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마존 깊숙이

아마존 깊숙이

오선닥 2012. 3. 19. 11:31

선장 경력 일 년, 70년대 말

전혀 불가능했을 것 같은 대모험을 감행.

송 선장이 5만 톤짜리 선박을 끌고

밀림이 우거진 아마존강으로 들어갔단다.

그것도 도선사․예인선 없이

부두에 접안했다는 사실.

아무도 놀라지 않네…….

 

   

 

 

 

아마존 깊숙이

 

 

송대길은 경력 일 년의 애송이 선장이다. 그가 70년대 말 5만톤짜리 화물선 산토리호를 끌고 밀림이 우거진 아마존강으로 들어갔단다. 더구나 도선사와 예인선도 없이 뱀장어길 같은 강을 따라 요리조리 숲을 헤쳐 24시간 항해한 끝에 오지의 작은 항구에 접안했단다.

 

그런데 아무도 놀라지 않네. 별것 아니라고?

그렇다면 자초지종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군.

 

아마존 ─

먼저 정글이 하늘을 가리고, 코브라가 땅을 밀고 고개를 쳐들며, 악어가 늪에 숨어 먹잇감을 노리고, 이어서 타잔이 그네 뛰는 모습이 연상된다. 동화에서나 만화에서, 혹은 영화에서 눈에 익었던 장면들이다.

 

아마존에는 여인부족이 있다는데, 점점 야릇해지며 궁금증이 두려움을 끌어들이곤 한다.

 

그리스 신화의 용맹한 여무사들로 구성된 민족이라는 ‘아마존’ 이름이 브라질 밀림에 수출될 줄이야. 이 신화 속의 아마존 여인부족이 현실에 나타난 것은 19세기 고무전쟁 무렵.

 

고무 채취를 위한 인디오와의 전쟁 중 한 부족의 남자들이 몰살당하고 그 피해의식으로 여인들끼리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 야루보족이 탄생했다. 200년의 고무 전쟁이 끝난 지금까지도 남자와의 접촉은 임신이 필요할 때만 허락하고 아들을 낳으면 도시 근처의 마을에 맡겨 생이별하는 운명을 안고 살아간다.

 

16세기 스페인 군대가 아마존을 탐험할 때만 해도 조용했던 아마존 밀림이 고무 전쟁으로 부족간 갈등으로 이어졌고,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금광과 유전 개발로 밀림에 문명이 조금씩 기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지금 현대 문명을 즐기고 있는 사람더러 너무나 깊숙한 밀림지역으로 배를 몰고 들어가라 하니, 배를 보내는 일본 회사는 ‘아마존’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알기나 하나.

 

“하다하다 이젠 별 짓 다하는군.”

 

회사에 불평하려다 송대길 선장은 잠시 생각을 꾹 눌렀다. 다른 생각이 들어 스스로 놀랐다. 아니, 이건 일종의 기회다. 항해도 하고 탐험도 하고.

 

언필칭, 모험을 거부하는 것은 곧 삶을 거부하는 것이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배는 안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항해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지금 있는 자리에 영원히 머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나 고상하게 사는 목적과는 어쩌면 상치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위험에 둘러싸여 있다. 이런 사실을 아는 한 위험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준비체조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아마존으로 가는 길은 외롭고 험난하다.

미시시피강, 나일강, 양쯔강, 메콩강……

숱한 강을 항해해봤지만 아마존강에 배가 들어갈 수 있을까. 카누, 카약도 아닌 5만 톤짜리 상선을 운전하면서 말이다. 두렵고 떨린다.

 

“아마존강을 항해해 본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선원들에게 물어볼 필요 없다. 본선 선원 중에는 당연히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나나, 파파야, 뚜꾸멍, 잉가, 카카오, 구아바, 우구키, 바타와, 잠보, 코코넛…… 과일 따러 밀림에 들어갔을라구.

 

하지만 알고 보면 아마존강 ─ 감탄할 구석이 많다.

