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선박지식 기초

선박지식 기초 다지기

오선닥 2011. 11. 27. 21:36

송대길이 써 내려가는 소설을 이해하려면

배를 대충이라도 알아야 하는데

대충 아는 데도 최소한 육 개월 승선을 해봐야 합니다.

그만큼 감 잡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요.

승선 경험이 없거나 적은 분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배의 기초지식을 제공하려고 합니다.

이게 주인공의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독자들은 귀찮더라도 일별해주시기 바랍니.

 

 

 

 

*** 항해의 역사 ***

 

바다 수평선 너머 세계는 인간에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심을 품게 했다.

드넓고 잔잔하게 펼쳐진 평화스러운 바다는 때론 폭풍우와 함께 인간에게 극한의 공포감을 안겨주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바다는 인간이 하늘의 별자리를 관측하게 되고 이를 이용한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끊임없는 탐험을 통해 점차 그 베일을 하나씩 벗기기 시작했다.

 

항해자들의 목숨을 건 도전의 역사는 대륙을 잇는 항로를 발견하고, 미지의 육지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실종되고 목숨을 잃으면서 이어져갔다.

 

바닷길을 찾아가는 전문적인 항해술이 점차 발달하고 전파되면서 문화와 교역물품을 운반하는 '바다의 실크로드'가 열려나가고...

 

 

항해술과 천문관측 기구의 발달이 궁금해지고, 때문에 더 알고픈 욕망이 송대길을 지식 갈증으로 몰아넣는다.

 

연대순으로 두루마리를 펴보자.

 

 

• 기원전 25세기:

아카드제국 사르곤왕 시대 아프리카에서 온 배들이 메소포타미아의 부두에 정박했다는 사실이 점토판에 기록됐다. 바다를 이용한 무역로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구리와 보석들이 운송됐었나.

 

• 기원전 15세기:

이집트의 하트셉수트 왕비는 금이 나오는 나라 '푼트'(현 모잠비크로 추정)로 바닷길을 이용해 원정대를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선원 자질이 부족했던 이집트인들을 대신해 동부 지중해의 무역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상국가인 페니키아의 수중으로 넘어가게 된다.

 

세계문명을 선도한 이집트는 조선과 항해의 초기 단계에서 많은 것을 이루긴 했지만 새로운 발전은 다른 국가, 즉 크레타로 넘어갔다.

시간이 흘러서는 페니키아나 크레타로부터 그리스, 로마에게 계승됐다.

이집트의 영화는 과거 속으로 묻혀갔다.

 

• 기원전 6세기:

페니아키아인은 이집트를 출발해 아프리카대륙의 동쪽을 돌아 아프리카대륙 최남단에 도착했다가 대서양을 따라 북쪽으로 항해해 지중해를 거쳐 일 년 만에 이집트로 귀환해 아프리카대륙을 일주한 최초의 기록을 남겼다.

 

• 기원전 4세기:

지중해 출신인 항해자가 최초로 영국을 거쳐 북해항로를 탐험했다. 북극권을 항해한 인류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 기원후 1세기:

로마를 중심으로 지중해와 인도 간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홍해에서 인도로 가는 해로가 발달했다. 지중해와 동양을 잇는 정기 운행노선에 백여 척이 왕래했다.

 

• 서기 7세기:

아라비아의 다우선이 인도와 중국으로 항해했다.

조선과 무역, 항해술 경험에서 아라비아의 항해는 고대 사르곤왕 시대부터 4000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아라비아 상선의 기나긴 항해와 그들의 활동배경을 토대로 하고 있다.

 

• 서기 9세기:

신라의 장보고는 당나라 서주(徐州)에 건너가 장군이 됐으나, 신라에서 잡혀간 노비의 비참한 처우에 분개하여 사직하고 귀국했다. 해적들의 인신매매를 근절시키기 위해 왕의 허락을 얻어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해 해적을 완전히 소탕했다. 중국과 일본에 무역사절을 보내어 삼각무역을 했다. 845년 딸을 문성왕의 차비(次妃)로 보내려 했으나 군신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이듬해 그의 세력에 불안을 느낀 조정에서 보낸 자객 염장(閻長)에게 살해됐다.

 

• 서기 11세기: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반도를 중심으로 게르만족속인 바이킹들이 항해에 나섰다.

이들은 북대서양의 북항로를 이용해 그린란드는 물론 아메리카 신대륙까지 진출했다. 그중 에릭손이 지휘권을 가진 바이킹의 배는 1003년 오늘날 미국 매사추세츠의 낸터컷 사운드에 상륙했다. 에릭손과 그 선원들도 역시 최초로 신대륙을 발견한 사람들로 역사에 편입됐다.

 

• 서기 15세기:

명나라의 제독 정화는 아라비아로부터 필리핀까지 전 세계 절반의 선박항로를 구축했다.

그런데 정화의 동아프리카 원정이 끝나고 1424년 명의 융로황제가 사망한 이후 중국은 항해국가를 포기하고 수백 년 동안 외부와의 모든 접촉을 차단했다.

 

• 대항해시대 15~17세기:

15세기 초부터 17세기 초까지 유럽의 배들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항로를 개척하고 탐험과 무역을 하던 시기를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라고 한다.

아메리카 대륙과 같은 지리적 대발견 혹은 대탐험을 일컬어 철저하게 유럽인의 관점에서만 바라본 편협한 용어임에 틀림없다.

이전에 해상무역이나 명나라 정화의 대항해 등은 쏙 빼버렸다. 유럽인의 활약이 상대적으로 쪽 팔리니까.

신대륙 쟁탈전과 해적이 창궐했던 모험시대였다.

 

1492년 유럽에서 대서양을 가로질러 남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는 최초로 신대륙을 발견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신대륙은 이미 서기 6세기와 11세기 각각 아일랜드 수도사 일행과 바이킹들에 의해 발견됐다고 하는데도….

 

1519년 마젤란은 다섯 척의 배에 선원 268명을 태우고 인류최초로 세계일주에 도전했다. 그러나 3년 만에 스페인 고향으로 돌아왔을 땐 배 한척과 선원 18명만이 남았다. 마젤란은 세계일주 도중 필리핀에서 원주민에 의해 살해됐지만 마젤란의 세계일주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실제로 증명해 보였다.

 

해외진출의 중심은 무역회사였다. 동인도회사는 1599년에 만들어져 동방무역의 7할을 장악했다. 동인도회사는 단순한 무역회사가 아니라 영국정부가 개입하고 회사 내에 육해군이 있어 선전포고의 권한이 있었다. 식민지에 관한 행정 사법권뿐만 아니라 화폐주조권도 있었다. 상업적 기능은 정치적 기능까지 지니게 됐다.

