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현해탄을 건너서

현해탄을 건너서

오선닥 2011. 2. 2. 09:02

배타기 무척 어려운 1970년대 초반.

허나 면허를 가진 해기사의 공급은 피를 말릴 정도로 부족한 시절.

신성한 국방임무를 마친 청년 해기사가 스파링 상대로 일본을 택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

그래도 꿈은 야무져 현해탄을 건너 일본 상선에 승선한다.

일본 출항 전날

유곽에서 분위기 즐긴 것과 선창에 실린 자동차 내의 시체 발견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참.

청년은 처녀항해부터 꼬이는 인생?

 

 

 

현해탄을 건너서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그가 노는 장소는 좁은 육지가 아니라 넓디넓은 바다다.

준비된 대통령이 있는가 하면 준비된 마도로스도 있는 법이다.

 

 

원대한 꿈을 안고 무한대로 펼쳐지는 대양을 누비며 인생 작품을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나가기 위해 부관페리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고 있다.

손에는 여권 대신 선원수첩이 들려져 있고, 이걸 일본 선박에 제출하면 승선이 허락되면서 일정한 급료가 그의 계좌에 송금될 것이다. 물론 달러화 표시 급료가 엔화로, 다시 한화로 환전되어 통장에 꽂히겠지만.

 

 

소니, 내셔날, 도요타… 등 세계가 부러워하는 회사들이 이 섬나라에 꽉 차있다.

그리고 NYK, MOL, K-Line 등 대형 선박회사들도 빽빽이 들어서 있다. 이들의 선박들이 세계로 종횡무진하면서 선원 부족을 촉발해 외국선원들을 끌어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한다.

 

 

송대길이 승선할 배가 소속해 있는 S-Line은 시쳇말로 요즘 뜨는 선박회사이다. 회사의 몸집이 너무 불어나고 있어 S라인 몸매를 유지할 지가 오히려 고민이다. 이렇게 근년에 일본 경제는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고 있어 전쟁 패전국의 역사가 묻혀버린 듯하다.

 

 

“도전할 만한 나라다. 좋은 스파링 상대를 붙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겁 없이 각오를 다졌다.

구슬픈 마도로스 가요가 흘러나와도 도무지 슬퍼할 줄 모른다.

 

 

일찍이 한국 사람들은 배와 관련한 노래에는 눈물을 섞어 노래하곤 했다.

해방이 되기 전에는 ‘목포의 눈물’이 뱃사람을 찐하게 했고, 1951년경 부산의 조선소 기술자에게 시집온 목포 아가씨는 ‘목포는 항구다’로 향수를 달랬다.

1953년 부산과 여수를 운항하던 여객선 창경호가 다대포 앞바다에서 침몰해 330명이 사망한 사고는 ‘여수야화’로 죽은 혼을 달랬고, 1967년엔 군함과 충돌한 여객선 한일호에서 96명이 사망한 사고로 ‘비운의 한일호’라는 노래가 만들어졌다.

1970년 부산과 제주도를 운항하던 여객선 남영호가 전복 침몰하면서 326명이 불귀의 객이 됐을 때는 ‘밤항구 연락선’을 개사해서 “쌍고동에 허공 실어 침몰된 남영호야…”라는 가사로 슬픔을 달랬다.

그 후 1993년 292명이 사망한 서해페리호 침몰사고 때도 ‘님실은 페리호’ 를 개사해 부른 것을 사람들은 슬프게 기억하고 있다.

 

 

눈물 젖은 마도로스 노래 같은 것에 감정이 흔들리지 않기로 송대길은 각오를 팍팍 다졌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기 전에는 인생을 논하지 않기로 다짐한 것과 같이.

 

 

 

 

 

그런 각오를 비웃듯 현해탄은 성질을 부리기 시작한다. 이른 겨울의 바닷바람이 세차다. 선체를 ‘톡톡’ 치는 파도 소리가 점점 커져 ‘퍽퍽’ 하더니 배가 좌우로 요동친다.

 

 

그는 속이 불편해서 선실을 나와 갑판에 섰다. 난간을 붙잡고 찬바람을 쐬니 평정이 돌아왔다. 뱃놈이 배 멀미에 취약해서 되느냐의 부끄러움과 자존심이 뒤섞이는 순간이지만 처음에는 다 그렇다는 선배들의 옛말을 믿고 위로를 받으며 견딘다. 파도에 여섯 달 동안만 시달리면 평생 멀미 걱정은 없다는 것이 그들이 일러준 경험이다.

배가 계속 흔들리자 승객들이 선실 바깥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몸 상태들이 비틀어지기 시작하는가 보다.

 

 

사람들 속에서 한 아가씨가 뛰쳐나온다. 그녀의 입에서 물을 쏟아낸다. 물은 송대길 앞에서 뿜어졌고 그의 윗도리가 정면으로 받았다. 튕겨 나온 물 속엔 시큼한 냄새가 물씬했다.

 

 

“정말 죄송해요. 속이 울렁거려서 그만….”

