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후지산 등반

후지산 등반

오선닥 2012. 7. 6. 18:00

일본의 지붕 후지산에

네 사람이 올라섰다.

‘82년 8월 여름.

도쿄에서 후지산 중턱 5고메까지는 밴으로 갔고,

여기에서 정상까지는 땀 흘리며 등반했다.

기억할 만한 추억거리는?

 

 

 

 

후지산 등반

 

 

 

후지산은 참 신기하다. 멀리서 바라보면 가까워 보이고, 가까이서 보면 멀어 보인다.

 

“일본의 지붕은 요렇게 신통방통한가.”

 

사람들은 후지산을 신통한 산으로 여겨왔다. 일만 년 전 화산 폭발로 형성된 산은 지난 천 년 동안 십여 차례의 폭발이 있었고, 최후의 것은 1707년에 일어났다. 삿갓을 씌워 놓은 산은 언제 또 뚜껑이 열릴지 모른다. 지금도 살아있는 활화산이라고 하니.

 

일본인이든 외국인이든 후지산을 한 번 쳐다본 사람은 오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도쿄에서 직선거리로 100킬로미터는 그런 충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마치 수탉이 지붕 위에 올라가 소리 한 번 크게 지르고 싶은 것처럼.

 

무사들이 많았다고 하여 후지산(富士山)이라고 했던가.

국적을 달리하는 세 남성이 일본의 지붕 위로 올라가기로 결심했다.

 

“후지산에 깃발을 꽂아봐야 일본 방문의 의의를 찾는 겁니다.”

 

등산을 유난히 좋아하는 부정기선부 기획관리과의 엔도 과장대리가 기어코 두 외국인을 꼬드겨서 등산배낭을 메도록 했다. 한 사람은 인도에서 온 마인다르 아바스 칸이요, 또 한 사람은 한국에서 온 송대길이다.

 

칸은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산맥 아래의 아삼 지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뭄바이로 유학 나왔다. 대학에서 해운을 전공하고는 인도에서 가장 큰 포워딩 회사에 입사했다. 이번 일주일간 일본 출장을 나와 K사의 컨테이너터미널을 견학 중에 있다.

 

바다에서 청춘을 헌신한 송대길에겐 후지산 등반은 신선한 경험이다. 엔도가 권하지 않았어도 해발 3776미터의 후지산은 한번 올라가보고 싶었던 산이다. 대학 때 그렇게 등반을 자랑했던 한라산도 높이로 치면 후지산의 반 토막에 불과하다. 후지산은 외국인도 많이 오르는 산이다. 연간 20만명의 등반객 중 삼분의 일이 외국인이라고 한다.

 

후지산의 공식적인 등반허용기간은 7월과 8월 두 달이다. 8월 초순의 여름은 후지산 등반에 가장 적합한 시기. 일본 연수 종료를 일주일 앞둔 송대길은 등반의 역사를 수정할 좋은 기회를 잡은 것이다.

 

등반 이틀 전에 만반의 준비가 됐음을 자축하는 생맥주 파티에 술잔이 하나 더 늘어났다. 엔도의 부서에서 근무하는 노처녀 마유미 양이 등반 동행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마유미는 엔도보다 세 살 적다. 33살쯤 되려나. 남자보다 산을 더 좋아하여 산과 결혼할 거라고 농담까지 하는 여성이기도 하다. 엔도와 동갑인 송대길은 여동생 하나 데리고 가는 셈으로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등산 전문가인 마유미 짱이 합류한다면 우린 더 안전할 것 같네요.”

 

엔도보다 두 살 많은 칸도 남녀 등반을 일본 문화가 허용한다면 자신은 반대하지 않겠다고 했다. 엔도는 마유미의 등산 실력을 알고 있지만 이틀 후 등반에 문제가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마유미는 태연했다.

 

“후지산은 여러 번 가봤으므로 준비물은 알아서 챙길게요. 등반 시즌이라 별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해요.”

 

파티는 결과적으로 네 명의 등반을 선언하는 자리가 되었다.

