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갑문을 넘어서

갑문을 넘어서

오선닥 2011. 3. 29. 14:52

태평양과 대서양을 이으려고 누가 아메리카대륙의 허리를 잘랐던가.

애석하게도 콜롬비아는 운하 건설 때문에 파나마를 독립시켜줘야만 했다.

그러나 배들은 즐겁다.

남미 끝단 1만5000km 항로를 돌아갈 필요가 없으니까.

1970년대는 미국과 일본이 파나마운하 통행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나라이다.

배가 삼단 갑문을 올랐다가 산정상 호수를 지나 다시 갑문을 통해 내려가는 것에

초보 항해사는 호기심을 느낀다.

 

 

 

 

 

 

갑문을 넘어서

 

 

   세월을 투자하면 배는 속력에 따라 거리를 만들어내는 법.

  일본을 출항해 20여일이 지나니 배는 어느덧 파나마운하 입구 발보아(Balboa)항에 도착. 약 500년 전 스페인 탐험가 빅토르 발보아가 대서양에서 대륙을 넘어 처음으로 태평양을 바라본 곳이 바로 이곳 발보아. 확 터인 넓은 바다를 보고 그는 심히 감탄한 나머지 태평양이라고 불렀던가.

  태평양 측에서 긴 호흡을 하고 갑문을 뛰어넘으면 대서양이 발아래 밟히게 된다.

그렇다고 텀블링해서 운하를 뛰어넘는다는 뜻은 아니다. 계단식갑문을 타고 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다시 갑문을 타고 점잖게 내려가면 대서양 측 항구 크리스토발(Cristobal)에 이른다.

  산 정상에 호수를 만들어 배가 항해할 수 있도록 했다는 걸 안다면 개념 없이 배가 산으로 올라가리라는 염려는 배제해도 좋다.

 

 

  태평양 측 운하 입구 발보아에서 도선사가 승선했다. 도선사는 뚱뚱한 몸을 하고도 날렵하게 로프 사다리를 타고 갑판에 올랐다. 창세기, 야곱의 꿈에 천사가 하늘로 오르락내리락 하던 사닥다리라고 해서 자콥라더(Jacob Ladder)라고 했던가.

 

 

  도선사는 뱃머리를 운하 갑문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보통은 커피 한잔 얻어 마시고, 본선 선장과 조크 한마디 하면서 임무를 개시하는데, 이 양반은 선장과 간단한 악수를 끝내고는 곧 바로 뱃머리를 이리저리 조종하기 시작했다. 마치 고속도로에 들어서는 자동차를 운전하듯이.

 

 

  쉴 새 없이 조선(操船) 구령이 떨어진다. 한국말로 해주었으면 좋겠지만 모두가 라면발 같은 꼬부랑말이다.

Ahead(앞으로), Astern(뒤로), Portside(좌로), Starboard(우로), Steady(똑바로), Slow Ahead(저속), Half Ahead(반속), Full Ahead(전속), Full Astern(전속후진), Stop(정지) … 기타 등등.

귀에 익지 않은 영어 용어들이 팝콘 튀어나오듯 하니 당황해진다.

 

 

  송대길이 첫 항차 영어의 덫에 걸린 경험담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실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히어링(heearing)은 거의 노이로제 수준이었다. 초보 항해사의 기억 언저리에 두고두고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영어가 그에게 입힌 상처자국 말이다.

이야기인즉슨 사태는 이랬다.

 

 

  태평양 횡단을 무사히 마치고 배는 발보아 항에 이르렀다.

  무전으로 도선사를 불렀고, VHF12 채널로 바꾼 후 저쪽에서 응답이 왔다.

 

  “파이러 라러, 스타보드”

 

  “… ?”

 

  무전으로 들어오는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송대길이 당황하는 것은 초기 증상.

다시 저쪽에서 급한 목소리를 냈다.