 

• 해양진출시대 18~19세기:

1768년~1779년까지 11년 동안 세 번의 성공적인 태평양 탐험여행을 떠나 세계를 일주하며 태평양 지도를 제작한 제임스 쿡은 '캡틴 쿡' 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항해사 겸 지도제작자였다.

그의 또 다른 업적은 긴 항해에서 비타민C 부족으로 인한 괴혈병을 야채 공급으로 극복하게 했던 점이다. 배를 타본 사람만이 비타민이 얼마나 중한지를 안다. 대항해시대 많은 선원들이 몰죽음을 했던 이유가 비타민 부족이었으니까.

 

1769년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은 영국의 공장을 기계화했을 뿐만 아니라 1807년 풀턴이 증기선을 만드는 데도 기여했다. 산업혁명의 불씨를 당겼고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은 제국주의 모유(母乳)와 다름없었다.

 

해운은 이베리아반도, 홀란드, 영국의 순으로 팽창이 진행됐다.

구 식민주의는 쇠퇴하기 시작해 범 영국주의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1776년 미국이 독립할 무렵 아담스미스의 자유무역론(국부론)이 등장했다.

영국은 자유무역을 하는 것이 유리했다.

산업혁명으로 공산품 생산 경쟁력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무역은 비공식적 제국주의인 셈이다.

증가하는 원자재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영국은 해군의 무력까지 동원해 1870년부터는 제국주의 길로 들어섰다.

 

미국 제국주의는 앞서 남북전쟁이 끝난 이후에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독점자본주의는 1860년대를 기점으로 1900년대까지 활기를 보였다. 자본의 축적, 기술발명, 물적 자윈의 풍부, 농업생산 등이 뒷받침 되었다.

1860년의 미국인구가 3,100만정도였다가 1900년에는 7,600만으로 증가됐다. 남유럽, 동유럽에서 1,000만명의 이민이 들어왔다.

 

1873년 산업불황을 고비로 산업 합리화에 따른 기업통합이 시작되고 독점자본이 등장했다.

1900년에 에너지원이 석탄에서 석유와 전기로 바뀌었다.

단순 증기기관이 내연기관으로 바뀌고, 전기기구가 출현했다.

 

• 해양확장 20세기:

운하는 대륙의 허리를 잘라 대양간 이동을 단축시켰다. 수에즈운하는 프랑스인 레셉스에 의해 1869년 개통됐다. 런던과 봄베이 간의 거리가 희망봉 경유보다도 약 9,000km가 단축되고, 영국의 동양 식민지 경영에 큰 공헌을 했다.

1967년 6일전쟁으로 운하가 폐쇄되었다가 8년만인 1975년 재개통 되었다.

 

미국은 1890년 개척지역(평방마일당 3명)이 소멸하게 되자 해양진출이 시작됐다. 태평양은 미국의 앞마당이고, 카리브해는 미국의 뒷마당이었다.

미국제국주의는 1895년에 본격적으로 무대에 등장했다.

 

쿠바,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을 동시에 침공했다. 미국의 간섭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은 남아메리카에도 국제경찰 역할을 했다.

먼로 정책의 확대 해석의 결과다.

 

1904년 미국은 파나마 내란에서 콜롬비아로부터 독립운동을 사주해 독립을 달성시킨 후 운하 건설권을 따낸 후 1914년 파나마운하를 건설했다. 남미 남단을 우회하는 것보다 15,000km를 단축시켰다.

 

세계는 다른 국가를 지배 또는 예속하여 두려는 것을 제국주의로 향했다.

제국주의는 구 식민주의로 이해되는 중상주의와 구별된다.

제국주의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조장해 두 개의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상선은 제2차 세계대전 전쟁물자 수송선으로 사용됐다.

21세기 초 인구는 100년 전에 비해 5배 증가했다.

곡물, 강철, 석유 생산이 급증했고 선박 수요도 늘어났고 대형화돼 나갔다.

유조선은 56만톤, 광석선은 40만톤, 컨테이너선은 12,000TEU, 여객선은 20만톤까지 커졌다.

 

 

 

 

 

*** 배의 역사 ***

 

배는 언제부터 만들기 시작했을까?

족발에도 족보가 있고 설렁탕에도 원조가 있다.

 

배가 인류의 문명사에 등장한 것은 ‘노아의 방주’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아르고 선’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두 선박은 신화로 남아 있는 이야기.

 

한 토막의 나무 조각을 배로 이용한 것을 배의 시초로 본다면 배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구나.

 

인력에만 의존하는 노도선, 노와 돛으로 추진하는 범노선, 바람과 돛을 이용하는 범선, 돛과 기계를 이용하는 기범선, 기계의 힘만을 이용하는 동력선 등의 순서로 진화한 것.

 

 

갈대배 ‘파피루스’가 기원전 4000년경에 엮여졌다고 한다.

나일강 하류에 띄워 놓으니 그럴 듯하게 배 모양이 나왔다. 이것이 배의 원조라고 해야 하나.

 

초기엔 통나무나 갈대를 묶어 만들었으나 나중엔 버드나무 가지도 사용됐다.

하늘적한 나무 가지로 바구니처럼 만들어 가죽을 입혀 놓으니 꽤 근사했다. 여자 허리만큼이나 예뻤다. 작은 배, 코러클(coracle: 동그랗고 작은 배)이라고 부른다.

 

 

배를 앞으로 내보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노를 만들었다.

진로 방향을 잡아줘야 한다. 그래서 키를 만들었다.

더 큰 배를 만들어야겠다. 그래서 키를 크게 만들었다.

자연히 키를 설치할 갑판 선실이 넓어야 하고, 많은 노잡이들이 필요했다.

노 젓는 일은 노예들이 잘하는데….

 

문명의 발상지로 네 강이 있지만 유독 나일강만이 수상 운송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이유를 알았다.

메소포타미아 강만 하더라도 상류는 얕고 바위투성이요 바람이 강의 흐름과 같은 방향으로 불어 항해가 위험했다.

반면 나일강은 넓고 툭 트인 강줄기와 물의 흐름과는 반대방향으로 부는 바람 덕분에 강의 상하류로 쉽게 왕래할 수 있었다. 나일계곡의 주민들은 바람을 이용하는 돛을 사용하게 되었다.

 

기원전 1500년경 이집트에는 하트셉수트 여왕이 나타났다.