 

엔도가 코치하는 대로 등산화와 스틱을 준비했다. 높은 산인만큼 산소캔과 윈드스토퍼를 잊지 않았다. 옷은 코튼 제품이 아닌 땀을 잘 흡수하고 잘 건조되는 드라이웨어를 준비했다. 야간등반을 예상하여 랜턴을 준비하고, 먼지 나는 등산길에는 마스크도 필수품이다. 장갑이나 모자와 타월 등은 기본으로 갖추는 것.

 

배낭은 30리터 정도의 크기로 했다. 물은 2리터, 산소는 10리터 정도를 챙겼다. 체력 보완용으로 젤리형 탄수화물 및 당류를 준비하고, 수분 보충용으로 오이 등 간단식을 준비했다.

 

 

 

출고한 지 몇 달 안 되는 토요다 밴에 넷은 몸을 싣고, 전날 저녁 8시경 도쿄를 출발해 국도를 타고 천천히 후지산으로 향했다. 운전대를 잡은 엔도 옆에는 마유미가 탔고, 뒷좌석에는 칸과 송대길이 자리를 잡았다. 두 외국인이 후지산 정복의 꿈에 들떠 있는 중에 마유미는 운전자의 졸음을 쫒느라고 이야기 잇기에 열심이다.

 

엔도는 마유미의 입이 피곤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유미 짱은 이제 편히 쉬어요. 남자들끼리 이야기하면서 안전운행 할 테니까요.”

 

엔도는 여유 있는 운전 모습을 보이며 백미러로 뒷좌석의 두 남자를 쳐다보았다. 피부색이 확연히 다른 두 남자가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하면서도 대견스러워 보였다. 마유미는 엔도의 권고에 동의할 기색이 없었다.

 

“유부남들의 이야기를 들을 자유도 주세요. 결혼하면 불행하고, 하지 않으면 더욱 불행하다고 하던데 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엔도 상.”

 

“섹스피어한테서 이미 답을 얻었던 것 같은데……. 결혼하지 않으면 더욱 불행하다고 했으니 속히 짝을 찾아요. 회사에 남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데 골라잡아 봐요.”

 

“다들 저를 김빠진 맥주로 여기나 봐요. 저 아직 밀봉된 상태로 있어요. 엔도 상이 브로커 하세요. 커미션은 만족하게 드릴게요.”

 

송대길이 마유미의 농담을 칸에게 통역했다.

칸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엔도 상이 국내는 물론 해외로도 오퍼를 내보세요. 카운터가 들어올 겁니다. 커미션은 브로커의 임의로 하시고요.”

 

대화 내용이 해운을 전공한 냄새가 너무 풍기자 엔도는 주제를 다른 데로 돌리고 싶었다.

 

“메이지 이후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요. 마유미 짱.”

 

메이지 시대까지 여성들은 후지산에 오를 수 없었다는 뜻이다. 무사들이 훈련하는 산에 여성의 출현을 금기시했다는 것.

 

“엔도 상,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합니다.”

 

마유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는 천천히 시골길로 접어들었고 길은 험해지기 시작했다. 일본 젊은이들의 질주하는 야간 산길 레이싱 때문에 저녁 산길의 드라이빙을 즐기려는 시도는 무산되고 말았다.

 

두 시간의 드라이빙은 지루함을 주지 않고 더디어 후지산에 이르렀다.

후지산 북쪽 기슭 해발 1000미터쯤에 화산 분화로 생긴 다섯 개의 호수가 있다. 이들 호수 주변에 위락시설이 잘 마련되어 여름엔 낚시와 캠핑을, 겨울엔 스키를 타기도 한다.

근처에 차를 세웠다.

 

 

 

“내일 새벽 일찍 일어나기로 하고 차 안에서 눈 좀 붙입시다.”

 

엔도의 안내에 따라 차 의자를 눕히고 각자 휴식에 들어갔다.

