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물 위에서 배운다

물 위에서 배운다

오선닥 2011. 12. 7. 00:14

1970년대 중반 선원은 스스로 고달픔을 이겨나갔다.

그런 중에 배움의 욕망도 컸다.

 

 파도에 몸은 시달리고

날짜변경에 잠은 뒤채고

고독에 골통은 멍청해지는

 

그런 생활이 계속되는 중에

한 인간의 생존이 바다 위에 잔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그 인간 일컬어 선원이란다.

 

첩첩의 빙하와 기상이변을 오천만 년 동안 견뎌온

은행나무 역사처럼 모질게 살 수 있는데

뭐 엄살이 심하냐고 누가 말하겠지.

 

몸통이 바위에 닿거나 긁히면 거기서 가지뿌리를 내리는

은행나무의 생존법을 배우면

인간은 결코 낙담할 수 없다고도 주장하겠지.

 

그럼 네가 바다에서 한번 살아 봐, 말하고 싶다.

그럼 내가 살지, 누가 대꾸하고.

돈도 괜찮게 준다는데, 또 옆에서 거드는 자도 있겠지.

 

승선의 스트레스에서 오는 거친 감정은

팽창변을 통해 고온 고압가스를 확 불어버리 듯

마음껏 발산해서

다시 응축기에 모아 식혀버려야지.

미처 식히지 못한 억한 감정일랑

안전밸브를 통해서 불어버리자꾸나.

 

서른 명의 선원은

각기 맡은 분야에 소홀함이 없어야

작은 공동체를 물 위에 계속 띄워 나갈 수 있단다.

다함께 배우면서…….

 

 

 

 

 

 

 

물 위에서 배운다

 

 

 

  *** 헬리콥터를 불러라 ***

 

호주 멜버른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가고 있는 중 응급환자가 발생했다.

하와이를 멀리 옆구리에 두고 지나가는 중에.

의사도 없고 앰뷸런스도 없는 배에서 이보다 더 당황스런 일은 없다.

 

기관실에서 선반작업을 하던 기관원이 날카로운 공구에 찍혀 팔에 중상을 입었다.

흰 뼈가 들어날 정도의 엄청난 부상이다. 벌어진 살 껍질은 급한 대로 삼항사가 투박한 바늘로 몇 뜸을 기워 붙였다. 마취를 하지 않았는데도 아프다는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엄살이나 신음소리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알아서인지

 

연안무선국에 긴급 의료전보를 넣었다. 물론 P&I 수첩의 매뉴얼대로.

혈압이며 맥박이며 수치를 적어 넣고, 상처를 응급 봉접한 사실도 내용에 넣었다.

 

육상 의사의 지시는 환자에게 진정제 주사 한방 놓아둘 것을 강조했다.

주사는 둔부를 사등분해 우상측에 푹 꽂으면 된다. 선박위생교육에서 호박을 앞에 놓고 실습한 대로 찌르면 되는 것이다.

얌전히 찌르는 간호원의 것과는 질이 다르겠지만.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헬리콥터가 날아왔다.

헬리콥터로 환자를 이송하는 과정은 전투상황과 다름없다. 사고는 새벽에 일어났지만 헬리콥터 이송은 오전 밝은 시간대에 이뤄져 그나마 다행이다.

 

사전에 선박과 헬리콥터가 랑데부 장소를 정해 놓고 달렸다. 헬리콥터 조종사의 요청에 따라 침로도 맞췄다.

H 표시 구역에 장애물도 치우고.

 

“보슨, 소화호스와 이동소화기도 준비해주세요.”

 

일항사 송대길이 작업 지시를 하자 갑판장은 민첩하게 행동했다.

‘갑판장’이라는 좋은 우리말이 있는데 왜 ‘보슨(Bosun)’이라는 영어로 호칭하느냐고?

정직하게 말하자면 호칭에 ‘님’을 붙이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서.

업무상 서열이라는 불편한 진실이 우리를 진짜 불편하게 만드는구먼.

 

사실 'Bosun'은 ‘Boatswain’에서 나온 말이다. 뜻 자체는 ‘배의 젊은이’를 의미하지만 현실의 갑판장은 나이가 충분히 들어 어원에서 이탈한 것처럼 보인다. 17세기 세익스피어가 그의 작품 ‘폭풍우’에서 처음 보슨을 썼을 땐 젊은이를 의미했을는지 모르지만.

 

“랜딩이 아닌 윈칭 작업한다니까 그에 따라 준비하라.”

 

선교의 선장이 헬리콥터 파일럿과 교신하면서 갑판 현장에 있는 일항사에게 오더를 내린다.

랜딩(Landing) 대신 윈칭(Winching)을 하는 것이므로 갑판에 착륙하지 않고 헬리콥터가 떠 있는 채로 환자를 끌어올린다는 뜻이다.