하셉트수트 여왕은 투트모스 1세의 장녀로, 이복형제인 투트모스 2세의 왕비이다. 남 보기엔 어색하지만 남매간의 결혼이 왕국을 지키는 데는 보증수표다.

그들에겐 아이가 없어 후궁에서 태어난 투트모스 3세가 왕위를 계승했다. 그러나 서자의 나이가 어려 여왕이 직접 22년간 통치했다.

여왕은 나일강에서 갈대상자의 모세를 건져낸 여인이기도 하다. 모세가 출애굽을 하지 않았더라면 떨떠름한 서자 대신에 물에서 건져낸 모세가 왕이 됐을는지도.

 

예나 지금이나 여성 통치자는 자신이 여성임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하트셉수트 여왕은 몰약을 얻기 위해 갤리선 다섯 척을 이웃나라로 보냈다.

배는 돛으로 항해하면서 동시에 노를 젓는 것이었다.

 

갤리선(Galley)은 폭이 좁고 길이가 길게 만들어졌다.

추진력을 높이기 위해 노를 2~3단으로 배열했다.

갤리선은 본질적으로 노를 사용하지만 돛도 사용했다. 가로돛이었다.

원정대의 갤리선은 길이 30미터, 너비 6미터, 배수량 90톤 정도였다나.

 

이 배들과 기원전 3000년경 사후레 왕 시대 배들 간에는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1500년 동안 큰 발전이 없었다는 것은 한심한 일이지만 오랫동안 기술의 발달이 없었던 때라 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기원전 1500년경 동지중해를 지배한 크레타인과, 그 후손인 페니키아인은 해상무역에 뛰어났다. 그들은 노를 사용하는 갤리선과 범선을 구별했다.

 

기원전 1200년경 크레타로부터 승리를 거둔 람세스 3세는 이집트의 위대한 통치자였다.

그의 승리 기념 조각에는 매우 다른 형태의 배들로 구성된 두 개의 함대가 등장한다.

선수(Bow)는 사자 머리로 장식돼 있고, 선미는 끝이 위로 올려 있다. 노잡이는 현장(Bulwark)으로 보호받고 있고, 돛대에는 꼭대기(Top)가 있다. 아마도 전함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것들.

 

갤리선의 조타장치(Steering Gear)는 대단히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다란 노가 아닌 키잡이(Helmsman)가 손에 쥐고 어느 방향으로든 밀어내는 것이 가능했다. 키는 고정되어 구멍이 허락하는 한에서만 돌아간다. 좌우에 하나씩 고정되어 있는 키는 손잡이가 달려 있다.

 

천년 동안 지중해에서 활약한 해양민족 페니키아인은 크레타인이 발전시킨 목선으로 연안 물자교역을 활성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추진은 주로 노이고 간혹 돛이 사용되었다.

노를 젓는 롱십(Long Ship)과 돛으로 항해하는 라운드십(Round Ship)의 두 유형은 이집트의 배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것은 페니키아인에 이어 그리스와 로마의 배들을 거쳐 목재 선박의 말기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주었다.

 

 

로마의 멸망 이후 사라졌던 갤리선은 9세기 말 다시 등장하여 16세기까지 지중해의 군선으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 갤리선을 가장 잘 사용한 나라는 베네치아였다. 주로 3단 갤리선을 이용하였는데, 이것은 하나의 노를 세 사람이 함께 잡은 것을 의미한다.

 

군선으로 등장한 갤리선 중 가장 큰 것은 갈리아스선이었다. 1530년 베테치아 해군이 만든 것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신무기이기도 했다.

 

길이는 45미터로 사령선 갤리선보다는 짧은 편이지만 폭은 10미터 가까이 된다. 이것은 기존의 군선, 상선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 그 당시의 탑승인원이 700명이었다는 기록만 보아도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노잡이들의 위치가 갑판 밑 계단 같은 곳이었다는 것이 기존의 갤리선과 다른 점이었다.

원거리 포격을 주목적으로 하는 갈리아스선은 근접전투를 하는 갤리선과는 달리 노잡이가 전투원으로 동원될 필요는 거의 없었다.

 

그 대표적인 것은 갤리선이라는 것으로서 선측(船側)에 많은 노를 달아서 배를 젓고, 대형인 것에서는 2단·3단의 갤리선이 출현했다.

이 형태의 배는 폭이 넓고 갑판은 타원형이며, 외판은 평평하게 붙이는 것이 특징이었다.

 

 

지중해형선과 대조적으로 북유럽에서는 8세기 중엽부터 덴마크·스칸디나비아 지방에 살던 노르만인이 북해형(北海型)의 배를 만들어 북해에서 활약하였다. 이 형태로부터 발달한 것이 바이킹선으로, 선수미(船首尾)가 뾰족하고 긴 선형을 하고 있으며, 외판은 비늘달기를 특징으로 하고 경쾌하게 항주했다.

 

이 두 선형은 10세기경부터 전 유럽의 해상에서 서로 다투어 각각의 장점을 취한 배를 만들었고, 그 크기가 200~300t인 것도 출현했다.

 

바이킹선은 8~11세기 300년간 온 바다를 누볐다.

바이킹족들은 고향인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를 떠나 땅, 노예, 금, 은을 찾아 넓은 바다로 향해 돛을 올렸다. 그들은 단순히 거친 야만인은 아니라 노련한 장사꾼이었고, 우수한 항해사였으며, 뛰어난 선박 기술자들이었다.

 

바이킹선은 전장 20m, 폭이 6m 정도였다. 12m 길이의 돛대에 단 큰 가로돛으로 추진되었고 군선에 비해 노의 수는 적었다.

원양 바다에서는 직사각형의 큰 돛에 의존해 항해했고, 연안 해역이나 강에서는 돛을 내리고 대신에 노를 저었다.

바이킹의 전함은 가볍고 날씬하여 대양을 가로질러 멀리까지 전사들을 실어 나르며, 길고 날렵하며 속도가 빨랐다. 돛과 노를 함께 쓰고, 크기에 따라 24∼50개의 노가 필요했다.

 

 

11~13세기 십자군전쟁 당시에는 해상수송을 통해 다수의 군사를 서유럽에서 팔레스티나로 옮기는 관계로 조선술·항해술이 발달했다.

당시의 배는 선수와 선미에 높은 선루(船樓)가 있고 그 밑을 거주구로, 중앙부를 화물창고로 하고 있었다. 2개의 돛대에 각각 큰 돛을 올려서 범주하였다.

그 후 원양선은 이 형태가 크게 된 것으로서, 배라고 하면 모두 목조범선을 뜻하였으며, 목선시대는 19세기 후반까지 계속됐다.

