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기회의 땅 러시아

기회의 땅 극동러시아(제24회)

오선닥 2016. 10. 9. 15:11

화산과 해안의 탐방

캄차카를 더 알아가는 중



 


제24회

 

 

무트노브스키 화산

 

헬기는 무트노브스키(2,322미터) 화산 입구에 도착했다. 저녁 시간이지만 주위는 여전히 훤하다. 헬기에서 내린 일행은 캠핑장으로 가기 위해 특수차량으로 갈아탔다. 늪길을 뻘뻘거리며 달린 끝에 텐트가 쳐진 곳에 이르렀다.

 

여러 개의 텐트에 일행은 짝끼리 하룻밤을 보내야만 한다.

숙박요령이 궁금하다고 해서 다른 텐트를 훔쳐볼 수는 없다.

 

홍기연은 당장 텐트 안에서 사공박과 하룻밤을 어떻게 보낼 건가 궁리해보았으나, 좁은 텐트 안에서 가족 아닌 남녀가 지켜야 할 ‘숙박 매뉴얼’이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호텔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텐트 안은 땀과 흙냄새가 천천히 스며들기 시작한다. 마치 꽃꽂이의 오아시스에 물이 흡수되듯 조금씩. 가끔 유황 냄새의 메케함이 느껴질 때는 고생을 사서 하는 기분마저 든다. 샤워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치명적이다.

 

“땀 냄새 나니 너무 가까이 오지 마세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해서인지, 부끄러워서인지 홍기연이 경계하는 자세를 취했다.

이런 상황은 사공박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텐트 바깥으로 나가기는 뭐, 좀 …… 미안해요.”

 

살다 보니 희한한 경험을 다해본다고 둘은 생각하는 걸까.

 

캠핑장에서는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쓰긴 하나 사용시간을 네 시간으로 제한한다.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텐트 안은 어두워진다. 텐트 틈새로 들어오는 이끼와 야생화의 향기를 맡으며 두 사람은 잠에 빠져든다.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

 

이튿날 아침.

일행은 일찍 가방을 챙기고 무트노브스키 화산을 향하여 출발했다.

 

슬로프를 따라 가는 길은 화산에서 튀어나온 암석으로 가득하다. 절벽으로 된 협곡을 쭉 따라가서 분화구 주변에 이르렀다. 살아 숨 쉬는 화산이니 분화구가 폭발하면 어떡하나. 염려가 없는 것은 아니나 산의 자비에 맡긴다. 바위에서 유황냄새가 다가온다. 연기가 가까이 올 때는 ‘숨을 멈춰라’고 가이드가 말한다. 한쪽에는 만년설이 덮여 있어 그야말로 ‘불과 얼음’의 공존이다.

 

울퉁불퉁한 용암길을 걸을 때 남성들은 넘어지려는 여성들의 손을 잡아 준다. 힘들고 어렵지만 홍기연은 그런대로 잘 따라가는 편이다.

 

“그래도 여성의 손을 잡아주셔야지요.”

 

착한 얼굴을 한 독일 남성이 기어코 사공박에게 책망하듯 말했다.

이때서야 어색하게 홍기연의 손을 잡는 사공박의 행동은 옆에서 보기에도 어색함이 완연하다.

 

모투노브스키 화산을 내려와서 한참 평지를 걸은 후 이제 고렐리 화산으로 향한다.

 

고렐리 화산은 무트노브스키 화산보다 올라가기가 더 힘들다. 점심으로 축적해 놓은 칼로리가 거의 다 빠져나갔는지 벌써 힘이 부친다.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 이어지는 탓도 있다. 빨리 분화구에 올라가서 백두산 천지를 보는 기쁨을 맛보고 싶다.

 

올라가는 도중 멀리 벨류친스키 화산이 보인다. 날씨가 더 맑은 날에는 이 방향으로 아바친스키 화산과 코략스키 화산을 볼 수 있다고 가이드는 말한다. 이 두 화산은 페트로파블롭스크와 가장 가까운 화산들이다.

 

고렐리 분화구의 중턱에서 연기가 솔솔 피어오른다.

지구가 숨을 쉬는 것 같다.

