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돌고래 훈련장

돌고래 훈련장

오선닥 2010. 9. 16. 01:04

  돌고래 훈련장으로 일컬어지는 소설 속의 국제해양대학교는 부산 영도에 있었던 한국해양대학교

구 캠퍼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특정 학교를 소설에 넣고 싶지 않아서 이름을 달리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일본으로부터 인계받은 고등상선학교를 시작으로 인천, 군산, 부산 거제를 거쳐,

영도구 동삼동 중리교사까지 이전해온 해양대학은

이후 1974년 영도구 아치섬(朝島)으로 완전히 이사하게 되는 파란만장의 역사를 가진다.

송대길은 군항에서 부산 해군학군단으로 전보 발령을 받고 영도의 구 캠퍼스에 짐을 풀었다.

 

 

 

 

 

 

 

돌고래 훈련장

 

함정근무 일 년은 송대길의 인생에서 외부환경 적응법을 잘 가르쳐준 시기이다.

바다와 육지를 적당한 시간 간격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마치 온탕과 냉탕을 들락날락하는 기분이었다. 주어진 여건에 자신을 꿰맞출 줄 아는 천성이 어떤 환경 변화에도 적응을 쉽게 한다.

 

 

그런데,

하루 일과를 마치고 손을 씻을 무렵 부함장이 송 대길 중위를 불렀다.

왜, 갑자기 중위냐고?

며칠 전에 국가는 그에게 다이아몬드 하나를 더 붙여 주었다. 임관 후 일 년 만에 중위로 진급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다이아몬드 하나 더 붙이는데 2년 걸린 것과 비교하면 때를 잘 만난 셈이다.

 

 

“이 배에서 일 년 더 고생해야 하는데 전출발령이 났네.”

“예?”

 

해군본부에 줄도 없고 백도 없는 송대길은 육상근무 발령이 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약간은 당황했다.

 

“놀랄 필요 없어. 학군단으로 났구먼. 짐 꾸릴 준비하게.”

 

 

부함장은 농담조로 송대길의 발령을 전달했다.

학군단이라는 것은 해양계, 수산계 대학교의 해군예비사관후보생들의 군사교육을 담당하는 <해군학생군사교육단>을 말한다.

ROTC 출신을 함정근무에 더 붙들어 매어둬야 하는 게 부함장의 생각이었으나 본부의 발령이라 하는 수 없이 풀어준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부함장은 군사정권 내내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발휘한 모 고등학교 출신이다. 그는 꿈이 큰 직업군인이기도 하다. 기대했던 대로 나중에 참모총장까지 올라갔다. 너무 높이 올라갔던지 어떤 사유로 해서 중도에 낙마하고 말았다. 올라간 높이만큼이나 내려올 때 좀 아팠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동료 한 명의 해군 중위와 함께 송대길은 군사 교관으로 명을 받아 모교인 국제해양대학교 내에 있는 학군단으로 부임했다.

사람들은 이 학교를 ‘돌고래 훈련장’이라고 부르곤 한다.

물에 사는 영물인 돌고래 같이 영리하고 강인한 상선사관을 길러내겠다는 뜻이 들어 있다.

 

 

바다가 기분 좋게 내려다보이는 본관 중앙의 학군단장 사무실로 들어섰다.

 

 

“귀관들은 모범장교로 인정받아 학군단에 발령 받았으므로 긍지를 갖고 맡은 바 소임을 다해주기 바라네.”

 

 

지금까지 자신을 모범장교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송대길은 기분만은 나쁘지 않았다. 그것도 상관이 인정해줄 땐 어깨가 으쓱해질 만하다.

양 어깨에 해군대령 계급장이 유난히 반짝이는 정복을 입은 단장은 송대길과 동료의 신고를 받고 당부의 말을 했다.

그리고 몇 마디 더 추가했다.

 

 

“앞으로 차츰 알게 되겠지만 학교가 매우 어지러워졌어요. 입학정원이 많아지고 단기양성소 훈련생들도 늘어나고… 이럴 때일수록 군사교육이 중요한 걸세. 우선순위는 어디까지나 군사교육에 둬야하네.”

 

 

혹시 군사학을 재껴두고 학사과정의 학생 관리에 더 치중할까 봐 미리부터 상기시켜 놓는다.