 

12세기에는 대형 선박의 선수와 선미에 설치된 가벼운 선루를 제외하고 배의 모양이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범선의 중대한 변화 중 하나는 선미키의 도입이었다.

 

인력 사용에서 탈피한 범선은 13세기경부터 시작해 코그선이 출현하고, 15, 16세기에는 더욱 발달해 지리탐험시대가 되며, 19세기까지 화려한 범선시대가 계속됐다.

 

13~17세기 해상 무역이 성행하던 시대에 독일 도시들은 관세와 물품 통과 등의 협정인 한자동맹을 맺었다. 100개나 되는 도시가 동맹에 가입했다. 이때 상업 수단으로 이용된 것이 코그선이다.

코그선은 한 본 마스트이다. 바이킹 선보다 길지 않으나 폭은 넓어지고 깊이도 더욱 깊어져 화물을 많이 실을 수 있었다. 배의 크기가 점차 커지면서 선미에 노를 달아 키의 구실을 하였다.

 

 

화약의 발명으로 1350년경 배에 대포가 처음으로 설치돼 군함과 상선의 차이가 커지게 되었다.

한편 대포를 설치하는 시대의 추세에 따라 대형 대포가 갑판 위에 설치되어 선측에 뚫린 포문을 통해 발사되었다. 이 포문은 1501년 프랑스의 조선공에 의해 발명되었다고 전해진다.

 

 

목재를 견고하게 짜 맞춰 배의 골격을 만들어서 외판과 갑판을 붙인 구조선(조립선)이 출현한 것은 15세기경으로 보인다.

 

선미의 모양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선수처럼 뾰족한 선미에 키를 받쳐주기 위해 곧은 러더 스톡(Rudder stock: 키의 軸材)을 사용했고, 그 위에 선미루를 세웠다.

 

배의 길이가 긴 이유는 보다 민첩한 기동력을 얻고 뱃전에 되도록 많은 포를 배열하기 위해서였다.

 

1400년의 배는 돛대와 돛이 1개씩이었으나 1450년에는 돛대와 돛이 각각 3개인 배도 출현했다. 15세기말까지 가장 큰 배는 4개의 돛대에 8장의 돛을 단 것이었다.

15세기 배의 크기는 놀라울 정도로 컸다. 용골의 길이가 34m, 전장이 57m, 폭이 14m나 되는 배의 기록이 있다.

15세기말의 중형 선박에는 3개의 돛대에 5장의 돛이 있었다. 그 예로서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가 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산타마리아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할 당시 배 크기는 전장 29m, 무게 233t이며, 세 개의 돛대를 가진 횡범선에 불과했다.

 

17~18세기는 영국·프랑스·네덜란드에 의한 해양탐험의 황금시대이지만, 그때 사용된 탐험선도 수백 톤의 것을 넘지 못하였다. 원래 목선은 재료조달이나 선체강도라는 점에서 길이 60m, 톤수 1,000톤 이상의 것은 건조하기가 곤란했다.

 

 

지중해를 놓고 로마 등 지중해 유럽 나라들이 오스만투르크와 대적하여 레판토 해역에서 전쟁을 벌였다. 레판토 해전에서 갈리아스선은 실력을 발휘, 크게 활약했다.

지중해 지역에서는 라운드 상선과 갤리선이 혼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초대형의 기동력 부족으로 효용성이 줄어들어 17세기 자취를 감추었다.

 

16세기초에는 각국이 경쟁하여 길이가 길고 폭이 좁은 갈레온형 배가 많이 건조됐다.

포르투갈의 대형 국유상선이 이 예에 속한다.

 

1630년경 영국의 조선소에서는 선미 모양을 변화시켜, 갈레온형의 선측 외판과 평판선미와의 접합부를 각이 지지 않도록 둥글게 했고, 수선에서는 홀쭉한 모양을 보존하여, 선미재와 선미늑판(船尾肋板)과의 결합부분이 둥근 모양을 갖도록 외판을 늘렸다.

 

프랑스에서도 배의 대형화와 조선술의 과학적인 면을 중시했다. 조타륜(操舵輪)의 도입은 매우 중요한 개혁이었다.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말까지 키의 조작은 러더 스톡에 직접 연결된 수직 레버를 좌우로 움직여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17세기에 들어 영국과 네덜란드가 동시에 해상력을 신장시켜나갈 무렵 양국 모두 대형 선박을 채용하기 시작했고, 특히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배는 그 당시 군함보다 더 컸다.

 

1833년 동양에 대한 동인도회사의 독점무역이 끝나자, 개별 선주들은 제각기 무역을 개시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화물을 운송하기 위해 다투어 배를 건조하기 시작했다.

 

 

17~18세기 ‘프리깃’이라는 군함이 출현했다. 넬슨 제독의 유명한 프리깃함과 이름이 같은 17세기의 군함이었다.

 

1750년까지는 군함 중 가장 작은 배도 60~70문의 포로 무장했다. 물론 40~50문을 장비한 2층 갑판선도 있었다.

 

1850년 이후에는 순수한 범선군함이 건조되지 않았으며, 상선에서도 기선과 범선의 사용량의 차이가 분명해졌다.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된 후부터 미국 동부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의 여객 운송,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양모 운송 등에 사용되었다.

 

배는 홀쭉하고 돛의 크기는 커졌다. 덩치가 커진 배는 속도를 증가시키기 위해 폭을 좁게 한 쾌속범선으로 촉진됐다.

 

 

19세기 새로운 늑골구조가 도입되었지만, 목선의 길이가 일정 길이 이상이 되면 건조가 힘들었다. 그래서 목선은 연안의 소형선에만 한정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철의 사용으로 해결됐다.

목선으로 최대의 기록을 가진 배는 1859년 미국에서 건조한 아드리아틱호(108m, 3,670t)였다.

 

1858년 강철이 널리 공급되면서 19세기말부터 철선은 계속 증가하고 최근 100여 년 동안 선체, 기관은 물론 항해기기 등 경이적인 발전과 더불어 항해술과 선박 운용의 기술도 크게 발전했다.

 

1879년 영국의 항양선 로트마하호에서 시작돼 현대의 강선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인간이 기계를 이용해 바다를 항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철제선의 출현과 더불어 1769년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이다.

배에 증기기관이 처음으로 이용된 것은 1801년이다.

1804년 미국의 스티븐스는 증기기관과 프로펠러를 설치했다.

 

풀턴의 외륜 기선 클러먼트호가 허드슨강을 달린 것은 1807년.