 

 

배 멀미 중에도 정신을 꼭 붙잡고 있는 그녀의 행동은 본능적이다. 송대길은 버려진 옷을 챙기기 전에 쓰러지려는 여자의 허리를 잡았다. 넘어지면 부딪힐 곳은 철판뿐이다.

 

 

“일단 의무실로 가실래요? 멀미약이 있을 겁니다.”

 

 

송대길이 그녀의 팔을 잡고 의무실로 안내하려 했으나 아가씨는 상태가 심하지 않다는 표정을 짓는다.

 

 

“괜찮아요. 객실에 가서 잠시 누워 있을래요. 이렇게 약해 보이려고 일본으로 가는 것은 아닌데….”

 

 

강해지려는 것도 그녀의 본능인 것 같다.

 

 

“뭣 때문에 일본에 가시는지 모르지만 앞으로 이보다 더 험한 상황을 만날지 모릅니다. 외국에 나가는 것이 만만치 않아요.”

 

 

송대길이 외국생활에 경험이 있어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걸 많이 들었다. 그는 은연중 여자에게 어른스런 조언을 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일본으로 건너가는 그녀의 각오가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이다.

잘사는 나라 일본이 그녀에게 커다란 희망을 줄지 모른다. 그러나 태어난 나라를 떠나 외국으로 가는 길은 가시덤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여행 보따리가 있는 곳은 삼등 여객실이다.

자리에 눕자 여자의 창백한 얼굴은 조금씩 건강을 머금기 시작한다. 의무실에 가서 멀미약을 갖다 줬다. 이렇게 친절해도 되는가에 그 자신도 놀란다. 상선학교 시절 배웠던 선박위생 요령을 실천했을 따름이다. 응급처치엔 남녀 구분이 따로 없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얼굴이 그녀의 바탕임이 서서히 드러난다. 그 바탕이 되돌아오고, 그녀는 대답 대신 질문으로 이어진다.

 

 

“형제님도 일본에 가시나요? 혹시 유학?”

 

 

형제님이라는 호칭은 특이하다. 교회 같은 곳에서 사용하는 용어인데.

 

 

“아뇨, 전 배 타러 갑니다. 일본 배.”

 

“마도로스 말인가요? 멋있네요. 일본 말구 다른 나라에도 가시나요?”

 

“일 따라 사람이 여기저기 다니듯 화물 따라 배도 이 나라 저 나라 돌아다니죠. 간혹 풍랑에 밀려다닐 때도 있을 테고요.”

 

“힘들 땐 가족이 그립겠네요.”

 

“걱정하시는 부모님을 많이 떠올리겠죠. 그러나 별수 있나요. 돈 버는 욕심으로 버텨나가야죠.”

 

“형제님은 돈보다 다른 힘으로 버텨나가실 것 같아요. 가령 특이한 목표라든지…. 기도할게요.”

 

 

아뿔사!

 

송대길의 속내가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것처럼 투명해지고 말았다. 아가씨는 공원 근처 어디선가 돗자리라도 깐 경험이 있단 말인가?

여자는 듣고 말하면서 남자의 양복을 쳐다본다.

 

 

“망친 양복은 언제 세탁해드리죠?”

 

“세탁이 아니라 한 벌 사주셔야 되겠어요. 전 단벌신삽니다.”

 

“배에서 근무하실 때도 양복 입으시나요? 전 유학생 비자로 왔어요. 그런데 학비를 먼저 마련해야 돼요. 양복 사드리기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괜한 농담이고요. 유행 지난 양복이라 승선근무 마치고 귀국하는 날엔 퇴물이 돼 입지도 못할 겁니다. 참, 학비 마련하신다고 했는데, 일본은 아르바이트 자리가 좀 있을 거예요. 잘사는 나라엔 일자리도 많으니까.”

 

“그럴까요. 아는 언니가 도쿄 긴자에 있는데 일단 그리로 찾아오라고 하네요.”

 

 

 

 

 

그녀는 시모노세키에서 내려 신칸센을 타고 갈 것이라고 한다. 신칸센을 타고 가는 중에 창밖 일본 섬나라 풍경을 좀 감상하라고 그 언니는 말했단다.

어느 변두리 전문학교의 디자인학과에 등록했다는 것이 언니가 일러준 이야기의 요점이다. 그녀는 꿈의 이유를 구태여 숨기려고 하지 않는다.

 

 

“달러든 엔화든 외화를 버는 것은 다 애국하는 것이죠. 제가 간호원 자격증을 가졌다면 독일로 갔을 거예요. 결국 디자이너로 꿈을 바꾼 거죠. 7년 전 앙드레 김도 파리에서 패션쇼를 했잖아요. 전 일본에서 디자인 공부를 해서 패션쇼를 열고 싶어요.”

 

 

야무진 꿈에 송대길은 감탄한다.

 

 

“우리 대통령은 외화를 벌어오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애국자라고 했습니다. 저도 해외취업선원으로 달러를 벌려고 해요. 우린 둘 다 애국자네요.”

