생은 아이들 안전에 몹시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녹조가 푸른 잔디인 줄 알고 물속으로 들어가려는 학생들 때문에 불안하기까지 하다. 여선생은 가수 이상민이 자주 털어넣곤 했던 스트레스약 지알엔을 먹어야 할 지경이라고 호소하고 싶은 얼굴이다.


지태풍과 이단아가 가까이 다가가자 여선생은 반가운 기색을 숨기려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지켜줄 눈동자의 수가 많아져 안심이 된다는 뜻일까.


“녹조 체험하러 왔는데 아이들은 운동장 잔디쯤으로 여기는 것 같아 여간 불안하지 않아요. 천방지축예요.”


학생들이 녹조는 무조건 나쁜 것으로만 알고 있어 체험을 통해 녹조의 진실을 좀 알려주고 싶다는 게 여선생의 생각이었다.


두 사람은 여선생에게 자신들의 신분을 소개했다.
그러자 그녀는 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잘됐네요. 환경부에서 오셨으니 우리 아이들 녹조 교육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
이것도 기회인데 이단아가 마다할 이유가 없다.


녹조가 광합성작용으로 대기 중 CO2를 감축시켜 지구온난화 방지에 도움을 주는 반면, 수면에 녹조가 무성하면 물속에 산소 공급을 막아 물고기 등 생명체를 위협하고, 수생식물의 광합성을 막아 성장을 방해한다고 설명한 후, 이단아는 “이렇게 장단점이 있으니 녹조는 양날의 칼과 같지요.” 하면서 녹조의 이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녹조의 발생 요건……, 이건 아주 중요한데 꼭  기억하세요.”


- 풍부한 영양염류
- 높은 수온
- 많은 햇빛
- 느린 유속


상기 4가지를 충족해야 녹조가 발생한다고 그녀는 힘주어 강조했다.

이때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우리 아버지는 무조건 보를 뭉개야 녹조가 없어진대유.”


이를 어쩌나. 아이들이 뭘 안다고?
이단아는 황당하기까지 하여 설명 중 일부러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 했다.


“느린 강물 속도만으로는 녹조가 번식하지 않아요. 다른 3가지가 함께 도와줘야 해요. 대청호에 녹조가 많은 이유는 상류에서 녹조의 먹이인 생활하수, 축산폐수, 비료성분 등 영양염류가 많이 유입되었기 때문이고, 반면에 소양호는 물그릇이 크고 이런 성분이 적게 유입되어 녹조가 없는 거랍니다. 특히 장마 후 녹조가 많은 것은 각종 오수와 쓰레기, 그리고 질소나 인을 주성분으로 하는 비료가 빗물에 씻겨 들어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장황한 설명을 아이들은 알아들었나?
이해에 그다지 어려움을 느낀 것 같지는 않지만.


한강의 경우 북한강은 녹조가 많아졌고 하류 한강은 적어졌다. 이것은 북한강에는 북한의 쓰레기가 많이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혹시 북한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할까 염려해서다.
 
내친김에 그녀는 다시 강조한다.


“그러니 쓰레기는 마구 버리면 안 되겠지요? 심지어 낚시밥도 아무렇게나 버리면 안 돼요.”


여기저기서 예, 예 대답이다.

여름철 폭염 시 녹조가 많은 것은 네 가지 조건이 최적으로 맞아떨어졌기 때문이고, 장마철 녹조가 적은 것은 수온이나 햇빛이 불충분하기 때문이며, 장마 후 다시 녹조가 왕성해지는 것은 조건이 다시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했을 때 아이들은 이해가 대충 되었는지 웃기도 한다.

 

아이들의 호기심은 녹조가 왜 물 위에 떠 있는가의 질문이다.


“이것도 녹조의 생존전략이에요. 세포에 기포를 만들어 뜨도록 진화한 거랍니다. 그래야 햇빛을 먹어 광합성을 해야 하니까요. 아주 영리하죠?”


녹조를 어떻게 이용하는가를 알면 녹조가 그저 골칫거리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기술이 뒷받침되면 녹조는 화장품, 바이오에너지, 바이오플라스틱, 비료 제조 등 유용한 것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분해가 되니 환경영향도 적다. 현재로서는 제조단가가 높기 때문에 현실성이 적지만 미래 잠재성이 많다.


녹조 제거선을 비료 제조선으로 쓰면 어떨까. 녹조농장은 바이오매스의 50%를 기름으로 만든다. 코코넛이나 팜오일보다 30배 이상 효율이 높다. 녹조는 자체 무게의 30% 상당 기름을 채취하고, 성장속도가 매우 빨라 매일 수확이 가능하다.


