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국적선 갈아타기

국적선 갈아타기

오선닥 2012. 10. 10. 18:37

승선 중에는

시계 바늘이 느리게만 돌아가더니

육지에서는 왜 이렇게 빨리 돌아가나?

벌써 1987년의 여름이 되었다.

오선덕이 하선하여 꿀맛 같은 휴가를 즐기고 있는데

한국 H사의 후배 한 명이 찾아와서……

운명을 돌려놓았다.

 

 

 

 

국적선 갈아타기

 

 

어릴 적 먹었던 곶감이 굉장히 달았던 걸로 기억된다. 이 곶감보다 더 달았던 게 꿀맛이었다. 그로부터 꿀보다 혀끝을 더 달콤하게 해준 것은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다.

 

일본 선박에서 하선하여 꿀맛 같은 연가(年暇)를 즐기고 있는 오선덕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형님, 휴가 잘 쉬고 계십니까? 시간 좀 내주시면 제가 차 한잔 사겠습니다.”

 

한국 H사의 해무과장 박철민이었다. 그가 가르쳐주는 커피숍으로 갔다. 아니 다방으로 갔다. 커피숍이란 말이 아직 유행하지 않았을 때였으니.

 

“뱃놈에게 휴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긴 알어? 이 바쁜 사람을 불러내고……?”

 

다방 의자에 앉기도 전에 오선덕이 일부러 역정을 부렸으나 돌아오는 반응은 웃음이었다.

 

“형님, 남는 게 시간 아닙니까. 괜히 형수님 떼어 내시기에 좋은 핑계가 되었으면서……. 그건 농담이고요, 긴한 말씀이 있어서 뵙자고 한 겁니다.”

 

그럼 그렇지. 이 바쁜 사람을.

휴가로 쉬는 선원만큼 바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열 달 벌어서 한 달 쉬는 꿀맛 같은 휴가 기간은 그 뭐와도 바꿀 수 없다.

 

선상 커피를 마시다가 다방의 커피를 마시니 그 맛도 괜찮다. 무교동의 커피라고 해서 향수를 뿌린 것은 아니지만, 사롱 선원 대신 다방 레지가 갖다 주는 커피는 분위기부터 다르다.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뭉개곤 했던 70년대 음악 감상실이 좋았던 기억이 풋풋하게 살아났다. 아마도 세시봉이 있었던 자리와 멀지 않아서일지도.

 

세시봉이 한때 음악감상 살롱으로 유명했던 것은 이름 그대로 멋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김세환…… 이런 한량들이 팝의 선교 장소로 사용했었지.

 

지금 80년대는 칼라TV 시대 아닌가. 디스코클럽에 가서 힙을 흔들고, 음악실에서는 상송이나 칸소네를 따라 부르는 시대 말이다.

 

후배는 커피 맛에 심취해 있을 때가 아니라는 듯 서두는 기색이 역력하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 가스운반선의 선장이 급히 하선케 되어 긴급으로 선장을 찾고 있습니다. 마침 소문에 형님이 휴가 중에 계신다고 해서 전화 드렸던 겁니다.”

 

누가 소문을 냈나. 휴가를 조용히 보내고 있는 사람을 두고.

손바닥만한 해운계에서 모른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건가.

그런데 H사는 가스운반선을 보유하고 있긴 하나? 한국이 더디어 원양 가스운반선을 보유하게 되었군.

 

“커피를 다 마셔야 내 생각을 가다듬든지 하지.”

 

오선덕은 오히려 느긋한 자세를 취했다. 강한 스프링에 강하게 부딪히면 튀어버리듯 완충이 필요하다. 승조원을 배승하지 못해 배를 멈추게 한다면 선원담당자로서는 암담할 것이다.

 

외국선에만 근무한 오선덕은 국적선의 매력에 약간 끌려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평균 한 달에 한 번 한국에 입항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한국 배에 탄다는 약간의 애국심 부스러기 같은 자긍심도.

 

그러나 당장 결정하기보담 일단 대화를 끌었다. 해운통폐합은 마무리 됐는지, 재벌의 해운업 진출은 허용되는지 등 OX 질문을 먼저 하고, 한국 해운 시황은 어떤지 등 주관식 질문을 한 다음, 요즘 선원수급 전망은 어떻게 보는지 등 은근히 논술 질문으로 나갔다.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 협상 수위가 달라진다.

