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일본을 배우다

일본을 배우다(상)

오선닥 2012. 6. 16. 20:24

  이어령 교수가 쓴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1982년 무렵.

 

송대길이 두 달 간의 일본해외연수를 통하여

배우고 느낀 바가 너무 많았다.

 

그러나 모두 기술하기는 무리인지라 간추려서~~

해운회사에 근무하는 분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내용이 지루하므로 해운에 관심 있으신 분만 읽으시길)

 

 

 

 

일본을 배우다(상)

 

 

일본을 배워야 한다고 사장은 틈만 나면 직원들에게 강조하곤 했다. 그러더니 기어코 일본 본사를 꼬드겨 직원 한 명을 본사에 연수 보내는 데 합의를 이끌어냈다. 사장이 애초부터 마음에 둬온 직원은 예상했던 대로 송대길이었다.

 

“송 부장,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배울 만한 것은 무조건 다 배우고 오라구.”

 

한손에 트렁크, 다른 손에 손가방을 든 송대길은 사장의 말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렸다. 짐이 무거워 빨리 차에 싣고 싶었다. 무엇보다 두 달 동안 일본을 몽땅 배우고 오라는 사장의 임무 부여는 양손의 가방 무게보다도 더 무겁게 느껴졌다.

 

김포공항까지 가방을 실어다준 황도환 과장은 업무가 염려되었던지, 연락처를 분명하게 해두고 싶었다.

 

“업무연락은 일본 본사 총무부로 하겠습니다.”

 

“특별한 일 없는 한 총무부로 해요. 황 과장과 주리 씨의 업무가 많아질 것 같아 미안하군.”

 

송대길은 업무연락이 약간은 걱정되었으나 사무실이든 숙소든 전화와 팩스가 가능하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다.

 

부서원에게 짐을 지우는 건 솔직히 미안한데, 황 과장은 엉뚱했다.

 

"자주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주리 씨 일본에 초청할 수 있도록 일거리 하나 만들어 주세요.”

 

본인 이야기를 하는 걸로 들렸다.

 

본사 총무부 직원이 나리타공항까지 마중 나오는 친절을 보였다.

하네다공항을 대신해서, 개항한 지 4년밖에 되지 않아 낯선 공항임을 감안해 안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도심에서 60km이나 떨어진 곳에 신공항을 건설한 것은 향후 확장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하라주쿠(原宿)에 있는 본사 기숙사에 짐을 풀었다. 그가 두 달 동안 머물 숙소는 일본 젊은이들이 북적거리는 지역에 있다. 서울의 동숭동 대학로라 할 만큼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활기 넘치는 곳이기도 하다.

 

기숙사에서 2, 3분 걸으면 넓은 거리가 나온다. 주말이면 자동차가 없어 젊은이들로 꽉 차있다. 총부부 직원은 여기 기숙사가 인기 좋은 것은 이런 환경 때문이라고 하면서 휴일이면 멀리 나들이 나갈 필요 없이 여기에만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거라고 한다.

 

사감 같은 아주머니는 일 년 이상 오랫동안 머물 사람처럼 유의사항이 빽빽이 박힌 기숙사 수칙을 건네주었다. 특히 그녀는 식사시간을 넘기면 굶어야 하는 것, 여성을 입실시킬 때는 자기에게 보고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가방을 내려놓고 손 씻는 사이, 총무부 직원은 내일 뵙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회사로 돌아갔다. 오후 5시라면 집으로 바로 가도 되는데 곧장 사무실로 가겠다는 것은 업무정신이 투철하다는 뜻이다.

 

바지도 벗지 않고 침대에 들어 누워 있는 중에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 우지직

 

꿈속에서 건물이 흔들리고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에 불현 듯 일어났다. 새벽 4시였다. 테이블 위의 물컵이 떨어져 있었고, 물이 방바닥에 쏟아져 침대 밑으로 뱀처럼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꿈이 아니라 걸 알았는데도 꿈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이걸 지진이라고 한다.

 

그는 겁을 잔뜩 먹고 일층 정원으로 내려갔으나 사람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관리 아주머니는 왜 일찍 잠이 깼냐는 식으로 쳐다보았다.

 

“지진 때문에 내려오셨군요. 놀라지 마세요. 이런 일은 밥 먹듯이 일어나요.”

 

규모 3.7 지진의 진원지는 도쿄 앞바다라고 한다.

아무것도 아닌 걸 두고 혼자서 난리법석을 떨었던 셈이다.

 

일본 체류 신고식은 이렇게 호되게 치렀다. 본사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아무도 지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호흡만큼이나 일상적인 일로 여겼다.

 

 

총무부장 요시다는 송대길을 전무에게 안내했다. 사장은 지방출장 중이라 인사하지 않았다. 설사 사장실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도 일부러 인사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격식은 때때로 시간을 좀 먹으니까.

 

전무는 한국에서 골프 라운딩을 한 적이 있어 몇 년이나 사귀어온 사람같이 대했다.

 

“송 상, 여러 부서의 순회연수로 힘들더라도 좋은 성과가 있길 바래요. 각 부서마다 특성이 있고 하니 잘 익혀두면 한국에서 일하는데 도움이 될 거요. 유익한 경험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불편한 것 있으면 총무부장과 상의하도록 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여직원이 갖다놓은 커피를 앞에 두고 전무는 친절함이 무슨 의미인지 가르치는 사람 같았다.

 

“감사합니다.”

 

대화 도중 감사하다는 말과 더불어 열심히 하겠다고 여러 번 다짐했다.

일본에선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게 좋다는 사장의 말이 유난히 기억났다.

