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되게 미안하네

되게 미안하네

오선닥 2011. 12. 29. 13:12

1976년 무렵은 탱커해운시장이 침체에 빠진 시기다.

 

탱커가 남아돌아가니 석유/광석 겸용선이 남아돌아가고,

이어서 광석/잡화 겸용선이 넘치고,

다시 잡화/컨테이너 겸용선이 연쇄적으로 넘쳐,

결국 컨테이너 정기선의 채산이 침체의 늪에 들어갔다.

일시적인 현상일수도 있으나 선주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선원들은 선주의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지만

월급을 반으로 삭둑 잘라 받겠다고 제안할 순 없다.

물오리 생활을 아무나 하나,

선원의 직업이 어떤 것인데, 하면서 …….

 

 

 

 

 

 

되게 미안하네

 

 

무의도식 하는 날이 계속됐다. 되게 미안하다.

아니, 노는 것을 미안하다는 말로 표현해야 하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니까.”

“이유란 게 도대체 뭐야? 실업자는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되는 거 아냐.”

“놀면서 계속 월급을 받으니까. 미안하지.”

“아, 그것 좋은 회사다. 그런 회사 하나 더 없어?”

“많이 있어. 전 세계 곳곳에 깔려 있어.”

 

이상은 대화가 아니고 일항사 송대길 혼자서 하는 독백이다.

 

이란 카그아일란드에서 기름을 가득 싣고 호주 남부 항구 아들레이드에 도착한 이후 배는 한 달을 줄곧 앵커 놓고 대기하고 있다. 그는 월급 받는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한푼도 깎이지 않고 꼬박꼬박 통장에 꽂히는 것이 어쩐지 송구스러워질 정도다. 일본 회사에 진정으로 미안한 감정을 가져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런 중에 어머니는 오히려 월급이 더 올랐다고 기뻐했다. 사실은 환율이 올라서 그런 데도.

 

해운불황은 하루 이만 달러의 용선료를 지불해야 하는 배를 이렇게 꽁꽁 묶어 놓는 것이다.

세계 곳곳에는 화물을 구하지 못해 계선해 있는 배가 부지기수다. 해운 전망을 읽지 못하고 조선소마다 마구 배를 찍어내더니 결국 실업 사태를 맞은 것이다. 일감을 잃은 배들은 세월을 노래하며 카드 짝이나 뒤척이고 있는 꼴이 됐다.

기관실의 엔진 보수나 선체 페인트 작업은 이럴 때가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일주일 만에 작업량은 끝나버렸다.

 

십오만 톤의 기름을 싣고 왔지만 정유회사 측은 한 방울의 기름도 받을 여유가 없다고 태평을 부린다.

정유공장 앞바다에 앵커를 깊숙이 박은 채 기약없이 대기할 판이다.

배도 무료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선저에 다닥다닥 달라붙는 따개비나 해초는 효자손으로도 시원하게 긁어줄 수 없는 신세다.

 

그래도 뭔가 해야 한다.

 

“자, 회의합시다.”

 

선장이 사관들을 회의실로 불러 모았다.

작금의 회사 상황이나 선내 분위기를 봐서 주제가 무거울 수 있다.

그런데 선장은 그게 아니다.

 

"분위기 쇄신을 강구해야 되겠소. 무작정 대기하자니 이게 사람 할 짓이 아녜요. 선내 정비만 할 게 아니라 내일 해변 나들이나 합시다."

 

예상치 못한 선장의 제안에 참석자들은 맞장구로 응수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더니 배도 달리고 싶다고 절규하는 것 같다. 등창 난 환자가 침대를 뛰쳐나오고 싶은 심정이랄까.

 

이튿날 당직자들만 남겨놓고 전 선원이 해변 전복따기에 나섰다. 구명정을 끄집어내려 통선으로 이용했다. 흥분에 젖은 선원들은 구명정 바닥의 플러그 봉입마저 잊었다. 다행히 해면에 내렸을 때 플러그 개방을 발견해 사고는 없었다.

도시락은 선원 수에다 두 개를 더 준비했다. 정유공장의 시설 주임과 경비원이 나들이에 동참하겠다는 것 때문. 실은 그들의 목적이 불법 전복채취를 감시하기 위한 것일 텐데.

 

전복채취는 지정된 해변에서만 허용된다. 채취금지구역은 철조망이 쳐져 있다. 설사 월경하더라도 총부리 겨누는 사람은 없다. 삼팔선 철조망이 아니니까.

전복이 바위나 돌 밑에 정신없이 붙어 있다. 출생지를 잘 택한 것 같다. 현지인들은 전복을 먹지 않아 전복이 도망가거나 숨을 필요가 없다.

