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카리브해를 지나다

카리브해를 지나다

오선닥 2011. 6. 28. 16:49

베트남전쟁이 종반으로 접어드는 1970년대 해운경기는 만화방창했다.

제1차 석유파동(1973년) 후 반년도 안돼서

유가는 배럴당 3달러에서 12달러로 상승했지만

기름이 없어 선박의 엔진을 멈추지는 않았다.

5만톤짜리 벌크선의 월 운임수입은 백만 달러를 넘어서고.

송대길이 승선한 카벌커는 일본과 미국을 피스톤처럼 왕복했다.

전설이 박힌 카리브해에 대한 이야기는 많고…..

 

 

 

 

 

카리브해를 지나다

 

 

  파나마운하를 통과하고 대서양으로 들어서자 선원들의 긴장이 서서히 풀렸다. 실은 선장이 더 마음의 평온을 얻은 것 같다. 서울 장충동에 남겨두고 온 가족들을 무던히도 염려하는 분인데 운하 통과할 때만은 가족 생각을 가슴 밑에 눌러 놓고 배의 안전에만 집중도를 보였다.

 

 

  파나마를 지날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권투선수 홍수환.

  대한민국 유신시절 홍수환은 파나마 권투선수 카라스키야를 KO 시켰다. 앞서 4년 전 남아공 선수 테일러를 KO시킨 바 있었다. 두 대회 모두 네 번 다운을 당한 후 KO승 했다는 데 홍수환의 이름이 빛난다. 그래서 선원들은 홍수환을 참으로 좋아한다. 이후 그의 인생도 4전5기의 파도 같은 삶을 살았다. 오늘날 그의 강연이 젊은이들을 열광케 하는 것은 전설 같은 자기 삶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선원들은 어려울 때마다 그를 생각하며 용기를 얻는다.

 

 

  파나마운하를 빠져나와 전설과 괴담이 알알이 박힌 카리브 해에 들어섰다.

  가난한 선원 콜럼버스는 서쪽으로 가면 황금의 나라 인도에 닿으리라고 고집했다. 당시 지도에는 아메리카가 그려져 있지 않았다. 마냥 서쪽으로 항해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그곳은 옛날부터 존재했고 사람들이 살았으니 ‘발견’이란 말은 이치에 맞지 않다. 서양인이 처음으로 ‘상륙’한 것에 불과하다. 아니 실상 ‘침략’한 것이다. 바하마의 산살바도르에 처음 상륙한 1492년은 그렇게 기록돼야 한다.

 

 

  선장이 선교로 올라와 커피 한잔을 주문했다. 여유로울 때는 커피 맛도 좋다고 덧붙였다. 꼭 그런 코멘트가 없어도 조타수는 자마이카 커피를 타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향기를 낸다고 하면서 선장은 커피를 후르륵 불었다. 그리고 커피향에 취해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를 화두로 삼았다.

 

  “김씨, 시골에서 참외서리나 닭서리 해봤어?”

 

  “닭서리 하다가 주인한테 들켜 넙치가 되도록 맞은 적이 있습니다.”

 

선장의 질문에 대한 조타수의 대답이었다.

 

  “그것도 해적질과 다름없어.”

 

갑작이 해적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자 없는 듯 듣고 있던 이항사 송대길이 조타수의 응원자로 끼어들었다.

 

  “해적질에 비교할 순 없죠. 시골에선 장난삼아 하는 건데요.”

 

  선장은 주관을 흐리지 않았다.

 

 “캐리비안해적도 초창기에는 정의로웠지. 그러나 나중에는 약탈로….”

 

 

  멕시코 연안이 가까워지니 그 옛날 피비린내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즈는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도착해 타고 온 모든 배에 구멍을 내어 배수진을 쳤다. 그야말로 파부침주(破釜沈舟)의 결단이었다. 더디어 1521년 멕시코의 아즈텍 문명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이후 소형갤리선 세 척에 금은보화를 싣고 스페인 본국으로 돌아가는 도중 모든 전리품을 프랑스 해적 장 플로랭에게 약탈당했다. 당시 카리브해 주변 섬들은 모두 스페인에게 점령당했던 때라 원주민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프랑스나 영국의 해적과 손을 잡았고, 식민통치를 하는 스페인 사람들보다 이들 해적을 더 좋아했다. 원주민이 말을 듣지 않으면 운명의 촛대를 옮기겠다고 식민자는 위협을 가했다. 소총에 겁을 먹은 나머지 금과 은을 캐 가도록 놔뒀다.

  정복자가 역사를 어떻게 쓰든 간에 콜럼버스, 코르테스, 피사로는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이다. 마야와 잉카문명을 짓밟아 놓은 강탈자들. 해적 또한 정의의 사자로 스스로 치부하나 객관적으로 보면 해적행위는 서양문명국 간의 식민지 쟁탈전에 지나지 않는다.

 

 

  “해적의 출현은 해상무역의 역사와 같은 것이지. 음식이 있는 곳에 파리가 들끓듯 돈 냄새 나는 곳에 해적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선장의 해적관은 옳다. 그러나 해적 이야기에 열을 올리다 보면 카리브해 항해에 지장을 줄지 모르니 빨리 해적 역사를 요약해 버리자.

 

 

  기원전 2000년경 지중해에 해적 습격의 기록이 있다. 그러니 해적은 이미 유서 깊은 존재다. 그리스인은 예로부터 해적질도 일종의 전쟁으로 우겼고, 역사가 헤로도토스(BC 484~425)도 이를 비난하지 않았다. 로마시대에는 식민지에서 로마로 운송되는 공물을 약탈하는 것은 어차피 뺏은 물건을 다시 뺏는 정도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스칸디나비아의 북게르만(노르만) 민족은 8~10세기 부족 수장의 인솔 하에 경주(輕舟)를 타고 유럽의 연안지방으로 상륙, 침입해 교회 수도원과 영주(領主) 관사를 습격하고 보물을 약탈하기도 했다.