 

송대길은 노랑 깃발로 신호를 하면서 헬리콥터를 H 구역으로 유도했다.

배의 롤링에도 헬리콥터 파일럿의 조종 기술은 능숙하다.

헬리콥터 날개 밑의 바람이 갑판을 쓸어내자 밑의 선원들이 옆으로 물러선다.

 

환자는 들것에 옮겨져 헬리콥터 문짝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천사가 내려준 두레박에 담겨 올리는 것처럼, 혹은 독수리 발에 낚아 채여 공중으로 들린 것처럼 환자는 그렇게 해서 이송됐다. 환자의 허리는 남자 대원에게 잡히고, 겨드랑은 여자 대원에게 잡히면서.

 

 

선내에 꽉 차있던 팽팽한 긴장이 엿가락 늘어지듯 풀렸다.

하지만 선장은 여전히 평정을 얻지 못했다.

 

"일항사, 헬리콥터의 간호원이 환자를 잘 데리고 갈까?"

 

선장은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고 있었다.

 

"선장님, 그 여자는 미국 해안경비대 대원예요. 훈련이 잘 돼 있을 겁니다. 배가 육지에서 멀리 있었더라면 큰일 날 뻔 했어요."

 

“그러게 말이다. 환자도 복을 타고 나야 하는 거야. 그런데 삼항사의 바느질 솜씨가 괜찮았지?”

 

“요즘은 해기연수원 실습장에서 쇠가죽 갖다 놓고 실습한답니다. 다들 대충은 할 줄 알아요.”

 

“그래도 평생 안 써먹길 바랬는데…. 실습은 실습으로 끝나야지. 사람 간 떨어질 뻔 했잖아.”

 

환자를 헬리콥터에 실어 보내 놓고도 선장은 좌불안석이다.

밤잠을 설친 일곱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에도 없다.

 

송대길은 P&I 보험 보상을 위해 보고서 작성에 들어갔다.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Statement of Injury"(부상 보고서)

I regret to report ……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그리고

“Statement of Deviation"(이로 보고서)

 

이번 사고는 랑데부를 위해 하와이 쪽으로 이로(離路)한 거리만 100해리 이상이 된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同價紅裳)요 과붓집 머슴살이라는데, 리포트를 잘 작성해야지. 지도 그림을 넣어서 보기 좋게 만들면 족발 부장은 감탄을 넘어 헷가닥 하겠지.

 

지난번 리포트에서도 비슷한 심리작전이 통했다.

형식을 그럴듯하게 포장했더니 먹혀들어가더라고.

일본 족발은 겉모양도 좋아하니까.

기모노의 앞뒤에 이것저것 갖다 붙여놓은 걸 봤지. 그 정도야. 누군가 보기 좋다 하면 코닥지도 붙여놓을 거야.

 

“송상, 리포트 참 좋았어요, 보험 청구에 유익했어요.”

 

일본 직원이 그렇게 칭찬할 때도 송대길은 으쓱해 하지 않았다. 칭찬을 사람 부리는 데 써 먹는 것도 싫었고, 마지막에 돈으로 연결시키는 것도 싫었다.

 

잠을 쫓으며 작성한 보고서는 LA에 도착해 우송된다. 일주일 후면 일본 본사 직원의 책상 위에 놓여질 것이다.

 

약소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근본에 없는 아양도 부려야 하는 것.

내 한몸 희생하면 우리 한국선원의 몸값은 올라가게 된다.

다소 슬프긴 해도 반전의 기회를 노려야 한다. 한국도 볕들 날 있을 거라고.

 

 

 

*** 별과 친해져라 ***

 

지구의 평균둘레는 40,000km라고 한다.

이것을 360도로 나누고 다시 60분으로 나누면 1분의 길이가 1852m가 된다. 이것이 바로 1해리다.

 

선박이나 항공기에서 각도와 거리를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는 습관은 실무상 편리함에서 출발했다. 여기에 시간까지 끌어들여 비슷한 범주로 몰아넣으면 더욱 편리하다.

 

이 모두가 지구가 둥글다는 점에 기초하고 있다. 또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은 시간 개념에 전용된다.

 

천측에만 의존해서 배나 비행기의 위치를 내던 시대에는 이렇게 공통으로 정리해둔 개념이 아주 유익했다.

특정 시각에 별의 고도와 방위를 재면 한 개의 위치선(位置線)이 만들어진다. 두 개의 위치선이 교차하면 항해자의 위치가 나온다. 세 개 이상의 위치선을 구했다면 위치의 정확성을 검정할 수 있다.

 

하늘에 떠 있는 별이 어떤 시각에, 어떤 방위에서, 어떤 고도로 보인다는 것을 표로 정리해둔 것이 천측력(天測歷). 구면삼각 이론에 근거했단다.

