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게이샤 문화탐방

게이샤 문화 탐방

오선닥 2012. 3. 29. 10:09

살기가 좀 나아졌다고 하나

조국이 아직 가난의 터널에서 탈출하지 못했던

  1979년 무렵

송대길이 일본에서 푸짐한 접대를 받았다니,

도대체 무슨 접대인가?

알아나 보자

 

 

 

 

 

게이샤 문화 탐방

 

 

시금치만 먹으면 힘이 솟는 뽀빠이(Popeye) 아저씨가 있는가 하면, 뭔가 변화만 주면 힘이 솟는 오션닥(Oceandoc; 필명 吳善德; 배우 송대길) 아저씨도 있다. 그래서 간혹 송대길은 회전조명이나 색팽이의 색깔 변화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순간순간 바뀌는 색의 요술이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핑 돌려놓기 때문이다.

 

그래서 멈춘 바다보다 움직이는 바다가 좋다.

 

바다와 구름이 맹렬히 키스할 땐 자신이 사랑에 빠진 것처럼 황홀해지고, 바람이 바다의 소매 자락을 끌고 구름밭으로 올라갈 땐 보리밭에 연애 가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바람이 바다를 엎어치기나 둘러메치기를 할 땐 몸을 가누려고 용쓰고, 바람이 바다를 한판승으로 제압할 땐 깨끗하게 승복하는 신사정신을 발휘한다.

자연의 섭리에 최대한 협조하는 자세─관점에 따라서는 무기력일 수 있고 도전일 수도 있지만, 원래 한자리에 가만있지 못하는 캐릭터 때문에.

 

그는 세상을 싫어할 이유가 없다. 어느 구석을 보나 스스로를 비관하는 DNA를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악착같이 살려고 발버둥치는 인간이다.

 

─세상은 너무 아름다워, 멋져, 그리고 이뻐─

 

하고 돌아다닐 친구다.

 

조용한 대양이라고 한가하게 시간을 흘러 보낼 위인이 아니다. 그는 유별난 짓을 계획했고, 지금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

 

그것은 선내업무 보고서를 일기 식으로 적어나가는 것이다.

 

선장이 된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업무 내용을 써 나갔다. 쓴 것은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본사로 우송했다.

이런 짓은 종이가 발명된 이후 효시가 아닐까. 혹자는 근대 해운역사 이래 최초 현상이라고 할지. 월급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사서 고생하느냐고 비웃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일에는 뚜렷한 목적이 있다는 것.

 

─한국 선원은 과연 다르다─

 

그런 평가를 받고 싶은 것이다. 다국적 선원이 경쟁하고 있는 일본 최대, 아니 세계 최대의 선박회사에서 살아남으며 인정받기 위해서는 뭔가 달리 보여야 한다.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고용의 보장과 급료의 상승을 의미한다. 한 사람의 노력으로 한국선원의 평가가 좋아진다면 결국 애국하는 일.

 

송대길, 이제 머리가 좀 이상해지려는가 보다. 안중근 형님이나 유관순 언니도 아닌데 혼자서 나라를 사랑하는 체하니 말이다.

 

그런데, 사실 족발 간부들에게 한국인의 성실함과 책임감을 보여준다는 거─ 감동적이지 않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은 ‘한국 사람은 게으르고 나태하다’고 계속 비하해왔다. 게으른 것과 나태한 것이 뭐가 다른지 모르지만.

송대길이 초딩 때도 선생님이 비슷하게 표현하는 걸 많이 들었다. 지지리 못살았으니 당연히 그럴 수도 있었겠지.

 

그런 민족이 요즈음은 도무지 쉴 줄을 모른다. 국민의 유전자가 바뀌었다는 것인가.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지은 프랑스의 피에르 상쏘는 적당한 시기에 한국 사람에게 ‘쉼’의 가치를 되새겨 주는 것 같다.

엘리야는 광야의 로뎀나무 밑에서,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일하는 대신 기도하는 쉼을 가졌다. 쉼에서 승천하고 부활하는 방법을 찾았는가.

이어령 씨는 우리민족은 원래 느렸으나 라면이 나오고부터 바빠졌다고 했다. 라면이 1958년 일본에서 처음 생산되었지만 한국인이 라면의 인스턴트 효과를 더 누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늘은 유리알같이 맑고 바다는 청평호수처럼 잔잔하다.

 

“오늘 우리 족구나 한번 합시다.”

 

놓치기 아까운 좋은 날씨라고 생각하면서, 송 선장은 ‘놀기’를 선포했다. 아마존에서 거금을 절약했으니 이만한 재량권은 당연히 선장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그는 믿었다.