 

아마존강은 페루 안데스산맥의 해발 5천 미터에서 발원하여 처음에는 북류하다가 나중에 동류하여 브라질 북부를 관통한 후 적도상의 대서양으로 흘러나간다. 열대우림으로 가려져 있는 7천 킬로미터나 되는 세계 최장의 강은 엄청난 수량(水量)으로 사람의 기를 죽여 놓는다. 나머지 세계 5대강의 합친 수량보다 많다니 그야말로 강중의 강이다. 강 따라 펼쳐진 아마존 밀림은 지구의 허파라고. 세계 산소의 15퍼센트를 공급한다니 지구의 산소호흡기랄까.

 

미국이 기침하면 세계가 감기 걸린다고 하듯 아마존강의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미국 텍사스주에 토네이도가 생긴다는 <나비효과>의 얘기도 있잖은가.

 

그럼 영향력 있는 강이로구나.

 

송대길이 정글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타잔의 야성을 지니고 살다가 문명 세계로 나오면 일시에 유명한 인생이 되면 어떡하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줄도 모르고 괌의 밀림에 숨어 28년간이나 정글 생활을 했던 패잔병 요코이 쇼이치, 필리핀 밀림에서 30년간 숨어 살았던 패잔병 오노다 히로는 일본으로 돌아왔을 때 개선장군처럼 환영받았다던데.

 

배가 아마존으로 가게 된 불가피한 사유는?

 

곡물을 싣는 게 채산이 좋지만 해운경기가 바닥을 기던 당시에는 광석 화물도 선박회사 영업부 직원들이 히든카드로 써먹기에 괜찮았다. 영업팀은 캐나다 동쪽 끝 세퍼빌에서 철광석을 실을까 말까 하다가 운임이 껌 값도 되지 않아 그만뒀다.

 

그나마 브라질 망간이 초콜릿 값은 되어 그걸 싣기로 했다. 어차피 빈 배로 세워둘 바엔 화물이 돌인들 어떠하랴.

 

철광석은 호주, 캐나다, 러시아, 인도, 칠레, 브라질, 미국, 중국 등에서 많이 선적된다. 이 중에서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자국 내 수요가 많아 수출을 하지 않으니 결국 수출국은 호주, 브라질, 캐나다로 압축된다.

 

철광석 3대 메이저 회사가 또 장난을 치는가 보다. 전세계 생산량의 30%, 해상수송의 70%를 차지하는 메이저가 운임을 좌지우지한다. 철광석 생산원가에서 운임의 비중은 40%를 차지하니 운임을 반으로 후리치면 땡 잡는 장사에 행복할 일만 남는다.

 

 

 

 

* * * * *

 

1979년 이른 여름.

 

배는 미국 동부를 출항해 브라질의 아마존강으로 향했다. 강을 따라 하루 항해 거리에 있는 산타나 항에서 망간 광석을 싣기 위해서다. 선장이 아마존강을 항해한 경험이 있는지, 도착항까지 필요한 해도를 비치하고 있는지 ― 회사는 한마디 질문 없이 무작정 항해지시를 내렸다.

 

선장 태그를 단 지 겨우 일 년이라는 사실을 확인해보았더라면 회사는 신출내기 선장을 무모하게 자력도선을 해서 입항하라고 결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브라질 영해 진입 사흘 전 회사로부터 한 건의 전문이 날아왔다.

 

'선적항 브라질 산타나 확정. 도선사와 예인선 없이 자력도선 요망. 항만정보 대리점과 상의요.'

 

도선사와 예인선을 사용하지 않고 선장이 직접 조선(操船)하라는 것은 함포사격 지원 없이 상륙을 감행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배가 5톤도 아니고 5만톤 아닌가. 정신 나간 사람이 일본 도쿄 신주쿠 S회사의 벌크선 영업부에 분명히 있다고 송대길은 생각하고 있었다.

 

무리한 지시라도 가능성의 검토는 필요하다.

 

회사가 발간한 항만정보지를 찾아보았다. 이미 자사선 두 척이 입항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한 척은 일본 선장, 다른 한 척은 노르웨이 선장이 승선한 배였다. 두 척 모두 아마존강 입구에서 도선사를 탑승시켜 예인선의 안내로 도착항까지 갔었다.

