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소설 '말씀'

소설 '말씀'

오선닥 2017. 10. 10. 16:33

'더 세월'을 연재하려고 했으나

자료를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려

막간을 이용해서 10년 전에 써뒀던

소설 '말씀'을 게재합니다.

작은 책 한 권의 분량이므로

관심 있는 강사 분의 글만 읽으십시오.

곧 '더 세월'로 돌아오겠습니다.

(이 글은 소망교회 홈페이지에는 없습니다.

오로지 오션닥만 보관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7년 10월 1일에서 7일까지 진행된

소망교회 창립30주년 기념행사에서

강사 분들의 특강 내용을 소설로 꾸며 여기에 게재합니다.

참석여부를 불문하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소설 “말씀”

                           

                         

 목차


1. 하나님의 집

 

2. 소망교회 30주년을 맞이하여 - 김지철(소망교회 담임목사)

 

3. 예수님께 길을 묻다  - 맹정주(강남구청장)


4. 시대정신, 비전 그리고 새로운 리더십 - 이종구(국회의원)


5. 미래를 여는 리더십 - 이배용(이화여대총장)

 

6. 한반도 평화, 교회 그리고 리더십 - 윤영관(전 외무부장관)

 

7. 나의 신앙과 우리사회의 과제 - 정몽준(국회의원, 대한축구협회장)

 

8. 나의 후원자 되시는 하나님- 정종철(개그맨)

 

9. 신랑되신 예수님과 나 - 한혜진(탤런트)

 

10. 어머니의 기도 - 이명박(대통령후보)

 

11. 나의 꿈 나의 삶 - 이종철(삼성서울병원장)


12. 선교사의 사명 - 곽선희(소망교회 원로목사)

 

13. 교회의 비밀 - 김삼환(명성교회 담임목사)

 

14. 내려놓음 - 이용규(몽골 선교사)


15. 성령이 충만한 교회 - 하용조(온누리교회 담임목사)


16. 영생의 말씀이 있는 교회 -곽선희(소망교회 원로목사)






1. 하나님의 집






  서울 하고도 강남의 압구정 동네에 위치한 ‘하나님의 집’은 창립 이후 지금까지 많은 영혼을 구원해 왔다. 혹자는 7만 명이라 하고, 혹자는 보수적으로 5만 명이라고도 하면서.

  하나님은 인원수에 연연하지 않는다. 말씀이 살아 운행하는 성전을 원한다. 다만 사람들이 숫자를 가지고 말하기를 좋아할 뿐이다.

  교회 앞마당 위에 높이 띄워놓은 교회창립30주년을 알리는 대형 애드벌룬이 행사 전날에 동네 아이들의 장난인지 끈이 끊어져 멀리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행사일 아침 누군가의 신고로 회수하여 다시 매달아 놓았다. 사람들은 행사를 더 멀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풍선이 날아갔다고 좋게 해석했다.

 

  하늘은 높고 산천은 색깔을 먹어 아름다운데, 2007년 10월 첫째 한 주 동안, 지성과 감성이 넘치는 한 신혼부부는 교회가 생일을 맞아 큰 잔치를 벌인다는 소식을 듣고 직장의 일을 희생해서라도 잔치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남편의 이름은 소희철이고 아내의 이름은 목장화다. 참으로 모범적인 젊은이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태어난 지 30년이 된 ‘하나님의 집’을 야곱이 꿈에서 만난 천사가 사닥다리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했던 ‘벧엘’로 생각했고, 또 그들은 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 왔다고 자부했다.

  이제 교회는 서른 살이 되어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기념행사도 하며, 외국 선교사들을 불러 말씀으로 격려하고 선교의 열정을 불어넣는 행사를 치르게 되었다.

  앞마당에는 천막이 쳐졌고 가나의 혼인잔치 집처럼 먹을 것도 풍성했다. 떡 2만 5,000개가 준비되었다. 포도주가 떨어지면 독에 물만 부어도 포도주가 만들어질 것만 같은 은혜가 충만한 축제의 마당이다.

 

  신혼부부는 특강이 진행될 성전 안으로 들어가서 앞좌석을 잡았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강단의 꽃장식이 중요한 행사에 걸맞게 우아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또 살짝 옆으로 비켜선 곳에 미녀 사회자가 행사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하여 마이크 앞에 서있는 것도 보였다. 맨 앞줄에 앉아있는 신혼부부는 사회자의 향수 냄새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위치에 앉아 있었다.

  본 교회의 고등부 교사로 봉사하고 있다고 소개하는 사회자는 은근히 지성미를 풍겼다. 명문대 출신의 방송국 아나운서임을 스스로 소개하지 않아도 성도들은 이미 인지하고 있는 듯했다.

  예배기도를 인도하는 사람에 따라 목사님의 설교 분위기가 달라지듯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회자에 따라 특강 분위기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사회자의 소개에 따라 행사의 키워드인 ‘리더십’ 특강이 3일 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남은 4일 동안은 세계선교대회가 열리고 또 말씀으로 세상이 변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시간들이었다. 중간 중간의 문화공연은 행사의 의미를 고조시키는 감동의 원자탄이기도.

 

  염치없이 맨 앞줄 중앙에 앉은 신혼부부는 남을 의식할 여유를 찾지 못했다. 성전에서 영혼의 아름다움이 충만함을 발견했다. 성령이 충만하여 미움, 원망, 갈등 등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고 오직 살아계신 여호와의 말씀에 그들은 혼을 빼앗겼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여 참석한 성도들은 은혜의 연못에 잠겨버렸다. 지난 30년 동안 행사용으로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던 본당 성전이 행사에 참석한 성도들로 송곳이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꽉 찼을 때 찬양과 말씀으로 감동에 북받쳐 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젊은이들이 왜 그리 울음이 많은지?  인간은 원래 축축한 동물이기 때문일까.

  역시 교회의 나이와 같이 가는 서른 살의 동갑내기 신혼부부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소희철은 아내의 손수건까지 가져가서 눈물을 닦았다. 사내대장부가 이렇게 눈물 때문에 손수건을 형편없이 망쳐본 적이 없었는데.

  일주일간의 행사에서 몽땅 받은 감화 감동의 은혜를 자신들만 간직하기가 아쉬워 그들은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성도들에게 은혜를 나누고자 이렇게 소설로 꾸몄다. 그러나 말씀은 픽션이 아니고 리얼한 것임을 강조했다.






2. 소망교회 30주년을 맞이하여






  일반회사의 CEO가 회사의 조직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최고책임자라면, 교회의 CEO는 성도들의 영혼을 지도하고 관리하는 최고책임자라고 신혼부부는 멋진 정의를 내렸다. 인텔리 부부다운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CEO는 최고경영자(Chief Executive Officer)라기 보다는 최고전도자(Chief Evangelist Officer)라고 함이 좋을 것이다.


  그들에게 최고의 멘토(Mentor)는 하나님이다. 교회의 CEO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영혼을 지도한다는 의미에서 그들은 교회의 CEO에게 경외를 보내고 있다.

  “우리 목사님은 젊은이들의 미래에 대해서 특별히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 성경에서 우리의 멘토를 찾는다면 요셉과 다니엘이라고 말씀하셨으니까. 당신은 청년다니엘 반으로 가고, 나는 청년요셉 반으로 가면 되겠군.”

  소희철은 아내에게 넌지시 운을 띄웠다.

  “우리는 이미 결혼했어요. 당신은 제1남선교회로 가고, 나는 제1여전도회로 가야되는 거예요.”

  아내 목장화가 교회의 시스템에 대해서 좀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직장의 일에 쫓겨 회원가입의 기회를 아직 찾지 못했다. 조만간에 참여하리라고 다짐을 하면서도.


  담임목사의 말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이 ‘롤 모델(Role model)’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인으로서 그 모델은 믿음이 좋고 전문성이 탁월한 사람이라고 했다.

  롤 모델로서, 또 멘토로서 바람직한 사람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를 담임목사는 분명히 말했다. 우선 성경, 교회사, 가까운 사람, 예수님으로부터, 그리고 ‘나는 나다’라는 인식에서 자신으로부터도 찾아야한다고 강조했다.

  교회창립30주년을 맞이하여 담임목사는 행사에 참여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또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하나님이 이 교회를 지켜주고 여기까지 이끌어준 것에 대해서 특별히 감사했다. 모든 사람들의 얘기가 똑같지만 여기까지 인도해준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요 도우심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예수님은 30세에 갈릴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공생애를 시작했다. 공적 활동을 하기 전에는 30년간 침묵의 세월을 보내면서 준비하여 3년 동안 열정적인 사랑으로 세상에 변화를 주고 또 돌아가신 후에는 부활의 기적을 보였다.

  30년 전에 강남의 한 가정집에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기도한 것도 기적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집’의 모퉁이 돌을 세웠으니까.

  사람의 나이 20세가 되면 육체적 내지 외모적 성숙의 시기라고 하고, 30세가 되면 정신적 내지 영적 성숙의 시기라고 한다. 지난 30년 동안 하나님께서 도와준 모든 것을 회상하면서 다시 30년의 세월을 어떻게 인도해줄 것인지 기대하면서 모든 분들이 신실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특별히 리더십특강, 문화공연, 선교대회를 통해서 담임목사의 마음에 품어지는 것은 이 교회가 있음으로써 성도들과 이 땅의 백성들이 소망을 품고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축복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것이 이 교회를 하나님이 지켜주는 이유일 것이다.

  문화는 예수 믿는 사람과 세상을 연결하고 다음 세대를 키워나가는 중요한 중간 매체이기도 하다. 우리 교회가 다음 세대를 품고 세상을 품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면서 문화공연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감사한 일이다.

  리더십 특강을 준비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 교회에는 정말 탁월하면서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분들이 다 숨어있더라는 것. 앞으로는 네트워킹을 하면서 우리가 갖고 있는 소중한 것을 사회 속에서 함께 나눌 수 있다. 그런 역할을 리더십 특강을 통해서 활성화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섬김의 리더십을 보여준 예수님의 모습을 갖고 우리의 길을 갈 수 있다면 얼마도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마음을 지니고 귀한 모임을 갖게 된 것은 감사한 일이다. 

  선교대회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한 번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담임목사는 참석한 모든 성도들과 방문자들이 행사를 기쁜 마음으로 즐기고 따뜻한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했다.

 

  신혼부부는 행사의 첫 출발을 소개하는 담임목사의 차분한 인사에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느꼈다. 앞으로 행사기간 동안 폭풍우같이 밀려들 은혜의 물살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를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3. 예수님께 길을 묻다





  

  대한민국 중년남자의 평균치쯤 되어 보이는 키에 자상한 외모를 지닌 연사가 강단에 섰다. 이모저모 살펴보아도 정치를 할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서울의 강남을 책임지는 구청장이란 소개에 많은 사람이 의아해하는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짧은 집무기간에도 각 분야에서 피부로 느껴지는 변화를 강남에 가져왔다. 또 부자(富者) 지자체로 시기 받던 강남의 이미지를 일신하기 위해 강남을 리모델링하겠다는 각오를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의 강연에 앞서 있었던 남성 트리오 ‘둘로스’의 연주를 한껏 칭찬한 후 청중의 박수를 부탁했다. 개성이 강한 강남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 정도의 여유는 필요할 것이다.

  연사로 선정된 배경에는 자신이 이 교회의 교인이고, 교회가 강남구에 위치해 있으며, 강남의 구청장이라는 점이 작용했을 거라고 겸손하게 말문을 열었다.

  창립30주년 행사에 연사로 지명 받았다는 게 개인적으로 영광이라고 하면서도 긴장된다고 했다. 그러나 잔잔한 미소가 입가를 떠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긴장된 표정은 아니었다.


  신앙과의 인연으로 그는 실마리를 풀어 나갔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네 살 때 어머니 등에 업혀 교회에 갔던 것이 하나님과의 첫 만남이었다. 어려서는 교회에서 사탕을 줘서, 자라서는 연로한 어머니를 부축하면서 교회를 다녔다.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기는 했지만, 일상의 습관을 뛰어넘는 열정을 가지고 했는지 스스로 반성이 된다고 고백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교회를 나설 때 여전히 남아 계속 기도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소망교회 등록 20년이 된 자신의 신앙이 아직도 부족함을 느껴 부끄럽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분명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그는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기도하고 나면 마음이 뿌듯해지고 안심이 되며 스트레스 해소가 된다는 것이다.

  시련과 도전의 와중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어떻게 위안과 용기를 주었는가, 그리고 그가 꿈꾸는 강남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가 이번 강연의 주제였다. 


  재경부 20년을 포함하여 중앙부처 공무원으로 30년 근무한 그에게선 한국의 경제발전에 깊이 참여한 이로서의 자부심과 고뇌가 느껴졌다. 1970년대 초 경제기획원 사무관 시절, 얼마 안 되는 봉급을 받으면서도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을 했고 바쁠 때에는 광화문 근처 여관에서 밤을 새워 일하기도 했다. 춥고 배고파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한국경제가 세계가 부러워할 만큼 고도성장하는 데에 기여한다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그가 강남 구청장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주변 지인들은 많이 놀랐다. 해외에 있던 한 친지는 놀란 나머지 혹시 동명이인이 아닌지 생각했단다. 왜냐하면 그의 평소 성격으로 봐서 절대로 선거판에 뛰어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선거운동을 하러 다니면 사람들은 이렇게 수군거리곤 했다.

  “저렇게 순한 얼굴로 무슨 정치를 한단 말이야?”

  그는 이 말을 하며 자신이 정말 순둥이로 생겼는지 성도들에게 물었다. 실제로 선거운동기간 동안 그는 명함에 ‘부드러운 카리스마’, ‘섬기는 리더십’을 새겨 넣어 다녔단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면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느니라.”

  성경 말씀이 그를 ‘섬기는 자’로 이끌었다.


  1947년생인 그가 뒤늦게 선거에 나서게 된 이유는 한마디로 소명의식이라고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의 60대, 70대 어르신들은 우리나라의 고도성장과 경제개발에 참여했던 세대이다. 그 자신도 경제개발에 참여해 수십, 수백만 개 톱니바퀴 중 하나의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시작되었을 때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약 90달러에 불과했다. 당시 전 세계 125개국 중 101등으로 그야말로 최빈국이었다. 약30년만인 1995년,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어서는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2만 달러의 벽을 깨지 못하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 경제에 빨간 불이 켜지고, 이 사회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사회생활의 기본이 되는 법과 질서가 훼손되는 것이 그 징후였다. 크게는 과격한 노조활동 불법파업에서부터, 작게는 불법주차, 불법간판 등 법을 어기는 일이 항다반사가 되었고 사회기강은 해이해졌다.


  2002년 두 번째의 서해교전에서 우리의 젊은 병사 6명이 전사했다. 당시 그는 공직을 떠나서 여의도 모 금융기관의 최고경영자로 근무하고 있었다. 직원들과 함께 의연금을 모아 신문사에 전달했다. 의연금을 낸지라 그는 모금 상황을 매일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그런데 위로는 한국은행으로부터 아래로 상호저축은행에 이르기까지 국책은행, 시중은행, 보험회사, 증권회사를 막론하고 의연금을 낸 금융기관은 그의 회사뿐이었다. 혹자는 그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하기까지 했다.

  “누군가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고 하면서.

  경제개발에 참여한 세대로서 나라가 이렇게 돌아가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소리쳐 봤자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 아닌가.

  그는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작은 힘이나마 이 사회를 고쳐나가는데 보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출마를 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강남구청장의 공천과 선거운동의 과정이 대부분 직업공무원으로 살아왔던 그에게 힘들고 어려웠을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밤 12시에 귀가하는 강행군은 힘들기만 했다.

  이때 그에게 힘을 준 것이 성경 히브리서의 다음 구절이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성경을 읽으면 마음이 편해졌고, 하나님이 새로운 사명을 주셨으니 어렵더라도 참고 이겨내야 한다고 굳은 다짐을 하게 되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어깨띠를 두르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명함을 나눠주며, 청중도 없는 거리에서 생전 처음 해보는 선거유세도 해야 했다.

“사람도 없는데 구태여 유세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어보면 참모들은 “저 아파트 안에서도 다 듣고 있으므로 행인이 없는 한적한 거리에서도 유세는 계속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때 그는 국회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어느 국회의원이 선거구민들과 소주를 마시는 자리에서 소주잔을 와이셔츠 소매에 쓱쓱 닦으니까 서민적이라고 유권자들이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기억이 났다. 유세기간 중 자신도 그렇게 해 봤더니 “뭐 그렇게 비위생적인 짓을 하느냐?”고 사람들이 싫어했다. 작은 해프닝이었지만 동네마다 사물을 보는 눈이 다르구나 하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통해서 당선되었으나 뜻하지 않게 선거법 관련 재판을 받게 됐다. 개인적으로 시련이었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이사야 54장의 말씀이 그에게 힘을 주었고, 요즘도 그 구절을 읽으면 마음이 든든해짐을 느낀다.


  그는 솔로몬이 꿈속에서 하나님께 간구한 말씀, 즉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의 옳고 그른 일을 분별하게 해 달라”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했다.

  구청장이 된 후, 먼저 내부에서 시도한 일은 실무자에게 권한과 책임을 위임한 것이다.

  구청장이 직접 결재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아 그의 사무실에는 결재 받으려는 간부들이 줄을 이었다. 시간적 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구청장이 결재할 사항들을 실무자에게 위임한 결과, 지금은 강남구청의 결재 100건 중 1.5건만을 결재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직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리더십을 갖고 책임감 있게 일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다음으로 대외적 면에서 그가 구정(區政)에서 강조한 것은 기초질서 지키기였다. 지금은 서울시내 25개 구로 확대 실시되어, 강남 브랜드가 되다시피 했다. 이는 그의 좌우명 “작은 일을 잘해야 큰일도 잘한다”와 상관이 있다.

그는 ‘디테일의 힘’을 이야기하면서 미국 대통령 닉슨의 연설준비 이야기를 곁들여 소개했다.

  미국대통령 닉슨이 부통령 시절 미국을 방문한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처칠을 위해 공항에서 2분짜리 환영 연설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는 이 연설을 준비하는 데 무려 2시간을 들였다. 당시 그의 나이 40대 초반이었고 처칠은 70대 후반이었다. 세계적인 거물 앞에서 연설하려니 적잖이 긴장된 것도 작용했으리라,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자세이다. 

  그러면서 그도 오늘 30분의 강연을 위해 몇 날 몇 일을 준비하고 고민했다고 털어 놓았다. 2%를 소홀히 하지 않는 ‘성실성’이 개인의 삶을, 자치구민 삶의 질을 명품으로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구정 수행에 있어서 항상 그가 늘 가슴에 되새기는 원칙은 솔선수범과 설득, 주민과의 합의이다.

  지금 강남구는 꽁초와의 전쟁에 이어 간판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상가의 어지러운 간판을 정리하고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서다. 방향이 옳더라도 합의를 이루면서 진행하려다 보니 속도가 더딘 경우도 발생한다. 심지어 한 상가의 간판을 정리하는 데 무려 6개월이 걸리기도 했다. 간판 정리가 끝난 후에는 일일이 찾아다니며 협조해줘서 고맙다고 인사도 했다. 그래도 불만이 완전히 가시지 않을 만큼 일은 어려웠으며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제 제가 일구어 나가려는 강남의 모습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연사는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많은 사람들에게 강남 하면 무엇이 연상되는지 물어보곤 한다. 어떤 이는 부자구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룸살롱이 많은 유흥구라고도 대답한다. 이외에 부동산투기, 강남 아줌마, 대치동 학원 등등 다양한 대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강남의 정체성과는 거리가 멀다. 

  강남에 부자가 많다는 건 사실이지만 서울시 25개 구 중 강남구는 7번째로 기초생활자가 많은 구이기도 하다. 룸살롱? 강북이 역시 많지 않은가?  강남아줌마? 사실 알고 보면 알뜰살뜰하고 똑똑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게 강남아줌마다. 대치동 학원? 공교육이 살아나면 학원은 생기지도 못했을 것이다.


  2006년 8월 일본의 마츠다 이와오(松田岩夫) 무임소 국무대신이 강남구청을 방문했다.

  “강남의 발전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예상치 못한 질문에 그는 주저치 않고 이렇게 즉석에서 대답 했다.

  “강남은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 즉 각계각층의 극심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자존심이 강남 발전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강남은 대한민국에서 시기의 대상이자 부러움의  대상이다. 한때 어느 대학 나와서 강남에 살고 있는 사람과는 상대도 하지 말고 커피도 마시지 말라는 얘기도 있지 않았는가.

  강남 집값이 오르는 것을 염려하여 재건축을 잘 허가하지 않는다. 강남구에는 아직 인가가 살아나지 않은 아파트가 35개 단지에 2만 8,500세대가 있다. 신청한 51개 단지 중에 16개 단지만 허가가 난 셈이다.


  통계를 보면 2006년 강남구가 전체 국세의 7%, 즉 9조7,000억원을  냈다. 우리나라 인구 4,800만 명 중 강남구 인구는 56만 명이다. 또 종합부동산세의 세수 2조4,000억원 중, 서울이 1조원인데, 강남구는 3,000억원으로 서울의 30%에 해당한다. 금년에는 4,500억원이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방세(재산세, 취득세, 등록세, 자동차세, 사업세, 면허세 등)는 서울시 11조3,000억원의 15.3%에 해당하는 1조 7,000억원이 강남구에서 걷힌다. 강남구는 이렇게 세금을 많이 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다 내년에는 재산세의 50%를 뺏어 간다고 한다. 이런 것들 때문에 강남구민들이 수탈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안티강남 정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런 정서를 완화하여, 강남을 시기와 질투 대신 존경받는 대상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가 커다란 과제라고 했다.


  2007년 7월 하순, 그는 강남구청 직원들과 함께 ‘나눔의 정책’ 실시코자 아프리카의 우간다에 갔다 왔다, 강남구민들이 모아준 모기장 1만 장, 자동차 1대, 말라리아 약 2,000명분 등을 가지고 갔었다. 삼성병원, 자생한방의원 등으로부터 의료지원을 받아서 자원 봉사한 것이다.

  현장에서 목격한 아프리카의 실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참했다.  6.25전쟁 직후의 우리나라의 사정이 이랬을까 싶었다. 모기장을 나눠 줬지만 지역주민들이 모기장 사용방법을 몰라서 동네 아주머니들을 모아놓고 연극으로 가르쳐줬다. 모기장으로 스카프나 수세미를 만든다든지, 음식 덮는 데 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봉사를 마치고 떠나기 전, 봉사자들에게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감사할 일이다. 혹자는 국내에도 빈곤한 사람들이 많은데 다른 나라를 도와야 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이런 나라의 가난은 우리나라의 것과 질적으로 다르다.

  세계빈곤대책기구의 우간다 책임자는 “선진국에서 오는 봉사팀은 매년 1~2단체에 불과하다. 반면에 한국은 8팀이나 예정돼 있다. 이중 7개 팀이 기독교단체이고 나머지 한 팀이 강남구청 팀”이라고 말했다. 구청 차원에서 아프리카 오지까지 봉사를 하러 올 줄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구청장이 구상하고 있는 강남은 이처럼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사랑을 베풀고 존경받는 도시다. 강남구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자부심을 갖는 날이 오길 원한다. 또 강남이 법과 질서가 정착되고, 불법주차가 없고, 담배꽁초가 보이지 않으며, 간판이 아름다운 도시이길 바란다.

  그가 구청장이 된 후 주민들은 주차단속, 꽁초단속, 간판단속 등 단속이 많아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구청이 할 일이 없어, 돈이 궁해서 과태료나 물리고 있나? 지난 30년 동안 아무 말 없이 잘 지내다가 갑자기 간판 갖고 시비냐? 다른 집은 가만두고 왜 우리 집만 단속하느냐?”

  사람들 간에는 말이 많았다. 심지어 주민소환제를 발동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이번 강연을 준비하면서 성경말씀을 많이 찾았다.

  “겨자씨같이 작은 것을 잘 지킬 때 큰 것도 잘 지킬 수 있다.” 

  단속에 대한 법 규정은 이전부터 있었으나 전에는 집행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언론에서는 이러한 단속 노력을 ‘깨진 유리창의 법칙’에 빗대어 설명했다. 미국 어느 범죄학자의 논문에, “가볍고 하찮은 범죄를 가볍게 여기면 심각한 범죄로 발전한다.”고 했다. 바꿔 말해 기초가 튼튼하면 여타 환경도 절로 좋아진다는 뜻이다.

  청결 도시를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도 교회 새벽기도를 다녀오며 얻은 것이다. 일전에 일본 출장을 갔을 때 도쿄 옆에 있는 요코하마 신도시의 스카이라인과 우아하게 정비된 구도시, 정말 부러웠다고 했다. 이렇게 만드는 데 37년이 걸렸다고 그곳 공무원은 알려주었다. 


  그런데 강남은 이런 사업을 시작한지 아홉 달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조급해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문제점에 대해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예수님께 길을 묻고 있다고 했다.

  • 어떻게 하면 우리자녀들이 해외로 어학연수를 가지 않아도 될까?

  • 어떻게 하면 강남의 공교육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 어떻게 하면 강남의 여성들이 보육문제에서 해방되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을까?

  • 어떻게 하면 강남을 흥청거리는 유흥문화의 집결지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건전하게 즐기는 건전문화의 본산지로 전환할 수 있을까?

  • 강남의 교통난이 해결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 어떻게 하면 강남이 기업하기 좋은 도시가 될 수 있을까?

  • 강남은 어떤 도시로 발전해 나가야 하는가? 등등.

  늘 물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최근 언론보도에 의하면 서울 초등학교 학생들의 조기 유학이 지난 1년 동안 69.5% 증가했다. 자녀를 호주에 유학 보낸 한 학부모는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공부는 가르치지 않고 시험만 치는 한국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무엇보다 안타까운 일은 최근 강남구의 25세와 34세 사이의 미혼 여성 세 명 중 두 명이 미혼이라는 것.

  그는 백범일지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바란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라의 부력(富力)은 우리 생활을 충족히 할 만하면 되고, 나라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강남도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교통난 역시 강남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비 오는 날. 구청에서 영동세브란스 병원 근처의 그의 집까지 가는 데 무려 한 시간이나 걸린 적도 있었다. 그는 강남의 교통난에 대해 중장기적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사는 강연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이번 강연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구정에 더욱 더 힘쓸 것을 각오하는 귀중한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구청장에 취임한 후 세운 계획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소홀히 한 점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동안 직원들의 노고에 제대로 감사표시를 못한 점, 주민들이 아파하고 좌절감을 느낄 때에 얼마나 힘이 되어 주었는가도 반성한다고 했다.  앞으로 직원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구민들과 민원사항을 의논하며 같이 웃고, 울고, 고민하겠다고 그는 진지하게 다짐했다.

  그는 매일 아침 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셔서 강남구청장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신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면서 앞에서 열거한 강남의 교통, 보육, 교육 등 미래의 모습들을 그려본다고 했다. 하나님께 길을 묻는 기도가 하루의 시작이란 것으로 그는 강연을 마쳤다.





4. 시대정신, 비전 그리고 새로운 리더십

 




    연사는 한눈에 균형 잡힌 인상을 주었다. 가문의 영광은 이미 아버지 대에서 누렸고, 그 영광의 빛을 받아 그는 대중으로부터 별 거부감 없이 누른 금배지를 자연스럽게 달게 되었다. 귀티에다 금배지를 덧입혔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청중은 정치인의 인사말을 미리 짐작할 줄 안다. 소중한 분들을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말이 나올 것이고, 또 행사가 있으면 그걸 축하한다는 말도 곁들여질 것이다. 그도 예외는 아니었고, 다만 크리스천임을 잊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말을 추가했다. 

