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다시 잡은 지휘봉

다시 잡은 지휘봉

오선닥 2012. 8. 21. 20:34

1985년 해운통폐합은 매우 통렬했다.

합병당한 해운회사는 사장이든 직원이든 나락으로 떨어진 신세

구조조정당한 해기사 출신 육상직원은 다시 마도로스가 되고……

 

건강을 망치고 석 달간 요양을 마친 오선덕은?

다시 바다로 나가기로 결심.

우연히 공원에서, 그리고 공항에서

옛날의 여학생 팬은 왜 만나나……?

 

 

 

 

다시 잡은 지휘봉

 

 

그의 몸은 요순시대의 태평성대를 구가했다.

지난 석 달 동안 몸의 내장은 낙원의 안락을 누리면서.

 

영업을 핑계로 부어 넣다시피 하던 알코올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고, 식후불연이면 즉사라는 구호를 앞세워 부지런히 빨아대던 끈끈한 니코틴의 출입도 없었다. 더욱이 고춧가루의 매콤한 캡사이신 맛을 느껴본 지가 오래되었고, 소금의 짭짤한 나트륨 맛을 제대로 경험해본 지도 아득했다. 소위 쾌락성과 자극성의 물질이 근접을 하지 못한 것이다.

 

“살고 싶다면 알아서 하세요.”

 

의사는 단호했었다. 최후통첩 같은 지시는 맵고 짜기 한이 없었다.

 

“무슨 재미로 삽니까?”

 

단호하게 대들고 싶었지만 오선덕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재미가 없더라도 사는 것이 더 수지맞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의사의 지시를 충성스럽게 따른 덕분에 그의 얼굴에는 윤기가 흘렀다. 다소 재미없게 사는 것이 몸에 좋다는 것을 이때 터득했다. 몇달이나 놀았으면 쌀독이 비곤 할 텐데 가족의 생존엔 지장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물오리 생활하면서 벌어둔 게 도움이 되었나.

 

맑은 공기가 좋다고 하여 틈나면 산으로, 강으로, 공원으로 나들이했다. 마당을 자주 쓸다 보면 돈을 줍게 되듯 잦은 나들이 중에 아는 사람도 많이 만났다.

 

극적인 만남 하나가 이때 이뤄졌다.

 

학생 배우 오선덕의 광팬이었던, 십 수 년 전의 고3 여학생을 어린이대공원에서 만났다는 것. 이제 아이의 엄마가 된 여성.

 

“오 중위님 아니세요? 아니, 오 선장님…… 혹시 교수님? 아니, 뭐라 불러야 하나?”

 

“아~!? 이가은?”

 

“맞아요. 저, 가은예요.”

 

그 옛날 소화호스에 물세례를 받았던 여학생. 국제해양대학교 총장의 딸.

이미 결혼 해 아이 하나를 둔 엄마였다. 아이와 아빠는 저 멀리서 놀고 있었다. 어린이 놀이에 적합한 공원임을 너무 잘 아는 듯 아이는 세상모르고 뛰놀고 있었다.

 

이런 만남은 흔치 않다.

마음에 있는 그대로 솔직해지고 싶은 것이 지금 오선덕의 심정이다.

 

“애 엄마가 이렇게 예뻐도 되는 겨?”

 

“전 지금도 오 중위님의 팬예요. 멋진 배우의 팬은 예쁠 자격이 있거든요.”

 

오선덕이 천당 문턱까지 갔다 온 줄을 모르는 그녀는 그가 너무 건강해 보인다는 말로 인사를 이어나갔다. 속세의 음식을 먹어본 지가 오래되어 건강미가 흐른 것인가.

 

사실 내장이 고장을 일으켜 약간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그녀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듯 그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다정스런 애인같이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남자의 스타일을 느꼈다. 요양 겸 혼자서 이렇게 공원을 나다니는 것도 알게 됐다.

 

스트레스가 원인이었을 거라고 그녀는 걱정해 줬다.

그리고 마도로스는 배를 타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것이라는 조언을 서슴지 않았다.

