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위험과 모험을 넘어

위험과 모험을 넘어

오선닥 2012. 2. 22. 10:25

남미 최남단의 섬 케이프혼을 지나는 뱃길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항로다.

70년대 말 해운경기가 밑바닥을 헤맬 때

선주는 마젤란해협 도선료가 아까워

케이프혼 항로로 배를 밀어붙였다.

선원들이 황파와 고드름 추위를 이기고

무사히 통과한 것은 그나마 다행…….

 

 

 

 

 

 

위험과 모험을 넘어

 

 

H호의 항해일지에는 지난 항차의 발자취가 잘 적혀 있다.

최근 선적지는 카리브해를 맴돌았다. 트리니다드(Trinidad), 아루바(Aruba), 카라카스(Caracas) ……. 양하지는 한결같이 미국이다. 미국은 기름을 빨아먹는 하마.

 

배는 이번엔 기름을 싣기 위해 멕시코로 들어갔다. 선적지는 멕시코만 서쪽에 위치한 베라크루즈. 정확히는 코아츠코알라코스 항이다. 부르기가 왜 이렇게 어렵나. 멕시코 국영석유회사 페멕스(Pemex)가 채굴하는 기름은 SMB(Single Mooring Buoy) 기지를 통해 선박으로 적재된다.

 

기름을 싣는 데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추가로 이틀 더 정박 신세를 졌다. 양하지 지정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기름을 마구 삼키던 미국도 최근 위축된 경기로 기름 소비가 줄어들었다. 미국 경제가 기침하면 세계 경제는 감기에 걸린다고.

 

세계경제 위축 → 물동량 감소 → 해운경기 악화

 

악순환이 시작되는가 보다.

회사의 항해지시는 엉뚱하게도 하와이.

십오만 톤을 싣고 파나마운하를 통과하라는 뜻이 아니라면 어디로 가야 하나. 남미 남단으로? 마젤란해협이든 케이프혼(Cape Horn)이든 선장이 알아서 가라는 게 회사의 뜻.

 

그런데 전보문에 토가 달렸다.

 

“최근 해운불황으로 도선료 절약이 요구되니 마젤란해협 통과 대신 케이프혼 통과 검토 바람.”

 

일본인의 화법에는 경험치 해석이 필요하다. ‘검토’는 지시대로 ‘따르라’는 뜻이다. 담당 영업과장의 돈타령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미끄럼 타듯 활강하는 해운경기를 당해낼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실무자인 과장으로선.

 

도대체 케이프혼이 어떻게 생겨 먹었나?

선장이 해도를 끄집어내보니 남미하고도 최남단이다.

죽었다. 복창!

마젤란 원정대가 마젤란해협을 통과하는데 36일 걸렸다고 하지 않았나. 1520년 일이라 해도 그렇다. 남극대륙과 가장 가까운 남미의 최남단 섬을 통과하라고?

 

“얼어 죽을 일이 있나?”

 

그렇게 독백을 하면서도 선장은 마음을 다졌다. 그 옛날 마젤란이 배 다섯 척 중 세 척만 끌고 남미를 돌았는데 자신은 선수(船首)의 코가 떨어져나가더라도 선주의 명령에 따르겠다고.

 

결심을 단단히 하고 심호흡을 하고 있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선장님 크…큰일 났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조리장이 은색 연어(Silver Salmon) 빛을 넘어 하얀색으로 변하는 얼굴을 하고 안절부절못한 채 말을 더듬거렸다.

 

“도대체 뭐야? 배에서 큰일이 한두 번이야? 빨리 말하라구.”

 

가슴을 움켜쥐고 조리장은 말을 잇는 데 무척 힘들어했다.

 

“사롱 김도주가 아직 귀가하지 아…않았습니다.”

 

“뭐? 귀선하지 않았다구? 우라질!”

 

귀가든 귀선이든 선장은 우리말을 두고 따지고 싶지 않았다. 알아듣는 것도 바쁘다. 출항시간 전에 귀선하지 않은 것은 전장에서 낙오된 자와 다름없다. 상선학교에서 귀교시간이 일 분만 늦어도 퇴학당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닌가.