그렇구나.

머리 좋은 수학자나 과학자는 우리 같은 우둔한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네.

 

별은 너무 밝아도 천측의 정확도가 떨어진다. 별은 선명하면서 작은 게 좋고, 수평선은 뚜렷한 것이 오차를 줄인다.

태양은 너무 밝으므로 차광렌즈를 붙여 측정한다.

달도 천측에 이용되나 음력 날짜에 따라 찌그러짐이 있어 보정이 필요하다.

 

 

별자리는 원시항해시대부터 유용하게 이용돼 왔다.

그 중에서도 북극성과 남십자성은 예로부터 항해자의 안내자로 친해왔다.

 

북극에 위치해 있는 별자리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계절에 따라 위치가 변한다. 북극성은 일년 내내 볼 수 있으나 고도가 낮을 때는 잘 보이지 않는다.

 

북극성은 우주를 연상시킨다고 누가 말하기도 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가수는 북극성에서 노래가사의 영감을 얻기도.

비틀즈도 그 부류에 속하나?

 

부서진 별빛이 내 앞에서 춤을 추네

수많은 눈동자처럼

자꾸자꾸 나를 불러요

우주를 가로질러

끊임없이 굽이치는 온갖 생각들

우체통 안의 바람처럼

장님이 넘어져 구르는데도

우주를 가로질러 길을 찾고 있네

 

 

남십자성은 남쪽에 있는 별자리다. 네 개의 밝은 별로 이루어져있다. 十자형을 이루고 있는 별 중 긴 십자의 위 별에서 아래 별로 직선을 그으면, 그 방향이 천구의 남극을 가리키므로, 남십자성은 근세 항해시대 이후 남쪽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의 중요한 표적이었다.

월남 갔다 온 군인들은 남십자성만 봐도 베트남 전장을 생각하게 된다.

 

밤하늘 쳐다보며 꿈꾸었지 나의 남십자성

가로등 사이로 너의 미소가 한밤을 헤치고

도시의 불빛 가로지르며 날 따라 오지

이 하늘에 희망이 떠 있고

따뜻한 습기 내 몸 감쌀 때 너의 뜨거운 손길

야자수 늘어진 푸른 밤

내 뺨 적실 때 그것은 너의 눈길

 

노래가사 같기도 하고 자작시 같기도 하다.

남십자성은 바다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낭만을 선사한다.

호치민시티가 아닌 사이공이었던 시절, 이 항구로 가는 항로의 길잡이가 되었던 남십자성은 참으로 찬란했다. 새벽이슬이 떨어질 것같이 영롱했다.

항구에 도착했을 때 미스 사이공의 아오자이도 눈부셨다.

 

 

별자리를 찾기에 사용되는 멀티천구.

지구의 자전과 공전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별자리를 입체시공간에서 볼 수 있는 실제 하늘 그대로의 별자리 보기판이다.

낮 시간 보이지 않는 별도 지금쯤 어디에 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것은 멀티천구 내에 위도에 맞게 지평면을 설정할 수 있도록 원판 레일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태양은 천구상을 하루에 한 바퀴 회전한다. 정확히는 361도.

밤하늘의 별들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의해 일주운동과 연주운동을 한다. 같은 날에도 1시간에 약 15° 정도 동에서 서로 이동하고, 같은 시각이라도 하루가 지나면 약 1°씩 서로 이동한다.

 

흔히 계절별 별자리라 부르는 것은 그 계절의 저녁 9시경에 잘 보이는 별자리를 칭한다.

항해사들이 별자리를 찾을 때는 길잡이 별이나 별자리를 이용하곤 한다. 계절과 시각에 잘 보이는 밝은 별이나 쉽게 확인되는 별자리를 먼저 찾고 다른 별자리는 길잡이 별자리를 이용해 찾는 것이 편리하다.

 

별은 길의 안내자이면서 사랑의 동반자이다.

 

 

 

 

*** 선위를 확인하라 ***

 

선박의 정오 위치를 위해 삼항사가 태양을 천측했다.

오전 당직 중 매시간 측정한 위치선을 전위시켜 한 곳으로 몰아 놓으니 대충 정오위치가 만들어졌다.

선장이 선교에 올라와서 위치를 점검해 봤다.

 

“삼항사 크로노미터 체크했어?”

 

선장은 삼항사가 측정해 놓은 정오 위치가 얼마나 정확한지를 하나씩 체크해나가고 싶었다.

 

“여덟시에 시보 보정하고 태엽도 감았습니다.”

 

“그럼 시계는 별 이상이 없겠군. 4초에 1해리 정도 차이나는 건 알고 있겠지? 크로노미터는 손목시계와는 다르다구. 그만큼 우리 항해사들한텐 중요한 거야.”

