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기회의 땅 러시아

기회의 땅 극동러시아(제11 회)

오선닥 2016. 4. 29. 18:39

하바롭스크

극동러시아의 중심지

행정 군사의 주도

중요성만큼이나

볼거리도 많고...

 


 

  

제 11회

 

 

하바롭스크

 

아무르강과 우수리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바로 아래, 우수리강의 우안에 자리잡은 하바롭스크는 한마디로 아름답다. 강은 겨울에는 장기간 얼어붙어 육로로 쓰이기도 한다.

 

하바롭스크는 남쪽으로는 연해주, 북쪽으로는 사하공화국과 마가단주, 동쪽으로는 오호츠크해, 남서부로는 아무르주 및 유대인 자치주와 인접한다.

 

“두 강의 합류점에 있는 대우수리섬은 어떡하죠?”

 

누군가가 질문하지 않았더라도 설명이 필요하다.

중국에서 불과 30킬로미터 떨어진 섬은 중국과 러시아가 각각 영유권을 주장해오다가 2004년 두 나라의 공동 관리에 두기로 합의함으로써 하바롭스크에 대한 국경 문제는 거의 완벽하게 해소되었다.

 

고풍스런 건물들과 단층 목조 주택들이 조화를 이뤄 독특한 경관을 형성하는 도시는 아름다운 강변 공원과 산책로가 많아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를 제공한다. 60만 명에 조금 못 미치는 인구는 85퍼센트가 러시아인이고, 나머지는 우크라이나인, 우즈베크인, 유대인, 고려인 등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도시 면적은 서울의 반 이상에 이른다.

 

“블라디보스토크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네요.”

 

인구 구성에 대해서는 이동일 통일연구원이 관심을 많이 갖는 부분이다.

 

“하바롭스크주의 주도이면서 극동지방 전체의 중심도시이기도 합니다.”

 

하바롭스크 한인회장이 강조했다.

 

하바롭스크는 원래 블라디보스토크보다 큰 도시였으나 소비에트의 해체 이후 인구가 줄어 현재 극동러시아에서 인구 기준으로 2위를 차지하는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전통적 선두 도시의 면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바롭스크 주의 면적은 한반도의 3.5배이고, 주도인 하바롭스크 시는 러시아 극동지방 전체의 행정적, 정치적 중심지로서 동부 군관구 본부를 두고 있다.

 

“수백 년 전에 캠프 하나를 멋진 장소에 쳤군요.”

 

도시 형성에 대해 설명을 듣던 중 노무성 농협 대표가 도시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말했다.

 

약 400년 전 러시아 카자크 탐험가들이 아무르 강가에 세운 캠프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도시가 형성되었는데, 당시 카자크의 지도자인 하바로프의 이름이 도시명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 개발도 말뚝부터 먼저 박았다지요.”

 

사공박이 말했다.

 

“무슨 말? 하바는 개발이 아니라 개척이었지.”

 

전원채 회장의 말이 맞다.

중국과 러시아 간 영토싸움이 많았는데 결국 1689년 청러 간의 네르친스크 조약에 따라 150여 년 동안 청나라에 복속되었다가 1860년 아편전쟁 중에 청나라가 정신이 없던 틈을 타서 러시아는 연해주와 더불어 이 지역을 되찾았다.

 

2차 대전 이후 일본 전범들을 상대로 전범재판이 열렸던 장소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가 나라 붕괴 이후 1950년까지 5년간 머무르기도 한 곳이다.




숙소인 아무르호텔에 도착해 가방을 내려놓고 바로 여행을 시작했다.

 

바둑판처럼 정리가 잘 된 하바롭스크 거리가 블라디보스토크의 어지러운 면모와는 확실히 다르다. 걷기에 참 좋은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길을 따라 우수리강변 쪽으로 쭉 걸어 내려오니 러시아 도시 어디에 가나 볼 수 있는 혁명광장과 꺼지지 않는 불이 있다.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그것보다도 훨씬 큰 것은 특이한 일이다.

 

꺼지지 않는 불을 좌우로, 마치 두꺼운 책처럼 우람하게 서있는 석벽에는 2차 대전에 참전한 하바롭스크 출신 사람들의 이름이 전부 적혀 있다.

 

“우리의 선조들 중 상당수가 소련군으로서 맹활약했다는데 여기에 이름이 있을까요?”