조리원 한 명이 없다고 선원들의 식사 공급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승선경력이 많은 조리장은 문제의 결과가 먹는 문제가 아니라 부서원 관리 문책에 있음을 더 잘 안다.

 

“쿡과 함께 상륙했다는데 사롱이 구입할 물건이 있다고 하면서 쿡더러 먼저 들어가라고 해서 혼자 왔답니다.”

 

“그럼 그 뒤 연락은 없고?”

 

당연히 그렇겠지. 선장은 더 이상 쫀쫀한 질문을 하고 싶지 않았다. 조리사(Cook)가 조리원(Saloon)의 손목에 철제 체인을 채워서라도 잘 챙길 것이지, 해봤자 당치도 않는 말이다.

 

온 배가 뒤집혔다.

현문당직 모르게 방으로 들어와서 자고 있는지, 쌀 창고에 들어가서 잠들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풀장에 빠졌는지, 더 찾아보라는 선장의 주문이 떨어졌다.

죽은 아이 불알 만지는 것보다 더 절망적이다.

 

사건은 대리점에 통보됐다. 대리점은 출입국관리소, 세관 그리고 검역소, 소위 CIQ(Customs, Immigration, Quarantine) 모두에게 알렸다. 물론 한국 영사관 그리고 대사관에도 알렸다. 그래야만 중앙정보부에 통보될 것이기 때문이다. 해외에 나가기 전에 반공교육을 받는 이유가 뭔데.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은 간첩과의 연계로 의심받는다고 하지 않았나. 중남미는 북한 세력이 더 우세하니 외교적 긴장은 어느 곳보다도 팽팽하다.

 

일본 선주는 하루의 여유를 줬다. 항만당국도 그 정도의 여유는 괜찮다고 했다. 도망자가 귀선할 가망이 있으면 하루 더 정박 대기하는 것은 양해하겠다고.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 드러나고 말았다. 조리원의 방 소지품을 열어보니 외제품이나 귀중품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를테면 애인 선물로 산 악어백이라든가 외모 과시용 오메가 시계도 보이지 않았다. 월급 반을 명품에 투자해온 그의 전력은 선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놈이 단단히 작정을 했구먼.”

 

조리장은 배신감을 느꼈다.

 

 

 

선내가 난리 복통 터지는 것과는 달리, 베라크루즈 시내 주택가의 한 이층집에선 은밀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전등 아래 그림자가 셋이었다. 그림자의 주인공은 한국 남성 두 명과 멕시코 여성 한 명. 다 젊은이들이었다.

 

얼굴이 짙게 탄 한국 남성이 먼저 말을 꺼냈다.

 

“여기는 시내 중심이니까 아무도 몰라. 넌 안심하고 우리 하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돼.”

 

겁에 질린 다른 한국 남성은 원래 하얀 얼굴이 더 하얘졌다.

 

“지금 배에선 도망친 걸 알 텐데……. 경찰에도 알렸겠지? 어떡해……?”

 

“어차피 알 건데……. 알고 모르고가 뭐 그리 중요해? 이 골목은 제임스 본드도 못 찾는 곳이야.”

 

위로의 말에도 조리원 김도주는 친구가 원망스러웠다. 멕시코에 눌러 앉아 살고 있는 친구가 ‘멕시코에서 함께 살자’는 제안에 세 번도 세지 않고 기꺼이 동의했던 것이 후회 막심했다. 그러나 이젠 엎지른 물. 고교 친구가 이렇게 인생을 꼬이게 만들 줄은…… 미처 몰랐었다.

친구는 배에서 도망나온 김도주를 안심시키는 말을 하나씩 찾아내고 있었다.

 

“멕시코 경찰은 한국경찰처럼 집집마다 비집고 다니지 않아. 이유 없이 사람들의 호주머니 검사도 하지 않고. 두발단속 가위는 아예 갖고 다니지도 않아.”