 

때문은 아니지만 오선덕은 마도로스로 돌아가길 결심했다.

 

 

 

일본 S사의 한국지사를 찾았다. 일찍이 오선덕을 항해사에서 선장까지 양육해준 회사는 화장실에 갔다가 지금 오느냐는 식으로 그를 ‘돌아온 마도로스’로 환대해 줬다.

 

“오 선장님은 유조선 경력이 많으시니 LPG선을 추천해 드립니다.”

 

선원과장의 말은 가스운반선에 탈 수 있는 사람은 오 선장과 같은 경력자여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참 신기하다. 요즘 해운시황은 좋지 않은데 선원구직은 어렵지 않으니 말이다.

사실 해운 불황이라고 해서 선원을 해고하기란 쉽지 않다. 화물이 없어 배를 묶어둔다 해도 기본 정원은 채워야 하니까.

 

최근 이란‧이라크 전쟁은 더 심화됐다. 페르시아만에 날아다니는 포탄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 해역에 배선되는 선박에 승선하기를 기피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과 한국은 석유와 가스 수요의 80% 이상을 중동으로부터 가져오므로 이 해역 출입은 불가피하다.

 

일본에서 도쿄전력용 LPG를 하역한 후 배는 선적지(船積地) 인도네시아로 향한다.

그 다음은 전쟁지역 중동 피지(Persian Gulf)가 선적지일 가능성이 많다는 게 선원과장의 설명이다.

 

괜찮다.

덤으로 사는 인생에서 전쟁이 두려울쏘냐.

찬밥 더운밥의 문제가 아니다. 죽음에 대한 견해의 문제다.

오선덕은 가볍게 대답하고 싶었다.

 

“전쟁에서 죽는 사람보다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많다고 하던데.”

 

“선장님의 대답이 노골적이고 시원해서 제가 오히려 민망할 지경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첫 마디에 흔쾌히 승낙한 사람이 없었다고 과장은 만족해했다.

 

해운시장은 침체 조짐을 보여 1984년은 이미 내리막길을 치닫기 시작했다. 어려운 시황에서 선주는 운항비를 수건 짜듯 한다. 지휘봉을 잡은 선장은 절약에 동참해야 하고, 빠듯한 살림을 꾸려나가지 않을 수 없다.

 

해운 종사자라면 1985년이 어떠한 해로 기억되는지 잘 안다. 일 년 전 시작된 불황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정지작업이 필요했다.

 

- 해운합리화 -

 

말이 좋아 합리화이지 ‘통폐합’을 의미한다.

기억하기조차 싫은 한국해운의 역사이다.

평생을 두고 일구어온 회사를 하루아침에 합병당한 선주는 가슴 칠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사업은 돈 주인을 찾아가기 마련이다.

 

해운은 국가경제를 아사시키고 나라의 기둥을 흔들어 놓은 주범이라고 여론은 매도하고 있었다. 수요공급의 탄력이 경직된 해운은 시황조절도 쉽지 않다. 잉여선박을 밀수품처럼 소각장에서 태워버리거나 바다에 투척해버릴 수도 없는 것이다.

 

다량의 선박을 장기 용선한 회사는 이미 쓰러졌고, 선박을 많이 소유한 회사도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한국해운만 곤욕을 치르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해운이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

 

조선시장도 예외는 아니어서 1973년 현대중공업이 설립되고, 80년대초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등 대형 조선소가 속속 완공되었으나 두 차례의 석유파동에 의한 조선시장 불황으로 신조선 가격 하락에 시달려 왔다.

 

조선과 해운의 쌍끌이 불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선박관련 회사들이 늘어났다.

 

가장 많이 충격을 받은 회사는 삼일빌딩에 사무실을 둔 삼미그룹이었다. 제3공화국 시절 서울의 랜드마크는 종로에 있는 31층짜리 삼일빌딩이었다. 21세의 창업주가 일궈 놓은 회사를 30세의 아들이 물려받아 해운불황으로 쓰러지게 한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비누, 식용유, 합판 등 무역업만 했어도 괜찮았으나 해운업에 뛰어든 것이 패착이었다.