군사교육단장으로서 충분히 우려할 만한 이유가 있다.

엄연히 독립적인 군부대임에도 대학총장 휘하의 일개 조직부서인 것처럼 여겨져 왔고, 또 그와 비슷한 대우를 받아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군단에 근무하는 장교들은 분명히 국방부 녹을 먹으면서 실제 근무는 학사 업무에 치중하는 면이 보인 것도 사실이다. 군사학 교육은 부수적이고 학생지도가 주업무로 간주된다는 것은 단장에겐 못마땅한 일이었다. 단장의 부름보다 총장의 부름에 동작이 더 빠른 것도 불쾌했다.

 

 

같은 학교마당이라도 군사훈련으로 사용하면 연병장이고, 학생훈련으로 사용하면 운동장이 된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한결같이 연병장으로 불렀다. 군사교육에 더 방점을 줬던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단장님은 안심하세요.’

송대길은 속으로 단장을 격려하고 있었다.

 

 

 

 

 

군부대, 아니 학교 안은 모든 부서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한국해운을 주도하는 일꾼을 만들어내는 전당은 일찍부터 거창한 교훈을 내걸었다.

 

 

- 인격의 완성, 진리의 탐구, 칠대양 제패, 명랑한 가정, 바다에 매골 -

 

 

교훈치고는 길지만 해군사관학교 교훈인‘진리를 구하자, 허위를 버리자, 희생하자’와 비교하면 직설적이고 매서운 느낌이 든다. 웨스트포인트 미국육군사관학교의 교훈인 ‘의무, 영광, 국가’와 비교하면 스케일이 다르다.

한국의 상선대학에 해당하는 킹스포인트 미국상선사관학교와 미국해안경비사관학교는 연방교통부 소속으로 졸업후 육, 해, 공, 해병대의 장교로도 입대할 수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상선대학은 해군에만 생도를 보낸다.

 

 

오랜 유교적 관습 때문인지, 아니면 미신 때문인지 한국엔 여자가 배 타는 것이 금기시돼 왔다. 재미있는 것은 킹스포인트가 여성 생도를 입학시키기 시작한 것이 1974년으로서 육해공 사관학교와 해안경비사관학교보다 2년 빨랐다. 바다가 오히려 개방적이었다.

한국의 상선사관 첫 여성 생도 입학은 1991년이었다. 홍일점으로 한 명이 들어왔다. 그 후 많은 여성들이 지원했지만 당시에는 대단한 용기였음에 틀림없다.

 

 

 

 

 

한국의 해운이 동면(冬眠)에서 깨어 나온 개구리처럼 점프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 문턱을 넘어서부터다. 1971년 수출 10억 달러를 달성하자 수출에 관성이 붙기 시작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외부환경의 요구에 의해 해기사를 배출할 캠퍼스는 한층 바빠졌다.

학부 신입생이 늘어나고, 해기사단기양성소의 훈련생도 매년 늘어나고 있었다.

국가의 무역물동량이 늘어나매 선박수요가 늘어나고, 이를 운용하는 인원의 수요도 늘어나기 때문에 학교는 필요한 인원을 배양, 배출하기에 분주하다.

인재를 붕어빵처럼 열심히 구어내야 할 판이다.

 

 

여기에다 군사교육을 받는 학생들까지 훈련구령을 질러대니 학교 앞 마당은 마치 신병훈련소를 방불케 한다. 매일 군화발자국에 밟혀 단련된 땅은 복근이 붙기도 한다.

또 수업이 끝난 후에는 특별활동이나 동아리 모임으로 캠퍼스가 영화촬영장처럼 바쁘다.

 

 

취침 전에도 별로 조용할 이유가 없다. 까닭 모르는 기합을 받고 소리 지르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학교 뒤 고갈산의 뿌리를 흔든다. 기합이나 훈련 중에 부르는 요가(寮歌)는 풋내기 학생들의 눈물을 뽑아내기에 충분하다.

 

 

웅지를 못 이루면 귀향 안하리

부모님 슬하도 그리웁건만

천부의 사명은 더욱 크도다

우리의 고향은 태평양이요

우리의 무덤이 될 태평양이다

 

 

학생들은 가슴이 뭉클해진다. 태평양에 묻히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사명이 이토록 큰가에 대한 깨달음 때문이다.