  

  “정치를 하려면 ‘후흑(厚黑)’에 능해야 한다.”

  연사는 정치를 시작할 때 친한 선배로부터 그 말을 들었다고 하면서 강연을 시작했다. 말하자면 “정치인은 얼굴이 두껍고 마음이 검어야 한다”는 것.

  ‘후흑’에 능했던 사람들을 보면, 중국의 조조나 모택통, 미국의 닉슨처럼 권모술수로 정치를 한 사람들이 이에 해당된다고 했다.

  그는 4년 전 초선의원으로서 정치판이라는 정글 속에 뛰어든 후 많은 후흑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 왔다. 지금처럼 민주화가 되고 투명하고 다원화된 세상에서는 후흑보다 전문성 있고 성실하며 진솔하게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라는 것을 강조했다. 또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을 향한 헌신된 마음이 지도자가 되는 데 필요하다고 했다.


  할애 받은 귀중한 시간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 한국이 처한 상황의 진단

  • 이 시점에서 가져야할 시대정신

  • 정권교체 시기에서 우리의 비전

  • 비전을 실천할 수 있는 리더와 요구되는 자질


  위의 메지들을 그는 정리해 나갔다.

  세계경제는 호황이지만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은 상당히 떨어져 있다. 투자는 줄어들고 양극화는 심화되었다. 민주화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사회통합으로 승화되지 못하여 사회의 갈등은 고조되어 가고,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믿는 사람의 수는 줄어드는가 하면, 불황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상이다.

  지난 5년 동안 노무현 정권이 동북아의 균형자로서의 역할, 분배중시경제, 국토균형발전계획의 로드맵 등 많은 것을 쏟아냈지만 부각만 시켜놓고 말만 많았지 결과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무현 정권을 두고 사람들은 보통 '나토정권', 즉 ‘No Action, Talk only’ 정권이라고 한다.


  그러면 나토정부가 아닌 일하는 정부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첫째, 중진국 덫에 걸려서 10년 채 정체 중인 한국을 빠른 시일 내에 선진국으로 진입시키고, 둘째, 계층 간, 세대 간의 이념과 지역 갈등을 초월하여 실질적 국민통합을 이루며, 셋째, 명쾌한 국정철학을 통한 품격 있는 일류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3대 시대정신이라고 말했다.

  시대정신을 구현할 새로운 리더십은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성경의 마태복음 10장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로 리더십을 가르쳐주고 있다.

  솔선수범하며 자발적으로 행동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리더십이라 하겠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먼저 국민을 위해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예산을 절약하는 리더십, 시장의 신뢰구축과 함께 자율과 혁신을 통한 투자의 활성화와 기업 경쟁력의 강화를 도모하며 일자리를 창출해나가는 리더십, 법질서를 존중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함양하면서 경쟁과 기회보장을 통한 교육개혁으로 인재대국을 만드는 리더십,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가 함께 튼튼한 문화강국을 만드는 리더십, 확고한 안보태세와 원칙 있는 외교로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리더십 등이라 할 수 있다. 요약하면 잘사는 국민, 따뜻한 사회, 열심히 일하는 정부와 강한 나라를 만드는 리더십이다.


  이러한 리더십에서 요구되는 자질은 무엇인가?

  첫째는 정치적 개방성, 관용과 인내, 외연의 확대이다. 인내하고 상대를 관용하면서 더불어 전진하는 리더십을 의미한다.

  한나라당 경선과정에서 박근혜 전대표가 ‘줄푸세’라는 공약, 즉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는 공약은 이명박 장로의 ‘7.4.7’이라는 공약, 즉 7% 성장, 4만 달러 국민소득, 세계 7대 강국으로 진입하자는 공약과 비슷한 것이다. 감히 주장하건데, 7.4.7은 목적이 될 수 있고 줄푸세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 두 공약을 잘 합쳐서 “줄푸세를 통한 7.4.7의 달성이다”고 하면 어떨까?


  로마의 율리어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의 관용에 관한 이야기.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를 중심으로 한 공화파를 무찌르고 로마의 정점에 오른 후에 부하들이 반대파에 대한 살생부를 만들어 왔는데 카이사르는 단번에 그것을 불살라버리고 내전에 맞섰던 공화파 인사들을 모조리 석방하고 국외로 피신해 있던 사람들을 불러들여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관용을 베풀고 상대의 장점을 흡수하는 것이 이 시대에 맞는 시대정신이라 하겠다.

  당시 공화파의 핵심인물이었던 키케로가 카이사르의 이러한 자비스런 행동을 칭송하는 편지를 보내왔을 때 카이사르의 답장은 이러했다.

  “그렇게 행동한 것 자체로 나는 이미 만족하고 있지만 당신까지 칭찬해주니 만족을 넘어서 기쁘기 한량없소. 내가 석방한 사람들이 다시 나한테 칼을 들이댄다 해도 그런 일로 마음을 어지럽히고 싶진 않소.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내 생각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오.”


  마태복음 18장에서는 또 이렇게 일러주고 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용서하고, 관용하고, 포용하면서 함께 손잡고 미래로 나아가는 이 나라의 모습을 그려보아야 한다.


  둘째는 성실함과 실용성이다.

  이제 진보와 보수가 극렬하게 대립하던 시대는 지났다.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을 키워서 정확한 진단과 효과적인 처방을 내린다. 쥐를 잡는데 흰 고양이냐 검은 고양이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어 실용적으로 나라를 건설해나가야 한다.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돌아가신 지 11년이나 되는 어머니를 회상하면서, 연사는 부모님이 써 놓은 그의 육아일기를 잊을 수 없다. 연사의 출생부터 대학 입학까지 세세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감기에 앓았던 일, 좋아했거나 그렇지 않았던 음식, 급하고 아량이 부족한 성격 등등. 결혼 후 어머니는 이 육아일기를 연사의 아내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이 육아일기를 보면서 많은 반성을 하곤 한다. 어려움을 겪는다든지 정신적으로 방황할 때 꼭 이 일기를 꺼내본다. 인내심이 부족하고, 포용심이 부족하며, 성실하지 못한 이런 것들이 세 살 때부터 그랬구나 생각하면서 그는 많은 반성을 하고 고쳐나가고 있는 것이다.

  허황된 것보다 정확하고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고, 현실적인 처방을 내리는 리더십이 중요하다.


  셋째는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개인이 독불장군 식으로 하던 시대는 지났다. 한나라당의 회의에서도 꼭 이 말은 한다. 물론 이명박 후보에게도 말하지만, 복싱게임으로 해서는 안 되며 축구게임으로 해야 한다고. 팀으로 해야지 개인적으로 선거를 치러서는 안 된다. 개인이 마음대로 하는 시대는 지난날의 향수로 족하다. 리더가 바뀌더라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어야 하고, 이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자가 참된 리더이다.

  지난 5년 동안 한국은 고개가 비틀어지도록 뒤를 돌아다보았다. 과거를 뛰어넘어 미래로 나아가는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함에도. 누가복음 9장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라고 가르친다. 민주화를 위해 고생하신 분들에게 보상을 해야 하지만 과거사위원회니 뭐니 하면서 과거를 너무 캐서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미래로 나아가는 데는 적합지 않다.


  인기영합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강남구는 ‘강남 때리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고생을 하고 있다. 종합부동산세, 공동재산세 등은 국민의 일부를 때려서 나머지 다수에게 인기를 얻으려는 인기영합주의의 한 형태라고 하겠다. 세금이라는 것은 전가되는 특성이 있어서 주택에 세금을 올리면 전세, 월세가 올라가고, 건물에 세금을 때리면 임대료가 올라가서 서민의 부담으로 전가된다. 공동재산세도 마찬 가지다. 강남에서 재산세를 빼앗아 서울 전체가 나눠 가지면, 물론 강북 발전을 위해서 양보할 수도 있지만, 강남의 복지예산이 축소되어서 많은 저소득층이나 노약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지방세와 국세, 지방세 간에 세목을 잘 조정해서 합리적으로 세금이 부과되고, 징벌적인 세금이 부과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12월 19일의 선택이 관철의 여부.

  일본의 경제학자 다케우치 야스오가가 쓴 재미있는 책, <정의와 질투의 경제학>에서, “질투는 때때로 정의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10억 엔을 번 부자가 9억 엔의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는 왜곡된 정의는 질투의 산물이고, 이러한 질투는 능력 있는 사람과 경제 활력의 리더들을 해외로 유출시킨다.”고 했다.

  로마제국도 특정계층을 대상으로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고, 검투사시합 같은 재정이 막대하게 수반되는 오락을 과다하게 제공하며, 황제가 로마시민 다수에게 직접 금전으로 보너스를 주는 때마다 로마제국이 위기에 빠지고 쇠잔했다는 역사적인 교훈이 있다.

  인기영합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이처럼 위험하다. 인도주의적 지원은 예외지만 여러 정부가 북한에 쓸데없이 지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연사는 하고 싶은 이야기는 대충 했다고 하면서 성도들을 씨줄, 날줄로 두루 훑어보았다. 강남의 주민들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의 호응은 연목구어다. 다행히 만족했다. 강남 때리기에 고통 받고 있는 주민이 많았던 탓일까.

  그러나 신혼부부는 강남주민이면서도 아직 때림의 아픔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 실감은 지금부터 십 년 후쯤이나 수입이 쌓일 때나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반인의 강남을 보는 시각, 소망교회를 보는 시각으로 인하여 연사는 괴롭다. 강남 국회의원이라는 이유로 역차별을 받는 경우도 많다. 한나라당이 ‘강남당’, ‘부자당’이라서 저런다고 할 때는 죽을 지경이다.

  그래서 강남의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이 좀 더 솔선수범하고, 기부정신과 희생정신을 발휘하며, 기존에 누리는 특권을 양보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정신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담임목사와 상의한 바도 있다고 했다. 그것은 신용불량자나 자영업자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제공하는 은행을 소망교회가 중심이 되어 설립했으면 어떠냐는 것.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방글라데시의 빈곤퇴치 운동가 모하마드 유누스가 창설한 빈민대출 은행으로서 ‘그라민 은행’과 같은 제도이다. 그라민 은행은 무담보, 무보증, 소액대출로 방글라데시의 6백만 명 이상이 이용하는 은행이다. 이와 같은 은행을 소망교회를 중심으로 사회지도층이 세운다면 소망교회와 강남구에 박수가 보내지리라는 것이다.

  이명박 후보를 칭송하는 용비어천가, 아니 ‘MB어천가’를 불러야 하는데 선거법 때문에 11월 26일 이후에 불러드리겠다고 하면서 연사는 오늘의 이야기를 마쳤다.






5. 미래를 여는 리더십




 

  연사의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남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여자요, 배꽃이 피는 이화(梨花)의 전당에서 50년 가까이 뛰놀며, 공부하고, 가르쳐온 순수한 이화여성이다. 입고 있는 흰옷은 이화를 상징하는 듯하고, 어쩌면 학교총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의도적 조화인지 모른다.

  그녀의 강연은 차분한 음성으로 시작되었고, 성도들에 대한 감사에 덧붙여 원로목사와 담임목사를 일일이 거명하면서 강연의 허락을 감사했다. 참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연사 자신은 목사처럼 감동을 주는 설교나 역동적인 강연에는 부족하다고 하면서 다만 소박한 신앙생활로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고 매일매일 기도하며 자신을 다지는 자세로 살아간다고 소개했다.


  주제는 리더십이다.

  크고 작은 집단에는 리더가 있게 마련이고, 아무리 시대가 변한다고 해도  그 리더에게는 갖추어야할 기본적 덕목이 있다.

  역사학을 전공하고, 121년의 역사를 가진 이화대학에서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리더로서의 자질은 아직도 부족하다고 표현했다. 그녀의 리더십은 쌓아온 역사 속에서 배운 리더십과, 또 교육 받고 섬기고 있는 이화대학에서 배운 기독교인으로서의 크리스천 리더십이다.

  그동안 배우고 경험한 것을 성도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이다.

  흔히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론 “역사는 인간이 만든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주관한다”는 게 그녀의 믿음이다.

  역사는 교훈과 메시지를 통해 역사 속에 숨어있는 진리를 찾아내어 현재를 열어나가고 미래를 보다 폭넓게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요즘 사극에 관심이 많게 되자 전공이 역사학인 그녀에게 방송국에서 사극이나 역사물을 만들 때 많은 자문을 구하러 온다. 그러나 그런 자문을 매우 꺼려하는 바, 그 이유는 사극은 대부분 픽션인데 그녀는 역사학자로서 실증적인 것만 이야기할 수밖에 없으므로 시청률을 올리는 데 역사학자가 개입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사극을 보고 역사를 다 아는 양 오인할 수 있으므로 방송국에서는 국민교양을 위해 자문해달라고 끈질기게 부탁하기도 한다. 그러한 가운데 사실과 픽션이 3대7 정도 되고 역사적 사실이 매우 적게 삽입되더라도 역사가 주는 메시지를 염두에 두고 사이사이에 넣으면 마음에 여운으로 남을 것이라고 하여 허락한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역사의 교훈은 많지만 축약해서 3가지만 말하고자 한다.

  첫째, 지나치고 무리하면 화를 자초한다는 것이다.

  욥기에 “내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내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것처럼 역사 속에서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큰 영광을 이루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반면에 끝에서 화를 자초한 것도 있다.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건국했지만, 집을 지으려도 상당히 힘 드는 일인데 400여년 유지해온 고려왕조를 타도하고 새로운 왕조를 건설할 때는 천신만고의 힘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6년만 하고 말았다. 세자책봉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궁예는 고려건국의 길을 닦았는데도 실패하고 왜 왕건이 성공했는지, 또 세종은 우리역사의 1000년을 열어놓았는데도 연산군은 참담하게 무너졌는지를 역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중과 포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둘째, 좋은 능력도 좋은 사람과의 만남 관계로 이루어질 때 아름답고 훌륭한 역사를 만들 수 있다.  

  아무리 좋은 능력도 악연으로 얽히면 역사를 왜곡시키고 본인도 망가진다. 소중한 만남은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인생에서 이화의 가족이 되어 하나님을 만난 것은 삶의 힘이 되고 등불이 되었다. 또 등불인 소망가족이 되었다는 것은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씨를 뿌리고 가꾸는 자세로 다음 세대에 넘겨주는 사랑과 사명이 있을 때 역사는 이어질 수 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자세로 뒤따라오는 후손을 위해 예비하고 보람 있고 아름다운 미래를 펼쳐나가야 한다.

  겨자씨 하나가 큰 나무를 이루듯 우리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고, 내가 뿌린 씨를 내가 다 열매를 거둔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겸허히 받아들여 시대에 주어진 역할을 다하는 데 성심을 모아야 한다.

  인간의 한없는 욕망과 오만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할 때 절제되고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면서 겸손해질 수 있다. 성경말씀은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에 분별력과 자정능력을 키워준다.


  가장 바람직한 리더십을 인용할 때 흔히 일본 전국시대의 세 장군을 예로 든다. 새가 울지 않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비교한 것이다.

  일본 통일에 가장 큰 기초를 닦은 오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새는 죽여 버려라”고 하고, 일본 통일에 건물을 세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울지 않는 새는 울도록 만들겠다”고 하며, 일본통일 대업을 완수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지 않는 새는 울 때까지 기다려라”고 한다. 오다 노부나가는 독단적 전제군주 형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용장이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협력과 사기를 도모하는 한편 한 번 마음먹으면 꼭 관철하는 지장이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직의 질서와 체계를 중요시하면서 구성원의 의식과 능력을 유연하게 이끌어나가는 덕장에 속한다. 

  어느 리더가 가장 바람직한가는 그 시대적 배경을 알지 않고는 단순하게 평가하기 어려우나 리더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 덕목은 있다.


  한국역사상 최고 지도자로 불리는 조선왕조 제4대 임금 세종대왕의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가슴이다. 재위 32년 동안의 세종실록 기사를 보면 세종의 정치철학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합리주의정신이다.

  탁월한 학자이며 행정가인 세종은 밤낮으로 일하면서 그 많은 업적을 이뤄냈다.

  총장이 되어 작년에 멈췄지만 세종실록을 7명의 학자와 함께 15년 동안 읽었다. 왜 오래 읽었느냐 하면 책이 워낙 방대하고 구절구절이 살아 숨 쉬는 리더십의 원형을 보는 것 같아 감동했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가장 큰 덕목은, 첫째 정확한 시대의 진단과 통찰력을 통해서 당면 과제를 풀어나가는 혜안이다. 이로부터 폭넓은 역사의식 속에서 정확한 현실인식의 구현으로 미래를 올바른 방향으로 제시할 수 있다.

  리더는 배를 저어가는 선장과 같으며 일반 사람과는 다르다. 그 배가 잔잔한 물결에 있느냐, 폭풍우 속에 있느냐에 따라서 방향과 속도는 다르다. 또  병원의 의사가 배 아픈 환자에게 소화제만 줘서는 안 되고 환자의 병력과 여러 가지를 감안하여 처방을 내려야 한다.  

  세종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선왕인 제3대 태종이 이룬 왕권강화를 통한 정치적 안정을 토대로 문화시대를 열었다. 문화정책과 교육의 확대를 통해 민족의 탄탄한 초석을 놓은 것이다.

  아버지가 네 명의 처남을 죽이고 정치적 안정을 구하긴 했지만, 정치적 갈등을 계속 정치적으로 풀어나가면 또 다른 갈등이 파생하고 보복과 정쟁은 계속된다.

  세종은 문화시대를 열어 인간으로서나 지도자로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도덕적으로 엄격히 규범을 세워 자정능력을 스스로 키워나가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었다. 조선왕조의 건국 후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의 비전을 만드는 속에서 이어받아야 할 과제와 과감히 변해야 할 과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전통과 미래를 슬기롭게 조화시켜 나라의 기반을 다져나갔다. 


  지도자의 덕목 중 둘째는 목표와 방향을 정했으면 그것을 수행하는 과정과 방법에서 합리성을 토대로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추진력을 키우는 것이다.

  세종은 원칙을 준수하되 유연하게 대처하며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공생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삶은 ‘살다와 살리다’의 두 가지 뜻이 있는 것처럼 균형 있는 판단력과 조화의 지혜로 실천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세종시대에는 훌륭한 신하가 많았다. 황희와 맹사성은 세종이 균형 있는 판단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황희 정승이 원칙주의자로서 정확하고 강직했다면, 맹사성은 부드럽고 유연했다.


  셋째 덕목은 신뢰의 바탕 위에서 광범위한 지지기반을 확보하여 역할분담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재등용에 통찰력과 포용력을 줘야 한다. 세종은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하여 믿음으로 키워나가면서 잠재된 능력을 최대한 발휘케 하여 모두가 신바람 나게 자기 역할을 수행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다. 믿음을 주지 못하고 위축케 하면 열성을 다하는 분위기를 놓친다.

  세종은 강요보다 설득으로 감동을 자아내어 신뢰의 정치를 솔선수범했는데, 이것이 사회통합력에 기본과제이기도 하다. 당시 사람들은 세종을 ‘동방의 선군’이라고 했다.


  넷째 덕목은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갖춰 보다 폭넓은 시야를 갖고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 헌신과 근면과 성실이 기본적 토대가 된다.

  세종은 항상 공부하고 연구하는 임금으로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헌신하며 정치, 경제, 사회, 국방, 문화 등 모든 분야의 과제를 해결했다. 이리하여 조선왕조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여유와 더불어 사회질서, 문화의 독창성과 과학시대를 열어나갈 수 있었다.  당시대의 리더로서 철저히 구현해 나갔다.


  다섯째 덕목은 무엇보다도 인간과 조직에 대한 애정과 배려이다.

  세종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약자에 대한 배려에서 출발한다. 한글창제의 시대를 뛰어넘어 노비출산휴가, 농업정책의 효율 등 인본정치의 틀을 확고히 하고 백성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줬다. 더불어 살아가며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데 정성을 기울였다.

  신문이나 TV가 없는 당시에도 백성사랑이 그대로 전달되어 궁 밖에 나올 때 백성들이 고구마나 옥수수를 쪄드리곤 했다. 사랑에 감사해서이다.

  세종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 근면성으로 많은 병을 얻었다. 이성룡 박사는 세종의 병과 취미에 대해서 썼는데 취미가 15가지, 병이 20가지나 있었음에도 나라를 위한 정치에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노비출산휴가에 대한 기사는 큰 감동을 줬다. 세종은 1418년에 22세의 나이로 즉위했는데 1422년에 신하에게 한 말이 있다.

  “노비도 인간인데 어떻게 애를 낳자마자 밭일을 시킬 수 있는가? 노비에게 출산휴가 100일을 주면 어떤가?”

  이에 신하들은 신분제 사회에서 그런 휴가를 주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세종의 간곡한 설득에 신하들은 감동하여 노비출산휴가로 100을 주었다.

  그로부터 4년 후의 실록을 보면 세종은 이렇게 제안한다.

  “만삭이 되어 배가 부른 노비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태아와 산모에게 위험하지 않은가? 산전휴가 한 달을 주면 좋겠소.”

  신하들은 일 년 365일에 100일을 줬는데 여기에 한 달을 더 주면 너무   많으니 산전, 산후 합해서 100일 휴가를 권유했다.

  그로부터 또다시 4년 후인 세종 10년 신하들에게 거듭 언급했다. 그러니까 4년마다 계속 언급한 것이다.                 

  “부부란 뭐냐? 부부란 같이 살기만 해서 되느냐? 서로 도와줘야 한다. 아내가 애 낳고 양육하는 동안 남편은 바라보기만 해서 되겠느냐? 남편에게도 산후휴가 한 달을 주도록 하세.”

  이렇게 하여 부부합산 130일 휴가를 줬다. 현대사회에서도 이제야 이룬 것인데, 세종은 여성학자나 노동법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오직 인간 사랑으로 15세기에 일찍이 서양에도 없었던 노비출산휴가를 부여한 것이다.


  우리가 자랑하는 한글은 지배특권층을 위해서가 아니라 말과 글이 다른 모순을 없애고 언어의 정상화와 민족자존심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중국 사람과 말이 다른데 글이 같을 수 있느냐고 하여 한글을 창제했다.

  한편 세종시대에 세금을 줄여주고 농민을 위한 농기구 개발과 농사제도를 확립했다. 이러한 것을 알리려 해도 글을 몰라 스스로 읽어낼 수가 없었다. 지식 있는 양반들에게 물어봐도 바쁘다고 안 가르쳐주거나 거꾸로 가르쳐줘서 백성들은 못 배운 것을 서러워했다.

  한글창제에 박차를 가하자 양반들은 중국에 대한 모욕이며 특권층에 대한 도전이라고 해서 반대했다. 그래서 1443년에 창제해 놓고도 반포는 3년 후인 1446년에 하게 됐다.

  한글이 없었더라면 창피한 민족이 되고 문화의 창조적이고 독창적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을 뻔했다. 세종이 천년을 열어놓았던 것이 한글창제 하나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10월 9일 한글날을 기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글은 과학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컴퓨터 시대에 상당한 역할을 한다. 알파벳과 수열이 같으므로 능수능란하게 다를 수 있고, 일본은 두 배의 글자이므로 속도가 느리며, 중국은 뜻글자이므로 잘 맞지 않다. 우리 학생들이 휴대폰을 떡 주무르듯이 신속하게 사용하는 것도 한글이 과학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세종시대는 유능한 군주가 인적, 물적 자원을 집중 투입하여 많은 성과를 거뒀는데, 이것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보여준다.


  훌륭한 리더가 역사의 빛을 밝혀왔지만 새로운 차원의 리더십에 눈을 뜬 것은 이 땅의 여명기에 기독교가 들어와 많은 새 생명의 싹을 트이게 한 일이라 하겠다.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 가는 것 같지만 역사 발전의 더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의 섭리가 주관함을 깨달아야 한다.   

  요즘 총장의 직분으로 큰일을 맡으면서 인간의 한계를 절감했다. 성심껏 노력하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응하고, 또 그 길을 묻기 위해 열심히 기도 한다. 하나님 보기에 아름다운 길로 가기 위해 지혜와 정성을 모은다.

  1959년 이화여중에 입학하여 여고를 거쳐 1965년 이화대학에 진학한 후 한 번도 이화를 떠난 적이 없다. 이제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화의 교육과 역사학자로서 이화의 역사정리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으며 신앙의 깊이를 더해왔다.

  이화의 역사는 한국 근대사요 여성사이자 기독교의 역사이기도 하다. 한편 섬김의 과정이며 하나님의 진리를 실천하는 증거의 기록이기도.


  이쯤에서 강연을 열심히 듣고 있던 아내 목장화는 스스로 감탄하고 말았다. 자신도 이화여중고를 나와 이화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단과대학의 학생회장도 맡았던 지난날을 회고해보며 과연 총장과 같은 신앙심 깊고 자신을 철저히 계발하는 여성이 될 수 있을까에 스스로 추슬러보기도 했다.


  연사의 강연은 계속되었다.

  지금도 중학 입학 당시 기억이 생생하다. 노천강단에서 예배드릴 때 찬송가 78장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를 부를 때 하나님의 세계에는 세상보다 더 높고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는 것이 꿈과 희망과 환희를 열어줬다. 어린 시절의 드높은 꿈과 이상을 심어준 것이다.

  노천강당의 돌바닥이 차가워 일일이 방석을 갖다 주시는 교장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의 품 안에서 이뤄온 이화 공동체의 생활은 참으로 훈훈하고 든든하다는 믿음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또 교실에서 성경 공부를 할 때 노(老) 선생님께서 성경책 순서를 노래 말로 가르쳐주신 것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쉽게 외우는 것을 보고 신통방통하다는 칭찬과 격려는 우리 자신이 귀하다는 당당함과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이화는 1886년 미국 선교사 스크랜튼 선생이 한 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학교이다. 당시 유교적 틀 안에서 도덕과 순종의 강요로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교육에서 소외된 이 땅의 여성을 기독교정신에 입각하여 최초로 교육을 시킨 곳이 이화학당이다. 교육을 통해서 차별과 빈곤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원대한 꿈을 갖고 학당을 세웠다.

  이화가 설립된 1886년 5월은 한국여성들에게 평등정신에 입각한 교육의 시작, 즉 여성 근대교육의 원년으로 기록되며, 이를 국가에서도 소중하게 여겨 1887년 2월 고종황제가 직접 ‘이화’라는 교명을 지어 이화학당 현판을 하사했다. 정부가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여 그 이상(理想)을 높인 것이다.

  이화학당의 시작은 한국여성으로 하여금 고단한 삶에서 떨쳐 일어나 이 땅에서 강인한 인간으로 굳건히 설 수 있는 기반을 조성했다. 또 여성들이 무지로부터 해방하여 교육을 통해 지적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가부장적 굴레로부터 벗어나서 근대적인 의식으로 깨어나 그 동안 내외법으로 인하여 안에서 유폐되었던 여성들이 틀로부터 해방되는 단초가 되었다. 아내와 며느리로서 역할만 강조되었던 봉건적 인습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사회인으로 진출하여 남녀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성으로부터 해방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화의 출발은 우연히,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의 여성의 인간화를 위해 앞으로 양성평등시대를 열어가는 초석을 놓기 위하여 예비한 길이다. 스크랜튼 선생은 하나님이 부여한 거룩한 소명을 성실히 수행해서 억압 받던 여성들에게 새 빛을 던져주어 사람다움의 새날을 열어가게 한 것이다. 스크랜튼 선생을 비롯한 지도자의 리더십은 서양과 한국에 아름다운 만남의 조화를 이룬 글로벌 리더십의 선구라 하겠다.