 

자사선 18척이었던 회사는 해운호황에 고무되어 70척을 추가 용선하여 사업을 확장했다. 1984년 해운불황을 맞아 끝내 버티지 못하고 이듬해 자사선을 매각한 후 해운업에서 철수했다. 소유하고 있던 빌딩과 야구단도 매각했다.

 

이 회사의 용선2과장 탁명훈은 퇴출에 걸려들었다.

구조조정은 해기면허 소지자, 용선업무 담당자, 희망퇴직자 등의 순으로 단행됐다. 탁명훈은 일등항해사 면장 소지에다가 용선담당 과장이어서 조정 1순위에 들어갔다.

 

“죽은 자식 불알이 돼버린 회사에 더 이상 미련은 없다.”

 

탁명훈은 각오를 단단히 했다.

한편 가슴을 쓸어내렸다. 쓸모없어 찢어버릴까도 생각했던 해기면장이 실업자를 구제하는 보증장 역할을 할 줄이야.

 

일본 S사에 배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그는 한국지사의 문을 두드렸다.

이력서를 훑어본 담당과장은 냉정하게 대했다.

 

“승선경력이 많지 않아 일단은 이항사 업무를 좀 해야겠네요. 대신 LPG선으로 배선하겠습니다. 6개월 후 근무성적에 따라 일항사로 승진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보겠습니다만…….”

 

실업자가 된 상황에 조건을 따질 겨를이 아니다. 다행히 가스운반선은 다른 종류의 선박보다 급료가 후하다는 것이 위안이 됐다.

 

출국일자가 촉박하여 배 타러 가는 사람들은 준비에 바빴다.

 

오선덕은 삼성동 공항터미널에서 가족의 전송을 받았다. 이른 아침 김포공항까지 차로 데려다 주겠다는 아내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혼자 공항버스에 올랐다.

 

김포공항에는 R호에 승선할 선원 두 명이 나와 있었다. 이항사와 갑판수.

회사에서 그들의 이력서를 본 적이 있어 알아보는 데는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낯익은 여인이 이항사 옆에 서 있었다.

다름 아니라 이가은이었다. 얼마 전 어린이대공원에서 만났던 아이 엄마.

 

“어찌 되었음? 여기 공항에?”

 

“오 선장님, 저 출국 전송 나왔어요.”

 

“누구 전송?”

 

“옆에 있는 청년이 저희 시동생예요. 부모님 대신 이 형수가 나온 거죠.”

 

뭔가 뒤바뀐 소개 같았다.

이항사가 형수를 선장에게 소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이가은은 남편이 출근하면서 총각 시동생 전송에 형수가 나가면 어떻겠냐 해서 나왔다는 것이다. 애인마저 떠난 시동생에게 다소 위로가 될 거라는 뜻에서 가족을 대표한 전송이라나.

 

선장과 형수가 어떤 사이인지 궁금할 새도 없이 탁명훈 자신은 시쳇말로 불쌍한 사람으로 변했다.

어깨가 땅까지 내려간 신세는 설명이 더 필요하다.

 

 

 

한때 삼미그룹의 젊은 회장과 고교 동창이라는 이유로 탁명훈은 회사에서 가장 잘 나갔다.과장 진급이 빠른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전도가 유망한 보직 덕분에 아리따운 애인도 낚았다.

 

육풍이 해풍으로 바뀌듯 그가 맞이한 상황은 일시에 뒤바뀌었다.

해기면허가 있다는 이유로 제1순위로 퇴출당했고, 배 타는 남자는 싫다며 애인이 미련 없이 떠나버렸다. 어차피 고무신 바꿔 신을 여자의 가는 길에는 약산 진달래꽃을 뿌려주는 것이 사나이의 남은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막상 떠나보내고 나니 허전하기 이를 데 없었다.

 

탁명훈이 몸담았던 삼미해운이 멸망의 길에 빠진 이유는 한마디로 욕심 때문이었다.