 

남성들의 단정하고 사무적인 표정에 비하여 여성들의 상냥함이 돋보이는 것이 회사의 첫인상으로 각인된다. 남의 나라 사무실에서 많은 여성들을 상대하자니 심장의 맥박이 균형을 잃고 제 맘대로 뛰려고 하는 것 같다.

 

커피와 관련한 사무실 풍속도는 흥미를 자아낸다.

총무 부장과 마주 앉았을 때 송대길은 이유를 알고 싶었다.

 

“남자 직원한테 모닝커피 정도는 대접하는 게 분위기에 좋지 않을까요?”

 

총무 부장은 웃으면서 엉뚱한 말로 대답했다.

 

“여직원유니온이 커피 시중은 금지하고 있어요. 단지 상무 이상에게는 서비스 차원에서 대접하고요. 송 상은 손님이고…. 글쎄 미남한테는 개인적으로 대접할 수도 있겠지만.”

 

유니온은 노조를 말한다.

출근하자마자 차를 한잔씩 돌리는 한국 여직원들에겐 평소 고맙다는 표현에 인색했던 것이 새삼 죄송했다. 물론 30년 후쯤이면 한국이 따라 하겠지만.

 

총무부장이 선장 출신이라는 것을 믿는 데는 여러 번 고개를 갸우뚱해야만 했다. 경리, 관리, 인사 등의 업무는 육지에서 닳고 닳아 인생, 세상사를 잘 요리할 줄 아는 사람이 맡아야 되는 것이 아닌가.

 

총무부장은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아니 풍부한 상식을 갖고 있었다. 그는 해운자료실에서 책 한 권을 갖고 나와 책상 위에 올려놓고 같이 보자고 했다. 회사연감이었다.

 

“시간도 있고 해서 커피나 마시면서 이야기하죠.”

 

여유 만만하고 심신의 밸런스가 있어 보이는 총무부장.

그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회사 설립은 1919년인데 사실 같은 일본선사인 N사 의 1885년, M사의 1884년에 비하면 30년 이상 늦은 편이지요. 그리고 본사의 직원 수는 600명 정도인데 N사의 1700명, M사의 800명에 비하면 적은 편이지만. 본사 직원 중 해상직원은 1/4 정도로 보면 될 겁니다. 전 세계 현지법인이나 그룹 전체의 직원 수는 본사 인원의 10배 정도로 추산하면 될 거고요.”

 

그의 숫자 기억력은 케네디 대통령 시절의 맥나마라 국방장관 못지않다.

 

한국의 현대상선이 1976년 태생, 한진해운이 1977년이니 이들은 일본선사에 비하면 햇병아리에 불과하다. 물론 한진해운의 경우 전신인 해운공사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1945년이 되겠지만.

 

조선이 당파에 매몰되어 있을 때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으로 신문화를 받아들이더니 곧 해외진출을 위해 선박회사를 키워나갔던 것이다. 일본의 상선대(商船隊)는 제2차 세계대전 때에 거의 괴멸되었으나, 전후 정부 지원에 의한 계획 조선이 추진되어 세계 최대의 상선국이 되었다. 산업 에너지의 전환에 따라 탱커를 비롯한 전용선(專用船)이 증가하고, 또 항만의 근대화가 진척되어 컨테이너선이 증가했으며, 연안항로에는 자동차교통의 발전을 반영하여 카페리의 취항이 급증했다.

 

마치 그는 해운역사를 가르치는 교수 같았다.

 

“일본선사들은 이제 지팡이 짚고 다녀야 할 나이죠. 그렇지만 신조선(新造船)으로 수혈을 하니 세포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요.”

 

말에 조미료를 뿌릴 줄도 알았다.

 

세월이 흘러 2007년 운항선박 수는 K사가 450척, N사 700여척, M사 800여척이나 된 적이 있었다. 한국과는 달리 대주주는 대부분 금융회사로 돼있다. 한 때는 일본 선사가 세계에서 가장 컸으나, 2010년대는 정기선사인 덴마크의 머스크라인이 단연 두각을 나타낸다. 머스크는 1904년에 설립, 현재 운항하고 있는 컨테이너선만 500척 이상으로, 보유 컨테이너상자 수가 무려 190만개나 되는 회사로 성장했다.

 

대화 진행 중에 송대길은 한국 상선에 대한 설명을 간주로 끼어 넣었다.

 

“현대상선은 우연하게 탄생했는데, 계열사인 현대중공업에서 건조한 VLCC 3척을 유럽 선주가 해운불황의 이유로 인수하지 않아 부득이 가져와서 만든 회사입니다. 전화위복이라 할까요. 1976년 당시 상호는 ‘아시아상선’이었으나 금년에 현대상선으로 개명한 거죠.”

 

“그렇군요. 한국 상선은 앞으로 많이 성장할 겁니다.”

 

한일 해운역사에 지면을 너무 많이 할애할 순 없으니 넘어가자.

 

 

 

 * * * * *

(경영지원부서)

 

일본 회사는 송대길의 일본 연수 중 부서가 준수해야 할 특별한 원칙을 세워두었다.

 

- 부서마다 한 번의 회식, 과마다 한 번의 식사대접

- 회식은 평일에 한하고 2차까지만 허용

- 여자직원의 동행은 밤 10시까지로 제한

- 야간 택시비는 도쿄시내로 하고 시외는 일반대중교통 이용

 

참 희한한 규칙도 있다. 공금 사용에서 얼렁뚱땅, 두루뭉술에 익숙한 한국 사람에겐 신기하리만큼 구체적이다. 공사(公私)를 구분하는 일본인의 태도가 충분히 발휘된 조건들이다.