  요즘 대학들은 글로벌화 대결이 치열한데 지난번 중앙일보의 평가에서 이화는 글로벌화에서 상당한 우위의 성과를 인정받은 바 있다. 글로벌 리더십은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타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신뢰가 지속적으로 쌓여갈 때 평화를 일구어낸다.

  스크랜튼 선생은 이역만리에서 처음으로 찾아온 한국에 대한 애정과 존중을 갖고 한국적인 것에 긍지를 심어주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목표는 이 여아들로 하여금 외국 사람의 생활, 의복 및 환경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을 보다 나은 한국인으로 만드는 것에 만족한다. 우리는 한국인이 한국적인 것에 긍지를 갖고,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교훈을 가르쳐 완전무결한 한국인을 만들고자 희망하는 바이다.”

  스크랜튼 선생은 1886년 많은 기금을 모아 한국 최초의 교사(校舍)인 이화학당을 한옥으로 지었다. 건평 200평으로 당시에는 궁궐 다음으로 크고 전망 좋은 집을 지었다. 교육기관이고 기숙사도 있어야 하기에 규모가 커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가난하고 버림받은 여성들에게 스스로 소중함을 느끼고 기죽지 말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의식을 불어넣어주기 위함이었다.


  첫 번째의 학생은 서른 살의 통역관을 자처하던 기혼여성이었지만 두 번째는 열 살의 꽃님이, 세 번째는 네 살의 별단이, 네 번째는 열한 살의 점동이었다. 점동이는 한국 최초 여성의사인 박 에스터이다. 그녀는 이화학당에 1886년에 입학했는데 의사가 된 계기는 여성전용병원에서 홀 부인의 보조역을 할 때 언챙이 수술을 보고 기독교의 하나님 사랑은 사람의 마음뿐만 아니라 얼굴의 모습도 아름답게 해주는구나 하고 마음의 감동을 얻어서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래하여 1884년 미국 유학을 가서 의사자격증을 따고는 1900년 귀국하여 전국을 돌며 아픈 여성들을 진료하다가 1907년 과로로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이화의 선생들의 리더십은 여성들이 역사의 주체로서 우뚝 서게 하기 위해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서 새 생명을 싹트게 하고 끊임없는 헌신과 기도로써 어려움을 극복한 것이다.

  당시 내외법으로 여학생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는데 서양인에 대한 괴소문, 즉 아이를 잡아다가 서양으로 데려간다느니, 눈알을 빼서 사진기를 만든다느니 하는 괴소문으로 여학생들을 얻기가 매우 어려웠다. 남학생과 합치면 큰 문제는 없지만 오로지 역사의 수레바퀴의 양축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 여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신념 때문에 한 사람의 학생으로 시작하면서 희망을 일구어 나갔다.

  스크랜튼 선생은 어렵게 학생들을 구할 때나 최초로 한옥교사를 지을 때도 오로지 성심으로 일하면서 하나님께 의지하는 기도가 있었다. 이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할 것이며 일을 실패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일념으로 이화를 키워냈다.

  오로지 하나님의 믿음에 대한 굳건한 신념이 이화를 오늘날 17만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세계 최대의 여자대학으로 우뚝 선 것이다.


  지금의 신촌캠퍼스 시대를 1935년에 열 수 있었던 것은 제6대 교장인 아펜셀러 선생의 기도를 비롯한 이화인의 피나는 노력과 땀방울로 이뤄낸 것이다. 한편으로는 사심 없는 필사적인 기도가 이 거룩한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아펜셀러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이화는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사랑의 결정체로서 어느 한 사람이 이화를 만들었다고 말할 수 없으며, 그것은 전세계의 사랑이 일구어낸 것입니다.”

  파이프 여사가 많은 돈을 기부했지만 만일 우리가 기도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그 돈을 우리에게 주었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었을까?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새로운 이화는 단순한 학교일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여성의 꿈의 궁전이다. 이화의 기도와 헌신의 역사는 계속 릴레이로 이어질 것이다.

  병들어 신음하는 여성들을 밤낮없이 치료하면서 애태워하는 박에스터의 기도, 암흑시절 민족독립을 위하여 절규하는 유관순 열사의 기도, 신촌캠퍼스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폐결핵으로 생사가 바람 앞의 촛불임에도 사심 없이 필사적으로 헌신하는 김에다 선배의 기도가 이화의 뿌리가 되고, 가지가 되며, 열매가 되어서 오늘에 이르렀다.

  참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탐구하는, 착하고 덕성스런 마음으로 아름다움과 미의 균형과 조화의 진선미 정신을 이어 오면서 섬김과 나눔, 사랑과 헌신, 포용과 화합은 이 땅의 많은 여성선각자를 키워왔다.


  지난해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이화는 19세기에는 인간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20세기에는 프런티어 정신으로 남성의 영역인 모든 분야의 벽을 허물어 전문적인 일에 진출해서 여성의 지혜와 힘이 이제 21세기 대표문화를 선도하고 대학교육을 주도하는 이니셔티브 이화를 주창한 바 있다.     

  유능하고 따뜻한 심성, 인성과 지성을 겸비한 인재를 양성한다는 틀에서 이웃을 섬기고 약자를 배려하며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높이면서 헤아릴 줄 아는 지성, 큰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한계를 깨야 한다. 겸손하게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리더십,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리더십, 다문화적 소양을 갖춰 평화를 만들어 나가는 글로벌 인재를 육성해서 이화에 부여된 하나님의 소명을 새로이 감당하면서 이화가 세계의 대학으로, 진리의 대학으로 웅비해나가는 데 온갖 정성을 기울일 것이다.


  기자들은 인터뷰에서 이화의 특성을 묻곤 하는데 이때 대답은 이렇다.

  “이화의 특성의 중심축은 여성역사의 주인이라는 주체성, 능력을 극대화하는 전문성, 자신의 믿음에 대한 자신감입니다.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신감이라 하겠습니다. 학생들은 복잡하게 말하면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체성, 전문성, 자신감을 ‘주전자 정신’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주전자 이야기가 나왔을 때 성도들은 웃었다.

  이 주전자는 빈 주전자가 아니라 사랑과 헌신의 단물을 부어서 이를 후배들에게 부어줄 때 이화가 존재하는 의미와 보람이 있는 것이라고 연사는 부연했다.


  마지막으로 평소 즐겨 암송하는 성경구절을 소개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로 18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깊숙하게 잠잠히 흐르는 감사와 기도의 생활, 상처주지 않고  모두를 살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리더십이 온 세상에 퍼져나갈 때 세상은 더욱 따뜻해지고 맑은 영혼과 함께 우리 모두가 염원하는 평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다.

  강연은 목장화에게 도전의 메시지이자 미래의 소망으로 다가왔다.





6. 한반도 평화, 교회 그리고 리더십



 


  외교관 출신인 연사를 소개하기 전에 사회자는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자신의 꿈은 외교관이라고 말했던 것을 상기하면서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그 꿈을 잃지 않고 실천하는 중이라고 했다.

  세상의 외교관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하나님 나라의 외교관으로 봉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사는 자신을 국제정치학 교수이며 실무경험자로 소개했다. 실무경험은 물론 외무부장관이다.

  그런 바탕으로 오늘은 우리민족의 염원인 한반도 평화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교회의 역할이 무엇이며, 리더십 발휘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를 알아보는 것이 강연의 주제다.


  사람의 나이가 서른이면 청년기를 지나 본격적인 활동의 시기인 장년기로 들어간다. 이제 서른 살 된 소망교회가 지난날 닦아온 능력을 바탕으로 이웃과 세계 향해 리더십을 발휘할 때다.

  왜 한반도 평화냐?

  TV를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보면서 평화의 희망을 가져본다. 교인의 입장에서는 “화평케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기에 한반도 평화 달성을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

  한민족은 기구한 운명의 1세기를 지내왔다. 전반 50년은 제국주의 치하에 있었고, 후반 50년은 냉전 갈등 속에서 고통을 받아왔다. 지구상에서 냉전 종식된 지 17년이 되었음에도 아직 남북의 150만 젊은이가 중무장하여 총부리를 서로 겨누고 있고, 1,000만 이산가족이 상봉을 기다리는 비인도적 상황의 세계 유일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제1, 2차 북핵위기가 미결인 상태에서 북쪽이 진정으로 핵 포기를 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나마 남쪽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도입하여 정치, 경제 발전을 하여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했다.

  그가 대학 다닐 때만 하더라도 친구들 간에 이런 농담이 있었다.

  “네가 쉬고 싶으면 바깥에 나가서 헌법을 비판해보라. 그러면 최소한 한 달 동안은 국가에서 모셔놓고 밥을 먹여줄 것이다.” 지금은 많이 변해 정치 경제발전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북한현실은 못 먹어서 키가 남한보다 15cm나 작고, 또 오랫동안 못살아 골상까지 바뀐 것 같다. 남북의 종족이 달라진 느낌이다.

  몇 달 전 봉천동에서 탈북자 30명 정도를 교육하고 있는 ‘여명학교’에서 강연한 적이 있었다. 강연 후 식사 중에 초등학생 같은 여학생이 지나갔었는데, 교장은 그 아이가 18살이라고 했다. 병원 의사에 의하면 성장판이 닫혀서 더 이상 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돈을 벌어서 동생을 불러들였는데 다행히 동생은 성장판에 이상이 없어 6개월 치료 후에 10cm 성장했다. 이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한반도의 비극은 100여 년 전 선조들이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첫 단추를 잘못 꿰었기 때문이다.

  외교란 당장은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 같으나 서서히 두고두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조들이 꼬아놓은 역사의 매듭을 우리가 풀고 떳떳하게 잘해나가야 한다.


  외교의 터인 국제정치는 어떤 세계인가?

  가령 물건을 훔친 도둑이 있다고 하면 경찰이 잡아서 유치장에 넣고 재판에서 죄가 확인되면 사회로부터 격리하여 처벌하면 된다. 그러나 국제정치는 다르다.

  그 예로, 1905년 일본이 무력을 앞세워 한국을 협박하여 외교권을 박탈하고 5년 후에 을사늑약을 체결하여 합병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어느 나라도 경찰 역할을 해서 일본을 혼낸 적이 없고, 오히려 뒤에서 자기들끼리 담합, 야합하여 “너희는 이쪽을 먹어라, 우리는 저 쪽을 먹겠다”는 식의 거래를 한다.

  국제정치는 험한 판이다. 그래서 힘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역사 이후 모든 지도자들은 나라의 힘을 키우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누구도 타국의 생존이나 안보를 돌봐주지 않는다.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힘을 키워야 하나, 힘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항상 변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나 권불십년(權不十年)처럼 꽃은 열흘을 못 가고, 권력은 십년을 못 간다. 국제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힘쓰고 있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권력구조가 어떻게 변하는지 잘 관찰하여 현명한 계산을 해서 행동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하면 백성들이 고통에 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광해군의 외교를 생각해보자. 당시에는 중국 명나라를 숭상하는 외교를 펼쳤다. 이는 임진왜란 때 군대를 파견하여 도와준 것도 있지만 당시 중화사대 질서이기도 했다.

  그런데 만주 후금이 일어나 급속히 커지자 명나라 조정에서 후금을 치기 위해 조선의 군대파견을 요청했다. 광해군은 현실적 정치 감각이 있어서 군대파견을 미루면서, 우리 장수에게 “너무 열심히 싸우지 말고 적당한 시점에 항복해 병졸의 목숨을 구하라”고 했다. 일종의 실리(實利) 외교였다.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왕위에서 끌어내려지고 인조가 집정했다. 인조는 숭명(崇明)외교에 매진하여 “의리를 모르는 광해군은 야만외교를 했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국제정치에서 힘의 변화를 도외시한 인조의 정책은 결과적으로 피해를 자초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나 백성이 험난한 고초를 당하고 왕이 청나라에게 절하는 굴욕을 당했다. 

  국제정치에서 이처럼 외교 실패로 당한 예는 상당히 많다.  19세기 후반 일본은 그 반대의 사례였다.

  백이삼십 년 전 서양 제국주의 물결이 물밀듯이 동쪽으로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군함 4척을 이끌고 일본 동경만에  진입하여 무시무시한 대포를 쏘아대며 개항하라고 협박했다. 일본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일본은 서구문명을 받아들여 힘을 키워야 되겠다고 작정하고, 1868년 메이지유신을 통해 왕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서양문물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100명 정도의 엘리트 사절단을 유럽에 파견하여 시찰토록 했다. 잘사는 나라들의 비밀을 듣고 배워 산업발전, 정치제도 등에 관한 두꺼운 책을 만들었고, 그대로 문물과 제도를 바꾸어 나라의 힘을 키웠다.

  그때 재미있는 예화가 있다. 유럽이 잘 사는 이유가 기계도입으로 빠르게 물건을 제조했다는 점이라는 것을 이들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공장 기계를 도입하여 가동하려 했는데 젊은이들은 큰 소음을 내는 기계가 사람의 혼을 빼앗아 간다고 하여 공장에서 일하기를 기피했다. 이러자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은 그들 자신의 딸들을 소집하여 공장 일을 시켜서 공장이 잘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 다음부터 공장제도가 뿌리내리게 되었다. 중요한 국제정치의 변화시점에 세상의 변화를 꿰뚫어 알고 신중한 전략으로 대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연사는 외교대응에 대한 두 가지의 개인의견을 말하고자 했다.

  첫째, 감정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 워낙 우리 민족이 외침(外侵)을 많이 당해 가슴 속에 한(恨)이 맺혀있긴 하지만, 감정이 개입하면 판단을 그르칠 수 있고 한 번의 판단 착오는 전혀 다른 운명의 길로 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냉철한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국력을 과소평가하는 자기비하는 좋지 않다. 물론 과대평가도 좋지 않다. 한 친구가 농담으로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힘센 나라가 어딘 줄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것은 한국이라고 말했다. 세계 제2의 경제대국 일본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습게 보는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우리 국력에 대한 과대평가의 사례로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자기비하는 더욱 좋지 않다. 어떤 국제적인 학술모임에서 한국대표가 고래 싸움에 등터지는 새우 같은 나라가 한국이라고 발언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듣고 있던 다른 나라 대표가 손을 들어 “왜 한국이 새우냐? 적어도 돌고래는 되는데…”라고 했다. 돌고래는 고래보다 훨씬 작지만 머리 좋고 영리하며 대양을 누비고 다닌다.

  아무리 힘이 센 호랑이라고 하더라도 고양이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고양이에 불과하고 놀림감이 될 뿐이다. 자긍심을 가지며 적극적인 자세로 이웃 나라와의 관계를 관리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얼마 전에 중국 연구소의 핵심 멤버에게 북한에 대한 견해를 물었을 때 그의 반응은 이랬다.

  “북한은 골치 아프지만 전통적으로 특수 관계이고 동맹관계이므로 중국에게 중요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한국과 중국 간에는 항공편이 일주일에 800편, 북한과 중국 간에는 5편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대답은 이미 한반도의 주도권은 한국에 있으므로 잘해보라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은 우리를 주도자로 평가하여 협조할 용의가 있다는 사인을 보내고 있다. 북한에 무슨 일이 생기면 중국이 어떻게 하지 않을까 걱정하기보다는 자신감을 갖고 전략과 논리를 개발하여 대응하는 것이 옳다.

  대만에 대해서는 하나의 중국이라고 하면서 한국과 북한을 하나의 민족국가로 존중해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기모순이라고 떳떳이 주장할 수 있다. 주도면밀하게 준비하고 연구하여 외교전략 및 협상전략을 짜야한다. 이렇게 국제무대에서 떳떳하게 적극적으로 외교를 펼친 나라가 독일이다.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자 콜 총리가 힘이 센 미국과의 관계를 활용하여 통일목표를 달성했다. 부시 대통령과 친분관계가 워낙 좋았다. 한번은 전화로 서독이 고르바초프의 친소정책으로 바꾼다는 언론보도는 잘못된 것이다, 우리 정책은 어디까지나 친 서방이다, 당신이 우리를 도와달라고 했다.  그 이튿날 부시대통령은 뉴욕타임즈와의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의 독일통일을 지지하고 독일통일이 유럽과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당시 독일 주변 국가들은 독일통일을 원하지 않았다. 역사상 독일은 힘만 세어지면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1870년 프랑스와의 전쟁, 제1차, 2차 세계대전이 그 예이다. 그래서 독일은 쪼개놓아야 한다고 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농담으로 “우리는 독일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로서는 만족하지 못하고 최소한 두 개 정도는 돼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주변국의 견제가 심했지만 미국대통령의 발언을 통해 잠재우면서 콜 총리는 서서히 통일 분위기를 만들어나갔다.  

  한반도 통일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그러한 적극적이고 주도면밀한 그리고 유연한 외교 전략을 펼쳐나가야 한다.


  이러한 점들을 염두에 두고 우리 외교를 생각해보자. 첫째로 미국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우선 미국은 북한 핵문제부터 푸는데 핵심적 국가이고 우리와는 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리고 남북이 협력하여 통일이 된다고 하더라도 북한경제가 살아나지 않으면 그 통일은 오래 가지 못한다. 북한지역 주민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남쪽으로 내려오지 않고도 현지에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직장이 있고 경제가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고, 그 액수는 우리 정부가 세금을 세 배로 올리더라도 충당하지 못한다. 결국 서방자본, 월(Wall)가자본, 동경자본 등이 들어와야 하는데 이 자본들은 그냥 들어오지 않는다. 투자 이득을 꼼꼼히 따지고 컴퓨터를 두들겨서 이익이 기대될 때 들어온다.

  이를 위해 북한은 IMF와 세계은행에 가입해야 한다. 그래야만 기술원조와 자금원조가 가능하고, 민간자본도 안심하고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IMF에 들어가야 하는데 미국이 딱 막고 있다. IMF는 기금으로서 주식회사와 마찬가지다. 새로운 멤버로 가입하려면 85%의 찬성이 필요한데 17%의 주식을 갖고 있는 미국이 핵문제 및 테러문제와 연계하여 북한의 가입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어떤 형태로든 협조해야만 북한경제의 본격적인 재건이 가능하다. 경제난으로 고통 받고 있는 북한주민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서 미국을 협조하도록 끌어들여야 한다. 90년대 초 이후 북한정부마저도 원하고 있는 것이 미국과의 관계개선이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남북이 실질적인 통일기반을 마련하는데 미국의 협조를 유도해내야 한다.


  둘째로 그렇다면 중국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중국은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여 앞으로 2, 30년 후에도 세계정치의 화두가 될 것이다. 경제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한중 관계는 갈수록 가까워지고 있다. 그들의 협조는 한반도정세의 안정에 대단히 중요하다. 이처럼 한미관계는 물론 한중관계도 중요하므로 우리는 이를 잘 관리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둘 중에 골라잡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외교란 골라잡는 것이 아니다. 미중 두 나라 관계가 잘 나가고 있는데 대립할 것을 전제하고 어느 한쪽을 미리 선택한다면 그것은 현명치 못한 짓이다.

  다만 미국과는 군사동맹의 높은 단계의 관계이고 중국과는 전면적 우호협력관계이기에 질적으로 다르다. 이에 걸맞게 다루어주면서 세련된 접근을 요한다. 외교는 때로는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것이어서 신중하고 현명한 접근을 요한다.

  미국이 중국을 다루는 방법은 대단하다. 하나의 중국을 찬성하면서도 중국의 대만통일을 위한 무력행사를 좌시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런 조짐이 보이면 함대를 파견한다. 그러면서 대만한테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공유하기에 지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만일 공개적으로 독립을 선언한다면 그때는 책임 못 지겠다는 자세로 대한다. 그야말로 헷갈리게 만든다. 양쪽 국가가 꼼짝없이 따르도록 해서 미국에 이익이 되고 동북아에 평화를 가져오게끔 하는 것이다.

  외교란 이거냐 저거냐 식의 골라잡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일본도 역사적으로 걸린 게 많지만 감정을 자제하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협력하도록 우호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로 한반도 평화를 위해 협조관계를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자원 수출로 벌어들인 재원을 앞으로 연해주 개발을 위해 사용할 것이다. 그때 남쪽의 자본과 기술에다가 북한의 노동력을 진출시켜 합작투자하면 새로운 북방정책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변화할 수밖에 없고 또 큰 변화가 오리라고 생각한다. 갑작스런 변화보다는 점진적으로 서서히 왔으면 좋겠다는 것이 정부의 정책이다. 북한의 사회주의경제체제는 이미 작동이 멈췄고 공공배급체계도 무너진 지 오래다. 지금은 사회주의경제체제와 시장경제체제의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지만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될 수는 없다. 시장 메커니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변화의 과정에서 핵문제는 마지막 고비이다. 이것이 풀리면 엄청난 변화가 한반도에 몰아칠 것이다. 변화의 방향과 과정을 잘 유도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지혜롭고 냉철한 판단을 하여 성경말씀처럼 뱀처럼 지혜롭게 계산하여 외교 전략을 꾸려나가면서 평화통일로 나아가야 한다. 시장경제로 전환하도록 도와서 북한주민이 하루라도 빨리 제대로 먹고살 수 있도록 북한동포의 구체적 삶을 도울 의무가 있다. 이를 통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평화통일의 기반을 쌓도록 노력해야 한다.


  모든 세상일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을 본다. 이제 좀 더 영적 차원에서 생각해보도록 하자. 아무리 정치적, 경제적 통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남북한이 사람과 사람 간에 통하는 것이 없으면 진정한 통일이 되지 못한다. 북한주민은 몇 십 년 동안 하나님을 모르는 체제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남쪽에 내려온 새터민들은 심리적으로 이중적이다. 새터민 사역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을 사랑하고 섬기려 접근해도 마음을 제대로 열지 않는다고 한다. 때로는 이쪽의 선의를 역으로 이용해서 자기들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고 한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이는 이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체제에서 영혼의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했고 이웃사랑을 명령받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야 한다. 북한 사람들을 감싸 안고 사랑으로 대하여 전혀 성격이 다른 민주주의와 시장체제에 적응하도록 도와야 한다. 한국 교회가 앞장서면 큰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한다.

  어느 탈북 청소년은 북한은 배고파서, 중국은 무서워서, 한국은 몰라서 못살겠다고 했다. 이게 현실인 것 같다. 체제를 모르기 때문에 엄청난 심리적 고통을 받고 굉장히 외롭게 지내고 있다. 큰 교회가 끌어안고 품지 못하면 통일이 됐을 때 이를 감당하지 못한다. 북한에 살고 있는 동포가 중요하지만 우리 가까운데 살고 있는 새터민 지원도 중요하다. 새터민 문제는 우리 민족이 통일될 경우 북한동포들을 품어 안을 수 있는 역량을 미리 기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예습과제라고 본다. 이것은 교회가 영적 리더십을 발휘할 부분이다.


  만약 우리 교회가 그리고 우리 사회가 이것을 감당할 능력이 되어 마침내 평화통일을 달성할 수 있게 된다면 통일된 한국은 동북아의 평화를 주도하는 지도자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분단극복을 통해 그러한 역량이 길러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크기는 작아도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가 상호 갈등이나 분쟁을 하지 않도록 동북아시아에 평화를 중재해내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지도자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비전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소련공산당 지배가 한창이었던 1983년 유명한 템플턴 상을 받은 알렉산더 솔제니친은 그의 수상연설에서 질문했다. 1917년 러시아공산혁명 이후 6,000만 명이 죽었다고 했다. 그런 희생의 근본 이유가 무엇인지 자문한 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었다고 자답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한국이 하나님을 잊어버린 채 통일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모래 위의 성과 다름없을 것이다.

  “여기에 계신 모든 분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 위에서 통일을 하는데 선구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 교회, 나아가서 한국교회가 영적 리더십을 발휘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연사는 영적 리더십이란 ‘낮아지는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이 말구유에서 태어났고 십자가에서 죽었던 것처럼 낮아지는 본을 보여야 한다. 한국 사람이나 북한 사람, 이웃이나 새터민을 사랑으로 섬기고 낮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스스로가 확실히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리하고 자극에 민첩하게 반응하며 감동하는 학생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기도 한다고 했다.

  제자 중에 한 명은 졸업하자마자 중앙아시아에 가서 7년 동안 선교사로 활동했다. 신앙심이 굉장히 좋은 학생인데 공부도 잘했고, 유족한 가정에서 태어난 듯 했다. 서울대 출신으로서 한국의 미래 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 텐데도 선교사로 봉사한 것이다. 그가 대화중에 “모처럼 한국에 와서 서울 거리를 다니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어주면 황송스러운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국민소득 몇 백 달러밖에 되지 않는 나라에서 오래 살다보니 동질화되어버린 것이다.

  연사는 그가 정말 낮아졌구나,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았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는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말했지만 속으로 충격을 받았다. 연사는 그의 삶처럼 낮아지는 데에 익숙하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느꼈고 스스로 반성했다고 한다.

  가끔 아는 사람들이 어느 교회에 다니느냐고 물을 때 본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 그들은 경이롭다는 듯이 그 교회를 어떻게 다니느냐? 우리가 감히 범접하기 힘든 교회인데…” 하고 놀라곤 했다.

  그때마다 그는 그건 인식이 잘못 된 것이고, 우리 교인 중에는 남모르게 숨어서 섬기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고 이야기해주곤 했다. 그러면서도 교회가 좀 더 노력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우리 교회, 그리고 한국의 모든 교회가 좀 더 낮아져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는 데 영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7. 나의 신앙과 우리사회의 과제





  무려 4조원의 주식 보유로 한국 최고의 주식부자인 연사는 도무지 돈과는 관계없는 것 같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그럼에도 돈이 그에게 끌려간 것은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 돈은 자기를 부드럽게 맞이하는 사람에게 갈 것이다. 자기를 혹사하며 도박장이나 유흥가에서 난폭하게 뿌려대는 사람에게는 무서워서 피할 것이다.

  소희철은 강사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 그것은 강사가 축구협회 회장이며 국회의원이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 한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조선회사의 CEO이기 때문이다. 이 조선회사는 소희철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소희철이 일하고 있는 벤처회사는 3년 전에 국가의 금융지원 하에 KIST와 합작으로 ‘초진공단열재(超眞空斷熱材)’를 개발했다. 그러자 2년 전에 이 조선회사와 첨단소재의 공급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회사는 지난 2년 동안 소재의 실용화를 위해 테스트를 거듭해왔고 앞으로 1년 정도만 더 테스트해서 최종 확인하면 대량생산단계에 들어간다.

  “아버지, 왜 소재 테스트에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겁니까?

  테스트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한 소희철은 한때 LNG선의 선장으로 근무한 적이 있는 아버지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LNG선에 적용하려면 안전에 안전을 확인해야 하니까. LNG선은 그야말로 원자폭탄과 마찬가지야. 그래서 신중할 필요가 있지.”

  개발한 소재는 LNG선의 선체에 단열재로 사용될 것이다. 국제특허품인 초진공단열재는 기존의 단열재인 폴리우레탄폼보다 12배의 단열효과가 있다. 이것을 사용하면 선체단열재의 두께가 엄청나게 작아지고, 또 기화(氣化)로 인한 화물손실이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효과를 가져 온다.

  전세계 LNG선의 수주를 한국의 조선회사가 싹쓸이했다. 만약 그의 조선회사가 이 첨단소재를 사용하면 모든 LNG선의 수주를 독점할지 모른다. 이 소재 하나만으로도 수조 원의 매출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연사는 담임목사와 함께 강의실인 성전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강단에 올랐다. 맨 앞줄에 앉아서 연사를 향해 바라보고 있는 담임목사가 적잖이 부담스러웠던지 좀 떨린다고 했다. 축구, 스포츠, 경제, 정치 등 세상의 직업을 다 섭렵하다시피 한 연사가 떨릴 때도 있구나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전의 뒤쪽에서 열심히 경청하고 있는 부인 김 권사가 더 의식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든든한 후원자가 지켜보고 있으니 마음 푹 놓고 강연에 전념할 수도 있을 테고.