스페인과 영국이 해상 패권을 다투던 시절에는 대서양이 시끄러웠다. 특히 카리브해가 씨름판이었다. 캐리비안 해적이 전설을 만들기 시작한 곳. 16∼17세기 상설 해군을 가질 수 없었던 나라들은 개인 소유의 상선을 군함으로 사용했다. 이렇게 동원된 상선은 적선을 나포할 경우 노획물을 나눠 가질 수 있었다. 이런 행위는 원래 전시에만 허용됐으나 대항해시대를 맞아 평시에도 통용되면서 무역과 해적 행위의 구분이 한동안 헷갈렸다.

  영국 해적 드레이크는 1588년 영국 함대의 부함장이 되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할 정도였으니 해적과 군인의 경계가 애매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19세기 초 유럽 열강들이 해군력을 갖추면서 1856년 해적 행위를 금지하는 파리선언이 나왔다. 신무기로 무장한 군함이 공포의 해결사로 등장한 것.

  그러니 영원한 해적은 없다. 해적질하던 그리스 사람들도 아테네가 번영하자 방향을 바꿔 해적 소탕에 앞장섰고, 바이킹의 후예들은 숫제 평화의 수호자가 되었다. 영국은 강한 해군을 만들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성장했다.

 

 

   “신기한 것은 해적의 행동지침이 지금 선원법에도 스며들어 있으니 재미있는 일 아녀?”

 

  그렇다. 선장답게 포인트를 집을 줄 아는 것 같다.

 

 

  해적은 위반한 규칙이 무엇이냐에 따라 여러 방법으로 처벌된다. 때로는 배의 마스트에 묶여 매를 맞기도 했고, 어떤 때는 적에게 잡혀 매달림을 당하기도 했다. 진짜 해적을 처벌하는 무시한 방법은 음식이나 물도 없이 무인도에 버려 천천히 죽어가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도 배에서 동료선원을 죽이는 것은 매우 엄한 죄로 취급한다. 해적시대에도 다른 해적을 죽이거나 도적질하면 사형에 처했다. 체포된 여자를 희롱해서는 안 되고, 갑판 밑에서 흡연을 금지하며, 전리품을 공과에 따라 공정히 분배했다는 것은 민주주의 정신이 투철했음을 의미한다.

  여성 탑승을 금지했음에도 유명한 여성해적 앤 보니와 메리 리드가 있었던 것은 해적행위를 할 때는 남장을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료해적이 다 잡혀 교수형을 당할 때도 이들은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형 집행이 면제됐다.

 

 

  지금 생각하면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참 순진했다는 생각이 든다. 임진왜란 때 일본은 조총이란 신무기로 무장하고 6년 동안이나 삼천리강산을 들쑤셨으나 20만대군의 왜구는 종국에 거의 다 죽고 패퇴했다. 한국의 독종 정신 때문이었다. 역사학자는 이순신장군의 승전 업적이라고 하지만 실은 각처에서 온 의병, 승병, 학병, 심지어는 의기 논개와 부녀자들의 치마부대가 결사항전에 나섰기 때문이다.

 

 

  골프 연습을 너무 많이 해 갈비뼈에 금이 가는 일이 예사로운 나라는 아마 한국뿐일 것이다. 이건 독종이 아니라 악종에 가까운 나라다.

  한국선원의 독종 기질은 배와 배로 옮겨지고 있다. 바람과 파도는 항상 가장 유능한 항해자의 편에 선다고 믿으면서 페인트와 기름 묻히는 것을 절대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독이 엄습할 때도 고독한 나무가 자라기만 한다면 강하게 자란다고 찰떡같이 믿는 그들이다.

 

 

 

 

***

 

 

  탐험이든 무역이든, 해적이든 대항해시대를 이야기할 땐 무서운 질병 하나를 빼 놓을 수 없다. 긴 항해로 흐물흐물 쓰러져가던 선원들이 언젠가부터 팽팽하게 살아남았다는 사실. 괴혈병을 예방해주는 과일즙의 효능을 발견한 것이다.

  신선한 고기와 야채는 배에서 꿈도 꿀 수 없는 음식이었다. 선원들의 주식은 소금에 절인 딱딱한 고기와 말린 콩을 끓인 스프였다. 절인 고기는 너무 딱딱해서 송곳니가 부러질 정도였고, 말린 콩은 푹푹 끓여내기 때문에 영양소는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신선한 야채나 과일만 먹여준다면 이런 증세는 씻은 듯이 나아버린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유럽의 각국은 항로의 중간에 있는 섬들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요새화시킨 뒤 야채를 경작하는 농장을 경영했다.

  아직 냉장고가 없던 때라 건빵이나 훈제 고기뿐이었다. 매우 간단한 식사였지만 어느 배나 많은 식량을 싣고 나가 선원들이 굶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선원들은 긴 항해 동안 병이 잘 생겼다. 몸이 약해지고, 잇몸에서 피가 나고, 근육이 움직이지 않았다. 괴혈병이라고 불렀다.

  1734년 한 오스트리아 의사가 괴혈병이 과일이나 푸른 야채와 관련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은 이 사실에 근거하여 항해 때엔 배의 식량창고에 귤의 일종인 라임을 많이 실어 선원들에게 라임 주스를 억지로 먹였다. 그 결과 1770년대에 태평양을 건너는 대항해를 했을 때 괴혈병으로 죽은 선원이 한 사람밖에 없었다. 콜럼버스나 마젤란 시절 무더기로 죽어갔던 선원들을 생각하면 효능은 기적적이었다.