 

그런데 후배는 초조한 모양이다.

 

“장고에 들어가시면 저희 배는 멈춰야 합니다. 승낙하신 걸로 하겠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이래도 내가 과거 영업맨 아니었던가. 정에 약해서는 안 된다’고 그는 다짐하면서 톤을 정제했다.

 

“내일까지 답을 주겠네.”

 

안달하는 후배에게 하루 이상 유예기간의 고통을 줄 수는 없었다.

 

이튿날 오선덕은 몸담았던 소속 회사를 찾아갔다. 전무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급료도 훨씬 적은 그런 회사의 배를 왜 타려고 하느냐고 아우성이다. ‘리포터 선장’을 빼앗기면 회사의 자존심이 어떻게 되느냐고 극히 사소한 부분까지도 거론했다. 오선덕은 침착을 잃지 않고, 이왕 꺼낸 말을 밀고 나가기로 다짐했다.

 

“그래도 이 회사는 훌륭한 선장들이 줄을 서있지 않습니까? 반면에 그 회사는 선장이 없어 배를 못 움직일 상황입니다. 한 번 구제해주고 돌아오겠습니다.”

 

동정심을 불어 일으키는 작전이었다. 그리고 주효했다.

 

“오 선장, 꼭 돌아와야 해요. 마도로스가 의리 빼면 시체라는 거 알지?”

 

“네, 전무님 명심하겠습니다.”

 

인간이 미래를 기약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내일이 나에게 보장된다는 생각은 오만이다. 베수비오 화산이 언제 폼페이 시에 경고를 주고 잿더미로 만들었나. 의리의 끈은 남겨두되 약속을 못 박는 것은 의리에 상처를 키울 뿐이다.

 

H사는 오 선장의 입사에 한숨을 돌렸다. 15척의 선박을 보유하고 있지만 가스운반선은 3척밖에 없다. 넉넉한 급료를 주지 못하는 상태에서 경험 있는 선장을 유급으로 대기시켜 놓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후배 선원과장은 이러한 때 교대할 선장을 찾았다는 것은 천군만마의 원군을 얻은 것과 다름없다. 6.25 때 공산군에 밀려 부산만 부여잡고 바들바들 떨던 이승만 대통령이 미군의 상륙을 맞이했을 때의 감격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선장님, 아니 형님, 이번 토요일엔 야구관람 계획 잡지 마세요. 오후에 제가 한턱 쏘겠습니다. 물론 회사 비용으로요.”

 

“나야 요일의 구분 없이 노는 사람이니까 괜찮지만 자네는?”

 

“저희들이야 마음 놓고 술 마시는 날이 토요일밖에 더 있어요. 그럼 토요일로 하겠습니다.”

 

토요일은 한국이 술 마시는 날이다.

일본은 금요일에 마신다. 그들이야 토요일은 쉬니까 그렇겠지.

한국은 토요일 오후 한 시까지 일하면서 점심은 분식으로 국가 식량정책에 협력한다.

 

 

 

토요일.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종로 화신백화점 건물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반년 전 자금압박을 견디다 못해 문을 닫은 백화점은 그림자마저 힘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 그림자를 안고 있는 뒤쪽 유흥업소는 더욱 번창하고 네온사인에선 화려한 불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박철민 과장이 업소 입구로 안내했다.

 

“형님, 여기 초원엔 처음이시죠? 유명한 곳입니다.”

 

현란한 네온사인 간판과는 달리 지붕이라는 게 촌닭이 올라가서 놀기 좋을 만하다.

 

“이름이 별로 분위기에 맞지 않군. 촌스럽게 초원이 뭐야.”

 

“아닙니다. 겉은 이래 뵈도 안은 아주 다릅니다. ‘못생겨서 죄송한 분’ 때문에 유명해진 곳이예요. 이제 아시겠죠?”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

아, 정주일, 아니 이주일.

요즘 그가 유일하게 들르는 밤무대란다.

 

이른 저녁인데도 업소 안은 조명이 활발하게 돌아갔다. 조명이 없을 때는 암흑이었다.