 

크로노미터 태엽은 두 종류의 금속으로 돼 있어 온도의 영향을 적게 받도록 만들어져 있다. 처음 만들어진 18세기 중반에도 하루에 0.3초의 오차가 있었을 뿐이다. 배의 동요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짐벌장치로 돼 있다. 그리니치 평균시(GMT)를 가리킨다.

오늘날엔 태엽식 대신 수정식 전자시계가 사용된다.

 

그런데 4초에 1해리 차이란 무슨 뜻인가.

아, 지구가 하루 24시간에 한 바퀴 도니까, 1시간엔 15도 돌고 1초엔 1/4해리 돈다는 뜻이군. 삼항사는 스스로 머리가 별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또 한 가지 체크를 더 해보자. 수평선은 뚜렷했고, 섹스탄트는 수직으로 바로 잡았어?”

 

“수평선은 다소 희미했으나 섹스탄트는 수직으로 잘 잡았습니다.”

 

뻔한 질문이었나.

 

"눈높이 보정은 했겠지?”

 

“브리지 높이 20미터에다 제 키높이 1.8미터만 참작했습니다.”

 

은근히 키가 크다는 걸 강조하는군, 선장은 웃었다.

웃음이 비집고 나오려고 해서 삼항사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선장은 수험생을 앞에 세워두고 면접하듯 눈앞에 있는 섹스탄트(六分儀)를 가리켰다.,

 

“섹스탄트의 어떤 상태에서 스톱워치를 눌렀나?”

 

“섹스탄트의 호와 수평선이 접선됐을 때 눌렀습니다.”

 

“알고 있군. 그런데 태양이 너무 밝아 눈이 부시지 않았어?”

 

“그래서 차광렌즈를 세 개나 끼웠습니다.”

 

젊은 친구가 제법 똑똑하다. 당직을 맡겨도 괜찮겠다는 믿음이 선장의 마음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젠 방위 측정에 대해서 물어볼 차례다.

 

“방위각엔 오차가 없었겠지?”

 

삼항사는 오차가 없을 거라고 대답했다. 반 년 전 선박 정기검사 때 선교 양현에 있는 리피터(Repeater)의 방위를 자이로컴퍼스(Gyrocompass)와 오차수정을 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쯤 해서 자이로컴퍼스에 대해서 언급할 순서.

자이로컴퍼스는 자이로스코프의 원리를 이용해서 만든 것으로, 지구자전에 의해서 항상 진북(眞北)을 가리키도록 고안한 장치이다.

원리는 팽이를 생각하면 된다. 돌고 있는 팽이에 손가락을 대면 저항하는 힘이 느껴지면서 회전축과 직각 방향으로 움직이려고 한다. 자전과 공전을 하는 지구는 우주에 매달려 있는 일종의 거대한 팽이로 생각된다.

실제 지구자전에 의하여 편심에 힘이 가해져서 회전축이 움직이고, 입체로 작용하여 북쪽을 가리킨다.

 

팽이가 공중에서 돌 수 있도록 버팀대로 받쳐놓은 것이 바로 자이로스코프다. 그 자이로스코프는 두 가지 성질이 있다. 그것은 방향을 유지하려는 성질과 회전을 바꾸기 위해 가하는 힘에 직각방향으로 움직이려는 성질이다. 이런 성질 때문에 항법장치나 안전장치 등에 널리 이용된다.

 

“여담이지만 자이로컴퍼스가 있으면 자기컴퍼스는 필요 없을 텐데 왜 법정비품으로 지정했을까?”

 

“선장님, 자이로컴퍼스가 고장 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좀 원시적이지만 비상용으로 자기컴퍼스를 써야 하지 않겠어요. 지난번 배에서는 자이로의 편심이 잘못돼 작동이 안 된 적이 있었죠. 결국 부근을 항해하는 배와 연락해서 위치 신세를 졌죠.”

 

그렇다. 비상용이 필요하다. 차에는 스페어타이어가 있고, 배에는 스페어파트(Spare part)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삼항사, 지구가 지자기 역할을 한다는 게 궁금하질 않아? 북쪽을 가리키는 것도 그렇고…….”

 

“선장님, 그건 제가 책에서 봤는데요, 지구 내핵에 금속 결정들이 남북으로 정렬돼 있다더군요. 지구 중심까지 송곳으로 뚫어볼 수도 없고. 그냥 그런 줄 알고 있습니다.”

 

삼항사가 내용을 좀 알고 있긴 하는 것 같다.

현재까지 시추공이 뚫고 들어간 기록은 12킬로미터다. 지구 반지름 6360킬로미터의 2%에 불과하다.

지구 중심부에는 달 크기의 쇳덩어리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철과 니켈이 4대 1로 구성된 고체라고 하던가. 대기 중 질소와 산소의 비율과 같은 것이 흥미롭다.