파란 물, 천지의 장관이 펼쳐진다.

땀을 흘려 봐야 경치의 진가를 안다.

 

분화구를 한 바퀴 돌았다. 여자를 혹사시키는 것 같아 사공박이 손을 내밀었으나 그녀는 걸을 만하다고 말한다. 여자의 인내심과 자존심과 독립심이 똘똘 뭉쳐 종아리에 쥐가 나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으나, 홍기연이 아픔을 호소하지 않는 것은 다행이다.

 

고렐리 화산에만 분화구가 11개나 있는데 다 돌지 못하고 두 개만 돌았다.

 

고렐리 화산을 내려와 페트로 시로 향하기 위해 헬기에 올랐다.

 

“종아리 좀 주물러 주실래요?”

 

느낌이 이상한지 홍기연은 사공박에게 다리를 내 맡겼다. 고통이 동반되는지 얼굴을 찡그렸다. 화산에서 이랬더라면? 난감했을 뻔.

 

좌석 벨트를 매자 홍기연은 곧 잠에 빠져들고 만다. 캄차카 여행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님을 잠 속에서 알아가는 중일지도.

 

헬기가 모레 방문할 가이저밸리와 우존 칼데라호의 상공을 지나서 주도 페트로에 가까워지매 내일 탐방할 아바찬만의 푸른 바다와 해안이 시계 안으로 들어온다.


▲무트노브스키 화산 아래 캠핑장(뒤에 이동용 특장차가 보임)


▲연기가 구름으로 보이는 무트노브스키 화산



▲살아 숨쉬는 화산(바위에서 연기)



▲고렐리 화산 쪽에서 멀리 벨류친스키 화산이 보임



▲고렐리 화산에서 내려가는 길

 

 

아바차 만

 

페트로파블롭스크 호텔에 오니 마치 긴 여행을 마치고 고향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무엇보다 샤워기가 힘차게 물을 쏟아낸다는 점이 감탄스럽다. 두 사람은 교대로 샤워를 마쳤다. 그리고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함께 거울 앞에 섰다.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씩 소감을 피력한다.

 

“행복이 따로 없네요.” 여자의 말.

“낙원이 따로 없구려.” 남자의 말

 

트레킹의 피로에서 해방되었으니 미소를 지을 만하다.

 

가상부부로서 무리 없이 여행하고 남녀의 예의를 준수한 것은 모름지기 협력이요 예술이라며 서로를 추겨세운다.

 

모처럼 호텔에서 편안한 밤을 보낸 그들은 피로한 몸을 풀 겸 오늘은 관광택시를 임차해 둘만이 시내관광을 하고 배로 아바차만을 돌아보기로 했다. 우선 레닌광장을 지나서 캄차카대학과 캄차카 종합청사를 거쳐 간다.

 

“모든 관공서가 한군데에 몰려 있네요.”

 

홍기연에게는 흥미로운 광경이다. 겨울에 폭설로 이동하기가 어려운 캄차카에서는 필요에 의한 방편이라고 기사 겸 가이드는 설명한다.

 

시내에서 꼭 들러야 하는 곳은 역사박물관과 화산연구소이다. 화산이 많은 지역답게 화산연구소는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곳이다. 지진계의 바늘이 진동할 때마다 마치 발밑이 흔들리는 기분이다.

 

화산연구소를 나와 페트로 항구로 향한다.

 

“저기 서울 시내버스가 보이네요.”

 

홍기연이 본 것은 시내 노선버스였다. 차체에 ‘서울역-수유리’ 노선 표시가 그대로 붙어 있다. 지나가는 버스 중에는 부산시의 노선도 있고, 심지어 공주시의 것도 있다. 버스의 90퍼센트가 한국 중고차라고 한다. 한글 표시를 떼면 가격이 하락한다나.

 

아차만 안에 있는 페트로파블로프스크 항은 1729년 베링이 처음 발견한 후 러시아의 북극해 진출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겨울에는 만이 얼어 입항이 불가능하다. 소코뚜레 모양을 한 아바차만은 태평양의 높은 겨울파랑을 막아준다.

