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웬 김일성 사진이

웬 김일성 사진이

오선닥 2011. 10. 21. 22:57

해방 후 남북한은 이념적으로 시종 팽팽히 맞서왔다.

특히 박정희와 김일성의 샅바싸움은 치열했다.

70년대 중반 유신시대에는 김일성 사진 보는 것조차

남산 분실에 호출감이었고..

이런 시대에 송대길이 감히 조총련 간부 삼촌을 만나다니?

그것도 일본에서 몰래….

 

 

 

 

 

웬 김일성 사진이 

 

 

“일본 가거들랑 꼭 삼촌을 만나봐라.”

 

 

출국을 앞둔 송대길에게 숙모는 신신당부를 했다.

오사카에 거주하는 삼촌을 무조건 만나봐야 한다는 것.

임무를 부여받은 송대길은 승선 후 그 임무를 우선순위에서 한시도 내려놓지 않았다.

 

 

그런데 임무수행이라는 게 만만치 않다. 유신헌법이 시퍼렇게 살아있으니 더욱 그렇다. 마약거래 접속 수준에 맞먹는 작전과 다름없는 조총련 간부 상봉이라는 게 보통의 일이 아니다.

만약의 경우 물고문, 전기고문, 고추가루고문 …. 중앙정보부가 기다리고 있다.

각오를 다질 일이 많다. 각서는 필수이고.

 

 

마침 배는 일본 고베 항에 입항.

곡물을 풀어주기 위해 사흘을 머문다는 것은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곡물 하역 스케줄을 이항사에게 넘겨주고 유의사항 몇 가지를 전달해 놓는다. 혹시 부두 하역책임자가 찾더라도 긴급 용무 때문에 외출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전하면서.

 

 

양복을 정장하고, 안 매던 넥타이를 꺼내 맨다. 거울을 보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며 빗질도 한다. 머리는 길게 늘어뜨리고 자유분방하게 하는 게 유행인데 오늘은 얌전한 머리를 한 것이다. 생전 처음 만나는 삼촌에게 예의를 갖춘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해방이 됐는데도 삼촌은 기어코 한국으로 건너오지 않았다.

현해탄을 넘어오는 보따리 군중 속에 삼촌은 끼지 않았고, 일본 땅에서 끝내 발뒤꿈치를 떼지 못했다. 조총련 간부로서 김일성을 위해 충성을 바치겠다는 명세와 함께.

워낙 고위 간부인지라 한국에 건너오는 꿈은 아예 꾸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한국의 부인 밑에서 어렵게 사는 자식들을 보고 싶어도 오지 못하고 인편으로 위로금만 보내곤 했다.

 

 

송대길은 그 삼촌을 만나야 하고, 결과를 한국의 숙모에게 보고해야 한다. 조카가 이 일을 해내면 대단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된다.

한국 중앙정보부 요원이 그물망처럼 깔려있는 일본, 더군다나 재일교포가 가장 많이 거류하고 있는 간사이(關西) 오사카 지방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아무래도 선장님께서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제 일본어 실력으론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무리일 것 같아서요. 그렇다고 선박대리점에 부탁하는 것은 위험하고요.”

 

 

시내 쇼핑 나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조총련 소굴에 들어가면 북으로 납치된다는 이야기가 난무하는지라 솔직히 겁이 나는 형국이다.

결국 일본말에 능통한 선장은 송대길이 일본 삼촌 만나는 계획에 도우미로 들어선다.

 

 

“참 딱하군. 그럼 같이 가자구.”

 

 

송대길을 억지로 일항사로 진급시켜 부려먹고 있는 죄 때문에 코 꿴 소처럼 선장은 그의 부탁을 들어준다.

 

 

 

 

고베에서 오사카까지는 대충 한 시간 거리.

오사카역에 내려 약속된 대로 신문을 쥐고 있는 남자 쪽으로 걸어가자 덩치 큰 남자가 다가선다.

팔자걸음으로 뚜벅뚜벅.

뾰족한 검정 구두에 검정 양복을 입은 사나이의 각 선 바지주름 또한 칼날 같은 위협을 준다. 어느 구석을 봐도 조폭에 가깝다. 일본 야쿠사의 이야기는 이미 들었던 터라.