 

“형님, 죄송하지만 여성 두 분 부르려고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꽤 점잖은 체하는 박철민의 내숭이 이땐 미워죽을 지경이다.

이런 장소에서 호박씨 까는 사람 말이다.

 

“자네답지 않게 웬일이야?”

 

“혹시나 해서요……. 그럼 연락하겠습니다.”

 

카운터에 가서 어딘가 전화를 거는 박철민.

십 분이 채 지나기 전에 두 여성이 들어왔다. 돌아가는 불빛을 화려하게 받으며 접근하는 그들의 모습은 홀의 분위기를 압도했다. 첫 인상이 ‘팁 좀 나가겠구나’로 사운딩(선박 용어로 測深)되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두 사람이 다소곳하게 인사하는 폼은 직업정신이 투철한 여성으로서 모범의 극치다. 오늘 술맛은 괜찮겠다는 게 오선덕의 판단이다. 고개 숙이는 모습에서부터 예의가 풍기고 살포시 고개 드는 모습 또한 훈련 받은 조교다.

 

그들이 고개를 완전히 들었을 때가 문제였다.

오선덕의 눈동자가 자이로스코프(선박용 방향지시 회전의) 모터보다 더 빠른 속도로 돌아갔다.

 

“아니? 이~ 이 여성은……?”

 

“그렇사옵니다. 부장님, 아니 선장님, 저 손주리입니다. 안녕하셨어요?”

 

박철민이 이벤트를 창작했다.

사람을 놀리는 재주를 치면 오선덕을 따라갈 사람이 없을진대, 오늘 오선덕은 완전히 몰카에 당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박철민 과장은 자기 회사 여성 직원 두 명을 부른 것이다.

손주리가 H사에 옮겨온 것을 설명하자면 스토리가 길어진다. 일찍이 K사 부정기선부에서 오선덕 부장 밑에서 영업 훈련을 받은 그녀가 H사의 스카우트를 받고 옮겨온 것은 3년 전의 일이다. 지금 영업부에 근무하는 중이다.

 

또 한 명의 여성 직원은 홍단아라고 한다. 박철민 과장과 해무부에서 함께 근무하는 중이다. 해운통폐합 때 H사에 합병당한 회사의 사장 비서로 있다가 H사에 합류한 것이다.

 

“오늘 두 여성을 합석시킨 이유는 앞으로 선장님을 육상에서 원격지원해드릴 직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서 박 과장은,

 

“손주리 대리와 홍단아 씨는 정식으로 오선덕 선장님께 인사드려요.”

 

다소곳한 두 여성의 인사를 확인했다.

 

술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업무 오리엔테이션을 하자는 게 박철민 과장의 의도이다. 선박과 육지 간 전보나 텔렉스로 업무연락을 할 때 얼굴을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된다는 것.

 

“선장님, 이렇게 쉽게 뵈올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더구나 같은 회사에서 말예요.”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손주리는 모션이 자꾸 커지면서 말이 생각보다 앞섰다.

 

“그리고요. 제가 담당하는 배 선장으로 오신 거 너무너무 감사해요.”

 

마치 사장이 할 인사를 대신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반가움 표시가 너무 길어지자 박철민 과장이 대화 내용의 조정에 들어갔다.

 

“실은 손 대리의 형부가 현재 G호의 선장입니다. 부동산매매 건으로 급히 하선해야 하는데 마땅한 선장을 찾지 못하고 있는 차에 오 선장님이 구세주로 나타나신 겁니다. 기쁨을 감추지 못할 만하죠.”

 

이건 무슨 뚱딴지같은 뉴스.

몇 년 사이에 손주리의 가정에 변화가 좀 있었나? 언니는 열 살 차이의 형부와 거부감 없이 짝을 지었단다. 형부는 젊은 색시를 두고 과연 계속 배를 탈 수 있을지 걱정하곤 했었는데 이번의 하선도 부동산 때문인지 언니 때문인지 사실 헷갈린다는 게 그녀의 견해이다.

 

“그랬군. 이런 재회가 예사롭지 않으니, 술 한잔하면서 더 얘기하자구.”