  하긴 그의 말처럼 세속적인 일에 매일매일 식은땀을 흘리며 집착하다보니 이런 자리가 오히려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여기가 어딘가?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이 아닌가.


  수만 명의 그룹 식솔들을 거느리고 우리 경제를 선도하는 연사지만 그도 역시 하나님 앞에서는 소박한 자녀중 하나일 뿐이라….

  연단으로 올라오면서 그는 잠시 사회자와 눈인사를 나누고 악수를 했다. 이미 친분이 있는 사회자인가 보다.

  사회자는 짧은 멘트로 자신은 미스코리아 출신으로서 연사의 부인과 미모로 견준다면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왜 자신의 옆에는 연사와 같은 멋진 남성이 없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을 때 성도들은 동의한다는 뜻의 웃음을 보였다. 얼마 전에 이혼한 사실을 알고 있는 듯.


  연사는 웃음으로 사회자의 멘트에 답하고 낮은 톤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저희 집안의 신앙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가 교회 바로 옆에 있는 3층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을 때였다. 배달되어온 우편물이 있어서 열어보니 이 교회에서 온 우편물이었다. 서리집사라는 제목 하에 이름들이 쭉 씌어져 있었고, 그 안에 작은 글씨로 그의 이름이 들어있었다. 명칭이 서리집사로 되어 있어서 누구에게 물어보기도 창피하여 아는 척하고 있었는데, 집사가 되었다는 뜻인지, 좀 더 노력하라는 뜻인지, 아니면 아직도 안 됐다는 뜻인지 궁금했다는 것이다.

  연사는 정동교회의 은준관 목사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선친 왕회장은 그의 형제 모두를 한 명도 빠짐없이 정동교회에서 결혼하도록 했다.

  아버지는 교회에 나가지는 않았지만 기독교에 대한 관심은 많았던 것 같다. 아버지는 주일이면 가끔 정동교회의 예배에 참석하여 설교를 열심히 듣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이 축구대부는 설교자보다도 더 조바심이 났다고 한다. 아버지가 모처럼 왔는데 오늘은 멋진 설교로 아버지를 감동시켜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버지의 고향은 강원도 통천 두메산골이다. 특히 아버지는 어린 시절 겨울 이야기를 많이 했다. 가난하니까 저녁에는 쌀 조금에다가 물을 많이 부어 죽을 쑤어먹었다. 움직이면 쉽게 배고프니까 빨리 누워 잠자게 했다.

  아버지는 눈 이야기도 많이 들려줬다. 일제시대에도 거기에는 눈이 많이 와서 일본 사람들이 스키를 많이 타곤 했다. 우리나라에 스키장이 없을 때도 아버지는 외국출장 갔다 올 때는 스키를 사가지고 왔다. 그래서 그는 스키를 많이 탈 수 있었다.

  서울의 청운동에 살면서도 눈이 많이 오면 아버지는 강원도 고향을 생각하곤 했다. 아버지는 당시 집에 자주 놀러온 분들 중에 이화여고 교장이었던 정희경 선생을 자주 불러서 복음성가 모임을 가졌다. 여자들은 대개 권사로 부르곤 했지만, 당시에는 권사가 뭔지 몰랐다. 복음성가를 좋아한 아버지는 이런 모임을 일 년에 대여섯 번 가졌다. 

  아버지가 연로하여 건강이 안 좋아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자식들이 아버지에게 무엇을 해드릴까 생각하다가 하용조 목사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기도 후 복음성가인 ‘강 같은 평화’를 같이 부를 때는 병상의 아버지가 박수치며 기뻐했던 것이 기억난다.


  연사가 교회에 다니게 된 것은 아내 때문이라고 한다. 아내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외무부장관을 지냈던 김동조 장관이 바로 그의 장인이다. 장인의 선친은 부산 김해의 최초 성결교회를 설립한 분이다. 그러니 이런 집안에서 교회에 다니지 않을 통뼈 사위는 없었을 것이다.   


  20년 전 소망교회에서 세례 받았던 그 때의 기억은 항상 새롭단다. 윤영관 교수와 함께 미국 워싱턴 대학의 대학원을 다니다가 1987년 귀국했다.

  미국에 살면서 부모가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녀들의 유아세례를 줄 수 없다고 하는 한인교회 목사에게 “아직 학생이라 바빠서 그러니 서울에 가면 꼭 세례를 받겠다”는 조건으로 자녀의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서울에 와서는 그가 세례를 받을 차례다.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세례문답 성경공부를 해야 한다. 저녁에 세례문답 책을 나눠주고 오리엔테이션을 하는데 어느 젊은 목사가 이렇게 말했다.

  “이번 세례는 바겐세일로 디스카운트하니 걱정하지 말고 다들 오세요. 책은 나눠주지만 공부하면 좋고, 혹시 갑작스런 일로 공부하지 못해도 이번에는 오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제자가 몇 명이냐고 물을 때 열두 명이라고 하면 정답이지만 여섯 명이라고 해도 반은 맞으니까 붙여드립니다. 모두들 꼭 오세요.”

  이 덕분에 세례도 받고 후에 서리집사도 되었다면서 그는 웃었다.


  “축구 이야기를 좀 할까 합니다.”

  그는 축구 이야기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신 있게 풀어나갈 수 있다.

  그는 축구협회 회장으로 장기집권하고 있음을 고백했다. 한번에 4년을 네 번 하니 모두 16년을 하는 셈이다. 이제 자리가 위태롭게 느껴진다고 했다.

  축구협회의 중요 부서의 하나로 기술위원회가 있는데, 여기에서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을 구성하고 또 국가대표 감독을 뽑는 일을 한다. 페어백 감독이 사표를 냈으므로 10월내에 국가대표감독을 뽑아야 한다. 이 기술위원회를 맡고 있는 사람은 할렐루야 축구팀의 이영무 감독이다.

  “이영무 위원장은 목사님이시고 저는 집사라서 항상 조심스럽게 모시고 있습니다.”

  목사와 집사는 계급이 아닌데도 그는 겸손한 표현을 썼다..

  축구를 좋아하다 보니 목사들과 축구를 같이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에는 CBS 주체로 국가대표선수들이 훈련하는 파주 축구센터에서 전국목회자축구대회가 있었는데 준결승전에서 어느 목사 한 분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키도 크고 거무스레하게 잘생긴데다가, 공도 잘 차고 공중 헤딩도 잘하는 그 선수는 지네딘 지단처럼 머리도 벗겨져 특별히 주목 받았다.  알고 보니 대전침례교회의 장경동 목사였더라는 것. TV에 자주 나오는 설교가 재미있고, 그 가운데 오묘한 진리를 품고 있어서 때로는 웃음을 주거나 눈물을 뽑아내기도 한다고 평했다.


  “축구 얘기를 자꾸 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민망했던지 성도들의 반응을 쓸어봤다. 그러면서 계속했다.

  축구는 한 마디로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올림픽대회와 는 전혀 비교가 안 된다는 것. 최근 중국 상하이의 여자월드컵대회는 아주 인기 좋았다. 2002년 월드컵대회 중 부산의 고신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이때 총장이 “해외에 나가 있는 우리나라 선교사가 수천 명인데 2002년 월드컵 덕분에 선교가 쉬워졌다.”고 했다.

  소망교회에서도 많은 선교사를 해외에 파송하고 있는데 축구선교가 필요하면 자신이 나가겠다고 했다. 실은 지금도 그는 축구선교를 하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데도.

  2002년 월드컵을 유치한 것이나, 축구 강국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을 때려잡고 4강에 올라간 것을 두고 어떤 사람은 그가 심판을 매수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는 그런 능력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고 하면서 웃었다. 하나하나가 다 기적이고 하나님의 도우심이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해외에 나갔다가 입국할 때 입국카드에 ‘한국’이라고 써오다가 2002년 월드컵대회 이후는 ‘대한민국’으로 쓴다고 한다. 심지어 어느 교수는 우리나라의 영문 명칭을 'Republic of Korea'가 아닌 'Great Republic of Korea'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람을 느낄 만한 일이다.

  더디어 축구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났는가 보다. 이제는 그가 갖고 있는 생각과 그리고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는 점을 말하고 싶어 한다. 


  대통령선거의 시기가 다가왔다. 5년 전의 상황을 돌이켜보면 착잡하면서도 후련한 생각이 든다. 그때 노무현 후보와 소위 ‘후보단일화’를 했다. 흔히들 정당이라는 것은 생각이 같고 정치이념이 같은 사람끼리 한다고 말한다. 그 말도 일리가 있다. 그런데 생각하는 것과 뜻이 다 같으면 굳이 모여서 할 필요가 있는가? 가끔 가다가 전화만 하면 되지, 다 같이 모여서 시간 낭비할 필요가 있는가? 그런 생각을 했다. 다소 오만한 생각일 수도 있다.

  어쨌든 당시 노무현 후보와는 성장배경과 생각이 다르므로 이런 사람들끼리 한번 힘을 합칠 수 있으면 국민통합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후보단일화해서 잘되면 더욱 좋은 것이고.

  노무현 후보 쪽 사람들과 정치공조 한다고 해서 회의도 많이 했다. 소위 말하는 공동정부를 운영하자고 했는데, 같이 선거운동을 해보니까 말하는 것과 행동이 전혀 다른 것이었다. 결국 자신도 예상치 못한 지지철회라는 의외의 현상이 발생했다.

  사람들은 노 후보 당선에 그가 일조했다고 생각했고, 그도 현 정부가 잘되길 바랐다. 그런데 현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를 들으면서 착잡한 마음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없는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정치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된다고 말하기보다는 지난 10여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우리국민들은 소위 ‘수업료’를 많이 낸 것을 상기해본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많은 기대를 하고, 신경제계획이니 세계화라는 단어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임기 말에 IMF사태를 만나서 국가적 위상은 한없이 추락했고 많은 사람들은 고통을 겪게 되었다.

  현 정부는 불과 4년 동안에 국가부채를 150조 원 이상 증가시켰다. 1948년 정부수립부터 현 정부까지 50여 년간 쌓였던 국가부채 134조 원보다 훨씬 많은 액수를 지난 4년 동안에 늘린 것은 그것은 실로 문제가 있다.

  이렇게 막대한 수업료를 내고 배운 것은 무엇인가?

  이제 우리 국민들은 자칭 진보라는 사람들의 무책임한 모습을 파악했고, 또 보수라는 사람들 - 자신을 숨기기 좋아하기 때문에 자칭 보수라고 하지는 않지만 - 은 너무 우유부단하다는 걸 알았다.

  정치라는 것은 좋은 생각을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서는 안 된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의 거론과 동시에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들은 이번에는 좋은 판단을 해야 한다.

  요즘 우리들이 많이 듣는 말은 ‘잃어버린 10년’이다. 역사를 회고하면 붙일 수 있는 단어는 많다. 우리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신생국가 중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나라이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모든 나라들이 인정하는 사실이기도 하다. 전 세계는 한강의 기적(Miracle of Han River)이라고 했다. 그런데 민주화세력이 집권한 지 10여년이 지난 지금 한강의 기적(Miracle)은 요술(Magic)로 전락하고 말았다. 


  현 정부 사람들 중에는 우리나라 건국정부의 북한과 남한은 모두 분열세력이었다는 식으로 양비론이라기보다는 아주 교묘한 말로써 대한민국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 이들은 대한민국을 기회주의자라고 한다. 이는 우리 모두가 기회주의자의 자식이라는 표현인지, 참 답답하다. 이런 주장은 대한민국의 명예만 훼손시키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온 조상들까지 모두 욕보이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반만년 역사 동안 한반도 주변에는 수많은 민족이 흥했다가 사라졌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우리선조들은 숱한 외부의 침략을 잘 이겨내면서 한민족이라는 역사공동체, 문화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조상들의 엄청난 노력과 용기 그리고 지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한민국의 건국도 이러한 과정의 연장이라고 생각한다.

  석사까지는 신학을 하고 박사는 정치학을 해서 특색 있는 글을 쓰는 서울대의 박 모 교수는 “자랑스러운 우리역사를 부정하는 정치는 부친을 살해하는 정치(Politics of Patricide)라고 표현했다. 현 정부 사람들이 이러한 형태를 보이는 것은 궁금하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목표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 해도 전부가 나쁜 것은 아니다. 좋은 일도 있었다. 예를 들어 2002년 월드컵, 노벨평화상 등은 자랑스러운 것이다. 금강산이나 개성을 가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면 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는가?

  지난 10년간 우리 정치인들은 말을 너무 많이 했고 그들의 생각이 병들어있었다. 말이란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집에서나 직장에서 조심해야 하고 아이들한테도 조심해야 한다. 정치적인 발언은 그 자체가 권력의 행사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때와 장소를 분간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말하면 얼마나 힘들 것인가? 가장이나 정치인이나 다 마찬가지이며 그런 말은 우리의 공동체를 파괴한다. 누구를 겨냥해서 교묘한 논리로 미화한다면 참으로 복잡해진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는 사람은 기분도 좋고 후련하겠지만 듣는 사람은 아주 피곤해진다. 정부에서 하는 말도 그렇고 국회에서 하는 말도 그렇다.

  교회에서 인용하기가 부적절할는지 모르지만, ‘그 놈의 헌법’, ‘별의 별놈의 보수’, ‘기회주의자가 득세한 나라’, ‘인류 역사상 전쟁을 가장 많이 한 나라 미국’ 등등의 언사는 기존의 가치관을 뒤흔드는 표현들이다. 생각에는 목적과 이유가 있을 텐데 자신에 대한 증오심이나 학대 같은 병든 마음은 우리교회가 치유해나가야 한다. 생명의 말씀을 샘물처럼 솟아나게 하는 우리교회가 이를 감당하지 못하면 누가 할 것인가?

  근세사를 통해서 우리나라를 이끌어온 것은 기독교이다. 그 역동성으로 우리의 정치를 치유하고, 그런 점에서 기독교가 중책을 맡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나라 전체를 보면 우리는 3가지의 문제에 당면해있다고 여겨진다.

  첫째 양극화 현상이고, 둘째 환경 생태계이며, 셋째 통일 문제이다.

  소위 양극화 현상은 단순히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배운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과의 괴리나 갈등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이념, 인종의 편견은 물론, 남성과 여성, 젊은이와 노인, 건강한 사람과 건강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이제는 심각할 정도이다.

  단순하게 계층 간 갈등으로 사회의 양극화를 고민하는 고전적인 공산주의, 사회주의 의식은 지나치게 소박하다고 할 만큼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양극화는 심각한 것이다. 이 문제는 특정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범지구적인 현상이 되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생기는 양극화도 심각한데 우리는 어떻게 보면 양극화를 의도적으로 조장해온 느낌이 든다. 정치에서, 또는 경제에서, 심지어는 안보와 통일에서도 그랬다고 보아진다. 얼마 전 정권의 한 책임자는 “가진 자들이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 양극화 현상을 극복하고 치유해야할 책임은 행정과 정치에 있는데, 실로 어려운 문제이지만 교육을 통한 ‘사회적 이동성(Social Mobility)'을 제고해서 신분상의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는 한편, 기업가 정신의 발휘와 창업여건의 개선을 조성해야 한다. 


  그는 축구협회와 국회 일을 하기 전에 울산에 있는 현대중공업에서 일했다. 현대중공업이 요즘은 노사분규가 없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칭찬해주지만, 1987년 6.29선언이 나면서 우리나라에서 노사분규가 시작되어 7년 연속 노사분규가 있었고, 그것도 처음 몇 년 동안은 매우 과격했다. 그러고 난 후 차츰 안정되었는데, 보람을 느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회사 소식지에 올린 한 근로자의 글이었다. 근로자 자신은 중학교를 졸업했지만 그의 아들은 현재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되기까지 잘 컸다는 재미있는 기사였다. 이와 같이 교육을 통해서 신분상승의 사회적 이동성을 가져올 수 있는 좋은 예를 보고 보람을 느낀 것이다.

  요즘 공교육의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 교육정책을 담당하는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학교에서의 우등생이 사회의 우등생이 아니다. 학교의 점수 몇 점 때문에 학생들을 저렇게 고생시킬 필요가 있느냐? 그 시간에 밖에 나가서 운동이나 하라고 하지.”

  다 좋은 말씀이다. 문제는 세계질서를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세계질서 속의 일원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노력하는 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인기 있는 올림픽 종목인 100m 달리기에서 금메달과 은메달 차이는 0.01초 차이에 불과하다. 세상살이에서 0.01초가 뭐 그렇게 의미가 있는가?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인류가 그런 노력을 한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기록이 단축되면 큰 뉴스거리가 된다.    

  학교의 우등생과 사회의 우등생이 다르다고 해서 열심히 공부하지 말라고 하면 열심히 할 만한 다른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공부를 대충해도 좋다는 것은 바람직한 생각이 아니다. 학생들은 공부하고 싶은 것이 많다. 외국어도 있고 과학도 있다. 그러니 외국어고, 과학고를 세우겠다고 하면 허락해주면 된다. 못하게 하여서 그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왜 외국으로 나가게 만드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교조적이고 폐쇄적인 발상은 문제이다.

  자연자원은 없지만 인적 자원이 훌륭해서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교육으로 일어났는데 이제 교육 때문에 나라가 망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다음은 환경생태계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이 문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 10년간 이 문제는 예상을 뛰어넘는 심각성을 보여줬다.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구체적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걱정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서해 바다의 오염상태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외무부차관과 7년 전 점심을 같이 하면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서해 위의 발해만 바다 밑이 죽음의 바다가 되었다고 인민일보가 보고했다. 발해만의 크기는 서해의 1/3 정도이다. 발해만이나 서해는 다 대륙붕인데, 발해만의 평균수심 18m, 서해는 평균 30 내지 40m로 해류의 흐름이 거의 없다. 이런 오염 기사를 읽고, 중국정부가 협조해주면 발해만에 가보고 싶다고 했더니, 당시 대사는 “울산 앞바다는 깨끗해요?”라고 했다.

  어쨌든 환경단체는 서해바다 연구진과 함께 북경과 대련에 다녀왔다.

  서해는 말하자면 ‘물을 갈아주지 못하는 커다란 수영장’과 같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산업화에 의해 크게 오염되고 있고, 중국은 나라가 큰 만큼 버리는 오폐수도 우리나라의 50배 내지 60배나 된다. 발해만은 벌써 10년 전에 죽었다고 중국기관에서 보고했지만, 서해 바다가 현재 푸르다고 할지라도 발해만처럼 되는 데는 시간문제다. 중국의 환경부와 국회책임자가 환경에 대한 계획이 있다고 하지만 실행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다.

  새만금의 논의도 좋지만 더 넓고 본질적인 문제를 논의해야 할 때이다. 국내문제에만 집착해서는 앞으로 벌어질 어떠한 문제에 대해서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통일 문제이다. 통일은 우리국민이 바라는 가장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당연히 통일은 이뤄져야 한다. 분단에서 숱한 비극이 잉태한 만큼 남북이 다시 합쳐지는 것보다 더 분명한 당위는 없다. 그러나 현실은 염원이 절박한 만큼 그렇게 소박하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한반도 주변 상황을 보면 북한의 핵무기를 개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남북한 평화체제 협상, 동북아공존, 일본의 평화헌법 폐기 등은 통일문제가 결코 당위만으로는 다룰 수 없는 혼란스러운 국제적 과제임을 보여준다.

  통일문제에 대하여 걱정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통일문제에 대하여 대한민국에서 가장 열심히 뛰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합리적인 사유나 현실적인 인식에 바탕을 두었다고 보기가 어렵다. 통일은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국제적인 맥락에서 다뤄져야 한다. 국민적 합의와 이성적 판단에 의한 차분한 대처가 필요하다. 통일은 정치인이나 시민단체, 또 경제나 종교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모두가 힘을 합하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통일을 쉽게 여기고 단순하게 정책을 일원화하고 성급하게 실천하려고 하면 이성을 압도하는 감정이 문제를 뒤흔들 수 있다.

  통일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되 합리적 태도로 통일문제에 임하고 이를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막연히 잘 먹고 잘살게 해달라는 기도와는 달라져야 한다.

  담임목사의 언급처럼 이성이 끝나는 데서 신앙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신앙 안에서 이성을 잘 활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사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덮어놓고 믿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성경책을 열어놓고 믿는 것이 좋다는 담임목사의 멘트를 빌려올 때 성도들 쪽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포퓰리즘에서 벗어나 이성적인 통일을 추구하도록 해야 한다. 내일이 밝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도 있으나 좌절하지 않고 성경구절을 읽으면서 힘을 내야 한다.


  아시아 45개국 중에서 중국 올림픽 축구의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나라는 3개국밖에 없으므로 시리아, 우즈베키스탄, 바레인과의 3경기, 즉 원정 2경기와 홈 1경기를 대충 다 이겨야 한다. 중동 원정경기를 할 때는 시차로 밤늦게까지 봐야하는데 끝나고 나면 흥분해서 잠이 안 올 때가 있다. 정치, 경제, 스포츠 등 세속적인 일에 정신없이 살고 있다.  

  다른 나라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조기축구와 새벽기도이다. 한국이 유별나다는 점에 성도들은 또 웃음을 터뜨렸다. 춥든 캄캄하든 겨울 맨땅에서 조기축구를 열심히 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것. 유럽 축구는 잔디밭에서 조명 아래 저녁축구를 하는 일은 있어도. 새벽기도에 많은 성도들이 오는 걸 보면 한국은 아직 에너지가 많다. 희망이 보인다.

  성도들의 기도가 있기에 우리의 정치, 통일, 환경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좋은 열매가 맺어질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소희철은 우리민족이 위험한 일에 투자를 가장 많이 하는 민족이라는 것을 어느 책에선가 읽었다. 그렇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새벽을 사는 민족’이라는 것은 이번 강연에서 새삼 알게 되었다. 분명히 붉은 태양의 열정이 있는 민족임에 틀림없다.






8. 나의 후원자 되시는 하나님





  “할렐루야!”

  “아멘!”

  개그맨 마빡이가 특유의 제스처를 취하면서 강단에 섰을 때 그의 입에서는 ‘할렐루야’라는 말이 서슴없이 크게 튀어나왔다. 기다릴 사이도 없이 성도들도 ‘아멘’으로 크게 화답했다. 다른 사람보다 약간 밀리는 얼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크게 사용한 것 같다. 2006년에는 코미디 부분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어른들은 아이들이 왜 마빡이를 좋아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마빡이, 얼빡이, 대빡이, 갈빡이가 이마가 훤히 드러나는 가발을 쓰고 나타나 손으로 이마와 무릎을 두드리며 재롱부리는 게 뭐가 그리 우스운지 한번쯤은 관심을 줄 필요가 있다. 연기와 동작이 과장되고 소란스러운 슬랩스틱의 희극이 채플린을 유명하게 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우리 와이프가 이 교회를 너무 좋아해요. 일산에 사는데 여기까지 와요. 여러분, 오늘 종철이가 여기 올 줄은 몰랐지~요?”

  손바닥을 돌리며 웃음을 유도하는 폼이 프로답다.

  종철이가 교회에 온다니까 강남을 넘어서 분당, 일산까지 소문이 자자하고, 교회 주위에 자동차 대란이 일어났단다. 교회에 왔더니 종철을 보기 위해서 교회 2층까지 꽉 차다 못해 문 앞까지 사람들이 빈틈을 주지 않고 들어서있더라는 것.

  “뒤돌아보지 마!”

  그는 능청을 떨었다. 거짓말도 이 정도면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열심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하나님을 증거하러 다닌다고 소개했다. 항상 뒷자리에 앉아서 설교 말씀을 듣다가 오늘 앞에 나와서 강연하려고 하니 다소 떨리면서, 무지무지하게 영광스럽다고 했다.

  그는 오늘 무슨 말씀을 드릴까 고민했다. ‘마빡이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이나 ‘옥동자에게 든든하신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게 좋으리라고 생각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약속이다. 하나님의 말씀, 약속, 명령대로 살아야 한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계십니까? 아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주님을 영접했다는 고백과 같다. 하나님의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다.

  “복 있는 사람끼리 인사합시다. 반대편 당신은 복 터진 사람, 마빡이 종철은 여드름 터진 사람. 터진 사람끼리 인사합시다.”

  너무 웃다가 갈비뼈에 금이 간 사람이 있었다는데.


  그는 다섯 살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사탕이나 아이스크림을 공짜로 주지 않았더라면 교회에 가지 않았을 거라고 한다. 그런데 언제 교회에 다녔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제 하나님을 만났냐가 중요하다.   

  종철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주님을 만났다. 충북 제천의 개척교회에 다녔을 때 성도 수가 얼마 되지 않아 노회에서 10여개의 교회를 모아서 단체로 마련한 여름수련회에 참여했다. 처음 보는 목사와 전도사의 설교에서도 하나님이 계시는지가 긴가민가했다.

  그런데 저녁에 대학생 형들이 소리 질렀다.

  “종철이, 너희 유년부 얘들 모두 밖으로 나와.”

  그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뭘 잘못했나 생각하면서. 밖에 나가니 깜깜한 운동장에 큰 십자가가 있었다. 그걸 짊어지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 이 땅에 내려와서 피땀 흘려 짊어지셨으니 우리도 간접적이나마 체험해봐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는 메었고, 죽는 줄 알았다. 한바퀴, 두 바퀴, 세 바퀴를 돌고나니 힘든 것은 고사하고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수천수백 배의 고난을 받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철은 그 때 예수님을 만났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부모들이 자녀들을 여름수련회에 꼭 보내도록 권했다.

  가끔 아이들에게 하나님 믿느냐고 물을 때가 있다. 어떤 아이는 모태신앙이라고 한다. 모태신앙이 어떤 뜻인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하나님을 믿는 것인데 ‘신앙생활 정말 못해요’의 ‘모태요’로 변하고 있다. 웃을 일이 아니다. 부모는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신앙의 길라잡이가 되어야 한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자녀들에게 재물을 남겨주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단지 세 글자만 남겨주면 된다.

  ‘하 나 님’

  가슴 속에 하나님을 남겨주는 것이 억만금의 물질보다 낫다.


  “종철이가 계속 이야기만 하면 성도님들이 힘들어하실 테니까 좀 바꿔보죠. 지금부터 20분이 남았는데 큰일 났습니다. 웃겨서 말입니다.”

  후속타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성도들은 무조건 웃어놓고 보았다.  

  “여러분,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러분들께도 하나씩 달란트를 주셨어요. 종철한테는 무엇을 줬을까~요?”

  “웃기는 것.”

  “또?”

  “얼굴!”

  “누가 얼굴이랬어?”

  그는 성도들에게 되물어 놓고 스스로 웃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각기 다른 달란트와 계획과 목표를 주었다. 우리들은 그걸 위해 기도하면 된다. 하나님은 종철에게 소리를 낼 수 있는 입 재간을 주었다. 종철은 감사했다.

  “이 주둥이를 갖고 재롱잔치를 할까 합니다. 괜찮겠어요?”

  물론 괜찮다는 박수 소리가 났다.

  그는 본격적인 소리 재롱잔치를 하기 위해 모니터부터 살려달라고 했다.

  “마이크 테스트. 세, 세, 월세, 전세. 좀 더 키우라.”

  마이크 테스트하면서 웃기는 사람은 처음 봤다.