 

 

검은 옷에 대해서는 평소부터 위협의 선입감이 있다. 조폭은 집단으로 몰려다니고, 식당에서 공짜 밥 먹고, 검정 양복을 입는 것 등이 특징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오늘 그 검정양복이 자꾸 눈에 거슬리게 하면서 오금을 펴지 못하게 한다.

 

 

“송대길인가요?”

 

 

정확한 한국 발음인데, 이름 뒤에 붙어야 할 ‘씨’ 자를 잘라 먹고 송대길에게 다가선다. 애숭이 취급이 기분 나쁠 정도다.

그러나 옆의 선장에게는 퍽 공손하다.

 

 

“동행이신가요? 같이 타시죠.”

 

 

차 역시 검은색 리무진이다.

 

 

“부장님이 잘 안내하라고 하셨어요.”

 

 

뒷문을 열면서 친절히 안내를 해주는데도 검은색에 짓눌리는 압박감은 해소할 수 없다.

검정 옷 사나이는 운전사 동지에게 길 안내 외는 침묵 일관이다.

 

 

오사카 중심가를 약간 비켜선 곳에 고급주택가가 있고, 한 번 커브를 돈 다음, 안쪽으로 유난히 큰집 앞에 차가 멈춰 선다. 삼촌댁이다.

삼촌 출세했어. 송대길은 그렇게 자랑스러웠다.

집이 크다는 것에 선장은 더 겁을 집어먹은 것 같다.

 

 

“조총련 고위직인가 봐! 우리 정말 들어가도 괜찮을까?”

 

 

선장은 송대길의 귀에다 모기소리로 말한다.

대문 초인종을 누르기 전에 선장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삼각파도가 몰려올 때면 선교 손잡이를 잡고 부들부들 떨곤 하던 그는 오늘 정말 사자 굴에 들어가는 기분일지 모른다.

 

 

“선장님, 안심하세요. 여긴 북한 공관도 아니고 개인 집예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송대길의 가슴속에도 사시나무가 떨고 있다. 괜히 선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또 그 자신 스파이 영화 주인공 같은 생각이 들어 말초 피부가 돋아서는 기분을 막을 수 없다.

 

 

 

 

초인종을 누르자 가정부가 문을 연다. 저녁 손님에 대하여 물어보지 않는 것은 주인이 이미 알고 있는 손님이라는 뜻이다.

방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 있다. 전화를 받고 주위 친척들과 이웃사람들을 부른 것 같다. 한국에서 조카가 온다니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검정 옷을 입은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으나 모두가 거멓게 보이는 것은 송대길의 마음이 암흑의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는 뜻인지도.

삼촌은 체크무늬 샤스에 털 카디건을 걸친 게 위엄으로 돋보인다. 주위를 압도하는 뭔가가 있다.

 

 

“네가 왕길이 동생이야? 그렇고 보니 내 형을 많이 닮았구나, 잘생긴 것은 네 아버지 그대로군.”

 

삼촌도 정말 잘 생겼다.

 

조총련은 아마 삼촌을 간판 풍채로 기용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삼촌은 조카의 큰절을 받고 아래위를 유심히 훑어본다.

해방 전의 기억을 살리려고 무척 애를 쓰는 것 같다. 태어나지도 않은 조카를 알 턱이 없고, 그러다 보니 송대길의 형, 왕길을 거론할 수밖에 없다. 형은 송대길과 나이 차이가 많으며, 삼촌이 한국에 있을 때 태어났기 때문에 기억에 남아있다고 하겠다.

삼촌은 이미 돌아가신 자신의 형님, 즉 송대길의 아버지를 기억에 얹어놓기도 하는 것 같다. 핏줄이 만들어내는 강력한 자력이 형성되기 시작하자 자신의 식구를 챙긴다.

 

 

“네 숙모는 잘 지내고 있느냐?”

 

“예, 건강하십니다. 일본에 가면 꼭 삼촌 만나 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진즉 내가 한국에 갔었어야 하는데….”

 

 

삼촌은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만다. 오랜 세월 간직한 눈물을 쏟는 것이다. 손수건이 질펀했을 때쯤 삼촌은 일본 가족 소개에 들어간다.

 

 

“인사해라. 여기는 네 숙모고, 저기 서 있는 얘들은 네 사촌들이다.”

 

 

숙모는 미인이다.