 

김도주의 긴 머리카락을 두고 하는 말이다. 친구는 김도주가 한국에 있었더라면 머리카락의 십 센티는 잘려나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선원으로 나와, 또 외국으로 도망 나와 이젠 원 없도록 길러보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하고 싶었다.

 

한국의 유신 경찰은 거리마다 골목마다 걸고넘어질 것을 찾아다녔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고 들으면서 삐딱한 무리는 긴급조치 그물망에 걸었다. 친구는 멕시코가 그런 한국과는 다르다고 강조했지만 조리원은 불안하기만 했다.

 

안심시키는 데 더 부드러운 말을 찾아냈다.

 

“걱정 마. 카타리나(Catalina)와 함께 있으면 현지 주민으로 알아볼 거야. 그런데 둘이 좋아하는 것은 반대하진 않지만 사귈 땐 내한데 보고해야 돼. 내 와이프의 친구니까. 알겠지?”

 

친구는 멕시코 근해에서 어로 작업을 하던 한국 어선의 선원이었다. 정박 중 디스코클럽에 갔다가 현지 아가씨를 만났다. 바지를 끄집어 내릴 때 여자의 애교를 알게 되었고, 육지 생활의 꿀맛도 체득하게 되었다. 세상물정 모르고 어선에 탔다가 막노동에 찌들었던 일은 추억으로 돌리고 싶었다.

 

‘베라쿠루즈는 낙원이야.’

 

당시 친구는 전후 생각할 겨를 없이 도시에 주저앉아버렸다. 아니 일단은 골목에 숨었다. 디스코 아가씨의 스카트 자락 밑에 얼굴을 묻었다. 어선은 그를 폐기물로 육지에 남겨두고 고기잡이 나갔다. 배의 선주는 한국인이었으나 선적국은 멕시코였으므로 한국 관청에는 도망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는 멕시코인이 되었고, 아가씨 옆구리에 숨어있다 보니 딸 하나를 낳았다. 부인에게 웨딩드레스를 입혀준 것은 뱃속 아기가 4개월이 됐을 때였다. 사람들은 주례 앞에 세 사람이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늘씬한 몸매의 신부라고 칭찬까지 했으니까.

 

친구는 삼 년 전 자기가 했던 대로 김도주를 디스코클럽에서 만나기로 했던 것이다. 김도주 역시 선원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디스코클럽에 들어갔다. 친구 부인이 여자 친구를 거기에 데리고 온 것도 자연스러웠다. 계획은 친구 부인의 구상이었다. 역시 자연스러웠다.

 

카타리나는 허리가 보이는 하얀 메리야스를 입고 있었고, 등 뒤 옷에는‘오빠 사랑해’라는 한글이 쓰여 있었다. 글씨라기보다는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 같았다. 멕시코 여성들은 옷에 한글을 써서 한국선원들의 시선을 끌기도 했다.

‘오빠 마음껏 줄게’는 애교 있는 말이다.

‘오빠 엿 먹어’는 정말 잘못 가르쳐준 말이다. 한국사람 정말 나빠.

백인이든 흑인이든, 그리고 혼혈이든 원주민이든 대부분 여자들은 ‘사랑’ 정도의 한국말은 할 줄 안다. 아예 옷에 써서 다니는 보이헌터들도 있다.

 

어로작업 나온 선원들이 육지로 나왔을 때는 지폐를 뿌려댔다. 지폐를 줍는 아가씨들은 즐거워했다. 간혹 빳빳한 달러를 젖가슴에 꽂아주면 더 좋아했다. ‘기마이’라는 말이 일본어인데 한국 사람들이 더 기마이(선심)를 잘 쓴다. 통이 큰지 헤픈지는 분위기에 따라 평가가 다를 것이다.

 

카타리나의 눈빛과 미소는 촉촉했다. 그녀는 조리원 쪽으로 등을 돌려 메리야스의 글자를 보여줬다. ‘오빠 사랑해’ 글자가 그녀의 진심이었다.

