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내용과 관계없음)
커피숍에서 의형제가 테이블을 마주보며 대화를 하고 있는데, 좀 떨어진 곳에 미인 아가씨가 혼자 앉아 있다. 의형제가 대화하면서 서로 양보의 미담을 나누고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이 보기 좋아 보이나, 끝까지 들어보면 서로를 깎아 내리며 옆자리 아가씨의 선심을 사려고 경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형: (동생을 향하여) 너 자동차 수리했다며? 무슨 일이야?
동생: 10년 탔거든, 고장이 계속 나. 똥차, 똥차야.
형: 오래됐네. 10년 탔으면?
동생: 수리 맡겼더니 한 열흘 걸린대.
형: 열흘이나 걸린다고? 영업사원인데 차 없이 어떻게 일을 해?
동생: 어쩔 수 없지. 전철 타고, 버스 타고 다니면 되지.
형: 그건 아냐. 어떻게 차 없이 다녀? (차키를 꺼내면서) 여기 내 차키 있어, 받어.
동생: 차키를 갑자기 왜 줘?
형: 내 차 타고 다녀. 영업사원인데… 이거 네가 타.
동생: 뭔 소리야. 형, 형 회사 다녀야지. 말만 들어도 고마워. 됐어, 됐어!
형: 넌 내 친형제와 다름없어. 편하게 생각해.
동생: 고마워 형. 이 은혜 내가 꼭 갚을게.
형: 아 됐어, 됐어.
동생: 형, 이번에 과장 진급했다며?
형: 뭐. 5년 걸렸어. 너라도 있으니까 축하해줘서 좋다.
동생: 핸드폰 봐봐. 카톡 보냈어.
형: (카톡을 보며) 아 이거 뭐야? 프라다 지갑을 다 보내냐? 너무 비싸. 이건 명품이잖아.
동생: 이제 과장 됐잖아. 명품 들고 다녀야지.
형: 그래도 이건 너무 비싼데.
동생: 갖고 다녀. 형이랑 나 둘 사이에 가격이 중요해?
형: 나는 뭐 지갑 없어도 돼.
동생: 형이 갖고 다니면 난 그걸로 만족해.
아가씨: (힐끔힐끔 두 남자를 쳐다보며, 저거 보기 좋다.)
형: 우리 쭉 의리 지키면서 지내자.
동생: 그럼 우리 우정여행이나 한번 갈까, 제주도로?
형: 이렇게 둘이 남자끼리?
아가씨: (두 남자분 여행해서 좋은 시간 보내세요.)
동생: 남자끼리 가지, 우리 사이에 여자가 어디 있어? 우린 항상 주위에 여자가 없지.
(이때 두 남자는 아가씨 쪽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린다.)
아가씨: (저들의 뜨거운 시선은 뭐지? 나와 눈 마주치면 안 되는데.)
동생: (아가씨로부터 눈을 떼며) 나 이제 제주도 갈 때 같이 데려갈 여자분이 생겼어.
형: 갑자기 여자분이 생겼다고?
동생: 응 생겼어. 같이 갈 수 있을 것 같아.
형: (역시 아가씨에게 돌렸던 시선을 떼고) 아 어떻게 하지? 나도 갑자기 같이 갈 여자분이 생긴 것 같아. 넌 어떤 스타일이냐, 혹시?
동생: (옆의 아가씨를 다시 슬쩍 훔쳐보며) 내가 같이 여행할 것 같은 여자분은… 갈색 빛에 긴 생머리인데 약간 컬(curl)이 있는, 그런 게 잘 어울리는 스타일. 형은 어떤 스타일인데?
형: (역시 옆의 아가씨를 슬쩍 돌아보며) 갈색 웨이브 머리에 흰색 티가 잘 어울리는 분이야.
동생: 내가 생각하는 아가씨는 착 달라붙는 흰색 티를 입었어.
아가씨: (어딘가 나를 가리키는 것 같은데. 웬 흰 티야?)
