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기회의 땅 러시아

기회의 땅 극동러시아(제 10회)

오선닥 2016. 4. 12. 12:12

연해주 답사단은 지금
‘동방의 정복’이라는 도시
블라디보스토크로 와서
구서구석 살피고 있답니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제 10회



블라디보스토크


“정 선생, ‘동방의 정복’을 시작해볼까요?”


전원채 회장이 왜 이렇게 말하는가. 정은숙이 애매하게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데 연해주 대표 김연동이 그건 블라디보스토크 어원이라고 말한다. 아, 그렇구나. 그녀의 눈동자가 안정을 찾았다.


“그럼 정복하셔야죠.”


그녀가 웃음을 지었고 일행은 시내 정복 길에 올랐다. 차는 시동에 익숙해져 바퀴를 돌리는 데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내 구석구석을 정복해 나갈 참이다.


남쪽 표트르대제만(灣)의 후미에 천연 입지조건이 잘 갖추어진, 지방 행정·산업·교통의 중심지이며 시베리아철도의 태평양 연안 종착지인 블라디보스토크. 그 구석구석이 일행의 발에 밟혀나갈 것이다.


대륙성기후로 겨울철에는 물론 추운 곳이다. 여름철에는 계절풍의 영향을 받아 비가 많이 온다. 변두리 산지는 침엽수림으로 덮여 있다. 침엽수림에 눈이 내리면 금방 크리스마스카드 속의 아름다운 그림 풍경이 될 것이다. 주민은 러시아인이 대부분이고, 소수의 우크라이나인, 우데게이족, 오로치족, 나나이족이 섞여 있고, 한국인과 중국인이 부분적 인구를 구성하고 있다.


고구려 주몽에 예속된 게 여진족이고, 여진족이 만주족으로 불렸으니 이곳이 한국의 땅이었음을 역사책 몇 페이지만 읽어봐도 알 수 있다. 다만 ‘한국 땅임을 선포하노라’ 하는 말은 러시아가 기분 나쁘지 않게 귓속말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1860년 베이징조약에 의해 러시아령이 되어 군사기지로서 블라디보스토크가 건설되었다. 연해(프리모스키)주는 한말 이래 한국 교포들의 망명지가 되어 상당수가 그곳에서 거주해 왔다.




“쇠문을 여는 것은 망치가 아니라 작은 열쇠이다.”


영화 속의 대사였던가. 소비에트를 붕괴시킨 것은 농민 혁명을 상징하는 망치가 아니라 개혁을 선언했던 고르바초프의 입이었다.


광장의 중앙에 혁명 전사를 상징하는 동상이 보인다. ‘1917년-1922년’이 새겨졌는데 그 기간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볼셰비키 혁명을 위해 병사들이 싸웠다는 뜻이다.


“1922년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혁명을 마무리한 해이죠.”


연해주 대표는 말했다.
이제 개혁 개방이 이뤄져 그때의 혁명 병사들이 저평가돼 가는 분위기는 막을 수 없는 것 같다.


광장 가까이 고풍스런 건물이 보인다. 러시아의 최고급 백화점인 굼백화점이 모스크바뿐만 아니라 여기에도 있다. 의회 건물처럼 보이지만 국영 백화점이다. 1906년에 건설된 바로크 양식의 아주 인상적인 건물.


“안에 들어가시죠. 스타벅스 한잔하시게요.”


사공박이 제안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피로한 다리를 끌고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기대했던 커피는 없고 러시아 음료수만 보이는데 피로에는 뭐라도 좋다면서 초콜릿 탄산수 캔을 집어 들었다.


변덕스런 블라디보스토크의 날씨는 관광을 주춤거리게 만든다. 갑자기 비가 온다. 노무성이 단체회계 주머니에서 루불화를 꺼내 우산을 샀다. 두 사람당 하나씩 배분했다. 이제 홍일점 정은숙의 우산 밑으로 누가 들어가느냐의 문제만 남았다. 눈치 빠른 이동일 수석연구원이 사공박을 여성의 우산 밑으로 밀어 넣었다.


“젊은이는 젊은이끼리!”


누구더러 젊다는 건가. 마흔 중반을. 그래도 이중에서는 제일 젊다는 것은 확실한 진실이다.


“멀쩡한 하늘이 갑자기 사람 입장 난처하게 만드네…….”


사족인 줄 알면서 사공박이 하늘에 원망을 표시했다. 정은숙의 잡고 있던 우산 손잡이를 들었을 때 불공평함 속에 공평함이 있다는 진리를 찾은 느낌이다. 같이 우산을 쓴 보답으로 러시아인형 마트료시카 한 세트를 그녀에게 사준 것은 잘한 일이다. 어색함이 많이 희석됐으니까.