 

 

  “이항사 아몬드 같은 걸 많이 먹어봐. 뇌 발달에 좋다고 하니까. 그리고 나 같은 노인들에겐 혈액과 심장에도 좋고…”

 

  건강식을 말하면 배에서는 기관장의 조언을 으뜸으로 여긴다. 간혹 선교에 올라와서 그가 나누는 대화는 건강이 주류를 이룬다.

 

 

  기관장은 어느 잡지가 선정한 오래 살게 만드는 식품을 알게 된 뒤부터 토마토, 시금치, 마늘, 녹차, 귀리, 연어, 적포도주, 견과류는 그의 주위에서 떨어진 적이 없다고 한다. 건강식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은 이승만 시대부터 배를 탈 수 있었던 덕분이라고 하면서.

  항해 중에는 낱낱이 신경 쓰기가 어렵지만 챙길 만한 것은 챙긴다. 식품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선내 냉장고가 고장 나지 않도록 누구보다도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이다.

 

 

  “기관장님은 건강 연령이 30대이신가 봐요.”

 

  실제 연령을 반으로 싹둑 잘라 말하는 송대길의 표현이 결코 립서비스만은 아니다. 기관장은 신경 쓰는 것만큼이나 건강이 좋아 보인다.

 

  “세포를 혹사시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지. 적포도주를 마시면 적혈구 혈색이 좋아지는가 봐.”

 

  “그러면 백혈구엔 백포도주가 좋다는 뜻이 되겠네요.”

 

  “이항사는 대책 없이 갖다 붙이긴….” 기관장은 젊은이들과의 대화가 싫지 않았다.

 

  “제 머린 모두 새치입니다. 백포도주 영향일까요?” 따라온 일기사가 기관장의 소갈머리를 감안하며 거들었다.

 

  “그럼 저는 산신령입니다. 닭백숙을 많이 먹었는가 봐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던 통신장이 언제 옆에 있었는지 자기 존재를 드러냈다.

 

 

  대항해시대 선원들은 갑판 밑 선실에서 그물 침대에 매달려 잠을 자다가도 바람이 바뀌면 돛대를 고쳐 매야 했다. 선원들은 수면부족으로 인한 마비 증세에 늘 시달려야 했다.

  만약 무풍지대를 만나면 배가 꼼짝없이 묶여 육지를 만나기 어렵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닭이나 염소 등의 가축을 갑판에 키웠다. 그러나 큰 파도가 갑판을 덮치면 이들은 익사하기 마련이었고, 이런 날이면 선원들은 죽은 동물들을 먹어치워야 했다.

  나무통에 보관한 식수도 조금만 항해하면 벌레가 생겨나 문제였다. 섬에 들어가 물을 공급받아야 해도 원주민들이 독을 푸는 경우가 있어 조심할 일이었다.

 

 

  죽음을 넘나든 범선시대의 항해를 생각하면 현재의 승선생활에 자족할 수 있을 것이다.

 

 

 

***

 

 

 

  칸쿤의 산호섬!

  아바나의 말레꼰 해변!

  키웨스트 해양도로!

 

 

  육지와 섬을 스칠 때마다 여객선이든 상선이든 감탄사 한 조각씩 뿌릴 것이다.

  낮에는 햇빛이 엿가락처럼 희고 뜨겁지만 저녁이 되면 태양이 힘을 잃고 구름 너머로 떨어진다. 낮과 저녁이 카멜레온이 되어 카리브 바다는 모습을 바꿔 나간다.

 

 

  저녁식사 후 선원들이 갑판으로 나와 난간에 등을 기대며 각자의 신세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해변의 여인>을 한 곡 뽑고 카리브해에 헛기침하는 친구.

  태양이 내려앉고 노을이 엷어진 빈 하늘에 눈길을 맡기는 친구.

  카리브해의 석양을 보고 서부영화 <석양의 무법자>의 ‘좋은 놈, 나쁜 놈, 못난 놈’ 중에서 못난 놈이 되고 싶다고 고집하는 친구.

  누가 그들의 상상력을 방해하랴.

 

 

  오후 당직으로 심신이 나른한 송대길의 몸은 중력에 복종하며 아래로 끌려 내려갔다. 먼지구름처럼 졸음이 몰려와 갑판 위 벤치에 등을 맡겼다. 영화의 여주인공이 몸에 걸쳐진 거추장스런 천조각을 떼어내는 데 열중하듯 그가 이 시간 스스로 애정을 갖고 열중할 만한 부분은 없다.

 

 

  태양은 수평선 아래 있어도 더위는 하늘의 한복판에 머물러 있다. 인생에서 별 볼 일 없을 것 같았는데 오늘 유난히 밝은 별들을 많이 보게 됐다. 오리온, 카시오피아, 큰곰자리 등. 그 별자리들은 무슨 힘으로 하늘에 매달려 있나?

  별을 세는 데 도와주려는 듯 갑판원 김군이 벤치 쪽으로 왔다.

 

 

  “커피 한잔 끓여 올까요? 카리브 바다가 분위기를 깔아 주네요.”

 

 “커피? 댕큐지.”

 

  갑판원 김군은 되먹은 놈이다. 서울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편하게 살아야 할 친구가 어쩌다 험악한 바다로 뛰어든 것이다. 이십대의 인생을 논하는 데는 왠지 쪽이 맞는 친구다.

  김군은 생김새가 얌전하게 보이지만 무진 싸움질을 해댔다나. 한번은 주먹에 충격을 받고 곧 별이라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정신이 간신히 돌아오고 자신의 처지를 반쯤 깨닫자 몇 달 후 배를 타게 됐다. 뱃놈의 꼬리표가 붙은 이유다.

  끓여온 커피를 혀끝으로 말아 넣자 정신이 말랑말랑해지고 화물선이 아닌 여객선에 탄 것 같은 착각으로 들어갔다.