 

왜 한국 선장한테는 같은 조건을 제공하지 않는가. 이건 분명 인종차별, 혹은 좋게 말하면 한국 선장에 대한 과신이다. 더구나 해안 항구도 아닌 강 상류의 미지 항구 말이다.

 

송 선장은 바로 회신을 보냈다.

 

'산타나항 미경험 항구로 항해위험 지대함. 도선사 및 예인선 수배 요망.'

 

기다렸다는 듯이 한 끼를 못 넘기고 답전이 날아왔다. 이번에는 텔렉스였다.

 

'선장님 죄송합니다. 상황이 꽤 어렵습니다. 도선사는 벨렘에서 헬리콥터로 한 시간 걸리고, 예인선은 강 따라 하루를 항행해야 합니다. 총비용 8만달러 소요됩니다. 수상부두이니 자력도선으로 조심해서 접안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친절하고도 장황한 설명. 수상부두(Floating Pier)이니 접안이 용이하지 않겠나, 하는 암시가 묻어 있는 내용이다. 이미 모든 걸 결정해 놓고 전문을 보낸 것 같다.

 

곧 이어서 전화가 왔다.

 

텔렉스만 보내놓고 있으려니 미안했던 모양이다. 전문은 영어로, 대화는 일본어로 하는 것을 일본회사는 자신들의 편의대로 일반화시켜 놓았다. 외국 회사 근무에는 늘 언어가 몸살이다. 어느 것도 미흡한 소통일 수밖에 없다.

 

전화통화가 길어졌다. 영업부장은 통화료를 줄이겠다는 것보다 결정된 사항은 변경이 불가능하니 통화를 끝냄이 좋겠다는 식이다.

 

“이로 인하여 초래되는 결과에 대해서는 회사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영업부장은 최종병기로 써먹을 것을 결심한 듯 또박또박 분명하게 말했다.

 

뭐, 누가 책임질 거냐고 물어봤나. 법적 책임은 어디까지나 선장에게 있다는 걸 모를 리 없으면서. 영업부장은 선장이 이번에 큰 결심을 해주면 어떤 보상도 해주겠다는 암시를 주었다.

 

일본에는 게이샤 집도 있고, 한국식 룸살롱도 있다는 걸 은근히 내비치기도 했다. 가와사키 근처에는 터키 정부가 극도로 싫어하는 이름의 목욕탕도 있다고 덧붙였다. 영업부장다운 발상에 감탄을 주저할 수 없다.

 

회사가 먼저 책임 운운했으니, 적어도 도덕적인 책임이 없다는 점에 송대길은 다소 용기를 얻었다.

 

“목숨 거는 일도 아닌데 뭘 어떠랴.”

 

결심을 하고나니 이젠 만용까지 생겼다.

 

아마존강의 입구는 장마철 홍수 난 것처럼 흙탕물이 바다로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차츰 상류로 들어가자 물은 조금씩 맑아졌다. 한참을 들어가자 물은 또다시 흐려지는 것이 보였다. 아마 스콜이 쏟아졌나 보다.

 

꼬불꼬불한 강 주위로 우림이 우거져 있고, 급커브를 돌 때는 센 물살로 인하여 선수가 좌우로 흔들거린다.

 

“운전대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뱃머리가 너무 흔들려요.”

 

조타수는 선수의 흔들림에 긴장을 먹었다. 그는 배를 타기 전 택시기사를 했었다. 키를 자주 운전대에 비유하곤 한다. 운전대 잡기가 힘들다는 것을 손끝에 느끼는가 보다.

 

송대길도 무의식중에 긴장이 됐다. 아마존강이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김씨, 물살이 세니까 키를 조금씩 먹여요.”

 

변침을 자주해야 하기 때문에 송대길은 뱃머리에서 눈을 땔 수가 없다. 간혹 시커먼 물체가 떠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떠내려 오는 나무 등걸과 부딪힌다면 프로펠러의 손상을 예상해야 한다.