한국에 있는 숙모는 고독한 삶으로 시들었는데 여기 숙모는 계수나무도 가리지 않은 보름달 같다. 조총련의 권력과 일본의 풍요가 이 가족들을 풍성하게 만들어 놓았을까? 이 풍요를 잃을까 봐 고국을 방문하지 않았고, 공산주의 사상을 생명같이 붙들고 있었는지도.

 

 

사촌들과의 인사에서 나이순서가 나오고, 형과 여동생 둘이 반쪽의 피로 인하여 서로 친근한 감정을 미소로서 소통하기 시작한다.

 

 

“대학 졸업하기 전에 한국에 한 번 갔다 와. 아버지의 고향은 알고 있어야지. 가능하면 오빠 휴가 중이면 좋겠지? 한국 구경도 하고.”

 

 

숙모가 대학2년생이라는 큰 딸을 보고 말한다. 재학 중에 가족의 뿌리를 찾아보라는 뜻이기도 하다.

 

 

“남조선 가고파요. 남조선의 오빠들과 구경 다니면 멋있을 것 같아. 일본 남자들은 족발이 걸음을 해서 안 멋있어요.”

 

 

더듬거리는 한국말이었지만 사촌 여동생의 말은 알아들을 만하고, 대화 내용은 한국에서 온 사촌 오빠를 기쁘게 하려는 것같이 보인다.

그런데, 엄마는 한국이라고 호칭하는데, 이 얘는 왜 남조선이라고 하나. 아마 조총련 학교에서 배운 그대로 써서 그렇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송대길의 기분은 어쩐지 썰렁하다.

 

 

여동생의 얼굴은 밉상이 아니다. 호감이 가는 대로 마음이 실 따라 가는, 끌리는 형이다. 스타일에 포인트도 있다.

대학생이 아닌 숙녀로 보이기 시작하자 갑자기 삼기사의 에피소드가 생각나 민망스럽기도.

 

 

짓궂은 어느 일기사가 일본에 사는 외사촌 여동생을 만나러 가는 삼기사에게 아침에 인사할 때는 예의바르게 해야 한다면서 가르쳐준 것이 여자의 수치심을 드러내게 하는 말이었다. 세상물정 모르는 삼기사는 그걸 곧이곧대로 듣고 그렇게 했으며, 결과적으로 일본 여동생은 기겁을 하고 옆방으로 도망갔다는 사실.

 

 

뱃놈 나빠! 송대길이 일기사의 개념 없는 장난을 속으로 꾸짖으며, 그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자신의 사촌 여동생에겐 보이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교양 없게스리.' 하면서.

 

 

“한국에 오면 내가 에스코트해 줄께. 8월 여름 해운대 해수욕장이 좋겠군. 거기는 남자들 사냥터라고.”

 

 

스스럼없는 젊은이의 대화에 넓은 응접실 안의 많은 사람들이 웃곤 한다. 대화의 물꼬를 트는 분위기에 어울린다고 동의라도 하듯.

친척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분위기에 끼어들려고 애쓴다.

 

 

"아니, 원산 해수욕장도 아주 좋아요. 작년에 갔었는데 여자들 예뻐더라구. 남남북녀라 했으라이."

 

 

니가타와 원산을 자주 왕래한 조총련 사람들은 많다.

또 한 사람이 송대길을 바라보며 웃는다.

 

 

"이 젊은이는 만경봉호 항해사가 됐으면 쓰라구라. 정복 입고 키 잡으면 인기가 파친코일 텐데."

 

 

삼촌은 파친코 부자로 소문나 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조총련 부장 자리도 파친코 구슬을 퉁겨서 얻은 자리라는 이야기도 있다.

파친코는 삼촌을 상징하는 가장 간단하고도 효과적이며 강력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도구에 해당한다.

그런데 숙모가 갑자기 긴장한다.

 

 

“실장 아저씨, 어린 조카한테 만경봉호 얘기는 왜 꺼내요? 지금 한국의 정치 상황이 어떤지 아셔요? 긴급조치니 뭐니 그런 상황이란 말예요. 조카를 불안하게 하지 마세요.”

 

 

실장은 몸을 움추린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말 때문에 사모님 핀잔만 들은 셈이다.