 

이틀에 한 과씩 순회하면 두 달 동안 업무적으로 한 바퀴 도는 셈이다.

승선근무 때는 업무나 운동으로 갑판을 돌고, 항해 시는 지구를 돌고, 여기 일본 회사에서는 부서를 부지런히 돌아야 한다. 돌면서 어지럼에 면역을 키우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 운명은 계속된다.

 

한국을 출발하기 전 사장은 일본의 여러 시설들을 돌아볼 것을 강조했다. 나중 업무수행에 많은 도움이 될 거라는 것. 사장의 맏형이 일본에서 파친코로 돈을 좀 모았는데 지하철역을 돌아다니며 점포를 물색한 덕분이었다고 했다. 역시 도는 것이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결론을 터득한 셈.

 

 

회사는 생물체와 같아 유기적인 조직으로 운영되어 나간다. 여러 부서 조직들이 잘 연결되어 하나의 몸통으로 움직일 때 살아있는 조직체가 되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영업부서가 중요하지만, 이를 지원하는 부서들이 원활히 활동함으로 해서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경영지원부서는 다음의 세포조직들을 포함하고 있다.

 

- 총무, 인사, 비서

- 경영·기획·IT전략

- 재무

- 법무

- IR(Investor Relation: 투자자관리)·홍보

-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책임)·CR(Compliance & Risk: 규제준수와 위험관리)

- 내부통제·내부감사·정보시스템·감사

- 신사업추진

 

이들을 담당하는 부서 내지 팀이 있고, 이들은 회사의 규모에 따라 개별 혹은 일부를 통합해 관리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회사 내외부의 환경변화와 규제강화가 날이 갈수록 심화됨에 따라 지원부서의 역할은 점점 중요시되고 업무의 전문성을 요구하게 되었다. 해서 조직도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기업의 사회책임은 경제적 책임이나 법적 책임 외에도 폭넓은 사회적 책임을 적극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환경파괴, 인권유린 등 비윤리적 행위 저지, 국제규격 준수 등 환경경영, 정도(正道)경영, 사회공헌을 도모한다.

 

직원들이 웬만큼 송대길을 알아볼 무렵 총무부장은 그를 경영기획실 과장 레이카(玲香)에게 안내했다. 그녀는 일찍이 회장의 비서에서 출발하여 경영기획실의 간부까지 올라간 여성으로서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의 MBA과정을 수료했다. 결혼 후에도 악착같이 자기 계발을 해온 여성이다.

 

회의실로 안내한 레이카는 비서출신답게 스타일의 참신한 맛을 풍겼다. 이름만큼 고운 향기를 발했다.

 

그녀는 예쁜 머그잔에 일본녹차를 따랐다.

 

“한국 분들은 스마트하셔서 일을 쉽게, 그리고 빨리 배우시는 것 같아요.”

 

손님 앞에 잔을 내려놓는 레이카 과장은 대화의 머리를 이끄는 모습도 능숙했다. 40세 전후 여성의 손등 피부는 섬세한 일처리로 매끈해졌나.

 

“송 상은 선장출신이니 선박에 대해서는 해박하실 테고, 그래서 선박 외 관련 사항만 말씀드릴게요.”

 

쳐다볼수록 지혜가 넘치고, 많은 사람을 원하는 대로 다스릴 줄 아는 여성같이 보였다. 여비서라는 직업이 전화 연결이나 차 심부름하는 것으로 여기는 전통적 사고와는 멀다는 것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고, 미래는 드러나지 않는 것이니, 현실에서 모든 힌트를 얻는 사람 같기도 했다.

 

해운의 트랜드를 이야기할 땐 적절한 비유가 예수의 산상수훈을 듣는 기분.

현재의 트랜드는 물결과 바람이다. 타면 즐길 수 있고 거슬리면 힘들고 곤혹스럽다. 바람이란 늘 제멋대로 불긴 하지만 겨울에는 북풍이 일반적이듯 트랜드는 적어도 10년은 갈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물결이요 진로가 예상되는 바람이다.

이상은 그녀가 꿰뚫고 있는 해운전망이다.

 

내부통제시스템의 중요성은 IT산업이 발달된 최근에 더욱 커지고 있다. 핵심기술이 빼돌려지는 사건 등은 통제시스템의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1세기 일본의 내부통제시스템 시장은 컨설팅을 포함해서 매년 약 6조원. 시스템통합(SI) 기업들의 솔루션 개발이 급진전하고 관심을 모은다.

 

기업에는 외부감사 못지않게 내부감사도 중요하다. 내부감사는 자체감사(自體監査)라고도 한다. 그 목적은 회계감사는 물론, 판매·제조·보관·노무 등을 포괄하는 업무감사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레이카의 설명은 그침이 없었다.

 

“비서라는 직업의 영역은 제한이 없다고 하는 것이 좋겠네요. 소소하게는 손님 접대에서부터, 중요하게는 통역을 하거나 내외부적인 조언이나 도움을 주기도 하니까요.”

 

“그러고 보니 팔방미인여야 하는가요?”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죠. 예상되는 상황을 미리 점검하고 필요한 자료를 사전에 챙겨 상사가 신속, 정확한 결정을 내리도록 보좌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죠.”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비서는 기업의 최고경영자를 보필하는 핵심참모라는 것이다. 모시는 상사의 업무는 물론, 회사 상황을 잘 이해하면서 일일이 지시받지 않고도 사전에 필요한 준비를 완벽하게 해놓는 등, 최고로 숙련된 스태프라는 것이다. 상사가 자신의 이메일을 열어보도록 믿고 맡길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그리고 조직에 대한 그녀의 견해를 듣고 싶었다.