계속해서 다음 절로 이어진다.

 

 

아가씨 소용없는 국대생에게

윙크하는 아가씨를 어찌 하리오

파도는 우리의 것 우리의 사랑

뱃전에 부딪치는 파도소리는

달콤한 애인의 세레나데

 

 

불과 일 년 전의 일인데도 송대길에겐 오래전의 일처럼 가사가 여운으로 남았다.

그는 함정에서 가져온 봇짐을 풀고 기숙사 창문 밖을 내려다봤다.

확 터인 앞바다가 가슴을 풀어헤치고 굴직한 파도로 해변 바위를 쉴 새 없이 때린다.

 

 

바다가 주는 기(氣)를 좀 받아 둬야 한다. 거친 학생들과 씨름하며 학교생활을 해나기 위해서는 정신 일도가 필요하다.

 

 

1945년 건국 초에 조국이 부강한 나라로 번영하기 위해서는 해운의 발전이 필요했다. 해양인력 확보가 수반돼야 한다는 선각자들의 애국충정과 교육열이 마침내 세계 굴지의 해운 및 조선 대국으로 도약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국가의 경제발전과 국력신장으로 이어졌다.

교역량의 98%를 해상운송에 의존하고 있는 작은 나라가 생존하고 발전하는 데는 해사 및 해양 산업이 필수 전략산업임을 깨달아 국가는 일찍부터 임해 도시에 해양, 수산 관련 학교를 세운 것이다.

그 효과는 너무도 커서 국가가 어려운 시기에 해외건설인력과 쌍벽으로 해외선원송출은 외화를 벌어들이는 데 주역 일꾼으로서 산업기반의 기둥을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어서 다양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갖춘 많은 전문인력을 배출하여 해운불황기에 과감한 투자방법을 개발하고 호황기에 체질을 다지는 등 국제적으로 완전히 노출된 해운경쟁력을 키우는데 큰 몫을 차지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학생들의 현장 실습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터득하고 대한민국은 반도 국가이므로 실습선의 이름을‘반도호’로 명명했다.

 

 

 

 

그 후의 정부도 실습선‘한바다호’와 ‘한나라호’를 연이어 진수시킴으로 학생들의 교육에 과감한 투자를 했다. 상선사관은 평화시에는 상선에 헌신하고 전시에는 해군장교로서 그 임무를 다하는 데 자부심을 부여했다.

 

 

사실 박정희 대통령은 처음엔 이 바다 학교를 좋아하지 않았다. 실습선 반도호와 학생들의 국비 지원에 너무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러나 학교를 방문한 후 학생들의 늠름한 모습을 보고, 또 우수한 입학성적과 졸업 후 하버드나 MIT 등 유학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졸업 후 해군 장교로서의 봉사에 감명을 받고 어려운 나라살림에도 불구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국제해양대학교는 풍운아처럼 봇짐지고 여러 번 이사했다.

일제시기인 1919년 진해고등해원양성소에서 둥지를 틀어, 1945년 진해에서 대학으로 승격, 개교한 후 인천, 군산을 거쳐, 부산의 거제를 지나고, 6.25전쟁 직후에는 부산 영도로 이사했다. 지금의 아치 섬에 학교가 완전히 들어선 것은 1974년이었다.

부동산 투기 목적도 아닌데 한국의 아파트 아줌마처럼 부지런히 옮겨 다닌 것이다.

 

 

학교는 역사의 증인처럼 참담한 전쟁, 무서운 혁명, 뼈아픈 민주화운동, 피묻은 노동운동, 미숙한 통일운동 등을 겪으며 국가의 발자취와 함께 고락을 체험하며 걸어왔다.

 

 

주관부처도 교통부에서, 국방부로, 다시 교통부와 상공부로, 그리고 문교부로 바뀌곤 했지만 학교는 중심을 잃지 않고 가야할 길을 걸으며 본분을 지켜왔다.

 

 

갖은 정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이 나라는 해운이 국가경제의 젖줄임을 확신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실사구시의 선봉인 미래의 해운지도자를 위하여 값비싼 실습선을 평균 15년 주기로 건조, 취항시켜 항시 2척씩 운항되도록 배려했다. 그 노력은 오늘에 이르러 잘 익은 열매로 이 나라 구석구석에 나타나고 있다.