 

아무리 여름이라 하더라도 고산의 밤은 춥기만 하다. 무릎 정도를 덮은 담요는 추위를 달래기에는 괜찮았다. 마유미는 야간등반에 익숙한 증거를 보여주듯 잠을 청하는 속도도 빨랐다. 잠결에 오른팔을 엔도의 가슴 위에 얹는 것 외는 점잖게 잘 잤다. 이것만 가지고는 노처녀의 잠버릇을 예단할 순 없다. 목을 끌어안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차로 해발 2300미터의 5고메(五合目)로 향했다. 이곳은 후지산 등반의 출발점이다. 네 개의 코스 중 사람들이 덜 북적이는 코스를 택했으나 경사가 심하여 차가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주차장은 전날부터 만차여서 도로는 주차하지 못한 차들이 한 차선을 완전히 차지해 행렬의 길이가 일 킬로미터나 되었다. 겨우 한 공간을 찾아 주차했다.

 

고속버스로 온다면 도쿄 신주쿠에서 후지산 5고메까지는 2시간 반가량 걸린다. 이들 승객은 보통 야간산행을 하여 후지산 정상에서 구름바다 위로 일출을 보곤 한다. 그 시간이 아침 5시경이다.

 

 

 

그러나 엔도 일행은 정상에서 일출을 보는 대신 아침 5시경 5고메를 출발해 등반하기로 했다.

 

일출에 붉게 물든 후지산의 정상부를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었다.

장엄함, 그리고 정렬적인 동녘 하늘.

 

“일본의 ‘히노마루’가 떴습니다.”

 

송대길은 애써 감탄을 표시했다.

일본의 국기 ‘히노마루(日の丸)’를 일출의 장관으로 비유하는 걸 누구보다도 마유미가 더 좋아했다.

 

“송 상 표현이 매우 시적예요.”

 

자기도취에 빠진 마유미, 열렬한 천왕신민임에 틀림없다.

엔도는 칸의 생각이 어떤지 궁금했다.

 

“미스터 칸, 에베레스트에서 일출 볼 수 있을까요?”

 

“올라가보지 않았지만 구름 위의 일출을 볼 수 있겠지요.”

 

정상까지는 굽은 길 7킬로미터를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등산화 끈을 단단히 묶고 스틱도 잡아들었다.

 

후지산은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비교적 쉬운 등산 코스다. 그러나 고도가 높기 때문에 기상이 갑자기 나빠지곤 하므로 출발 전에 미리 일기예보를 잘 들어야 한다. 산정상에 가까울수록 기상변화가 심하여 한여름에도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높이 1킬로미터에 5도 정도 기온이 떨어진다고 하면 후지산은 평지보다 20도 정도 낮은 셈이다. 그러므로 후지산을 등반 할 때에는 따로 긴팔 옷을 준비해야 한다. 한 달에 세 번 정도 갠 날씨가 나타나고 나머지는 운무로 뒤덮여 있으므로 한 여름에도 방수복을 준비한다.

 

또한 높이 올라갈수록 기압도 떨어진다. 산소가 존재하는 상공 1000킬로미터 아래의 공기기둥이 누르는 공기의 압력을 1기압이라 하므로 0.4퍼센트 정도의 기압 감소가 있다. 작은 차이 같지만 1기압에 길들여져 있는 인간에겐 이것도 고통에 속한다. 후지산 정상의 산소는 산밑의 7할에 지나지 않아 긴 호흡이 필요하다. 가지고 간 산소캔이 호흡에 도움을 줄 것이다.

 

5고메에서 정상까지는 작은 산장들이 있어 쉬면서 천천히 오르면 된다. 특히 7고메와 8고메 부근 길에 산장이 많이 늘어서 있다. 정상에서 해돋이를 보려고 하는 등산객은 야간산행을 하다가 이곳 산장에서 새벽녘까지 휴식한 후 정상으로 오르기도 한다.

 

등산길과 하산길은 나뉘어져 있어 부닥칠 일은 없다.

 

칸과 송대길이 초보자임을 고려해 보폭을 빠르게 하지는 않았다. 정상에 가까울수록 산행 속도를 줄여나간다.