  우선 들려주는 것은 손과 입을 사용하여 강한 악센트의 리듬을 만드는 ‘비트박스(Beat box)’다. 흑인들이 악기 살 돈이 없어 전해 내려오는 것이라나. 비트박스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드럼에서 나온다. 정면에서 봐서 둥그런 킥을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소리 흉내를 냈다. 작은 북은 ‘스네어’라고 한다. 스틱으로 때리면 이런 소리가 난다면서 입술로 흉내 냈다. 또 드럼의 심벌은 냄비뚜껑 덮은 것처럼 생긴 것이다. 이 세 가지를 합치면 “시치퍼 시치퍼”비트박스가 나온다는 것. 그는 한참 입술에 땀을 흘렸다.


  이제 그의 가상무대는 시끄러운 클럽으로 옮겼다. 클럽 안은 고막 터지는 소리가 나는데 마침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상대방의 말을 알아들 수가 없다.

  “뭐라고? 안 들려! 조용한 데서 다시 전화할게.”

  조용한 곳에서 전화하기 위해 클럽 밖으로 나온다. 문은 닫힌다. 안에서 음악소리가 들린다.

  “쿵작 쿵작쿵 쿵작”

  그의 입술은 그야말로 소리 제조기다.

  “재밌죠? 재주가 많죠?”

  웃기는 사람은 자기 자랑을 해도 우습다.


  하나님은 공평하시어 종철한테 많은 재주를 줬지만 얼굴은 주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 때 흙으로 빚었듯이 종철이도 흙으로 빚었다. 처음엔 키 190 센티로 빚었고, 그 다음 얼굴은 장동건, 원빈, 조인성 뺨치게 조각미남으로 빚었다.

  “아, 너에게 달란트를 줘야지. 다른 사람에게도 줬으니까. 그리고 너에게는 소리를 만드는 재주도 주겠다.”

  하나님은 인심 좋게 마구 그에게 주었다. 소리 잘 내는 재주, 잔머리 굴리는 재주… 막 주었다. 그 다음에 생명을 불어넣어서 사람이 되고, 그것도 완벽한 사람이 되었다.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 바로 불었어야 했는데 이 타이밍에 하나님께서 갑자기 생각이 달라졌다.

  “아니, 너무 완벽하게 만들었잖아.”

  이래서 흙도 굳기 전에 하나님은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퍽 쳐버렸다. 그것도 모자라서 위에서 아래로.

  “그래서 이렇게 태어났습니다. 하하”

  성도들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랬었군!’하는 표정들이다.


  사업은 잘 안 풀리고, 자녀들의 공부는 시원찮고, 주식은 곤두박질치고…. 그러나 실망할 필요 없다. 하나님은 공평하시니까.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그들에게 없는 것이 여러분들에게 있어요. 그걸 빨리 알고 찾는 겁니다.”

  삽시간에 박수가 터졌다. 번개 후의 우레처럼.

  “오늘 박수를 너무 많이 받는군요. 비트박스만 하면 아쉬울 것 같아서 이번에는 오만가지 잡소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다 들어보셨던 소리예요.”

  그는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부터 시작하여 지하철 지나가는 소리까지 퍼레이드로 소리를 빚어냈다. 자동차 소리부터 먼저. “이~잉 이잉 잉”

  아이들에게 엄마들이 가장 많이 쓰는 기계가 뭔지를 물어봤다.

  “TV요.” 얘들 앞에서 TV 많이 본 엄마가 들어야 하는 대답이다.

  엄마들이 많이 쓰는 청소기 소리를 냈다. 이어서 비행기의 이륙하는 소리의 흉내는 정말 걸작품이다. “히~잉 히잉 힝”

  마지막으로 지하철이 저쪽에서 들어오는 소리.

  전동차의 문이 열리고 옥장군이 탄다. 옆 칸에 자리가 비어있어 그쪽으로 간다. 전동차의 칸 사이에는 문이 있고 문 사이에 공간이 있음을 기억한다.

  “지금 당역에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칙 치익 치~익”

  3호선이 들어왔다. 

  “열차의 출입문 닫겠습니다.”

 

  시간이 되어 그의 재롱은 끝나야만 했다.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에어컨과 같고,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난로와 같은 사람이 되자고 했다. 하나님께 한 발짝씩 다가설수록 마음이 기뻐지고 즐거워지고 행복해진다는 것을 그는 자신의 모습에서 보여주었다.

  “종철이 얼굴 한번 보세요, 커죠? 키 한번 보세요, 작죠? 여드름 자국 많아요. 공부 더럽게 못했어요. 한 마디로 지지리 못났어요. 이렇게 낮아요.”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다고 했다. 든든한 백그라운드인 하나님은 우리들의 모든 근심걱정을 없애준다는 것이다.

  성도들은 시간이 짧음을 아쉬워했다. 박수 소리만큼이나 아쉬움이 컸다.

 

              




9. 신랑되신 예수님과 나




   

  탤런트 하면 우선 얼굴이 예쁘다는 것에 상상이 간다.

  상상대로 그녀는 예뻤다.

  누군가를 많이 닮았다 했더니 중견 탤런트 한혜숙 씨가 떠올랐다. 혹시 그녀의 딸은 아닌지? 그건 아니다. 성이 같으니까. 그러나 예명일 수도 있고, 요즘은 어머니 성을 따르기도 한다는데. 그렇지만 결정적인 것은 한혜숙 씨가 결혼하지 않았다는 사실. 돌림자가 들어있으니 혹시 자매나 사촌이라면 몰라도.

  각설하고.


  앳된 모습으로 강단에 오른 혜진은 성전이 이렇게 넓은 줄 몰랐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녀의 간증을 위해서 담대함을 줄 거라고 확신했다.

  혜진은 2004년 가을에 처음 예수님을 만났다.

  어머니가 처음 예수를 믿어 어릴 적부터 교회에 나가긴 했으나 초등학교 시절 찬양팀 부회장일 때 오후 예배를 땡땡이쳐 집사님으로부터 호되게 혼나고 나서는 겁이나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비로소 2004년에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물론 그동안 가정환경에 어려움이 많았다. 가세가 점점 기울어졌고, 그런 중에 하나님은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하나님께 등을 돌리게 되었다.

  그런데도 연기자의 꿈을 키워가며 어렵게 데뷔했다. 하나님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2004년 아침 드라마 ‘그대는 별’에 출연할 당시에 고난이 왔다. 믿고 따랐던 매니지먼트 사장으로부터 출연료를 받지 못했다. 사람들 보기에 빛나는 자리에 있는 연예인인데도 가진 것이 없었고, 더구나 출연료를 받지 못해 어려움은 더 심했다. 믿었던 분에게 배신당하고 차도 없는 상황은 고난의 본질을 보는 것 같았다. 외상으로 렌트해서 일산, 인천, 수원을 오가며 촬영장을 다녔다. 그때까지 운전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그녀로서는 정말 죽다가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혼자서 어려운 고난 속에서 2004년 드라마를 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도움을 주겠다고 했으나 값없는 은혜가 없었다. 도움을 요청했을 때 출연 제의와 함께 어떤 대가를 바라고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번은 일본에 가서 CF촬영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성형외과 CF였다. 어이없는 광고까지 촬영하게 된 것이다. 황당하게도 출연시켜줬으니 돈까지 달라고 했다.

  고난의 벼랑 끝에 선 그녀에게 생각나는 것은 하나님뿐이었다. 어릴 때 만난 그분, 값없이 은혜 주시는 그분이 그리웠다.


  압구정의 ‘하나님의 집’을 찾았다. 새벽예배를 통해 만난 하나님은 가슴이 미어지는 말씀을 주었다. 이사야서 53장.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을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혜진은 눈물을 참을 수 없어 말을 잠시 멈췄다. 겨우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가진 게 없었고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감정이 격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이 어린 아가씨에게 성도들은 일제히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정말 울지 않겠다고 기도 많이 하고 나왔었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여기서 울리시는군요.”

  연사가 우는 모습을 보고 앞좌석의 누군가가 손수건을 갖다 줬다. 눈물을 닦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순진하다.

  처음 말씀을 들었을 때 그 분은 누구이기에 그녀를 위해주고, 고난을 받아주며, 광야에 홀로 있는 그녀에게 이런 은혜를 주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새벽예배를 섬기게 되었다. 아무리 바쁜 촬영 중에도 아침에 하나님을 뵙지 않으면 숨이 막힐 정도로 갈급했고 보고 싶었었으며 그리웠다. 

  2004년 가을부터 혼자서 택시를 타고 새벽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 어머니와 언니가 혼자는 위험하다고 해서 따라 나오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그녀 가족들이 새벽예배를 통해서 믿음을 회복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사장님으로, 때로는 매니저로 그녀에게 힘이 되었고, 쉽고 자상한 방법으로 가르치며 많은 복을 허락하기도 했다. 날마다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그녀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는 느낌이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드라마를 일 년이나 촬영하고 끝날 무렵 하나님은 뜻밖에 선물을 주었다. KBS 2004년 연기대상에서 신인상 부문에 올랐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침 드라마를 통해서 상을 주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 기대하지 않고 있었는데, 유명한 김태희, 임수정 다음으로 그녀의 이름이 불려졌다. 기절할 것 같았다. 하나님은 대단하신 분이다. 감사했다.


  아침 드라마를 끝낼 무렵 ‘굳세어라 금순아’의 작품으로부터 오디션 제의가 들어왔다. 원래 예정됐던 배우가 거의 촬영을 시작할 무렵 거절한 탓이다. 100여명의 신인들이 오디션에 참가했다. 오디션에 참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미지와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역할이 너무나 맹랑하고 억척스럽고 엉뚱하기까지 해서 예전 작품의 이미지로는 따라주지 못할 것이라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예전 같았으면 너무 욕심이 나서 “저도 잘할 수 있습니다” 하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을 텐데 이상하게도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시겠지” 하는 평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옛날에는 오디션에 한번 떨어지면 그날은 눈물이 바다가 되었다. 욕심과 질투와 시기심이 많았던 그녀가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는 그렇게 평안할 수가 없었다.  

  오디션을 마치고 기다리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합격했다는 소식이다. 놀라기보다는 하나님이 넣어주셨구나 생각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감독에게 찾아갔다. 감독은 수심에 잠긴 얼굴로 물었다.

  “잘할 수 있겠어?”

  “감독님 걱정되시죠? 너무 걱정하시지 마세요.”

  오히려 그녀가 감독을 위로했다. 감독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그렇게 해서 아침 드라마를 끝내고 이틀을 쉰 다음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처음 드라마가 나오자마자 악플이 달렸다.

  “너무 안 어울린다. 의상과 화상이 너무 오버다.”

  이런 등등.

  상처가 되는 말들이 많이 남겨졌다.

  그러나 하나님은 승리를 안겨줬다. 40%의 시청률과 함께 오랜만에 일일극에서 승리하게 되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을 하나님이 만들었고 그녀의 이미지는 금순이에게 어울리게 되었다.

  ‘굳세어라 금순아’를 촬영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너무 벅찬 나머지 꼭 주일을 지켜야 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마침 주일을 지킬 수 있는 스케줄이라서 감사하면서 예배에 나오게 되었는데, 중반 촬영하다가 갑자기 스케줄의 변경으로 주일날 촬영해야 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녀는 무모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촬영에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다음날 상황은 정말 말로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인사해도 받아주지 않고 외면하곤 했다. 그날이 교황이 돌아가신 날이라, “왜 그랬냐? 교황이 돌아가셔서 그랬냐?”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네가 다니는 교회는 어딘데? 그긴 이단이냐?”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일로 해서 그녀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왕따 당했고 미움을 사게 되었다.

  그래도 주일을 간신히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계속 그러면 전 촬영 안 나올 거예요.”

하고 큰 소리 쳤기 때문이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더 알고 싶습니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그녀는 하나님께 물었다.

  “청년부에 나가거라.”

  연기자로서 너무 쑥스러워 그녀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까말까 하고 망설였다.

  어쨌든 새해가 되어 청년부에 처음으로 나갔다. 청년부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지금까지 무턱대고 믿었던 하나님은 누구시고, 예수님은 누구신지 교육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또 순모임 교제를 통해서 언니, 오빠들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 중보기도의 힘을 얻고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게 알게 되었다. 


  드라마 한 편을 끝내고 ‘주몽’이라는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었다.

  금순이 이미지가 매우 강해서 이후로 많은 드라마 요청이 쏟아질 것이라고 그녀는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고 아무 작품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자 ‘주몽’이라는 작품에서 유일하게 제의가 들어왔다.

  “지금 많은 여배우들을 보고 있는데 혜진 씨가 거의 마지막 순번이야. 그들이 거절하면 혜진 씨에게 돌아갈 거야.”

  역시 하나님은 모든 여배우들을 거절하고 혜진을 선택했다.

  감독을 만났는데 이번의 감독도 너무 수심에 찬 얼굴이었다. 금순이의 이미지에서 어떻게 한 민족의 여왕을 탄생시킬 수 있겠느냐는 것.

  사실 주몽을 촬영하면서 처음 고난이 왔다. 많은 분들이 그녀의 연기에 대해서 쓴 소리를 했고 그것이 너무 두려워 카메라 앞에 서기만 하면 두려울 정도로 공포가 왔다. 그리고 감독한테 혼나기도 하고.

  처음 기획과는 달리 역할이 점점 적어지면서 그녀는 낮은 자존감을 갖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소속사와 두 번의 소송에 휘말리면서 주몽의 출연료를 가압류 당했다. 정말 일 년 동안 평안함이 없이 사람들이 두려웠고 자신도 이상해졌다.

  그녀가 아는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하나님인데 왜 힘든 곳으로 끌고 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도망가면 하나님은 떠날까 봐 두려워서 의무적으로 말씀을 읽고 예배당에 나가보지만 말씀이 들어오지 않았다.

  심지어 연말 시상식에 와달라고 전화가 왔을 때도 그녀는 무관심했다.

  “상주시면 안 나가겠어요.”

  저쪽에서는 너무도 어이가 없었다. MBC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녀는 상 받는 것이 너무 싫었다. 자신의 연기실력으로 상을 받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존감은 곤두박질쳐 땅 밑 바닥까지 내려갔다.

  “전 상 받기 싫어요. 정말 못 받게 해주세요.”

  하나님께 울면서 기도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을 줬고, 또 깨달음을 줬다.

  “네가 얼마나 교만하냐? 너를 통해서 나타내고 싶은데 너는 내 말을 거부하고 순종하지 않는구나.”

  주몽이라는 드라마가 실패작으로 마음에 새겨지고 드라마가 끝났을 때 그녀는 사람 만나기가 너무 싫었다. 혼자 집에 틀어박혀 신앙서적을 읽거나 커튼을 쳐놓고 그냥 어두운 방에 앉아있었다. 친한 사람들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점점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때 온누리교회로부터 전화가 왔다. 담임목사가 입원해 있는 세브란스병원으로 와달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어떤 이끌림에 의해서 병원으로 갔다. 투석 중이라 힘든 모습으로 누워있는 목사님은 말했다.

  “7월 중에 일본 소나타를 개최하는데 그 곳에 가줄 수 있니?”

  아프신 분 앞에서 거절할 수 없어서 제의에 동의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서 너무 가기 싫었다. 하지만 “일본을 품어라. 이번에 주몽이 방영될 계획이니 함께 참여하는 게 좋을 것이다”고 해서 일본에 갔다.

  혜진은 감동의 충격을 받았다. 거기에 간 스물 여명의 연예인들 모두가 기쁨과 감사에 벅차 있었고, 일본인들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도 긍휼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이 이방인들을 구원하여 이스라엘인들이 시기하게 했다는 로마서의 말씀을 생각나게 했다. 하나님은 그 연예인들을 통하여 자신에게 시기심을 갖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하나님, 저도 저렇게 늘 기쁘고 평안한 마음을 갖게 해주세요. 저들의 기쁨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날 하나님이 삭개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예수님이 너무 보고 싶어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삭개오에게 예수님은 말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겠다.”

  삭개오는 너무 기뻐 급히 내려왔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내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나이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

  예수님의 말씀에 혜진은 전율이 느껴졌다. 그리고 고백했다.

  “하나님, 삭개오처럼 즉각 순종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의 집에 영원히 유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런 후에 말씀은 어려움이 아니라 혜진의 기쁨이요 매일의 양식이었다. 말씀은 날마다 하나님이 보내주는 사랑의 편지였다. 하나님의 편지를 읽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대답해줬고, 그리고 그녀는 반응하며 삶에 적용시켰다. 그렇게 날마다 교제하니 말씀에서 느끼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엄청난 것이었다.

  말씀의 깨달음은 컸다. 어렵게 성장기를 보낸 것도, 주몽에서 받은 고난의 시기도 다 하나님의 은혜요 구원에 이르는 역사임을 깨달았다. 한때는 부모님이 더 일찍 믿었더라면 좋았으리라는 생각도 해봤으나 하나님은 이런 깨달음을 주셨다. 로마서 11장 32절.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얼마 전에 혜진은 방언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말씀을 통해서 받게 되었고, 하나님은 그녀가 성령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기를 원했다. 그러면서 성령님은 엄마 같은 분이라는 깨달음을 줬고 그녀는 방언을 사모하게 되었다.

  그녀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방언으로 기도하고 싶습니다. 방언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해주세요.”

  당시 갑자기 어려운 일이 생겼다. 너무 힘들어 견딜 수가 없어서 기도실로 가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운전해가고 있었는데 모든 것이 해결됐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너무 기뻐서 감사기도 드리려 기도실로 가고 있는데 아직 전도하지 않은 사람이 생각나서 말씀지를 사기 위해 교회서점으로 가게 되었다. 서점에 들어서려는 순간 서점의 권사님께서 물었다.

  “너 방언 받았냐?”

  혜진은 갑자기 귀가 커져버렸다.

  “전 아직 방언 받지 못했는데요. 그런데 너무나 사모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목요일 7시까지 와라.”  

  혜진은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다. 하나님께서 목요일 7시까지 인도해주시는구나 생각하고 그날부터 열심히 기도했다.

  목요일 새벽예배 때 하나님께서 말씀의 확신을 줬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시니라.”

  그리고 목요일 거기에 갔을 때 방언을 받았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너무나 놀라운 일이다.

  “여러분, 나만 장군의 이야기 잘 아시죠?”

  나만 장군이 문둥병에 걸려서 엘리사 선지자에게 찾아갔을 때 엘리사 선지자는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면 그의 피부가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만 장군은 화를 내면서 돌아갔다. 너무도 단순한 이야기에 화가 나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의 종들은 말했다.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라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나만이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니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다.

  실로 작은 일에 순종하는 자에게 그 길을 열어주는 하나님이다. 작은 자 종의 믿음이 나만 장군의 믿음보다 더 컸다. 복음은 너무나 쉽고 단순해서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 같다. 쉽고 단순한 것에 순종할 때 길이 열림을 그녀는 방언 체험을 통해서 깨달았다.


  때로는 하나님과의 만남 속에서도 고난이 있고 죄를 짓기도 한다. 그러나 그 죄를 하나님께 회개하고 올려드릴 때 악함을 선함으로 바꿔준다. 예전 같으면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오지 못했는데 말씀과 함께 하니,

  “혜진아, 괜찮다. 너를 구원한 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하나님의 선명한 음성이 들렸다.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의 참모습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교제는 하나님과 데이트하는 기분이 되었다. 마치 하나님의 신랑이나 되는 것처럼.

  “혜진아, 너는 여자 중에서도 백합화 같구나.”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저의 신랑 되시고 저는 하나님의 신부입니다.”

  고백을 올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느낌을 그대로 받곤 한다. 예전의 하나님은 두렵고 벌주며, 한편으로는 복을 주는 일방적인 사랑의 대상이었으나 지금은 교제하는 만남 가운데 벅찬 감격을 누리게 하는 애인이기도 하다.

  “너와 교제하고 싶다. 너랑 사랑하고 싶다. 너를 사랑하고 싶어서 너를 만들었고 너를 선택했다.”


  간증을 하기 전에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복음의 빚진 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녀를 이 자리에 세워 이렇게 알리게 했다.

  “혜진아, 너와 나의 관계, 신부와 신랑과의 관계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포하라.”

  하나님은 연약하고 부족한 그녀를 통해서 자꾸 나타나기를 원한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모습은 너무 아름답다. 혜진은 앞으로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면서 오늘 간증에서 고백한 것을 잊지 않고 또 다른 형태의 전도사로 살아가겠다고 성도들 앞에서 다짐했다.


  자기들보다 세상을 적게 산 자매로부터 그처럼 값진 간증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신혼부부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피하고 싶었다. 더구나 바로 앞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임재를 증거하는 그녀가 자못 부럽기도 했다.

  직장 일의 도전에는 별로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던 이 지성인들은 신앙의 도전에는 자신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구하고 기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10. 어머니의 기도





  ‘한반도 대운하’라는 정책 공약으로 인하여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공격과 호응을 동시에 받고 있는 후보는 소희철에게는 특별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 그의 아버지가 물과 관련된 직업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한때 칠대양을 제패한 마도로스였다. 지구상에 물이 있는 곳이라면 구석구석 누비고 다녔다. 바다로만 만족하지 못했던지 미시시피, 심지어는 아마존의 오지까지 들어가곤 했다. 파나마운하, 스에즈운하 등을 통근 길처럼 드나들었다는 아버지는 자랑스럽게도 30만톤급 대형유조선의 선장에 이르렀다. 멋있는 폼으로 많은 여성들의 주목을 받았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한반도에 물의 대동맥을 만든다는 것은 아버지에게는 특별한 관심사였다. 이 대동맥에 나쁜 피가 흐를까봐 사람들은 걱정하나 오늘날의 선박들은 오폐수 처리장치가 잘돼있어서 그런 염려는 접어도 된다는 게 아버지의 견해이기도 하다.


  드디어 후보는 특유의 미소를 띠고 강단에 올랐다.

  “특강을 한다고 하니 사람들은 선거법위반을 걱정하는데 그렇게 걱정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표를 얻으려면 다른 곳으로 가야죠. 여기는 전부 우리 식구들뿐이잖아요.”

  후보는 성도들을 이렇게 안심시켜놓고, 어머니의 기도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특강제목이 <어머니의 기도>이므로.


  어머니는 먼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기도했고, 나라를 위해 기도했다. 그런 다음에 가족들에 대한 기도로 이어졌다. 자식들을 위한 기도는 큰 아들부터 시작하여 막내인 후보는 늘 마지막 차례였다. 그리고 짧았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후보를 위해 가장 길게 기도한 적이 있었다.

  야간상고시절 과일장사 하던 리어카를 후진하는 승용차에 들이받혀 과일을 쏟고도 승용차 주인한테 욕을 얻어먹었다. 홧김에 포장마차를 찾았으나 잘 아는 아주머니는 기어코 술을 주지 않았다. 상심한 채로 집으로 왔는데 뭔가 눈치를 챈 어머니는 이불 안으로 들어가셨다. 새벽에 어머니의 기도는 시작되었다.

  그날 기도는 여니 때와 달랐다. 나라의 기도, 형의 기도도 건너뛰고 가장 먼저 후보의 기도를 했다. “막내의 앞길을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옵소서” 하고 거의 한 시간이나 기도했다. 후보는 가출하고 싶은 마음도 미뤘다.

  막내아들의 이름이 돌림자가 아닌 것을 두고 사람들이 ‘주워온 자식이냐’고 농담할 때 속상해 한 후보는 식구들의 얼굴을 보며 닮은 점을 찾으려고 애쓴 적도 있었다. 실은 원래 이름이 ‘상경’이었으나 어머니의 태몽에서 ‘밝은 보름달이 치마폭에 쏘옥 안기는 아이’를 보았다고 하여 ‘명박’으로 이름 짓기를 어머니는 고집했다. 완고한 아버지는 타협점으로 족보에는 ‘상경’으로 하고 호적에는 ‘명박’으로 하는 데 동의했다.

  태몽 이야기를 들은 후에야 후보는 이름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부모님이 고심 끝에 지어준 이름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강사의 턱 밑에 앉은 신혼부부는 너무도 의미심장해졌다. “이름처럼‘밝고 넓은’세상을 만들어주면 고마울 텐데….”하면서 열심히 강연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후보는 청계천의 헌책방 주인이 건네준 책으로 대학진학 공부를 했다. 합격해도 등록금이 없어 입학하지 못할 텐데 공부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런 걱정은 합격 후에 해도 된다.”고 하여 일단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시험을 쳤다. 귀찮게도 합격해버렸다.

  학교 선택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학에 관한 정보가 없으니 ‘대학’이라는 글자만 들어가도 똑같은 대학으로 간주한다. 친구가 권하는 대로 K대학으로 간 것뿐이다. 그런데 축하할 일은 아니다. 어차피 등록금은 마련하지 못할 것이므로.

  그래도 어머니에게는 대학합격을 알렸다. 무슨 대학이냐고 물어보시지도 않았다. 학교 이름을 밝히더라도 어차피 모르시는 일이니까.

  합격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갈 수 없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시장 아주머니들이 나섰다.

  “그럼 학교에 다니면서 아침에 시장청소를 하도록 하고 우리가 등록금을 마련해주도록 합시다.”

  장사를 하면서도 평소 틈틈이 열심히 시장청소를 해온 어머니의 성실함을 생각하여 아주머니들은 그 아들의 등록금을 마련하는데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이리하여 대학생이 되었다. 기적과 같은 일이다. 모두가 어머니가 쌓아 올려놓은 성실과 신용의 덕분이다.


  1964년이 저물어갈 때, 감옥에서 풀려난 지 두 달 쯤 무렵, 어머니는 막내아들에게 유언을 적어놓고 세상을 떠났다. 

  " 명박아, 나는 너를 믿는다.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있을 것이다. 소신을 갖고 살아라. 항상 정직하고 용기를 잃지 말아라."

  유언은 지켜야 하므로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는 지키려고 노력했다.


  서울시장이 되어 청계천 복원사업에 들어갔다. 대중교통체계개편, 서울숲, 서울광장 조성 등 여러 대형사업을 추진했지만 청계천복원은 확실히 그를 ‘행동하는 시장’으로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라는 성경 말씀이 그를 지배했을 것이다. 청계천 상인들과의 4,000여 회에 걸친 협상 끝에 20만 상인들의 협조를 이끌어 내어 청계천을 휴식, 관광, 생태 명소로 만들었다. 복원결사반대자 대표로부터 감사장을 받은 것도 특이한 에피소드다. 이런 감사장은 처음이며 감사장이 저쪽으로 갔어야 했었다고 표현했다. 반대자의 공감을 얻었다는 것은 대단한 협상력이요 노력의 열매다.


  세상은 많이 다양해졌다. 옛날에는 2,000개에 불과한 직업도 지금은 3, 4만개나 된다. 이렇게 다양한 세상을 정부가 똑같이 만들려고 하면 안 된다. 부자나 지식인은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잘할 수 있다. 다만 가난한 사람이나 교육을 적게 받은 사람 등 소외계층은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 정부는 강자는 자체적으로 경쟁하도록 놔두고 약자만 보호하고 지원해나가면 된다.

  “가장 훌륭한 리더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을 정도로 낮아져서 섬기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이와 같이 현재의 리더는 섬김의 리더이며, 그것도 맞춤형 리더이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리더는 섬기되 다양한 요구에 맞춰서 섬겨야 한다고 하는 그의 주장은 색다른 것이다. 그냥 섬기기만 하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특수화시켜야 한다는 것.

  “저는 정치인이기 이전에 교회의 장로입니다. 장로로서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항상 부담이 되어왔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도 더 깨끗하고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진실로 고백합니다.”