 

오선덕은 차라리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것이 정신을 덜 혼란시킬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앉아 있는 의자의 다리 하나가 없어진 것처럼 자꾸 어색하고 불안정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술과 별로 친하지 않아서였는지 취기가 벌레처럼 얼굴을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눈동자까지 차올랐다. 두 여직원이 자꾸 유료봉사 아가씨처럼 보이는 것은 정말 민망한 일이다.

 

박 과장이 피장파장의 상태를 모르고 눈치를 챘나.

 

“형님, 피곤하신 표시를 해도 소용없습니다. 이차까지 스케줄이 꽉 짜여 있습니다. 플로에 나가 디스코나 좀 밟아보실래요?”

 

디스코에 구태여 짝을 맞출 필요는 없다. 그러나 손주리는 오선덕과 마주했다. 오선덕의 실수를 누구보다 잘 감쌀 줄 안다고 믿는 여성이 앞에 서 있어주니 든든하다.

나사를 돌리듯 몸을 조금씩 돌리자 정신이 제자리로 정렬되어 가는 것 같았다.

실내가 온통 달아올랐다.

 

 

 

무르익은 분위기가 식기 전에 넷은 초원을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충무로의 차이나타운으로 향했다. 중국마을이 아니라 조명이 화려한 밤무대의 이름이다. 이차 목적지로 이곳을 택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최근 가장 쇼킹할 만한 정치적 사건은 6.29선언이다. 노태우 의장이 직선제 개헌을 수용한 사실을 사람들은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이어서 또 하나의 충격이 등장했다. 88올림픽 개최를 일 년 앞두고 정부는 한국을 완전히 발가벗기기로 선포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밤무대를 자유분방하게, 아주 분방하게 만들어 놓겠다는 것.

 

밤업소 차이나타운이 이 운동에 앞장섰다.

귀하신 선장을 깜짝 놀라게 하기 위해 박 과장은 이곳을 점찍었던 것이다.

 

안내된 좌석 앞에는 리볼빙 무대가 돌고, 무대와 함께 무희들도 따라 돌았다.

이 광경을 처음 본 오선덕.

 

“대한민국이 이제 미쳐서 마구 돌아가는구나.”

 

취기가 한숨을 불어 일으키면서 튀어나온 말이다.

옆에서 정돈된 목소리로 엇박자를 놓는 사람이 있었다.

손주리였다.

 

“누구나 벗으면 알몸 아녀요?”

 

태연한 여성! 이건 노골적인 대충격이었다.

‘솔직하라’는 철학을 입힌 말 같았으나 의미를 아는 사람은 화자 자신밖에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특히 서울은 이제 충격을 흡수하는 몬스터같이 보였다.

 

“법이 통과됐는데 이제 일상으로 받아들여야죠.”

 

박철민까지 간장에다 소금 뿌리는 소리를 했다. 올림픽은 세상을 거꾸로 돌려놓을 만한 혁명적 계기라고 하면서.

 

무대의 사회자는 이러한 개방이 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필수라는 주석까지 달았다.

 

모두가 들떠 있어도 바위처럼 태연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아까 초원에서부터 홍단아는 말이 거의 없었다. 침묵의 가치를 침묵으로 표현하는 전위예술가처럼 보였다. 마치 삼각형의 저변에 대중이 있고, 그 정점에 고독한 예술가가 있어 언젠가는 지식인이 관심을 두고 대중이 흥미를 느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궁금증이 목젖까지 기어 올라와 오선덕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박 과장의 귀 가까이 입을 가져갔다.

 

“박 과장, 홍단아 씨한테 내가 말 좀 걸어도 될까?”

 

“형님, 이대로 갑시다. 건드리면 터집니다. 일부러 이런 델 데리고 다니면서 뼈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있어요.”

 

“자네가 하나님인가?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에?”

 

“네, 있습니다.”

 

너무 예쁜 여자는 자신을 간수하기가 쉽지 않다. 주위에서 유혹의 갈퀴로 자꾸 집적댄다. 대충 그런 줄거리였는데, 부연 설명이 있었다.

 

 

이년 전 해운통폐합 무렵 홍단아는 B 해운회사의 사장실 비서로서 곱게 근무를 하고 있었다. 은행장 접대하기에 바쁜 사장의 스케줄을 빈틈없이 챙기곤 하는 꼼꼼한 여비서였다. 근무 환경은 만족스러웠다. 단지 사장의 둘째 아들 기획과장이 필요 이상으로 자주 비서실을 드나드는 것 외는.