 

“송 상, 숨이 좀 가쁘지 않아요? 옛날 배 탈 때는 바다 위에서만 지냈을 테니 말입니다.”

 

엔도의 지적은 옳았다. 기압이 떨어지니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이러다간 가슴 뚜껑 열리는 것은 아닌지.

 

“제가 산소 바람 좀 불어넣어 드릴까요? 송 상.”

 

마유미가 한 마디 거들었다.

엔도는 그 말에 양념을 쳤다.

 

“그런 방법도 있겠군.”

 

웃었다. 등반의 피로가 덜한 것 같다.

 

 

 

5고메를 출발해 숲 속을 지난 후 나무들의 높이가 점점 낮아지기 시작했다. 나무의 키를 보고 높이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지점부터는 식물의 존재가 없어졌다. 대신 화산석과 자갈 모래의 황량한 길만 이어진다.

 

한여름의 햇빛은 강했지만 올라갈수록 기온이 점점 낮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겉옷을 벗으면 추울 정도다. 기압이 낮아 귀가 아프기도 하고 숨이 조금씩 가빠지기 시작한다. 옆을 쳐다보니 점점 산소를 이용하는 등산객이 늘어나고 얼굴이 자꾸 찡그려지는 사람도 많아졌다. 배낭에는 비상용 산소캔이 있어 어느 정도 안심이기도 하다.

 

 

 

 

산을 오를수록 구름의 변화가 멋있다. 구름끼리 부딪쳐 안개 속 같은 분위기도 연출하고 좀 더 오르면 구름이 발밑으로 지나가기도 하여 마치 구름 속을 산책하는 기분을 맛본다. 지나가는 헬리콥터도 발 아래로 날아다닌다.

 

한산한 등산길과는 달리 하산길 쪽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내려오고 있다. 정상의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 사람들이다. 등산시간이 상반된 결과이기도 하다.

 

 

 

지루한 자갈길 등반 동안 여느 등산과 마찬가지로 송대길의 머릿속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발은 무의식적으로 정상을 향했다.

 

점점 경사가 급해지는 듯하자 정상이 가까워졌다. 등산길은 지그재그로 되어 있어 경사로 느껴지지 않으나 옆의 능선을 보면 정말 가파르다. 미끄러지면 그대로 산 아래까지 굴러 떨어질 듯한 경사였다.

 

드디어 정상!

 

산을 오르기 시작한지 여섯 시간 만이다.

 

 

 

대체로 걸린 시간과 산길의 상황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출발지 5고메에서 6고메까지 한 시간은 평범한 산길이었다. 그러나 6고메에서 7고메까지는 모래 자갈길이 한 시간이나 계속되었고, 7고메에서 8고메까지는 두 시간 동안 미끄러지기 쉬운 울퉁불퉁한 용암의 가파른 경사길이 계속되었다. 8고메에서 9고메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 걸렸고, 여기서 정상까지는 가파른 비탈길을 반 시간가량 올랐다.

 

후지산은 화산이기에 수목한계선 3000미터 이상의 위치는 사실상 그리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없는 황량한 공사장 같은 느낌이다. 특히 2500미터 이상부터 정상까지는 풀 한포기 없이 화산재로 덮인 산이다

 

 

 

만년설 정상은 조금 흰 눈으로 덮여 있다. 유난히 더운 여름을 말해주는 것 같다. 정상의 분화구는 황량하다. 한라산, 백두산처럼 물도 고여 있지 않아 더 황량하게 느껴진다.

 

일행의 얼굴은 대체로 맑고 일그러짐이 없다. 다만 송대길의 표정이 거친 숨소리로 약간 지쳐 보인다. 고산증세로 그의 머리는 아픔이 좀 있었고 어지럼이 약간의 괴로움으로 다가왔다.

 

산을 좋아하는 마유미는 아직도 힘이 남아돌아가는지 가만있지를 못했다.

 

“한국의 제일 높은 산은 몇 미터나 되죠?”

 

숨이 가쁜 송대길이 대답을 꼭 해야 하나.