 

검은 모래 해안은 푸른 바다의 아바차만을 품고 원형을 이룬다. 해안 마을에는 수산시장이 있고 야외온천과 온천 수영장이 있다. 마을의 지하 2천 미터에서 80도 이상의 지열수를 뽑아 지열 발전기를 돌려서 전기를 생산하고, 또 온수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페트로 시내 등 각 지역으로 이송하여 시내 한복판에서도 온천수로 사용하기도 하고, 비닐하우스로 보내 오이나 토마토를 재배하기도 한다. 일조량이 부족한 겨울에도 싱싱한 채소를 재배할 수 있는 이유다.

 

극동 러시아 여행 중에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코스가 있다.

러시아식 사우나 ‘바냐’이다. 돌을 데우는 데 4시간쯤 걸린다.

 

“사우나가 하나뿐이므로 함께 들어가셔야 합니다.”

 

일행이 혹시 주저할까 봐 사우나 주인은 미리 못을 박아 놓는다. 모르는 사람들끼리지만 일단 벗겨 놓으면 일체감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게 사람이다. 남녀가 망설임 없이 들어간다. 허리에 수건만 두르고.

 

“피부가 참 고와요.”

 

원주민 이텔멘족 여주인이 홍기연의 깨끗한 피부를 칭찬했다. 얼굴 생김이 비슷하니 자신의 피부도 좋다는 걸 암시하는지 모른다. 그녀는 잎이 달린 자작나무 가지를 홍기연에게 주며 어깨를 두드려 보라고 한다. 혈액순환을 좋게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선상 관광이다.

 

만의 입구에 신비롭게 솟아 있는 삼형제 바위의 기암괴석이 유명하다. 물 위로 우뚝 솟은 모습은 만의 입구를 지키는 헌병의 위용이다. 멋진 광경이라고 다들 입을 모은다.

 

배는 태평양으로 나가는 바닷길의 남쪽에 있는 무인도로 향한다.

 

섬에는 야생조류의 천국이다. 새는 바다에 떠 있다가 다이빙해서 물속으로 사라진다. 잠수해서 물고기를 잡아먹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은 행운이다. 카메라에 담는 순간을 놓친 것은 아쉽다.

 

싱싱한 활어회와 함께 점심을 먹는 사이, 다이버가 성게를 잡아 칼로 까주는 친절을 보였다. 모래와 자갈이 많은 곳에 가자미가 많이 잡히고 킹크랩도 쉽게 건져 올려진다고 말한다.

 

“간장과 와사비에 찍어 먹어보세요.”

 

백퍼센트 청정 성게 파티.

가상부부는 오랜만에 괜찮은 먹거리를 만난 것이다.

만족감을 보이는 홍기연에게 사공박이 기분 좋게 말할 수밖에.

 

“피곤하지만 이렇게 먹으니 좋잖아요.”

 

“괜찮지만…… 여행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요.”

 

“일단 비용은 잊어버려요. 이런 곳 아무나 올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대부분의 비용을 사공박이 부담했지만, 그럴수록 비용을 절약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홍기연에게 늘 따라다니는 건 어쩔 수 없다.

 

캄차카 반도의 동쪽 연안은 가파른 언덕으로 둘러싸인 부두가 많다. 그중 루스카야 부두가 유명하다. 요트나 보트를 타고 와서 주변 산에 올라가 프리라이드나 백컨트리 등 자전거나 자동차 주행을 즐긴다.

 

바다를 뚫고 나온 암석, 절벽에 둥지를 튼 수천만 마리의 새, 바다로 떨어지는 굉음 같은 폭포, 바다사자들의 서식지…… 어우러진 장관은 캄차카가 주는 선물이다.

 

선상 관광을 마치고는 시내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날은 가이저 밸리와 우존 칼데라로 가는 여정이다.



▲아바차만에 있는 페트로파블롭스크 캄차츠키(노란색)



▲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캄차츠키 대학교


 

▲아바차만의 어촌 마을(겨울)


▲지하 2천미터 온천수 파이프라인


▲파블롭스크 앞에 아바차만의 입구에 있는 삼형제 바위


온천수로 겨울에도 싱싱한 채소 재배(화산옥토, 통기성)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