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기회의 땅 러시아

기회의 땅 극동러시아(제23회)

오선닥 2016. 10. 3. 14:54

사람의 발길이 뜸한 캄차카

대부분 세계자연유산 지역

온천 열광자가 캄차카로 가다

수차에 걸쳐 게재합니다




  

 

 

제23회

 

 

캄차카

 

순수한 자연을 찾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원시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막을 순 없다. 할 수만 있다면 어머니의 뱃속으로 도로 들어가고 싶을 정도. 그래서 사람들은 남북극을 찾고 히말라야를 찾으며 캄차카를 찾는다.

 

“지상에서 달 여행 기분을 만끽하려면 캄차카로 가라!”

 

누군가 말한 것을 기억한다.

 

러시아의 동쪽 변방이요, 지구상에서 끝자락이며, 세계에서 화산이 제일 많다는 캄차카. 지구상 화산의 20퍼센트가 모여 있는 곳.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사람의 발걸음이 적었던 곳이다. 순수 자연이 때 묻을까 지금도 방문객 수를 제한하고 있다.

 

“우린 입국 허락을 받았죠?”

 

인천공항을 떠나기 전 홍기연이 사공박에게 물었다. “당연하지요” 말한 사공박은 미지의 지역을 여행하는 만큼 철저한 준비를 했으니 안심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사공박과 홍기연은 캄차카 여행을 하는 동안은 부부로 행세하기로 했다. 숙박 등의 비용 문제가 고려되었지만 40대 중반의 남녀가 여행객들 사이에 가십거리가 되고 싶지 않아 아예 부부로 공표해 버리자는 것. 특히 화산 트레킹은 헬기 탑승 인원을 구성해야 하므로 서로가 모르는 사람들도 만나야 한다.

 

“어디까지나 가상부부예요.”

“물론입니다. 임시부부.”

 

캄차카로 가는 도중 두 사람은 관계의 정의를 분명히 했다. 스스로 착한 사람이라고 믿는 순수한 사람들이 지금 순수한 땅으로 가고 있다. 어쩌면 행복의 주머니 몇 개를 챙겨올 건가.

 

한국에서 캄차카의 주도 ‘페트로파블롭스크 캄차츠키’까지는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유한다. 블라디보스토크나 사할린에서 배로 가는 방법도 있으나 시간이 오래 걸린다. 캄차카까지 연결되는 철로는 없다. 마가단 주와 캄차카 사이에 거대한 산지가 있어 캄차카까지 철로를 내기 어려운 탓이다.

 

2010년 8월 초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서 반나절 대기한 후 3시간 반 비행 끝에 저녁 무렵 페트로파블롭스크캄차츠키에 도착했다.

 

캄차카반도 남쪽에 위치한 페트로파블롭스크는 북위 53도로 러시아 극동에선 비교적 따뜻한 곳 중 하나로 1월 평균기온은 영하 8도, 8월은 13도 수준이다.

 

호텔에 도착하여 저녁식사를 마친 후에야 그들은 편안한 기분을 느꼈다. 블라디에서 캄차카로 오는 비행기가 예정보다 출발이 늦어 그들의 피로는 가중되었다. 호텔 정원을 산책하면서 캄차카의 여름밤을 느끼며 피로를 털어나가는 중,

 

“우리가 도착한 곳이 페트로파……스키?”

 

“‘페트로파블롭스크캄차츠키’랍니다.”

 

홍기연이 캄차카 주도 이름을 끝까지 발음하지 못하고 얼버무리자 사공박이 정확하게 발음해주었다.

 

“도시 이름이 숨 막히게 기네요. 그냥 ‘페트로’로 해도 될 텐데…….”

 

“글쎄, 내 말이. 근데…….”