 

“단아 씨, 선박 감정사와 함께 우리 방선할래요? 사장님 허락은 이미 받았어요.”

 

작은 아들 기획과장이 나타났다. 턱으로 암시를 보이며 준비하고 나서라는 지시를 내렸다.

 

작은 아들은 어떤 종합상사에서 근무하다가 두 달 전에 아버지 회사의 기획실로 들어왔다. 최근 선박매매가 부쩍 늘어나자 아버지가 불러들인 것이다. 믿을만한 놈은 자식밖에 없다고 중얼거리면서.

 

인천에 정박해 있는 선박은 석유화학제품을 실어 나르는 선박이었다. 해운시황이 바닥일 뿐만 아니라 통폐합 당한다는 소문도 있고 해서 배를 팔려고 내 놓았다. 감정가격에 따라 채권과 채무 정산이 달라진다.

 

감정사와 함께 세 사람이 인천으로 갔고, 그리고 부두에 정박해 있는 배에 승선했다. 감정사 옆에는 홍단아가 바짝 붙어 시중을 들었다. 이런 종류의 일에 그녀가 왜 따라다녀야 하는지 모르면서 비서라는 게 원래 업무의 경계가 분명치 않으므로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다.

 

드나들기가 불편한 기관실이나 창고 같은 곳에는 기획과장과 항해사가 대신 동행했다.

 

감정사는 내일 별도로 뵙겠다는 기획과장의 말을 듣고 만족한 듯 배를 떠났다.

기획과장은 홍단아의 수고를 이제 표시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단아씨, 수고했어요. 감정 업무가 원활히 끝났으니 우리 차 한잔합시다.”

 

선장실 아래층에 통신차장실이 있다. 주인이 휴가 나간 방은 비어 있었고, 두 사람이 차 마시기에는 아늑하고 좋았다. 회사 비서실에 비하면 마치 섬나라에 온 기분이다.

이런 분위기에는 커피만으론 부족하다. 손닿는 선반 위에 블랙 위스키가 보였다.

얼음도 물도 넣지 않은 두 잔이 만들어졌다. 기획과장이 잔을 만들고 있는 중에 홍단아는 창밖을 내다보며 어둠이 기어 들어오는 부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초조했다.

 

기획과장은 호주머니에서 하얀 봉지에 싸인 뭔가를 꺼내더니 두 잔 속에 넣었다. 위스키 잔이 아닌 물 잔이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위스키 잔을 건배로 들었다.

 

몽롱한 기분은 위스키 한 잔씩으로 충분하다는 듯 둘은 마신 잔을 내려놓았다.

시간은 파도가 크게 울렁거리는 것처럼 흘러갔다.

 

일항사가 선교 순찰을 마치고 통신차장실 복도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렸다. 여자 목소리였다. 여성 선원이 없는 배에서 통신차장의 부인이 와 있나? 그는 휴가 중이니 그것도 아니다.

 

비명 소리는 계속 들렸다.

선박안전을 책임지는 당직 항해사로서 문을 열어보지 않을 수 없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아 악! 도와주세요.”

 

문을 열자 일항사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는 머리가 흐트러진 채 울부짖는 여성이 있었다. 여성의 브라 한쪽이 끈을 잃고 늘어져 있었다. 바지 차림의 하의는 흐트러짐이 보이지 않았다.

 

기획과장은 실수했다. 약 기운이 충분히 스며들기 전에 욕망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 사건은 사장의 아들이 저지른 일이라 크게 거론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소문이 선박의 연돌로 피어나가고, 현문의 사다리로 타고 내려가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다.

 

사장인 아버지의 귀에 들어갔고, 아버지는 격노했다. 그러나 아버지 역시 여성 편력이 좋지 않았고, 해운경영에서 변칙이 많았던 관계로 해운통폐합 시 최악의 평점을 받고 회사마저 폐합당하고 말았다.

 

사장은 올림픽을 앞둔 한국의 풍경처럼 발가벗긴 채 해운계를 떠났다.