 

 

 

 

 

해군이 송대길에게 맡겨준 임무는 군사학 교육이다.

어뢰, 기뢰, 폭뢰… 등이 그가 맡아야 할 교수 과목이다.

‘뇌’를 쥐어짜는 이런 무기는 그를 당황하게 만든다. 전공과는 너무 먼, 골 때리는 과목이다. 그러나 임무가 주어지면 연구를 해서라도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어느 날 수산계 학생의 군사학 시간이 됐다.

해군 무기에 관한 수업이 따분할 것 같아 여담으로 시작했다.

 

 

“이 학교 바로 옆에 좋은 여자대학교가 보이네요. 좋은 학교에는 좋은 학생이 있습니다. 여러분 행복하겠습니다.”

 

학생들은 교관의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해서 귀가 쫑긋했다.

송대길은 개의치 않고 계속했다.

 

“좋아하는 여학생과 사귀기 위해서는 해군전법이 필요합니다. 즉 어뢰, 기뢰 및 폭뢰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있습니다.”

“…?”

 

학생들은 숨을 죽이고 귀만 내민다.

 

“어뢰는 먼 거리에 있는 대상물을 정조준으로, 기뢰는 넓은 공간에 있는 대상물을 암암리에, 그리고 폭뢰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상물을 직격으로 공략해야 합니다. 여학생 공략에 도움이 되었습니까?"

 

"워~! 그 학교 여학생들은 여우처럼 잘 피합니다. 교관님!"

 

한 학생이 잽싸게 반격했다.

 

"그럼, 여우비로 쏟아 부어야 합니다."

 

"바다에 빠져도 도망가는 얘들입니다."

 

이번엔 다른 학생이 끼어들었다.

 

"좌우지간 수중무기는 교본에 있는 대로 자습해서 시험을 치도록 하겠어요. 이만 수업 끝!"

 

 

뜬금없는 농담으로 수업을 때웠다.

어차피 교관이나 학생이나 교습 내용을 잘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이니까 그냥 넘어가도 살림엔 지장이 없다.

 

 

 

 

수업이 없을 때는 학생 생활지도를 맡는다.

이건 부속 업무인데도 어느새 주 업무가 되어버렸다.

‘학생지도관’이라는 명칭으로 학생들에게 염라대왕 노릇을 한다.

대왕의 노릇은 어렵지 않다. 과실점수를 부여해나가면 필연적으로 무서워하게 되어 있다.

과실점수는 교수, 학생지도관, 상급생이면 누구나 줄 수 있다.

 

 

- 1학년 300점, 2학년 250점, 3학년 200점, 4학년 150점 -

 

 

한계점수를 받으면 보급한 교복을 벗고 고향 집으로 가야한다.

호주머니에 손만 넣어도 5점을 받는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으면 4학년은 서른 번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뺐다 하면 족하다.

한 번의 행동으로도 가능한 방법이 있다. 침실에서 담배 한 대만 피우면 된다. 이걸 ‘A급 과실’이라고 한다.

A급 전범, A매치 등 A자의 위력이 큰 점은 이 학교에서도 실감한다.

A급과실로 무더기 퇴학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어느 달밝은 밤.

학교 밑 해변의 바다가 유난히 달빛으로 휘황할 때, 취침점검을 마치고 잠에 들어 있어야할 4명의 2학년생들이 낮에 모의한대로 해변 마을에 있는 주점에 가서 거나하게, 그리고 기분 좋게 한잔했다. 침실로 돌아와서 태연히 이불을 덮고 잤다.

‘역시 세상은 낮엔 새도 모르고 밤엔 쥐도 모르는 것이다’라며 미소까지 짓고.

이튿날 4명 모두 학생지도관실로 불려갔다.

허가 없이 학교 울타리 바깥으로 빠져나간 죄목, 즉 탈사(脫舍)로 밝혀진 것이다.

전날 밤 침실 순찰을 한 4학년 학생간부가 침대 4개가 비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추적해본 결과 찾아낸 것이다. 결국 세 명은 퇴학당하고 한 명만 구제받은 사건으로 결론이 났다.