 

300년 전 캄차카반도로 항해해 온 유명한 탐험가 비투스 베링이 처음 발견한 곳이 바로 이 항구이다. 배 두 척으로 탐험했는데, 하나는 ‘페트로호’였고 다른 하나는 ‘파블로호’였다. 묶어서 부른 것이 항구 이름이 됐다. 캄차카반도 남쪽 아바차만 안에 자리 잡은 페트로파블롭스크는 태평양의 거친 파도를 막아주는 천혜의 피난처 항구이기도 하다.

 

캄차카 투어의 콘셉트는 생태여행이다.

그럼 두 남녀가 캄차카에 왜 왔는가?

 

가장 중요한 질문이 될 수 있다.

호기심은 화산과 곰과 연어에 집중된다.

 

환태평양 화산대에 속하는 캄차카(Kamchatka)반도에는 클류체프스키(4,750미터) 산이나 톨바치크(3,682) 산 같은 화산들이 많이 있다. 화산 300여개 중 활화산 29개는 캄차카 화산군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어서 ‘살아 숨 쉬는 땅’으로 불린다. 불곰 2만 마리가 서식하는, 인간의 손이 잘 닿지 않은 땅이다.

 

태평양과 오호츠크해 사이에 있는 캄차카반도의 면적은 한반도의 2배 조금 넘는다. 남북 간 길이가 1,200킬로미터이니 한반도나 사할린보다 조금 길다.


▲페트로파블롭스크 캄차츠키 위치 지도



▲뚜껑 열린 화산



▲페트로파블롭스크 캄차츠키 공항



▲캄차카지방 종합공공청사(캄차카지방청ㆍ지방의회ㆍ지방경찰청ㆍ페트로시청

ㆍ시의회ㆍ지방법원ㆍ지방검찰청 등 각종 공공기관이 몽땅 입주해 있는 건물)

 

 

페트로파블롭스크 캄차츠키

 

“이제 본격적인 캄차카 투어가 시작되네요.”

 

홍기연은 상기된 기분을 숨길 수 없다. 은둔의 골방에서 나오지 않은 지 얼마 만인가. 캄차카의 대자연을 접하는 것은 가슴 떨리는 일이다.

 

“생각보다 시내가 크네요.”

 

사공박과 홍기연이 페트로 시내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창문을 열었을 때 홍기연이 말했다.

 

여름은 뇌우를 동반하는 등 변덕스런 날씨가 많다고 하나 오늘 화창한 날씨가 마음에 들었다. 파란 바다의 경치와 주변의 파릇한 풍광은 8월의 여니 한국 항구 도시와 다름없다. 오지인 줄만 알았는데 도시의 크기가 예상 밖에 크다.

 

두 사람이 지난밤을 어떻게 보냈는지는 묻지 않는 게 예의일 것 같다. 같은 방으로 들어갔으나 방 구조가 어땠는지 다른 사람은 모른다. 다만 룸서비스 여인은, 바다 쪽을 바라보는 트윈베드의 머리맡에 티슈가 있는 걸로 봐서 ‘여자가 이쪽이었을 것’으로 짐작했을 뿐이다. 여행의 피로와, 금과옥조 같은 약속 때문에, 그들은 각자의 침대에서 아침까지 골아 떨어졌으리라.

 

캄차카의 주민들은 대부분 행정 중심지인 페트로 시에 살고 있다. 캄차카 전체 인구 36만 중 절반인 18만 인구가 주도에 살고 있는 것이다. 반도의 나머지 부분은 인구가 매우 적고, 해안과 강가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들은 대부분 배나 비행기로만 이동이 가능하다.

 

캄차카에는 러시아인이 대부분이고 원주민은 수천 명가량 남아 있을 뿐이다. 가장 큰 부족은 북부 지역에 살고 있는 코랴크족이고, 그 외에도 축치족과 이텔멘족, 에벤족이 있는데, 이들은 고유의 부족 언어를 가지고 있다.

 

사공박과 홍기연은 시내 구경보다 먼저 화산을 보기로 했다. 트레킹 팀의 스케줄이 그렇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에 의해서 단체로 움직입니다.”