홍단아는 통합 주관사인 H사로 옮겨갔다.

 

 

오선덕은 홍단아에게 말 거는 것을 포기했다.

말 대신 디스코 플로에서 마주보고 품 추는 걸로 어색한 분위기를 달랬다.

 

“고맙습니다.”

 

테이블로 돌아와 앉았을 때 홍단아가 던진 유일한 말이었다.

간단한 그 말 한마디가 어색한 분위기를 밝게 해줬다.

 

“선장님, 무희들의 전향적 무용이 어땠어요?”

 

홍단아의 얼굴이 약간 펴질 만하자 손주리가 능청을 부렸다.

오선덕의 대답은 주특기 모드 그대로였다.

 

“외국 관광객 유치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고 평가하고 싶군. 우리 선원들처럼 외화벌이에 공헌하고 있는 게 아닌가?”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여자들이 나체 춤을 추는 라이브쇼는 생(live)쇼를 해대는 것 같았다.

 

손주리는 오선덕의 옛날 스타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선장님은 대학교수 같아요. 걸핏하면 대화의 방향이 사회, 국가 또는 세계평화로 귀결되니까요.”

 

“그건 그렇고 내가 배 타면 두 여성께서 우리 배 업무 잘 챙겨줘요.”

 

대답이 어려울 때 말을 돌리는 오 선장을 탓하지 않고 죽은 물고기가 물결 따라 흘러가듯 순순히 분위기에 흐르는 손주리.

 

“선장님, 리포트의 성실도에 따라서 대처할래요.”

 

손주리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만히 있던 박 과장이 끼어들었다.

 

“영업 점수는 손주리 씨가, 해무 점수는 홍단아 씨가 매기면 되겠네요.”

 

홍단아가 살포시 웃었다.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니까 기분이 약간 펴졌다.

우울이 깊어질 뻔한 여성이 일상의 대화에 끼어든 것은 치유가 되고 있다는 증거다.

 

오늘의 이벤트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했다

- 신임 선장 환영

- 홍단아 일상 복귀

 

 

 

가스운반선 선장으로 등록한 오선덕은 회사의 창업주가 마음에 쏙 들었다.

 

창업주 사장은 회사가 어려울 때 자장면으로 식사를 때우면서 직원들과 고통을 나눴고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했다. 직접 경영을 할 수 있음에도 전문 경영인에게 맡긴 후 자신은 이선에 머물면서 사회공헌에 열중했다. 소형 아파트에 전세로 살면서 검소한 생활로 일관했고, 아들들에게는 회사와 관련 없는 진로를 택하도록 지시했고, 유언으로 재산을 사회, 회사 및 자녀에게 삼분의 일씩 나눠주는 것으로 공증해놓았다.

 

그는 업계의 관행인 리베이트 안 주기 운동에도 앞장섰다.

 

“리베이트를 주려면 장부 조작을 해야 합니다. 한 번 장부 조작을 하면 그것을 숨기기 위해 또 장부 조작을 해야 합니다. 이래서는 투명한 경영이 될 수 없습니다.”

 

주주총회에서 선언한 경영방침은 업계에서 유명하다.

언론은 창업주를 투명경영의 본보기이며 바른 경영의 실천자라고 칭송했다.

 

우리사주 주식이 절반이 넘고, 매출대비 당기순이익은 업계 1위에 올랐다. 2007년 하반기에 상장해서 업계의 다크호스로 등장했다.

 

 

승선하러 가는 오선덕 선장의 봇짐은 한결 가벼웠다. 외국선 승선 때는 일 년 살림살이를 준비했는데 지금은 한 달 가량의 살림에 필요한 것만 챙기면 되기 때문이다.

 

임원들이 줄줄이 환영해준 것은 벅찬 감격이었다. 갑자기 애국심이 발동하여 울먹일 뻔했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은 무궁화 배지를 달 때 목에 힘이 들어가지만, 오선덕은 배에 태극기를 달고 외국을 돌아다니며 국위 선양의 선봉에 선다는 자부심 때문에 감회가 북받쳤다.

 

선박에 오르자마자 콱 다가오는 똥 냄새를 맡고서야, 아 본선은 특수한 화물을 싣고 다니는구나, 실감했다. 비료의 원료인 암모니아 화물을 하역하고 있는 중이었다. 영하 33도 이하의 액상으로 운반되는 이 화물은 질소 비료 제조에 사용된다.