 

“종업원의 잠재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게 하면서 스스로 만족을 얻도록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거죠. 옛날에는 노동력을 최고로 이용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으나 지금은 협력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죠. 자동화에 따른 팀워크와 노사안정에 의한 경영이 중요시된다고 하겠네요.”

 

“인사관리와 노무관리는 같은 부서에서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보십니까?”

 

“회사에 따라서는 인사부와 노무부를 분리해서 두고 있기도 하죠.”

 

그녀는 메모를 해가면서 보충 설명을 해나갔다.

인사관리는 종업원을 최고로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므로 종업원의 채용·배치·이동·승진·퇴직 등의 고용관리, 종업원의 능력개발관리, 노동의욕관리 등을 내용으로 한다는 것. 반면 노무관리는 종업원의 생활안정과 노사관계의 안정을 목표로 하므로 노동조건의 적정화, 고용의 보장, 정년퇴직 후의 생활보장, 노사관계의 개선 등을 내용으로 한다. 그런데 두 용어가 반드시 구분해서 사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인사관리를 노사관계를 포함한 광의의 내용으로는, 첫째 직무분석, 선발과 배치, 교육과 훈련, 직무평가, 보수제도, 안전계획 등의 고용관리, 둘째 단체교섭, 고충처리, 경영참가 등의 노사관계관리, 셋째 종업원 PR, 제안제도, 인사상담제도, 동기부여, 참가적 리더십 등의 인간관계관리 등을 들 수 있다.

 

“최근 들어 영어 표기의 홍보용어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그런 것은 아무래도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아닌가요?”

 

“다국적 기업을 비롯한 많은 선진기업이 미국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잘 포착하고 있는 것 같아요. MBA과정에도 다 포함된 주제들이죠.”

 

“우선 IR, PR, CR, CRS 등을 묶어서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서 말입니다.”

 

“욕심이 참으로 많으시네요. 송 상은 일본어가 능통하고 이해도 빠르시니 지금부터 일사천리로 설명하죠.”

 

본격적인 설명으로 이어졌다.

 

“IR(Investor Relation), 즉 투자자관계가 중요시된 배경에는 그룹평가에 투자가 주가에 반영되어 기업의 자금조달을 좌우하게 된 데에 있죠. IR라는 기업설명활동을 통하여 바람직한 투자환경이 조성되고 높은 주가가 형성되어 기업이 추진하는 각종 프로젝트를 원활하게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때문이죠. PR(Public Relations), 즉 홍보가 일반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업활동 전반에 관한 홍보활동인 반면, IR는 투자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홍보활동이라 는 점이죠. 또한 PR은 일반대중을 상대하는 만큼 회사의 장점만을 전달하는 반면, IR은 기관투자가를 상대로 하고 회사의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까지도 전달하는데 차이가 있고요.”

 

그렇다.

1990년대는 ‘IR의 시대’라고 불릴 만했다. IR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각 기업에서는 IR 부서를 설치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2000년대 들어서는 기업의 최고 경영진이 직접 나서서 투자가 그룹이나 주가분석가들의 기업이해를 돕기 위해 IR 업무를 수행하는 경향도 높아졌다.

 

법규에 의거한 기업공시가 기업의 재무내용 등 기업경영과 관련된 주요사항을 증권시장에 의무적으로 공시하는 계량화된 정보제공이라면, IR은 비계량화된 정보까지 제공하는 것으로서 기업 스스로의 실상을 공평, 정확, 신속 그리고 계속적으로 알림으로써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기업들은 과거 자본의 대부분을 은행에서 차입했으나 이젠 외국인 투자가를 포함해 불특정 다수인을 상대로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게 되면서 IR의 필요성이 더 높아졌다.

 

“이제 CR(Compliance & Risk), 즉 규제준수와 위험관리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해요. 기업의 입장에서는 자주 변동되는 여러 규제를 효과적으로 준수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와 기구를 마련해서 운영할 필요가 있는 거죠. 특히 기업활동을 규제하는 각종 법규나 지침은 기업활동을 지원하는 정보시스템에 대한 규제로 이어지게 되곤 하죠. 이것은 기업의 IT Compliance 활동이라고도 하고요.”

 

“이젠 일반 규제뿐만 아니라 IT 관련규제까지 준수해야 되는 것이군요.”

 

이해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강의자에게 신명을 줘야 하니까.

영어 스펠링이 나올 때는 그녀의 발음이 너무 자연스러워 혹시 미국 태생이 아닌지 착각하기도 했다.

 

“규제 기구와 내부 통제에는 추가적 비용과 인력 투입이 요구되는데, 상당수 기업들은 규제준수를 위해 업무의 일부를 외부의 서비스 업체에 의존하거나 적절한 솔루션을 도입하게 되죠.”

 

그녀는 예를 들어 설명하기도 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이 기업의 고위험 자산 비중이 높으면 더 많은 자본금을 확보하도록 하는 규제 등 말입니다.”

 

대화중에 걸려오는 외부 전화는 다행히 보조비서가 받고 있어서 오리엔테이션을 계속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었다.

 

한편, 리스크(Risk)란 ‘손실발생의 가능성’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기업에서는 지적 자본을 통합해 운영리스크 관리 지식을 넓히기 위한 보다 개방적인 방법으로 내부 및 외부 환경으로부터 위험관리정보를 통합, 추출, 활용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조직 내의 위기의식을 높일 필요가 있다. 리스크를 회피하기보다는 리스크 수준을 지속적으로 관리, 평가 및 통제해수익성을 제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리스크 관리는 이사회가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하며, 최고경영층으로부터 Top-down방식으로 한다. 그러나 보고는 Bottom-up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 원칙이다.