 

 

해외취업은 각 개인의 주선으로 이뤄진다. 체계적으로 해외취업을 지원하는 국가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해외개발공사가 설립된 것은 몇 년 후의 일이다. 국민의 해외취업 인력을 확산하고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관리할 목적으로 1975년에 설립돼 16년간 활동하다가 1991년 해체되어 한국국제협력단으로 대체된 후 의사, 전문가, 태권도 사범, 해외봉사단 파견, 산업연수생 초청, NGO 지원, 개발조사 및 물자공여 사업 등을 수행한다.

 

 

“정말 그래요. 나라가 잘 살아야 해요. 몇 년 전 박 대통령 부부는 파독 광부들과 간호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애국가를 부르다가 목이 메었다고 하잖아요.”

 

 

한국에서 독일로 간 광부들은 천 미터 지하 광산에서 구슬땀을 흘렸고, 간호사들은 알코올 거즈로 시체를 닦았다. 그렇게 벌어들인 마르크와 선원들이 송금한 달러로 고속도로를 만들고 정유공장과 제철소를 건설하곤 한다.

1973년 오일쇼크 후에는 중동 건설노동자들이 송금한 외화까지 합쳐 한국의 경제를 일으키는 종자돈이 되기도.

 

 

이야기하는 중에 배는 목적지 시모노세키에 도착해 사람들은 하선하기 시작한다.

멀미 아가씨에겐 S-Line 회사명만 적어줬다. 양복을 망친 것도 인연이라면서 연락처를 원했기 때문이다. 회사에 전화해서 선원명부에 이름을 확인하면 알려줄 거란 말을 남기고 여자의 이름을 메모했다.

그녀의 탄생은 십이지의 첫 번째 동물의 해라 식복이 있어 굶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송대길이 자신의 머리를 회전시켜 그녀의 나이를 쥐띠에 맞췄다.

 

 

이름 도자인

나이 24세

 

 

 

 

 

***

 

 

부관페리는 시모노세키에서 송대길을 떨어뜨려놓았다.

혹독한 훈련을 위해 낭떠러지에 던져진 새끼 사자처럼 이제부터 생존법을 배워나가야 한다. 가문에 바다를 건너는 방법을 배운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고 자부한다. 일제 때 강제로 일본에 끌려간 어른들을 제외하면 외국 땅을 밟아본 사람은 그가 처음이다. 그러니 가문을 대표해서 외국 땅을 구두 밑에 깔았다는 자부심.

 

 

신칸센을 타고 오사카에 도착하자 선원교대 전문수송업체가 밴에다 그를 싣고 오사카 항으로 안내한다.

외항에는 많은 배들이 앵커를 박아놓고 대기하고 있다. 짐을 풀려고, 혹은 실으려고 차례를 기다리는 배들이다.

이들 중 한 척이 송대길을 맞이할 것이다.

 

 

통선을 타기 위해 항만세관을 통과할 때 여자 세관원이 몸을 싹 훑어 내리는 것은 어쩐지 기분이 쩝쩝하다. 선원의 신분으로 첫 배에 오를 사람을 여자가 먼저 몸을 댄다는 것이 좀 그렇다는 생각이다.

 

 

배의 외관이 아름답다. He가 아닌 She는 곡선미뿐만 아니라 투피스 색깔도 아름답다. 에폭시 페인트가 햇빛을 받아 윤기가 흐른다.

 

 

그가 승선할 히노데마루(日出丸)는 미국 포틀랜드에서 곡물 5만톤을 싣고 입항해 하역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태양이 떠오르는 선명(船名)은 반드시 미래에 희망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배에 올랐다. 낭만을 미끼로 시작한 선원 직업이 먹는 문제 해결 수단의 현실로 들어왔다는 점을 실감하기 시작한다.

 

 

1972년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부산 조선공사에서 1만톤짜리 벌크선을 진수했을 때 정부는 여고생까지 동원해서 환호성을 울리며 박수를 쳤다. 일본은 이미 30만톤짜리 유조선까지 만드는 해운 초강대국이었지만 한국으로선 이만한 배도 대단한 것이었다.

 

 

선주인 S-Line은 일본의 경제성장의 흐름을 타고 몸집을 키워나간다. 일본 정계 2인자 고모토가 뒤를 봐준다는 소문도 있다. 덕분에 회사의 덩치를 키우는데 일정 부분의 역할을 한다고 일본의 여당은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다.

일본 경제성장은 대량의 산업 물동량 이동을 요구하고, 이에 편승해서 S-Line은 원료와 제품을 실어 나르기 바쁘다. S-Line의 선박량이 한국 총 선박량의 두 배가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세계적 대해운회사에 취업되었다는 자부심이 풍선처럼 부푼다.

 

 

“선장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통선에서 사다리를 타고 본선에 올라갔을 때 현문 당직사관이 송대길을 안내한다. 신임 이등항해사가 부임했다고 보고하자 선장은 송대길의 손을 꽉 잡는다.

 

 

“회사로부터 연락받았네. 환영해요. 능력 있는 해기사가 온다는 얘기는 들었다만, 이렇게 멋쟁이가 온다는 얘긴 없었는데……. 잘해 봄세.”