 

‘이 남자도 멕시코에서 얼굴이 더 그을려지면 완전한 내 남자가 될 거야. 테 아모(Te amo, 사랑해)’

 

카타리나의 생각과는 달리 조리원 김도주는 앞날이 걱정됐다. 다시금 심신의 묵직한 통증에 입술을 깨물었다.

 

‘친구의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해야 하나? 아니면 붕어빵 노점상을 해야 하나?’

 

피난민보다 더 비참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길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당장 사건 수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문제다. 부모님에게 알리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 심장이 약한 아버지는 치명적으로 될 수 있다. 아니, 부모님께 잘못 알리면 정보부도 알게 될지 모른다.

 

초조해하는 조리원에게 친구는 자기가 멕시코에 처음 정착했을 때의 경험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은 이미 터졌어. 베라크루즈가 고향이라 생각하고 마음 단단히 먹어. 카타리나는 여기서 태어났으니까 어느 골목이 안전한지 잘 알아. 그래서 카타리나를 붙여준 거야. 뭐 예쁘다고 그랜 줄 알어? 물론 예쁘긴 하지…….”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하나. 조리원은 불안해하면서 친구의 위로를 믿고 싶었다.

 

친구와 부인이 떠나가고 카타리나만 그의 옆에 남았을 때 대화가 먹통이 되었다. 언어는 불통되고 몸만 소통되는 하룻밤이었다.

그리고 당분간, 계속 - 그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면서 - 몸의 소통만 가능할 뿐이었다.

 

 

 

 

 

 

하루가 돼도 조리원의 행방이 묘연해 선장은 기다리기를 포기했다. 배는 한 사람을 위해서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시내 이층집에서 세 사람이 밀담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선장이 알 리가 없지.

 

‘밀항이든 도망이든 그놈은 없어져버렸어.’ 선장의 단념은 빨랐다.

 

사람들은 어디론가 탈출하고 싶은 것이다. 숨 막히는 나라로부터. 그리고 가난으로부터. 코리아는 멀리해야 할 나라로 인식되는 것은 찌들인 역사 때문일까.

 

도망자를 찾으면 항로 가까운 곳으로 보내 달라고 대리점에 부탁해놓고 선장은 출항을 결행했다.

 

“렛고 스턴라인(Let go stern line)!"

 

마지막 선미 밧줄을 풀고 배는 출항했다. 어쩌면 ‘조리원 던져버려(Let go Saloon)'로 들릴 만큼 선장은 마음이 뒤틀려 있었다. 십오 년 승선생활에 처음 겪어보는 참담한 경험이다. 밀항자를 흔히 돼지라고 하는데, 왜 돼지를 실어가지고 이렇게 마음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탄도 한다.

 

‘아니, 처음부터 밀항자는 아니었지’로 위로해보기도 한다.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를 돌고 브라질의 엉덩이를 휘둘러 남으로 내려가는 배는 심신이 몹시 무겁다. 짐을 가득 실은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도망자 선원 한 명 때문에 배의 분위기가 납덩어리에 눌린 것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선장은 분통을 털어 담을 그릇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항사, 조리원 그놈 처음 승선 때부터 작정한 것 아냐? 내 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니까.”

 

“저도 사전에 전혀 눈치를 못 챘습니다. 더구나 베라크루즈에 그런 고약한 친구가 있으리라곤…… 말입니다.”

 

“글쎄다. 오비이락도 아니고…… 그놈이 작전치고는 매우 치밀했군.”

 

“총각이 여자를 보자 완전 홱 돌아버렸나 봐요. 사전에 계획했던 게 아니라면…….”

 

분위기를 좀 바꿔 보려고 한 말인데.

 

“자네도 총각이니까 그쪽으론 동병상련인가 봐.”

 

송대길이 더 이상 대꾸할 일이 아니었다.

 

아메리카대륙에는 고대 3대 문명이 있다.