해운회사는 어떤 면에서 도박판이고, 도박판에서 욕심은 재앙을 초래한다.

해운시황이 팔팔할 때 운임수입에 눈이 어두워 배를 마구 빌려 쓰다가 시황이 곤두박질치자 화물을 구하지 못해 비싼 용선료만 지불하다가 회사는 두 손 들고 말았다.

 

선복 과잉 1%는 운임 50%를 떨어뜨린다. 5% 과잉은 90%를 떨어뜨린다. 100만원 하던 운임이 10만원으로 된다는 뜻이다.

불과 몇 %의 선박 과잉이 엄청난 운임 추락을 가져올 수 있느냐고?

시황의 추이를 보고 마구 후리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마치 주식시장과 같다.

단합하면 되지 않느냐고?

백인백색이 쉽게 단합하기가 힘들뿐더러 독금법에서 이를 허락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설명했는데도 해운이 도박이 아니라고?

 

한 때 용선 선박의 운임수입이 급속도로 상승하자 그룹의 회장은 감탄했다.

 

“이런 게 장사로구나!”

 

용선업무 담당자들은 덩달아 신명이 났고, 운항선박은 졸지에 90척에 육박했다.

신령님도 믿을 수 없는 판에 시장은 회사를 배반했다. 은행도 밑 빠진 독을 목격했다.

 

“이젠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

 

은행의 최후통첩에 젊은 회장은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법정관리 하에서 회장이 누릴 수 있는 권한은 하나도 없었다.

 

결국 정부는 해운통폐합을 통해 66개 외항해운회사를 17개 그룹으로 축소시켰다. 과당경쟁 방지를 위해 해운산업합리화원칙에 따라 불가피하게 취한 조치였다. 칠백만 톤의 선복량을 도탄에서 건지는 길은 통폐합뿐이었다.

 

통폐합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에피소드는 신의성실의 교훈을 주기에 충분하다.

 

침대이발소에서 상쾌하게 이발을 하고 나온 어느 사장은 회사가 통폐합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 회사가 얼마나 크고 건전한데 이럴 수가? 이건 누군가의 모략이야.” 항의를 했다.

 

반면에, 회사 직원들 보기가 부끄러워 몰래 중국집에서 이천원짜리 짜장면만 먹던 사장은 통합의 주체가 됐다. 우리사주를 실행하고, 선원노조와 협동하며, 전세 집에 살면서도 평소 직원들의 복지를 챙겼던 사장은 정부가 눈여겨 봐 왔던 것이다.

 

 

 

공항로비에서 이가은은 오선덕 주위를 두리번거려봤다.

의아해했다.

 

“언니는요?”

 

집사람을 지칭하는가 보다. 오선덕은 지긋이 미소를 지었다.

 

“얘들이 아직 어려서……. 집에 그냥 있으라고 했어. 뭐 석 달간 집안에서 맴돌았으니 작별 인사 같은 절차가 필요하겠어? ㅎㅎ"

 

“선장님, 저희 시동생 잘 부탁드려요. 착한 시동생예요.”

 

세상에 착하지 않은 마도로스가 어디 있어. 너무 착해 육지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바다로 나오는 판에.

 

오 선장은 이가은 대신 이항사에게 눈을 주었다.

 

“육상에서 잘하는 사람은 해상에서도 잘해요. 보아하니 애인도 가버렸고…… 남은 건 일밖에 없군. 같이 잘해보자구.”

 

결코 불난 집에 부채질은 아니다.

가스운반선 경험은 LPG선뿐만 아니라 LNG선에 승선할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일본은 1983년부터 LNG선도 운항하기 시작했다(한국은 약 10년 후인 1994년 현대상선이 최초 LNG선 운항). 영하 42도에서 화물을 운반하는 LPG선보다 영하 162도에서 운반하는 LNG선이 더 많은 경험을 필요로 하고, 다루기 어려운 만큼 선원의 급료가 높다.