내핵의 외곽은 화성 크기의 외핵이 둘러싸고 있다. 철과 니켈이 녹아서 물처럼 흐르는 영역이다. 외핵은 지구의 자전에 따라 회전하고 온도 차에 따라 대류하면서 지구를 둘러싼 자기장을 만들어낸다는 것.

삼항사가 더 아는 체를 한다.

 

“꿀벌이나 바다거북, 비둘기 등이 둥지를 찾아가는 것도 지구의 나침반 역할 때문이라고 하던데요.”

 

“넌 술 마셨을 땐 자기 방도 제대로 찾아가지 못하더니 방향을 찾는 방법은 잘 알고 있군. 이항사로 진급하는 데 무리 없겠다.”

 

“선장님 방금 하신 말씀 취중이 아니라는 걸 아시죠. 부탁합니다.”

 

아, 이건 부도낼 일이 아니다.

선장의 고민이 하나 더 추가된 셈.

 

“알았어. 자이로가 2만 회전 이상 돌아가야 북쪽을 잘 가리키듯 지금처럼 열심히 업무에 피치를 올려. 그래야 나도 약속을 지키는 거여.”

 

삼항사가 끓여온 커피를 정답게 마시는 두 사람.

누가 옆에서 봤으면 부자간 같다고 했을 거다.

 

 

 

 

 

*** 지구 둘레를 재보라 ***

 

호기심 많은 송대길.

자신이 16세기 사람이라면 세계일주 항해를 어떻게 계획했을까. 스스로 자문해봤다.

마젤란은 지구 한 바퀴를 3만 킬로미터로 예상하고 항해계획을 세웠다. 그 거리가 어떤 근거에서인지는 자세히 모른다.

 

그런데 2000년 전 그리스 과학자가 잰 지구 둘레는 지금의 4만 킬로미터보다 6천 킬로미터밖에 길지 않았다고 한다. 두 도시 간에 거리를 재고, 각 도시에서 긴 막대기를 세워 그림자의 각도를 쟀다. 각도의 차이가 두 지점간의 지구 중심각과 같다는 생각은 지혜로운 착상이니 말이다.

 

“예수 탄생 무렵에 그런 기발한 착안을 했는데, 지금 내가 검정해 보는 것쯤이야…….”

 

호기심이 발동한 송대길은 군대 친구였던 한 어선의 일항사에게 SSB로 연락했다.

그 친구는 지금 한창 북태평양 어장에서 열심히 오징어를 잡고 있다. 경도 160도 부근이라나.

 

송대길이 탄 선박은 일본을 출항해 미국으로 가고 있다. 경도 160도를 통과할 무렵 SSB로 연락하면 각자 막대기의 그림자 각도를 재기로 했다.

 

“막대기가 높으면 높을수록 좋아. 선수마스트도 괜찮고, 탑브리지 레이더마스트도 상관없어. 단지 그림자가 편편하게 나와야 해. 그쪽 날씨는 괜찮지?”

 

친구가 막대기 길이를 얼마로 하느냐고 물었을 때 교신한 내용이다.

 

더디어 경도 160도에 이르렀을 때 송대길은 친구에게 연락하고 5미터 막대기의 그림자 각도를 측정했다. 어선에서는 마스트의 그림자를 이용했다고 한다.

어선측에서 잰 것과 6도의 차이가 났다. 두 선박 간은 대략 하루거리인 365해리로 측정됐다.

 

365해리 x 360/6도 = 21,900해리

 

말하자면 40,559킬로미터의 지구 둘레가 계산된 것이다. 실제 지구둘레 4만 킬로와 559킬로의 차이가 나온 것. 만족한 실험이다.

 

아, 그렇구나. 이천년 전의 측정지점이 동일한 자오선에 있었더라면 정확했었겠구나. 성공적인 실험 완수 기념으로 맥주 한 깡씩 따자.

 

“띵호와!”

 

둘은 SSB 무선전화를 사이에 두고 어린애같이 즐거워했다.

이것도 재미라고 해야 하나.

 

 

 

   

*** 시차를 극복하라 ***

 

새벽 당직 조타수가 선교에 올라온 지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시종 눈을 비비고 있다. 간밤에 두 시간도 제대로 못 잤다는 것이다.

하루 30분씩 당겨지는 시차는 가혹한 고문과도 같다.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겨우 잠을 붙였는데 곧 흔들어 깨우니.

 

지구 동쪽으로 항해할 때는 시간을 잡아당겨 늦은 시간에 잠들지만, 반대로 서쪽으로 갈 때는 시간이 밀려 이른 시간에 눈꺼풀이 내려앉아 잠에 곯아떨어지곤 한다.