미국의 기범선(機帆船) 서배너호가 증기기관으로는 처음으로 대서양을 횡단한 것은 1819년이다.

영국에선 쌍동선과 삼동선을 만들어 증기기관으로 6.4km/h의 속력을 얻었다.

 

선주들은 증기로 대서양 횡단을 진지하게 생각한 나머지 서배너호는 1819 증기기관선으로서는 처음으로 대서양을 횡단했다.

대서양 횡단 항해가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고 같은 항로에서 기선이 범선을 압도하기에 이르렀으며, 장거리 항해에서도 눈부신 발전이 있었다.

 

 

보일러 용수로서 바닷물 대신 담수를 사용한 것은 1838년이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이런 표면 복수기의 출현은 선박증기기관에서 하나의 획기적인 일이었다.

 

스크루프로펠러선 중에서 가장 중요한 배는 1843년에 완공된 그레이트브리튼호인데 전장 98m, 폭 15.5m, 선창 깊이 9.9m이다. 3000t급으로 철로 건조됐다. 프로펠러 지름이 4.6m로 1,000마력 주기관과 연결돼 11노트의 시운전속력을 얻었다.

 

 

선체강도와 적재량을 늘리고 선체중량을 줄이는 데 목재보다 철이 더 우수하다.

 

순수한 철선은 평수선으로 1818년 영국의 발칸호, 항양선으로는 1843년 영국의 그레이트브리튼호이다.

 

대서양을 횡단한 최초의 강선은 325t의 외륜선(外輪船) 반시호로서 미국 남북전쟁 때 북군의 봉쇄를 돌파하기 위해 1862년 리버풀에서 건조됐다.

 

이색 호화선 그레이트이스턴호(1858~1888, 영국)는 18,000톤의 철선으로서 유명하다.

 

 

배의 추진장치는 유사 이래 돛에만 의존하는 시대가 오래 계속되어 19세기 말까지도 대형기선에 병용되어 오다가 20세기 초에 막을 내렸다.

 

스크루를 처음 장착한 철선은 1846년에 건조된 영국의 사라산드호이다. 1881년에는 비로소 2축선이 탄생하였다.

 

석탄연료의 왕복동기관뿐이었던 배의 기관은 1894년에 증기터빈기관이, 1905년에 디젤기관이 발명되어, 점차 선박용 기관으로 채택하게 되었다.

 

그러나 1914~1918년의 제1차 세계대전까지는 상선(商船)이나 군함이 모두 구식인 왕복동기관선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본격적인 터빈·디젤선 시대는 193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그후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조선과 기관의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수천 톤의 우수한 화물선이 바다를 누볐다.

 

호화여객선이 영국·미국·프랑스 등지에서 건조되어 취항하였다. 북대서양에 군림한 여객선으로는 총톤수 8만톤급의 노르망디호(프랑스)·퀸메리호(영국)·퀸엘리자베스호(영국) 등이 있다.

 

 

기선의 선체구조도 기관의 발전에 따라 개량되었다.

주기관은 석탄연료의 왕복동기관이 완전히 그 자취를 감추고, 중유연소의 고마력(高馬力)을 자랑하는 디젤기관 또는 증기터빈기관이 주로 사용되며, 1축(軸) 또는 2축선이 대부분이다.

 

1960년경부터 배의 합리화와 전용선화, 성(省)에너지화, 고성능화가 시도돼 대형·초대형의 유조선(油槽船)·광석운반선이 잇달아 건조되고 초고속의 컨테이너선이 출현했다.

자동화가 진행돼 승무원 30명 정도로 줄었고, 지금은 20명 정도에서 운항되고 있다.

컨테이너선은 해륙(海陸) 일관수송으로 하역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고 편리한 수송과 경제성을 보였다.

 

선박은 대형화돼 현재 유조선은 56만톤, 광석선은 40만톤, 컨테이너선은 12,000TEU 적재, 여객선은 9,000명을 태운다.

 

군함에 있어서는 과거의 전함·순양함을 주체로 하는 대함거포 시대는 사라지고, 대신에 항공모함·잠수함·대잠함정이 주역이 되었으며, 더 나아가서 미사일 장비, 원자력추진 함정 등이 새로 등장했다.

 

 

배수량을 작게 하면서 재화중량을 증가시키기 위한 노력 끝에 여러 모양의 배가 출현했다. 리벳이 아닌 용접으로 조립한 상선이 처음으로 1920년 건조됐다.

 

20세기엔 선대기간을 단축하고 선체중량을 가볍게 해 적하 중량을 증가시킬 수 있는 장점을 가진 블록건조공법이 급속히 보급됐다.

특히 1950년대에는 대형선의 수요급증과 아울러 항로의 장거리화로 신조선이 급격히 늘어났다.

근래 배의 속력은 일반화물선이 20노트 전후에 달하고 있다.

 

또한 세계 무역량의 지속적인 증가와 화물의 특성에 따라 보다 다양한 선종ㆍ선형으로 세분화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설비를 완비한 우수한 선박으로 발전돼 왔다.

 

 

특히 표준 상자로 해상 화물을 운송하면 무진 편리할 거라는 생각이 더디어 실현됐다.

미국 시랜드 사가 1957년 휴스턴과 뉴욕항 사이의 연안 수송에 소형 탱커를 개조한 컨테이너선 ‘게이트웨이시티’호를 투입함으로써 시작됐다.

이후 시랜드는 1966년 뉴욕과 유럽 대서양 항로에 ‘페어랜드’호를 투입시켜 국제해상에 컨테이너 수송시대를 열었다. 투입된 배들은 일천 TEU 정도 적재 가능한 것들이었다.

 

2010년대 12,000TEU급 선박이 쏟아져 나오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천진난만한 시대.

슈퍼 컨테이너선을 통과시키기 위해 파나마운하 폭을 50m로 확장할 줄이야.

 

컨테이너 상자 크기는 8x8x20피트 크기(TEU)로 전세계적으로 표준화됐다.

컨테이너선은 대형화되고 척수도 많아졌다.

 

싣는 방법도 크레인으로 들어 올리고 내리는 것(LO/LO)과, 배 앞이나 옆구리에 뚫린 램프를 통해 트레일러나 지게차로 싣고 푸는 것(RO/RO) 이 있다.

 

 

 

 

*** 선박의 종류 ***

 

선박은 사용목적에 따라 상선, 어선, 함정 및 특수선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상선은 운임수입을 목적으로 화물선여객선으로 구분한다.

화물선은 건화물선, 탱커 및 겸용선으로 분류할 수 있다.