 

  “카리브….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부분은 뭐지?” 송대길이 김군에게 물었다.

 

  “해적, 허리케인…. 그리고 크루즈선?”

 

  “맞아. 크루즈에 관한 이야기가 많지.”

 

 

  크루즈에 관한 상식은 선장이 많이 갖고 있다.

  적도 북쪽으로 대서양에 서인도제도가 흩어져 있는 카리브해는 유람선의 주무대이다. 카리브해의 정사(情事), 추억, 해적 등 카리브해를 배경으로 한 영화 제목들처럼 로맨스와 광란이 함께 섞여 있는 카리브해는 세계자연유산을 뿌려놓은 곳이다. 1980년대 미국 인기 TV드라마 ‘러브 보트’의 배경을 가장 많이 제공한 곳이기도. 연중 내내 유람할 수 있어 전세계 크루즈 수요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의 크루즈여행의 메카.

 

 

  부유한 은퇴자의 권리였던 크루즈여행은 점점 대중적 여행문화로 스며들고 있다.

  크루즈는 행선지가 다양하다. 마이애미에서 도미니카, 푸에르토리코, 버진군도 그리고 바하마로 돌아가려면 2300해리쯤은 뱃길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초호화여객선으로 불침(不沈)을 자부했던 타이타닉호가 1912년 처녀항해에서 북대서양에 가라앉아 1500여명의 희생자를 낸 것은 인간에게 겸손을 가르쳤다. 이를 계기로 해상인명안전협약(SOLAS)이 만들어진 것은 선원들에겐 축복이다. 대형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선원의 안전은 벽돌 쌓듯이 하나씩하나씩 보강되어 갔다.

  당시 호기스런 선주가 100년 후 타이타닉호의 다섯 배 크기인 길이 360미터에 22만톤 덩치로 9000명 이상을 수용하는 크루즈선이 출현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

 

 

  키웨스트와 마이애미를 지나 플로리다 반도를 따라 항해하다 보면 배가 해류를 타고 떠밀려 가는 기분을 느낀다. 그러나 반대로 내려오는 동안에는 얻었던 속력을 도로 돌려주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지. 돌아올 때는 연안에 바짝 붙어 항해해야겠구먼."

 

 남쪽으로 향할 때는 멕시코만류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항로를 육지 쪽으로 붙여야 한다는 선장의 경험적 지식이다.

 

 

  멕시코만류는 저위도 멕시코만 부근에서 따뜻하게 데워진 물이 대서양의 남서부에서 북동쪽으로 올라가는 해류이다. 고온의 소금기 많은 해류는 폭이 좁지만 5노트 가량의 몹시 세찬 유속(流速)과 방대한 유량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해류를 앞에서 받고 항해할 때는 저속 선박은 뒷걸음질 쳐야 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지금 배는 빠른 속력으로 쿠바와 키웨스트군도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이곳이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54년 노벨문학상을 따먹은 소설 ‘노인과 바다’의 무대인가.

 

 

  소설 속의 쿠바 노인은 멕시코만류에 조각배를 띄우고 혼자 고기를 잡으며 살았다. 오랫동안 고기를 낚지 못한 노인은 바다로 나갔다. 사투를 벌인 끝에 자신보다 큰 청사치를 잡았다.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의 습격을 당하지만 노인은 뼈만 남은 고기를 기어이 끌고 돌아왔다.

  사람은 죽음을 당하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는 메시지를 남긴 소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단지 사라질 뿐이다.’ 맥아더 장군의 언어도 여기서 힌트를 얻었나.

 

 

  헤밍웨이는 쿠바와 키웨스트를 오가며 살았다. 키웨스트에는 그가 살았던 집 두 곳이 관광객들을 위해 보존되어 있다. 이 집에서 헤밍웨이는 커피를 마시며 자살의 유혹을 이기려고 애썼는지 모른다. 적어도 아프리카에 종군기자로 가기 전까지. 네 번의 결혼, 좋아하는 낚시, 스포츠에 버금갈 만큼 좋아했던 사냥도 그에게 완전한 위안이 되지 못한 듯.

 

 

  모차르트는 음악을 통해서,

  피카소는 그림을 통해서,

  … 헤밍웨이는 문학을 통해서 자유를 얻은 승리자.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본인들의 진실과는 별도로.

  우리 항해사, 송가는 항해를 통해서 자유를? 아니면 커피를 통해서?

 

 

  커피는 작품에서 노인과 소년이 함께 마시는 걸로 나온다. 고래잡이 소설 '모비딕'에서도 일항사 스타벅은 갑판 일을 마치고 커피 마시기를 좋아했다. 커피 브랜드 스타벅스도 여기서 따온 이름이다. 커피가 배에 등장하는 것은 고독의 고통을 완화시켜 주는 걸로 믿기 때문인지.

 

 

  카리브해의 낮은 뜨거웠다. 피델 카스트로 동상에서 빛이 반사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는 김일성처럼 자신의 동상을 많이 세우지 않았다. 대신 혁명 영웅 체 게바라의 동상을 많이 세워나갔다. 혁명을 정당화하고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는 다른 사람의 영향력을 꾸어오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카스트로였으니까. 김정일이 아버지를 앞세우듯. 아바나에 헤밍웨이 동상도 세웠다. 쿠바는 예술을 사랑하는 나라임을 보여주는 데도 성공했다.

 

 

  쿠바의 남쪽 관타나모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햇볕을 쪼이며 이를 잡고 있나. 파놉티콘에서 감시하는 미국 간수가 두려울 것이다. 케네디가 1962년 쿠바봉쇄를 하지 않았더라면 죄수들은 후르시초프가 쿠바에 미사일을 옮겨 관타나모 지붕을 부숴주기를 기대했는지도.