“녹조에서 미래의 기적을 상상해 봤나요?”


아이들이 신기해서 녹조를 한웅큼씩 쥐었다.
녹조 바이오연료는 환경 면에서 어떤 메리트가 있는가?


“두 가지가 뚜렷합니다. 탄산가스 흡수로 온실가스를 줄이고, 비식량 식물이라 식량 부족에 영향을 주지 않지요.”


세계 석유 메이저들은 녹조(Green Algae)에서 뽑아낼 미래의 녹색원유를 위해 막대한 연구비를 쏟아붓고 있다.


현재의 기술로 원가는 배럴당 300달러다. 5년 후는 70달러로 전망한다. 연못이나 호수에서 재배할 수 있으므로 육지 농장이 필요 없다. 담수, 해수 아무 곳이나 자라고 육지 작물과 경쟁하지 않는다.


녹조는 CO2 포집력(광합성 결과)이 커서 다른 바이오식물에 비해 온실가스를 60% 더 감축할 수 있다. 잠재성의 열쇠가 풀리면 30년 내 세계에서 가장 희망적인 운송연료 자원이 탄생된다.


“대청호가 녹조농장으로 변화할 수 있어요.”


와우!~ 아이들의 반응이다.
지금 골칫거리인 중국 타이후 호수의 녹조도 귀여움을 받게 되고, 쓸모없는 사막조차 녹조농장으로 만들어져 중동 석유를 대체할지 모른다?

 

기술은 일시에 개발될 수도 있으니까. 가능성이다.


▲여름 중국 한 해변에서 녹조를 즐기는(?) 어린이



학생들의 체험장을 떠나 두 사람은 좀 더 강 상류로 올라갔다. 강변에는 군인들이 열심히 갈퀴질을 하고 있었다. 강 안쪽으로는 배 두 척이 마주보고 그물을 잡고 있었다. 배는 수자원공사 소속의 녹조 제거선이었다.


차출 나온 군인들이 폭염 아래 생고생이다. 지태풍과 이단아 같은 아베크족을 보고 좋지 않은 눈으로 흘기는 듯 하다가 곧 환경단체와 환경부 사람임을 알고는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단아는 녹조측정기를 가방에서 꺼내 지태풍에게 가져갔다.


“지 선생님, 녹조측정기 좀 잡아주실래요?”


결코 놀러 온 사람이 아니며 아베크족도 아니라는 걸 시위하듯 예의바르고 기풍당당하게 말했다. 그러자 인솔자로 보이는 군인이 가까이 다가왔다.


“공무중이신가 봐요?”


“예, 그저께 이곳에서 소 한 마리가 강물을 마시고 폐사한 사건이 있어서요.”


지태풍이 대신 둘러댔으나 그렇다고 거짓말은 아니다.

두 젊은이가 주말인데도 쉬지 않고 일하니 기특한 공무원으로 보였을까, 아니면 새 정부 들어 공무원 숫자를 늘려 쓸데없는 규제 행태로 비쳤을까. 데이트 겸 조사업무 중이라고 말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연인 관계의 눈치를 보일 이유도 없다.


측정기가 가리키는 디지털 수치는 하류 쪽보다는 높았다. 강에서 수거한 녹조는 두 선박에 가득했다.


“왜 이곳에 녹조가 많죠?”


두 젊은이가 전문가로 보였던지 지휘관이 물었다.


“지류 상류에 축산농장이 많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공무원으로 사칭한 자가 이곳 축산농가에서 돈을 뜯어 갔다. 정화조를 거치지 않고 바로 하천으로 폐수를 방류하는 것을 발견한 그 자는 매우 담대했다.


“고발이 들어와서 방문했는데 배출량을 참작해줄 테니 앞으로는 절대 조심하세요.”


가짜 공무원의 힘 있는 당부에 완전히 속아 ‘참작’의 액수에 걸맞게 해결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2년 전에는 녹조 측정 장치를 개발하겠다는 명목으로 공기업에서 보조금 30억 원을 빼돌린 간 큰 업체 대표가 있었다니 ‘장난치는 자’가 자꾸 생겨나는 것은 욕심이 끊임없이 잉태하기 때문이리라.


정오 무렵 그들은 일어났다. 장병들의 점심시간을 방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정중한 예의 표시로 밀짚모자를 벗고 인사했다.