건화물선은 다시 벌크선과 컨테이너선으로 나누고, 탱커는 원유선(Crude Oil Tanker), 정유제품선(Product Tanker), 화학제품선(Chemical Tanker) 및 가스선(Gas Carrier)으로 나눈다. 겸용선은 원유와 광석을 동시 또는 교호로 적재할 수 있다.

 

건화물선은 잡화를 운반하는 일반화물선(雜貨船)과 특수화물만을 운반하는 전용화물선(專用船)이 있다. .

일반화물선은 시장이나 집화 관계상 선박의 크기가 비교적 작은데 비해, 전용선은 점차 대형화되고 있다.

 

운송화물에 따라 컨테이너선(Container Ship), 다목적운반선(Multi Purpose Cargo Carrier), 자동차운반선(Pure Car Carrier), 냉동선(Reefer Vessel) 등이 있다.

 

 

세계 5대 해상화물은 원유, 석유제품, 철광석, 석탄, 곡물이다.

이들 5대 주요 품목이 세계 전체 교역량의 약 60%를 점유한다.

이러한 대량화물은 대부분 전용선으로 운송한다.

 

여객선은 주로 여객만을 운송하는 상선으로 여객이외에 부수적으로 우편물과 신속한 운송을 요하는 소량의 고급화물을 적재할 수 있는 설비도 갖추고 있다.

화객선은 여객과 화물을 함께 운송하는 선박이다.

 

 

군함은 크기순으로 항공모함-전함-순양함-구축함-프리깃으로 나열할 수 있다. 잠수함은 별도이다.

항공모함이 호위전단이 없으면 위험이 증가되지만 분명 자체적인 대공, 대잠, 대함 작전 능력을 갖고 있다.

문제는 과거의 전함이 오늘날의 순양함보다 전력이 약하므로 아예 논외로 한다.

 

최신형 핵잠수함이라면 항공모함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아마 가장 강한 군함일 거다. 항모에도 KO펀치를 날릴 수 있다. 그러나 대잠전 기술이 많이 발달했기 때문에 마음대로 되진 않을 것이다.

 

 

어선에는 직접 어로에 종사하는 어로선(漁撈船: 포경선·트롤선·망어선·주낙어선·낚시어선), 통조림 등을 만드는 공선(工船:고래공선·게공선, 연어·송어 공선), 고기를 운반하는 운반어선, 그 밖에 지도선·조사선·시험선·단속선·연습선 등이 있다.

 

 

특수선에는 해상의 각종 작업에 종사하는 작업선(예인선·준설선·소방선·해난구조선·쇄빙선·쇄암선·설표선·케이블선·기중기선·측량선·기상관측선·해양조사선·각종 모선), 각종의 특수물자를 나르는 운반선(차량운반선·급수선·급탄선·급유선·오물선·거룻배·흙운반선), 해상의 순찰업무에 종사하는 단속선(순시선·경비선·등대순시선·세관감시선), 배와 육지와의 교통에 종사하는 통선(通船), 파일럿선·검역선·진료선, 그 밖에 특수한 것으로 항해연습선·탐험선·유람선,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등선·창고선 등이 있다

 

 

과학의 발전으로 새로운 선박이 등장한다.

원자력선으로 1962년 미국의 원자력상선 ‘서배너’가 출현했다. 원자력잠수함에 사용된 것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원자로가 사용되었다.

그 이전 1952년 소련은 원자력 쇄빙선 ‘레닌’을 건조했다.

 

 

선박의 자동화는 기관실에서 먼저 시작됐다.

기관실 자동제어 및 원격조종 기술이 도입되어 점차 승무원의 감소가 이루어지고 있다.

추진기관 및 보조장치의 조작을 조타실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할 수 있는 배도 출현했다.

항해면에서도 자동화가 이루어져 미국에서는 무인 해양선이 연구중이다.

 

수면을 고속으로 질주하는 쾌속선으로는 공기부양선과 수중익선이 실용화됐다.

공기부양선은 영국에서 발명되어 1960년대에 상업용 여객선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초에는 도버 해협 횡단 항로에 자동차 운반선으로 쓰였다.

수중익선의 선체는 수중 또는 수면 위를 활주하는 수중익의 양력에 의해 항해중 수면 위로 완전히 부상한다. 공기에 비해 물은 밀도가 크므로 날개가 작아도 배를 부양할 수 있다. 날씨가 나빠도 충분히 항해할 수 있고, 50km이상 고속이 가능하다.

 

 

 

 

*** 선박 엔진의 역사 ***

 

선박의 추진방식의 변화는 선박 발달의 역사를 만들었다.

원시시대부터 10세기경까지 수천 년간 계속 사용되어온 노선(櫓船)은 범선(帆船)으로 바뀌고, 약 400년 동안 보편화되어왔던 범선은 동력선(動力船)으로 바뀌었다.

 

실린더와 피스톤의 고안은 1680년 대기압을 이용한 화약기관으로부터 시작됐다.

1712년 뉴커먼은 대기압을 이용하는 증기기관을 만들었다. 그 원리는 실린더 속에 증기를 불어넣고 냉각해서 응결시켜 진공을 만들고, 피스톤을 대기압의 힘으로 아래쪽으로 가동시키는 것이다.

 

1769년 와트는 증기를 실린더 내에서 응고시키지 않고 다른 응축기에 이끌어서 응고시켜 피스톤을 대기압이 아닌 증기압력으로 구동하는 증기기관의 기초를 구축했다.

와트는 피스톤의 상하운동을 모두 동력에 활용한 복동식 기관을 개발하여 이전보다 훨씬 효율적인 증기기관을 만들었다.

 

증기기관은 이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동작제어를 위한 복잡한 밸브 등이 추가되었지만 기본적으로 다른 열기관에 비해서는 훨씬 간단한 구조를 갖고 있어 취급이 쉽고 고장도 적은 편이다. 또 고압증기를 이용하므로 시동시 회전력이 강하고 저속에서도 큰 힘을 발휘하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열효율이 비교적 떨어지고 고속 회전이 어려우며 보일러, 복수기 등이 필요하여 크기를 줄이는 데는 다소 무리가 있다.

 

 

1819년에는 증기기관선으로는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한 미국의 기범선(機帆船) 서배너호가 이곳에서 영국 리버풀로 출항했다.