  그는 중보 기도해주는 분들이 있기에 자신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빽만 믿고 담대하게 추진해나간다고 자신을 피력했다.


  주어진 짧은 시간에도 후보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한 것 같다. 특강의 마무리 단계에 후보는 바로 앞에서 열심히 강연을 듣고 있는 신혼부부와 눈이 마주쳤다.

  “이런 젊은이들이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에는 미래가 있다.”

  후보는 흐뭇하게 생각했다. 스마트하고 교양 있게 생긴 젊은 부부가 바쁜 낮 시간에 짬을 내어 열심히 강연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후보는 바쁜 시간을 쪼개서라도 젊은이들에게 소망을 심어주는 이야기를 자주 들려줘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오늘 강연을 스스로 만족해했다.

 

  “여보, 클린턴 대통령이 고등학교 때 백악관에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고 나서 장차 대통령이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하는데, 당신은 후보를 만나고 나서 뭔가 결심한 바가 없어요?”

  목장화가 소희철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샐러리맨의 신화를 이루신 분이니까 나도 샐러리맨의 우상으로 꿈을 키워야지. 참 당신은 힐러리 부인이 부럽지 않아? 미국 최초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 것 같아서 말예.”

  남편은 응수해놓고 웃었다. 신화가 자기들에게도 올 수 있는 것이라고 믿으면서.

  이 맞벌이 신혼부부는 20년, 30년 후에 클린턴과 힐러리 부부 같은 상황을 맞이할지 모른다. 그걸 위해 후보도 기도하고 작가도 기도할 것이다.





11. 나의 꿈 나의 삶





  병원장인 그는 담임목사와 고등학교 동기라는 것을 강의 도중에 소개했다. 그 소개에서 사람들은 간접적으로 그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었고, 또 앞으로도 병원을 위해 왕성하게 일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특강 제의를 받고 무척 고민했다고 한다. 임상의로서, 또한 의학자로서의 길을 걷던 그가 경영자로서의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고, 앞에 닥친 일만을 해결하려 동분서주하다 여기까지 왔으니 '리더십 강의' 부탁을 받고 고민하는 것은 차라리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재벌이 세운 병원에서 13년 근무, 이 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병원으로 된 것은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모든 것들은 본인 뜻대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역사한 것임을 그는 믿고 있다.

  본 교회에 20여년 다닌 교인으로서 성도들에게 뭔가 들려주고 싶어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21세기 리더는 다양한 요구를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라는 말이 다가왔다. 대통령 후보도 ‘예수님의 리더십’을 언급했는데 제자들의 발을 씻는 ‘섬김의 리더십'이 감명을 주는 것이다. 이 용어는 1970년대 초에 처음 소개된 것으로 인간존중을 바탕으로 해서 다른 구성원들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것이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다.


  “그러면 의사란 뭔가? 그리고 인술(仁術)은 뭔가?”

  그는 스스로 자문해 보았다.

  친구인 담임목사가 우연한 기회에 병원에 찾아왔을 때 기도해주며 나눈 대화에서 그 답이 나왔다.

  “자네는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나?”

  친구목사의 갑작스런 질문에 대답이 궁해서 멍하니 있었다.

  “자네는 병원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나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세.”

  친구목사의 말에 부끄러울 정도로 공감했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 손에 달려있다. 실제 상황에서는 다만 하나님의 권능을 의사에게 빌려줬을 따름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니 얼마나 중요한가? 그래서 생명은 사랑과 겸허한 자세로 다뤄야 한다.

  기업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고객만족, 고객감동을 이야기한다. 병원에선 왜 환자들을 고객이라고 부르지 않을까? 아마도 환자는 고객이상의 그 무엇이리라. 부모나 형제가 입원했을 때엔 나도 모르게 달려간다. 내 가족, 내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인술의 ‘인’자는 ‘사랑’이다. 환자를 대할 때는 기술에 앞서 사랑이 먼저임을 그는 강조했다.

 

  그는 원래 소화기내과 학자로서 또 의사로서 살고 싶었다.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공무원이던 동생은 빗속에서 택시를 잡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병원 응급실에 이송되었지만, 1년차 레지던트는 밤새 수혈만 하고 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초년병인 그는 환자를 치료할 능력도, 담당교수를 불러낼 능력도 없었다. 어처구니없게도 동생은 과다수혈로 목숨을 잃었다.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의료현실에 내재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병원 경영을 하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병원장이 되어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병원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었다.


  강의를 계속 듣고 있던 목장화는 여기서 색다른 것을 발견한 듯 남편에게 살짝 말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낮춰야 하는가 봐요.”

  “저건 문턱이고, 당신이 낮춰야 할 것은 고개라고. 때때로 나한테 얼굴을 너무 드니까.”

  평소 같으면 시비라도 걸겠지만 오늘은 그런 말도 싫지 않았다. 강사의 체험 이야기가 은혜의 감동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돈을 잃으면 또 벌 수 있고, 명예를 잃으면 다시 찾을 수 있으나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백화점이나 호텔에서는 돈을 내는 손님에게 직원이 감사하다고 한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돈을 내는 환자가 의사에게 감사하다고 한다. 병원에 오면 환자들은 약해진다. 그래서 그는 먼저 병원의 문턱을 낮추는 일부터 시작했다.


  첫째, 병원이 친절하고, 둘째, 진료를 기다리지 않고, 셋째, 촌지가 없으며, 넷째, 보호자가 필요 없는 병원을 만들고자 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개혁을 부르짖고 말하지만, 막상 자신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속 깊은 곳에 심기어지고, 썩는 것을 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타난 현상이 있다. 


  우선, 병원이 팔렸다는 소문이다. IMF때, 친구들로부터 수없이 들어본 질문이다.

  "아니, 내가 팔지 않았고, 파는 바를 모르는데 네가 어떻게 아냐?"

 "너는 몰라. 너 몰래 그룹이 팔았어."

  그는 딱했다. 이 병원은 공익재단이다. 그래서 그 어느 누구도 팔 수 없는데도 말이다. 새로운 변화 앞에서 의사들은 내심 반발한 것이다. 그래서 팔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지도.

 

  그가 원장을 하고 있으니 마음에 안든 것 같다. 한 곳을 제외하고는 학회장자리도 갖지 못했다. 고마운 것은 금년에 어떤 국제학회를 제주도에 유치했는데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해서 그 국제학회의 운영위원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함께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려운 일 하나를 극복한 사례를 그는 이야기했다. 

 대학으로 설립된 병원이 아니다 보니 간호사들을 뽑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좋은 간호부장을 뽑는다고 하여 대학교수를 데려왔다. 대학교수의 정년이 65세인 데에 비하여 간호사의 정년은 58세이므로 그녀를 이사로 임명했다. 몇 해가 지나자 상무로 승진시켜주고 새로운 이사도 뽑아 달라는 요구가 나왔다.

  병원의 전 직원 4,500명 중 행정직원이 400명이고 간호사가 1,200명인데 행정직원 중에는 이사가 많은데 간호사에게는 왜 이사가 적느냐는 것이다.  노조가 없는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겠다고 하는 간호사들의 말을 어떤 수준에서든 참작해야하는 상황이다.  깊이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일주일 동안 기도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

  "그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바를 찾아 그대로 해줘라"

  "그렇다. 젊은 간호사들이 향학열이 높으니 '전문간호사'의 길을 찾아보자." 

  이래서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간호사를 양성하는 임상간호전문대학원을 설립하게 되었고, 간호부장은 간호전문대학원의 초대 대학원장이 되었다. 이러자, 이사 승진 등의 이야기는 없어졌다.


  병원이 처음 시작했을 당시, 한국의 의료현실은 환자들은 3시간 기다리고 3분 진료를 받았다. 환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제공하기 위해 15분씩 진료로 오전 4시간 동안 16명 내지 20명의 환자를 받도록 했다.

  좋은 병원, 좋은 의료진, 좋은 기자재! 많은 환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진료를 기다리는 날짜가 길어지자, 중병이 있는 환자들은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가버렸다. 중병이 아닌 신경성 환자들만 남았는데, 이 사람들은 진료를 받고 나갈 때 "병원비 되게 비싸네"하고 불평하면서 나갔다.  중병이 없는 사람들이 많은 진료비를 낸 것이 아까운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제일 비싼 병원이 되어버렸다.

  젊은 의사들은 환자다운 환자 좀 보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친절하게 하겠다고 다짐도 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의료전달체계'이다. 지방병원이나 개인의원에서 의뢰한 환자 혹은 치료할 수 없는 환자는 당일로 진료하도록 했다. 그러니, 전국 곳곳의 협력병원에서 많은 환자를 의뢰해 줄 뿐만 아니라 그 덕택에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됐다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곤 한다.


  그는 말한다. 세상에서 관리자로서 대하기 힘든 직업은 첫째가 의사요, 다음이 교수며, 그 다음이 판사라고. 그 중에서 의대교수는 목숨을 다루는 기술자요, 65세 정년이 보장되는 교수이니 가장 다루기 힘든 직업이다.

  "그러니 무슨 재주로 이 사람들을 다룹니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길 바라는 기도뿐이라고 했다.


  그는 경영관리능력을 위해 두 주간 미국 연수원에 가서 리더십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영리하고 게으른 사람을 좋은 리더로 생각한다며 강사의 견해를 물었다.  미국인 교수는 그런 사람은 쫓아내야 한다고 했다. 그 교수는 강의하러 오는 길에서도 무엇을 강의할까를 생각했다면서, 리더는 다른 사람보다 부지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이른 새벽에 출근해서병원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외부고객의 만족을 위해서는 내부고객의 만족도 중요하다. 공동체의 비전을 제시하는 동시에 내부고객인 동료나 부하들을 믿고 배려하는 섬세함이 있어야 한다.  존경받는 의사는 잘 치료해주는 의사가 아니라 성실히 설명해주고 친절한 의사라고 여론조사는 말해주고 있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제 대학교수도 많이 변했다. 서울대학도 친절해졌다 하니 감사할 일이다. 이제는 병원이 앞장서서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을 위한 복지기관의 역할을 해야 할 때라고 그는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볼 때, 세계에서 가장 의료체제가 잘된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그는 의료보험료의 통계가 그걸 증명해준다고 했다.

  한국은 GDP의 6%, OECD국가의 평균은 9%, 미국은 15%를 의료비로 사용하니 한국은 적은 돈으로 질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셈이다. 미국은 많은 돈을 쓰지만 아직도 4,000만 명이나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보, 우리나라 좋은 나라, 진짜 살기 좋은 나라네요.”

  아내 목장화는 한국에서 태어난 자부심을 느끼며 남편에게 말했다.

  “그런데 젊은 의사들은 어렵다더군. 의료비가 너무 낮아서 말야. 성형외과, 피부과, 안과 등에 우수한 의사들이 다 몰리고. 대신 내과나 외과는 기피한다는데.”

  남편 소희철은 아내가 지금까지 성형외과에 한 번도 가지 않고 자연미를 유지해 온 것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다. 물론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늘 소리 없이 남편을 빛나게 해주는 아내의 마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섬기는 그녀의 삶이 고맙기까지 하다.


  우리나라가 21세기에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를 고민할 때 의료산업을 우선순위에 둘 필요가 있다.    병원은 재정흑자도 내면서 복지기관의 역할도 해야 하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노령인구가 늘어나면서 의료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고전적인 진단이나 치료방법으로는 선진국에 따라가지 못한다. 다행히 진단과 치료에서 유전자지도가 발견되면서 그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앞으로 성장산업으로서 의료산업을 고려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게 진단하고 치료하는 방법 등을 찾아 미래의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의료산업,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심을 그는 잊지 않았다.


  매일 출근길에 오르면서 그는 평온의 기도를 떠올린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평온함을 주시옵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더욱이 내가 할 수 없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신혼부부도 자기들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다.


     

  


12. 선교사의 사명



 



  교회창립30주년기념행사에 70여 명의 선교사 부부를 초청했다. 그 중에는 설립목사가 이 교회에서 함께 사역하자고 권유했음에도 이를 뿌리치고 기어코 아마존 오지로 떠난 선교사도 있다. 그는 브라질에서 현지인을 상대로 20여개 교회를 설립하고 또 신학교를 세워 교단을 통괄하는 책임자가 되었다.

  “선교보고서는 쓰지 마세요. 그 시간에 선교 활동에 전념하세요.”

  선교사는 한국을 떠날 때 설립목사가 전해준 그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오늘의 특강 주인공은 바로 ‘선교보고서를 쓰지 마라’고 지시한 설립목사다. 선교보고서 작성하는 데 시간의 50%를 허비하고, 그것도 쓰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 문제라는 게 설립목사의 주장이다. 교회는 선교사를 보냈으면 모든 것을 그에게 맡겨야 한다. 보고서를 갖고 교회 자랑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너무 업적에 치중하는 것도 문제다. 한 사람의 세례를 주지 않아도 괜찮다. 참고 기다려야 하고, 열매는 나중에 맺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선교 100년 후 지금의 한국 모습을 보라. 

  선교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과 성령과 사람의 고용을 통하여 선교한다. 사도행전을 보면 말씀과 성령이 역사하였고 그때마다 적합한 하나님의 종을 사용했다. 예수님이 사람의 형체로 온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젊은이가 길 가던 아가씨가 넘어지려 하여 손을 잡아 주었더니 대뜸, “이제 책임지세요!” 하는 바람에 결국 결혼했다고 한다.

  결혼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옷깃이 스치기만 해도 되는가 하면, 이리 재고 저리 재고 해도 자기 사람이 안 되려면 안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너무 많이 보아서 문제다. 영화를 왜 밤에 많이 찍는가? 시야가 좁으니 주요 포인트만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말이 많을 필요가 없다. 예수님은 말없이 행동으로 가르쳤다. 그것이 히브리적 교육이다.


  목회자는 설교를 잘하려고 애쓴다. 그래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첫째, 영감 있는 설교를 하라. 설교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설교가 엔트테인먼트로 끝나서는 안 된다.

  둘째, 창의적 접근이 필요하다. 병 고치기 위해서는 병자가 필요하다. 유창한 기도보다 아픔에 동참해주는 동병상련이 효과적이다. 하던 이야기 재탕하지 않도록 노력하라.

  셋째, 검증된 진리를 선포하라. 경험과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은 역사한다. 세상은 실패한 사람도 필요로 한다. 호세아서는 오죽하면 “창녀와 결혼하라”고 말했을까.

  설교를 잘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조는 사람을 보지 않는 것이다. 이 방법은 설립목사가 특별히 개발해낸 것 같기도 하다. 열심히 듣는 사람만 보고 있으면 신나게 설교할 수 있다. 관심을 쏟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 시간만큼은 자신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장경동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설교는 맛깔스럽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짧게 하라.”


  신혼부부는 감탄했다. 열심히 자신의 말과 행동에 호응해주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면 무엇이든지 신명나게 일할 수 있다는 사실. 부정적인 것은 흘려버리고 긍정적인 것만 수용하도록 노력하는 것.

  “아! 그렇게 살아야지.” 그들은 말씀을 받아들일 줄 알았다.


  사극을 좋아하는 사모님은 오늘도 열심히 TV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남편인 설립목사를 불렀다.

  “여보, 여보! 주몽이 나오지 않아요. 죽었는가 봐!”

  상대가 급할수록 더 침착성을 보이는 데 익숙한 설립목사는 반응을 좀 늦췄다.

  “목사로서 하는 이야긴데, 주몽은 죽지 않아요. 주인공은 걱정하지 말아요.”

  얼마나 몰입했으면 드라마의 주인공을 현실의 것으로 걱정했을까?


  김장환 목사의 아들은 김요셉이다. 김요셉 목사가 자기 아들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생각하다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좋게 느껴져 ‘김순종’으로 하기로 하고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더니, “그게 어찌 순종이냐? 잡종이지.” 하는 말을 들었다. 미국계 어머니가 대답할 수 있는 충분한 반응이다.


  전도를 잘하는 데에는 성령의 은사도 있어야 하지만 눈치의 은사도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를 읽을 줄 아는 눈치가 있어야 한다.

  평양의 어느 목사가 전도지를 전하기 위하여 여러 교회형제들을 고용했다. 그런데 한 형제는 굉장히 빨리 전도지를 돌려 그 비법이 궁금했다. 몰래 따라가 봤다. 그는 대동강 물에 전도지를 뿌리고 있었다.

  “형제여, 물고기보다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목사는 형제에게 조용히 다가가 말했던 것이다. 크게 뉘우친 그 형제는 나중에 훌륭한 목사가 되었다.

  선교를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선교(Mission)는 고통(Suffering)이다. 그래서 설립목사가 가장 좋아하는 말씀은 “나의 당한 고난이 복음의 진보가 된 줄 너희가 아느냐?”이다.

  가장 효과적인 선교는 전쟁이다. 한국에서 기독교가 크게 전파된 것은 일본침략 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2001년 9.11테러 후에 미국에서 성경책이 많이 팔린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다. 일본은 고난의 시기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도 선교하기가 힘든 곳이다.

  “옛날에는 귀신이 참 많았는가 봐요. 교회 초창기에 귀신들린 세 사람을 쫓아내었더니 성도수가 갑자기 2,000명으로 늘어났어요. 혹시 전도가 잘 안되면 귀신 세 마리만 보내 달라고 하세요.”


  설립목사의 특강에 선교사들은 “아멘, 아멘” 했다. 모두가 고난을 기꺼이 받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대부분 신학교에서 설립목사의 강의를 받아본 그들은 은퇴 후 4년이 지났는데도 정렬적인 강의를 하는 이 청춘의 노목사(老牧師)에게 박수를 쏟았다.

  신혼부부는 강의에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두 종류였다. 하나는 감동의 눈물이었고, 다른 하나는 웃음의 눈물이었다. 예화가 신선한 재미로 다가와 배꼽을 붙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은혜의 눈물을 펑펑 빼내는 말씀에 빠져들곤 했다.

  그들은 영어로 서로를 표현하고 싶었다. 우리말로는 쑥스러워서.

  “I am so happy because of you."

  둘은 마주보고 웃었다.

  오늘 주신 말씀은 이 젊은 부부가 살아가는 데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다.


 

 


13. 교회의 비밀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시골 아저씨는 강단에 올라서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부드럽고 구수한 카리스마가 시공(時空)을 제압했다.

  친하기에 부담 없는 목사, 그는 곧 성전의 분위기를 구수한 냄새로 채웠다.


  “소망교회를 정말 사랑합니다. 이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가 아무리 잘 돼도 배가 안 아픕니다.”

  시작하는 설교는 먼저 성도들의 웃음을 유도하고 그들을 자연스럽게 말씀의 장중으로 빨아들였다.

  설교는 계속됐다.

  이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큰 선물이고, 앞으로도 이 교회 같은 교회는 태어나기 어렵다.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큰 선물인 곽 목사는 세계가 아는 훌륭한 목회자요 설교가다. 흉내는 낼 수 있을지언정 따라갈 사람은 없다. 더 목회를 해도 좋으나 총회법이 70세로 묶어두었으니 그걸 넘어설 수 있는 길은 없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안타깝게도 아버지 대에도 복을 받고 아들 대에도 복을 받은 적이 별로 없다. 기드온, 사무엘, 히스기야왕 등의 아들도 아버지를 닮지 못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소망교회에 좋은 전임 목사에다가 또 그 대를 이어 훌륭한 김 목사까지 보내주셨으니 얼마나 복 받은 교회인가. 약간의 몸살은 있지만 4년 동안 지나온 과정을 볼 때 이건 기적이다. 김 목사 같은 분은 없다. 아마 하나님께서 특별주문해서 준비해놓은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 권력을 보면 전임자가 물러나면 같이 있던 사람들이 영광굴비처럼 묶여갔다. 그래서 대를 이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저는 설교를 이렇게 해도 때가 되면 끝납니다.”

  성도들의 웃음 때문에 설교가 잠시 멈췄다가 이어졌다.

  “곽 목사님이 저한테, 우리 교회가 부흥하는 것은 저 김 목사 설교 때문이라는 거예요. 뭔가 설교가 다르다는 겁니다. 사실 제 설교는 시작과 끝이 없어요. 그래서 늦게 오는 교인도 자신이 늦게 온 줄 모르지요. 10분 늦게 들어도 들을 것은 다 들으니까.”

  성도들은 이번에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오늘은 잔치 날이니까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고 했다. ‘내 은혜가 내게 족하다’와 같이 여기에 더 은혜를 받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


  20년 전에 러시아에 가서 집회를 했는데, 공산당 간부가 자기 나라 처지를 한탄했다.

  “목사님, 우리가 천년 동안 잘 살았는데 교회의 문을 닫으니까 이렇게 못 사는 겁니다.”

  그렇다. 교회의 문을 닫으니 정치, 경제, 과학, 예술, 문화 등의 모든 문이 닫혀버렸다. 나무가 제일 많은데 종이가 없고, 땅이 제일 넓은데 먹을 것이 없고, 석유가 많은데 기름이 없고, 지하자원이 많은데도 자동차가 굴러다니지 못한다고 간부는 한탄했다.

  고속도로를 8시간 달려도 차 한 대 없었다. 러시아가 왜 망했는가? 쿠데타, 외부침략, 천재지변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국회개원예배 때 국회의장과 양당 총재가 참석한 자리에서 러시아가 3년 동안 연구 발표한 폐망의 원인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회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 교회는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블랙홀같이 빨아들인다.

  가정파괴, 자녀문제, 도박, 알코올, 마약 등이 어디서 해결된다고 생각하는가? 교회에 나오면 풀린다.


  교인 중에 부부가 일류대학 교수인 가정이 있었다. 부인은 일주일에 몇 번이나 파출소에 가서 술에 취한 남편을 데려오기에 바빴다. 남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알코올에 대해서 5년 동안 집중적으로 연구했지만, 결론은 알코올중독은 고칠 수 없다는 것이다. 술 마시는 원인이 1,500가지 이상 있었다. 비가 와서 마시고 안 와서도 마시고, 강의 전에 마시고 후에도 마시고, 속상해서 마시고 좋아서도 마시고 …. 이쪽으로 막아도 안 되고 저쪽으로 막아도 안 되었다.


  한번은 대법원장과 국정원장과 함께 식사할 때였다. 세상의 죄인을 치유할 수 있는 데는 교회밖에 없다고 그분들은 말했다. 인간은 워낙 정교해서 아무데서나 병을 고치지 못한다. 하나님만이 고칠 수 있을 따름이다.

  “곽 목사님께서 선물로 준 시계가 5년 만에 고장 나서 여기서 고칠 수 없어 스위스 회사로 보냈는데 6개월 만에 고쳐왔습니다. 시계 하나도 만든 회사가 고치는데 인간의 문제는 창조주이신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은 이제 힘까지 붙었다.


  기독교는 위의 종교다. 거룩한 것은 위로부터 온다. 위의 분을 만나기 위해서 교회에 온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평화만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 건강… 온갖 것이 내려오는 찬양을 하다가 그는 스스로 웃고 말았다. 청중도 따라 웃었다.

  이번에 WHO에서 건강의 종류에 ‘영적 건강’을 추가했다. 영적 건강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는 온갖 보화가 있다. 예수 안에는 온갖 좋은 것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기독교는 의학으로 치면 동양의학이다. 미국에서도 동양문학, 동양의학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병원에 가보면 과가 너무 많다. 입원해 있으면 여러 과의 의사들이 온다. 산부인과 외는 다 오는 것 같다. 의사들이 다 지나가고 나서 나중에 한의사(韓醫師)가 왔다.

  “몸살감깁니다. 합병으로 온 겁니다.”

  한의사는 눈 딱 감고 손만 짚어보았다. 진단은 간단했다.

  교회는 여러 가지를 말하지 않는다. 상담하러 온 성도들에게 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교통사고가 나면, “왜 주일 안 지켰냐?” 부부간이나 아이들과 싸우면, “왜 새벽기도 안 나왔냐?” 돈 떼이면, “왜 십일조 안 냈냐?”고 물어보고 만다. 교회에 나가면 잘된다.


  만물은 하찮은 것이라도 알아서 잘한다. 이 세상의 조류, 어류, 동물, 식물 할 것 없이 가르쳐서 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보호란 가만히 두면 되는 것이다. 강아지는 6개월이 되면 개가 된다. 가르쳐서 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르치면 오히려 이상한 개가 된다. 오줌 눌 때 한쪽 다리를 드는 것은 가르쳐준 것이 아니다.

  인간은 가르쳐서 훌륭한 인간을 만들 수 없다. 인격은 초장부터 무너졌다. 창조자를 만나고 하나님을 만나면 인격이 형성된다. 훌륭한 인물은 하나님 아버지 집에서 나온다.


  산골마을에서 딸 아홉 후에 아들로 태어난 목사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몇 십 가구밖에 안 되는 마을에서 목사만 30명이 배출되고, 모두가 성공적인 삶을 사는 이유는 마을에 교회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교회에서 새벽종을 치니 귀신이 오지 못했다. 우리나라에는 하루에 수십 명이 자살하는데 왜 자살하는가? 그 사람들이 교회에 다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교회가 잘되고, 동쪽에 있는 저희 교회도 잘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어려우면 그쪽으로 가고, 그쪽에서 잘 사면 이쪽으로 오려고 해요. 또 폼 좀 재어보려고….”


  앞자리에 앉은 신혼부부는 이제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부모님 덕분에 자기들도 그쪽에 살다가 이쪽에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폼도 좀 재고 있다고 생각했다.


  교회의 모델로서 성소 안에는 3가지가 있다. 진설병, 일곱 촛대, 그리고 향단. 이 세 가지를 포용해야 한다. 여기에 영적 비밀이 있는 것이다. 부부간에 비밀이 있듯 교회에도 비밀이 있다.

  생명의 떡과 말씀의 떡.

  세상에는 참이 없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만이 참이다. 주님만이 우리의 진리요 생명이며 기쁨이다.


  경건하기로 유명한 이 곳 성도들이 너무 심각하게 설교 듣기에만 열중하니, 설교목사는‘아멘’ 안 하면, 계속할 거라고 했다. 또 웃음을 자아냈다.


  “전직 대통령과 우리 부부가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 말씀이 청와대에 들어가서 3년 있으니까 집에 가고 싶더라는 겁니다. 1년 남겨 두고는 ‘언제 여기 떠나나’ 하는 생각이 뿐이었다고 했어요.”

  교회는 들어오면 편하고 기뻐서 나가기가 싫은 곳이다. 성령이 역사하고 그 불길이 타오르는 곳이 교회다. 세상의 것이 들어오면 안 되고 향연이 늘 하나님께 올려지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머리보다도 가슴이 뜨거워야 하고.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세워진 교회인 만큼 성령의 역사와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교회로 남기를 기원하면서 ‘삼일기도회’설교를 마쳤다.

  은혜가 강물 같았다.


 


14. 내려놓음





  한국의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그것도 모자라 미국의 유명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한 지성인은 학문의 성취를 접어두고 기어코 외도를 하고 말았다. 담당해야 할 사역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저 성령에 이끌려 선교사가 되었다.

  그러고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힘을 얻어 몽골로 들어갔다. 몽골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어놓기 시작했다. 그걸 간증하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


  그가 쓴 책 <내려놓음>은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신학교육을 받지 않은 평신도로서 대단한 성취다. 올림픽 역도에서 금메달을 딴 작은 체구의 전병관이 힘들게 ‘올려서’ 유명해졌는데 ‘내려놓아’도 유명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분명하게 보여줬다.