“숙녀인 줄 알았는데 학생이군요.”


이단아의 앳된 모습을 보고 지휘관은 또 놀랐다. 물론 과도한 인사치레일 수도 있다. 이미 공무원이라고 신분을 밝혔기 때문에 학생의 칭호는 과잉 친절이다.


팔뚝을 걷어붙인 장병들의 건강미 넘치는 시선들이 이단아에게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지태풍이 질투를 보이기 전에 그녀는 눈치 있는 행동을 보였다.


“이제 우리 업무는 끝났으니 떠나야죠.”


장화를 챙기며 이단아가 먼저 일어선 것은 다행이다.
적어도 지태풍에게는.


 

▲수자원공사가 보트를 동원해 물 순환 작업



유원지 카페헛에 도착했을 때 그들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했다. 맺힌 땀이 테이블에 한 방울씩 떨어질 정도다.


“정말 땀나는 데이트, 아니, 힘든 작업이었지?”


지태풍이 동의를 구해도 이단아는 대답 대신 화장실부터 먼저 다녀오겠다며 일어섰다. 화장을 고쳤는지 돌아온 그녀의 얼굴은 화사했다. 이제 데이트를 위한 여성의 모습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열어 놓은 카페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천장에는 에어컨 대신 대형 선풍기가 매달려 힘차게 허리를 돌리고 있다. 얼굴의 땀방울이 튕겨나갈 것같이 바람은 세다. 아래로 금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보 근처와 강 주변에는 녹조가 보이나 강 중앙에는 녹조가 없는 곳이 많다.


종업원이 가까이 와서, 이 카페는 보령녹차를 사용하기 때문에 맛이 좋다고 강조했다.


“그럼 오빠는 녹차 하실래요? 저는 커피로 하고요. 취향은 라테로 통일하죠.”

 

이단아가 주문했다. 어딜 가나 마시는 것의 선택은 쉬웠다. 기호와 취향을 서로 알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녹조라테로 주문한 건 아니겠지?”


종업원이 돌아가자 지태풍이 농담을 걸었다.


“오빠 하시는 거 봐 가면서. 녹차라테 싫으면 녹조라테로 바꿀 수 있으니, 알아서 하세요.”


강 위 녹조를 보니 녹조나 녹차가 달리 보일 것 같지 않다. 여기에 서녘 낙조까지 내려앉으면 언어의 희롱에 색깔은 당황해 버리고 말 것이다. 언론방송에서 녹조라테를 너무 강조하여 정말 녹조라테가 있는 줄 착각하는 사람도 있으니.


점심 메뉴는 파스타로 했다. 땀 흘린 보람으로 소스의 미감이 두 사람의 입에 찰싹 감돌았다. 음식이 맛있으면 행복의 반은 해결된다고 했던가.


“오늘 젤 멋진 데이트인 것 같아요. 일석이조의 결실이었고요.”


그녀의 얼굴에 만족의 꽃이 피었다.

최근 적당한 운동과 다이어트를 병행한 덕분에 여자의 몸매는 한결 균형 잡힌 모습이었다. 그녀를 쳐다보는 데는 모든 체면을 걷어낸 지태풍이다. 쳐다보는 것만으로 행복하니까.
 
“데이트와 다이어트의 결실이라는 뜻?”


“오빠의 생각은 언제나 과속질주야. 데이트와 업무, 업무말예요!”


해서 그녀의 생각에 보조를 맞춰주기로 마음먹었다.


“오늘을 계기로 녹조와 많이 친해진 것 같아. 멋진 데이트와 업무의 조화였어.”


말에는 행동이 따라야 완결판이 된다. 그는 여자를 안아들어 조수석에 태웠다. 그리고 볼을 비벼주고 운전석으로 갔다.


▲건져 올린 녹조라테?



일정을 완수한 두 사람은 최저 과태료 수준의 속도로 세종시로 갔다.
원룸에 여자를 떨어뜨려 놓고 지태풍은 서울로 곧바로 올라가고자 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연인이 그렇듯 한쪽이 브레이크를 건다.


“차 한잔 하고 가세요. 서울까지 운전에 피로하면 안 되니까요.”


차를 마시는 일도 그렇지만 우선 그는 샤워를 하고 싶었다. 갑자기 등짝에 땀이 배는 느낌은 바늘 가는 곳에 실 가고 마음 가는 곳에 몸 가기 때문일까.


이단아가 캔 맥주를 꺼내고 간단한 마른안주를 준비하는 사이 그는 먼저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솨~ 물을 뒤집어쓰니 땀을 짊어진 채 서울로 갔더라면 어떤 상황이 됐을까, 끔찍했다.