 

기관의 열효율 향상은 연성기관(連成機關)의 도입으로 이루어졌다. 증기를 제1실린더 내에서 팽창시켜 피스톤을 움직인 후 제2실린더에서 다시 사용한 것이다. 증기 에너지를 2단계로 나누었기 때문에 효율을 잘 이용할 수 있었다. 장거리 항로에 대한 기선의 불리한 점이 극복되었다. 최초의 연성기관은 직립형이고 크랭크는 서로 180° 위치에 있었다. 석탄소비량이 줄었다.

1901년 터빈 기관을 장치한 최초의 상선이 나타났다.

 

19세기 말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조선기술을 보면 터빈선, 디젤선, 중유선전기추진선의 출현을 들 수 있다.

 

1882년 스웨덴 과학자 라발은 원심크림분리기 고속회전용으로 충동형 증기터빈을 만들었다.

 

이 터빈은 외주(外周)에 다수의 원호형으로 만곡된 날개를 장치한 지름 30cm 임펠러로 구성되어 있다. 측면에 장치한 노즐로부터 날개를 향하여 증기가 분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1884년 영국 파슨스는 다수의 날개를 장치한 고정기통(固定氣筒)과 회전기통으로 된 반동형 터빈의 특허를 얻었다.

 

증기는 고정날개와 가동날개 사이를 차례로 통과해서 증기 압력이 내려가고 속도가 증가하여 가동날개가 달려 있는 축이 고속으로 회전한다. 나온 증기는 대기 속으로 유출된다.

터빈은 많은 개량을 거쳐 공장·선박 등에 중요한 동력기관으로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내연기관의 출현은 1859년이다. 수평형 복동식 증기기관에 증기 대신에 가스와 공기의 혼합기체를 공급하여 전기 불꽃으로 점화 폭발하게 하는 내연기관을 고안하였다.

1862년 흡입, 압축, 폭발 및 배기의 4행정 내연기관이 만들어졌다.

 

1878년 독일의 오토는 수평형 가스기관을 만들어 운전에 성공하였다.

1885년 가솔린을 사용하여 엔진을 작동시키는 기화기를 고안했다.

1889년 V형 실린더의 가솔린기관은 유럽의 자동차에 장착되었다.

1879년 2행정 엔진이 개발되었고, 이후 내연기관의 두 방식은 현재까지 채택되고 있다.

 

디젤은 1892년 공기만을 실린더 내에 흡입하여 피스톤 압축에 의한 고압, 고온을 이용해 분사된 연료를 폭발시키는 새로운 형의 엔진을 제작했다.

점화장치기화기 등이 필요 없는 것으로 오늘날 대형버스·트럭·기차·선박 등에 널리 사용되는 것으로 발전했다.

 

1914~1918년의 제1차 세계대전까지는 상선(商船)이나 군함이 모두 구식인 왕복동기관선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초기의 디젤 기관은 화물선에 한정되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진동과 소음, 그리고 비용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기관실의 용적이 작아 대형 여객선에도 이용되었다.

 

본격적인 터빈·디젤선 시대는 193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오늘날 디젤엔진은 40만톤급 선박에도 장착되고 있다.

 

 

 

 

*** 기관실 기기의 종류 ***

 

육상과 달리 해상 선박은 대양에서 추가지원 없이 자급자족이 가능하고, 필요시 본선 내에서 생산해 가며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항행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다양한 설비가 필요하다.

 

선박의 기관실은 주기, 보조기, 발전기, 보일러 등 가장 중요한 기계류가 모여 있다.

기관실은 주기 피스톤 분리작업을 위해 천정갑판을 충분한 높이로 해야 한다. 그래서 특설 프레임과 빔이 설치된다. 기관실 전체의 강도를 증가시키기 위해서다.

 

 

1. 주추진기관(Main Engine)

선박 운항에 가장 기본적인 주기관이다.

주기관의 종류는 증기기관내연기관으로 대별된다.

 

증기기관은 주보일러에서 발생된 고온 및 고압의 수증기로 피스톤을 작동시키는 왕복운동기관과, 터빈을 회전시키는 터빈기관으로 나눈다.

전자는 고속화에 문제가 있어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후자는 수리가 간단하고 대출력을 내는데도 상대적으로 기관실이 작고 중량도 적어서 1970년대 전반기까지 대형선박에서 많이 사용됐다. 그러나 열효율이 매우 낮다.

 

따라서 오늘날 건조되는 선박의 주기관은 대부분 내연기관인 디젤기관으로 바뀌었다. 증기기관을 탑재하였던 선박도 디젤기관으로 대체했다.

통상의 화물선에서는 2행정 크로스헤드식(Cross Head Type)의 엔진이 많이 적용된다.

크로스헤드 피스톤은 크라운(Crown)과 스커트(Skirt)로 구성돼 있다. 금속유밀 고리는 피스톤 핀으로 고정된 크라운과 스커트 사이에 부착된다.

 

주기관은 사용하는 연료 및 작동원리에 따라 가스기관, 가솔린기관, 디젤기관, 열구기관, 가스터빈, 제트엔진, 증기터빈으로 분류한다.

 

가스기관은 석탄가스나 석유가스 등의 기체 연료를 사용하는 엔진이다.

내연기관으로서는 가장 먼저 개발된 것이다.

오늘날에는 다른 기관들의 발달로 인해 가스가 쉽게 얻어지는 경우 이외에는 사용되지 않는다.

 

가솔린기관은 기화하기 쉬운 가솔린을 연료로 하는 엔진이다.

가솔린은 기화기 혹은 연료분사기를 이용하여 기화되고 공기와 혼합되어 흡입행정에서 실린더 내로 흡입된다. 혼합기는 압축행정에서 압축되어 점화 플러그에 의해 점화·폭발한다. 팽창해서 일을 하고 다음 행정에서 배기된다. 자동차나 항공기 등에 널리 사용된다.

 

디젤기관은 흡입행정에서 공기만을 흡입하고 압축행정에서 압축한 후 연료를 분사해서 연소시킨다. 연료 분사방법에 따라 무기분사식(無氣噴射式)과·공기분사식으로 크게 나눈다.

 

열구기관(熱球機關)은 압축행정에서 공기만을 흡입하는 것은 디젤기관과 같지만 압축압력이 디젤기관에 비해 낮아 연료를 분사해도 점화되지 않으므로 실린더 헤드에 설치한 열구의 도움으로 점화·폭발한다.

연료로는 중유에서 경유까지의 범위가 사용된다.

구조가 간단하고 가격이 싼 장점이 있지만 연료소비량이 크고, 단위 출력당 중량이 크다는 결점이 있어 오늘날 열구기관 대신에 디젤기관이 사용된다.