 

  “파이러 라러! 파이러 라러! 스타보드”

 

  도선선(Pilot boat, 導船船)에서 질러대는 고함소리가 너무 커서 VHF 무전기가 거의 폭발할 지경이다. 폭발하지 않았다면 아마 일제 무전기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의 귀는 뚫리지 않았다. 결국

 

  “… 파던 미(Pardon me)?” 되물을 뿐이다.

 

  상대방의 목소리가 더 커진다. 그러면서 또박또박하게,

 

  “파이러. 라러. 스타보드.”

 

  하지만 이미 솜으로 귀를 막아놓은 것처럼 아무런 감응이 들어오지 않았다.

 

  “2항사님, 오른쪽에 도선사 사다리를 준비하라는 것 같습니다.”

 

  마지못해 키를 잡고 있던 조타수가 힌트를 줬다. 아니 통역을 해줬다. 이항사의 존재감을 고려하여 점잖게 말해준 것에 불과하다.

 ‘Pilot ladder, starboard'라는 것을 알아챘을 때는 이미 도선사가 우현에 바짝 다고오고 있었다. 응답을 보냈다.

 

  “Got it. Starboard, roger."

 

 시효 지난 응답은 사족에 불과하다.

 

 

  이때부터 영어가 몸살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배워온 영어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줄이야.

  물론 공부하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즐거웠던 시절을 보냈으니까. 그런데 해사영어는 배워서 개 줬나? 무엇보다 영어 발음은 혀를 배배꼬아서 하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었는데….

  창피를 동반하면서, 한편 긴장감이 그를 빳빳하게 했다.

  운하를 통과하는 열 시간은 그야말로 언어로부터 오는 고통을 실감했고, 언어는 입의 역할 못지않게 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전으로 터득한 시간이었다. 영어는 어쩌면 지난 400년 동안의 단일 수출품 가운데 가장 기록적인 품목으로 현대인에게 필요악과 같은 것이다.

  첫 항차의 야무진 경험은 한 인간의 분발을 촉진시킨 것. 차츰 꼬부랑말과 친숙해지고 여유가 생기자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진리로 자리 잡았다.

 

 

 

 

 

  배가 첫 번째 갑문 입구에 도착하자 갑문이 열리고 양 도크 위 레일에 놓인 전동차에서 와이어를 내어줬다. 선교의 도선사는 본선에 승선한 운하 인부들과 무전기로 연락하며 선체를 갑문 한가운데로 조정한다.

  거대한 갑문이 닫히고 호수의 물이 갑실로 흘러들어와 가득 차오르면서 선체는 서서히 떠오른다. 갑실을 채우고 비우는 데 별도의 에너지가 필요 없다. 펌프를 쓰지 않고 중력으로 호수물을 창배수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도어가 열리고 배는 또 저속 전진한다. 이렇게 세 개의 갑문을 통과한 후 배는 산정상의 가툰호의 담수 위로 항해한다. 해수면보다 26m나 높은 호수이다. 인공호수가 커다랗게 만들어진 것이다. 열대지방의 스콜이 이 호수에 풍부한 강우량을 제공한다. 호수에서 바다로 내려가는 단계는 반대의 수순이다.

  다 내려가면 대서양 쪽 항구 크리스토발이 나온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이름을 반씩 쪼개서 크리스토발(미국 관리 지역)과 콜론(파나마 관리 지역)으로 구분해서 지칭하게 되었다는 것.

 

 

  운하에 종사하는 인부들의 반은 배에 승선하고, 반은 도크에서 선박의 갑문 통과를 돕는다. 열대 햇볕에 쏘이고, 스콜에 씻겨 인부들의 피부는 초콜릿 같은 구릿빛이다. 피부의 향기가 특색을 보이지 않는 것은 아마도 운하를 지나는 각양각색 사람들이 뿌려놓고 간 복잡한 향내가 그들의 피부에 스며들었기 때문인지도.