 

 

 

 

 

해변 언덕에 우뚝 선 캠퍼스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파도가 무섭게 쳐대는 밤을 맞으면 뒷머리가 무거운 공포를 주곤 한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이라고 들어온 곳이 낭만은 온데간데없고 혹독한 훈련과 꽉 짜인 수업으로 사람을 숨 막히게 할 때 자포자기에 빠지기 십상이다.

한 학기에 소정의 학점을 취득하지 못하면 책 보따리를 싸야한다. 입학한 100명 중에 6명이 첫 학기에 눈물을 머금고 보따리를 싸서 결국 ‘고향 앞으로’ 했다.

 

 

실업고를 졸업한 룸메이트는 부족한 실력을 만회하기 위해 새벽에 도서관을 이용했다.

어느 새벽 그는 허급지급 송대길을 흔들어 깨웠다.

 

 

“대길아, 일어나봐! 나 유령 봤어.”

 

잠결에 송대길은 친구의 소리가 짜증으로 다가왔다.

 

“뭐? 니가 유령을 봤다고? 아니면 내가 유령 꿈을 꿨다?”

 

“아니. 내가 도서관에서 여자 유령을 봤어! 정말이야.”

 

친구는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나무 둥치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친구의 숨소리는 무거운 짐을 실은 배의 피스턴 소리처럼 허벅 댔다.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중 ‘죽은 남편 살려 달라’는 목소리에 놀라 뛰쳐나왔다는 것이다.

 

승선 중에 사고를 만나 수장당한 어느 선배의 부인은 죽은 남편 따라 물에 빠져 자살했다. 유령이 혹시 그녀일지 모른다고 하면서 그는 떨고 있었다.

많은 선원 부인들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하여 불빛이 번쩍번쩍 돌아가는 나이트 홀을 찾는 반면에, 이 여인은 사랑이 어떤 것인지 순애보로 가르쳐준 사람이다.

 

 

이날부터 친구는 밤에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았다. 학점은 턱걸이에 걸려 겨우 통과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학교 발아래 깎여진 바위 언덕이 있는 해변은 종종 영화촬영 장소로 아용되기도 한다.

마도로스도와 관련된 영화를 제작하려 하면 앞이 바다로 확 트인 이곳이 안성맞춤이다.

짓다가 만 부두는 뼈대만 남아 도망가는 밀수꾼이나 간첩 접선지로 촬영해도 어울릴 것이다. 밤에는 뒤에 서 있는 묵직한 도서관 건물과 어울려 유령이 놀 만한 장소도 될 수 있다.

 

 

송대길은 졸지에 배우가 됐다. 4학년 때 일이다.

조연 배역이었지만 영화 속 내용은 주연에 가깝다.

인기배우 강성일과 인형미인 배우 설문희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에 송대길은 설문희의 시동생으로 등장했다. 인물이 준수한 학생을 찾다보니 송대길이 그냥 뽑혔을 뿐이다.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배역은 짧고, 촬영은 방학 기간을 이용했다. 물론 학교 당국의 허락이 있었다.

줄거리는 이렇다.

 

 

강성일이 외항선을 타고 있는 중 스페인의 아리따운 아가씨와 사랑에 빠져 한국의 아내를 내팽개치고 내몰라 한다. 아내 설문희는 바다에 빠지는 자살을 시도한다. 시동생인 송대길이 형수인 설문희를 위로하며 용기를 북돋아 준다. 그러면서 형수와 사랑에 빠져들려는 순간에 형이 스페인 애인을 잃고 귀국한다. 형에게 형수와의 사랑을 넘겨주고 송대길은 자신도 외항선 선원이 된다. 한참 후 귀국했을 때 형이 불치의 병에 걸려 형수를 외롭게 한다. 송대길이 다시 형수를 위로한다.

 

 

설문희가 자살 장면을 연기하기 위해 학교 앞 해안 언덕을 수없이 오르내리는 것은 정말 딱한 일이었다. 송대길은 자신이 현실의 시동생이라도 된 듯 절벽 해안을 반복해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설문희의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감독은 여린 여자를 저렇게 혹사시키나?’