유카탄반도를 중심으로 멕시코 남부와 과테말라, 온두라스의 중미 열대림 속에는 기원전 이천오백 년경부터 시작된 마야문명이 자리 잡았다. 중세기 들어 매우 활발했지만 스페인의 정복으로 기세가 죽어버렸다.

또 멕시코시티의 심장부 중앙고원에서 꽃피웠던 아즈텍문명이 있었다. 흥미 있게도 삼국시대의 한국인이 사할린, 알류산열도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의 서안을 따라 내려와서 아즈텍문명을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것. 그럼 지금 그 사람들 어디 갔어? 이미 피가 섞여버렸으니까 알 수 없지.

그리고 중미의 콜롬비아로부터 남으로 칠레에 이르는 오천 킬로미터에 걸쳐 태평양 연안과 아마존 정글 사이에 융성한 잉카문명은 지금 현대문명에 깊숙이 가려져 있다.

이리하여 거대 3대 문명은 오백년 전 스페인의 신무기에 짓밟혀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한 채 중남미의 남북 길이 일만오천 킬로미터는 라틴아메리카문명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 긴 대륙을 옆으로 하고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는 배는 왠지 우울하다. 피난길에 가족 하나를 떨어뜨리고 온 기분 때문일까.

 

적도에 걸려 있는 아마존 강 입구 근처를 지날 때는 후덥지근한 공기가 선실로 밀려 들어왔다. 배의 외판에도 땀이 베인 것 같다. 가득 실은 화물이 무겁게 느껴지는 중에 해수온도가 올라가니 엔진 냉각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다. 엔진의 더운 바람이 선교까지 올라오려나.

 

남위 23도쯤을 지날 무렵엔 정말 하루 쉬어 가고 싶었다.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 항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 레이더 스크린에 나타났다. 포르투갈 식민시대엔 브라질의 수도이기도 했던 리우. 정말 놀기 좋은 곳 - 삼바, 재즈, 카니발, 축구 등등 몸을 움직여만 즐길 수 있는 것들. '1월의 강'이라는 도시 이름답게 남반구의 여름 1월은 축제의 계절.

어깨도, 허리도, 엉덩이도 흔들면서 무거운 생각들을 떨쳐버릴 수 있는 찬스.

 

세계 최대 크기의 축구장 - 펠레가 누볐던 곳은?

대양을 품는 해변에서 비치볼 하는 아가씨들은?

산위에 세워진 40m 높이의 예수상에 기도하는 사람들은?

 

궁금한 것들이 많다.

연평균 23도의 도시. 여름의 40도를 이기는 방법은 춤이요 축제요 놀이일 것이다.

 

리우를 지나 하루 쯤 항해하고 있을 무렵 전보 한 통이 날라 왔다.

 

"선장님 죄송해요. 도망자 김도주 베라크루즈에 거주중. 당분간 찾지 마세요. 타국에서 성공해서 고국으로 갈게요. 안전항해하세요."

 

약 올리고 엿 먹이는 전보라고 해야 하나. 이런 아이디어에 감탄을 보내는 게 도리인가. 공자님한테 물어보고 싶다.

선장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의 경계선에서 헛기침을 했다. 영문전보를 간략하게 작성하는 것은 누가 옆에서 코치를 해줬나. 발신무선국이 베라크루즈였으니 한글로 전송할 수는 없었을 테고.

 

그러나 도망자의 전보는 하나의 도움이 됐다. 이놈을 수배할 필요가 없다는 것. 전보까지 보내는 여유만만한 놈이 어설프게 잡힐 리는 만무하니까.

 

포기는 빨랐다. 객지에서 하이에나의 밥이 돼도 양심에 거리낄 일 없다고 자위하며 선장은 ‘가자, 남으로.’해도에 침로를 아래로 죽 그었다.

 

남북으로 그어진 항로를 따라 계속 남하하는 배는 매일매일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남위 30도를 지나고, 멀리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남위 35도에 밑줄 긋고 옆으로 바라보며 계속 남으로 내려가는 배.

남위 40도에 이르자 추위의 칼끝이 제법 날카로워졌다.