 

 

허리 굽힌 선장이 매우 겸손하다는 인상을 각인하려는 순간, 선장의 허리는 더 이상 펴지지 않는 걸 깨닫고,

‘아, 원래 허리가 안 좋으시군’

으로 선입견을 수정했다.

20년 정도의 대선배라 해도 40대 중반의 마도로스다. 허리 접힐 나이 하고는 먼 거리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화물 체크를 위해 선창을 오르내리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허리를 좀 다쳤다고 한다. 그래도 달러를 송금하기 위해 몇 년은 더 불편한 채로 해상생활을 해야 한다고 고집한다.

 

 

가방을 풀며 한국에서 가져온 우편물을 내놓으려는 순간 옆에 있는 선원이 잽싸게 낚아챈다. 혹시 자기에게 온 편지라도 있으려나. 그러나 곧 고개가 축 처진다. 언제나 줄무늬 봉투에 편지가 들어 있곤 했는데 보이지 않았으니.

송대길의 인사를 받은 기관장은 멀쩡하게 생겨먹은 친구가 육지에서 벌어먹지 괜히 바다로 뛰어들어 생고생을 하나, 라고 동정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인사가 끝난 줄 알고 나오는 송대길을 선장이 걸음을 잡는다.

 

 

“상선 경험이 처음이라고 하니까 6개월은 삼항사 근무를 하게. 대신 이항사 업무는 삼항사가 해줄 걸세.”

 

 

'삼항사 급료를 받는 것은 아니죠?' 하고 물어보려고 하다가 그만뒀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짐작은 했으나 초짜에 대한 깊은 배려다. 일은 순서대로 배워나가야 한다. 해군 함정 근무 경력밖에 없는 송대길로서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로 답했다.

 

 

본선의 삼등항해사는 승선 경력은 많으나 아직 이등항해사 면허가 없다. 만약 면허증이 있었더라면 섹스탄트(六分儀)가 부채꼴이란 걸 몰라도 승진했을 것이다. 휴가가자마자 면허시험을 칠 것이라나. 지구상 돌아다녀야 할 배는 많지만 해기사가 부족하니 빨리 면허를 취득하는 게 국익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본선은 뒷부분에 선실이 있다. 본선처럼 곡물을 싣는 대형선은 선미 측에 있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선실에는 30명가량의 선원이 거주한다. 송대길이 4년 전 실습선으로 잠시 승선했던 해운공사의 제2차 세계대전 퇴역 화물선엔 50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다. 이제 선원의 숫자는 도마뱀 꼬리 잘려나가듯 야금야금 줄고 있다. 국제경쟁력이 바로 꼬리를 자르는 칼이다.

 

 

배에서 여자가 밥을 해주리라고 기대는 사치다.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밥공기는 보지 못할 것이다. 지금부터 남자만의 세계에서 여자를 가장 잘 잊을 수 있는 방법을 배워나가야 한다.

 

 

하선 준비가 된 전임 이항사는 송대길에게 자기 방을 비워주면서 귀국길에 올랐다. 필요한 인계 사항은 삼항사가 받아 놓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이항사인 송대길은 삼항사와 반 년 간 업무를 스와프한다. 애인 바꿔치기가 아닌 업무 바꿔치기다.

 

 

넘치는 정욕을 닦아내기 위해 전임자의 침대 시트가 어지간히 시달림을 당했다는 생각이 든다. 군데군데 희끗희끗한 자국들이 산증인이다.

 

 

새 시트로 바꾸기 위해 침대 매트를 들추니 화려한 책 한 권이 나온다. 비닐 책이다. 호기심을 차단하기 위해 비닐로 덮은 책. 겉을 뜯자 화려한 화보가 진열된다. 이 좋은 책을 놓고 하선한 것은 두 가지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챙기기를 잊어먹었든지, 아니면 후임자를 위해서 예의로 남겨놓았든지 등. 그러나 어차피 한국 세관에서 압수될 물건이니 그냥 뒀을 수도 있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가 되면 이 책이 향수를 문지르는 데 나름대로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고.

 

 

침대 위 스탠드 밑에 엽서 하나가 삐져나와 있다. 빼어 보니 남녀가 찍은 사진. 왼쪽에 선 여자가 예쁘다. 오른쪽 남자는 방금 전에 하선한 이항사다. 이것은 분명 하선 보따리 챙길 때 잊어먹은 것 같다. 일 년 동안 배에서 청춘을 김장 담가두느라고 얼마나 자신과의 싸움을 했을까. 잔인한 인내심이 소진되었을 것이다.

 

 

침실 위 벽에는 커다란 달력이 걸려 있다. 그림이 있는 공간에는 기모노를 입은 일본 여자 그림이 달마다 다른 얼굴을 한다. 달력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얼굴에 호기심을 느끼겠지만 곧 싫증이 나버릴 것이다. 그림의 떡이 아니라 달력의 떡일 뿐일 테니까.

 

 

 

 

 

 

***

 

 

곡물은 사흘 만에 부두 사일로에 들어가고 여섯 개의 선창은 빈 공간을 드러낸다. 풀장의 물을 뽑아낸 것처럼 선창은 휑하니 비어졌다.