학생 배우 송대길은 형수역인 설문희를 애처로운 마음 때문에 진짜로 사랑할 뻔했다.

 

 

 

 

비 오는 날 외출을 하고 학교로 들어올 때 영도의 영선동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꼬불꼬불한 산허리를 돌아오는 동안 비를 맞고 교복이 온통 흙탕물이 된 일을 잊을 수 없다. 사관후보생은 비가와도 우산을 쓰지 않아야 한다는 신사규칙 때문에 쏟아지는 비를 몽땅 맞고도 참아야 했다.

 

 

날씨 좋고 별빛이 뿌리는 날에는 포장되지 않은 길도 로맨틱한 기분을 만들어준다. 낭떠러지를 바다로 늘어뜨리고 아슬아슬하게 산 중턱에 둘러 걸쳐 있는 길을 걸어가노라면 눈 아래 해변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에 팔팔한 젊음도 잔잔한 심장의 리듬소리를 듣게 된다.

교복 밑에 얕게 엎드린 가슴을 가진 여학생이라도 동행할지라면 멋진 데이트가 될 것이다. 그녀의 가슴이 숨 쉬어 부풀어 오르는 순간엔 감동으로 답할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말이면 저 길을 4년 동안이나 왔다 갔다 했다. 추억은 아름다웠으나 외출 후 시간에 쫓겨 숨을 헐떡거리며 귀교할 때 아찔했던 추억이 새롭다.

 

 

 

 

 

그러나 학교는 바이런의 시나 읊으며 한가하게 자연도취에만 빠지도록 학생들을 놔두지 않는다. 가난한 국가에서 국비 낭비를 허용하는 것은 죄악과 다름없다.

 

 

3개월이 머잖아 군복착용으로 ‘앞에총’ 하여 섬 한 바퀴나 10km가 넘는 시내 운동장까지 왕복을 할 때면 입에 거품을 물지 않을 수 없다. 학교 연병장에 도착했을 때는 하늘이 노랗게 되어 쓰러지는 자가 한 둘이 아니다.

‘집에 보내줘.’

이렇게 외치는 학생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도 참을래.’

로 주저앉는다.

학교의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훈련 때문에 숨이 끊어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해변 바위에 박치기하는 파도와 학교 뒤에서 바닷바람을 장풍으로 버티고 있는 고갈산의 위엄에서 배운 끈질김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힘들다가도 국가가 정성들여 만들어주는 식사가 있기 때문에 가뿐히 회복한다. 식사를 마쳤는데도 슬그머니 뒤로 돌아와서 한 번 더 식사대열 뒤에 서는 얌체 친구는 애교로 봐 준다. 다른 사람이 모를 거라고 본인은 생각하나 입술에 묻은 고춧가루는 이중식사의 결정적 증거임을 드러내고 만다.

 

 

먹는 내기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건만 기어코 매점에서 야식 국수 열 그릇 먹는 내기를 무사히 끝낸 어느 동료에게 이튿날 아침,

 

 

“배 아프진 않아?”

물었을 때 그의 유일한 대답은,

“파 냄새가 조금 나긴 해.”

 

정도였다.

국수로 인하여 그 친구는 건강을 잃어본 적이 없고, 21세기에 들어서도 장수 승선을 하고 있음은 타고난 건강 덕분 때문일 것이다.

 

 

휴일이면 학교 뒤 고갈산에 올라가 심신의 건강을 증진시킨다. 꼭대기에 올라가 먼 수평선을 내려다보면 지구는 역시 둥글다는 점을 확인한다. 둥글지 않으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미국도 보여야 할 테니 말이다.

 

 

 

 

언젠가 캠퍼스 내에서 갑자기 성형수술이 유행했다.

남성만 있는 학교에서 웬 성형이냐고?

남성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의 성형수술이다.

얼마 전에 부임한 위생관이 이 부분에 조예가 깊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성경에 나오는 유대인의 탄생 8일 만에 치르는 할례 규정과는 상관이 없으므로 원하는 사람만 수술 받으면 된다.