마젤란해협의 대서양 쪽 입구 부근에 이를 무렵 몇 척의 소형선이 항해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해협의 안쪽 남위 46도에 걸려 있는 푼타아레나스 항을 드나드는 선박일 것이다. 푼타아레나스는 남극지방에 있는 극지연구소나 대서양에서 조업하는 어선들의 생필품이나 보급품의 기지로 자주 이용된다.

 

마젤란 원정대가 처음 강이라고 지나가기 시작한 것이 뚫리고 뚫려 태평양까지 가게 된 해로가 바로 마젤란해협이다. 파나마운하가 뚫리기 전에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오고가던 선박들이 많이 이용했던 항로.

마젤란해협을 통과하면 바람도 세지 않고 비교적 수월한 항해를 할 수 있으나 도선료를 아끼라는 일본 본사의 의중을 무시할 순 없다.

배는 케이프혼(Cape Horn)을 향해 계속 내려갔다. 형편없는 해운경기가 적자운항을 강요하는 때는 무리한 항해도 어쩔 수 없다. 모험은 어려울 때 감행하는 것이라고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케이프혼은 남위 56도에 둥지를 튼 남미 최남단의 섬이다.

칠레 최남단 후에고 군도 끝에 가파르게 삐쭉 나온 돌기는 갈매기조차 앉다가 미끄러질 만큼 뾰족하다. 여기는 아메리카 최남단이며 드레이크(Drake) 해로의 길목이기도 하다.

남위 40~50도 해역은 해상폭풍지대로 남반구가 북반구보다 드세며, 돌풍으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해로로 알려져 있다. 특히 강한 편서풍으로 인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항해할 때 안데스 산맥과 남극 사이에 놓인 이 항로가 굴뚝효과를 내어 풍력이 매우 세다. 동쪽으로 흐르는 해류와 반대측의 돌풍을 만나면 파도는 날카롭게 높이 치솟는다. 케이프혼의 서쪽 해역엔 30미터 높이의 파도가 벌떡 일어나곤 한다. 그동안 많은 배가 침몰했고 많은 선원들이 희생되었다.

 

“묵념이나 하고 가자.”

 

바다에 매골된 선배 선원들을 위해 잠시 예의를 갖추자는 것.

선장은 애통할 줄도 알았다. 그들의 영혼이 고히 잠드길 바라면서.

식물에게는 육이 있고, 동물에겐 육과 혼이 있고, 사람에겐 육과 혼과 영이 있다는 것을 철저히 믿는 선장이다.

남극에서 미지를 탐험코자 했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지만 남극 해안에서 이틀 항해거리밖에 되지 않는 케이프혼에도 항해자의 희생자가 적지 않았던 역사를 갖고 있다.

 

모두들 고개를 구십 도로 숙였다.

 

소금물에 잔뼈가 여물어진 선원들은 해신의 초대가 있으면 언제든 바다에 묻히겠다는 각오가 다져져 있다.

 

선장의 항해경력은 이미 남아프리카 희망봉, 북태평양의 베링해, 캐나다 동부 최북단 대서양에 이르기까지 어려운 항로를 대부분 섭렵했지만 남미 대륙 아래로 돌아가는 이 항로는 처음이다. 역사적인 순간이 따로 없다.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이 남위 35도, 뉴질랜드 남단이 47도. 이것들에 비하면, 남극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대륙의 섬 케이프혼은 항해자에게 완결판이나 다름없다.

 

해도로 봐서 아르헨티나 땅에 속해야 하나 케이프혼은 칠레 땅이다. 파나마운하가 개통되지 않았더라면 태평양과 대서양을 오가는 배들의 대형 주막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대형선 몇 척만 기억을 이어줄 뿐이고, 모험삼아 대양 횡단을 하는 요트선이나 범선이 섬의 외로움을 달래곤 한다.

독도처럼 등대가 있고, 간혹 칠레 군함이 섬을 한 바퀴씩 돌기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전통적 등대로서 자부심을 잃지 않을 것이다.