 

“이항사, 밀림 구경은 접고, 수면 견시(見視)나 잘하게. 혹시 나무토막이라도 떠다니는지…….”

 

선장의 갑작스런 말에 이항사는 움찔했다.

 

“만곡부 물살이 너무 빨라 그걸 지켜보고 있습니다. 선장님.”

 

지켜본다고 물살이 줄어드나. 나름대로 할 일은 하고 있다는 대답일 것이다.

 

해도에 선위(船位)를 확인하면서 수심에 따라 속력을 조정해 나갔다. 베르누이 아저씨가 잘 정리해둔 <베르누이의 정리>가 선박조종에 감초로 쓰일 줄이야.

 

급커브를 돌 때 안쪽과 바깥쪽의 유속(流速)이 다름으로 인해 압력차이가 생겨 배가 커브 바깥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유속이 빠른 쪽의 수압(P)이 낮아져 그쪽으로 쏠리는 것에 유의하라는 것이다.

 

1/2ρV²+ ρg h + P = 일정

(ρ: 유체의 밀도, V: 유체의 속도, h: 기준점에서 높이, P: 유체의 압력)

 

어, 유체역학 시간이 아닌데.

시뮬레이션이 아닌 현장상황의 긴박감이 신경을 조여 온다.

 

선교의 파일럿 의자를 이번처럼 긴요하게 애용한 적이 없다. 송 선장은 강 입구에서 항구까지 가는 동안 시종 선교에 남아 지휘해야만 했다. 당직 항해사에게만 맡겨 놓는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더구나 강의 생김새, 허리선, 성향 모두가 새로운 것이고 그 어느 것도 아는 바가 없으니 긴장의 연속이다.

 

강 따라 지팡이 짚듯 더듬더듬 조심해서 가야 하는 상황이다. 미지의 바다를 항해했던 콜럼버스나 마젤란은 오죽했을까. 브라질 수로국에서 만든 강의 해도가 본선에 비치돼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야간항해는 공포를 안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상황이다. 띄엄띄엄 보이는 등대와 부표를 확인하고 레이더로 위치를 내면서 항해할 뿐이다. 강가 밀림 가까이를 스칠 때는 괴상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어둠을 흔들고 들려오는 것만 같다.

 

선원들은 낮이든 밤이든 갑판 위로 나와 강 주위에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정글 속 미로를 체험하는 짜릿한 기분에 젖어 들곤 한다. 송 선장이 극도의 긴장에 휩싸여 신경 몇 줄이 마비가 될 지경이라는 걸 그들은 모르고 있겠지.

 

“인정머리는 손톱만큼도 없는 것들…….”

 

송대길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고생은 ‘혼자서’ 하는 게 경제적이라는 생각에 선원들의 ‘자연사랑’이 대견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수영선수 스트렐은 2007년 52세 나이에 아마존강을 65일간의 사투 끝에 5300 킬로미터를 헤엄쳐 갔다고 기네스북은 기록했다. 그는 육식 물고기 피라니아가 무서웠다고 하나 뜨거운 햇볕에 입은 화상의 고통이 더 컸다고 한다. 몸무게가 12킬로그램이나 줄고 구토와 현기증에도 불구하고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최장거리 수영을 기록한 스트렐을 생각하면 배 타고 항해하는 것은 말 그대로 뱃놀이와 다름없다.

 

수면 부족으로 내려앉는 눈꺼풀을 올리며 송대길은 각오를 스트레칭 했다. 지금은 잠과의 전쟁 중에 있는 상황이다.

 

긴장 속에서의 항해 때문인지 피로가 쌓여서 밥맛이 쓴 나물 맛이다. 파일럿 의자를 엉덩이로 너무 혹사시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는 토스트와 커피가 입맛의 변화를 줄 것이다.

 

누군가 눈치 빠르게 ‘Toast & Coffee'를 준비해서 선교로 가져왔다. 정말 고맙다. 알고 보니 6개월 전에 승선한 사주원이었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귀여운 짓을 잘하곤 한다.