 

“물론 있지요. 북한에서는 민족영웅으로 떠받들어 지고 있답니다.”

 

한인회장의 설명은 참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남한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니.

아무르강을 내려다보는 전망대 옆에 위풍당당한 동상 하나가 서 있다. 아무르스키 동상이다.

 

하바롭스크는 1850년대 시베리아 초대 총독을 지냈던 무라비예프 아무르스키에 의해 개발된 도시다.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시베리아의 미래가능성을 예견하고 황제에게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을 제안하는 등 시베리아를 개척한 선봉자다. 러시아 최고액권(5천 루불, 한화 약10만원)에 들어 있는 인물이다. 시베리아 남동부에서 발원하여 만주를 거쳐 하바롭스크에서 북동류하여 오호츠크해로 흘러가는 아무르강(4,350km)도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 아무르강을 중국에서는 흑룡강이라 한다.

 

하바롭스크에는 길거리에는 먹을 만한 것들이 많다. ‘샤우르마’라는 러시아식 케밥이다. 부침개로 싼 것을 들고 먹으면 간편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다.

 

“대표적 러시아 음식을 추천한다면서요?”

 

정은숙이 한인회장에게 물었더니,

 

“뭐니 해도 블린늬와 보르쉬가 아닐까요.” 대답이었다.

 

러시아식 부침개 블린늬는 들고 먹기에 편리하다. 러시아식 스프 보르쉬는 새빨간 색깔이 매운 것 같은데도 듬뿍 들어간 마요네즈 때문에 느끼함이 별미이기도 하다. 길거리 음식은 한 끼를 책임지는 훌륭한 해결사가 된다.


 


러시아 땅이 얼마나 넓은지는 모스크바와 캄차카의 시차가 9시간이라는 데서 알 수 있다. 하바롭스크는 모스크바와 7시간 시차이나 한국과는 한 시간밖에 안 된다. 한국과 친하게 지내자고 제안할 만하다.

 

평균기온 1월 영하 20도, 7월 영상 20도라 해서 연평균 기온이 없다고 하는 것은 산수를 잘하는 사람의 심각한 오류다. 연평균 영상 2도라고 한다. 서울 13도에 비하면 추운 날씨임은 분명하다. 강수량 700밀리는 침엽수림 성장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동양에 있으면서 서양의 고풍스런 건물은 관광객들의 시선을 끈다. 아니, 건물이나 유적이 아닌 유난히 딴 곳에 시선을 팔고 있는 사람은 어떤 부류인가.

 

“아가씨들의 각선미가 왜 이리 쭉빵이야?”

 

농협 대표 노무성이 기어코 본성을 드러내놓고 말았다.

옆에 있던 정은숙이 질투 섞인 말로,

 

“한국 동대문에 가 보세요. 미끈한 여성이 얼마나 많은데.”

 

응수하는 것은 흘려들어도 된다.

 

동대문시장 을지로6가 좁은 골목길에 자리한 ‘러시아 타운’에는 하바롭스크 등 극동러시아에서 파견되다시피 한 여성 대군단이 있다. 금발을 휘날리며 사내들의 시선을 끄는 팔등신의 여성들. 90년대 초반부터 황금의 꿈을 안고 한국으로 온 여성들은 10년이 지나지 않아 이미 5천여 명에 이르렀다.

 

이 분야는 이동일 연구원이 조카한테 들어서 사정을 꿰뚫고 있다. 외사계 경찰로 근무하는 조카는 모스크바대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한 뒤 전문 인력으로 특채된 경위 계급이다.

 

러시아 여성들의 매춘이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자 조카의 역할이 커졌다고 한다. 그들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케이스는 주로 세 가지인데 관광비자, 공연비자 그리고 방송비자.

 

관광비자로 입국해 보따리 장사를 하다가 재미삼아 몸을 팔고는 강제출국 당하기도 한다.

 

“구속 과정에 어려움은 없습니까?”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청중들의 질문이 있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설명을 재촉 받는다.

 

“재미를 본 한국 남자들은 불구속 수사하고 자기들만 엄벌하느냐고 따지곤 하죠.”

 

윤락행위방지법 이외 출입국관리법 위반임에도 그들은 항의한다. 미아리나 청량리는 버젓이 영업하고 왜 자신들만 처벌하느냐 항의할 때는 그들의 한국 물정 지식에 오히려 감탄할 지경이다.