 

섬 주위는 자주 기압의 급작스런 변화로 100노트 이상의 강풍이 불곤 한다. 폭풍우와 산봉우리의 만년빙하를 타고 내려오는 추위는 항해자에게 두려움으로 섞여 몸을 오그라들게 만든다. 길들여지지 않은 조류(潮流)는 서풍을 타고 강렬한 힘을 받아 마주 오는 선박들의 뱃머리를 공격한다. 무리하게 앞으로 진행할 것이 아니라 일보 후퇴하여 파도의 기세가 꺾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지혜다.

 

남반부 4월의 초가을 바람은 눈 우박을 휘몰고 왔다. 거친 파도를 뒤집어쓴 갑판의 구조물과 로프들은 벌써 칼날 같은 고드름을 주렁주렁 달기 시작했다. 황천항해 준비를 위해 갑판에 나간 선원들은 금방 고드름이 되어 갑판에 얼어붙을까 두렵다.

 

“파도가 몰려오고 있어. 빨리 창고 안으로 피해!”

 

무전기를 통해 선교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무전기에서 나온 소리가 얼어붙었는지 송대길은 금방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반은 무전기 소리로, 반으로 눈치로 알아채고 밀려오는 파도를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선원들이 급한 상황을 벗어나자 선장은 다소 안심이 되었는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삼항사가 라이터를 코앞에 대령하자 선장은 다소 마음의 평정을 찾은 얼굴이다.

 

“안 되겠어. 아무래도 그냥 통과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 바람 잘 때까지 앵커 놓고 기다리자구. 일항사 앵커 내릴 준비!”

 

케이프혼 섬 동쪽에 투묘하기로 선장은 결론을 내렸다.

바다는 사나운 짐승처럼 날뛰었다. 투묘 요원 네 명이 선수갑판을 나가는 것은 마치 암벽을 타는 기분이다. 강풍에 몸이 밀려 일보전진 이보후퇴의 뒷걸음질도 불가피했다. 이건 전쟁이다. 파도가 갑판 위로 몰려올 때는 죽음으로 가는 길이 지척에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해수로 얼어붙은 갑판을 거의 기어가다시피 해서 겨우 선수까지 갔다. 팔다리에 아이젠 같은 발톱을 주지 않았냐고 하나님에게 원망해봤자 소용없다.

 

일항사 송대길이 급하게 무전기 버튼을 눌렀다.

 

“파도가 너무 높습니다. 선수를 좀 돌려주십시오. 오버?”

 

“오케이. 선수를 약간 리웨이(Leeway) 하겠어. 수심이 깊으니 다섯 샤클 내려놓은 상태에서 앵커 투하 준비!”

 

선교의 오더에 따라 앵커체인을 반쯤 내려놓았다.

그리고 섬의 동쪽 1해리쯤 되는 곳에 앵커를 떨어뜨렸다. 로켓포처럼 앵커가 바닷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체인이 할퀴고 가는 앵커파이프(Hawse Pipe)에는 불꽃이 튀었다. 강풍에 밀린 배가 앵커체인을 팽팽히 물어당기자 배는 멈춰섰다.

 

섬이 서풍을 막아줘 갑판을 덮치는 파도의 높이가 다소 낮아졌다.

강도 11의 풍력은 이튿날 아침 7로 기세가 꺾였다. 항해할 만한 날씨다.

 

“김도주는 멕시코에서 정말 잘 도망갔군. 배에서 이런 개고생을 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복 받을 놈은 정말 따로 있군.”

 

선장의 자조 섞인 말.

 

인생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때는 순풍이 불고 있을 때라고 누가 말했던가.

그래서 배는 역풍을 받고 땀 흘리며 가는 보람을 가져야 하나.

그래, 이런 귀한 경험을 ‘감사합니다’로 답하자.

 

남미를 돌아 나왔을 때 배는 비로소 맑은 숨을 쉬며 하와이로 향해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하와이, 좋은 교육프로그램을 준비하고 기다려라.”

 

일기사가 열심히 실린더에 기름을 치면서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