 

비행기로 여행하는 사람들의 고민은 더 심할 것이다. 반 일 만에 뉴욕에 도착하면 밤낮이 바뀌는 것이니. 갑작스런 자오선 경도의 변화로 생기는 시차 때문이다.

비행기가 적도를 따라 900해리 비행했다면 경도가 15도 바뀌어서 시차는 1시간이겠지만, 위도 45도 상을 같은 거리 비행했다면 2시간 정도의 시차가 발생할 것이다. 극단적으로 북극점 부근에서 항행한다면 작은 거리의 항해에도 하루의 시차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여름과 겨울에는 각각 백야와 흑야를 경험하므로 오히려 시차를 실감하지 않을 수도.

 

“신혼여행은 알래스카로 가야지. 여름이 아닌 겨울에. 흑야월성(黑夜月星)을 경험하면서.”

 

누군가가 했던 이야기다.

 

비행기가 서쪽으로 가면 떠 있는 해의 위치가 똑 같을 때가 있다. 지구와 함께 돌기 때문이다. 시간이 정체해 있는 것을 느낀다.

 

 

 

*** 전파항해를 배우라 ***

 

날씨가 흐리거나 야간에 천측이 어려우면 선박의 위치를 어떻게 확인하나.

사람들의 연구는 전자장비로 관심을 돌렸다. 로란(LORAN)이나 데카, 오메가항법 등의 전자장비로 전천후 24시간 선박위치를 측정하는 것.

 

한 쌍의 송신국으로부터 주파수가 같은 펄스파를 수신하여 그 펄스파의 시간차를 측정하여 테이블의 데이터를 보고 위치선을 얻는 방법들이다.

 

로란은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미국에서 발달하여 항공기 유도에 실용화됐다. 이후 선박에도 많이 이용되었으나 나중에 정밀도가 향상된 초장파대(10kHz)의 전파를 이용한 오메가 항법이 보급됨으로 인해서 위치측정이 보다 정밀해졌다.

 

그러나 기상이나 지역 등 여건에 따라 1000해리 이상의 원거리에서는 정밀도가 떨어져 오히려 수평선을 보고 육분의로 천체의 고도를 측정해서 위치를 내는 것이 정확할 때가 많다.

 

항해사 중에 가장 근무경력이 많은 일항사로 하여금 천측시간인 새벽과 초저녁에 당직시간을 배정한 것은 지혜로운 생각이다. 전자위치측정이 제대로 개발되지 않았던 시대에는 천체측정은 절대적인 최우선 업무였으니까.

콜럼버스가 카르비안 섬을 인도로, 마젤란이 크리스토퍼강을 마젤란해협으로 착각한 것도 위치 측정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내 섹스탄트엔 손대지 마.”

 

선장이 항해사들에게 당부할 정도로 육분의를 애지중지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항해사들의 위치 측정에 대한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장치가 더디어 개발됐다.

인공위성을 이용하는 위성위치확인장치(GPS: Global Positioning System).

어느 지역에서든 항상 4개 이상의 위성으로부터 전파를 수신함으로써 3차원 위치측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GPS도 단점이 있다. 악천후나 전파장애 등 외계(外界)의 영향으로 위치측정이 불가능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때 관성항법이 유용하다. 특히 위치를 자주 확인해야 하는 항공기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가속도계와 자이로를 조합하여 위치를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관성항법은 측정한 가속도를 기초로 자신의 위치를 구하는 항법으로 3차원의 가속도를 측정하는 가속도계 및 그 측정된 가속도로부터 속도, 이동거리 등을 계산하는 컴퓨터로 만들어진 장치를 이용하는 위치측정법.

 

종래의 천문항법이나 지문항법, 전파항법, 위성항법과는 달리, 외부로부터의 도움이 필요 없기 때문에 악천후나 전파장애 때도 단시간에 현재위치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가속도는 어떻게 측정하나.

최근에는 레이저광선의 도플러효과를 이용하여 항공기의 가속도를 알아내는 장치도 개발되고 있다. 종전의 자이로를 사용하던 것에 비교하면 측정에 시간이 짧고 가격도 싸다는 이점이 있다.

 

인간의 기술은 어디까지 발전하려나.

 

 

 

   

*** 레이더를 신주로 모셔라 ***

 

“이따가 항해사들 모두 레이더실에 모이도록 해.”

 

선장이 일항사에게 내린 지시사항이다.

이상하다. 갑자기 레이더실로?

선장이 오늘 항해사들에게 레이더 교육을 시키려나?

아니, 우리 선장님은 레이더 지식이 그다지 정밀하지 않으신데.

그러면 기합주실 일이 있나.

송대길은 머릿속에 온갖 가정법을 널어놓고 추측해 보았다.