깡깡 작업에 쓰는 칼은 전복 따는데 쓰라고 만들어 놓았는가. 담금질된 이후 최상의 용도를 찾은 듯 칼은 전복의 엉덩이를 슬쩍슬쩍 밀면서 영리하게 뜯어낸다.

몇 개 가져간 물통이 다 차자 아예 가마니에 담아 넣었다.

 

보일러실은 종종 세탁물 말리는 곳으로 사용되지만 지금은 세탁물 대신 전복으로 가득 차 있다. 먹다먹다 지치니 전복 굴비를 만들어 두고두고 먹자는 것이다.

 

 

 

  ******

 

며칠 후 주변 국립공원 나들이 나갔을 때 말린 전복이 유용하게 쓰였다. 불고기와 함께 요리하니 이거야말로 상품 요리다. 풍기는 냄새는 현지 호주인들의 코를 사로잡았다. 공원은 졸지에 요리 시식장이 돼 버린 것.

한 호주 아가씨는 전복과 불고기의 조화가 이루는 맛에 감탄하여 가져온 사과를 앞에 내려놓으며 함께 먹자고 했다. 사과는 모두 여덟 개였다.

 

"아이플즈 아잇"

 

뭐라고 말했나? 글쎄, 'Apples Eight' 라고 했을 텐데. 아가씨는 자신의 조상이 영국의 택시기사나 죄수였다는 것을 숨길 필요가 없다는 듯 ‘아이’라는 발음에 악센트를 줬다. 중심도로를 '마인 와이(Main Way)'라고 하는 걸 듣고 여기가 ‘아이’ 나라라는 말인가.

 

해변 소풍은 무료한 선원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줬다. 마른 뼈에 생기를 불어넣었더니 죽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났다는 바이블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세월을 죽이는 데만 신경 썼던 선원들이 세월을 살리는 의미를 알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해변은 도랑치고 가제 잡고, 마당 쓸고 돈 줍는 곳으로 되어갔다.

 

 

시설주임 달리(Daly)가 송대길을 자기 집으로 초대한 것은 소설 지면을 늘리게 한 직접적 원인. 왜냐?

공원에서 사과를 준 그 아가씨를 다시 만나게 됐다는 사실 - 이것은 너무 드라마틱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면 실례다.

 

달리는 송대길에게 상당한 호감을 가졌다.

동양인으로서 핸섬한 외모, 영국 옥스퍼드 발음을 하려고 애쓰는 모습, 매일 오전 아홉 시가 되면 VHF로 육상과 통화하는 근무정신, 전복채취 전에 선원들에게 주의사항을 간결하게 전달하는 리더십 등등.

좋아할 이유가 많았다.

 

그는 미스터 송을 자기 집으로 불러 식사 대접을 했다. 부인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황색 인류를 집안에 불러들였다. 다행히 부인은 손님의 인상에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달리 씨는 문화인답게 그를 박물관으로 안내하기도 하고, 휴일이면 가족과 함께 공원으로 나가 서양인의 문화생활을 보여줬다.

바둑판처럼 잘 계획되고 짜임새 있는 아들레이드 시내는 이 가족을 잘 정돈된 구성원으로 만드는 데 간접적 영향을 준 것처럼 보인다.

 

부인과 딸 셋을 데리고 공원을 거닐 땐 중세기 귀족 나들이를 연상케 한다. 부인이 자비를 베푸는 느낌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뱃살이 약간 접힐 정도의 넉넉한 몸매와 물기 젖은 도톰한 입술은 남녀 모두를 포용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딸 셋은 엄마와 함께 걸을 때 마치 인형이 걸어가는 착각을 유발하기도 한다.

 

다국적기업 쉘 석유회사에 출퇴근하는 것은 달리에게 사교계 인맥을 흡입하는 데 상당한 장점으로 작용했다.

달리가 지역 자선모임에 송대길을 데리고 간 것은 그의 지갑에서 10달러 지폐를 어디에 넣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호감 가는 외국 선원에게 호주의 우월적 사회생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면도 있다.

 

"내니, 코리언 젠틀맨을 소개할게요."

 

아들레이드 시청 영빈관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페리는 송대길을 한 아가씨에게 데리고 가서 소개했다. '코리언 시맨(Korean Seaman)'으로 소개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아가씨가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그녀의 미소가 그의 얼굴과 마주쳤다. 많이 본 얼굴이라는 걸 확신하기 전에 아가씨는 다시 눈웃음을 앞세우고 말을 이었다.

 

"혹시…… 우리 공원에서 만난 적이 없었나요?"