  남미에 색깔이 애매한 혼혈이 많은 것은 포르투갈과 스페인 정복자가 가족을 동반하지 않고 대륙에 정착했다가 현지 여인들과 피를 섞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옆 갑문 레인을 통과하는 크루즈선의 화려한 선체가 마주 스쳐 지나는 화물선의 우중충한 모습에 기를 팍 죽여 놓고 간다. 갑판으로 나와 갑문 통과 광경을 즐기는 크루즈선의 남녀 여객들의 옷차림이 스콜이 지나간 후 동심원으로 휘어진 무지개와 조화를 이뤄 보는 사람들의 눈을 어지럽힌다. 크루즈선의 갑판 난간에 기대선 한 여인은 젖무덤을 핸드레일 바깥으로 걸쳐놓고 운하 관광을 즐기고 있다. 옆 갑문을 지나는 다른 선박에 웃음을 보낼 때는 교태가 묻어나는 모습. 이 여성이 왜 이러나? 여자를 잊으려고 선원들이 얼마나 고군분투해 왔는데…. 고충의 깊은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운하가 개통된 1914년, 팔만톤급 여객선 퀸엘리자베스호가 처음으로 운하를 통과했을 때 여객들은 아마도 신대륙을 발견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때의 모습이 궁금하다. 너비 16km의 운하 존을 먼 시선으로 훑으면서 대륙의 허리를 80km나 뚫고 지나가는 감회는 세상에 태어난 아기의 감격적인 첫 울음과 같은 것인지도.

 

 

  갑문을 지나 수로에 들어섰을 때, 수로 폭 160미터를 배들끼리 어깨도 부딪치지 않고 사이좋게 통과하는 것은 도선사의 신기(神技)에 가까운 조선(操船)기술임에 틀림없다. 에어쇼(Air show)가 아닌 시쇼(Sea show)랄까. 물론 하루 40척 가량의 배를 통과시키는 중에 그들의 운전술이 축적됐을 것이지만, 프로는 프로임을 보여준다. 다양한 모양의 배들. 상선, 여객선, 군함, 어선…등에서 많은 경험이 그들의 기술이 연마되었을 것이다.

 

 

  도선사 중에 한국계 미국인이 한명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일찍이 그는 해기사 면허를 갖고 미국에 이민 가서 미국 상선 선장을 했었다. 캡틴 김은 운하 존에 사는 미국 여인과 결혼해 살고 있다. 지난 항차 대서양 측 크리스토발에서 승선해 태평양 측 발보아까지 도선작업을 했다. 하선할 때 선물로 주는 위스키를 마다하고 기어코 김치 한 통을 받아갔다. 부인이 남편 없인 살 수 있어도 김치 없인 못 산다고 해서. 이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김치로 충성심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고 너스레를 피웠던 그였다.

 

 

  운하 주변의 넓은 초지가 싱싱한 색깔로 다가온다. 싱그러운 초지 사이를 미끄러지는가 하면 배는 곧 좁은 계곡으로 들어선다. 수로 주위 바위산이 뱃길을 압박하지만 배는 개의치 않고 수로를 따라 흔들림 없이 지나간다.

 

 

  “캡틴, 저 위령비를 보시오. 노동자 3만 명의 영혼을 달래주는 것이오.”

 

 배가 갑문을 빠져나와 운하 수로에 들어서 협곡을 항해하고 있을 때, 도선사가 운하 옆 바위벽에 세워진 위령비를 가리키며 선장에게 말을 걸었다. 갑문 통과 중엔 배 운전에만 신경 쓰던 양반이 이제 약간의 여유를 찾았는가 보다.

 

  “그렇군요. 특히 중국 사람들이 많이 희생됐다고 들었는데….”

 

  선장은 난공사와 열병으로 많은 인부들이 희생됐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 희생 덕분에 두 대양이 이어진 겁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터널굴착기나 원형실드가 아닌 삽과 곡괭이로, 때로는 위험한 화약발파로 공사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프랑스가 9년간 굴착하다가 포기한 것을 미국이 인수해 10년 만에 운하를 완성했다. 운하를 건설하는 동안 열병과의 싸움은 운하의 역사 중 가장 참담한 부분이었다.