 

분자량이 17인 암모니아(NH3)는 비중이 공기의 60퍼센트밖에 되지 않아 배출된 가스는 대기 중으로 날아가 버려 갑판상에는 냄새가 거의 남지 않는다. 그러나 선교와 같이 높은 곳에는 가스가 날아가다가 구조물에 걸리기도 한다. 그때 냄새가 풍긴다.

 

오선덕은 선장실에 태극기부터 달았다. 그 태극기를 보고 엄숙하게 경례를 했다.

 

“충성!”

 

또 울먹일 뻔했다.

애국심 표현이 이렇게 간단하면서도 감격적으로 이뤄진다는 걸 미처 몰랐다.

묵념은 하지 않았다. 동료선원이 순직한 해역을 통과하게 되면 꼭 묵념을 올리겠다고 태극기 앞에서 다짐했다. 누군가가 ‘리더십은 배(ship)를 잘 모는 기술’이라고 한 말이 갑자기 기억났다.

 

“정말 잘해야지!”

 

G호는 세상에 태어나서 이십년 동안 북유럽에서 혹사당하고 이년 전에 한국으로 팔려왔다. 사람으로 치면 환갑에 해당하는 나이지만 여전히 쓸 만하다. 거주구역 상층갑판의 수영장이며, 선원식당 옆의 스탠드바며, 아늑한 선장실이며…. 바이킹 선원들이 유람선과 다를 바 없이 살아온 흔적들이 보인다.

 

여자 선원도 태우는 구미 선박은 시차(時差)가 잠을 괴롭힐 때 남녀 선원이 스탠드바에 모여 하이네킨을 마시며 밤을 보내는 모습이 상상된다. ‘비어(Beer)’는 원래‘마시다’는 뜻이었으니 마셔야 하는 것처럼.

 

본선의 항로는 남과 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항로를 취했다. 북으론 일본 땅이 목 잘린 쓰가루해협을 지나 알래스카로 가기도 하고, 남으론 남지나해를 지나 인도네시아 혹은 중동으로 가기도 했다.

 

쓰가루해협의 해저에는 혼슈와 홋카이도를 잇는 세계최장의 세이칸(靑函)해저터널이 있다. 23년 공사 끝에 해저 아래 100m 깊이에 54km의 터널이 뚫린 것은 1988년의 일이다. 터널 위로 지나가는 배는 밑에서 배꼽을 간질이는 기분을 느낄 만하다.

 

 

한국에 자주 입항하는 것은 승선생활의 질을 한층 높였다. 선원 직업의 자긍심에 언제나 발목을 잡는 것은 가족과의 격리이다. 가족과 자주 상봉할 수 있다면 선원 직업은 비인기 직종에서 탈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초겨울바람이 스산할 무렵 배는 여수항에 입항했다.

 

오선덕 선장은 이번에는 서울 집으로 가는 시간을 아끼기로 하고 가족들을 여수로 불러 내렸다. 돈 자랑하지 말라는 여수항을 가족들에게 한번 구경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유치원과 유아원 나이의 딸과 아들을 대동한 여자는 처녀 적의 감정을 숨길 수 없다고 즉흥적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오동도를 지근으로 바라보는 호텔에 가방을 내려놓은 서울 일행은 오선덕을 가장으로서가 아닌 선장으로서 맞이했다. 검은색 정복 차림에 마도로스 모자까지 썼기 때문이다.

 

“아빤 선장이야? 정말 멋져!”

 

남자애의 목소리가 컸다. 쟤들이 언제 아빠의 정복 차림을 봤겠어. 은행 같은 큰 눈을 할 만하다. 오선덕은 만화에 나오는 선장보다 더 근엄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양 허리에 두 손을 올려 폼을 잡아 보였다.

 

“자, 그럼 우리 바깥으로 슬슬 나가볼까. 여긴 오동도가 유명하다지.”

 

호텔 문을 나서 긴 방파제를 걸어 섬으로 들어가는 네 사람. 오동나무가 유난히 많아 오동도라고 불렀으나 세월이 가는 동안 동백나무와 후박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는 섬이 돼버렸다. 바다와 육지 냄새가 뒤섞인 바람이 해안길을 눅진하게 흐르고 있었다.