인형은 크기순으로 열 명의 여자가 들어가는 것이었는데 무한한 포용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은 차곡차곡 들어가는 모습이 대견스러웠기 때문이다. 아들 둘만 있는 사람한테 이런 인형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녀가 말해도 ‘요즘은 사내애들도 이런 걸 좋아한다’고 우겨 손에 쥐어줬다.




“독수리전망대로 가볼까요.”


안내자가 앞섰다.
‘독수리 둥지’를 의미하는 전망대는 해발 214미터로 블라디에서 가장 높다는 산 위에 있다. 전망대에는 키릴문자를 만든 키릴형제의 동상이 서 있다.


“세종대왕에 버금가는 사람인가 봐요.”


한글에 비하면 질서 없는 문자라고 생각하면서 정은숙이 좋은 표현으로 말했을 뿐이다. 세상에 한글만한 글자가 어디 있으랴. 요즘은 타이프치기도 빠르니 말이다.


금각교의 건설현장이 전망대에서 잘 내려다보인다. 2012년 APEC 정상회담 전에 완공될 다리이다. 새가 내려다보는 기분으로 일행은 망원경을 통해 시내를 쭉 스캔해보았다. 같은 양식의 건물이 없다는 게 특색이다. 시내가 넓게 보이는 것은 확 트인 바다가 시계 내로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아깝다. 한국 땅이 됐을 뻔했는데…….”


사공박이 중얼거리는 걸 아무도 듣지 않았다.

흰색 고층빌딩은 시청이다. 시청에서 바다 쪽으로 오벨리스크가 보인다. 블라디보스토크 시의 나이 125세일 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화려하지 않으면서 정갈한 교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러시아 정교회 돔이 아름답다. 겉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안에 들어가 보자는 데 동의했다. 남자들은 그냥 들어갈 수 있지만 여자는 모자나 스카프를 두르고서야 입장이 가능하다. 여름이라고 맨살이 드러나면 안 된다. 몸을 감싸야 한다. 사진 촬영은 금지되나 잠시 안에 들러 기도정도는 할 수 있다. 정은숙이 모자를 잘 가져왔다고 생각했다.


“로마 성베드로성당에 가면 성상이 있는데 이 교회에는 성상이 없네요.”


로마를 방문한 적 있는 그녀가 말했다.
사공박이 벽에 걸린 여인상을 가리켰다.


“대신 성화가 있잖아요.”


성상은 예수상이나 마리아상을 말하는데 정교회는 성상을 우상으로 여긴다. 그 대신 예수나 마리아 그림 등의 성화를 걸어두곤 한다.


초기 가톨릭은 5대 관구가 있었다. 로마, 안디옥,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 등에 각각 총대주교가 있어 교회를 잘 이끌어왔다. 그러던 것이 324년 로마제국이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한 이후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이 되면서 지리적, 언어적, 주도권 문제로 교회가 동서로 나뉘기 시작했다고 성당에 다니는 시민대표 박경석이 설명했다.


“아, 그래서 로마가톨릭과 동방정교회가 딴 살림이 됐군요.”


정은숙이 이해된다는 표정이다.
박경석은 신나게 설명해 나간다.
구체적인 연도가 언급될 때는 사람들이 감탄해마지 않는다.


2001년 교황 바오로 2세가 그리스를 방문했을 때 가톨릭이 정교회에 행한 역사적 과오를 사과한 바 있다. 과오란 1054년 로마가톨릭교가 먼저 콘스탄티노플의 성소피아 교회에 파문장을 보내 교회의 동서 분열을 촉발시킨 일과, 1202년 제4차 십자군 원정 때 로마가톨릭교가 실지 회복이라는 명분으로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중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여 정교회의 재산을 파괴하고 약탈함으로써 정교회 신자들에게 재산적, 정신적 고통을 준 일을 의미한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를 공격하는 명분 아래 결과적으로 가톨릭끼리 싸운 셈이랍니다.”


박경석이 강조하면서 동방정교회는 그리스정교회와 러시아정교회 등 여러 분파가 생겼다고 말했다.


“로마가톨릭에 대항하여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났잖아요?”


정은숙 미션스쿨에서 들었던 걸 말했다.
 
“부패하면 개혁운동이 일어나기 마련이지. 면죄부를 팔아먹다니.”


전원채 회장이 맞장구쳤다.
러시아 키예프 공국은 988년 동방정교를 국교로 정했다. 15세기 중반 동로마제국이 멸망했을 때는 그들이 동로마제국의 후계자임을 자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비에트 시절 핍박을 받아 오다가 최근 종교의 자유를 얻은 것이다. 러시아 인구의 75퍼센트가 러시아 정교회라니 국교로 정할만하다.