무엇보다 붐을 조성시킨 것은 가격이 파격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위생실의 조 간호사가 필요 이상으로 예쁘다는 점이 학생 손님을 더욱 유혹했다. 위생관은 이 남성수술에서 군인 본업 이상의 수입을 창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분은 간호사가 남성 부위에 마취주사를 주고, 또 수술 후 환부에 직접 위생붕대를 감는다는 사실이다. 호기심 많은 남학생들은 대부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한 친구는 예외에 속한다.

 

 

“이쪽으로 보세요. 붕대 감는 쪽은 엉덩이가 아니고 앞쪽예요.”

 

여자같이 예쁘장하게 생긴 일 학년 학생이 수술을 받은 후 위생실 조 간호사한테 핀잔을 듣는다.

 

“제가 직접 감으면 안 될까요?”

 

환자는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해 안절부절 한다. 괜히 여기서 수술했나, 하는 후회도 하는 것 같다.

 

“간호사는 저예요. 혹시 곪아 터지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붕대 감는 것이 쉬운 줄 아세요?”

 

“그럼, 의사선생님이 직접 해주실 수 없어요?”

 

“의사선생님은 저한테 다 맡기고 나가셨어요. 다른 학생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 잘 했었는데…. 이래봬도 저 23살이라고요. 그저 누나라고 생각하세요.”

 

환자가 자꾸 말을 잘 듣지 않자 나이까지 동원하며 간호사는 윽박지르듯 한다.

결국 스무 살의 학생 환자는 도살장에 끌려온 소처럼 순순히 23살의 간호사의 손길에 맡겼다.

지그시 눈을 감으면서.

 

 

정기 군사훈련 기간이 돌아오자 전교생은 훈련에 들어갔다.

 

“훈련 계획이 있는 줄 알면서도 수술했단 말인가?”

 

일 학년 환자는 송대길 집무실로 불려 와서 치조를 당하고 있다.

 

가을철이 수술하기에 좋다고 해서 그랬습니다.”

 

“가을 계절이 긴데, 학생의 가을은 한 달밖에 안 되나?”

 

“훈련을 피하고자 한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실밥을 뽑으면 특별훈련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좋아. 표피를 걷어내서 몸이 가벼워졌을 테니 치료 후 완전무장해서 섬 두 바퀴는 돌 수 있겠지?”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훈련 회피용으로 수술한다는 이야기가 거짓말은 아니다. 그러나 학생은 그러한 고의는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군대는 과정보다 결과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학생이 섬을 두 바퀴 돌았는지 확인되지 않은 채 그해 가을은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울안에 갇힌 학생들은 따분한 심정을 간혹 엉뚱한 짓으로 풀기도 한다. 외양간에 갇힌 송아지가 문이 열리면 잽싸게 뛰쳐나와 정신없이 날뛰는 것처럼.

기어코 가볍지 않은 일이 터져버렸다.

 

 

“너는 왜 여학생을 괴롭히냐? 그 여학생이 누군 줄 알어? 총장님 딸이야. 그것도 외동딸이야. 말썽에도 보는 눈이 있어야 돼!”

 

지도관 송대길 중위가 말썽꾸러기 2학년 학생을 집무실로 불러놓고 혼을 내주고 있는 것이다.

하교를 하고 학교 관사로 귀가하고 있던 총장 딸이 학교 앞을 지나가다가 마침 채벌 대신 미화작업 중 잔디에 물을 뿌리고 있던 학생이 장난삼아 지나가던 여학생에게 물세례를 퍼부었다.

 

“물 압력이 세어서 호스가 튀어버렸습니다. 공교롭게 그 여학생이 지나가다가 그렇게 돼서….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랬다는 게 목격자 입에서 나왔는데도?”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경위서를 써 오도록 해. 피해자에게 전달할 거야.”

 

 

하필 피해자가 총장 딸이었던 것도 그랬지만, 한창 입시공부에 열중하는 고3 학생에게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줬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경위서를 전달하기 위해 이틀 후 송대길은 하교중인 피해자 여학생을 지도관실에 들러줄 것을 요청했다.

 

“가해 학생이 실수로 했던 것인 만큼 이해해 줘. 여기 그의 경위서가 있으니 받아요. 용서한 거지?”

 

송 대길은 봉투에 든 경위서를 피해 여학생에게 전달했다. 그녀는 경위서를 읽어보고 싶지 않다는 듯 구겨서 가방 안에 넣고 있었다.