 

 

오사카에서 곡물을 푼 배는 요코하마를 향해 출항했다. 자동차를 선적하기 위해서다. 송대길에겐 마도로스 신고식 항해에 해당한다. 배 꽁무니가 만들어내는 뱃길 흔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의 몸에는 소금기가 조금씩 베이기 시작할 것이다. 바다의 짠맛을 봐야 진정한 마도로스로 만들어지니까.

 

 

항해중에 선창을 청수로 말끔히 씻어내고 자동차 적재를 위한 준비를 한다. 선창 천장에 접어뒀던 자동차 갑판(Car Deck)이 아코디언처럼 내려 펼쳐져 주차 갑판이 만들어진다.

 

 

요코하마에 도착하자 닛산 자동차가 부두에 가득히 쌓여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한 시절 일본에서 제1위였던 자동차 회사가 도요타에 밀려 두 번째로 내려앉았다. 한 번의 파업으로 지옥까지 갔다가 겨우 2인자가 된 것이다.

 

 

부두의 자동차가 선내 화물크레인(Cargo Crane)에 의해 한 대씩 한 대씩 선창으로 옮겨진다. 선창에 내려진 자동차는 드라이버들의 기민한 운전으로 좌우 10센티, 전후 30센티의 공간을 남겨두고 자로 잰 듯 주차된다. 컴퓨터가 따로 없다. 자동차전용선이라면 선박의 똥구멍이나 옆구리 램프(경사판)를 통해서 운전해 들어갈 것이지만 곡물/자동차 겸용선은 크레인으로 자동차를 들어 올려서 싣는다.

 

 

 

 

 

***

 

 

“이항사님, 대리점에서 쪽지를 남겨놓고 갔습니다.”

 

 

하역을 마치고 저녁식사 테이블에 앉으려고 할 때 갑판수가 송대길에게 쪽지를 전해준다. 쪽지엔 이렇게.

 

 

“부두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꼭 나와 주세요. - 도자인 -.”

 

 

부관페리의 멀미 아가씨다.

일본에 온지 닷새밖에 되지 않았는데 여기 요코하마까지 오다니, 믿기지 않는 상황이다.

일항사에게 외출을 알리고 부두 정문으로 나왔을 때 승용차 한 대가 대기해 있고, 앞좌석에 여자 둘이 타고 있다. 송대길을 보자 도자인이 문을 열고 미소로 인사한다. 도자인은 운전석에 있는 여인이 자신을 일본으로 초대한 언니라고 소개한다. 언니라는 여인은 그를 쳐다보며 미소를 짓는다.

 

 

“자인이가 고마운 오빠라고 자랑하던 총각이군요. 타세요. 요코하마 시내 구경시켜 드릴 게요.”

 

 

언니는 삼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춘향이형.

얼굴형과는 달리 노련한 운전 솜씨가 일본 체류 경력을 잘 말해준다.

 

 

노래로만 듣던 ‘블루라이트 요코하마’의 네온사인이 자동차 불빛과 교차하면서 눈을 현란하게 한다. 화려하고 어지러운 불빛이 부산의 광복동 남포동과는 품질이 다른 것 같다.

갑자기 그의 말수가 줄어들고 마음이 어쩐지 쫄아드는 느낌이다. 이런 상태를 알아챘는지, 언니는

 

“놀라지 마세요. 납치하는 건 아네요. 국빈으로 모시는 거예요.”

 

 하고 룸미러를 보며 웃음을 보인다.

 

 

차는 시내 중심가를 지나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더니 약간 기울어진 언덕길 옆의 한 유곽 앞에 섰다.

안에서 건장한 남자가 나오더니 차를 파킹해 준다. 스포츠머리가 사람을 또 긴장시킨다. 안내된 방에 앉았을 때 도자인이 까칠한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입을 연다.

 

 

“형제님, 아니 대길 오빠, 이런 곳 처음이시죠? 저도 처음예요. 오늘 일본 음식 좀 즐겨보려고 해요.”

 

“예… 처음입니다만. 일본에 이런 곳도 있군요.”

 

 

동병상련의 위안을 느낀 송대길은 유곽의 천장을 보다가 작은 연못이 있는 정원으로 눈길을 옮긴다. 정원 한쪽 옆에 석상이 있고, 석상 옆에 기다란 일본도가 꽂혀 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일본 무사들의 역사가 절여있는 칼처럼 느껴진다.

언니가 먼저 좌석을 잡고 맞은편에 송대길과 도자인이 앉는다. 두 사람을 앞에 앉혀놓고 훈시라도 하려는 듯 언니는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이곳은 내가 자주 오는 곳인데 유곽 아저씨들이 조선 사람들이라 마음이 편해요. 도쿄에서 삼십 킬로도 되지 않아 지리적으로도 가깝고요. 여기 조리장의 솜씨가 아주 끝내줘요.”

 

 

한국 사람이 아니고 조선 사람이라? 조총련 식당이란 말인가? 조총련 접촉은 보안법 위반이라는 것이 선원 안보교육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사못이 나무에 박혀 들어가듯 소굴이라는 구멍으로 조금씩 파고드는 느낌이 든다.