 

언젠가, 파란 달빛이 갑판에 쏟아지는 저녁, 그는 송 선장에게 엉뚱한 말을 했다.

 

“선장님이 결혼하지 않으셨다면 제 누나를 소개해줄 수 있는데요.”

 

그의 누나는 미스경북에 차선으로 떨어졌지만 미스진보다 더 예쁘다고 강력히 주장함으로써 선장의 입술에 군침을 바르게 했다. 빈말일지언정 그래도 뱃놈의 값어치는 뱃놈이 알아주는 데 위안이 됨을 깨달았다.

 

토스트의 맛이 괜찮다고 느끼는 순간, 문뜩 70년대 중반 수에즈운하 통과 경험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른 아침에 홍해의 수에즈 항에서 이집트 도선사가 승선했다. 도선사는 선교로 올라오자마자 아침식사로 토스트를 주문했다. 네 조각으로 해서 일인분을 만들어줬다. 그런데 3인분을 더 달라고 했다. 신체가 좋으니 식성도 좋은가 보다고 추가분을 가져다 줬다. 그러자 토스트 맛이 원더풀하다면서 또 3인분을 더 달라고 했다. 약간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자 민망한 듯 애들이 여섯 명인데 그들에게 나눠줘야 한다나.

 

“그러면 부인은 없어요?”

 

“부인이 둘이지만 애들 것만 해결하면 그들은 각자 알아서 해요.”

 

도선사는 6인분의 토스트를 기분 좋게 가방에 넣었다. 가방도 알아서 준비했던 걸 보면 상습적 부성의 발동임에 틀림없으나 그래도 대견스러웠다. 제비집에서 입을 짝짝 벌리며 먹이를 달라는 새끼들의 모습이 충분히 상상됐다. 남의 가정살이에 간섭할 일은 아니지만 자식 사랑은 어느 나라나 똑같은가 보다.

 

인공위성에서 보는 아마존 강줄기는 지렁이의 모습일 것이다. 배는 물방개로 보였을까. 강을 따라 드물게 설치해 놓은 등대와 부표는 가까이 가지 않는 한 잘 보이지 않는다. 주위에 우거진 밀림도 그렇거니와, 꾸불꾸불하게 휘어진 강이 전방 견시를 방해한다. 레이더로 배가 중앙항로를 항행하고 있는지 자주 확인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긴장한 가운데 꼬박 하루를 달려 목적지 산타나 항에 도착한 것은 밀림의 그늘이 길게 늘어진 늦은 오후였다.

 

 

 

* * * * *

 

육지와 일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닻을 내리다.

 

봇짐 지고 먼 길을 걸어온 나그네의 심정으로 큰 숨을 내리쉬었다. 긴장이 마감한 후 들이마시는 숨은 지나온 뱃길만큼이나 길게 느껴졌다.

 

달려온 길, 사연도 많았고 두려움도 많았다. 그런 걸 표정에 다 담으면 선장의 카리스마는 죽 쑤어서 개 주는 격이다. 그래서 표정관리에 좀 신경을 썼다.

 

“8만 달러 벌기가 그리 쉬워?”

 

앵커가 항구 바닥에 잘 박혔는지 확인한 후 선원들과 선교에서 커피 한잔 하고 있을 때 송대길은 거드름을 피우고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입항 수속하러 올라온 대리점은 한국 선장이 최고라면서 엄지손가락을 올려 세웠다. 엄지손가락 끝에 ‘굿’이라는 단어를 찍어 붙인 것처럼.

 

통나무 같은 잠을 자고 이튿날 아침 상쾌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농밀하고도 상큼한 강물 냄새가 피로를 모아서 밀림으로 밀어버리는 느낌이다. 고무전쟁을 치른 아마존 지역임에도 고무냄새는 아직 바람을 타지 않았다.

 

항구는 작은 시골마을이다. 육십여 채의 집에 불과한 작은 동네. 나뭇잎으로 엮은 지붕 사이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인간이 사는 동네는 어디가나 불을 때야 먹을 것이 준비되는가 보다.