그리고 족구는 아무 때나 하나. 날씨가 허락해야 한다. 신나게 족구를 했다는 내용도 업무보고서에 삽입할 것이다. 업무효율을 제고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음이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부가 설명도 할 참이다. 족구하는 중 바다로 실족한다든지, 공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그 이유도 친절하게 설명해 줄 것이다. 줄 달린 공이기 때문이라고.

 

“선장님은 심판을 보시지요.”

 

조기장이 기관실 안에서만 근무해서 그런지 송 선장의 족구 실력을 폄하하려고 시도했다.

그러자 기관장이 나섰다.

 

“족구광에게 심판보라니? 차라리 내가 심판볼 테니 선장께선 선수로 뛰슈.”

 

송 선장의 족구 마니아 증명은 바지자락을 걷어 올린 오른쪽 다리에서 완결되었다. 족구 줄에 까맣게 탄 자국이 철사줄에 감긴 모양으로 남아 있었다. 애국자에게 주어지는 고문의 영광 자국은 아니지만.

 

왜 족구에 탐닉하는지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는 송 선장. 이 고삐에 달린 공 때문에 음료수와 맥주는 얼마나 많이 바쳤던가. 선원들은 거저 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명분을 좋아한다. 명분을 제공하는 면에서 이만한 게임이 없다.

 

때론 골프공을 한 바가지 정도 마음껏 때려서 확 터인 바다로 날려 보내곤 한다. 스트레스가 공과 함께 바다로 날아가는 짜릿한 맛. 비용 이상의 보상이 돌아온다.

 

운동 후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며 한마디씩 나눈 인생은 대체로 이렇게 설명되었다.

인생이란 끊임없는 각고정진의 길이다. 언덕이 있고 내가 흐르는가 하면, 진흙밭도 있고 자갈길도 있다. 평탄한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항해하는 배는 바람과 파도를 만나지 않고 평탄하게만 갈 수 없다. 풍파는 언제나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 고난이 심할수록 인생의 기쁨이 진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잘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다.

머리위의 별은 캄캄한 밤에 더욱 빛난다. 포도는 포도즙 틀에서 으깨어질 때 가장 진한 향기를 발하고, 나무는 바람이 가장 세차게 불 때 더욱 뿌리를 깊게 내린다.

 

시골 교회 목사 아버지를 둔 갑판원 성군은 성경을 인용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역설적이게도 세상 모든 것들은 가장 심한 시련을 받을 때 가장 큰 승리를 거두고, 가장 큰 고난이 닥쳤을 때 가장 큰 영광을 얻게 된다.

 

“너무 좋은 명언은 업무보고서에 넣지 않으실 거죠, 선장님?”

 

일기 쓰듯 업무보고를 한다는 소문이 떠돌았는지 이상용 체격을 엇비슷 복제한 기관원이 농반 진반으로 끼어들었다. 그리고 자기와 관련된 것은 잘 써 달라고 아부와 보비위 시늉을 하기도.

 

인생에 대해서 조금밖에 논하지 못했는데 어느새 일본에 도착했다.

 

 

 

 

 

* * * * * *

 

도쿄 만 내의 가와사키 항은 매우 분주했다. 잘나가는 일본경제를 멈추지 않게 밀어주는 데는 이 항구가 상당한 몫을 하는 것 같다. 원료와 물자들이 쉴 새 없이 더나든다.

 

다른 때보다 부두에 넥타이 맨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배의 밧줄이 앞뒤로 다 묶이기를 기다렸다가 그들은 현문으로 올라와서 곧장 선장실로 들어갔다. 그 중에 한국감독 한 명이 끼어 있었다. 한국감독이 소개한 연장자의 인사는 공손했다.

 

“선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브라질에서 자력도선으로 입출항해주시고 여기까지 안전 운항해주신 것을 회사를 대표해서 감사드립니다.”

 

그는 영업담당 상무였다. 되풀이해서 감사하다는 표현은 일본 사람들에게는 결코 어색한 표현이 아니다.

이번에는 일본 해무부장이 거들었다.

 

“어떤 선장도 시도하지 못했던 일을 해내셨습니다. 회사에서 칭찬이 자자합니다.”

 

그러면서 옆에 앉아 있는 한국감독을 슬쩍 쳐다보며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한국감독은 기분 좋게 웃음을 받아 송 선장에게 눈빛으로 전달했다.

송 선장은 회사가 지원해주고 격려해준 덕분이라고 겸손하게 화답했다.