 

러시아에선 매춘은 삶을 영위하는 한 방편으로 벌금 몇 달러로 용서되는데, ‘한국은 별나라’라고 불평한다. 그러면서 “한국 총각들이 가엾다”고 오히려 동정하는 말을 할 때는 흥미롭기까지 하다.

 

“러시아에서 섹스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뭘까요?”

 

노무성이 뚱딴지같이 사공박에게 질문하고는 멋쩍은 듯 웃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사공 사장님은 아무래도 러시아 출장을 자주 하시니까…….”

 

사공박도 따라 웃었다. 이실직고하라는 압박 같기도 하지만 즐거운 답사 여행을 위해서 맞장구를 쳐주는 게 좋다.

 

“아마도 추운 기후 때문이 아닐까요. 동토(凍土)에서는 살을 에는 추위 때문에 외부 활동 자체가 자유롭지 않아 집에서 사랑을 나누는데 익숙해서 그렇겠지요.”

 

대답이 물 흐르듯 나올 줄은 사공박 자신도 몰랐다.

괜히 아는 체했군. 뉘우쳤을 때는 옆의 사람들이 한바탕 웃고 난 후였다.

 

한국에는 이제 러시아인들이 빠져 나간 자리를 몽골 사람들이 급속도로 메우고 있다. 러시아인들은 하나둘 이태원으로 장소를 옮기기 시작했고 미군 쪽이 돈벌이가 됨을 안 것이다.

 

‘한국에 가면 대박 터진다.’

‘아메리칸 드림도 있다.’

 

꿈이 바뀌어 미국인과 결혼해 미국으로 간 러시아 여성도 있다.

시민대표 박경석은 러시아 여인들의 한국 입국경로가 궁금했다.

 

“인터걸 모집 광고가 러시아 지방 신문에 실리지요.”

 

노무성이 대답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얼굴 앞뒤와 옆면을 찍은 사진과 전신사진 등이 한국에 보내지고, 한국의 기획사에서는 마음에 드는 여자를 선별해 러시아 측에 회답을 보낸다.

한국 체류 중에는 여권과 항공권이 맡겨지고, 일하는 시간 이외에는 사실상 감금되는 사례가 많다.

 

관광비자: 한 달 미만.

공연비자: 6개월~2년.

방송비자: 2년.

 

“공연비자의 경우는?”

 

누군가의 툭 던지는 질문이었다.

 

미군영내클럽이나 관광호텔 등 댄서들은 한국 국가에서 관리한다. 러시아의 송출회사와 한국의 외국연예인 공급업체와 계약을 한다. 또 공연심의과의 심사도 받는다. 공연비자로 들어온 여성이 불법으로 누드모델을 하고, 룸살롱에 취직한 여성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에이즈검사 등을 받는 것은 매춘 잠재성이 있다는 의미도 된다.

 

방송비자는 러시아 여성들이 무척 갖고 싶어 한다. 러시아를 무대로 한 ‘설야’ 드라마를 찍을 때 국내 체류 중이던 러시아 여인들이 대거 몰렸다. 대사도 없이 엑스트라로 카메라에 스치기만 해도 2년 체류가 보장되니까.

 

호기심은 끝이 없다.

이런 여자들은 낮에는 어떤 생활을 할까?

 

“한국에 애인이 있으면 언어 배우는데 첩경이지요.”

 

대부분의 러시아 여성들은 검소하여 한국에서 번 돈은 거의 러시아에 있는 가족이나 부모에게 보낸다. 인편에 돈을 전하는데 간혹 마피아 조직이 관여하기도 한다.

 

기회의 나라로 알고 한국에 왔다가 적개심을 품고 떠나기도 한다.

 

쓸데없는 러시아 여성 이야기를 꾸짖기라도 하듯 일행의 발걸음은 성모승천교회 앞에 멈췄다. 시민대표 박경석이 교회를 바라보고 서더니 가슴에 십자 성호 긋기를 했다.

 

“지금까지 이야기는 여담이었음을 고해성사합니다.”

 

천주에게 접수됐는지는 확인할 자가 없다.


 


저녁 무렵 시내 골목으로 들어서자 한국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노래방이 보인다.

마침 저녁 예약이 된 식당이 부근이어서 식사 후 피로를 푸는 장소로 노래방을 선택했다.

 

“근데 이게 웬일이야? 분위기가 이상하잖아?”