 

송대길은 커피 잔을 들고 선교로 올라갔다. 해도실 테이블 위에 A3용지를 놓았다. 그는 종이 위에 이리저리 선을 그으며 스케치해 나갔다. 대리점이 알려주고 간 조석(潮汐)과 조류, 조속의 성향을 감안하여 접안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는 것이다. 도와줄 도선사도, 예인선도 없으니 혼자서 북치고 장구쳐야 하는 상황에선 면밀한 사전 준비만이 상책이다.

 

예상 선박동작을 그려가면서 접안계획을 세우는 것은 땀 흘리게 하는 작업임에 틀림없다. 지금까지 접안 작업은 도선사의 밥벌이였지 자신이 직접 할 일은 아니었다. 상선학교에서 배운 이론, 경험에서 얻은 실무를 모조리 동원하여 동작을 스케치해 보았다.

 

몇 미터 전방에서 후진엔진을 걸어야 할지가 가장 중요한 점이다. 부두 라인과 30도 각도로 저속으로 진행하다가 미속의 순간에 50미터 전방에서 후진을 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접안 무렵에는 2노트 정도의 간조 조류를 이용하면 선체가 부두에 과격하게 부딪힐 염려는 없을 것 같다.

 

오후 3시 정조(停潮) 시간이 됐다. 행동개시 시간이다. 일항사가 선수에 도착해 만반의 준비를 알려 왔다.

 

“히브 인 앵커.”

 

이윽고 닻을 올렸다.

 

송 선장의 입에는 어느새 담배가 물려 있었다. 많이 피우지도 않는 담배였지만 끊은 지 2년이 넘는 역사적 결단의 상징이었는데 다시 입에 물린 것이다. 더욱 놀랄 일은 불까지 붙여져 있지 않은가. 키를 잡고 있던 조타수가 의아해하면서 선장의 담배에 라이터 불을 붙여준 것이다.

 

“선장님, 담배 피우세요? 피우시는 것 한 번도 보지 못했었는데…….”

 

그래 맞다. 당신과 나는 같은 날 승선해서 반년이나 됐는데도 이런 거 처음 봤지? 바로 그거야. 지금 내 정신을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나도 모르겠단 말이다. 송 선장은 혼자 말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는 단단한 두려움이 뒷머리를 잡아당기는 걸 느꼈다.

 

“긴장이 좀 되는군. 배가 남산만큼이나 크게 보이는 건 처음이야. 일단 접근해 보자구.”

 

회사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길이 200미터나 되는 대형 벌크선을 주차장에 파킹하는 자동차쯤으로 생각하다니. 이런 일로 전도가 유망한 젊은이의 기를 꺾어놓을 작정인가. 착잡한 생각의 연속.

 

애완견이 긴장하면 고추에서 질금질금 싸는 것 봤지. 지금 송 선장이 그런 상태라니까. 누가 옆에서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담배는 자꾸 타들어가고, 담뱃불이 손가락을 찜질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담배 한 개비를 더 붙였다. 사형수가 마지막 순간에 찾는 담배처럼 절박함의 끄트머리를 또 태우고 있었다. 담배가 발굴의 진정 능력이 있다는 게 바로 지금 증명되는 것처럼 보였다.

 

투묘지에서 부두까지는 불과 일 킬로미터도 안 되는 거리. 그러나 도달하는 데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발사!”

 

로켓 발사가 아니다. 선수와 선미 쪽에 준비시켜 놓은 라인발사 총에서 줄이 나갔다. 먼저 선수에서 발사된 라인이 부두에 닿는데 성공했다. 엔진을 후진하여 선수가 우측으로 편향하는 것을 확인하고 육상에서 라인을 끌어당기는 대로 밧줄을 보냈다.

 

신기한 성공이다.

 

시험에 합격했을 때도 이렇게 기쁘진 않았다. 기쁨에는 행복이 따르는 법이다. 산더미같이 보였던 배가 이때는 장난감같이 보였다. 대신 행복이 산더미만큼 푸짐하게 느껴졌다.