  운하 개통은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는 항로를 22,500km에서 9,500km로 단축시켜 놓았다. 말하자면 남미 끝단 혼곶(Cape of Horn)으로 우회하는 거리보다 13,000km나 단축시켜 놓은 셈이다.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이 선장 외에 항해사들이 있다는 것에 도선사는 흥이 나는 모양이다.

 

  “세상에 이런 축지법이 어디 있습니까. 신의 축복이 아닐까요.”

 

  자기도취에 빠진 도선사의 설명에 선장은 하마터면 ‘돼지머리에 절한 덕분’이라고 응수할 뻔. 옆에서 엿듣고 있던 송대길은 대충 이해했지만 도선사의 제스처가 재밌어서 웃음이 삐져나오기도 한다.

 

 

 

 

 

    사람들은 파나마에 왜 동양인이 많으냐고 의아해 한다. 오리엔탈 얼굴로, 모양은 비슷한 것 같으나 대부분 중국계다.

  중국인들은 1850년대 처음 페루 땅을 밟았다. 노예제 폐지 이후 부족해진 노동력 보충을 위해서였다. 그 후에도 중국인은 파나마 철도와 운하 건설을 위해 파나마로 집단 이주해왔다. 자진해서 혹은 반강제로 페루, 파나마 등으로 밀려들어온 것이다. 중국인 이민자가 파나마 인구의 10%에 육박한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여기에도 이민의 역사는 있다.

 

 

  “아버지, 추석이온데 성묘 다녀올까요? ”

 

  추석날이 다가오자 산드라 리(李)는 아버지에게 할아버지 산소에 다녀오자고 권했다. 할아버지는 파나마 시내 빈민촌 한 귀퉁이의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 중국에서 건너온 할아버지는 파나마운하 건설 노동자로 일하다가 당시 유행했던 황열로 죽음을 맞았다. 아버지는 대답을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효도를 보이는 자식이 대견스럽기만 했다.

 

  “그래, 갔다 오자. 운하 공원묘지로 이장하기 전에 산소를 자주 찾아봬야 해.”

 

  파나마운하가 2000년경 미국 관할에서 파나마로 옮겨지면 운하변 높은 곳에 중국인 희생자만을 위한 공원묘지가 조성될 예정이다.

 

  “운하 공원묘지로 옮겨지면 저는 할아버지를 자주 뵙겠네요.”

 

  “갑문에서 일하는 덕분 아니겠냐.”

 

운하 갑문에서 일하는 중국계 이민 3세 산드라 리는 중국인의 피를 반이라도 받았다는 것에 단단한 자부심을 느껴왔다.

 

 

  그는 미라플로레스 갑문에서 도크 측 감독을 맡고 있다. 선수(船首)에서 전동차 연결와이어 작업을 돕고 있는 송대길에게 친근함을 보였다. 정치체제는 다르지만 차이나 옆에 있는 코리아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다. 공자의 붕우유신(朋友有信) 우정이 통한 것처럼.

 

  “와이프가 스페인계인데 미스터 송이 미혼이라면 와이프 친구를 소개시켜줄 수 있어. 시내에 스페인계 미인이 많으니까.”

 

  웃으면서 그는 지갑에서 젊은 여자 사진을 하나 꺼냈다. 부인이란다. 부인의 미모에 동의하면 자기 처제라도 소개시켜 줄 수 있다고 허드레를 피웠다. 처제는 부인보다 더 예쁘다고 하면서. 짱개 피가 섞여 있는지 뚜쟁이 솜씨가 고단수다. 갑문 통과가 늦어지면 포섭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팅 기회가 기다려지네요. 발보아에 일박이라도 정박할 수 있도록 기도 많이 해줘요."

 

송대길의 웃음을 산드라 리는 이해한 듯 만 듯.