차량 이동 중 단체로 화장실을 가야하는 일이 생겼다. 이곳에선 공중 화장실을 사용할 시 돈을 지불해야한다. 볼일을 한꺼번에 무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잠시 호텔로 돌아가는 것이다.


가는 길에 개선문을 지났다. 개선문은 승리의 기쁨보다 멸망의 비운이 그림자를 길게 늘이는 것 같다.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를 기념하기 위해서 건립했지만 소비에트 정부가 들어서자 파괴되었다가 2003년 복원되었다고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동일한 개선문을 지었다고 하는데 러시아 전역에 과연 몇 개나 되는지 궁금하다.


개선문을 들어가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한국말로 해도 될까.


 


한국에 있는 상선대학이 섬에 있지만 극동연방대학교도 섬에 있다. 섬을 잇는 대형 연육교가 육지와 다름없는 곳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루스키섬은 2012년 APEC 개최지로도 유명한 곳으로 경치가 일품이다. 여러 개의 대학이 연결되어 있어서 캠퍼스가 하도 넓어 학내를 돌아다니는 셔틀버스도 있다. 시원한 바람이 캠퍼스를 훑고 지나가면 별천지에 온 기분.


“섬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성적이 쑥쑥~ 하겠어요.”


정은숙이 사공박을 보며 말하는 이유는 상대가 섬 학교 출신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섬에 갇혀 있으면 공부밖에 더하겠어요. 하하.”


그렇게 말하면서도 섬은 느림의 여유로움과 때로는 외로울 줄 아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곳이라고 말할 뻔했다. 이를테면 배라는 것도 일종의 섬이다. 바쁨과 성공을 동일시하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도시인은 섬 생활은 도태로 생각할지 모르나 철인은 말하길, 외로워야 자기 성찰이 가능하고 성찰을 통해 자기 자신과 대화하고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다고.


위대한 삶은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부두에 군함이 정박해 있다.
인근에 있는 잠수함 박물관은 러시아 해군의 우수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박물관 반대쪽에 있는 극동함대사령부는 건물외관은 투박하지만 러시아 태평양함대를 지휘하는 위엄이 묻어난다.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해양공원 옆에 요새박물관을 보고 이런 박물관은 처음이라며 일행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19세기 한 세기 동안 항구를 방어해온 요새는 러일전쟁에서 혼쭐나고는 요새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었으나, 세계대전이 끝난 20세기 중반에 버려진 폐허를 한 여성이 재건하여 지금의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여성을 오늘 직접 만난 것은 행운이다. 전시물을 설명해주는 자상함마저 있다. 지상 곳곳에 탱크와 대포, 각종 화기들이 보인다. 마치 전쟁터에 온 느낌.


시내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가볼만한 곳이 있다 하여 짬을 냈다. 도착한 곳은 등대. 한국인은 보통 백사장으로 가서 바다를 즐기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등대로 자주 간다. 결혼한 사람들이 많이 찾는데 서로의 앞날을 밝혀준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우리 모두 기혼자들인데 앞날을 또 밝혀야 하나요.”


“백세시대 밝힐 앞날이 많이 남았잖아요.”


가면서, 보면서 한마디씩 던졌는데 누구의 말인지 챙길 만한 대화는 아니다.

이곳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질문 하나.


“당신들은 아시아인입니까, 유럽인입니까?”


대답이 궁하면 ‘마음대로 생각하십시오’가 피차 듣기 좋을 것 같다.


블라디보스토크역 옆을 지날 때 막 출발하는 시베리아횡단열차가 보인다. 승객들이 모스크바까지 8일을 달리는 동안 차창 여행을 즐기겠지. 겨울 설국여행이라면 그런대로 멋을 느낄 것 같다.


“우리도 이준 열사, 이상설 선생처럼 저 열차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갈까요?”


통일 수석연구원 이동일이 멋쩍은 듯 말하며 일행을 쳐다보았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참석을 위해 두 분은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갔다. 거기서 이위종을 만났다. 이위종은 전 러시아 공사인 이범진의 아들이자 왕족이다. 영어, 불어, 러시아어를 능숙하게 구사한 그는 헤이그로 떠나기 2년 전에 러시아 귀족의 딸과 결혼하여 자녀들까지 두었다. 오늘날 관련 자료가 많은 것도 그의 덕분이라 하겠다.


당시 이준의 나이 48세로 가장 많았고, 이상설 37세, 그리고 이위종이 약관의 20세였다고 이동일이 설명했다..


“제 나이가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사공박이 말하자 “나는 더 부끄럽습니다” 70 중반의 회장이 동조했다. 갑자기 일행의 언행이 엄숙 무드로 변했다. 변덕스런 블라디보스토크의 하늘에 구름이 낀 탓만은 아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