 

배의 허리가 수상부두에 낭창하게 붙었다. 부두는 움찔 뒤로 밀렸다가 다시 앞으로 살짝 나와서 배를 끌어않았다.

 

선수와 선미에서 동시에 천천히 줄을 당겨 선체를 부두에 고정시켰다. 큰 충격 없이 배 허리가 수상부두에 얌전하게 붙자 스트레스 뭉치가 한꺼번에 비눗물에 풀려나가는 것 같았다. 세상을 평정한 것처럼 홀가분했다.

 

담배꽁초 세 개비가 재떨이에 아무렇게나 뒹굴어 있는 모습은 지나간 한 시간의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대리점이 접안 결과보고를 했는지 일본 본사로부터 텔렉스가 날아왔다.

 

“선장님 축하드리며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접안 완료 후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대리점을 방문해 전화를 했을 때 수화기를 든 해무부장은 몇마디 하고는 영업부장을 바꿔주었다. 영업부장도 몇마디 후 담당 중역을……. 이렇게 한 차례씩 나눈 대화의 의미는 ‘아마존 탐험 대성공’을 축하하는 세리머니 같았다. 앞으로 아마존 항해는 무조건 자력도선을 원칙으로 하겠다는 선언 같기도.

 

역시 사무라이다운 사고방식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 * * * *

 

망간광석 적재에 사흘간의 정박이 필요하다. 깊숙한 시골 마을에 사흘의 체류는 무의미의 덩어리 같지만 색다른 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어둠이 밀림을 덮기 전에 선박은 가무잡잡한 구릿빛으로 물들었다. 마을의 여성들이 무더기로 배에 올라온 것이다. 작은 마을에 이토록 많은 여성들이 거주하고 있었는가는 불가사의에 가깝다.

 

일항사가 선내방송을 했다.

 

“거주 구역의 도어는 철저히 잠가주시고, 특히 여성들의 출입을 삼가 해주시기 바랍니다.”

 

여성들은 잠겨있는 방문을 노크하기 시작했다. 방문을 열어주지 않으니 복도에서 진을 치기도 했다. 선교로, 식당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구릿빛 피부를 일부러 비비며 스쳐지나갔다. 화장실을 이용한 사람은 화장지를 달라고 치마를 들어보였다. 민망한 나머지 숨긴 화장지를 주어버렸다.

 

원주민 남성들은 비교적 출입이 용이했다. 용무를 핑계로 선원들 방을 들락날락했다. 과일이나 토산품을 갖고 와서 팔기도 하고 배의 물건과 교환하기도 했다.

 

왜 남성들과 차별하느냐고 여성들이 항의할 만하다.

 

문제는 이튿날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을 때 입장이 난처한 사람이 있었다. 이기사였다. 선원들이 모여 키득거렸다.

 

“이기사가 아무래도 이상해. 저녁에 그의 방에서 한 남자가 나왔는데 입술이 너무 빨갰어…… 또 엉덩이도 유난히 컸어. 뭔가 수상해.”

 

“맞아. 엉덩이 큰 남자들이 많이 보였던 게 좀 이상하다니까.”

 

삼삼오오 수군수군.

 

소문의 진의를 추적해 본 결과 남장한 여성들이 배로 올라온 것이다. 첫날 한 명이 성공하자 다음날 숫자가 늘어났다. 슬쩍 수컷의 본능을 푸는 샛밥을 챙긴 선원 몇 명도 있었다.

 

그러나 선장의 걱정은 규칙을 어긴 선원을 징계하기보다는, 침대에서 제대로 무장을 했는가가 더 걱정스러웠다. 선내 특효약도 몇 알 남지 않았는데.