 

 

 

 

 

    태평양과 대서양에 흩어져 있던 배들이 대륙의 허리를 지나가기 위해 파나마운하로 몰려든다. 마치 빛이 렌즈의 초점으로 몰려드는 것처럼. 모여든 배들은 운하를 빠져나와 대서양으로, 혹은 태평양으로 흩어진다.

  평소 농담을 좋아하는 갑판원이 점심 후 선교로 올라왔다.

 

  “이항사님, 학교 때 국어 성적 괜찮았어요?”

 

  “왜, 갑자기 남의 아픈 데를 찌르고 그래? 뭐… 중간 정도는 됐지.”

 

  “그럼, 키스의 품사는 뭐예요?”

 

  “명사. 그것도 보통명사.”

 

  송대길은 정확하게, 철저하게 오류 없이 대답해줬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맞지만, 정확한 답은 접속사예요.”

 

  아니, 이 친구가 난센스 장난을 하는구먼. 여자들이 지나가곤 하니 허파에 바람이 들어갔나. 이번엔 송대길이 질문을 던졌다.

 

 “그럼, 내가 묻겠는데, 파나마운하의 품사는 뭐야?”

 

 “명사. 그것도 고유명사.”

 

  갑판원은 보란 듯이 똑같은 순서로 대답했다.

 

  “물론 맞는데, 정확한 답은 접속사야. 태평양과 대서양을 이어주는 접속사 말예.”

 

  갑판원은 엿 먹었다는 생각과 함께 웃음을 참아야 했다.

 

 “역시 이항사님은 머리가 자이로라니까. 고속으로 잘 돌아가니 말예요.”

 

 

  대양간 접속사 역할을 하는 파나마운하도 완공에 이르기까지는 곡절이 많았다.

  19세기 중반 미국이 캘리포니아 골드러시로 많은 탐광자(探鑛者)들이 서부로 몰려들 때 험난한 미대륙을 횡단하는 대신에 파나마 노정에 철도부설을 택했다. 마침내 파나마 철도가 개통돼 번영을 누렸지만 철도보다 운하의 필요성을 더 느끼게 됐다.

  수에즈운하를 건설한 프랑스인 레셉스가 누구보다 먼저 파나마운하 건설에 탐을 냈다.

 

  “수에즈운하 162km도 뚫었는데 이까짓 반쪽 길이밖에 안 되는 파나마운하쯤이야….”

 

  레셉스는 자신감이 넘쳐 ‘쇠뿔은 단김에’라고 1880년 주저 없이 굴착 공사를 시작했다.

  자신감이 커지면 실망감도 커지는 법.

  모래 대신 바윗덩어리가 자꾸 튀어나오면서 곡굉이가 들어가지 않았다. 굳어버린 것은 땅뿐만 아니라 희망도 정렬도 마찬가지였다. 줄줄이 어려움이 몰려왔다.

 

 “아니, 황열은 뭐람? 우리 인부들 다 죽이겠네. 이제 돈도 바닥나고….”

 

  수에즈운하처럼 수평식으로 건설하려는 계획은 결국 열병과 난공사로 인해 9년간의 땀 빼는 세월만 축내고 레셉스는 중도에 두 손 들고 말았다.

  이젠 미국이 나서야 할 판이다. 지정학적으로 너무도 중요한 운하이기 때문.

 

  “콜롬비아가 운하 지역을 미국 관할로 이양해주면 운하를 건설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디오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약간 배짱을 퉁기면서 콜롬비아 대통령에게 접근하여 조약 체결에 성공했다. 그러나 콜롬비아 의회가 비준해주지 않았다.

  이젠 지난 50년 동안 독립을 위해 콜롬비아에게 폭동을 일으켜 왔던 파나마가 들고 일어났다. 미 대통령은 못이기는 척 제안했다.

 

  “그럼 좋소. 파나마 독립을 미국이 보장해주는 대신 운하지대의 통치권 및 영구소유권과 운하건설권을 줘야 합니다.”