일본 사람들은 대체로 겸손한 인사를 좋아한다. 열심히 기도해주신 덕분이라고 말하려다가 천황폐하를 신으로 모시는 그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참았다.

 

요즘 회사는 엄청 바쁘다. 해운시장에 나오는 벌크선을 마구잡이로 용선하더니 얼떨결에 400척이 훌쩍 넘어섰고, 마침내 해운불경기를 맞이해 죽을 맛에 이르렀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이란혁명의 결과로 전세계가 제2차 오일쇼크에 연타를 맞고 있지 않은가.

오너가 정치적인 후광을 업고 금융조달에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소문에도 무반응이었던 회사는 스스로 쪽박을 차겠다고 각오라도 한 듯 용선을 멈추려 하지 않았다.

 

선장실에 담배연기가 짙게 퍼졌을 무렵 상무가 뜸을 들였던 용무를 말했다.

 

“선장님, 오늘 저희들이 방선(訪船)한 것은 수고하신 선장님과 기관장님을 저녁식사에 모시고자 해서입니다.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상무는 결심하고 온 듯 머뭇거리지 않았다.

 

저녁식사에 참석하는 일행은 일본인 상무와 해무부장, 한국감독, 선장 및 기관장 모두 다섯 명이었다. 배에서 지체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듯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부두에 대기해 놓은 캐딜락 리무진에 올랐다.

 

 

 

 

 

리무진 승용차는 도쿄의 강 옆 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도쿄의 원래 이름은 에도(江戶)로 갈대가 무성한 곳이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1590년에 에도에 입성해 자리를 잡고, 1600년 오사카에 근거를 둔 쇼군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와의 싸움에서 승리해 통일 일본을 만들었다. 그로부터 약 70년 후 무렵 대화재로 인구 100만명 중 10만명이 사망하고 시가지 반 이상이 불탔다.

운하가 이때부터 발달하여 중요 교통수단이 되었다. 그래서 도쿄강은 잘 정비되어 있다. 중심지 긴자에는 니혼바시, 교바시 강 등 크고 작은 강줄기가 많아 작은 배를 통해 긴자 상점들에 물건을 공급했다. 바시(橋)가 많은 이유가 이 때문이다.

 

레일 위 전동차가 서듯 리무진은 깔끔하게 멈췄다.

안내된 곳은 낡은 2층짜리 목조 가옥이 빽빽이 들어선 골목이었다. 집집마다 비밀스러운 것을 감추고 있는 듯 창문이 꼭 잠긴 채 주렴(珠簾)이 드리워져 있었고, 밖에서는 안을 전혀 들여다 볼 수 없는 집들이었다.

 

대문 앞에 청, 홍색 등불이 걸린 집에 들어서자 2층으로 안내되었다. 이것이 게이샤(藝者) 집이다.

어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약간의 설명을 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게이샤는 일본에서 요정이나 연회석에서 술을 따르고 전통적인 춤이나 노래로 술자리의 흥을 돋우는 직업을 가진 여성이다. 본래는 예능(藝能)에 관한 일만을 했으나 춤을 추는 것을 구실로 손님에게 몸을 파는 게이샤가 따로 생기기도 했다.풍기문란의 이유로 여러 차례 금지령을 내린 일도 있었으나 메이지시대 이후 일반 게이샤의 수는 크게 증가해 지방도시에까지 퍼지게 되었다.

화려한 기모노와 기괴한 화장은 한때 일본 여성에게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달리 대부분 슬픈 운명을 타고난 경우가 많다. 출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진정한 예술인이나 문화재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영원히 꿈으로만 남는 것이 대부분이다.

게이샤가 되면 개인의 신상에 관한 것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친다. 이것은 게이샤의 긍지이기도 하다.

 

이 가려진 세계의 모든 것을 들여다보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오늘 회사는 호기심 많고, 때로는 인류문화에 관심이 많은 인간 송대길에게 게이샤의 일상과 본질을 약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준 셈이다.

 

맏언니가 안내해준 방에 앉자마자 상무는 전문가의 내공을 드러냈다.

 

“한국의 기생집과는 조금 다를지 모르겠습니다만, 겉모습과는 달리 굉장히 품위 있는 집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저희 오너가 자주 찾기도 하고요.”

 

업무를 핑계 삼아 한국에 뻔질나게 방문한 상무는 한국 기생집 생태를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런데 품위 있다는 말은 뭔가? 품위 찾으러 우리가 여기에 온 건 아닌데.

이런 데서 쓰는 품위 용어는 최상의 만족을 제공해준다는 의미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한편 오너는 회사의 직책은 없지만 일본 정치 거물로 회사를 손가락 하나로 요리할 수 있는, 저항할 수 없는 실세라는 건 일본 국민 모두 잘 안다.

