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불쌍한 유부남들

불쌍한 유부남들

오선닥 2021. 11. 29. 15:59

카페에 들어선 한 젊은이가 카페 구석에 잔뜩 풀이 죽어 앉아 있는 다른 동료를 보았다.

장 대리 여기서 뭘 해? 집에 간다고 하지 않았어?”

송 대리가 들어오면서 묻자 장 대리는 고개를 들었다.

아까 퇴근해서 집에 갔어야 했는데슬픈 일이 있어서 집에 천천히 가려고기분도 꿀렁하고 해서.”

부모님은 다 살아계시니, 혹시 할아버지 제사야?”

그보다 더 슬픈 날이야.”

더 슬픈 날이라고? 무슨 날인데?”

오늘이 결혼기념일이야.”

결혼기념일에 왜 한숨을 쉬어? 좋은 날인데.”

미안. 너까지 슬프게 해서.”

그럼 말을 해하지. 내가 지금 현금이 없어서조의금은 카카오로 보내줄게.”

, , 됐어. 너도 결혼기념일이 올 거잖아. 나도 못 챙겨줄 거니 서로 퉁 치자. 미안. 마음만 받을게.”

힘내. 이런 말 있잖아. ‘이 또한 지나가리라’”

좋은 말이네. 남자들을 보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어. 남자가 한 여자를 사귀어 일생동안 여자를 사랑하면 한번은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왜 인식하지 못할까?”

남자는 약한 동물이니까.”

풀 죽은 장 대리의 넋두리에 송 대리도 동의했다.

 

송 대리의 미적거림에 이번에는 장 대리가 궁금해서 물었다.

근데 너는 왜 퇴근 안 했어? 퇴근하면 바로 집에 가잖아?”

집에 바로 가려고 했었는데 조금 무서워. 마누라 잠들면 들어가려고.”

송 대리의 약한 표정이 불쌍해 보이기도.

솔직히 말해. 와이프한테 잘못했지? 혼날까봐, 맞을까봐?”

그 정도는 아니고. 출근하려고 나오는데 대문 앞에 택배가 와 있는 거야.”

와이프가 택배 주문했어? 쇠파이프야 야구방망이야?”

그보다 더 무서워. 장어랑 굴이 들어 있더라고.”

그 먹여서 뭐 하려고?”

나를 잠재우지 않으려고 하나 봐.”

그 두려움 충분히 이해해. 난 결혼 전에 와이프한테 장어와 굴 알러지 있다고 미리 말해놨어. 내겐 먹이지 말라 했지.”

나도 장어와 굴 엄청 좋아하지만 마누라 없을 때만 먹어. 수면부족 걱정도 없고

실은 나도 와이프 없을 때만 장어를 먹어. 물론 알러지도 없고. 힘자랑은 절대금물이야.”

공통점을 찾았다는 듯 두 사람은 신이 났다.

 

그들은 화제를 바꾸었다.

근데 요즘 뭐하고 지내?”

송 대리가 먼저 묻자 장 대리는 사이클을 즐긴다면서 자신의 생각을 말해 나갔다.

사이클웨어 한 벌 사려고 하는데

폰을 꺼내 홈쇼핑 검색하고는 아이템을 선택한 후 결제했다.

이를 본 송 대리의 마음이 급했다.

잠깐. 이걸 결제하면 어떡해?”

그럼 어떡하라고?”

마누라한테 허락받고 해야지. 그냥 결제하면 어떡해?”

송 대리, 완전 하수네. 물건 살 때 와이프한테 허락받고 산단 말야? 허락받는 것보다 용서받는 게 더 나아. 일단 지르고 보는 거야. 와이프에게 허락이라는 단어는 없어.”

우리가 40이 넘었잖아. 도대체 몇 살 때까지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거야? 우리아버지가 80인데 아직도 어머니한테서 허락받으니 말야.”

서로 공감을 하면서도 이 대목에서 장 대리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비누 한 통 사는데도 허락받아?”

허락받아. 우리아버지는 나의 미래야.”

깜깜한 미래로군.”

 

송 대리는 가방에서 뭔가 하나를 꺼내었다.

출근할 때 마누라가 우유팩을 챙겨주더군.”

그래도 네 와이프는 이런 거라도 챙겨주니 좋다야. 와이프랑 사이 엄청 좋네.”

여기 하나 더 있어. 유통기한 지난 우유. 냉장고 정리한다며 자기랑 애가 먹지 못하니 나보고 해결하라더군.”

송 대리는 여유분 하나를 장 대리에게 주었다.

자연산 유산균이로군. 이걸 마시면 유산균이 살아 장까지 도달하겠네.”

유산균은 살아 장까지 가지만 나는 이걸 마시면 죽어서 관까지 가겠어.”

나 안 먹을래.” 장 대리는 받았던 팩을 도로 건네주려 했다.

우리 같이 먹자. 이럴 때 동료지.” 송 대리가 우겼다.

난 안 먹어. 나는 이런 거 벌써 하나 먹었어.”

장 대리는 호주머니 속에서 두유 팩 하나를 꺼내 보였다.

너희 집도 냉장고 청소하는 날이야?”

나는 회사에서 벌써 두 개 마셨어.”

우리 외롭지 않겠어. 둘이 같이 관까지 가자.”

 

요즘 코로나 때문에 집콕이 많아 불편하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코로나 때문에 와이프가 친정에 못 가 스트레스 쌓이는가봐.”

송 대리가 말하자 장 대리도 코로나로 쌓인 불만이 많았다.

코로나 뉴스를 듣고 싶은데 난 리모컨을 만져본 적이 없어.”

그래도 뉴스 시간은 리모컨 잡을 수 있지 않아?”

, 만져본 적은 있어. 소파 밑에 있던 리모컨 꺼내 준 적이 있어. 리모컨에 먼지가 많이 묻었더라고. ‘신사와 아가씨를 보고 있는 중 전선이 발에 걸려 TV가 꺼진 적 있었는데 재부팅하는 동안 평생 들어야 할 욕을 다 들었어. 재앙이었어.”

다시 한 번, 제목이 뭐라고?”

신사와 아가씨.”

아가씨로부터 욕바가지로 먹었군.”

아무리 그래도 우리 와이프한테 욕하는 아가씨가 뭐냐? 내 와이프는 욕하는 아가씨가 아니라 욕하는 아줌마, 쌍욕하는 아줌마지.”

그때 폰이 울려 받아 든 장 대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알았어. 곧 집에 들어갈 거야. 진짜? 흥분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바로 택시 타고 갈게.”

장 대리는 119라도 불러야 하는 것처럼 긴장되어 있었는데 이를 본 송 대리마저 초조해졌다.

집안에 무슨 일이 있어? 급한 일이야?”

집에 가봐야겠어.”

?”

소파 밑에 리모컨이 들어갔대.”(퍼온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