 

연수 첫날부터 강행군 모드였으나 송대길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았다.

 

“이러한 마라톤식 강의를 위해선 스태미너가 필요하실 텐데 내일 인삼엑기스 한 통 갖다드리겠습니다. 다음엔 한국에 초대해서 갈비 대접도 하고요.”

 

“진즉 이런 말씀부터 나왔어야죠. 저희 남편도 초대하실 거죠? 우리 부부는 아직 한국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어요.”

 

“VIP로 모시겠습니다. 저희 사장도 좋아할 겁니다.”

 

일본에서는 자기 상관 호칭에는 존칭어를 쓰지 않는다.

레이카는 웃음으로 대꾸했다.

 

“저희들 초대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 아시죠?”

 

여성이 유머감각을 발휘할 때는 기분이 좋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녀는 다리를 꼬았다. 무릎곡선이 눈에 띄게 미끈했다.

 

“그럼 기업의 진정한 사회적 책임을 설명해 주십시오.”

 

질문이 이런 식으로 연결되는 것은 예상 밖이라는 듯 그녀는 억지웃음이라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 질문에 대답하듯 이어나갔다.

 

“CSR라고 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이 중심이 되어 경제, 사회, 환경의 측면에서 균형 잡힌 사업을 전개하며 이해관계자와의 만족과 신뢰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자는 취지이기도 하죠.”

 

추가적인 설명은 이랬다.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프로그램은 사회변화를 위해 기업을 이끄는 프로그램으로서, 기업이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사업을 운영할 것을 권장한다. 기업과의 대화, 주주의결 사항의 정리 등 책임감 있는 기업행동의 증진을 주창한다. 문화센터, 장학사업, 불우이웃 돕기, 환경보호 캠페인 등이 포함될 것이다.

 

국제표준화기구에서는 기업이나 조직의 윤리경영, 환경보호, 노동 등을 포함한 사회적 책임(SR) 표준화(ISO) 제정을 위하여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기도 하다. 2005년에 발족한 ‘SR(Social Responsibility) 표준화 포럼’은 정부, 기업, 시민단체 등 광범위한 이해관계자들로 구성되어 표준화된 가이드라인으로 환경, 인권, 노동, 지배구조, 지역사회 참여 및 사회개발, 공정관행실천, 소비자 이슈 등을 포함하고 있다.

 

송대길은 IT 전망에 대해 너무 궁금했다.

 

“한국은 금년 1982년 처음으로 인터넷망이 개설되었는데 앞으로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IT(Information Technology)전략이 상당히 중요할 것 같은데 특별히 정보기술컨설턴트가 필요할까요?”

 

일반인에 대한 상용서비스는 그로부터 약 10년 후 보급되었지만.

 

“기업이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정보시스템을 갖추고 운영할 수 있도록 제반사항을 컨설팅해주는 역할을 하니까 필요하겠으나 기업 내에 훈련 받은 전문가가 있으면 대신할 수도 있겠죠. 정보기술 컨설팅 결과에 따라 기업체의 인력배치 변화와 부서통합을 할 수도 있고 고객관리전략이나 마케팅기법 등을 조언할 수 있으므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하겠죠.”

 

정보기술컨설턴트는 직접 코딩이나 프로그래밍 업무를 하기보다는 컨설팅 프로젝트 전반을 관리하며 구축시스템의 적합성과 안정성 등을 감리하고 프로그래머와 고객요구사항을 조율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컨설턴트는 시스템 구축을 의뢰한 고객을 수시로 방문하며 시스템 구축이 완료될 때까지 기업체에 파견을 나가 상주하기도 한다. 여러 명이 팀을 이뤄 작업을 하므로 원활한 의사소통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또 고객의 요구사항을 충족시켜 주고 원활한 시스템 구축 과정을 관리하므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을 수 있다.

 

정보시스템을 고객에게 제시해 주기 위해서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등 컴퓨터에 대한 제반지식과 함께 기업전반에 걸친 업무, 시스템, 경영, 회계, 인사 등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다.

 

그러고 보니 전산실에 십여 명이나 근무하는 것은 정보시스템의 중요성이 점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레이카로부터 경영지원부서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듣고 난 후는 총무, 기획, 재무, 법무 등 개별 부서에서는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줄여도 되었다.

 

기획부장의 개략적인 부서 설명으로 충분했다.

 

“제가 경영기획을 담당하고 있지만 기획부는 기업체의 규모에 따라 역할이 다를 수 있어요. 경영기획의 부문은 대기업의 경우라면 투자타당성분석, 예산관리, 재무예측, 인사관리 등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겠죠. 저희 회사는 현재 이들을 통틀어서 합니다만 때에 따라서는 위원회를 구성해서 특별히 담당할 때도 있죠.”

 

새 정부가 들어서면 새로운 위원회가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지는 것과 비슷한가.

하긴 기업에서는 그러진 않겠지. 민간기업은 철저한 비용절감주의니까.

 

“경영의 절반은 기획이라는 말도 있는데 기획이 참으로 중요하군요.”

 

“그렇습니다. 영화를 한 예로 들면 영화의 기획과 시나리오가 흥행을 좌우하는 거죠. 영화를 어디서 촬영하고 그래픽작업을 했는지는 흥행의 중요한 요소가 아네요. 또 누가 얼마나 좋은 생각으로 기획을 했는지는 뒷전이죠. 반면에 기획서를 어디서 만들고, 누가 작업을 했는지를 심각하게 따지죠.”

 

“중요성의 포인트를 알겠습니다.”