 

 

  선교에서 멀리 내려다보이는 마이애미 해변의 모래가 햇빛을 쏟아내고 있다. 한가한 누군가가 하늘에 구름 몇점을 띄워 놓았는지 구름 그림자가 바다에 떠다닌다. 늦은 여름인데도 비노큘러(쌍안경)에 들어오는 마이애미의 비치파라솔은 아직 화려하다.

 

 

  승선경력이 많은 기관장은 모처럼 인간의 행복권을 피력했다.

 

  "우리에게도 늙을 권리가 있어. 저쪽 플로리다 해변쯤 집을 짓고 백로처럼 늙어가는 거야. 이미 삶을 너무 많이 낭비한 뒤여서 게으름을 피울 틈이 없어. 하선해서 저기에 비치하우스라도 장만해야겠구먼."

 

  형편이 좀 괜찮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신도 모셔보겠다고 농담. 신은 종종 심술궂은 행동을 하기 때문에 통제가 편한 신을 모시는 게 편리하다고 강조하면서. 그러면서 일월신은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한다. 낮에는 선텐, 밤에는 문텐을 하면 건강을 밤낮으로 보장해줄 거라면서.

 

 

  배에서는 남는 게 시간이요 물이요 바람이라고 하지만 이건 거짓말이다. 당직은 3교대로 휴일도 없이 돌아가고, 짠물은 지천이나 진정 마실 물은 부족해 항상 절수에 체질화돼 있다. 바람이 많다고 하나 시원한 가을 산바람을 어디서 찾으랴.

  시간은 달콤한 과일 같아서 벌레가 갉아먹기 쉽다. 벌레가 먹기 전에 내가 먹어야 한다. 고시공부를 포기하고 배를 탄 선원의 시간관이다. 머리가 받쳐주지 못하고 연애 사랑이 진드기 같아서 고시를 포기하긴 했지만. 오늘 하루 86,400초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는 생각해봤다. 입도 맞대보지 않은 여성에게 1,000초 이상 할애했다는 것은 신기한 일임에 틀림없다. 시간이 술 취한 듯 제멋대로 흐르고 있는 것은 배를 탄 이후도 마찬가지다.

 

 

  배를 어둠의 천으로 휘감는 대서양의 밤이 왔다. 뿌려진 보석처럼 검은 하늘에 수없이 많은 별들이 박힌다. 밤이 흘러가서 새벽과 연결되고 새벽은 아침으로, 아침은 낮, 그리고 낮은 저녁으로 이음매 없이 연결되기를 바랐지만 날씨는 바람난 여자처럼 변덕이 심하다.

  밤과 낮의 구분이 없을 만큼 하늘과 바다는 검정색이다. 바다는 북어처럼 바람으로 가득차 부풀어 올랐다.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보다 술에 빠져 죽은 사람이 많다고 해도 이럴 땐 바다가 무서워진다. 편안하게 육지에서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살자고 한 애인의 진심을 뿌리친 게 후회로 돌아온다. 또 다른 선원의 고백이다.

 

 

  사주원은 칼질이 무뎌지는 것을 느꼈다.

  한국에 있을 때.

  키스로 불 질러진 욕정이 함부로 그녀의 옷을 벗기고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그 집을 나온 것은 큰 실수였다. 그만한 찬스가 인생에서 다시없을 것이기 때문. 꽃은 웃고 나비는 춤을 추며 날아다니던 고향과는 달리 지금 눈앞에는 검은 구름이 찡그리고 파도가 춤을 추며 소금을 휘날리는 바다만 드러누워 있을 뿐이다.

  어제는 좁은 스커틀로 빛이 찾아들어 고마우면서도 마음이 울적했다. 육지에서는 집 창문으로 노란 편지 하나 던져줄 만했으나 바다에선 갈매기한테 부탁할 수도 없는 처지다.

  눈물로 침상과 요를 적시고 눈물을 음식으로 삼키며 눈물을 통과하지 않은 신앙은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유명한 성직자의 말을 되새겨 봐도 대저 넓은 우울한 가슴에 위안의 손바닥은 너무 좁다.

 

 

  잭슨빌에 들어가서는 편지 한통 꼭 띄워야겠다는 것이 모처럼 발동한 것을 막지 말아야 한다고 그는 다짐했다.

 

 

 

 

***

 

 

  싣고 온 자동차를 잭슨빌에 풀기 시작했다. 자동차를 발명한 사람이 미국인 헨리 포드인데 왜 일본차를 수입하나? 놀랄 것 없다. 작은 차는 일본다운 상품이다. 전자제품을 비롯해 오목조목한 일본제품은 열심히 미국으로 팔려나가고 있다.

 

 

  잭슨빌 부두는 벌판을 연상시킨다. 플로리다주의 수도인 잭슨빌은 미 대통령 앤드류 잭슨의 이름을 땄다. 스페인이 7년전쟁 후 잭슨빌을 영국에 양보했을 때 가슴이 쓰라렸을 것이다. 지난 세기에 큰 화재를 만났지만 재건하여 오히려 잘 정비된 도시로 변했다.

 

 

  부두에서 휴식시간을 이용해 부지런히 신문을 읽고 있던 한 흑인 인부가 송대길에게 손짓을 했다.

 

 “이 단어의 뜻?”

 

  늙은 코끼리 가죽을 뒤집어쓴 모습을 한 흑인이 묻는 단어는 다름 아닌 '코끼리(elephant)'였다. 영어의 나라에서 이방인에게 던진 질문 치고는 희극이다. 멋쩍게 웃지 않으면 제정신이 아니다. 갈비뼈가 두 개쯤 부러질 정도로 웃어줄 만도 한 상황이다. 미국은 이런 나라다. 신문을 꼭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미국은 정말 광대하다.