 

“북한에 있는 백두산이 2744미터 될까. 흰 돌이 머리에 얹혀있는 것 같이 보인다고 해서 백두산(白頭山)이라고 하죠. 후지산과 다른 점은 산정에 둘레 15킬로미터의 천지(天池)가 있는 것이지요.”

 

그는 한라산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1950미터 높이가 후지산에 비해 초라해서가 아니라 남북한은 한 나라임을 암시하기 위함이다.

 

“연못이 있어서 정말 아름답겠어요. 한번 가봤으면 좋겠네요.”

 

여자들은 산을 정원쯤으로 생각하나.

정원이 아니라는 걸 설명하려는 듯 송대길은 간단한 백두산 지식in을 들려줬다.

 

“깊이가 380미터나 됩니다. 물에서 용이 오를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무서워할 걸요. 지금은 중국에서 올라가지만 통일이 되면 서울에서 안내하겠습니다.”

 

“그 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구름을 발밑에 두고, 분화구를 엉덩이 뒤로 멀리 두며, 하늘을 배경삼아 사진 한 장 꾹 눌렀다. 칸이 비슷한 피부색의 외국인에게 샷을 부탁한 것이다. 알고 보니 파키스탄인인데 그런대로 언어가 통했다. 하지만 칸의 먼 조상은 파키스탄에서 왔다고 하니.

 

사진 속에는 마유미와 송이 나란히 섰다. 샷을 누른 파키스탄인은 두 사람이 부부로서 어울린다고 했다. 마유미는 일일부부 해주겠다고 능청을 부렸다. 그러면서 부부 사진 한 장을 찍도록 엔도에게 부탁했다.

 

“잠정적으로 노처녀 딱지를 뗐습니다.”

 

크게 웃는 마유미에게 모두들 박수를 보냈다. 송대길은 일일 신랑으로서 박수를 받고.

 

얼마간 정상에서 느긋하게 등정의 감격을 맛보았다.

네 사람이 손을 잡고 ‘야호!’를 불렀다. 하마터면 ‘대한민국 만세!’를 부를 뻔했다.

 

 

 

정상의 짧은 시간을 뒤로하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약간 허무했다. 그러나 송대길은 생애 처음 이렇게 높은 곳을 밟았다는 데 의미를 두었다. 인생도 비슷해서 올라왔으면 내려가야 하는데 내려가기를 싫어하다가 끌어내림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시간 늦지 않게 내려가는 게 중요하다.

 

하산길.

 

흙길이라 엄청 먼지가 일어났다. 마스크 사이로 들어오는 먼지가 숨을 가쁘게 만든다. 경사가 심해 한발 내디디면 자갈 모래 위를 한 걸음 정도는 미끄러져 내려간다.

 

7고메쯤, 경사가 심하지 않은 곳에서 미끄러진 것은 송대길의 실수였다. 2미터정도 미끄러져 앞서가는 마유미의 다리를 잡은 것은 더욱 큰 실수였다. 여자의 엉덩이가 남자의 가슴에 방아를 찧은 것은 대사건이었다. 다만 일일부부가 아직 유효하다면 자연스런 것으로 웃어버릴 수도 있다.

 

아니,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정말 웃네?

 

미끄럼 타는 기분으로 네 시간정도 걸려서 하산했다.

 

주차장의 차들이 반 정도 빠져 나가고 도로에 있는 차를 찾아 도쿄로 돌아왔다. 등산의 피로를 모르고 차분하게 운전하는 엔도가 대견스러워 보인다. 마유미는 잠들기 시작했다. 노처녀의 자유를 최대한 누리는 사람처럼.

 

도쿄의 저녁은 불을 켜기 시작했다.

 

천하를 가슴에 안고 돌아온 것 같은 뿌듯함을 느꼈지만 며칠간 다리의 근육이 풀리지 않아 뻐근하여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직원들은 그들의 후지산 등반을 알게 되었지만 왜 마유미가 함께 갔는지는 묻지 않았다.

 

- 등산애호가이니까

 

대답해주려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