형: 나랑 되게 비슷하네.
동생: 그리고 아까 그 머리 스타일에 흰색 타이트한 티와 단아한 치마가 잘 어울리는 분이지.
아가씨: (누가 들어도 나네. 뭐야 저 인간들!)
형: 웨이브 머리에 흰색 티와 스커트에 깔맞춤 하얀색 구두 같은 걸 신으신 분인데, 아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와 같네. 그분이 내 스타일이야. 그분과 같이 가기로 했어.
아가씨: (입에서 은근한 웃음. 누가 같이 간대?)
동생: 나랑 스타일이 되게 비슷하시네.
형: 응. 공감대가 좀 있네, 어떻게 그렇지? (형이 옆으로 슬쩍 돌아보는데 아가씨는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며 웃는다.)
동생: 그런 분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어? 나보다 형이 그분을 만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가씨: (아니 누가 만나준대?)
형: 아냐 그러지 마. 네가 그분 만나. 나 같은 놈 만나면 안 돼. 네가 여자한테 얼마나 매너가 좋아. 너 같은 사람을 만나야 여자분도 행복해지는 거야.
동생: 됐어. 형이 만나야지. 아가씨들은 나 같은 사람 좋아하지 않아.
아가씨: (상대방 생각은 안 하고? 저들끼리 야단이네. 매너가 좋다고?)
형: 너도 옛날에 여자 친구 만나면 둘이 걸어갈 때 여자분은 인도 쪽으로, 너는 차도 쪽으로 걸어가고, 차 탈 때도 문 열어 주고, 식당 가서도 의자 빼주고, 네가 얼마나 매너가 좋아.
동생: 그렇긴 하지.
형: 너 여자친구 화장실 가잖아. 그럼 어떻게 해?
동생: 화장실 앞에서 가방 들고 기다려야지.
형: 그래. 이런 거 웬만한 남자는 못하거든. 너처럼 가방 들고 여자친구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돈도 훔치고…. 딱 네가 해야 돼.
아가씨: (웃음을 참지 못해 눈물을 흘릴 지경)
동생: 내가 돈을 훔쳤다고?
형: 너 거기서 돈 이렇게 (훔치는 흉내를 내며) 꺼냈잖아. 그 돈 꺼내가지고 딴 여자 만나려고….
동생: (정색을 하고) 조용히 좀 해. 차비만 가지고 갔어. 차비만.
아가씨: (비겁한 변명이네.)
형: 차비만 30만원 빼간 거냐? 너 같이 매너 좋은 사람을 만나야 여자도 행복해지는 거야.
동생: 생각해 보니 나를 싫어하겠다. 차비도 없는 나를 누가 좋아하겠어. 여자분들은 형처럼 가진 것 많은 사람을 좋아하지.
형: 내가 가진 게 뭐가 많아?
동생: 형이 왜 없어. 형은 여자분들이 좋아하는 조건을 다 갖고 있어. 정 많지, 그러다 보니 친구 많지, 친구를 넘어서 인맥 엄청 많지.
형: 내가? 그건 성품이지.
동생: 그중에 제일 많은 건 빚이잖아. 사채 빚.
형: 아니, 나 빚 없어.
동생: 형이 10억이라고 했나?
형: 10억이 아냐.
동생: 그럼 15억이야?
형: 좀 조용히 해. 아예 없어!
동생: 형이랑 그분이 잘돼서 결혼하면 그 여자분은 빛을 보는 대신 계속 빚을 보며 갚아 나가야 할 거야. 되게 긴장하며 살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다. 나태하게 사는 것보다 열심히 사는 게 나아. 허리띠 졸라매고….
아가씨: (생각만 해도 두 사람이 불쌍하구나.)
형: 너 오늘 목소리 되게 크다. 누가 들으라고 하는 것처럼 보여. 너 뱃속에 스피커 있는 줄 알았어. 확성기 소리처럼 목소리가 카랑카랑 잘 울리네.