 

해안가 횟집 앞을 지날 때 일행은 발길을 멈췄다. 수족관 안에서 낙지가 꼬물대는 것을 본 아이들이 신기하다는 듯 오랫동안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팔인지 다린지 여덟 개가 꼼지락거리는 모양은 신기하기만 하다.

 

“오늘은 산낙지 회를 먹어보는 게 어때요, 선장님?”

 

남편이라는 낱말은 어디 도망가고 오늘따라 선장이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군침을 참지 못하고 있는 여자가 메뉴를 제안했다.

 

정한 메뉴를 요리하는 데는 시간이 그다지 걸리지 않았다. 주방장이 능숙한 솜씨로 요리한 낙지는 큼직하게 썰어져 쟁반에 담겨졌고, 그 쟁반은 테이블에 놓였다.

 

“어떻게 먹어?”

 

아이들의 질문에 남자는 가만히 있고 여자가 대신 대답했다.

 

“그냥 젓가락으로 찍으면 돼. 불편하면 손으로 집어도 되고…….”

 

힘차게 꼼지락거리는 낙지는 아이들의 젓가락을 벗어났다. 결국 여자애가 손으로 잡았다. 입속으로 넣더니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혀로 말아서 입안에 넣고 이빨에 걸리는 대로 씹는 모습은 너무도 의기양양했다. 남자애는 꼼작거리는 낙지 모습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한참을 시도했으나 먹기를 포기했다.

 

한편 여자는 젓가락으로 집어서 입안으로 몰아넣더니, 역시

 

잘근잘근.

 

맛을 충분히 음미할 줄 아는 미식가같이 보였다.

 

남자는 움직이는 걸 먹는 것은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선장답지 못하게. 배와 물고기는 물을 헤엄쳐 다닌다는 면에서 동질성이 있다. 갑자기 더 가까운 친구로 느껴져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산(alive)낙지를 그냥 산(bought)낙지로 생각하고 입에 털어 넣을 수도 있지만 남자 둘은 용감성을 팔아버리고 여자 둘만 4인분을 다 챙겼다. 선장 정복차림을 한 오선덕의 체면이 산낙지 앞에서 여러 겹으로 구겨졌다.

 

지역의 특산물인 선선한 저녁공기를 한껏 마시고 호텔로 돌아왔다. 방 하나를 예약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모처럼 가족이 한데 모였으니 방 하나로 족하겠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불편했다. 그렇다고 바꿀 일은 아니다. 애들이 의외로 좋아하는군.

 

침대 둘은 어른들과 아이들로 각각 나눠졌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라’ 해서 낳았는데 애들은 도무지 눈치가 없다. 여행에 피곤한 줄 모르고 저들끼리 이야기로 들뜬 기분을 주체하지 못한다. 좀처럼 잠자리에 들려 하지 않는다.

 

“그래 놀아라. 너희들이 크면 한 방에 있고 싶어도 있지 못한다.”

 

생각의 방향이 그렇게 되자 마음이 편했다. 오선덕 개인의 경험은 초딩 1년 때 담임 여선생님의 심부름이 이유도 없이 기분 좋았다.

 

“그렇다면 이 애들은 아직 초딩이 아니지?”

 

갑자기 비밀스런 웃음이 입가로 새어나왔다. 맞은편 애들 침대로 넘어다보니 어느새 말소리 대신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분명히 자는 체하는 것은 아니겠지.

 

갈비뼈 한 대의 인연으로 남자와 여자는 한 침대에 몸을 뉘었다. 남자가 여자를 슬그머니 끌어안았다. 짝이 된 후 이처럼 자연스럽고, 조청같이 끈끈한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호텔 뒤 골목에서 약간 핀이 나간 사람처럼 방실방실 웃는 사람, 흐린 골목과 어두운 거리에서 웃음을 파는 사람, 부둣가에서 어깨가 넓은 어깨들이 떠들어대도 호텔의 남녀는 오로지 그들의 시간만 존재할 뿐이다.

 

내일 출항하기 전 이들은 가장 경제적인 시간을 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