 

 

“송 중위님, 경위서 읽어볼 필요 없어요. 전 이미 그 학생 용서했어요. 송 대길 중위님의 위치를 생각해서요.”

 

“근데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

 

“제복 명찰의 것은 이름 아네요? 어깨에 계급장도 있잖아요.”

 

“아, 내 정신 좀 봐. 그렇군.”

 

송대길은 어린 여학생 앞에서 민망했다.

 

“명찰이 아니더라도 전 송 중위님 이름 이미 알고 있었어요. 송 중위님의 팬예요. 배우 송대길의 팬 말입니다. ‘형수님을 맡아주세요’의 배우를 좋아하는 사람예요.”

 

“엑스트라로 잠시 비친 건데.”

 

“횟수는 엑스트라지만, 내용은 주연이잖아요.”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 같아 송대길은 용건을 마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 호스 건은 용서해준 거지?”

 

“네, 용서했어요. 근데 전 대학에 들어가면 송 중위님 팬 활동 활발히 할 거예요.”

 

이야기는 옆길로….

 

“학생이 대학에 들어갈 땐 난 태평양 한가운데 있을 건데. 마도로스로 말이다.”

 

“상관없어요. ‘사랑은 파도를 타고’라는 말이 있잖아요.”

 

“학생은 공부에 몰입해야 돼. 입시도 다가오고 하니까.”

 

“송 중위님, 제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저 가은예요. 이가은.”

 

“알았어. 가은 양은 큰 꿈을 꿀 때야. 그 꿈이 펼쳐졌으면 좋겠어.”

 

“마도로스 팬 될 거예요. 꿈의 리스트에 넣어 놓았어요.”

 

 

이 날 계속된 대화를 더 적을 수 없다.

가은이 분명히 약속한 것은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만이라도 열심히 형설의 공을 쌓겠다는 것이다.

 

 

 

 

 

학교는 해양발전의 산증인이다. 선박이 늘어나자 해기사 부족을 감당 못하여 1965년 해기원 단기양성소가 개설되었다. 정규 학사과정의 입학증원도 늘이고 또 늘였다.

경제가 팽창하니 무역이 늘어나고, 무역이 늘어나니 선박수요가 급증하는 것이다. 연쇄적인 수요팽창이다.

 

 

배를 타겠다고 지원하는 사람도 많아졌고 지원 부류도 다양해졌다.

한 고등학교 교사는 부인이 극구 말리는데도 바다로의 진출을 포기하지 않았다. 돈도 돈이지만 물 건너 여러 나라에 두루두루 돌아다녀보겠다는 욕망을 억제할 수 없었다.

 

“교사 월급으로도 먹고 살 만한데 뭐 땜에 생이별 하려고 해요?”

 

부인은 극구 말렸다.

 

“나 때문이 아니고 우리 가족을 위해서라고. 달러 많이 벌어 와서 당신 호강시켜 줄께. 그리고 나는 큰물에서 놀아야 해.”

 

바다는 큰 물 치고는 너무 큰물이다. 그 큰물에 집채 만한 파도는 어떻게 하고….

 

 

 

바다에 근무하기 위해서는 소정의 극기 훈련이 필요하다.

이 훈련을 송 중위 같은 학군단 군사 교관이 맡는다. 민간인에게 군사교육 제공은 일종의 편의적인 방편이기도 하지만 시급한 국가정책에 조력하는 것은 충분하고도 정당한 이유가 될 것이다.

 

 

일본에서는 한국선원 찾기에 선박회사들끼리 경쟁이 극심했다. 부지런함 하나는 알아주는 국민이고, 거기다가 기술도 월등하며, 더 더욱 일본어 숙달도 빠르니 금상첨화다. 심지어는 선원고용규칙 적용이 까다로운 일본선원보다 일 시키기가 낫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자연히 수요에 부합할 만한 학교의 용량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해운이 필요로 하는 인원을 더 많이 양성하기 위해 더 넓은 캠퍼스가 필요했다.

학교를 어디로 옮기면 좋을까 하는 것이 학교의 연구 대상이었고 국가적으로도 당면 과제였다. 달러 제조기와 다름없는 선원을 배출하기 때문이다.

 

 

 

오션닥 sunghway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