선장은 너구리가 여우 굴에 들어간 것처럼 자꾸 불안해 하는 모습. 불안은 그의 어깨를 더 좁게 했다.

 

오늘 괜찮은 젊은이 하나 포섭했다고 김치국부터 마신 실장은 사모님 개입에 금새 겸연쩍게 돼버린 격.

 

 

어색한 분위기 중에 삼촌은 송대길에게 명함 한 장을 건넨다.

 

 

“시간나면 여기로 연락해라. 우리 직원이 좋은 곳에 안내해줄 거야. 그리고 돈이 필요할 때도….”

 

 

좋은 곳의 의미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삼촌은 조카가 한국의 일반 공무원보다 열 배 이상의 보수를 받는 걸 알 턱이 없다. 만경봉호의 가난한 항해사쯤으로 여길 것이다.

 

 

“여보, 당신 그 명함은 안 돼요. 한국에는 그런 명함 큰 일 나요. 다른 명함 있잖아요.”

 

 

이번에도 숙모가 끼어든다. 삼촌이 명함을 꺼내기가 무섭게 숙모가 재빠르게 제지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조카는 구렁텅이에 빠뜨리면 안 된다는 의지가 철통같다.

 

 

“아, 내가 실수했군! 그럼 이걸 가져.”

 

 

삼촌은 마지못해 다른 명함을 꺼내준다.

분위기가 뭔가 숨바꼭질하는 것 같아 송대길은 사방을 두리번거려 본다. 선장도 뭔가 감지하는 게 있는 것처럼 고개를 두루두루 돌리고 있다.

 

 

 

 

“앗!?”

 

 

선장은 괴성을 지를 뻔했다. 선장과 송대길은 동시에 앞쪽 거실 벽에 걸린 커다란 사진 한 장에 눈길을 멈춘 것. 군인들이 열광하는 김일성 사진이다.

순간, 꼬리 길게 앉아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두 사람은 피가 얼어버리는 걸 느낀다. 선장은 송대길에게 눈짓을 하고, 그들은 동시에 일어난다.

 

 

“모처럼 삼촌과 조카가 만났는데 이렇게 빨리…?”

 

 

가족이 아닌 사람이 더 섭섭해 한다.

방안의 모든 사람들이 의아한 듯 일어서고 있다.

팽팽한 고무줄처럼 긴장된 분위기.

좁은 방안에도 삼팔선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정신적, 심리적 괴리가 이토록 크단 말인가.

숙모는 여자의 직감을 이용해 배에서 온 손님이 벽에 걸린 사진 한 장으로 쇼크 먹은 걸 눈치 챈 듯. 그러나 삼촌은 아직 붉은색과 푸른색을 섞으면 보라색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보스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그러나 잠시 후,

 

 

“일본에 오면 자주 들러라. 너를 보니 내 마음이 퍽 행복하구나. 오래 산 보람을 느낀다.”

 

 

삼촌은 조카의 손을 꼭 잡고 이별을 두려워한다. 보스 기질은 온데간데없다.

숙모는 손바닥 만한 지폐 한 장을 조카 손에 쥐어준다. 만 엔짜리다. 가난한 한국이 이 정도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듯.

 

 

“오빠, 우리 가족사진이야. 한국 공항에 마중 나올 때 우릴 놓치지 말고 찾아요.”

 

 

여동생이 건네주는 사진 한 장을 들고 불안을 뒷머리에 매단 채 삼촌의 집을 나선다.

거물 조총련 간부를 삼촌으로 둔 송대길이 상선사관후보 신원조회에 걸리지 않았던 것은 행운 중에 행운이다. 아직도 행운으로 덮어두기에는 너무 궁금하다. 정보망이 미치지 않았다는 건 이해하기 쉽지 않다.

아무렴 오늘 오사카의 삼촌 상봉으로 인해 남산에 불려가서 조서 쓸 일은 없겠지.

조총련 간부의 딸을 만나도 괜찮겠지.

 

 

“그래 한국에 오면 꼭 마중 나갈께. 내 휴가중에 오는 걸 잊지 말고.”

 

 

송대길은 여동생의 손을 꼭 잡는다.

애인 손처럼 왜 이렇게 뜨거워?

 

 

우리는 이념의 굴레에 메이지 말고 자주 만나자.

이산가족상봉은 민족 지상 권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