 

앞장서 노래방으로 들어가던 이동일 수석연구원이 움칫 멈춰 섰다. 웬 노래방이 나이트클럽같이 넓어? 큼직한 무대에 한복 입은 아가씨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찔레꽃

눈물 젖은 두만강

황성 옛터

……

 

가요무대 노래들이 시리즈로 불려진다. 한 번씩 손님들이 나와서 노래하는 것은 여니 노래방과 다름없다. 그래서 간판을 노래방이라고 했나. 아니면 한국 사람들이 노래방을 좋아해서인가.

 

“귀한 손님이 오셨수매 이리로 모시겠수다.”

 

첫눈에 봐도 북한이 운영하는 업소이다.

중년 여성의 안내에 따라 중앙 넓은 테이블에 앉았다. 한복 입은 안내 여성은 지배인으로 보인다. 조선중앙방송에 나오는 여성앵커를 닮아 당 간부 느낌이 든다.

 

노래하는 아가씨들에게 일행의 시선이 집중된다.

 

“이쁘다, 글치?”

 

역사학자 육해수가 사공박 귀에다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50대 중반도 여자 보는 눈은 이팔청춘이다. 정은숙이 들을까봐 사공박은 옆으로 두리번거려 보았는데 다행히 그녀는 화장실 쪽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정은숙이 사공박과 육해수 사이에 앉자 육 교수는 태연한 자세로,

 

“여성들 정말 노래 잘하군. 김일성 찬양가도 아닌데…….”

 

일부러 일행의 시선과 마음을 흩뜨려 놓았다.

정은숙은 누구보다도 사공박의 시선에 주목했다. 늘 사업과 연결시키는 사람이어서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궁금하기도.

 

“설마, 사공 사장님은 산업연수생으로 북한 여성을 쓰시진 않겠죠?”

 

웃는 얼굴로 봐서 진정성 있는 질문은 아닌 것 같다.

 

“제 사업 영역이 아무리 광개토왕 욕심이라도 북한 여성의 직업알선은 안 합니다. 아니, 못하죠. 통뼈도 아닌데. 허 참.”

 

대답을 해놓고 보니 사공박 자신도 다소 황당했다. 심심풀이 대화가 엉뚱한 곳으로 흘렀기 때문이다.

 

전원채 회장은 일행의 휴식 분위기를 제공하기 위해 여성 지배인에게 노래하는 아가씨를 테이블로 부를 수 없냐고 물었다.

 

“그건 절대 안 됩네다. 원하시면 고려인 아가씬 부를 순 있습네다.”

 

당의 지침이라는 데는 할 말이 없다. 결국 고려인 여인 두 명이 테이블로 왔는데, 아줌마가 분명했고 평범했다. 사공박 옆에 앉은 여인은 화장을 너무 진하게 해 마치 연극무대에 서기 위한 모습 같았다.

 

“아가씨는 집이 하바예요?”

 

사공박이 하바롭스크냐고 물은 것이다. 여자의 눈꼬리에 주름이 잡혔고 손등이 사포 같았다.

 

“전 아줌마예요. 젊고 예쁜 아가씨들은 모스크바로 다 갔단 말입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시선을 받은 여자가 눈을 좁히면서 웃었다.

그녀는 4년 전에 이혼했고, 13살, 10살 두 사내아이를 키우고 있다.

삶의 이야기가 깊어져서 맥주와 안주를 더 시켰다.

 

“한국에 가서 악착같이 벌었으나 여기 와서 다 날렸어요.”

 

이외의 고백이었다. 역시 한국에 갔었구나. 일행은 다소 숙연해졌다. 맥주를 마시고 나자 마음이 좀 녹았다. 그 뒤의 감정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평범하게 물었다.

 

“하바롭스크가 맘에 들어요?”

 

“전 독립유공자 후손예요. 증조할아버지의 이름은 밝히지 않겠어요. 저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요.”

 

일행의 고개가 갑자기 꺾였고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그녀 이야기의 행간에 꾹꾹 눌러 담은 감정의 농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사공박이 업소를 나올 때 지갑에서 50달러 지폐 하나를 손에 쥐어줬다. 적지만 긍정적인 작은 힘의 화살표처럼 작용하기를 바라면서.