 

 

 

 

 

곧 다섯 게이샤가 들어왔다. 모두가 잇뽄(一本)이다. 정규직이라고 해야 하나. 구태여 손님과 숫자를 맞출 필요는 없지만 그렇게 들어왔다.

게이샤들은 간단하게 형식적인 절을 한 후, 홀짝수 놀이하듯 손님 사이사이에 앉았다.

상무와 송 선장 사이에 낀 게이샤가 유난히 어려 보였다. 이 바닥에선 어리다 해도 20대 후반이다. 많은 예술을 익혀야 하는 직업이니 세월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녀의 어깨가 5센티 정도 송 선장 쪽으로 더 기울었다. 기울기는 소속을 암시한다.

 

가무로(가사 도우미)가 갖다 준 음식이 중앙 자리를 길게 차지했다. 여자들은 숙달된 조교마냥 연신 웃으며 안주를 먹여 주고 술을 따랐다. 술은 이미 사케 대신 고급 양주로 주문되었다는 사실은 손님인 선기장의 구미를 감안한 듯하다.

 

한 명이 일어나 춤추기 시작하자 남자들은 그녀의 빼어난 자태에 준비 없이 넋을 잃기 시작했다. 분위기에 압도된 것이다.

 

술에 취하고 가무에 취하여 모두들 얼굴이 붉어지고 허리가 여자들 쪽으로 기울면서 분위기가 질펀해졌다.

술잔을 잡은 상무의 손이 송 선장 쪽으로 뻗었다.

 

“선장님, 오늘 술은 아예 한국식으로 할까 합니다. 제 잔을 받으시죠.”

 

잔을 바꿔 마시는 한국식에 익숙할 대로 익숙한 그였다.

송 선장이 이번엔 한국말로‘감사합니다’ 하고 마셨다. 상무의 한국말 실력을 간접적으로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의를 갖추어 자신의 잔을 상무에게 내밀었다. 상무의 반응이 의외였다.

 

“아닙니다. 저의 것을 한 잔 더 받으셔야 합니다. 처음 잔은 아마존 항해 감사 표시였고, 이번 잔은 선장님의 선내리포트에 대한 감사 표시입니다. 우리 간부들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선장님의 리포트만큼은 철저히 읽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곤,

 

“자, 받으시죠.”

 

거의 강요에 가까웠다.

이 장면에서 송 선장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연거푸? 이건 한국식이 아닌 것 같은데요…….”

 

삼십대 초반의 선장이 반백 머리 오십대 후반의 일본 임원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 가에 대한 예절 교과서가 없다는 게 아쉽다.

상대의 입장에 관계없이 상무는 송 선장에게 추가 잔을 들이 내밀었다.

 

“그래요, 한국식과 일본식이 컴바인됐다고 생각하세요. 오늘 저녁은 스페셜합니다.”

 

일본 영어나 한국 영어나 오십보백보인데 상무의 입에선 영어 단어가 자꾸 튀어나왔다. 제3국 언어가 이럴 땐 공평하고 친근감을 준다고 믿는 것처럼.

 

상대 외국인을 인정해주는 것은 그 국가를 인정해주는 것과 같다고 송 선장은 생각했다. 갑자기 자부심이 울컥했다. 더디어 송대길 식의 애국이 먹혀들어가는구나. 당장 ‘단군할아버지께 이 소식 전해드려야지’ 하는 생각까지.

 

빈병이 늘어나고 짝끼리 대화가 무성해졌다. 여자들은 선정적일 정도로 빨간 체리의 꼭지를 입에 물었다. 남자들은 그 체리를 따 먹으며 즐거워했다.

유난히 술잔에 애착을 많이 보이던 해무부장이 몽롱한 정신으로 맞은편 송 선장의 짝에게 말을 걸었다.

 

“그 손님에게는 더욱 빨간 체리를 입에 물려요. 그 분이 오늘 주빈이야!”

 

“하이, 수미마센. 요카이시마시타.”

(네, 미안해요. 잘 알겠습니다)

 

그녀의 입술에 물린 체리가 요령 좋게 송 선장의 입술로 옮겨져 예쁘게 물렸다. 입술의 접촉 여부나 체리의 맛보다는 문화를 체험한다는 게 중요하다고 모두들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여자들은 각자 애교를 부리며 능숙하게 시중들고, 때로는 부드럽게 애무하기도 했다. 심복과 같이 손님에게 방해가 되는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밀착 봉사에 들어갔다.