 

남장에 대해서는 셰익스피어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의 작품 <십이야(十二夜)>에선 바이올라가 난파된 배를 떠나 먹고살기 위해 남장으로 하인 노릇을 하고, <뜻대로 하세요>에선 로절린드가 숙부의 노여움을 사 쫓겨나자 신변 안전을 위해 남장을 하고, <베니스의 상인>에선 포샤가 안토니오를 구하기 위해 판사로 변장, 그 유명한 '살 1파운드를 도려내되 피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남장여자 캐릭터는 조선시대에서도 볼 수 있다. 금녀(禁女)의 구역인 성균관에 들어가는 방법은 남장이었다.

 

사건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묻어두고 배는 출항했다.

 

짐을 가득 실은 배는 허걱대며 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상갑판이 가물가물한 선체는 동작이 둔하기 그지없다. 때로는 커브를 돌다가 원심력을 이기지 못해 허리 부분이 휘청하기도.

 

밤이 깊어지자 어둠이 가라앉고 숲이 가라앉았으며, 강물이 가라앉고 만물이 가라앉았다. 위대한 고요함이 선체를 감싸며 하구로 조금씩 밀어 보냈다.

 

배는 하구의 바다와 맞닿았다.

 

강물도 멈추고 바람도 멈췄다. 동쪽 하늘 위 붉은 빛이 퍼져 올라 아침을 알렸다. 작은 새 한 마리가 물결 자락을 끌고 갔다. 뜨거운 적도 아래에서 바다가 불쑥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정말 더운 곳에 와 있구나.

 

깊숙한 아래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바다.

배 밑바닥을 솥인양 너무 데우지 마라.

 

강 하구를 마지막 빠져나올 무렵, 선저에 약간의 흔들림을 느꼈다. 배 밑바닥이 모래언덕 위를 지났는가 보다. 선저와 모래바닥 간의 간격이 좁으면 배 밑을 흐르는 유속이 빨라 선저가 조금 내려앉을 수가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그다지 큰 걱정거리에 포함되지 않는다. 수심이 얕은 모래펄에서는 흔히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회사에도 이점을 주의하라고 사전에 항만정보를 제공해줬다. 다음 수리도크에 들어가면 아마존 하구를 지나온 인증샷으로 취급할지 모르겠다.

 

항해일지에 선저진동 사실을 기입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선저손상에 대비해서 해난보고서(Sea Protest)를 작성해두었다.

 

출항보고가 전송되자 회사의 응답은 빨랐다. 영업부장은 전화에서 은근히 일본에 도착하면 큰 당근 뿌리가 대기하고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줬다.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구사하는 일본인의 진면목이다.

 

강을 빠져나와 대양으로 나오니 긴장이 풀어지고 집중도가 엷어지면서 잠이 쏟아졌다.

 

송대길이 소파에 네 다리를 뻗고 잠을 부르는데 갑자기 다리 같지 않은 놈이 바지의 텐트를 쳤다. 쏟아지는 수면도 이를 막지 못하는 듯 오랫동안 지속됐다.

 

넘쳐나는 정력을 붙들고 꿀맛 같은 잠을 자고 있는 변강쇠를 용감하게 깨우는 사람이 있었다. 통신국장이 회사에서 온 급한 전문을 들고 온 것이다.

 

'트리니다드 부근 대형유조선 2척 충돌, 기름유출사고 발생. 부근 항해시 극도 유의요망'

 

1979년 7월 19일, 세계 역사상 최대 선박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트리니다드 부근에서 대형 유조선 애틀랜틱호와 에기언호가 폭풍우 속에서 충돌해 폭발이 일어났다. 두 척에서 28만 톤의 기름이 쏟아졌다. 에기언호는 육상으로 예인되었으나 애틀랜틱 호는 불붙은 채 침몰했다.

 

기름 유출 해역은 본선이 파나마운하로 향하는 항로상이다.

 

마음 놓고 쉬지 못하는 것이 바다의 생리인가. 풀어진 긴장의 끈을 다시 잡아당겨야 했다. 그 끈은 고래힘줄이라도 되는 듯 당기고 당겨도 끊어지지 않는다.

 

어려운 항해는 계속된다. 끊임없는 도전이 바다에 늘려있고, 그 도전은 마도로스를 담금질해 나갈 것이다.

 

<끝>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