 

 

송대길은 일부러 태연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면서 언니와 도자인 중 어느 쪽이 예뻐 보이는지 힐금힐금 눈길을 주며 시선의 추를 흔들었다. 오늘 저녁 따라 둘 다 미인으로 보이는 착시현상이 따뜻한 사케가 들어가서부터 더욱 심해졌다.

약간 취기가 오르니 세 사람이 여기서 왜 만나는 것인가, 그는 궁금해진다. 영화에서 흔히 간첩의 그물망이 이런 식으로 쳐지는 것도 보았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본능이 그의 몸을 꼿꼿이 세웠다. 궁금증과 불안이 뒤섞여 혼돈이 지속된다. 그러면서 황홀해지기도 한다.

 

 

“언니께서는 너무 미인이십니다. 혹시 미인대회에라도 나가셨나요?”

 

 

송대길의 착시현상이 도를 넘는다. 아마 배 타러 가기 싫은가 봐. 유곽의 기둥을 끌어안고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충동이라도 생겼나. 도자인의 질투어린 얼굴이 옆눈길에 비친다. 언니는 자신의 이야기에만 빠져있다.

 

 

“소녀 때, 한국에 있을 때는 그런 소리 듣긴 했어요. 그런데 일본에 오니 살아가는 일에 매달려 그런 것은 다 의미가 없어졌어요. 자인은 나와 다르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무슨 뜻인지 모른다.

어쨌든 한국인이 일본에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좋은 일자리는 어렵고 재일교포들은 유곽이나 파친코(Put in Coins), 상업 등에 종사할 수밖에 없다.

파친코 가게는 주로 교포들이 운영한다. 특히 조총련 소속의 북한 동포들이 야쿠자와 연계해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교포 야쿠자의 활약이 두드려진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유곽 또한 야쿠자의 활동무대이자 쉼터.

그렇다고 파친코나 유곽 등을 무서워 할 일은 아니다. 야쿠자는 일반인들에게는 해를 잘 입히지 않는다. 여론이 나쁘면 공권력으로부터 일망타진을 당할 수 있으니까.

파친코의 연간 매출은 일조 엔(30년 후인 2000년대엔 30조엔). 이중 많은 액수가 북한으로 들어간다.

분위기는 언니가 계속 잡아나간다.

 

 

“양복을 망쳤다고 자인이 계속 미안해하는데 이제 대길씨의 신체 사이즈를 봐뒀으니까 양복 하나 해놓을게요. 다음 일본에 오면 연락해요.”

 

 

언니의 눈이 송대길의 상체를 훑어본다. 그의 어깨에 걸친 점퍼가 힘이 있어 보인다. 선이 굵은 체격이다. 바다 건너 화류계 15년 동안 이렇게 윤곽이 뚜렷한 남성을 만난 적이 없는 듯 시신경을 확장시켜 쳐다본다.

 

 

언니의 이름은 민예다. 성민예.

도자인의 아버지와 성민예의 아버지는 친구간이다. 친한 사이만큼 낚시도 자주 같이했다. 그러던 그들이 거제도 부근 바다낚시에 나갔다가 조난을 당했다. 해양경찰에게 바람이 샌 그날 왜 바다낚시를 금지시키지 않았냐고 항의할 수도 없다. 여태 그들은 한 번도 신고를 하고 낚시한 적이 없었으니까.

 

 

아버지들을 잃은 이후로 민예와 자인은 벌꿀로 발라놓은 것처럼 끈끈한 사이가 됐다.

조총련계 사람들과 접촉이 잦다는 이유로 민예는 거류민단으로부터 항상 유의 인물이었다. 그렇다고 사상 관계에 연루된 적은 없다. 다만 옭아맨다면 그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수는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덫에 걸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가본 적이 없고 가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은 자신도 모르는 실수가 중앙정보부의 조사감이 될까봐서다.

자인을 일본으로 불러들인 것은 서로 의지하며 살자는 뜻에서다. 화류계 길을 걷지 않도록 디자인 공부를 시키겠다는 계획은 민예의 순수한 뜻이다.

 

 

송대길이 자신의 옷차림을 한 번 내려다본다.

 

 

“사실 배에서는 양복이 필요 없지만 사 주신다면 값을 치러드리겠습니다. 오늘 저녁 대접은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 기회엔 제 월급에서 나오는 달러로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고맙네요. 달러로 미제 스테이크 사주세요.”

 

 

춘향이 웃음이 아니라 향단이 웃음을 지으며 민예 언니는 좋아한다. 자인이 따라 웃으며 송대길을 보며 대화에 끼어든다.

 

 

“저도 초대해주세요.”

 

“레스토랑에 스테이크 재고가 있으면 물론이죠.”

 

“제 것은 손바닥보다 작아도 돼요. 세계 식량 환경을 위해서….”

 

 

두 남녀의 대화에 민예 언니는 가만있지를 못하고 김밥의 옆구리를 터뜨린다.

 

 

“식량 환경을 위해서가 아니라 양복 물어주기 싫어서겠지. 조만간 부관페리에서 멀미할 일은 없을 테니까.”