  복조리의 복이 아니라 함지박으로 복을 받은 나라임에 틀림없다. 스케일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국방, 경제 등 많은 부문에서 전 세계의 거의 반을 점하고 있는 나라. 라이벌로 맞서보려던 소련은 미사일 빼고 나면 잽도 안 된다. 코카콜라와 햄버거를 앞세워 공산국가나 검은 나라를 가리지 않고 영향력을 넓혀나간다. 부작용이 있다면 다민족 국가가 모래알처럼 될까 염려하지만….

 

 

  어느 수필가가 잘 표현했다. 기차는 원의 중심을 달린다.

  그렇다. 미국 대륙횡단 기차를 타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지평선으로 둘러진 원의 중심에만 머물 뿐이다.

 

 

  자동차를 들어 올리던 크레인 하나가 멈췄다. 후크를 물고 있던 와이어가 해치코밍에 걸려 끊어졌다. 자동차가 카데크에 떨어지고 인부 한 명이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다.

  그러나 목숨에만 지장이 없으면 인부는 해피하다. 보상이 어마어마하니까. 만약 선박 측 부주의로 인한 것이라면 선주는 덤터기 쓴다. 인부가 갑판에서 미끄러지기만 해도 일억 원짜리. 더욱이 증인의 기억이 가물가물할 무렵 그들은 소송을 제기한다. 한 번 당해본 선주들은 안다.

  사고 수습을 위해 하룻밤을 쉬어야 하는 상황.

  사고처리 문제는 시니어 사관들에게 맡기면 된다. 선원들은 예상치 않은 외출 기회가 반갑다. 그러나 갑판원 송씨는 외출 대신 배에서 송대길과 맥주 한 잔 하기를 원했다. 송씨 가문끼리 인생을 논해보자고 하면서.

 

 

  송씨가 배를 타게 된 동기는 엄청 간단했다. 빚 독촉에 시달려 아내가 집을 나갔기 때문이다.

  시골도시 전문대학을 나온 송씨는 물장사를 하다가 금전 손해를 봤다. 유산으로 물려받은 단독주택 하나를 알뜰히 갉아먹었다. 줄 빚이 있는 사람들은 문상도 오지 않고 받을 빚이 있는 사람들은 화장터까지 쫓아온다는 세상을 견디기 힘들었다.

  와이프는 너무도 온순하고 조용해서 도무지 싸울 일이 없는 위인이었는데 어린 딸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 말 한 마디 없이 나갔다. 망연하고 자실했다.

  집안에서 무엇을 물어도 잘 대꾸를 하지 않아 귀가 원래 불량품인가 해서 장모님께 택배로 보내 수리를 신청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할 정도의 와이프였는데 결국 나갈 때도 무언을 지켰다.

  자포자기 상태에서 무학대사가 추천할 뻔했던 무학소주를 마셔보았지만 하루 종일 세포들만 취해 있을 뿐 며칠은 정신이 데낄라에 취해 지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젊음의 한 토막을 술에 바쳐 나가는 순간에 바다가 탈출구로 등장했다.

  아내 없는 세상에 옷을 벗어주지는 않더라도 편지 한통 정도는 보내줄 여자가 있었으면 하는 게 지금 그의 심정이다. 아침 여덟 시마다 갑판으로 나가 열심히 깡깡 작업을 해봐도 우울한 기억은 녹만큼이나 쉽게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참말로 괴로움을 지고 매일같이 살아간다고 고백한다.

 

 

  송대길이 한마디 해줄 차례다.

 

  "작은 빗방울이 바위를 뚫고, 진토가 태산을 이루고,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답니다. 태도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하는 것의 차이가 인간을 전혀 다른 자리로 갖다놓고요.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승리가 온다고 하더군요."

 

  “내가 항렬이 높아서 님 자는 빼고 말하는데. 이항사, 당신 술기운이 오르니 공자가 되살아나는군. 송시열의 후예답다.”

 

  술기운이 더 피어오르니 송대길의 입술이 저절로 떨어졌는가 봐.

 

  "삶에 여백을 만들어 나갑시다. 보이는 사람한테는 적선, 보이지 않는 사람에겐 기도하라고 했으니 와이프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숨어있는 자신의 잘못을 찾으라구요."

 

  “그 말 정신 들게 만드네. 술값 신경 쓰지 말고 마셔.”

 

  면세 술값 나가봤자 벼룩이다. 정신은 마취에 헤매고 육체는 고문당한 후 각자의 집으로, 아니 각자의 방으로 갔다.

 

 

 

 

 

***

 

 

  자동차 하역 후 뉴올리언스로 향해 부지런히 뱃머리를 잡아갔다.

  곡물을 실어야 하므로 항해 중 선창 청소가 급선무다. 물청소 다음에 선창은 훈증소독이 필요하다. 선창에서 벌레 한 마리라도 나오는 날에는 검사에 불합격이다. 이전 항차의 잔유화물이 없어야 하고 선창에 녹이 슬어서도 안 된다. 간혹 서너 번 퇴자를 맞을 때도 있다. '빨리빨리' 성격 때문에 뇌물로 해결하겠다고 시도할 법 한데 미국은 그런 걸로 넘어갈 나라가 아니다. 미국 곡물에 벌레가 있다는 것은 미국의 청렴성과 자부심을 갉아먹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니까.

 

 

  선창청소를 하는 중 갑판장은 말단 갑판원에게 귀싸대기를 한 대 갈겼다.

 

 "너, 목숨이 몇 개야? 호스가 튀면 넌 저 밑으로 다이빙이야. 콩가루 되고 싶어?"

 

  카데크 끝에 서서 호스를 잡고 선창 벽에 물을 뿌리고 있던 선원은 갑자기 귀에 불을 느꼈다. 열심히 하는 중에 날벼락이었다.