 

샤워가 끝날 무렵 욕실 문이 열리더니 가운 입은 여자가 들어왔다.


“시원한 캔이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하고 나갑시다용.”


여자가 불쑥 샤워장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놀랄 틈도 없다.


“한 사람은 무장해제, 한 사람은 갑옷…… 이런 불공평이 어딨어?”


이단아는 할 수 없이 가운을 벗었다.
서로에게 물을 끼얹어 주는 상부상조의 선행으로 샤워는 한결 빨랐다.


샤워 후의 맥주 한잔.


지금까지 마신 맥주 중 제일 맛있었다고 그녀는 감탄했다. 브랜드가 카스라고 강조하진 않았다. 얇은 옷을 걸치니 맥주가 더 부드럽네요.” 여자의 행복한 언어와 콧노래는 아리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걸그룹의 최신곡이 흥겨웠기 때문일 수도.


오늘 진행 상황을 느낌으로 표현한다면 제일 맛있고, 제일 시원하고, 제일 감동하고, 제일 행복하고, 제일 …… 하고, 이런 식이다.


내친김에 저녁을 먹고 가라고 그녀가 추가 제안을 했다. 미국이 북한핵에 추가 제재를 가하는 것이 요즘의 유행인데, 이단아는 유행과는 정반대로 추가 제안을 해온 것이다.
 
“제가 잘하는 볶음밥 있잖아요. 오늘 오빠 수고하셨으니 치즈스틱까지 넣어드릴게요.”


이제 스케줄이란 없는 건가. 여자의 일방적 사회로 진행되는 행사 같다.


치즈는 자신의 기호식품이니 좋은 생각이라면서 지태풍은 볶음밥을 먹고 가기로 동의했다. 점심때 면류를 먹었으니 한 끼쯤 한국인의 주식인 밥을 먹어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걸 저녁으로 챙기기로 했다.


손으로는 밥을 볶고, 마음으로는 깨를 볶는다. 열심히 요리를 준비하는 이단아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지태풍은 오늘 자신만큼 행복한 사람이 없을 거라고 자부하는 중이다. 모양 좋게 균형 잡힌 그녀의 힙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다.


꼬리가 길었던가. 그녀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남녀의 눈이 마주쳤다. 멋쩍게 웃는 것으로 타협했다.


분위기가 괜찮으면 자고 갈 수도 있겠구나.


남자라면 이런 꿈 정도는 오히려 보편화된 현상이다.
이때 이단아의 핸드폰이 울렸다.
요리하던 손을 멈추고 왼손으로 폰을 들었다.


“한 시간 내로 온다고? 알았다 기집애야.”


이단아는 상대의 이야기를 한참 들은 후 간단하게 응수했다.


대전에 사는 아주 친한 친구의 전화였다. 너무 친해 둘은 늘 대화도 격의가 없고 자주 막무가내였다. 내일 세종시에서 전국 무궁화 대축제가 열리는데 사진 출품을 하게 됐다나. 이것만으로 친구와 하룻밤 보낼 이유가 되지 않느냐는 식이다.


전화 내용을 짐작한 지태풍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볶음밥 먹는 데 한 시간이나 걸리겠어? 괜찮아. 친구와 좋은 시간 보내.” 하면서도 약간은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도 요리를 빨리하는 볶음밥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깨를 볶을 수 있는 시간이 사라진 셈이다.


이단아가 서둘러서 그런지 볶음밥은 다소 설익은 데가 있었고, 씹는 것도 대충이어서 맛의 음미는 생략하고 시간을 줄이는데 최선을 다했다.


“바쁜데 양치질은 왜 하는 거예요, 오빠?”


“저녁을 먹었으니까.”


대답을 해놓고 그는 싱긋이 웃었다.
바로 힘차게 그녀를 끌어안고 입맞춤을 했다.
이빨까지 닦았으니 예의바르다고 해야 하나.


하룻밤 꿀잠을 기대했으나 일이란 항상 변수가 있음은 지태풍이 32년간 사는 동안 터득한 진리였다. 그래도 이단아와 녹조 현장조사와 데이트라는 일석이조의 결과를 얻었으니 행복한 놈이 아니랴. 자긍심이 불쑥했다.


“부르릉!”


지프차가 시동을 걸 때까지도 그녀의 친구가 도착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강의 녹조


▲장마 후 댐 안의 쓰레기더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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