 

영화배우를 좋아하고 또 영화감상을 좋아하는 이가은은 영화와 인연을 끊을 수 없었던지 시나리오 작가와 결혼했다. 마도로스 영화의 각본을 써보라고 남편에게 이야기했을 때 남편은 그 많은 소재 중에 하필 마도로스인가, 의아해했을 뿐 그 숨은 의도를 알 리 없었다.

 

이가은은 시동생의 손을 잡았다.

 

“옛 애인은 스쳐간 인연으로 여기고 건강하게 선상생활 잘하고 오세요. 그리고 오 선장님 잘 모시고요. 미남 선장님한테 미녀 애인 하나 소개시켜달라고 부탁해요.”

 

그녀는 시동생의 손을 놓고, 이번엔 오 선장의 손을 잡았다.

 

“선장님, 건강하세요. 술 담배는 안 돼요. 배에는 구급차가 없을 테니 말예요.”

 

십이지장궤양을 두고 조언하는 진심어린 말이다.

그녀는 덧붙였다.

 

“영원한 팬 이가은을 기억해주세요.”

 

주걱에 붙은 찰밥처럼 잡았던 손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중위 시절의 추억을 사뿐히 터치하는 기분이 들어 오선덕은 이 순간 병아리 눈물만큼이라도 조금 행복해지고 싶었다. 인간이라면 행복해져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선덕이 지휘한 배가 인도네시아 본탕 항구에 이른 순간 훅 끼쳐오는 남국의 열기와 특유의 파파야 냄새가 뭉클했다. 낭만적 접근을 버리고, 배를 타고 있다는 직업정신에 다가섰다.

 

저녁 선실 스커틀(둥근 작은 창)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후덥지근한 바닷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아름다움에 민감한 적도하늘의 별 때문인가.

 

오 선장은 하나의 특이한 습관이 있다.

알고 있는 것은 부하에게 전달해줘야 직성이 풀린다.

 

사람들은 종종, “아까운 지식을 남들한테 다 퍼주면 당신은 뭐 먹고 사느냐?” 고 진심 어리게 걱정해주는 사람도 있다. 그때마다 그는 “다른 걸 배워서 채워 넣어야죠.”로 대답한다. 항아리에 물이 가득차면 더 이상 들어가지 않으니 비워야 한다는 논리를 들이대면서.

 

이런 훈장 버릇 때문에 상대방을 짜증나게 하는 경우가 있으나 대부분 순수한 동기임을 알고 이해해주고 고마워하곤 한다.

 

내친김에 공부 버릇이 도졌다.

 

LPG는 두 종류의 방법으로 생산된다. 60%는 지하에서 채굴되는 가스나 원유에서, 나머지 40%는 원유정제에서 추출된다. 운송은 프로판이 많을 때와 부탄이 많을 때가 있으나, 보다 일반적인 것은 프로판 60%와 부탄 40% 비율의 복합수송이다. 대체로 겨울에는 프로판, 여름에는 부탄을 많이 수송하곤 한다.

 

이런 액화가스 화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화물탱크 안이나 갑판 위에 거미줄 같은 파이프라인이 배치되어 있다. 사람 몸속의 내장이나 핏줄처럼 엉켜있는 것이다.

 

처음 승선하는 선원들은 엉켜 붙은 배관을 보고 당황하기도 한다. 더구나 배관 곳곳에 부착돼 있는 펌프나 밸브를 보면 더욱 정신이 혼란스러워진다. 며칠간 주의 깊은 관심 속에 조금씩 눈에 익어지고 시스템을 이해하게 된다.

 

시스템은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다이어그램으로 그려져 있고, 작동상태를 총체적으로 모니터할 수 있도록 제어실(Control Room)이 마련되어 있다.

 

대부분 제어실에서 컨트롤하지만 현장에 사람을 배치하든지, 정기적으로 순찰하는 일이 중요하다. 먹은 밥이 식도로 들어가는지 기도로 들어가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듯이. 소화된 음식물에서 생긴 방귀가 몸 밖으로 배출되듯, 흐르는 액체 속의 가스도 파이프라인 바깥으로 배출해야 한다. 기화된 가스는 다시 액화시켜 탱크로 보낸다.