 

머리 좋은 기획부장과 오래 대화하다간 범부의 머리를 갖고 있는 송대길의 두통이 폭발할지 모르니 빨리 다른 부서로 옮기자.

 

 

법무부서도 만만치 않았다. 도쿄상선대학 출신의 변호사가 부장으로 턱 버티고 앉아 있었다. 아예 머리 싸움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 듣고만 있자.

 

“선박운항으로 영업행위를 하는 해운회사는 아무래도 선박관리가 중요한데 이 부분은 송상이 더 잘 아실 테고요.”

 

“아직 해사법이나 국제법, 해상보험 등은 문외한이라서…….”

 

그렇겠지, 하는 표정으로 법무팀장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말을 하면서도 상대 외국인을 한수 아래로 보는 것이 역력했다. 배만 탄 사람이 뭐를 알겠나, 하는 식으로.

 

“나도 공부는 할 만큼 했다, 친구야!”

 

그러나 끝내 이 말은 나오지 않았다.

 

법무팀장의 머리는 지구 전체를 돌기 시작했다.

 

“해상에서의 선박은 개체지만 회사로서는 전선박을 조직적으로 관리해야 하므로 관점을 달리 해서 다루어야겠네요. 선박이란 물이 있는 곳에는 움직이게 돼 있으므로 전 지구촌의 해운, 조선 등 국제해사문제를 다루는 IMO(국제해사기구)와 같은 것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채택된 국제협약과 결의서는 해상안전과 해양환경보호에 큰 역할을 하고요.”

 

“아무리 많은 협약서나 결의서가 있더라도 현장에서 이를 준수하는지 확인하는 방법이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그렇습니다. 역시 현장 감각이 있으시군요. PSC(항만국통제)가 바로 이러한 것이지요. 말하자면 입항지의 항만당국이 승선, 검사하여 결함지적사항이 나올 때 당장 수정하지 않으면 출항하지 못하든지, 다음 항구에서 수정하든지 지적에 따라 시행해야 합니다.”

 

배에 관한 한 송대길은 대화를 중단하고 싶지 않았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입이 팔팔하게 살아났다.

 

“공정한 검사가 중요하겠군요.”

 

“다소 차이는 있지만 규정은 본선 선장들이 알고 있으므로 운항에 지장 없도록 사전에 준비해둬야겠지요.”

 

“사실 그 많은 규정을 어떻게 외우고 다닙니까?”

 

“정말 지켜야 할 게 많다는 걸 알아요. 해운관련 국제협약서만 35개나 되고 결의서는 거의 100개에 가까우니 말입니다. 법학도처럼 머리 싸매고 법규 공부해야 되지만, 때로는 단순한 생각이 필요합니다. 주요 검사사항을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입항 전에 사전점검을 하는 것 말입니다.”

 

그래, 당신이 선장해라.

배를 알고 법을 아니 그의 지식은 동해물이 마르지 않음과 같았다.

 

법률팀에서는 최근에 발생한 클레임 건을 꼼꼼히 살피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흑판에는 선박명, 사고일자, 사고내용 등이 이니셜로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니셜은 외부에 대하여 법률문제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외부인은 반드시 별도 회의실로 안내된다.

 

경영지원부서의 순회연수는 2주일 소요되었고, 회식은 두 번 있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한 부서에 김치 한 통씩 보내는 것으로 약속을 하고 여성 직원들의 아우성을 무마시켰다. 약속의 발단은 단순한 농담에서 비롯됐다.

 

“배추는 다섯 번 이상 죽어서야 김치가 됩니다. 즉 땅에서 뽑힐 때, 칼로 배추의 배를 가를 때, 소금에 절일 때, 매운 고추와 젓갈과 마늘 양념으로 버무릴 때, 그리고 입 안에서 씹힐 때를 말합니다. 그리하여 입안에서 김치라는 새 생명으로 거듭납니다. 부부도 죽고 죽어야 행복이 피어나는 것입니다.”

 

결혼한 여성분은 오늘 저녁 당장 실천해야 한다고 했더니, 그런 김치 한 번 먹어보자고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 * * * *

(정기선부)

 

총무부를 비롯한 지원부서의 연수가 끝나자 총무부장은 영업의 주요부서인 정기선부로 안내했다.

 

서류업무 때문인지 여직원이 상대적으로 많은 부서이기도 하다. 시세이도(資生堂) 화장품이 좋아서인지, 혹은 진하게 화장을 입혀서인지 향기가 풍성했다. 벌이 꽃을 찾아 몰려올 것만 같은 분위기라 할까.

 

정기선부 사토 부장이 부서 직원들에게 인사를 시켰다. 특히 여직원들은 호기심이 많은 눈으로 송대길을 쳐다보았다. 눈동자가 한 곳으로 모이면 사람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겁 없이 현해탄 건너와서 고생깨나 하는구나.”

 

비켜가는 웃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사토 부장은 준비한 영업부 조직도를 펼쳤다.

 

“회사의 전반적인 개요는 총무부 등에서 들으셨을 테고……. 이젠 영업부 전체의 개요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돈 버는 조직은 잔가지를 많이 치고 있었다. 한 과에 5명씩으로 계산하더라도 도대체 몇 명이나 된다는 거야. 특히 색다른 점 하나가 발견됐다. 각 영업부서에 기획관리과가 있다는 점이다. 부서 내의 영업기획이나 영업비용, 경리를 담당하기 위해서란다.

 

“영업 관련 부서들은 정기선부와 부정기선부를 비롯하여 자동차선부, 유조선부, 중량물선부, 가스선부, 여객선부, 항만터미널부, 종합물류부, 신사업추진부 등이 있습니다. 저희 정기선부는 서비스 항로별로 구분하여 미주과, 구주과, 동남아과, 중남미과, 호주·뉴지과, 중동·아프리카과 그리고 기획관리과가 있고요.”