 

  더디어 1903년 파나마는 콜롬비아로부터 독립했다. 동시에 미국은 파나마운하를 건설하기 시작해 10년 만인 1914년 공사를 완료했다.

  민족주의가 팽만한 1960년대 파나마는 계약과는 관계없이 줄곧 운하의 반환을 요구했다.

  나중의 일이지만, 카터 대통령은 1977년 운하반환을 약속하는 ‘신파나마운하조약’에 서명하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2000년부터 운하를 완전히 이양하겠소.”

 

 강대국이라도 시대조류라는 폭포수를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었던 것.

 

 

  도선사는 운하의 역사를 훤히 꿰차고 있었다. 남자에 관한 히스토리(history)뿐만 아니라 여자에 관한 허스토리(herstory)를 불문하고….

  돈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운하 통행료는 배의 종류와 적재 상태에 따라 다르다. 초호와 여객선은 25만 달러를 지불했는가 하면, 어떤 모험작가는 운하를 수영으로 건너면서 36센트만 지불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운하를 통과하는 중 갑판원이 선교에서 송대길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바쁘지 않을 때는 이런 이야기붙이도 괜찮다. 서로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생활의 활력소다.

 

  “갑문 안에 들어 있을 때는 배가 좀 갑갑하겠죠?” 갑판원이 궁금해서 송대길에게 물었다.

 

  “배가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구먼. 배 길이 294m, 선폭 32m, 흘수 12m의 파나막스 사이즈인 본선의 경우 갑실(閘室)의 여유 공간이 전후 5m씩, 좌우 50cm씩 정도뿐이니 말일세. 크게 한번 몸부림칠 수 없는 공간이군.”

 

  “처음부터 갑문을 크게 건설했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사실 1942년 확장 공사를 진행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중단했다더군. 확장 부지는 운하 존에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추가 공사는 하시라도 시작할 수 있겠지.”

 

  “수에즈운하 정도만 돼도 괜찮을 텐데요. 그러면 수입도 많을 테고….”

 

  “그야 당연하지만 파나마로선 국가 GDP보다 많이 소요되는 확장 공사비가 문제이지. 현재 운하 수입 20억 달러는 전체 GDP의 1/3 정도 되고, 확장을 한다면 1/2로 늘어날 수도…. 파나마는 원래 운하 때문에 독립한 나라이니 운하가 없으면 앙꼬 없는 찐빵과 다름없지.”

 

송대길이 알고 있는 것은 그 정도다.

 

 

  세월이 지날수록 운하 확장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나라는 바로 파나마와 미국, 그리고 일본이다. 20년 후 통과 물동량을 두 배로 예상하고 이들은 1980년대에 위원회를 조직해 세 번째 갑문 레인을 건설하기로 결정한다.

  2000년 미국으로부터 파나마운하의 소유권을 넘겨받은 파나마 정부는 2006년 국민투표로 운하 확장계획을 통과시킨 뒤, 2007년 9월부터 길이 427m, 폭 55m, 깊이 18.3m의 세 번째 갑문 수로 건설과 기존 수로에 대한 준설공사에 착수한다. 운하가 개통된 지 꼭 100년 만인 2014년 확장공사가 완공된다는 것.

  운하 확장공사는 240억 유로 규모로 스페인 기업 컨소시엄이 수주 성공. 미국으로선 배가 아프긴 하지만 같은 스페인어계 국가의 이점이 현실화된 것. 운영 10년 후 투자비용 회수가 가능할 것으로 낙관하면서.

  기존 시설이 수용하지 못한 30%가량의 대형선 화물을 흡수할 수 있어 아시아와 북미, 카리브해 연안 중남미를 포함,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들과의 교역도 한층 활발해질 것이다. 기존 최대 4400TEU급 선박 통과가 확장 후 1만2000TEU급 선박까지 통과 가능해 동서 대륙과 함께 남북 아메리카를 연결하는 중요한 물류허브 역할을 하게 된다.