 

“이항사, 거미줄 같은 파이프라인을 이해하겠어? 이걸 완전 파악해야 일항사 업무를 할 수 있는 거여.”

 

형수가 부탁하지 않았더라도 오 선장은 탁명훈 이항사에겐 관심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몸과 마음이 육상 틀을 벗지 못해 선상업무의 방향이 잘 잡히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항해 중 각 탱크에서 증발된 가스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압축기(Compressor)로 들어가서 압축된 후, 고온‧고압의 가스 상태로 응축기(Condenser)로 들어간다. 이 가스는 응축기 내의 상온하의 냉각수 중을 통과할 때 응축, 액화되어 팽창밸브(Expansion valve)를 지나고, 더디어 증발기(Vaporizer)를 통과한 후 저온, 상압의 액체로 되어 다시 화물 탱크로 들어가는 것이다.

 

냄새에 예민한 사람들은 탱커에 승선하면 고민이 가중된다. 가스의 냄새가 코로 들어왔을 때 반응이 심해진다. 머리가 빠진다고 호소한다. 정력이 감퇴한다고 스스로 진단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본선에 승선한 후 머리만 감으면 머리카락이 한 주먹씩 빠져요. 선장님 전선(轉船) 조치를 해주세요.”

 

호소하는 선원에게는 항상 해주는 말이 있다.

 

“거주구역에는 누출되는 가스가 없어요. 설사 가스를 마시더라도 머리가 약간 어지러울 정도지 머리가 빠진다든지 하는 것은 근거 없어요. 아마 신경성일 뿐.”

 

LPG선에서는 가스 냄새가 나서는 안 된다. 화물탱크는 밀폐되어 있으므로 가스가 누설될 수가 없다. 간혹 압력이 높아 가스가 안전밸브를 통하여 빠져나갈 때가 있으나 거주구역으로 날아 들어오지 않도록 침로를 조정해 바람 방향을 바꾼다.

 

항구 불빛보다 별빛이 더 휘황한 밤.

오 선장과 탁 이항사는 풀장의 벤치에서 커피잔을 마주했다.

 

이항사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선장님, 대한늬우스 하나 전하겠습니다.”

 

“꼰대같이 대한늬우스라니?”

 

“저희 형수가 오선덕 배우를 짝사랑했다는 사실 말입니다.”

 

“언제 들었어? ……공항에서?”

 

“아녀요, 편지에서요. 오늘 받은 편지에서 형수님이 그렇게 고백하셨어요. 저희 형님에겐 비밀에 붙여달라면서……. 형수님은 앞으로 제 손아귀에서 놀게 됐습니다.”

 

“그런 거까지 다 썼어? 재미없는 여성이구먼. 짝사랑이란 흔히 꿈이 갖고 노는 거여. 자넨 몽정 경험 없어? 그것도 일종의 짝사랑이야.”

 

“도대체 어떤 배우였길랬어요?”

 

“학생 엑스트라 배우……그런 거.”

 

“형수님에 대한 사랑 고백 같은 것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제가 대필해드릴게요. 뭐, 직접 쓰셔도 되고요.”

 

집 떠난 지 열흘도 안 됐는데 향수(鄕愁)를 살살 뿌려대는 이항사.

선장을 칭찬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나.

마크 트웨인은 “한 번 칭찬은 두 달을 먹여 살린다”고 했지.

 

그렇다면, 앞으로 적어도 두 달간은 무난하다는 뜻인가.

 

배 안의 2만여 가지 부품들이 제자리에 잘 박혀 원활히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하기 바쁘더라도, 오선덕은 이 시간 인간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자기 고백을 하고 싶다.

 

추억이 사랑의 언어로 전이되어 몸 바꾸기를 하는 것에서 놀라움을 느낀다. 그리움이 짙어진 것은 사랑이 더욱 아파진 까닭이다.

 

선체를 두드리는 물결이 행복한 존재감으로 일렁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