 

“레이더실에서 고사를 좀 지내야겠어. 마그네트론이 빈번하게 펑펑 터져버리니. 레이더 한 대는 이미 구워먹었으니 나머지 한 대라도 살려야지.”

 

선장은 잠시 뜸을 들이고,

 

“돼지머리는 하나 남은 게 있을 거야. 사주장한테 확인해서 고사지낼 준비하게나.”

 

말을 맺었다.

 

이제 의문이 풀렸다. 기계귀신의 분노를 풀어줘야 된다는 것.

지난 항차 짙은 안개 속에서 일본 내해를 항해할 때 레이더 두 개 모두 고장이 나버렸다. 수로에 안개가 솜뭉치처럼 깔려 있어서 할 수 없이 배를 세웠다. 그리고 앵커를 꽂고 안개가 걷히기를 다섯 시간이나 기다렸다.

 

안개 속을 항해하는 중 갑자기 몇십 미터 앞에 섬이 보이고, 심지어 몇 미터 옆으로 배가 지나가곤 해서 머리끝이 쭈빗쭈빗했다. 충돌 일보 직전이었다.

장님 지팡이 역할을 하는 레이더가 고장 났으니 그런 경험까지.

 

육상물체를 전자신호로 탐지하여 전파의 도달 시간으로 거리를 측정해주는 레이더, 연안항해 시엔 필수품이다. 선장이 레이더를 신주 모시듯 하는 건 이유 있는 조치.

 

선장은 레이더 고장이 전적으로 자기 탓이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죄의식까지 느끼고 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언젠가 인간으로서 몹쓸 짓을 해서 마귀가 자신을 괴롭힌다는 것. 잦은 레이더 고장과 중환자 발생 등은 그의 그러한 죄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그 몹쓸 짓은 이렇게 기억된다.

 

배는 뉴욕항에 입항했다. 허드슨강이 휘감는 맨허턴 시내에 있는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 올라가 바벨탑의 공포를 느껴봤고, 그리고 부근 센트럴파크 공원을 찾았다.

긴 사각형으로 된 공원은 뉴욕 중앙 금싸라기 땅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뉴욕 사람들에게는 금사라기 휴식을 제공하는 곳이다.

 

공원 한 모퉁이에 놓인 대리석판 주위에 웬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가운데에는 한 젊은 여성이 앉아 있었고, 그녀 앞에는 동전이 쌓이고 있었다.

세상의 뭇 남성들이 여기에 다 모인 것 같았다.

 

한 남성이 25센트 동전 한 닢을 그녀 앞에 놓았다.

 

“댕큐!”

 

감사하며 여자는 스커트를 올렸다. 남성은 점잖게 고개를 숙여 스커트 밑으로 그의 얼굴을 밀어 넣었다.

 

또 다른 남성이 50센트 동전 한 닢을 그녀 앞에 놓았다.

 

“댕큐, 베리 머치!”

 

역시 감사하며 그녀는 스커트를 더 많이 올렸다. 남성은 고개를 숙여 스커트 밑으로 얼굴을 더 깊숙이 밀어 넣었다.

 

두 번째 남성이 다름 아닌 선장이었다. 그는 여자의 얼굴을 찬찬히, 그리고 몸매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비극이다’

그녀에겐 한 쪽 다리가 없었다. 예쁜 얼굴이 다리 불구를 지나쳐가게 했을 뿐이다.

우울한 기분을 안고 그날 공원구경은 그걸로 끝났다.

 

마음의 죄가 몸의 죄보다 더 크다며 선장은 뉘우쳤으나 깊이 자리 잡은 죄의식을 씻지 못했다. 귀신이 화를 풀지 못해 자기를 괴롭히고 자신이 승선하고 있는 배까지 골탕 먹인다고 생각했다.

레이더 귀신이 돼지머리를 접수하고 화를 풀어줄 것을 그는 원했다.

고사를 정성들여 지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저기압을 탐구하라 ***

 

푸른 하늘 푸른 바다 한 곳에 이은 곳

흰 구름 뭉게뭉게 수평선에 솟을 때

돛단배 물결 위에 두둥실 떠난다

가자가자 희망봉을 청춘의 꿈이다

바다로 가세 바다로 가세

새나라 위하여 태극기 들고

오 물결은 출렁출렁 어기여차 배 띄워라

 

해군이나 해병대는 바다 훈련을 나갈 때 이 노래를 부르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러나 우리 배는 밤새 심하게 요동쳤다. 푸른 바다가 시커먼 바다로 바뀌었다.

잠을 청하던 선원들이 침상에서 내동댕이치듯 바닥으로 떨어지고, 식당의 의자는 나뒹굴어 벽과 박치기하기 시작했다. 상갑판 선실 문의 잠금 고리가 젖히고 파도가 밀쳐 들어왔다. 순식간에 선실은 물세례를 받고 통로에 서 있던 선원은 생쥐가 됐다.