 

“지구 육지의 1/6을 차지하고, 한반도의 100배나 되는 소련과(課)는 없습니까?”

 

엉뚱한 질문을 받은 사토 부장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한국사람 지금 소련 이야기 마음대로 해도 되나요?”

 

그리곤 정상으로 돌아와서,

 

“스파이 겁이 나서 배들이 내국으로 들락날락 하는 걸 그냥 둘까요. 그리고 수출입화물도 많지 않으니 별도 과를 둘 필요는 없습니다.”

 

말을 마쳤다.

 

입사 후 줄곧 정기선부에서 근육을 키운 그는 자료실에 가서 <선박 발달사>를 들고 나왔다.

 

“우선 선박의 역사를 재미 삼아 한번 보죠.”

 

아주 옛날 뗏목이나 통나무를 강과 호수에서 이용할 때부터 기원전 2500년경까지 이집트에서는 돛과 노(櫓) 겸용의 목선이 있었다. 중세기 식민지 쟁탈에서 19세기 이르는 목조범선의 사진들도 보였다.

 

항해술에서 고대의 항해는 지형이나 별, 풍향 등 경험에만 의존했고, 항해기구는 측심기(測深器) 정도에 불과했다. 13세기 중엽 중국의 지남철이 지중해에 전파됐고, 이 무렵 해도와 모래시계도 고안되었다.

15, 16세기 인도나 중국 등 동양을 향한 항해루트의 탐색을 계획하게 되었고, 천문학의 발달과 자기컴퍼스, 조타기를 위시한 항해기구 발달로 항해술이 크게 진보했다. 1572년에 영국이 20척의 신예 군함을 설계 건조하여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격퇴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한참 보아 내려가다가 송대길은 거북선 생각이 났다.

 

“아니, 한국엔 1592년 이순신 장군이 고안한 거북선이 일본 함대와 맞붙어 싸웠는데….”

 

“맞습니다. 일본 함대가 완전히 괴멸되어 돌아왔지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고나 할까…….”

 

그는 마지못해 맞장구쳤지만 송대길은 일본 애국심의 아킬레스 근을 건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18세기에 이르는 동안에는 유럽 열강의 식민지 쟁탈이 한층 심해짐에 따라 해운이 더욱 발달하고 배도 견고해지고 대형화되었다.

17세기부터 최근까지의 선박역사는 다음으로 압축됐다.

 

- 17세기경 영국을 비롯하여 프랑스, 네덜란드, 스웨덴, 신성로마제국 등에서 조선이 크게 발달

- 18세기 말 산업혁명으로 원료 및 제품 수송을 위한 해운업의 발전

- 1772년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1807년에 최초의 증기선인 클레멘트호가 허드슨강 항해

- 1821년 최초 철선 출현

- 1845년 최초 항양 프로펠러기선 영국에서 건조

- 1860년대 강선의 시대 개막

- 1894년 최초 터빈선 터비너호 건조

- 1923년 최초 디젤선인 음호호(音戶丸) 건조

- 1935년 최초 7만톤급 여객선 노르망디호 건조

- 1952년 미국 여객선 유나이티드스테이츠호의 대서양 횡단(속력 35노트)

- 1954년 최초 원자력선 잠수함 노틸러스호(미국) 건조

- 1956년 소련 쇄빙선 레닌호 최초 일반 원자력선

- 1955년 LPG 전용운반선 등장

- 1960년 대형 유조선(20만톤) 건조

 

선박의 발전상은 고속화, 대형화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대길의 질문은 계속됐다.

 

“전용선이 아닌 일반화물선은 잡화선과 컨테이너선으로 나눈다면, 앞으로 주류는 아무래도 컨테이너선이 되지 않을까요?”

 

사토 부장은 자신의 전문분야로 돌아온 것에 기분 좋아하는 눈치다.

 

“세상이 표준화 형태로 가므로 그렇게 되겠죠. 가전제품도 표준화로 편리해지는 것과 같이. 그런 면에서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시랜드사가 컨테이너선을 북대서양항로에 투입함으로써 대규모 수송방식으로 발전한 것은 과히 해상수송의 혁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컨테이너선의 종류는 컨테이너를 전문으로 수송하는 특수한 구조의 풀컨테이너선과, 선창의 일부를 컨테이너 전용으로 만든 세미컨테이너선의 두 종류가 있다. 그리고 컨테이너를 싣는 방법에 따라서 적재한 차량이 선박의 측면 또는 선미에 설치한 현문을 통해서 선내로 들어와 짐을 부리는 롤온 롤오프(Roll-On Roll-Off) 방식의 선박과, 컨테이너를 선박 또는 안벽에 장치한 기중기로 들어서 배에 싣는 리프트온 리프트오프(Lift-On Lift-Off) 방식의 선박으로 나뉜다.

 

“실제 항로에 배선된 선형의 추이는 어떻습니까?”

 

“현재 2, 3천TEU급이 세계항로에 배선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앞으로는 비용절감의 이유로 선형이 커지겠죠.”

 

“경제성의 이유로 선박이 대형화로 치닫기만 하면 부작용도 있지 않을까요?”

 

송대길의 걱정이었다.

 

“선박테러와 같은 사고가 있으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겠죠. 그리고 위험화물에 의한 대형 환경오염 사고 등도 예상할 수 있고요. 항만의 제약도 문제가 되나 점차 대형선을 수용하는 항만으로 개발되고 있으니까 이건 다른 각도의 문제가 되겠네요.”