 

가이드의 안내는 신중하게 시작됐다.

 

캄차카는 혼자 돌아다닐 수 없다. 팀으로 행동한다. 길이 없으니 헬기나 특수차량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일정 인원의 팀을 확보하는 것은 비용과 안전의 목적 때문이다.

 

일행은 러시아인 3명과 유럽인 8명 그리고 동양인 2명으로 구성됐다. 동양인은 사공박과 홍기연을 말한다. 러시아인 외는 모두 커플로 50대가 대부분이고 30대도 있다.

 

“참 보기에 좋습니다.”

 

사람들은 사공박과 홍기연을 40대 부부로 여기고 다정한 동양인이라며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부부가 아니라고 구구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설명을 하고 이해를 시키자면 시간이 걸리고 언어의 밑천이 드러날 수도 있다.

 

“부부로 인정해주니 기분 나쁘지 않네요.”

 

홍기연은 현재의 기분을 숨기려하지 않았다. 그녀의 이런 생각과 행동을 사공박은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받아주기로 했다. 남편이 잘못된 길(사업 실패로 자살)을 선택한 후 우울의 연속이었던 그녀를 위로하는 것은 남편의 친구로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외출은 일 년 반 만이다. 가마솥골(사람들은 부곡이라 부르더라)에서 두각을 나타낸 호텔이 온천물이 고갈되자 손님이 뚝 끊어졌다. 남편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호텔이 망하는 데는 15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빚쟁이에 시달리다가 남편은 질긴 노끈을 준비했고, 가마솥골 뒷산의 든든한 나무를 찾았다. 사람의 출입이 적은 어스름 저녁 시간에 나뭇가지 하나에 몸무게를 맡겼다.

 

과부가 된 홍기연은 가마솥골 온천을 포기했으나 펑펑 쏟아지는 온천물에 대한 동경은 끊이지 않았다. 온천물이 솟구치는 꿈을 꿀 정도였다. 남편의 영혼을 달래주는 방법은 마르지 않는 온천수의 호텔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연 씨, 외국 온천여행이라도 갔다 오면 어떨까요?”

 

사공박은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고 캄차카 여행을 권유했다. 지도를 펼치며, 온천물이 지천으로 흘러내리는 별천지가 있다는 설명을 빠뜨리지 않았다.

 

“저 혼자서요?”

 

“무방하시다면 같이 가도 되고요.”

 

맥락 없이 던진 말이었으나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던지, 한동안 기능이 멈춘 로봇처럼 가만히 앉아 있던 그녀가 반응을 보였다. 위로의 말로 도닥일 수 없던 것을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분위기를 바꾼 것이다.

 

캄차카에서 첫 밤을 보낸 후, 이제 헬기를 타고 쿠릴스키예 호수와 일린스키 화산으로 간다.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캄차츠키 시내(여름)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캄차츠키 시내(겨울)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캄차츠키 항구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캄차츠키 항구(겨울)

 

 

쿠릴스키예 호수와 일린스키 화산

 

상공을 지날 때, 홍기연은 여기저기 원추 모양의 산꼭대기에서 솟아오르는 커다란 연기 뭉치를 보았다. 산도 밥을 짓나? 정말 화산이 많은 곳이다. 그럼 온천도 많을 텐데, 울컥 남편 생각.

 

사공박은 그녀의 기분을 읽었는지 아래쪽으로 가리켰다.

 

“저기 하천, 수증기 보이죠. 노천온천이랍니다.”

 

재작년 캄차카를 방문한 적이 있는 그는 경험자답게 설명했다. 노천온천에서 수영하고 있는 사람들도 여럿 보인다.

 

헬기는 반시간 정도 날아 쿠릴스키예 호숫가에 있는 아담한 통나무집 옆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통나무집은 일행이 머무를 숙소이다.