 

이튿날 아침부터는 부지런을 떨었다.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고 내일 일찍 이 도시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하바롭스크의 꼼소몰스카야 거리에 있는 ‘작가의 집’ 방문이 이날 첫 일정이다.

집은 건물 외관만 남아 있고 내부는 다 헐린 상태다. 여기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아무르강까지 조명희 작가는 산책하기를 즐겼다.

 

소련 KGB가 선생의 사인을 ‘심장이 뭉쳐서’라고 했는데, 총살형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선생과 가족은 작가의 집 2층에 살고 있었고, 그 옆집에 유명한 러시아 작가 파데예프가 살았다는 것은 두 사람의 친분을 짐작할 수 있다. 파데예프는 러시아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이름난 작가다.

 

러시아인의 광장 사랑은 대단하다. 군중을 모아서 당의 지침을 전달하기에 광장만 한 곳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탐사단의 단장이 콤소믈스카야 광장의 장점을 갈파했는지, 부근 성모승천교회의 계단에 올라가더니 일정 광고를 한다.

 

“오늘 남은 스케줄을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

광장에는 높이 솟은 탑이 보인다. 지척을 두고 교회와 신학교가 서있고, 두 건물은 멀리 펼쳐 보이는 아무르강과 조화를 이뤄 예술적 아름다움을 보태준다.

 

하바롭스크는 러시아 동부 군대의 중심지다. 2010년 10월 러시아 군사개혁에 따라 하바롭스크에 극동군관구와 일부 시베리아군관구, 태평양함대를 포괄하는 동부군관구를 창설했다. 광장의 비둘기가 날았다 모였다 했다. 질서정연한 것이 마치 러시아군이 훈련이라도 하는 것 같다.




러시아는 영웅이 많은 나라다. 이들 중에는 만들어낸 영웅도 많다. 특히 혁명 영웅이 많고, 신기하게도 무명용사를 기리는 기념탑이 많다. 노동자 무산계급의 이름을 다 적어 넣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무명용사와 혁명 내전 영웅 기념탑을 지나가는데, 웃통을 벗은 남성 두 명이 사진기 앞에서 육체미 포즈를 취했다.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은 배꼽이 드러나 보이는 아가씨다. 일조량이 부족한 나라에서 흔히 보는 젊은이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온 평화연대 일행이 이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것은 답사 후기에 삽입할 흥밋거리를 찾기 위함인가.

 

전사들의 이름을 쳐다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고려인 독립군이나 희생자들도 있을 것 같아서.


 


하바롭스크 재래시장은 한국의 5일장과 비슷하다. 지방 곳곳에서 올라온 물건들이 다양하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잘 웃지 않는 게 독특한 풍경. 중국 사람들이 많은지 ‘니하오’ 인사는 자주 들린다.

 

멜론을 몇 개 사서 선 자리에서 깎아 먹는 일행은 옛 시골 장터 풍경을 즐기며 여행 중에 느낄 법한 갈증과 허기를 채운다.

 

“학교 구경 한번 해볼까요?”

 

누군가가 붉은 벽돌 건물을 가리켰다. 이건 학교가 아니라 하바롭스크 향토박물관이라고 한인회장이 말했다. 한때 고교 교실로 사용했던 것이라 한다.

 

향토박물관에는 시베리아에서 발굴된 매머드 뼈와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아우르 호랑이 박제도 전시되어 있다. 커다란 맘모스를 만들어 놓았는데 정말 저런 동물이 살았을까 궁금하다. 토속인인 나나이족(여진족)의 여러 민속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은 흥미롭다.

 

극동 지역의 광물이 600여 종을 전시해 놓은 것은 지질 박물관이라 불러도 좋을 만하다. 달에서 채집한 광석이 눈길을 끈다. 우주강대국임을 이런 곳에서 알 수 있다.

 

분수대 옆에 왔을 때 유난히 비둘기가 많이 보인다. 분수대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비둘기와 노느라 시베리아횡단열차 탑승시간을 놓칠 법하다.

 

일행의 일주일간의 답사 여정은 내일 오전 호텔에서 답사 리뷰 회의를 가짐으로써 마무리가 된다. 연해주와 하바롭스크주 일대 고려인 지원의 실상과 문제점, 미래 방향이 논의될 것이다.

 

인생과 역사에는 해피엔딩이 없다. 하나의 문턱을 넘으면 또 다른 문턱이 기다리고 있다. 고려인에게는 준비된 미래가 있을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