 

생각이 깊은 사토 부장이다.

 

“국제해사기구에서 선박의 크기도 제한해야 되겠군요.”

 

“그런 것도 고려할 때가 오지 않을까요.”

 

컨테이너 물동량이 급증함에 따라 컨테이너선은 대형화 및 고속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특히 대형화 경향은 괄목할 만하다. 1972년 처음 300TEU급 컨테이너선이 등장한 이래 1988년까지는 파나마형으로서 4800TEU급이 건조되었으나, 최근 주요 컨테이너선사들의 경우 투자부담 경감, 경영위험 감소 및 영업이익 극대화를 꾀한 나머지 2000년대는 점차 6000TEU급 이상 대형 컨테이너선을 경쟁적으로 투입시키고 있다. 6000TEU급 선박은 4000TEU급 선박에 비하여 약 20∼30%의 가격경쟁력이 있다. 주요 항로에서 매년 7% 정도의 물동량 증가도 이러한 대형화 경향의 한 요인이 된다.

 

운항속도 면에서도 컨테이너선의 고속화가 진행되어 1980년대 초에는 18노트에 머물렀으나, 1990년대에는 대부분 24노트, 그리고 최근 대형 컨테이너선은 25노트를 상회하곤 한다. 이러한 컨테이너선의 고속화 경향은 하역시스템 및 육상운송과의 연계시스템의 구축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로 보고 있다.

 

2000년 이후 일부 컨테이너 터미널에는 컨테이너 22열까지 적․하역이 가능한 초대형 크레인이 이미 도입된 항구가 있어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출현이 시작되었다. 2006년 덴마크에서 12000TEU 이상의 컨테이너선이 건조된 것은 대형화의 실체를 잘 보여준다. 한국의 대표 해운사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2012년 13000TEU급 컨테이너선을 각각 3척과 1척씩을 확보했다.

 

컨테이너선 항로를 알아보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서비스 항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은데요.”

 

“일본을 기지로 해서 아시아의 주요 항구들 간의 서비스, 동서기간(東西基幹)으로 아시아-북미, 아시아-구주, 아시아-남미 항로 등이 있고, 남북기간(南北基幹)으로 아시아-호주, 유럽-아프리카, 북미-남미 항로 등 시계추와 같은 진자(振子)서비스가 있으며, 북미-유럽 간의 대서양 순환항로도 있죠.”

 

“이렇게 다양한 항로 서비스를 수행하려면 선박이 많아야 할 텐데, 어떻습니까?”

 

“그래서 컨네이너선 운항은 동맹을 이루어 협조체제로 운항하곤 하죠. 예를 들어 CYKH동맹은 중국의 COSCO, 일본의 K-Line, 대만의 양밍, 한국의 한진이 동맹을 결성하여 각사 선대의 최적배선과 서비스망 확대로 화주를 위한 서비스 품질을 향상시키는 겁니다.”

 

“해운동맹(Shipping Conference)을 결성하면 협정준수로 인하여 운항에 제약을 받을 텐데 결성 이유가 뭘까요?”

 

“상호간에 기업독립성을 존중하면서 운임, 운송량, 기타 운임조건을 협정하여 과당경쟁을 피하고 상호간 이익을 증진하는 것이죠. 말하자면 국제해운카르텔을 통해 독점체제를 갖는 거죠.”

 

“동맹의 방법은 어떤 형태로 하는 겁니까?”

 

“동맹 내부적으로는 운임협정, 배선협정, 공동계산협정 등이 있고, 외부적으로는 맹외선사들에 대항하여 경쟁억제선의 투입, 이중운임제 등으로 화주들을 동맹에 묶어두죠.”

 

“미국 등 대형 화주들이 고분고분 따라올까요?”

 

“그래서 1984년 미국의 신해운법이 제정되어 동맹의 기능이 뚜렷하게 약화된 거죠. 화주의 독자운임결정권, 우대운송계약을 도입하여 공통운임제를 무력화시켰다고 할까요.”

 

“선사들이 그대로 무릎 꿇기만 하겠습니까?”

 

“송 상, 질문이 아주 끈질기시군요. 그래서 이젠 주요 정기선항로에서 동맹선사와 비동맹선사 간에 항로안정화를 위한 다양한 정보교환을 하는 협의협정 체결이 증가하고 있는 거죠. 이것이 독점금지법에 저촉되는지 여부가 또 논란이 되겠죠.”

 

해상은 육지와 달리 기후변화나 여건변화가 많으므로 운항스케줄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지만 고객서비스를 위해서는 항구에 정기적 입출항이 필요하다. 이것에 대하여 사토 부장은 분명하게 말했다.

 

“같은 요일을 지키는 게 중요하므로 짧게는 1주일, 길게는 10주일 주기로 기항하기도 하죠. 수리 중이나 사고시에는 대체선을 투입하기도 하고요.”

 

“열차시간표와 다름없네요.”

 

손님이 없더라도 열차는 시간표대로 운행해야 한다. 때로는 지역발전을 위해 마을이 작은 산간 역에도 가야 하는 것처럼 일본은 섬이 많아 채산과 관계없이 배가 정기적으로 운행되는 항로가 많다.

 

사토 부장은 부서 회식을 단골집에서 갖겠다고 했다. 마시다가 보관해 두는 양주병이 있어 정기적으로 들른다고 한다. 정기선부장답게 정기적으로 가는 단골인가 보다.

양주병은 컨테이너 단층(Tier)처럼 쌓아 두나?

 

 

 

<계속>

'소설 > 일본을 배우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을 배우다(하)  (0) 2012.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