 

“언닌, 왜 남의 아픈 데를 건드려요? 겨울에 현해탄 한 번 건너보세요. 마도로스 오빠도 속이 안 좋다고 했을 정도였으니까….”

 

 

셋은 한바탕 웃었다.

기분 좋은 밤. 별빛이 섞인 밤공기가 차갑게 유곽 정원에 내려앉는다. 송대길은 두 손바닥으로 밤공기를 담아 얼굴에 비볐다. 상쾌했다. 도자인 역시 얼굴을 손바닥으로 비벼댄다. 그녀에겐 일본은 낮선 땅이다.

유곽 정문에 시커먼 차가 대기했다.

 

 

유곽의 스포츠머리 아저씨가 운전석에 앉고, 그 옆에 민예 언니가 앉는다. 송대길과 도자인은 뒷좌석에 앉았다. 차가 출발하자 앞좌석 두 사람은 일본말로 대화하기 바쁘다. 송대길과 도자인은 앞 사람들의 대화에 대해 알아듣기를 포기했으나, 대화의 색감이 그들 사이가 특별한 관계임을 암시해준다. 대화를 멈춘 언니.

 

 

“둘의 간격이 너무 좁은 것 같아. 서로 정들면 어쩔려구 그래.”

 

 

거울에 비친 뒷좌석을 보고 언니는 젊은이들의 대화에 쉼표를 삽입한다. 그러곤 안내방송 모드로 바뀐다.

 

 

“시내 중심가를 지나서 해변도로를 따라 드라이브할 테니 요코하마 야경을 즐겨봐요. 조금 앞에 보이는 곳이 남자들의 휴식처 도루코 타운이고, 로타리 옆 네온사인 건물엔 성인영화관이 있고, 저기 큰 건물 뒷길엔 스트립쇼무대가 있고… 또 뭐가 있더라?”

 

 

언니의 안내방송이 매끄럽지 못하자 스포츠머리 아저씨가 바통을 이어 받는다.

 

 

“바로 오른쪽엔 고고클럽이 있고, 저기 길 건너편 뒷골목엔 먹자골목이 있지. 그리고…”

 

 

언니가 아저씨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으며, 시내 오리엔테이션은 이 정도로 끝내고, 저기 미쯔코시 백화점을 지나 부두 길로 가자고 제안한다.

시내 오리엔테이션을 왜 화려한 장소에만 치중하느냐고 송대길이 의문을 표시하자, 언니는 '먼저 선원들을 품어주는 곳들이니까'로 대답한다.

차 안은 약간의 휴지시간에 들어간다.

송대길과 도자인은 몇 시간 동안 옆에 있었는데도 지루함이 틈에 끼이지 않는다. 이러다간 송대길이 배 타러 못 가겠다는 투정이 나올 만하다. 사춘기 이후 여자와 적절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왔는데 한 번에 무너질 것 같은 느낌.

 

 

 

 

 

***

 

 

자동차는 배가 접안해 있는 닛산자동차부두에 도착했다.

송대길이 작별의 인사를 하고 혼자 배로 올라가려는데 도자인이 뒤따라온다. 언니가 부두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으니 잠시 배 구경하고 오겠다는 것이다. 남자의 방에 향수를 뿌려놓겠다는 말도 덧붙인다. 둘의 동행을 본 사람은 당직선원뿐이다. 초짜 선원이 늦은 밤 여자를 동행한 것은 남 보기도 좀 그렇다.

 

 

“호텔방 같네요. 침대가 싱글이라 가족을 데려오지는 못하겠고…."

 

"한국 선원은 아직까지 가족 동승은 불가해요."

 

"망망대해에선 꽤 심심하겠다."

 

 

방 안을 둘러보며 신기한 듯 침대 모서리를 눌러보기도 하는 도자인. 벽에 걸린 달력에 기모노 입은 여자 그림이 그녀의 시선에 잡힌다. 이런 그림은 한국 선원의 방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내년엔 색동저고리 여자 그림 달력을 갖다 주겠다고 친절함을 보인다.

 

 

알코올이 몸 안에 퍼졌는지 두 사람의 얼굴은 불빛 아래서 홍조를 띤다. 알코올 농도가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이성이 남아 있어서인지 남녀는 서로 몸을 대지 않았다.

입술은 물론 예의바르게 대화하는 데만 사용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인삼차가 테이블 위에 놓이자 입술은 불가피하게 차를 마시는 데는 사용했다. 끝내 키스의 타이밍을 찾지 못하고 둘은 시계를 쳐다본다.

 

 

"언니를 오래 기다리게 할 순 없어요. 갈게요. 안전한 항해 기원해요."

 

 

그녀는 일어나면서 더 할 말이 있다는 듯 가까이 온다.

 

 

"언니는 참 좋은 사람인데, 주위 사람들이 좀 이상해요. 대길 오빠, 다음 일본에 왔을 때는 조심하셔야 될 거예요. 한국엔 유신헌법으로 긴장돼 있고, 일본에선 납북 사건이 자주 있다고 해요. 종종 선원들에게도 접근한다는 애기도 있어요."