 

그렇다. 공원에서 그녀는 전복을 먹었고 불고기도 먹었다. 불고기에다 전복을 얹어서 먹기도 했다. 한국요리 칭찬도 늘어놓았었다.

그 아가씨였구나.

송대길은 인연이란 이런 것이라고 실감했다.

 

달리 씨 부부는 오히려 자기들이 손님이 된 것처럼 어색해졌다.

 

“두 분은 구면이군요. 이런 행복한 만남이 어디 있나.”

 

달리의 부인 로즈가 더 감탄해마지 않았다. 이런 묘한 상황에서 그녀는 '잘됐다'는 느낌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덧붙였다.

 

“그럼 두 분이 짝이 돼서 좋은 추억 만드세요."

 

파티장이 은은한 불빛으로 변했다.

내니는 능숙하게 송대길의 손을 잡았다.

로마에 왔으니 로마법을 따르라는 듯 그녀의 유도는 적극적이었고, 음악의 리듬에 맞춰 두 사람의 허리가 같이 움직였다. 군대에서 심심풀이로 배워뒀던 춤이 이렇게 긴요하게 써먹힐 줄은? ‘감사합니다’를 마음으로 되풀이하며 그녀의 다리를, 때로는 그녀의 가슴을 열심히 따라 다녔다.

이만 볼트 감전사 지경에 이른 시점은 내니의 귓불이 그의 뺨을 스칠 때였다.

고약한 흥분이 솟았다.

괴물 같은 흥분.

공원에서 바비큐로 구워졌던 불고기와 전복의 냄새 같은 것.

 

테이블에 앉은 달리 부부가 눈치를 챘다. 20대의 두 남녀가 접착제로 붙여놓은 듯 틈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 아가씨의 허리가 휘어져 남자를 더욱 뒤틀리게 만들었다.

 

“내니가 저렇게 열정적인 거 처음 아녀요?"

 

로즈가 부러운 듯, 그리고 염려되는 듯 남편의 반응을 짚었다.

 

황홀한 저녁이었다.

파티 마감시간이 두 남녀를 떼어 놓았다.

송대길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온 달리 부부는 사랑을 물고 있는 개를 떼어놓은 것처럼 무척 미안해했다. 그를 게스트룸에 안내하는 것이 마치 감옥으로 보내는 것 같은 착각까지.

 

“미스터 송, 내일 더 좋은 스케줄을 위해 오늘밤 편히 쉬세요.”

 

로즈는 어린아이 달래 듯 그를 침대 쪽으로 가리켰다.

 

송대길은 저녁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턱이 얼얼하도록 이를 악물었다.

그래도 잠을 청했다.

 

점잖게 잠이 제자리를 잡을 무렵 거실 건넌편에서 희미한 괴성이 들렸다.

 

“…… ! ?”

 

괴성은 마주 다가오는 도플러효과처럼 점점 커졌다.

달리 부부가 열정의 도가니에 빠졌다. 로즈가 잠옷이 아닌 니커보커스를 입은 것은 실수가 아니었다. 옷을 비집고 나온 그녀의 도톰한 뱃살이 남편에겐 밤의 볼륨감으로 느껴졌다. 파티의 열정에 이어 아내 로즈의 의상이 남편 달리의 마음을 뽑아냈다.

 

'미스터 송 미안해!' 

한마디 해줌직 한데 부부는 자기들 일에만 바빴다.

 

 

 

 

 

******

 

아들레이드에 정박한 지 한 달 하고도 이틀이 지났다. 기약 없는 대기는 장기계선과 다름없다.

선원들은 저녁시간에 해변으로 나갔다.

손에는 전복 따는 호미 대신 나무토막 몇 개씩 들려져 있다.

해변에서 캠프파이어를 할 작정이다. 선장의 감회는 남다르다.

 

“캠파이어 진짜 오랜만이네.”

 

선장이 앞장서고 선원들이 줄줄이 따랐다.

나무토막은 모닥불에 쓰일 예정이다.

달리 부부와 내니 그리고 몇몇 이웃주민들도 해변에 나왔다. 초청받은 것이다.

불놀이는 정유회사의 허가 사항으로 선원들에게 베푼 특별한 배려다.

이웃주민들도 땔감을 조금씩 가져왔다. 집수리하다가 남은 나무 조각은 이럴 때 처분하는 것이다.

 

모닥불이 준비되자 선장은 가져온 론손 라이터를 집어 들었다.

 

“파이어!”

 

참석한 주민들은 깜짝 놀랐다. 선장이 권총을 쏘거나 수류탄을 터뜨리는 줄 알았다. 달리 부부도 놀랐고 내니도 놀랐다. 모닥불 지피는 일을 꼭 이런 식(fire)의 영어를 써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눈으로 보는 사람도 많았다.

