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아닙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고려인 장터가 열렸네요
구경갑시다
▲블라디보스토크 중국시장
제 9회
연해주 장터
블라디보스토크의 한국총영사관 앞에서 특별한 행사가 개최됐다.
한국문화관광주간을 맞이하여 연해주장터가 열린 것이다.
연해주한인회와 총영사관, 극동평화연대, 재외동포재단, 연해주선교사협의회, 호텔현대, 기업체 등이 후원한 큰잔치이기도 하다.
“뻥이요!”
뻥튀기 기계에서 뻥! 옥수수 터지는 소리.
호박죽, 식혜, 커피, 차……
떡메를 들고 인절미를 한 번씩 쳐보는 사람도 있다.
유기농 태양초와 민들레 엑기스, 야생도라지 꿀청을 손에 들고 “기관지에 직방입니다”고 소리치는 모습은 마치 한국의 약장수 광경 같다.
보리차, 청국장, 콩국수, 김치, 깍두기도 있다.
제기차기, 윷놀이, 사물놀이 공연을 할 때는 이곳이 한국인가 착각할 정도다.
“러시아인 직원들이 있다면 꼭 같이 오십시오.”
블라디보스토크 소재 러시아 극동국립수산대 총장 김게오르기는 후원자의 한 사람으로서 개인 기업체가 많이 참여할 것을 독려한다. 벌써 십 년 이상 연방 대학의 총장직을 수행하는, 성공한 고려인으로서 그의 열성은 대단하다. 러시아인들이 고려인 문화를 이해하면 한러 우호가 두터워질 거라는 생각이다.
그로부터 몇 년 후 2011년 청와대에서 160여개국 해외동포단체 회장들이 모인 것은 디아스포라의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우즈베크, 카자흐스탄 등 CIS국가의 회장들만 한국말을 하지 못한다며 쑥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단다.
소련 시대에 러시아어로 쓰고 말하고 생각하도록 철저하게 교육받은 탓이다. 일본이 한글을 못 쓰게 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어렸을 때의 기억으로 노인들은 한국말을 어느 정도 알아듣는 편이다.
“그렇다고 고려인들이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살아온 건 아닙니다.”
총장은 정체성에 대해 단호하게 말한다. 한국말은 몰라도 밥, 김치, 된장을 모르는 고려인은 없다는 것이다.
장터를 운영하는 운영 캠프에 모인 사람의 숫자가 갑자기 늘어났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이다. 평화연대의 시민대표 박경석이 총장에게 질문한다.
“중앙아시아 젊은이들의 서울행 붐은 긍정적으로 봐야 할까요?”
"한국도 못살았을 때 많은 젊은이들이 독일에 가서 광부도 하지 않았습니까?"
총장은 되묻고, 고국 땅에 가서 3D 업종 일해서 돈을 버는 것이 뭐가 나쁘냐. 그렇게 벌어온 돈으로 우즈베크 고려인들은 그곳에서 꽤 잘사는 민족이 됐다고 강조한다.
오십 전후인 최두샤와 최까샤 자매는 5년 전 우즈베키스탄에서 연해주로 이주해와 지금 우수리스크 고향마을에서 살고 있는 재이주민이다.
“강제 이주할 때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아십니까?”
언니는 눈시울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소련 정부는 강제이주 명령을 하면서 할아버지에게 연해주에 있는 가축과 집을 놓고 가면 이주 후에 그 값을 매겨 그대로 보상해 주겠다고 문서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믿지 않고 그날 밤 가축들을 소금에 절여서 식량을 마련했습니다. 그 덕분에 가족들이 굶지 않고 몇 달을 열차에서 버틸 수 있었지요.”
듣는 사람들이 갑자기 숙연해졌다.
어떤 고려인 사장은 북한과 가까운 연해주에서 살면서도 북한을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다고 했다. 북한 사람들은 고려인들을 변절자로 여길 뿐만 아니라, 소련 시절 시내를 걷다가 버스에 타고 있던 북한군인들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들이 주먹질을 하더라는 것이다. 이때 뿌리 깊은 반북성향이 생겼다고 한다.