동생: 형의 긴 머리카락이 귀를 막아서 좀 크게 이야기한 거야. 잘 들리라고.
형: 나 들으라고 하는 거야? 다른 사람 들으라고 한 것이 아니고?
아가씨: (이제 그냥 대놓고 들어보자.)
동생: 여기 누가 있다고? 내가 원래 발성 좋은 걸로 유명하잖아.
형: 아 맞네 맞네. 너 원래 그걸로 유명하지.
동생: 내 원래 그러하지.
형: 여자분은 나처럼 평범한 사람을 만나면 안 되고 너처럼 유명한 사람 옆에 있어야 빛이 나는 거야. 너 엄청 유명하잖아. 너 옛날에 방송 3사에 다 나왔잖아. 라디오 뉴스에도 나오고 잡지에도 나오고, 유명했잖아. 너 TV 나온 거 기억 안 나?
동생: 내가 그때 뭘로 나왔지?
형: 너 집에 있을 때 경찰에 검거되는 장면 나왔잖아. ‘이러지 마세요’ 하면서. 너 왜 잡혀갔지? 우리나라 야동의 90퍼센트를 니가 뿌렸잖아. 너 경찰한테 말한 거 기억 안 나? 이중에 내꺼 안 본 놈 있으면 나와 봐 이 새끼들아! 하면서 진짜 난 놈이었어.
아가씨: (웃음을 참지 못하고… 미치겠다!)
동생: 형도 내꺼 봤잖아.
형: 그러니까 내가 너를 존경하는 거야.
동생: 그 여자분은 형을 만나야 해. 나같이 전과 있는 사람을 어디 좋아하겠어.
형: 전과가 아니잖아.
동생: 나 같은 사람 말고 마음 따뜻한 사람을 만나야지.
형: 내가 뭐가 따뜻하냐?
동생: 형이 따뜻하지. 내가 잡히기 전에 도망 다녔는데 아무도 연락 안 받았을 때 유일하게 형만 받아 가지고 ‘우리 집에 와라, 밥은 먹었냐’며 밥 챙겨줬지, 재워줬지.
형: 뭐 그런 애길 하고 그래. 그땐 챙겨줬지.
아가씨: (뭔가 또 터질 것 같은데?)
형: 그때 솔직히, 네가 경찰에 쫒길 때 현상금까지 걸려서 안쓰러워 보였지.
동생: 그래서 형이 신고했잖아. 현상금 받으려고. 현상금 얼마였지?
형: 아니야. 10만원.
동생: 10만원 받겠다고 나랑 20년 우정을 판 거잖아. 10만원으로 뭐했어?
형: 아이템 샀어. 게임 아이템.
동생: 날 고자질하고 10만원으로 게임 아이템 샀어? 게임 케릭터 반짝반짝한 아이템 달 때 나는 반짝반짝한 별 달았군.
아가씨: (이들은 언어의 마술사야 정말.)
형: 그런 게 아니고…. 우리끼리 애기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 여자분이 우릴 마음에 안 들어 하면 이건 끝 아냐?
동생: 이렇게 얘기했는데 누가 마음에 들어 할까?
형: 나는 그분이 우리 얘기를 즐겁게 듣는 것 같아서.
동생: 그분은 내 얼굴을 계속 보고 좋아서 그런 것 같아.
아가씨: (미치겠다. 김칫국, 정말)
형: 그녀가 너를 좋아한다고?
동생: 응. 그분이 이 안에 있어.
형: 나도 그분이 여기 있어. 한번 가보자. (그들은 동시에 일어나서 아가씨 곁으로 간다.)
아가씨: (아, 이들이 진짜 오네.)
형: (아가씨 앞에서) 아가씨가 너무 아름다워서…. 저희 여기 좀 앉아도 될까요?
아가씨: 예, 그러세요. 근데 전화번호는 물어보지 마세요.
아가씨의 대응에 헛물 켠 이들 의형제를 어떻게 위로해 줘야 하나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