  확장 갑문 안에서의 선박 위치 조정은 기존의 전동차가 아닌 예인선을 이용할 것이다.

 

 

 

 

 

    호수를 지나 대서양 측 가툰 갑문에 들어서자 크리스토발이 발아래 보였다.

 

  “발보아를 출발한 지 열 시간이 좀 안 되는군요. 그럼 봉 보야주(Bon Voyage), 캡틴!”

 

  배가 크리스토발 방파제를 빠져나가기 전 도선사는 하선했다.

  도선사의 육중한 체구를 지탱한 로프 사다리가 대견스러웠다. 십 분의 일 톤 무게를 받고도 로프의 실 가닥(yarn) 하나 손상이 없었다. 하긴 손상이 있었더라면 도선안전설비 불량으로 벌금 폭탄을 맞았을 테지만.

  대서양으로 빠져나온 후 크리스토발을 뒤돌아봤다.

  이 항구는 조용하지도, 시끄럽지도 않은, 평범한 그리고 선원들의 피로를 풀어주는 주막 같은 곳이다. 온탕도 냉탕도 아닌, 미지근한 물로 피곤한 몸을 감싸주는 통나무 욕탕 같은 곳 말이다.

  오가는 선원들이 떨어뜨려주는 달러로 도시는 활기를 찾는다. 특히 벤저민 프랭클린의 인기는 압권이다. 백 달러 교환가치의 위력 앞에 주모들은 치마를 걷어 올린다. 물론 저고리 고름도 풀어헤치고. 벤저민만 깔고 있으면 해가 뜨고 지고, 지구를 두 바퀴 돌아도 안방에 모셔놓고 왕자 대접을 해준다.

  하긴 조지 워싱턴도 무시하지 못한다. 일 달러가 무슨 힘이 있느냐고? 천만에. 면세 위스키 두 병과 바꿔치기하는 걸 누가 알까.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김선달이라면 이것 한 장으로도 하룻밤 만리장성을 쌓을 수 있다.

 

 

  지난 항차 이야기를 하고 마쳐야겠다.

  뉴올리언스에서 곡물을 싣고 파나마운하를 통과하기 위해 대서양 항구인 크리스토발에 도착했다. 물이 부족한 운하의 건기(乾期)를 감안하지 않고 과적한 탓에 배는 제한 흘수(吃水)를 넘겨버렸다. 벙커를 선수 쪽으로 이송해 배의 꽁무니를 약간 들어줘 트림(trim)을 수평으로 조절했다. 이 작업으로 인해 항구에서 하룻밤 나그네 신세를 지게 되었고, 이튿날 이른 아침 운하 통과 순서가 잡혔다.

  선주에겐 미안하지만 선원들에겐 저녁 나들이를 할 수 있어 좋은 기회였다.

  틈만 나면 선원들은 육상에 발을 들여놓으려고 하는 건 독자들도 잘 이해할 것이다. 운하를 넘으면 기나긴 태평양 항해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마젤란이 남미 끝에서 필리핀까지 가는 데 넉 달이 걸린 데 비하면, 스무 날 항해는 아무것도 아냐.”

 

  누가 기죽이는 소릴 해도, 그땐 그때고 지금은 텔레비전 시대 아닌가. 케케묵은 옛날 이야기하는 사람이 어찌 우리 선원들의 흙냄새 사랑을 알 수 있담? 이광수의 ‘흙’을 매도하지 말란 뜻이 아니다. 선원들이 절규하는 ‘흙 사랑’을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흙은 신묘해서 사람의 냄새도 묻어나오고 동물의 냄새도 묻어 나온다. 지극히 인간적인 것과, 지극히 동물적인 것이 혼합될 때 조화가 주는 힘이 있다. 고상한 철학은 선원들에겐 사치라고.