  그가 설교하기 전에 설교의 본문이나 제목을 주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것은 막판에 가서 하나님이 주제의 변경을 원할 때가 있곤 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매우 당혹스럽다는 것. 그런데 이번에는 워낙 큰 집회이기 때문에 본문과 내용을 미리 줬다고 한다. 한 가지 걱정은 하나님이 계속 바꾸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 그것에 대한 응답은 충분히 듣지 못하고 강단에 섰다고 한다.

  설교자의 말씀을 위해서 성도들이 기도해주고, 특별히 영적으로 고조되어 있을 선교사들에게 연사 쪽으로 향하여 손을 대고 안수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줄 것을 부탁했다. 또 그는 말씀을 전하는 자나 듣는 자나 다 보직이나 선입견 등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케 해달라고 기도했다.

   

  “원숭이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그의 설교가 시작되었다.

  옛날에 원숭이를 키우는 주인이 있었다. 그는 원숭이를 잘 훈련시켰다. 원숭이는 사람의 말도 잘 알아듣고 심부름도 잘해서 주인의 자랑거리였다. 더운 여름 주인은 대청마루에 누워서 원숭이로 하여금 부채질하게 했다. 이번에는 부채질만 할 것이 아니라 파리도 좀 쫓으라고 명령했다. 원숭이가 열심히 파리를 쫓는데도 파리가 자꾸 주인 얼굴에 달라붙곤 하여 화가 잔뜩 났다.

  “네 놈 파리를 가만히 놔두는가 봐.”

  원숭이는 마당에 있는 큰 돌을 들고 와서 주인의 코를 향해 탁 던졌다.

  결과는? 상상에 맡기고.

  원숭이는 주인에게 충성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원숭이에게 뭣이 문제였을까요? 주인이 명령한 그 말의 진의를 몰랐다. 그러면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방식대로 움직였다.


  원래는 몽골에서 사역하는 것이 본분이라고 생각하고 조용한 동네아저씨로 잘 사역하고 있었는데 그의 동기나 기대, 방식과는 무관하게 하나님께서 사역의 방향과 영역을 바꿔놓은 계기가 있었다.

  중국에 두 가지 임무를 띠고 갔을 때이다. 하나는 몽골국제대학이라는 선교지향의 대학에서 사역하는 것이다. 학교가 지향하는 것 중의 하나는 외국에 있는, 즉 몽골 주변에 있는 민족들을 섬기는 것으로, 복음을 접하지 못한 학생들을 데려다가 열려진 몽골이라는 환경에서 교육시켜 다시 자기 나라로 돌려보내는 일이다. 영어를 가르치고, 학위를 주며, 책임자 위치에 있는 사람을 크리스천으로 양육하는 것이 학교의 비전 중 하나이다.

  당시 몽골 디아스포라 중 특히 내몽골 지역에서 온 학생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래서 내몽골에 가서 학교소개와 학생유치를 하기 위해 몇몇 가정교회 리더들과 연결해서 그곳 학생들이 이 학교 학생들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중국 내지로 갔다가 내몽골 지역으로 가는데 기차표를 알아보니 공교롭게도 중국 노동절이라 일주일의 민족대이동으로 인하여 표를 구할 수 없었다.

  하는 수없이 야간버스로 북경까지 가서 다시 기차로 내몽골로 들어가야 했다. 북경에 도착한 주일 새벽 한인교회에서 예배드리면서 코스타(KOSTA)라고 하는 한인유학생 수련회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계획되어 있음을 알았다. 북경에서 내몽골까지는 하루 걸렸다. 월요일 밤 내몽골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고 있는데, 새벽에 하나님께서 나를 깨워 기도하게 했다. 북경에 있는 코스타에게 중보기도 하라는 것.

  “너의 입에 내 말을 부어줄 테니 가서 전하라.”

  기도 중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선교사는 너무 당혹했고, 마음을 진정한 후 차근차근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2시간 정도 걸린 대화였지만 못 간다는 이유가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 내몽골 쪽에 출장 나와 있는데 갑자기 북경에 가서 유학생을 섬기라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꾸 부담을 주었다.

  “네가 나의 종이 아니냐?"

  종은 주인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데.

  두 번째, 기차표가 없다. 어렵게 이곳에 왔는데 다시 북경으로 가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빨리 간다 하더라도 북경에는 목요일 아침이고, 여기에다 기차표가 한 구간이라도 없으면 코스타가 끝난 후 도착하는 꼴이 되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마음만 먹으면 그 표 정도는 구해줄 수 있다. 그러면 이것도 아니다.

  진짜 이유는 세 번째이다.

  “하나님 저 같은 무명의 선교사더러 갑자기 코스타에 가서 하나님 시키는 대로 여기 왔다고 하면 제가 바보 되는 것 아닙니까?”

  그것도 그럴 것이 코스타는 굉장히 유명한 강사들로 미리 내정되어 있고, 또 시간에도 엄격하여서 시간관념이 희박한 선교사는 환영받지 못한다.

  그래도 하나님은 계속 부담을 주어서 결국 그는 부분 약속을 했다.

  “그러면 코스타 현장에 가는 것까지는 순종하겠습니다. 그러나 제 입으로 말씀 전하는 것은 못하겠습니다. 저는 여기까집니다.”

  그는 북경까지 가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갈 때마다 표가 다 있었다. 좌석도 앉아서 가는 것이었고, 더구나 장춘에서 북경까지 가는 데는 침대칸도 있었다. 밤새 달려서 코스타에 도착했다.

  호텔에 와서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듣고 있던 성도들은 이 대목에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목적 없이 와서 호텔에 멍하니 앉아있는 그의 모습이 충분히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약속한 임무는 이제 끝났다고 자부하면서 앉아 있었다. 마침 어느 북경의 한인교회 목사가 그를 알아보고 자꾸 말을 걸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일전에 선택강의 하나 부탁드리려 했었는데 연락처를 몰라서 말입니다.”

  하도 물어봐서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말했더니 그 목사는 평소답지 않게 마음에 감동을 받아 강사들 모인 자리에 가서 이야기했다. 마침 그 자리에 규장출판사 사장과 탈북 작가 김무영 씨도 있었다. 그들과 교제가 이뤄지게 되었다. 그 사람들의 꼬임에 넘어가 책을 쓰게 되었고, 또 이 교회에까지 오게 되었다.

  강사들의 허락으로 하이라이트인 목요일 저녁의 30분을 할애 받았다. 그래서 그는 코스타 사상 초대받지 않고 말씀을 전한 최초의 강사가 되었다.

  메시지를 전하기 전에 그는 유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내몽골에서 잘 있던 사람을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은 도대체 누구 때문일까요? 이 중에서 제 말씀이 필요하여 듣고 싶은 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선교사님, 바로 저 때문입니다.”

  어느 좌석이나 주인공 의식을 갖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강연 후 많은 사람들의 질문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요?”였다. 그것은 몇 시간의 강의가 필요한 것으로 쉽게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없으므로 간단히 한마디는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도할 때 어떻게 기도하십니까? 그냥 ‘하나님 도와주세요’라고 하십니까?”

  예를 들어 선교대회를 하는데 선교사가 안전하게 오고, 참석하는 성도들이 은혜 많이 받게 해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기도는 훌륭한 기도요 우리에게 익숙한 기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듣는 기도는 좀 다르다.

  “하나님, 저에게 말씀 주십시오. 제가 백 퍼센트 순종하겠습니다.”

  순종하겠다는 고백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내게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전에는 내 안의 소리들이 너무 커서 섞여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걸 원하실 거야. 내가 이렇게 되길 바라시겠지.” 하고 단정지어버리면 하나님의 뜻은 잘 안 들리는 법이다.

  사람들은 자기 보기에 좋은 것만을 추구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과 하나님의 최선은 다르다. 하나님의 최선을 구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백 퍼센트 순종이다.

  백 퍼센트 순종을 방해하는 사탄의 노림수가 있다. 사탄은 옆에 와서 살짝 속삭인다.

  “너 미쳤어? 백 퍼센트 순종? 너 잘됐다. 너 아무개 선교사 따라 그 나라에 가라.”

  이 자리에 참석한 선교사를 비롯하여 선교사들은 억지로 선교지에 간 사람은 없다. “여기에 불러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할 뻔 했을까? 하나님이 놀라운 것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사역하는 것이다.

  사탄은 우리에게 속삭이면서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가지도록 한다. 그게 우리의 부담, 즉 하나님은 억지로 일을 시키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는 다른 것을 계획하고 힘들게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사탄의 속임으로 우리들은 백 퍼센트 순종보다는, “이런 영역은 하나님께서 모른 척해주세요, 안 도와주셔도 돼요, 방해만 하지 말아주세요.” 등의 말을 한다.

  결혼하지 않은 자매들은 “모든 것은 주님 뜻대로, 결혼만은 내 뜻대로” 라고 한다.

  결혼하지 않은 자매들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웃었다. 백 퍼센트가 아닌 부분 순종의 극치를 본 듯하기 때문.

  “하나님, 제가 봐서 좋은 사람여야 해요. 하나님이 골라주신 건 못 믿겠어요. 꼭 우리 교회 다니는 청년여야 하나요? 우리 교회엔 정말 괜찮은 청년들은 임자가 다 있어요. 좀 밖으로 눈 돌리게 해주세요.”

  자매들은 말할는지도.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다 말할 수 없지만 그는 딱 한 가지만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우리들의 고집, 선입견, 습성, 이런 것들이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데 방해가 된다.


  베드로는 어느 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배가 고프도록 기도했다. 우리가 ‘하나님, 이것 해주세요’ 하는 기도는 5분이면 끝나버린다. 베드로가 배고플 때까지 기도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내게 가르쳐주세요’ 라고 기도한 것이다. 베드로가 배고파서 지쳤을 때 하나님은 ‘나의 뜻은 이것이다’ 하고 보여줬다.

  바구니의 네 귀퉁이에 끈이 매여져 내려오는데 그 안에 온갖 더러운 짐승들이 들어있었다. 유대인들이 더럽다고 느낀 것을 잡아먹으라고 했을 때 베드로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베드로는 이 환상이 적어도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주님, 결코 먹을 순 없습니다.”

  베드로는 완강히 거부했지만 하나님은 세 번이나 꾸짖었다.

  이 무렵은 베드로가 신앙적으로 떨어져 있던 시기가 아니라, 한 번 설교에 3,000명이 은혜를 받을 정도로 신앙의 전성기였다. 그 설교가 원고를 가지고 한 것도 아니고 단지 하나님이 던져준 말씀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울고 하나님에게 돌아왔다. 당시 성도 2만 명이 넘는 예루살렘교회의 수장이기도 했다. 기도했더니 앉은뱅이와 죽은 사람이 일어났다. 이만하면 대단한 영력의 소유자다.

  한편 고넬료라는 사람은 예수님을 잘 몰랐다. 하지만 천사가 나타나서 한번 이야기했을 때 바로 순종했다.

  무엇이 베드로를 머뭇거리게 했을까? 그것은 은혜 받았던 사람이 “나도 왕년에 은혜 받았어. 하나님이 멋있게 도와주셨지. 신앙생활은 이렇게 하는 것이야.”와 같은 자세였는지도 모른다.


  경건한 예배로 소문난 이 교회가 오늘 밴드가 나와서 불편해한 성도들이 있었을는지 모른다. 나름대로의 자기 고집이랄까.

  어제 연예인 크리스천 모임에 초대받아갔다. 클럽에서 메시지를 전했는데, 클럽이라는 곳이 처음이라서 헬스클럽인가도 생각했다.

  “죄송해요. 클럽으로 모시게 돼서.”

  안내받았을 때 설마 나이트클럽은 아닐 테고.

  온몸을 흔들고 열광하면서 예배드리는데 이 사람들은 조용한 예배는 견디지 못한다. 자기 나름대로의 스타일이나 신앙생활 하면서 형성된 고집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도 못 꺾어. 은혜는 항상 이러한 방식으로 주는 거야.”

  확고한 자기 스타일, 때로는 이것이 주님의 말씀에 방해가 된다. ‘주님 도와주세요’ 하면서도 정작 내 경험이 ‘그 방식은 말고요’ 하면서 성령을 묶어버린다. 성령은 너무 예민하고 인격적이어서 우리가 제약하면 더 이상 일하지 않는다. 성령은 우리를 배려하고 존중한다. 문제는 우리가 성령을 제약하므로 우리의 삶이 건조하고 메말라진다는 것이다


  필리핀에서 오래 사역하고 몽골에서 10년간 사역하다가 캐나다에 선교 공부하러 들어간 선교사가 있다. 이분은 미국에서 선교활동을 잘하다가 선교지의 부름을 받고 필리핀에 가서 신학교에서 교회개척이론을 강의했다. 이분이 몽골에 들어가서 다르앙의 초대를 받아 3명의 성경공부를 인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언어공부를 위해 울란바토르에 있었던 이분은 주말에만 세 사람을 위한 성경공부를 할 수 있었다. 성경공부 중에 “우리도 교회를 해보자”라는 제안이 있었다. 교회개척은 현지인이 리더가 되고 선교사는 옆에서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교회개척 이론이다.

  더디어 현지인들 가운데 리더를 뽑아서 주일 메시지를 전하고 교회를 운영케 했다. 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 이 모임은 6개월 이상 갈 것 같질 않았다. 선교사가 일주일에 한번 와서 잠시 성경공부 해주는데다가 지체가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반년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났는데도 교회가 망하기는커녕 100명이 넘고, 300명이 넘어 다르앙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중요한 교회로 성장해나갔다.

  이론가의 눈에 망할 수밖에 없는 교회가 어떻게?

  주일 메시지를 전하는 현지인의 설교를 통역하던 자매가 펑펑 울었다. 통역 자매는 4년 정도의 믿음생활을 해왔다. 선교사가 들어보니 성경공부 시간에 자기가 가르쳤던 내용을 그대로 현지 리더가 메시지로 전하는데 사람들이 펑펑 우는 것이다. 더군다나 말씀을 통역한 자매는 “평생 이런 설교는 처음 들어본다.”고 하면서 울었다.


  이 선교사가 한번은 교회개척을 위해 어느 지역으로 갔다. 그 곳에서 6명 정도의 술 취한 사람을 데리고 성경공부를 했는데 그 중에서 리더 한 명을 세웠다. 특별히 산만하게 보이는 남자 한 명을 리더로 세우고, “다음 주에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잘 준비하세요.” 하고 일러놓았다. 그 다음 주 갔더니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있었다. 너무 잘했다. 이 리더는 처음 지명 받았을 때 “저요? 저 같은 사람을?” 하고 굉장히 놀랬던 사람이다.  

  그런데 나중에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그는 굉장히 질이 안 좋은 사람이었다. 자기 아들딸들을 학교에 못 가게하고 시장에서 소매치기하게 해서 그 돈으로 술 마시고 노름하고 지냈던 사람이다. 이 사실을 선교사가 미리 알았더라면 리더로 세웠을까? 사람이 몰랐던 걸 하나님이 더 일하게 한 것이다.


  설교자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몽골에 가서 처음 교회를 맡았을 때를 회고했다. 신학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교회나 목회에 관해서 배워본 적도 없었다. 이런 사람이 교회를 맡았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운가? 그러나 돌아보면 그때가 목회를 잘한 것 같다. 아무것도 없으니 주님께 의지하는 법을 배웠다.

  한번은 학교사역을 끝내고 막 교회로 달려가는데 뭐를 설교할지 몰랐다.

  “하나님, 뭘 설교하죠? 아무 준비도 안 됐어요.”

  고백했을 때 하나님께서 성경구절과 내용을 주었다. 그것은 평소 그가 굉장히 어렵다고 느낀 내용이었다. 그러나 순종했다.

  변하지 않는 지체들을 보며 열심히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동물 울음소리 같은 것을 들려줬다.

  “내가 이 백성을 위해서 아픈 마음으로 울부짖는다. 함께 울어주지 않겠니? 내가 네게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는 같이 울었다. 주님이 그에게 원하는 특별한 목회는 책에 나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설교자가 경험한 이야기 하나.

  몽골의 기독교는 6, 7세기 전부터 들어왔다. 몽골의 기독교유적이 곳곳에 흩어져 있지만 체계적인 답사가 이뤄져있지 않다. 한국월드컵으로 흥분되어 있을 때 다큐멘터리 팀과 함께 몽골유적 답사에 나섰다. 전화도 터지지 않는 시골을 찾아다니며 기독유적을 촬영했다. 9박 10일의 일정으로 약 3,000km 이상의 길을 가는 여정이다.

  몽골은 도시를 벗어나면 길이 없고 오프로드(Off-road)이므로 초원길을 가기 위해서는 때로는 산도 넘고 강도 건너야 한다. 목적지는 사람이 살지 않는 깊숙한 골짜기라서 가다가 차라도 고장 나면 늑대의 밥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차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교회에 아주 훌륭한 운전기사 한 분이 있었다. 길을 잘 알고 시골길을 잘 운전할 뿐만 아니라 차 엔진을 진단하고 수리하는 데도 베테랑 실력자인지라 그를 많이 신뢰했다.

  그러나 여행 첫날부터 바퀴가 터지고 엔진에 문제가 발생하여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차 두 대가 있었지만 러시아 차 한 대는 운행할 수 없었고 또 한 대 봉고 같은 차는 험한 산을 넘을 수 없었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을 주었다.

  “네가 의지하는 것을 내려놓으면 내가 실어가겠다.”

  그는 운전사와 통역 두 명을 마을에 내려놓고 봉고 한 대로 그날 밤 떠났다. 이 차로는 험한 산을 넘을 수 없으므로 가까운 마을로 가서 러시아 군용차를 타고 갔다. 목적지에 갔다 오면 다음 도시까지는 봉고로 가도 된다. 한 도시로 갔다.

  이 도시에서 해발 3,000m 의 높은 곳에 가서 시리아어로 글이 새겨져 있고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 유적지를 촬영해야 한다. 운전기사를 수배해서 가는데 그 운전기사가 말했다.

  “당신들 진짜 운 좋습니다. 당신들이 가고자 하는 곳은 이 동네 운전기사들이 잘 모를 뿐만 아니라 너무 험한 곳이라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가지 않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전날에 너무 험한 산을 운전해서 피곤하여 오늘 쉬려고 했는데 잠깐 시내에 나갔다가 붙잡혀서 이렇게 운전하게 되었고, 더구나 오늘은 화요일로 몽골 운전기사들이 가장 재수 없다고 생각하는 날인데도 운전하게 된 것은 그야말로 운이 좋으신 겁니다. 왜 오늘 제가 운전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목적지까지 잘 갔고 촬영도 잘 마쳤다. 그리고 다음 유적지로 가게 되었다. 이번에는 다른 운전기사가 수배되었는데 그 역시 일행들을 보고 운 좋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30년 운전 경력에 그 유적지는 두 번밖에 가보지 못했다고 하면서 베테랑 아들 운전기사도 미덥지 못하여 자기가 직접 운전한다고 했다. 자기는 전문탐험가나 국가공무원들이 올 때만 운전하는 사람임을 강조했다.

  한참 가다가 운전기사가 멈칫했다.

  “아차, 잠깐! 산림보호구역에 들어가는데, 허가증 보여주세요.”

  믿었던 몽골 팀도 서로 멍하니 쳐다보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혹시 제가 아는 사람이 있으면 통과할지 모르니까 일단 가봅시다.”

  그는 운전을 계속했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몽골의 국가안전기획부의 허가증이다. 목적지는 몽골, 카자흐스탄, 중국 신강과의 국경지대로서 분쟁 다발지역이라 군부대가 주둔해 있다. 유적지 또한 군부대 안에 있다. 일전에 몽골 사람 몇 명이 부근에서 운전하다가 체포되어 15일 동안 조사 받았다고 하면서 겁을 주었다. 당황해졌고 기도했다. 모든 걸 내려놓으면 하나님이 일을 시작하겠다는 말씀이 마음에 확 다가왔다.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확신하고 용기를 얻어 일단 출발했고, 밤 11시경 초소 앞에 도착했다. 너무 캄캄하여 하룻밤 자고 이튿날 아침에 가기로 했다. 마침 카자흐스탄 사람이 쳐놓은 천막 몇 채가 있었다. 그기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불빛이 비치더니 집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사람이 내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집 주인이었다.

  “들어가서 자고가도 됩니까?”

  “그러세요.”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하다 보니 서로 친구가 되었다. 집 주인은 산림보호관이었다. 하룻밤 자고 오려고 했으나 집에 빨리 가고 싶어서 먼 거리를 무리해서 달려온 것이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 것이라고 했다.

  “허가증 없이 오셨다고?”

  예기를 다 들은 그는 깜짝 놀랐다. 

  “지금 보안대에서 나와서 국경순찰을 하고 있는데 당신네들 낮에 내가 없었을 때 왔더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그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답사일행에게 새벽에는 계곡에 가서 숨어있으라고 했다.

  다음 날 새벽 그의 아들이 말을 타고 계곡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5분간만 촬영하되 한 방향으로만 촬영하라고 주의를 줬다.

  촬영하고 나오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면서 전율이 왔다. 하나님께서 예비한 모든 것들이 기적 같기만 했다. 믿었던 운전기사를 내려놓은 후 만난 생면부지의 운전자며, 집 앞에서 우연히 만난 산림보호관이며 하는 것들 모두.


  사람이 믿는 것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성경에는 그런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300명만 남겨놓고 싸우라고 했다. 미디안 족속은 20만 명인데 지금 모인 2만 명도 모자라는 판에 300명만 데리고 싸우라고?   이쯤 되면 하나님은 원망의 대상이다. 무기를 드는 것도 아니고 단지 한 손에 뿔 나팔, 한 손에 횃불을 들고 싸우라고 했으니 말이다. 횃불은 항아리로 덮었다가 나중에 그 항아리를 깨서 들으라고 했다. 그러나 기드온은 철저히 순종했다. 자아라는 항아리를 깨고 횃불로 주님의 빛을 드러냈다.

  사업하는 사람은 이렇게도 말할 것이다.

  “하나님, 이 부분은 간섭하지 말아주세요. 하나님 뜻대로 사업하면 전 망해요. 제가 사업은 좀 압니다. 그러니 그냥 보고만 계세요.”

  또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이렇게도 말할 수 있겠지.

  “하나님 말씀대로 하면 전 직장생활에서 왕따 당해요.”

  선교사라면 선교는 자기가 해봤으니 하는 대로 지켜봐달라고 할 것이다.


  <내려놓음>의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메일을 보내곤 한다. 어떤 주부는 이런 메일을 보내왔다.

  “선교사님의 책을 읽고 남편에 대해서 판단했던 부분이 마음에 찔려서 남편 앞에 무릎 꿇고 회개했습니다. 그런 후 우리 부부관계는 너무 좋아졌습니다.”

  그 시점에 연사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시기에 있었다고 한다. 아내에게 갑자기 우울증이 왔다. 그가 아무리 권면의 말을 해줘도 아내는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보, 나한테 필요한 것은 권면이 아니라 공감예요.”

  여자들은 정답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너무 늦게 알았음을 고백했다. 여자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공감을 얻기 위함인데도 남자들은 그걸 잘 모른다. 남자들은 사회생활에서 자꾸 정답을 강요받는 시스템 속에서 살다 보니 부인의 이야기에도 자꾸 정답을 주려고 한다.

  “저의 고등학교 때 별명은 ‘똘똘이 스머프’였습니다.”

  그가 이 이야기를 처음 아내에게 했더니 배꼽을 잡고 웃더라는 것이다.


  강연을 듣고 있던 성도들도 크게 웃었다. 너무 심하게 웃자, 그는 ‘너무 웃으면 앞으로 안 오겠다’고 으름장의 웃음을 짓기도 했다. 신혼부부도 통쾌하게 웃었다. 이게 공감이라는 걸 실전으로 보여준 셈이다.


  설교자는 아내가 힘들 때 그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었다. 누구는 그의 책을 읽고 은혜를 받았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사역의 결과물을 사용하면서도 자신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음을 그는 깨달았다. 서로 분리된 것이라는 사실.

  그의 아내가 회복된 것은 복음을 새롭게 경험하면서 변화되기 시작한 때이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다.

  “아내는 착한 선교사였고 사귀고 싶은 좋은 사람이었다. 문제는 착하기 때문에 내 안에 주님이 사시는 것, 주님이 나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의미를 가슴으로 알지 못했다.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왜 우울증에 빠졌는지 그 근원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는 자기 연민이 있었다. “나는 불쌍해. 주변에서 날 힘들게 해.” 이러한 배경에는 자기 사랑이 있었다. 완고한 자아를 깨기 전에는 주님을 만날 수 없다. 그녀가 알지 못한 것은 갈라디아서 20장의 말씀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나니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다.”

  우리는 세례 받을 때 한 가지 잘못 고백하는 것이 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못 박혀 돌아가신 사실만 고백한다. 이 사실로 해서 우리가 자유하고 행복해서 신앙심에 기쁨이 넘쳤나요?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못 박히는 것을 고백해야 한다. 반쪽의 고백으로는 안 되며, 정말 내가 죽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온전한 고백이 있어야 한다.

  아내가 그걸 고백했을 때 설교자는,

  “여보, 그건 <내려놓음>의 책에서 내가 다 했던 이야기 아녀?”

했다. 


  책방마다 <내려놓음>을 하바드대 박사 출신이 몽골 선교사로 간 이야기로 자꾸 부각시키는데,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버렸기 때문에 붙잡을 수 있는 뭔가 있더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일축할지도 모른다.

  “아, 그거 시시해. 십자가 이젠 질렸어.”

  그래서 ‘내려놓음’이라고 표현했다. 책을 가장 먼저 읽고 교정까지 해줬던 아내조차도 책에서 나누고 싶었던 것을 몰랐다. 우리가 상처 받았을 때 힘든 이유는 우리의 일이 주님을 위해서인지, 나를 위해서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망해보는 경험을 해야 한다. 망했을 때 나의 하나님에 대한 태도와 자세를 보면 무엇을 위해서 일해 왔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다른 것이다.

  지렁이를 밟으면 왜 꿈틀거리나? 그가 알고 있는 정답은 제대로 꽉 안 밟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팔팔하게 살아있는 자아를 깨뜨려야 한다. 내 의가 깨어지길 하나님은 원한다.


  설교자는 시계를 봤다. 거의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다. 두 시간 가까이 성령에 이끌려 말씀을 전하다보니 끝맺는 꼬리를 잠시 놓친 것 같았다. 그러나

이 교회 성도의 수준은 그의 메시지를 기승전결로 잘 요약할 줄 안다.

  경험, 자아, 고집, 스타일 등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힌 사실과 백 퍼센트 순종을 고백해야 한다는 것도.

  마무리 전에 설교자는 오늘 말씀을 기억하면서 다 함께 기도하기를 원했다.

  “주님! 아, 주님! … 아, 그렇습니다. 아, 주님!”

  그의 기도는 같은 단어로 계속 반복되었다. 그러나 그 기도 속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간섭하여 온전한 복음을 듣게 하고 순종케 해 달라는 간절함이 있었을 것이다.


  신혼부부는 서로의 처지나 이야기에 공감하는 배려를 잊지 않기로 스스로 약속해보았다.



 


15. 성령이 충만한 교회  





  40년 동안 종합병원이라 불릴 정도로 여러 병을 안고 살아온 설교자를 하나님은 지금도 끔찍이 사랑하시어 생명을 피아노 줄로 매어 두셨다.

  “여섯 번의 간암 수술은 아무것도 아냐. 일곱 번씩 일흔 번을 수술하더라도 괜찮아. 나는 너를 더 사용해야 돼. 일주일에 세 번은 투석해줄 테니 내가 주는 복음을 열심히 전하라. 피곤하여 주저앉는 일이 있더라도 쉬었다가 일어나서 나를 땅 끝까지 전하라.”