그녀들은 카타르시스의 제조기이다.

 

한쪽 구석에는 나이 많은 게이샤가 사미센(三味線: 줄이 3개이며 목이 긴 일본 현악기)을 뜯으며 외설적인 게이샤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한 해무부장은 거칠게 게이샤를 끌어안고 춤을 추며, 정성들여 다듬은 그녀의 머리를 만지며 기모노 속으로 손을 집어넣기도 했다.

 

일본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비교적 조용히 있던 한국감독이 송 선장에게 턱으로 술잔을 가리켰다.

 

“송 선장, 눈동자만 돌리지 말고 술 좀 들어요. 저쪽 기관장처럼…”

 

술에 비교적 욕심이 없다는 게 어디 표시라도 났나. 상무한테 받아먹은 두 잔의 술이 너무 진했던가 보다.

한국감독은 새파란 후배 선장을 보기 좋게 녹다운시키겠다는 듯 다그쳤다.

아닌 게 아니라 기관장은 대화도 없이 열심히 술잔을 들이키기에 바빴다. 천우일회(天佑一回)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는 것처럼.

 

애달픈 사미센(三位線) 소리

최면 거는 듯한 북소리

진수성찬에서 풍기는 영양소 향기.

게이샤의 꼬아지는 자태….

 

돗자리 다다미 방에서 열기가 오르려나부다.

이런 것들이 일벌레 일본 남성들을 사무실로부터 탈출시키는 것이다.

 

“이런 집에는 빌(bill)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술좌석에서 술값 이야기하는 것은 그야말로 김 빼는 짓이다. 그러나 송대길 본성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바, 상무에게 살짝 물어본 것이다.

하지만 상무는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대답이 자연스러웠다.

 

“선장님, 5만 달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뭐랄까……. 십분의 일 정도?”

 

절약된 도선료와 예선료가 그의 머리 깊숙이 입력되어 있음에 틀림없다. 일본에서 중역까지 오르려면 숫자에 밝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듣곤 하지만.

 

한국감독은 선장이 회사의 과용(過用)에 마음이 걸리는 줄 알고,

 

“마음먹고 왔으니 이럴 땐 회사가 하자는 대로 맡겨둬요. 개인 돈도 아닌데…….”

 

개인 돈 운운은 발음이 새는 한국말로 했다.

 

술자리가 다 끝나고 자리를 뜰 때 옆에 앉았던 게이샤는 송 선장의 겨드랑이를 부축이며 함께 걸어 나왔다. 진탕 술에 취한 손님으로 알았는지, 아니면 습관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인지는 모르나 철저하게 훈련된 부축이었다.

 

“전 할아버지가 한국인예요. 할머니는 일본 사람이지만. 전 그리고…… 미소라 히바리 언니의 노래를 무척 좋아해요.”

 

어깨에 찰싹 붙으며 그녀가 말했다. 미소라 히바리의 아버지도 한국인이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여자는 슬퍼질 운명이구나. 송대길의 운명론적 판단은 그랬다.

 

그녀는 밖으로 나가 비틀거리는 다른 손님들에게도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며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배로 돌아오는 리무진 안에서 해무부장은 꽤 영양가 있는 소식 하나를 전해줬다.

 

“선용품은 요청하시는 대로 다 공급해드리겠습니다. 이건 제 생각이 아니라 회사의 배려로 결정한 사항입니다.”

 

취기 중에도 기관장이 기뻐하는 표정이 여실히 보였다. 송 선장의 기분이 좋은 것은 물론이다. 부임할 때 기관장에게 했던 말이 부도 처리되지 않고 자연스레 실현되는 길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의 괜찮은 기분을 적어도 출항할 때까지는 유지하고 싶다고 선장과 기관장은 말했다. 단지 선원들이 눈치 채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미안한 마음에서.

 

일본을 출항하기 직전에 일본산 기린 맥주 서른 박스가 배로 올라왔다. 선식용으로 올라온 것 치고는 너무 많아서 좀 따지려고 하던 참이었는데 마침 조리장이 설명을 했다.

 

“회사에서 선원들이 수고했다 하여 답례로 올려준 거랍니다.”

 

선원들을 맥주로 목욕시킬 일이 있나.

좌우지간 회사가 시키는 대로 묵묵히 따랐던 보람이 선원들에게도 돌아온 셈이다. 다음 입항지 뉴올리언스에 도착하면 시푸드 두 상자를 올려주겠다는 연락도 왔다.

 

“너무 미안한데…….”

 

그러나 선원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송 선장은 흐뭇해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