  통선이 부두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환영하러 나오는 사람은 밤을 안내하는 여성들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마중 나오는 정성은 지극하다. 청산리 벽계수처럼 그냥 지나가버리지 않고 항구에 하룻밤 머물러 주면 지극히 고맙고, 더구나 그녀들의 안내를 받아 따라가 주면 금상첨화로 고맙다. 선원들의 발걸음은 자연히 반겨주는 쪽으로 옮겨지기 마련이다.

  통선장을 나와 시내에 들어서기 시작했을 때 갑판장이 일행을 멈추게 했다.

 

  “2항사님, 일단 여기서 헤어지죠. 인생의 방향이 다르잖습니까?”

 

  갑판장은 송대길의 마음을 읽었는지 조정자 역할을 자임했다. 배라는 빌라에 같이 산 지 여섯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알 만한 것은 다 알아버렸다는 눈치다.

 

  “알았습니다. 아홉 시 통선에 맞춰 여기서 만나도록 합시다.”

 

  주어진 3시간은 각자의 몫이지만 귀선 시간에는 어김없이 이 장소에서 만날 것이다. 같은 배를 타고 가야할 공동운명체니까.

  인생의 방향은 소신에 따르는 것인 바, 일행은 양분되었다. 아브라함과 롯이 ‘좌하면 우, 우하면 좌’식으로 나뉘었다. 한 쪽은 홍등가로, 다른 쪽은 청등가로 향했다. 송대길은 한참 걷다가 주위 불빛이 그렇게 붉지 않다는 걸 알고 어느 길로 들어섰는지 깨달았다. 청등가로 들어선 숫자는 반타작 정도 됐다.

 

  “우리도 스트레스 한번 풉시다.”

 

  송대길의 제안에 세븐 스타 간판이 화려하게 걸린 건물로 들어섰다.

 

  “그런데, 한 가지 약속을 해요. 아무리 약이 올라도 오십 달러 이상은 투자하지 않기로 말입니다.”

 

  통신장의 제안은 굉장히 합리적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흥분됐을 때 지갑에 바람 빠지는 걸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버릇이 있어서.

  세븐 스타나 세븐 바가 쏟아지면 흥분되고, 칩이 빠져나갈 때는 사돈 돈까지 빌리는 버릇이 있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죽은 자식 안듯 빈 지갑만 쥐고 망연해할 것이다.

  통신장이 벤저민 프랭클린(백 달러)과 앤드루 잭슨(이십 달러)을 거머쥔 것은 행운이었다. 잃을 뻔한 행운을 다시 붙잡은 점도 행운이었다. 20달러를 투자해 120달러를 들고 나올 무렵 바로 옆의 슬롯머신에 앉아 있던 아가씨가 허벅지를 올려 보이며 유혹했던 것을 과감히 비켜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으로 봐야 한다고.

  홍등가로 갔던 선원들이 만들어낸 에피소드 또한 들을 만했다. 기관수 한 명은 너무 어린 아가씨를 상대했는데, 속옷이 찢겨져 있어서 십 달러를 더 얹어줬다는 미담. “꼬레아 넘버원”이라는 말을 꼭 이런 데서 들어야 하는 쑥스러움이 있었지만 기분은 내내 괜찮았다는 것.

 

 

  이러한, 너무도 인간적이고 동물적인, 이야기들은 항해중 선원들의 대화에 양념으로 들어갈 것이다.

  선원들은 동전을 문질러야 할 때가 있다. 아니 선원가족들이 더 그럴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박지원의 소설 열녀전의 과부 어머니는 아들의 출세를 위해 정욕을 참으면서 십 년 동안 동전에 글자가 닳도록 문질렀다. 동전은 자살의 유혹을 물리치게 해준 부적이다.

 

 

  배는 크리스토발 방파제를 빠져나와 카리브해로 들어섰다.

  미국에서 자동차를 푼 다음 곡물을 싣고 일본으로 돌아갈 때 파나마 항구에서 또 다른 대화의 양념감을 마련할 기회가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