  삼 분을 야단치기 위해 세 시간을 고민한다는 갑판장은 의외의 행동에 자신도 놀랐다. 젊은이의 목숨을 위해서 한 행동이었지만 곧 후회가 되기도 했다.

 

  "미워서 그런 거 아냐. 배는 모두 쇳덩어리야. 항상 조심해야 된다고."

 

  호스를 잡고 뒤로 물러난 갑판원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오히려 깨우쳐주셔서 감사합니다."

 

  갑판원의 대답에 갑판장은 웃었다.

  긴장을 가한 덕분에 이틀간의 선창청소는 아무런 사고 없이 끝났다.

 

 

  선창 청소를 끝낸 선원들은 그날 저녁 위스키 파티를 열었다. 카길 곡물부두에 다른 선박이 선적중이어서 하루 늦게 들어와도 괜찮다는 대리점 통보가 있었기 때문.

  마음 놓고 거나하게 취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조기원 한 명이 얼굴이 비틀어지도록 마신 나머지 화장실에서 한 사발 뱉어내고 말았다. 이 인간이 화장실 구멍 하나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꼭 사람 발 디딜 곳에 벌겋게 토사물을 쏟아놓고 말았다.

  배에선 이런 사람도 필요하다. 변화를 위해서는 걸리버여행의 광경도 봐야 한다. 정신이 반반한 사람만 있으면 오히려 불안하다. 변화가 없을 땐 멀쩡한 사람도 수시로 바늘로 찔러 생사를 확인해봐야 안심이 된다. 온전과 불온전의 경계가 너무 희미해서.

 

 

  뉴올리언스 항으로 들어가는 미시시피강 입구는 항해사들에게는 식별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넓게 뻗친 하구는 뱃머리를 어디로 밀어야 할지 헤매는 시간이 필요하다. 더구나 야간일 경우에는 연안의 석유채굴 시설들로 항로 부표를 찾기가 어렵다.

  등대는 맑은 날에, 무종(霧鍾)은 안개 낀 날에 유효하다. 등대가 눈뜬 사람의 길잡이라면 무종(霧鍾)은 장님의 길잡이로 생각해도 좋다.

  세계 최초의 등대는 기원전 280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라고 했던가. 정확한 해도가 없었던 때라 등대는 좋은 안내자였을 것이다.

  등대를 무시하면 코다친다. 지휘관이 탄 어느 함정이 등댓불을 타선의 선등(船燈)으로 착각해 등대에게 즉시 피항동작을 취하라고 명령했다는 우스개는 두고두고 지휘관을 풍자하는 데 써먹는다.

  한국 최초의 현대적 등대는 1903년 설치된 인천 팔미도 등대라고. 별것 다 알아봤다고 하겠다.

 

 

  긴장된 상태에서 천천히 열 시간정도 올라가면 뉴올리언스항에 다다른다. 강 옆구리에 좀 넓은 수역을 만들어 놓은 것이 항구이다. 도로로 치면 약간 들어간 버스정류장이랄까.

  미시시피 강에는 곡물 적재의 차례를 기다리는 배들로 만원이다. 혹시 가까이 한국선박이라도 있으면 무선으로 안부를 물으며 무료함을 달래기도 한다.

  무선 채널에는 만국어가 범람한다. 선원들의 대화가 무선을 타고 손오공처럼 공중을 날아다닌다. 노아의 자손들이 하늘에 닿도록 바벨탑을 쌓아가다가 언어의 혼돈을 가져온 것이 바로 이런 상태일 게다.

 

 

  미시시피 강 주변의 풍부한 곡창은 참 대단하다. 뉴올리언스를 세계 최대의 곡물 수출항으로 만든 것은 당연하다. 이런 곡창지대를 19세기 초 프랑스 총독 루이지애나가 1500만 달러를 받고 미국에 팔았다니 아쉽긴…. 아니 러시아는 이보다 반세기 후 알라스카를 720만 달러에 팔았다. 미국은 요즘 자본주의 용어로 말하면 영토 M&A의 귀재라 할 만하다.

 

 

  곡창지대에서 바지에 실려온 곡물은 수십 개의 바구니가 달린 컨베이어벨트에 운반되어 곡물단지에 하역된다. 곡물은 다시 대형 엘리베이터에 실려 거대한 저장시설로 옮겨지고, 여기서 분류작업을 마치면 접안해 있는 선박으로 옮겨져 세계 전역에 수송된다. 미국은 세계 곡물 수출의 절반을 담당할 자격이 있다. 자이언트 시설을 봐서도.

 

 

  재즈의 도시 뉴올리언스의 중심가는 버번 스트리트. 이동 중인 사람의 구 할이 방문객이란다.

  굴, 대게 등 시푸드로 유명한 레스토랑은 줄을 서야만 들어간다. 줄 속에 흑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링컨 대통령이 흑백을 평등의 인격체로 올려놓았음에도 현실에선 아직 색깔이 구분되고 있다. 시푸드가 비싸서만은 아닐 것이다.

  차별은 미시시피강을 세월과 함께 흘러 사라지려나.

  강에서 흑백의 아이들이 재미있게 수영하는 것이 보인다. 급류를 만나 위험에 빠진 백인 아이를 흑인 아이가 구해냈다고 신문은 특필했다. 다음에는 백이 흑에게 보답할 기회가 올 것이다.

  얼마 전 한국 선원 한 명이 미시시피강에서 수영하다가 조난당해 미국해안경비대에 구조된 적이 있다. ‘수영 절대금지’라는 빨간 글씨의 팻말이 강둑에 야무지게 박혀 있었는데도 영어를 이해하지 못했는지, 아예 무시했는지, 그랬을 것이다.