 

숙소가 있는 작은 마을에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8월 여름의 날씨는 호수 위 하늘에 진한 구름 덩어리들을 매달아 놓았으나 오히려 경치를 깨끗하게 드러내도록 도와준다. 볼 것 다 보고, 느낄 것 다 느끼고 싶은 욕심이 홍기연을 사로잡는다.

 

넓은 호수를 건너 일린스키 화산이 또렷하게 보인다. 원추 모양의 봉우리 머리를 덮은 것은 화산재요, 그 아래는 만년설이며, 중턱 아래는 푸른 초목으로 덮여 있다. 이런 걸 자연의 공존이라고 하는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네요.”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홍기연의 일성이다.

사공박은 곁눈으로 그녀를 살짝 봤다. 여태껏 보지 못했던, 야생화만큼이나 밝고 맑은 표정이다.

 

펄쩍 펄쩍

 

쿠릴스키예 호숫가의 연어가 물 밖으로 튀어 오르는 소리다. 연어의 뛰는 소리는 사람의 귀에도 좋지만, 이 소리를 더 좋아하는 놈이 있다. 바로 호숫가를 어슬렁거리는 불곰이니라. 앞발이 식사 준비태세에 들어간다. 민첩하게 연어를 잡아 옆구리를 물어뜯고는 먼저 한입 넣고, 나머지는 다가오는 새끼에게 준다.

 

숙소 앞 넓은 들에 흐드러지게 펼쳐진 야생화가 보기 좋아 사공박은 모델을 앞에 세웠다. 홍기연은 모처럼 애교스럽게 섰다.

 

“두 딸에게 보여줄 거니까 예쁘게 찍어주세요.”

 

그녀의 활짝 웃는 모습은 기억에도 새롭다.

 

전망대로 올라가 사람마다 카메라의 줌을 늘이며 연어를 잡고 있는 곰을 찍기 바쁘다. 호수 안전요원이 곰 근접 접근 위험을 강조한다.

 

숙소에서 상당히 떨어진 툰드라 지역으로 떠났다. 넓은 들에는 곰은 잘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도 연어 포식을 위해 강가로 간 모양이다. 산책 나온 한두 마리 곰이 보여도 사람을 보고 슬그머니 도망간다. 기분 좋게도 다양한 색깔로 몸단장한 야생화가 반겨준다. 계절 따라 피는 야생화를 지켜보며 곰발자국 따라 툰드라 들판을 걸어가는 일행의 모습. 이런 걸 보기 위해 먼 곳에서 미지의 땅으로 왔는가.

 

낮이 길어 잠잘 시간을 놓칠 수도 있으나 다음날 여정을 위해 저녁 후 산책을 조금 하고는 곧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숙소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개울로 나갔다.

새끼 3마리를 거느리는 어미곰이 보였다.

 

“강아지만큼이나 귀여워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곰 가까이 가지 않으려는 여인, 그녀는 사공박 곁에서 맴돈다. 곰은 어디까지나 곰이니까.

 

겨울이 오기 전에 곰은 새끼를 빨리 키우고 몸집도 35퍼센트를 더 늘려야 한다.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연어도 먹고, 풀도 먹고, 때로는 나무뿌리도, 닥치는 대로 먹어둬야 한다.

 

저녁에는 검은 구름이 몰려오더니 세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늦게나마 헬기가 뜰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다. 다음 목적지는 그리 멀지 않은 무트노브스키 화산 지역이다. 거기서 캠핑할 예정이다.

 

여행은 고통이면서 행복으로 기억되는 것은 무슨 조화인가.



▲하천의 노천온천


▲사람들이 노천온천에서 수영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쿠릴스키예 호수와 일린스키 화산


▲쿠릴스키예 호숫가 숙소


▲쿠릴스키예 호숫가에 곰들이 어슬렁


▲쿠릴스키예 호수 숙소 앞 야생화


▲툰드라 지역 탐방


▲개울가에서 노는 어미곰과 새끼곰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