 

선수 방향을 조정하여 극심한 롤링을 피하자 이제는 피칭으로 선체가 말을 타기 시작한다. 그래도 자세를 잡고 갑판 외부 수밀문을 닫을 수 있어서 조금은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하늘과 바다가 거꾸로 되는 순간이 시시때때로 느껴진다.

중심(重心)과 부심(浮心)의 위치를 알고자 하는 노력은 무의미하다. 배가 평형상태에서 부력작용선과 기울었을 때의 부력작용선이 교차하는 경심(傾心)의 위치를 생각해볼 겨를이 없다. 부심이 중심(重心) 아래에 있어 복원력을 상실할 거라는 두려움이 아직 현실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생명은 참으로 피아노 줄만큼이나 질겼다

사지에서 벗어난 선원들은 선교에 모였다. 바다를 내려다보니 장대만했던 파도는 온데간데없고 물살이 배 허리를 툭툭 치고 있었다.

 

“어제 저기압 경험해보니 어때? 혼쭐났지?”

 

선장의 질문에 삼항사는 머뭇거리지 않는다.

 

“승선경력 이 년 동안 그런 파도는 처음예요. 제 방 스커틀이 박살나는 줄 알았습니다.”

 

다들 동감했다. 승선경력 이십 년의 기관장도 그렇게 센 파도는 처음 봤다고 했으니까.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기회로 선장은 기상에 대해서 더 말하고 싶어 한다.

 

“저기압의 일생은…….”

서두를 꺼내고는 기상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온대저기압은 중위도에서 발생해서 북동쪽으로 비스듬히 진행하다가 알류산열도 부근을 지나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것으로 생을 마감하지. 뭐 베링해가 저기압의 공동묘지나 되는 것처럼…….”

그리고 계속해서,

“온대저기압은 항상 두 개의 전선을 동반하지. 앞쪽에 온난전선, 뒤쪽에 한랭전선 말일세. 이것이 전선을 동반하지 않는 열대저기압과 다른 점이라 할 수 있지.”

하면서 잠시 멈췄다.

 

이 틈에 일기사가 질문을 갖고 끼어들었다.

“온대저기압이 전선을 동반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열대저기압의 발생지는 적도 부근인데 거기엔 따뜻한 기단 하나밖에 없으므로 전선이 만들어지지 않지. 원래 전선이란 게 따뜻한 기단과 찬 기단이 만났을 때 형성되는 것이니까. 중위도는 더운 공기와 찬 공기가 만나는 곳이라서 온대저기압은 전선을 동반하는 것이고.”

 

듣는 자들은 알아들을지어다. 고개를 갸우뚱한 자가 있었지만 학력고사 준비도 아니니 그냥 넘어갔다.

이번엔, 언제나 순간 포착을 잘하는 삼기사가 매서운 호기심을 보였다.

 

“기상도를 보면 한랭전선이 항상 온난전선 뒤따라가다가 추월하는데 어떻게 설명하시렵니까?”

 

선장은 뜸을 들이고 대답에 들어갔다.

 

“예리한 질문으로 받아들이겠네. 그건 지구가 그렇게 돼먹어서 그렇지. 고위도로 갈수록 추워지는 것 말일세. 그리고 편서풍으로 인해 저기압은 동쪽으로 진행하고.”

그리고,

“편서풍은 왜 부느냐고 물으면 지구자전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자꾸 따져 들어가면 나도 미천 바닥나버려. 내가 항해사지 지구과학자는 아니잖아.”

 

“이왕 시작한 강의니 계속해 봐요.”

 

선배 기관장의 개입에 선장은 못이기는 체 이어간다.

 

“두 전선의 사이, 즉 남쪽에는 더운 공기가 있고, 바깥, 즉 북쪽에는 찬 공기가 있으므로 기온과 압력을 측정하면 각 전선의 통과여부를 알 수 있지. 찬 공기의 기온은 낮으나 기압은 높고, 더운 공기의 기온은 높으나 기압이 낮으므로 판별이 되는 것이라고.”

 

선장의 설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자 삼항사가 아껴놓은 질문을 한다.

 

“좀 어리석은 질문인지 모르지만, 저기압에서 기상이 나쁜 이유는 뭐죠? 저희 할머니는 날씨만 흐리면 관절이 쑤신다고 해요.”

 

아니, 가장 현명한 질문에 해당한다.

 

“주위에서 몰려든 공기가 오도갈 데가 없어 하늘로 치솟으니까 그렇지. 공기의 교란 때문이라고 할까. 저기압 때 통증은 기압이나 호르몬의 불균형? 이런 건 의사한테 물어봐야지.”

 

폭풍이 지나간 후 선내 분위기는 저기압에서 탈피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