 

 

 

***

 

 

 

  옥수수와 콩을 빵빵하게 실은 배는 미시시피강을 안전하게 빠져나왔다. 강을 타고 내려오는 중 바지선 네 척을 묶은 예인선단과 접촉할 뻔했던 걸 빼고는 긴장할 만한 일이 없었다. 항해일지에 사실의 정황을 기록해 뒀다. 간혹 훗날에 딴소리 하는 배를 대비해서.

 

 

  멕시코만 위에 떠있는 구름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고, 바다의 색깔은 햇살의 각도에 따라 바뀌어 간다. 구름이 다시 해를 가리며 스푸마토 기법을 쓰듯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바다가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조용하던 멕시코만이 성깔을 내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지만 조짐이 이상하다.

  금방 비가 올 듯 구물거리는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고 오다긋다 하는 비가 갑작이 소나기로 쏟아졌다. 바다가 흔들리고 배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흔들리는 것은 배가 아니라 바다라고 했던가. 도미니카를 지나 북상하는 허리케인이 이렇게 바다를 춤추게 하고 있다.

  선교에 서 있는 송대길은 정말 자세가 안 나왔다. 벽의 손잡이를 붙잡아도 롤링에 몸이 휩쓸리려고 했다. 이럴 땐 당직자 둘이 서로 대화하며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뉴올리언스에서 급히 교대된 조타수는 너무 말이 없다. 선교는 마치 벙어리 둘 사는 집안 같다. 그러다보니 송대길의 상상력도 황폐해져 가는 느낌. 지난번 조타수는 하루에 2만 단어 이상 쓰는 여자의 수다 수준이었다. 태어나 발 떼기 전에 입부터 뗐다고 큰소리 친 친구였으니.

 

 

  멕시코 유카탄반도를 지나면서 선장이 선교로 올라왔다. 황천이라 선박의 위치가 다소 걱정되었던지 해도실로 먼저 들어섰다. 쳐진 앞배를 해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선위(船位)를 점검했다. 새벽에 일항사가 북극성과 오리온, 비너스를 천측해 위치선을 그어 놓은 것을 보았다. 위치삼각형이 큰 것은 먹구름 사이로 포착한 별들을 잡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침에 삼항사가 로란과 데카로 그어놓은 위치와 대조해 보더니 그런대로 근사한 위치에 있어 커피를 여유 있게 마시는 데 지장이 없다고 선장은 생각했다.

  선박위치 측정에 관해 선장은 항해사들을 너무 나무라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관대했다. 강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고, 부드럽지 않으면 살아갈 자격이 없다는 미국의 추리소설가 레이먼드 첸들러의 말을 귀감삼아 책망에 강약을 조절하려고 애썼다.

 

 

  “서쪽 하늘의 먹구름이나 하늘의 뇌성을 볼 때 바람이 좀 불겠군.”

 

 선교 날개갑판으로 나간 선장은 날씨를 진단하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내 휘발유 냄새를 풍기며 론손 라이터가 코앞으로 들이대어졌다. 삼항사가 두 손으로 대령한 것이다. 버번스트리트에서 구입하기를 잘했다고 삼항사는 생각했다. 강한 바람에도 불꽃을 유지한다는 론손처럼 그는 승진 심사에서 살아남기를 원했다. 선장이 힘써준다면 금상첨화일 거라고 기대하면서.

 

 

  배는 출고된 지 팔 년밖에 지나지 않았으나 엔진은 고달프게 덜덜거리는 소리를 낸다. 만선에다가 앞바람을 받아 좀 부담스러운가 보다. 기관장은 진동학상 어떤 배수톤에서, 어떤 선속에선 진동이 커지는 구간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조선기술에서 진동학이 좀 어렵다나.

  기관장은 가르마가 1:8로 정리된 자신의 머리를 만지며 팔등신의 묘미를 강조했다. 대한민국도 노력해서 팔등신 국가가 되어야 하며, 이젠 가난한 사람이 타고 올라가야 할 사다리를 부자나 국가가 걷어차 버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정의감이 발동하여 열불을 삼키는 동안에 소갈머리가 돼 가고 있어 국가가 더 이상 자기 머리에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를 소망한다는 말을 추가했다.

 

 

  이기사가 갑작이 기관장을 찾아와서 파나마운하를 통과할 때 기필코 하선하겠다고 조른다. 교대자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막무가내다. 선장은 ‘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간다’는 말로 재혼하려는 엄마를 내보내주듯 그를 하선시키기로 했다.

  선장은 이기사의 얼굴을 핥듯이 들여다보았다.

 

  “안 되겠군. 상사병이 이미 도를 넘었어. 여자의 손을 잡는 것 외는 처방이 없군.”

 

  물음표가 붙은 눈으로 쳐다보던 이기사는 겨우 물음표를 뗀 듯 눈의 힘을 풀었다.

  풀잎의 이슬만 받아먹은 사람같이 가늘고 해맑은 체구를 한 그는 이제 행동이 소프트해졌다.

  일 년 이상 승선하겠다고 엄숙히 선포했던 그의 약속은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한 사람들의 실언과 다름없이 돼버렸다. 허다한 약속과 신의도 소용없다. 무수한 말과 약속이 똥덩어리처럼 떠다니는 세상.

 

 

  대체로 승선생활은 반년쯤 지나면 친밀감이 붙기 시작한다. 친구나 포도주 혹은 장작처럼 오래될수록 좋은 대접을 받는다. 장기 승선하는 선원을 선주는 값을 잘 쳐준다. 특히 해기사들이 그러면 더 고맙다.

  송대길은 장기승선 감사패를 받기 위해서라기보다 바다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많이 전해야 하기 때문에 당분간은 배를 더 타야 한다. 이야기가 지루하다면 휴가 정도는 다녀와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