 

"자인씨도 조심해요. 디자이너로 성공하는 모습 보고 싶네요."

 

“노력할게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있었다. 그러나 방문을 열기 위해 잡았던 손을 놓았다.

현문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는 자인의 뒷모습이 어쩐지 불안하지만 송대길은 그녀가 어수선한 일본 생활에 곧 적응할 것이라고 믿는다.

 

 

 

 

 

***

 

 

"선장님, 시체를 그대로 둘 순 없잖습니까? 냉동고에 넣어두든지 해야겠습니다."

 

 

시체 한 구를 앞에 놓고 선내가 대공황(大恐慌)에 빠졌다. 적하(積荷) 책임자인 일항사가 선장의 지시를 재촉했다. 시체가 화물에 해당한다는 뜻은 아니다. 선장은 자신이 해기사이지 형사가 아니지 않느냐고 일항사에게 말하고 싶을 따름이다.

 

 

“일단 본사에 보고를 하고 지시를 기다려야지….”

 

 

요코하마를 출항한 후 닷새 만에 선수 선창에 실린 자동차 안에서 남자의 사체가 발견된 것이다. 흰 스즈키 드라이버 복장을 한 남자가 승용차 뒷좌석에 누운 채 죽어 있다. 삼항사와 갑판장이 각 선창을 돌아다니며 자동차 적재 상태를 점검하던 중에 발견됐다. 승선경력 15년 된 선장도 이런 일은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호주나 뉴질랜드에서 소나 양 등 살아있는 동물은 운송해봤으나 사람의 시체를 운반하리라고는 상상해 보지 못했다.

처음 겪는 충격적인 사건에 선장과 일항사는 초보적인 수습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선원들도 웅성웅성한 분위기다. 더구나 처녀항해를 하는 송대길에겐 불안하기 짝이 없다. 출항 전날 밤에 여자를 데리고 온 것과 연관이 있는지, 불길한 생각까지 든다.

 

 

일본 본사에서 온 전문.

 

 

시체는 비닐봉지에 싸서 냉동고에 보관하라. 지문이 묻지 않도록 장갑을 끼라. 현장은 있는 그대로 보존하라. LA에 긴급입항해서 대리점의 안내에 따르라.

 

 

회사의 지시대로 조치가 취해졌다. 서늘한 날씨 탓인지 부패의 정도는 심하지 않다. 옷이 입힌 채 비닐에 싸여지는 순간, 스즈키 복의 가슴 지퍼 상단이 반쯤 열려 있는 곳을 통해 왼쪽 어깨에 문신 하나가 보인다.

‘吉原’

요시하라(吉原)? 송대길의 기억에 들어오는 글자다. 사람의 이름? 아니, 요코하마의 유곽 이름과 같다. 그럼, 죽은 사람은 유곽과 관계가 있단 말인가? 아닐 거야. 우연의 일치이겠지.

그는 사체와 유곽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어떠한 상상도 거부하기로 했다. 수사관들이 알아서 수사하면 된다. 아는 체하는 것 자체가 일을 뒤틀어 놓을 것이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일도 많다만…’

 

 

다른 많은 할일을 제켜놓고 마도로스가 되었던 게 아닌가. 그러니 마도로스의 직업에 방해되는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차렷’자세로 잘 싸인 사체는 냉동고로 옮겨졌다. 보관된 식품은 다른 냉동고로 옮겨놓은 상태다. 조리사들에게 겁줄 일이 아니니까.

 

 

저녁식사 후 사관회의가 열렸다. LA 항구 도착시 당국의 조사에 대비한 준비 모임이다. 각자는 온갖 상상력을 동원했다.

 

 

- 자동차 적재 중에는 여러 드라이버들이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차 뒷좌석에 사체가 있는 것은 눈에 띄기 쉽다. 트렁크 내 숨겨뒀다가 나중에 차내 좌석으로 옮겼을까?

- 트렁크에서 옮겼다면 인부 드라이버 혹은 외부 사람, 아니 선원에 의해서? 옮긴 때는 인부들이 뜸한 하역 종료 시점?

- 문신 ‘吉原’이 단서가 될 수 있나?

- 스즈키 복은 드라이버들의 작업복인데 사망자는 인부 혹은 외부인?

 

 

선박 역사상 이런 황당한 사고는 처음이다. 전혀 불가능한 일 같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S-Line은 벌집 쑤셔놓은 것처럼 야단이다. 세계 제일의 자동차 수출항 요코하마의 항만청과 자동차 회사 닛산은 물론, 자동차 하역회사와 세관 또한 난처한 입장에 놓여 있다.

LA에 내려지는 사체는 일본으로 옮겨져 부검을 받게 될 것이다.

 

 

사망자의 상태와 조금이라도 관계되는 사람은 선내에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송대길은 잘 안다. 문신 하나 때문에 자신을 향하여 설록홈즈가 되어 범인을 찾아내라고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것 같다.

 

 

한편 일본 신문은 대서특필하고 있다.

 

“일본인 납북을 도운 야쿠자를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