 

기분파 선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제 술잔을 잡았다.

 

“이항사 술 한 잔 정중하게 부어봐. 현지 주민들 앞에서 건배를 제의해야지.”

 

선장의 잔에 와인이 채워지고 주민들과 선원들의 잔에도 와인이 채워졌다.

타오르는 모닥불의 반사를 받으며 선장은 잔을 높이 들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이 저녁 저의 열정은 불붙었습니다. 캠파이어 동참에 감사합니다. 호주와 한국의 우정을 위해서 건배!”

 

선장의 불(fire)에 대한 애착은 건배사에도 나타났다. “My passion came into fire."라고 했으니 말이다. 일본 배를 타고 있는 선원으로서 일본을 위해 건배를 하지 않은 것은 도리가 아닌지도.

 

와인 잔을 부딪치며 사람들은 담소하고 또 환호했다. 동서양이 함께, 남반부와 북반부가 함께, 육지인과 바다인이 함께 어우러진 자리가 됐다. 원으로 둘러선 자리는 남녀가 뒤섞였다.

내니가 송대길의 옆에 서서 그의 손을 잡았다. 강강술래를 했다면 손목까지 잡았을 것이다. 세 번째 만남이니 어디를 못 잡겠는가.

 

선장은 이런 모임이 좋았다. 불 앞에서 솔직해지는 모습들이.

 

“학교 적도제 요즘도 계속하나? 캠파이어 때 홀랑 벗는 것이 인기였는데. 지금도 4학년 1반장이 벗나?”

 

선장은 옛날 추억을 떠올리며 가장 최근에 졸업한 삼항사를 쳐다봤다.

 

“예, 지금도 그 전통은 남아있습니다. 제가 바로 그 당사자 아닙니까. 당돌한 사이즈 때문에 인기가 좋았습니다.”

 

당돌하긴.

삼항사는 신난다는 듯이 제스처까지 보탰다. 굴대 좋게 생긴 얼굴로 봐서 그의 말이 결코 과장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캠프파이어는 적도제 피날레 순서로 인기 중의 인기였다. 이 전통이 워낙 유명해져 이웃 주민들은 물론 시내 여학생들과 연인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교수 사모님들도 호기심은 마찬가지였다. 결정적인 장면에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도망가지만 끝내 자리를 뜨지 않을뿐더러 찬찬히 쳐다보고 있는 강심장 여성도 있다.

 

선장은 학교 동기인 기관장의 기분을 자극하고픈 충동이 생겼다.

 

“기관장, 우리 호주 나체 해수욕장 한번 가보지 않을래?”

 

기관장의 대답은 쉬웠다.

 

“그러자구. 근데, 거기 가는 사람들은 다 벗어야 하니 오늘 저녁 적도제 프로그램으로 연습해봐야지.”

 

기관장의 말에 분위기가 업 되어갔다. 대화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으나 기분에 사는 인생들은 고삐 풀린 말처럼 분방해졌다.

 

“신종 태권도 시범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삼항사가 윗도리를 벗었다. 왕자 모양의 갈비뼈가 드러났다. 동양 사람은 원래 가슴이 저렇게 근육질인가보다고 호주 여성들은 감탄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바지를 벗었다. 동양 사람들은 원래 종아리가 저렇게 탄탄한가보다고 그녀들은 감탄했다.

팬티를 벗었다. 동양 사람들은 거기까지 저렇게……?

말릴 새도 없었다. 그러나 호주 여성들은 얼굴을 돌리지 않았다. 한국 태권도의 마지막 자세까지 다 보겠다는 듯 눈을 떼지 않았다.

굉장한 여성들.

뭐 슬쩍 피하는 맛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쇼를 하고 있는 삼항사가 멋쩍어졌다.

오직 타이트스커트 속에서 연한 빛깔 스타킹으로 감싸인 내니의 다리와 무릎이 긴장했는지 불빛에 더 탱탱해 보일 따름이다.

 

 

구매자를 차지 못했던 본선의 원유는 결국 하와이로 팔렸다. 호주에 정박한 지 40일 만의 일이다.

 

- 되게 미안하네. -

 

그동안 월급만 축내고 항구에서 대기한 것이 미안한 것은 진심이다. 해변에서 전복 따고 캠프파이어 하며 재밌게 보낸 것은 확실히 미안한 일이다.

내니와의 추억은 적어도 다음 항구 입항까지 생선 비린내처럼 끈질기게 남아있을 것이다.

 

오늘부터 열심히 일하자, 하면서 출항 뱃고동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