  하나님의 종이 된 죄로 그는 지친 몸을 끌고 주님 명하는 대로 복음을 전하며 살아왔다. 소금 먹은 시금치처럼 몸이 형편없어서 그 원하는 선교사의 꿈도 접어야 했다. 대신 선교사를 내보내는 데 정열을 쏟았다. 2010년까지 2,000명을 채우겠다고 하나님과 약속했는데 앞으로 몇 백 명만 더 보내면 약속은 이루어진다. 선교는 담임목사가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항상 죄송할 따름이다.


  설교자는 이 교회와는 창립 때부터 친한 것 같다고 했다. 원로목사는 신학교 다닐 때 3년간 스승이었고, 담임목사는 입학 동기이자 졸업 동기요 좋은 친구라는 것. 설교자는 친구의 박사학위를 위해서 뒤에서 기도했고, 친구가 돌아와서는 그의 교회에서 2년 동안 협동목사로서 귀한 사역을 하도록 배려했다.


  목회자가 되기 전에는 선교사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신학교 수련회에서 본 교회의 담임목사와 훈련 받았던 것을 그는 기억했다. 선교사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선교사로 갈 건강이 되지 않았다. 건강해지면 가겠다고 한 것이 벌써 40년이 지났다. 지금도 선교사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건강이 허락하지 않는다. 간암수술, 투석, 당뇨… 정상적인 건강이 아니다.

  금년 2월부터는 거의 일본에 가서 사는데 선교사의 목마름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선교사를 보내며, 목회자와 선교사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교회를 시작한 것이다. 선교사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처음에는 월급을 받지 않다가 나중에 받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꿈은 세 가지였다.

  첫째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여러 가지 꿈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이 목표를 잊어버린 적이 없었다. 결국 십자가를 졌다.

  둘째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성경에 교회를 세운다는 이야기는 없지만 신약의 전체를 볼 때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셋째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복음은 생명이요 구원이므로 땅 끝까지 모든 족속에게 전해야 한다.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것은 교회이지만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교회가 아니라 천상의 교회를 말한다. 주님은 이 땅의 교회를 사랑했다. 그래서 교회는 싸울 수도, 분열할 수도, 논쟁할 수도 없다. 예수님이 원하는 교회는 교파, 교단을 넘어서는 교회요,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다.

  왜 세상이 이처럼 시끄러운가? 교회가 가짜이기 때문이다. 왜 부정, 부패와 혼란이 있는가? 교인이 가짜이기 때문이다. 이름만 교인이지 그 사람 안에 예수가 없다.

  마태복음 16장의 말씀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이 교회에 천국열쇠를 주리니….”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그 교회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예수님 교회의 실체를 모르니 싸우고, 소리 지르고, 교회에 상처를 준다. 예수님 몸으로서의 교회, 하나님 나라로서의 교회를 본 적이 없으니, 눈에 보이는 것은 제도이고 방법이며 헌법뿐이다. 이런 교회는 아무리 많아도, 아무리 커도 세상에 영향력을 주지 못한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복음 18장의 말씀이다. 진짜 교회가 있는 곳에는 예수님이 계시고 눈물이 나고, 회개하고, 사람이 변하고, 병이 낫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교회는 사도행전의 교회이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며 느낄 수 있는 교회이다. 그러면 사도행전의 교회는 완전한 교회인가? 아니, 항상 싸운다. 껍데기를 가지고 있으니까. 조직과 사람이 제각각 다르고 의견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도행전의 교회가 초대교회로서 가장 이상적인 모델 교회였다. 그래서 설교자는 그의 교회에서 제일 먼저 설교한 것이 사도행전이었고, 지난 22년 동안 가장 많이 설교한 것이 또한 사도행전과 에베소서였다. 거기에는 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목회를 자꾸 하다보면 성경으로부터 멀어지고 인간적으로, 제도적으로, 전통적으로 가게 된다. 은혜로 구원 받았지만 3년쯤 지나면 다 율법으로 돌아간다.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고, 나와 다르면 싫어하고, 그러다보면 은혜가 없어진다. 

  “저희 교회도 완전한 교회가 아니고 실수투성이예요. 그러나 잘못을 회개하고, 인간적인 것을 빼고 원형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겁니다.”

  그는 예수님이 원하는 교회로 가고 싶다고 했다. 이런 영적 열망을 갖고 사역하니 선교사를 도우며 선교지를 개척하게 되고, 몸이 부스러지는데도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려고 하는 영적 의지가 생기는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소망교회만큼 인적자원이 많고 모든 걸 갖춘 교회가 몇 개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교회가 일어나고, 하나 되고, 사도행전적 교회로 솟아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러면 이 나라가 통일도 되고 변화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지난 30년 동안 풍성한 에너지를 부어줬으니 이제 물꼬를 터서 생명, 사랑, 구원, 축복의 에너지로 바꿀 수 있도록 모든 지혜와 능력, 돈과 명예와 시간을 쏟아야 한다고 그는 힘주었다.

  “이 교회와 비교하니 우리교회는 한참 뒤에 있더라구요. 여러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일본에 가서도 이 교회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교회의 모델이며 민족의 희망이 되어 달라고.”

  애기가 엄마 배속에 있을 때는 그 애를 잘 모른다. 태어나서도 볼품없는  지렁이 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 애는 자라면서 걷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 철도 들며 성인이 되어간다.

  교회도 그런 것이다. 완전한 교회는 없다. 교회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시간이 지나면 교회는 성장하고 성숙해지며 좋은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교회의 모델을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찾는다. 사도행전은 28장까지 있는데 정리해보니 10가지 특징이 있었다.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교회는 이 방향으로 가야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성령으로 태어난 교회이다.

  사도행전 2장은 오순절 날에 성령이 불의 혀같이 임했다고 한다. 교회가 성령으로 태어나는 경험이 없다면 그것은 세상조직이다. 예배드릴 때 성령의 바람이 교회 안에 가득해야 한다. 성령의 바람과 임재가 느껴져야 한다. 목사님과 장로님들의 얼굴을 보면 성령의 바람이 느껴져야 한다. 성령의 임재가 있으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우리는 가끔씩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는데 좀 더 많이, 그리고 길게 경험했으면 좋겠다.

  설교자는 담임목사와 지난 40년 동안 기억나는 것이 많다고 한다. 언젠가는 둘이 철원의 기도원에 갔다. 창세기부터 성경을 읽으면서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곤 했다. 그러면서 성령의 임재를 느꼈다.

  “성도 여러분, 회의하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의 웃음소리에 신혼부부도 따라 웃었다. 웃고 보니 더 웃을 가치가 있었다. 평소 사무실에서 회의가 너무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성령의 바람을 몰고 다녀야 하고 손을 펴면 성령의 불이 떨어져야 하는 것이 초대교회이다.


  두 번째는 예수공동체의 교회이다.

  새벽기도, 수요예배, 주일예배 등에서 말씀이 선포되고 성경공부가 이뤄지는 것은 감사할 일이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떡을 떼며, 기도하고, 유무상통하며, 필요에 따라 나눠 쓰는 곳이 사도행전 교회이다. 사도행전은 복잡하지 않다. 교회에 오면 너무 좋은 것이다.

  설교자의 아버지는 서울에 장사하러 갔다가 돌아올 때면 집으로 바로 오지 않고 먼저 교회로 갔다. 교회의 벽을 한번 만지고 와야 마음이 편했던 것이다.

  교회에 오면 집에 가기 싫어야 한다. 은혜 받은 교회는 자동차 앞바퀴가 교회 마당만 밟아도 은혜가 되어야 한다. 하루 종일 교회가 생각나야 하고 전도한 사람이 생각나야 한다.    

  오늘 같은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느냐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TV 앞에만 붙어있게 된다. 다른 데서 좋은 일을 하면 그쪽으로 가도 되고. 사랑하는 사람은 자꾸 보고 싶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목사님 보고 싶고 교회 가고 싶어지는 건 당연하다.


  세 번째는 치유하는 교회이다.

  사도행전 3장에 앉은뱅이를 고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주노니 나사렛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앉은뱅이는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었다. 교회는 이런 기적이 자꾸 일어나야 한다. 예수 믿고 나서 건강해지고, 가정이 하나 되고, 기적이 일어나는 간증이 구역모임이나 순모임에서 계속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네 번째는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이다.

  사도들이 전도할 때 당시 사람들은 싫어했다. 요즘은 기독교를 싫어하는 안티기독교가 조직화되기도 했다. 네티즌들이 무섭게 악플을 달면서 조직적으로 공격한다. 초대교회는 복음을 전하면 고난이 따랐다. 예수님의 제자 열두 명 중 제 명에 죽은 사람은 사도 요한뿐이다. 사도 바울도 자기 명을 붙잡지 못했다. 모두들 감옥에서 죽고, 옥상에서 죽고…. 자랑스러운 죽음이다.

  요즘 그가 가장 존경하는 교회는 샘물교회라고 한다. 세상에서 여러 말이 많지만 그게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전에 한동대학이 지나갔고, 그리고 샘물교회가 지나가다가 붙잡힌 것이다.

  “여러분의 교인도 잡혀갈 수 있고, 나도 잡혀갈 수 있고, 한동대학도 잡혀갈 수 있어요. 그런 거예요. 그 사람들이 걸린 것뿐예요.”

  설교자는 선교의 열정을 주체할 수 없어 다소 흥분했다.

  그는 스스로 생각해봤다.

  “저건 아무나 죽는 게 아닌데….”

  사도행전의 교회는 고난과 위기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수없는 위기 -도적, 시험, 굶주림, 목마름- 를 견뎌냈고, 돌에 맞고, 매에 맞고, 기절하면서도 마음속에 불타는 예수에 대한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성경을 열세 번이나 쓴 그는 학문적인 배경, 언어학적 탁월한 지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대학교수를 해도 열 번은 할 수 있었을 사람이다. 사도 바울을 연구해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결혼도 하지 않고 직업도 갖지 않은 그에 대해서.

  설교자는 지난번 로마에 갔을 때 바울이 참수된 자리를 보고 눈물이 났다고 한다. 바로 옆에 감옥과 참수대가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잘린 목이 세 번 떨어졌다는 것.

  “통, 통, 통.”

  그의 제스처는 실감을 자아내어 마치 현장에 있는 느낌을 주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

  이탈리아에서 이스라엘에 가는 데는 비행기로 3시간 거리. 로마를 중심해서 컴퍼스로 원을 그려보니 40개국이 걸려있었다. 이래서 바울이 로마를 전략지로 삼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0년 전 한국에 온 선교사의 피로 오늘날 한국교회를 만들었다. 오늘날 미국교회가 쇠잔한 것은 마틴 루터 킹 목사 이후로 순교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를 대신해서 김선일이 죽고, 이번에는 배형규 목사가 죽었는데 대동강에서 죽은 토마스 선교사와 뭐가 다른가? 복음을 위해서 세상의 악한 세력과 싸우다가 누군가 고난을 겪고 순교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교회가 예수 믿고 축복 받았으나 결정적으로 약한 것은 순교와 고난이 없다는 것. 한국교회는 천박스럽다. 부자 되고 건강해지고, 잘 되려고만 한다.


  다섯 번째는 재물을 나누는 교회이다.

  재물을 나누고 유무상통한다. 세상에 나가서 많은 가난한 자와 병든 자를 돕는 사람은 기독교인이다. 가톨릭은 조직적으로 구제하므로 커 보이는데 개신교는 다 각자 하므로 한 것이 잘 안 보인다. 개신교가 북한에 제일 많이 갖다 줬다. 타 종교에서 갖다 주는 것 보았는가?  

  설교자 교회의 교인 2,000명이 이스라엘에 갔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나자마자 아프가니스탄에 갔다. 이렇게 위기와 위험 속에 뛰어 들어가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다. 


  여섯 번째는 정직과 순결의 교회이다.

  사람들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즉사한 사건을 알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거짓말로 하는 것은 안 된다. 하나님이 언제 헌금하라고 했나? 촛불 하나 훔치는 것, 헌금을 위해서 속이는 것도 하나님은 원하지 않는다.

  교회는 끝까지 정직하고 순결하고 거룩하길 원한다. 외형적인 성장이나 거품이나 허세를 원하지 않는다. 왜 성령을 속이느냐의 문제이다.


  일곱 번째는 팀웍을 이루는 교회이다.

  스데반은 위대한 설교자이지만 평신도이다. 평신도는 목사와 같아야 한다.

  “나는 ‘평신도’라고 하지 마세요. 그러면 ‘병신도’가 됩니다.”

  물론 웃으려고 한 이야기다.

  설교는 아무나 할 수 있고 성도들도 할 수 있다. 평신도인 빌립은 위대한 전도자이다. 스데반은 구약의 지식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완벽한 설교를 할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은 원고를 보고 한 것도 아니다.

  신학교수 조지 헌터는 사도적 교회가 되려면 성도 각자에게 가장 적합한 미션을 찾아줘야 한다고 했다. 목사가 사역을 도맡는 교회는 정체하며 사람을 낚는 어부가 아니라 수족관을 지키는 교회밖에 안 된다고 했다.

  초대교회는 평신도 지도자를 설교자로 세웠다. 역할은 서로 다르지만 사도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드림팀을 만들었다. 이런 팀웍이 오늘날 교회에서도 필요하다.


  여덟 번째는 이방인을 품는 교회이다.

  진정한 교회는 가슴으로 이방인을 품는 교회다. 교회는 동류결합 원칙으로 끼리끼리 놀려고 한다. 백인은 백인대로, 흑인은 흑인대로, 동양인은 동양인대로…. 한국교회는 100만 외국인노동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그 사람들을 품어줘야 한다.

  인간은 이기적어서 제일 먼저 기도하는 대상은 자기 자식이다. 자기 남편도 아니고 아내도 아니다. 자식의 벽을 넘으면 그때 남편과 아내가 보인다. 그리고 기도가 깊어지면 자기 나라를 위해서 기도한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며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그래도 자기나라를 벗어나지 못한다. 자기와 상관없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미전도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없다. 그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처음 베드로는 고넬료를 받을 수 없었고 세례를 줄 마음도 없었다. 그는 유대인이었고 고넬료는 이방인이었다. 베드로와 같은 위대한 사람도 율법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사도 바울과 싸웠다. 나중에 하나님이 베드로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환상을 보여주기 위해 보자기를 올렸다 내렸다 했다. 성경에 더럽다고 한 것을 하나님은 먹으라고 한다.

  “내가 깨끗하다고 하는데 네가 더럽다고 하느냐?”

  그때 베드로는 복음을 깨닫고 고넬료에게 세례를 주었다. 다른 계급, 다른 종류, 다른 지역… 이 모든 것을 품는 것이 교회이다.


  아홉 번째는 선교하는 교회이다.

  사도행전은 28장까지인데 13장부터 끝장까지가 선교에 관한 이야기이다. 거의 2/3에 해당한다. 안디옥 교회는 담임목사격인 지도자를 선교사로 보냈다.

  사도행전을 공부하는 중 13장을 공부할 때 마침 선교사를 보내게 되어서 설교자는 너무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 교인이 찾아왔다.

  “목사님, 그건 성경 본문하곤 다른데요?”

  “뭐가 다른데?”

  “성경엔 바나바와 바울이 갔습니다.”

  자기 담임목사가 가지 않았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그렇다. 담임목사를 보낼 수 있는 용기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교회가 이걸 포기하지 않으니.

  한국의 초대교회 선교사들은 다 총장 감이었고 미국의 지성인들이었다. 의사 등 고급인력들이 한국에 왔기 때문에 우리나라 왕실과 접촉할 수 있었고, 상류사회와 교류할 수 있었으며, 성경을 번역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목회 실패한 사람은 선교사로 가면 안 된다. 사도행전을 보면 최고의 리더를 보냈다. 그만큼 선교가 중요한 것이다.

  이 교회가 선교하는 방법은 딱 한 가지가 있다. 목사나 장로의 자녀들을 선교사로 보내는 것이다. 장로들이 새벽기도에 나와서 눈물로 기도할 것이다.

  어느 권사가 설교자를 찾아왔었다.

  “목사님, 기도해주세요. 제 아들이 이라크의 선교사로 갔습니다.”

  그는 가슴이 뭉클했다. 이 분의 기도는 다른 사람과는 다를 것이다.


  마지막 열 번째는 하나님과 예수를 가르치는 교회이다.

  사도행전 28장은 끝이 아니라 컴마이다. 바울은 2년 동안 셋집에서 살았다.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가면 집부터 사려고 한다. 2년 동안 사도 바울로부터 배운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분들은 2000년 동안 예수를 가르쳐왔다. 그들이 예수를 봤습니까? 팔레스타인에 살기라도 했습니까? 히브리민족, 유대민족이 우리 대한민국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100년 전 이 나라에 선교사가 들어와서 학교와 병원과 교회가 세워져서 지금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 예수 없으면 못 살게 되었는데, 이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나? 과거로만 끝나지 않고 앞으로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날 것이다. 어딘가 미전도 종족에게서 일어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축복받을 줄 믿는다. 왜? 배형규 목사를 죽여놨으니까. 그 나라는 50년, 100년 후에 축복의 꽃이 필 것이다. 연세대, 이대를 우리가 세운 것처럼 자랑하지 말자. 근대화는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한 것이다. 백 년 전 우리나라처럼 우리도 어딘가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70여 분의 선교사님들이 참석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열매를 맺지 못하더라도 아브라함처럼 멀리 하나님나라와 메시아가 태어날 것을 바라보면서 씨를 뿌리도록 합시다.”

  환자답지 않게 설교자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언젠가 통일이 오고 이 나라가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작년에는 나라 때문에 많이 걱정하고 기도했던 그였다. 금년에는 하나님께서 희망찬 메시를 주었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변할 것이다.”

  그 메시지를 받고 그는 너무 기뻤다. 미래에 대한 꿈과 환상을 가지라고 성도들에게 주문했다. 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민족에게 축복을 줄 것이라고 그는 확신의 메시지를 전했다.   


  설교가 끝난 후 소희철은 멍했다. 팔팔하게 살아있는 자신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가를 생각하니 너무 미미했다. 그러나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라는 성경말씀으로 그는 힘을 얻었다. 아직 꿈을 펼칠 날은 많다.



 


16. 영생의 말씀이 있는 교회

    


 


  은퇴 후 4년 동안 한 번도 본 교회에서 설교한 적이 없다는 원로목사가 교회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직접 주일예배를 집전한다고 하여 신혼부부는 아침부터 마음이 들떠 있었다. 영의 양식을 많이 먹기 위해 육의 밥, 아침밥을 적게 먹고 가야겠다는 엉뚱한 각오도 해보았다.

  역시 앞줄 가운데 여니 때와 같은 좌석을 잡았다.

  더디어 원로목사는 성전 강단에 올랐다. 74세의 연륜이 무색하게, 그리고 질투 나게 젊어 보였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창립30주년을 맞이한 교회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은퇴한 다음 이제 만 4년이 되는데, 가끔 길에서 교인들을 만나면 ‘다른 교회의 원로목사님들은 설교하던데 왜 목사님은 본 교회에서 설교하시지 않습니까?’하고 질문합니다. 저는 이제 공개합니다.”

  그의 공개는 이러했다.


  은퇴하기 3년 전부터 기도하면서 준비한 것이 있었다. 목회 50년 동안 개척한 교회는 이 교회뿐인데 하나님께서 은사와 건강을 주시면 생전에 다섯 교회를 더 개척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교회 성도들의 기도와 성원으로 분당에 8,000여명의 교회, 일산에 500여명의 교회가 세워졌다. 4년 만에 이만한 성장은 기적이다. 분당과 일산에 왔다 갔다 하면서 설교하느라고 주일은 매우 바빴다. 그래서 본 교회에 오지 못한 것이다. 성도들의 이해를 구했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면 앞으로 3개의 교회를 더 세우겠다는 각오다.


  한주일 내내 빈둥빈둥 노는 두 젊은 청년이 있었다. 이번 주에는 화끈하게 한번 놀아보겠다는 각오를 하고 도박장으로 향했다. 교회를 지나가게 되는데 뭔가 써져 있는 것을 보았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

  이것을 보고 한 청년은 발이 딱 붙어버렸다. 그리고 교회로 들어갔다. 한편 다른 청년은 도박장으로 가서 술도 마시며 화끈하게 시간을 보냈다.

  이로부터 정확하게 30년 후.

  교회로 들어갔던 청년은 그로버 클리블랜드인데 미국 제22대 대통령이 되었다.

  도박장으로 갔던 그 친구는 종신형 선고를 받고 감옥에서 있는 중 친구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그 대목에서 원로목사의 목소리는 포르테의 레벨로 올라갔다.

  주일 날 어떤 부부 집사가 갑자기 일이 생겨 남편만 교회에 가게 되었다.

  “여보, 오늘 교회에 가면 졸지 말고 목사님 말씀 잘 듣고 나에게 전수해줘요. 그래야 나도 말씀 듣고 은혜 받아서 한 주일 잘 보낼 수 있지 않겠어요.”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교회로 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부엌에 있는 아내를 왈칵 끌어안고 화끈하게 사랑을 해주었다.

  “여보, 오늘 은혜 많이 받았어요?”

  아내는 너무 감격하여 남편에게 물었다.

  “그래 은혜 많이 받았어.”

  “목사님으로부터 무슨 말씀을 들었어요?”

  “그건 말할 수 없어.”

  아내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쨌든 그날은 너무 행복했다.

  하룻밤을 자고난 아내는 과일을 사들고 목사님을 찾아가 인사했다.

  “목사님, 저희 남편이 어제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내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까?”

  “아닌데요.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지요.”

  여기서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내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다면 윤리강령이지 복음이 아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해서 사랑했으면 그게 바로 복음이다.

  말씀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중생케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말씀은 지식이 아니고 윤리강령도 아니다.


  나이가 드니까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원로목사는 운을 뗐다.

  지난 50년 동안 일만 번 이상의 설교를 하다 보니 자신의 설교에 대하여 연구하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그 중에는 석사논문이 100편 이상, 박사논문이 4편이나 되었다. 읽어봐도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지만, 그래도 고맙게 받아들였다.

  어떤 목사는 지식을 준다든지, 혹은 감동을 준다든지 하지만 곽 목사의 설교는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그 중에는 참으로 감동을 주는 것이 있었다. 논문 제목은 ‘역사신학적 조명에서 본 곽 목사의 설교와 신학’이었다.

  말씀은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이다. 왜냐하면 말씀 자체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말씀되게 하기 때문이다. 설교란 'Not interpretation, but application.'으로서 성경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적용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온 것과 같이 하나님의 종을 고용하여 은혜의 방편으로 사용해서 사람을 변화시킨다. 성경공부를 많이 해서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책에서 성공을 위한 처세학을 보았다.

  첫째, 알고도 행치 않는 사람에게 충고하지 마라. 잠언에서도 ‘교만한 자를 충고하면 벌을 받는다.’고 했다.

  둘째, 듣기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말하지 마라. 말함으로써 상대방을 괴롭게 할 뿐이다.

  셋째, 대답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묻지 마라. 형사 취조하듯이 묻는 것은 ‘그만 하세요’라는 말만 듣는다.

  때로는 선동적이고 감동적인, 즉 엔트테인먼트 같은 설교도 있으나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는 부족하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두 종류의 신앙고백을 했다. 하나는 “주는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이고, 다른 하나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이다.

  이 둘을 비교할 때 후자가 한 차원 높은 고백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갔을 때 로마 군인이 찾아와서 하인을 고쳐달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의외로 승낙했다. 그런데 로마 군인은 예수님이 자기 집에 오는 것을 감당치 못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우상이 많은 자기 집에 오면 바리새인이 가만있지 않을 테고, 또 예수님이 비난거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씀만 해주세요. 그러면 내 하인이 나으리라”고 했다.

  예수님은 감동하여, “온 이스라엘 중에 이만한 믿음을 만난 적이 없느니라. 가라, 네 하인이 나았느니라.”고 크게 칭찬했다.

  ‘말씀만 하세요’라고 하는 이 말씀 중심의 신앙에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12살 먹은 야이로의 딸이 병들어 죽었으나, “딸아 일어나라” 했을 때 일어났고, 청년이 죽어 관을 메고 나가는 것을 멈추고, “청년아 일어나라”했을 때 청년이 일어났고, 또 죽은 지 사흘이 되어 썩어 냄새가 나는 시체를 보고, “나사로야 나오느라” 했을 때 무덤에서 시체가 걸어 나왔다.

  이것이 말씀이요, 말씀은 곧 능력이다.

  유명한 신학자 피터스는 성경을 읽고 혹은 설교를 듣고 옳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말씀의 능력이 아니라고 했다. 말씀을 듣는 순간 확 변하고 환해지는 경험을 하는 것이 말씀의 능력이라고 한다. 말씀이 역사할 때 확 달라진다.


  또 중요한 것은 사죄권의 행사이다.

  가버나움에서 환자 한 명이 왔다. 지붕을 뚫고 환자를 달아 내렸다. 예수님은 딱 보는 순간 “네 죄를 사함 받았느니라”고 했다. 환자는 나음을 받았다.

  빌 그레함 목사는 비유를 이렇게 했다.

  홍수에 떠내려가는 사람이 자기 머리카락을 자꾸 위로 잡아당겼다. 그렇다고 물 밖으로 나오겠는가?

  예수님이 옆에 매달린 강도에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또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하는 말씀은 하나님만이 우리의 구원이라는 뜻이다.


  남편이 예수 믿지 않는 어느 여집사가 남편을 예수 믿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응답 받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날 은혜를 받고 “나는 행복하다. 너무 행복하다.”하고 자꾸 되풀이하니 경상도 남편은 이를 보고 이상하게 여겨졌다.

  “야, 너 미쳤냐?”

  “아니?”

  “술주정뱅이하고 사는 게 뭐가 그리 행복하니?”

  “매일 술 마셔도 건강하니 행복하고, 술 취한 정신으로 제 집 잘 찾아오니 행복하고, 술만 마시는 줄 알았는데 제법 돈도 벌어 집안 식구 먹여 살려줘서 행복하고… 나는 모든 게 행복해요.”

  “고만해라. 다음 주부터 교회 나가 줄게.”

  결코 우스개 이야기가 아니다.


  성경은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내가 이루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면 행복해지는 것이다.


  사람은 보는 것이 많으면 듣지 못하고, 듣는 것이 많으면 생각하지 못한다.

  디스코에 가보면 얼마나 시끄러운가? 뇌세포가 죽는다. 교인은 교회 나오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듣는 사람이다. 엘리야 선지자처럼 조용히 묵상하며 듣는 것이다. 마음을 열고 주의 음성을 들으면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변한다.

  영생의 말씀이니 뉘게 가오리까? 말씀이 말씀되게 하는 것이 교회이다. 영생의 말씀이 있음으로써 우리의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이 바뀐다.


  원로목사의 설교는 신혼부부에게 많은 감명을 부어주었다. 가슴이 미여지는 감동으로 황홀하기까지 했다. ‘이만한 은혜를 만나본 적이 없다’고 예수님 스타일의 고백을 하기도 했다. 직장인으로서, 가정의 주체로서 미래를 살아가는 데 큰 힘을 받았다고 그들은 감사했다.

  일주일간의 창립30주년행사가 너무 짧은 것 같았다. 비싼 수업료를 내고도 들을 수 없는 값진 인생수업을 받았다. 미지근하기만 했던 그 동안의 신앙이 크게 도전받았다. 부부의 사랑도 말씀 속에서 역사함을 깨달았다.

  태어날 아기는 하나님이 양육해주시리라 믿고 그들은 믿음, 소망, 사랑 안에서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끝>

 

종교와 관계없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