 

가스터빈은 공기를 압축기로 압축하고 여기에 연료를 가해서 연소시켜 얻어진 고온가스를 터빈의 임펠러에 작용시켜 축을 회전시켜서 동력을 얻는 엔진이다.

무게에 비하여 출력이 크므로 항공기용 엔진으로 많이 사용되어 왔다.

오늘날은 발전·선박·자동차 등에 사용범위가 확대되었다.

 

제트엔진은 제2차 세계대전 말에 개발되어 항공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크게 발달했다.

제트에 의한 추진에는 로켓 추진과 덕트 추진의 2종류가 있다.

로켓 추진은 연료와 연소제를 갖추고 이것을 연소실에서 연소시켜 얻어진 고온 고압의 가스를 분출시켜 그 반동으로 추진한다. 따라서 공기가 없는 대기권 밖에서도 추진이 가능하다.

덕트 추진은 공기를 앞쪽에서 빨아들여 이를 압축하고 연소실에서 연료와 함께 연소시켜 고열 가스를 급속하게 뒤쪽으로 분출시킴으로써 그 반동으로 추진한다.

 

증기터빈은 증기가 가진 열에너지를 동력으로 변환하는 열원동기이다.

충동형 터빈과 반동형 터빈 등이 여러 종류가 있다.

오늘날에는 원자력을 동력으로 하여 이들의 터빈을 사용해서 선박 등의 추진용, 일반산업용으로 사용한다.

 

 

2. 발전기(Generator Engine)

각종 모터, 조명 등 선내전기를 발생 시키는 엔진이다.

통상 4행정 엔진으로 회전수에 따라 고속엔진에서는 벙커A, 중속엔진에서는 벙커C를 사용한다.

 

 

3. 보일러(Boiler)

선박내의 난방, 가열 등 선내에 열원을 제공한다.

벙커C를 통상 엔진에 사용하기 전에 점도를 낮추기 위해 보통 110이상까지 가열하는 것도 보일러의 역할이다.

 

 

4. 열교환기(Economizer)

항해중 추진기관의 배기가스 폐열을 이용해 보일러 대신에 사용하는 증기 발생기이다.

 

 

5. 청정기(Purifier)

청정기에는 연료청정기(Fuel Oil Purifier)와 윤활유청정기(Luburicating Oil Purifier)가 있다.

전자는 조악유 (벙커C)에 포함되어 있는 연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각종 불순물을 제거하는 목적으로 설비된 것이고, 후자는 기관 운전 중 발생되는 이물질 등을 걸러내고 신유의 상태로 유지하고자 설치한 청정기이다.

 

 

6. 조수기(Fresh water Generator)

음용수와 생활용수를 주기관의 냉각수 폐열을 이용, 진공상태의 비등점이 낮아지는 현상을 활용해 증류수를 만들거나, 해수를 담수화하기도 한다.

 

 

8. 밸러스트 펌프(Ballast Pump)

선박의 흘수를 관리하기 위해 배의 바닥에 무게가 나가는 해수 등의 밸러스트수를 싣고 퍼내는 역할을 한다.

 

 

9. 범용 펌프(General Service Pump)

선내 청소나 화장실, 화재 진화 등 다용도로 사용한다.

 

 

10 오수 처리 장치(Sewage Treatment)

선박 내의 생활 오폐수를 정화 처리하여 해양 환경을 보호한다.^

 

 

11. 소각기(Incinerator)

기름성분을 포함한 기관실내의 발생 쓰레기를 소각 처리한다.

 

 

12. 냉동기(Refrigerator)

냉동기의 원리는 더운 냉매를 회수하여 압축기(Compressor)에서 압축한 고온, 고압의 냉매를 응축기(Condenser)에서 낮은 온도의 액체로 만들어 순환시킨다.

 

 

 

 

*** 선박검사 ***

 

선박검사(Ship Survey)는 건조중이거나 운항중인 선박의 안전성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전문가 혹은 기관이 시행하는 검사이다.

선박의 감항성(堪航性)과 인명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선체·기관·시설 등의 구조·배치·재료·규격 등이 선박안전법 및 관계규정에 적합한지를 확인하고 보증하기 위한 것이다.

 

선박검사는 5년 주기로 정기검사 → 연차검사 → 연차검사 → 중간검사 → 연차검사 → 정기검사 순서로 진행된다.

이 중에서 정기검사중간검사는 원칙적으로 입거상태에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

(정부에서는 상기의 중간검사를 제1종 중간검사, 연차검사를 제2종 중간검사라는 용어를 쓴다.)

여객선이나 선령 20년 이상 선박은 매 년 중간검사를 실시한다.

 

 

검사에는 건조검사·정기검사·중간검사·임시검사·임시항해검사·국제협약검사 등이 있다.

건조검사는 선박을 건조할 때 선박시설에 대해 받는 검사로서 합격시 건조검사증서를 받고, 최초로 항해할 때의 정기검사를 면제받는다.

 

정기검사는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검사로, 선박을 최초로 항해시킬 때와 유효기간이 만료된 때 선박시설과 만재흘수선(滿載吃水線)에 대하여 실시된다. 이 검사에 합격하면 선박검사증서(유효기간 5년)가 교부되고, 배는 이 검사증서 등을 소지하지 않으면 항해가 금지된다.

 

중간검사는 정기검사와 정기검사 사이에 실시하는 간이 검사이다.

 

임시검사는 선박시설에 대하여 개조 또는 수리를 행할 때, 선박검사증서에 기재된 내용을 변경하고자 할 때, 선박의 용도를 변경할 때, 만재흘수선의 변경 등의 경우에 실시된다.

 

임시항해검사는 정기검사를 받기 전에 임시로 선박을 항해에 사용하고자 할 때나 국내의 조선소에서 건조된 외국선박의 시운전 등을 할 때 항해능력이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받는 검사다.

 

국제협약검사는 국제항해에 취항하는 선박의 경우 선박의 감항성 및 인명안전과 관련하여 실시하는 검사를 말한다.

 

이와 같은 여러 검사에 의해 선박의 물적 해난원인을 제거할 수 있다. 안전검사 외에 선급등록을 위한 선급검사가 있는데, 이는 선주가 선급을 취득할 때 선급협회로부터 구조·설비 등에 대해 받는 것으로, 이 검사로 선급이 결정되고 선급등록이 이뤄진다.

 

 

선박검사는 정부기관이 직접 검사하는 것이 국제적인 관례·원칙이지만, 여객선을 제외한 일반 상선은 당해 선급협회가 검사를 대행하는 경우가 많다.

 

선박수리비는 선체부 공사 60%, 기관/전기부 공사 40%가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