대신 한국에 대해서는 매우 우호적이다. 부산에 부인 명의로 아파트도 갖고 있다고 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연해주장터는 평화연대 답사단이 고려인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의 장소이기도 했다.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 회장 김니콜라이는 우수리스크에서 소문난 부자다. 그는 중국과의 무역업을 하고 있다. 큰 차이나마켓을 소유하고 있고, 큰 건물과 농장도 여러 개 갖고 있다.
“문화센터는 한국 정부와 민간단체들이 후원해 건물을 지었지만 러시아 법에 의해 법인 명의로는 재산소유권등기가 쉽지 않아 땅 소유자인 제 명의로 등기했습니다.”
수십억 원에 달하는 한국정부와 민간단체의 지원을 받아 지은 건물을 통째로 삼켰다는 비난의 소문이 나돌고 있음을 그가 모를 리 없다. 건물에서 식당과 카페, 예식장 등을 운영해 개인적인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소문을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가당치 않습니다. 큰 건물을 운영하려면 최소한의 운영비를 마련해야 하는 것 아녀요?”
이유가 안 되는 말은 아니다.
수년 전 한국에서 고려인들을 위한 구호품이 왔을 때 러시아 관리들이 이를 착복한 사건이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 한국 총영사관을 찾아갔다.
"재정착민 한 사람당 신발과 옷가지, 이불을 지원했다던데 우리는 고작 헌옷 한 벌 밖에 받지 못했어요.“
총영사가 상황을 파악해 구호품을 되찾아 주자 그는 물었다.
“누가 착복을 한거죠?”
“여기 관리들이 다 그렇죠, 뭐. 우리 땅에 와서 사는 놈들이라, 하더군요."
총영사는 털털하게 웃어 보였다.
한 할머니는 10살 손자와 7살 손녀와 살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는 서울에서 일을 하며 한달에 100만 원가량을 송금해 주고 있다.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어보자 "몰라"라고 했다. 서울에 간 고려인들의 직업은 대개 식당이나 여관 등지에서 종업원 생활을 하고 있을 거라는 짐작만 할 뿐이다.
한 재이주 남성은 한국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한다.
“저의 할머니는 우즈베크의 타슈켄트 인근 시온고 마을의 ‘아리랑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 시설에는 40명의 1세대 노인들이 먹고 자고 생활하는데, 한국의 어떤 재단에서 지원을 한답니다.”
요양원은 1937년 강제이주 이전에 태어난 이주 1세대 노인들을 위해 한국 정부가 우즈베크 정부의 협조를 받아 운영하는 시설이다.
이야기를 들은 사공박이 나선다.
“아, 그건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입니다. 한국정부 예산으로 운영하는 재단인데 제 친구가 사무총장을 하고 있지요.”
사공박의 인맥이 거기에도 뻗어 있나. 계속 지켜보아야 하겠다.
“장터라면 막걸리 한잔해야죠?”
농협 대표 노무성의 말이 떨어지기 전에 장터 본부 옆에 돗자리가 펼쳐졌다. 자연스럽게 고려인과 한국인이 한자리에 모여 술잔이 오고 간다.
“술자리엔 주모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역할을 할게요.”
농악공연단에서 소고를 담당하던 여성이 오더니 팔을 걷어 붙이고 막걸리를 따르기 시작한다. 신기한 광경에 러시아인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모두들 신명이 나 있는데 정은숙도 분위기를 거들었다. 잔에 막걸리를 부어 옆에 서 있는 러시아인에게 전해주자 그는 단숨에 잔을 비웠다.
와~ 박수!
구경하던 중국인도 한잔 달라고 한다. 한국의 시골장터 풍경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벌어지고 만 것이다. 민족은 다르지만 하나 되는 방법엔 이런 것도 있구나.
▲시골장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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