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땅 극동러시아’
이제 대단원의 막을 내릴 때로군요
극동러시아 진출에 참고가 됐음 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28회
(마지막회)
옥차브르스키 마을
지구 연어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캄차카.
페트로에서 캄차카 반도를 가로지르는 이스카랴 강을 따라 오호츠크해가 닿은 곳, 강과 바다가 만나는 부분이 옥차브르스키 마을이다.
강은 계절에 상관없이 늘 뭔가에 덮여 있다. 겨울에는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고, 여름에는 연어로 덮여 있는 게 이스카랴 강의 모습이다.
마을에서 트럭을 타고 한참을 가면 정착촌이 있다. 여기에 연어 가공공장이 있다. 집앞 해변에서는 그물로 연어와 킹크랩을 잡고, 잡은 연어는 덕장에 한 달간 말린다. 그물에 걸려온 킹크랩은 암컷은 놓아 주고 수컷만 잡는다.
“한번 키를 재보겠습니다. 가만 서 계세요.”
팔뚝이 무섭게 건장한 마을 어부가 킹크랩 한 마리를 들고 와서 집게발을 벌리고는 사공박의 옆에 세웠다.
“아니, 길이가 키와 똑 같네.”
어이없이 큰 킹크랩에 홍기연이 놀라고 말았다.
오호츠크 바다 쪽 옥차브르스키 마을은 연어가 몰려드는 강 어구에 있어 연어의 고장으로 여러 개의 연어 가공공장을 가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마을의 생계는 고기잡이와 게잡이가 된다.
나이든 마을여인은 캄차카의 탄생 신화를 재미있게 이야기한다.
“신이 날아가다가 힘이 빠져 바다에 떨어졌는데, 살기 위해 바다 밑의 땅을 잡아 당겨 태양을 향해 올라가더니 캄차카가 생겨났지요.”
그래서 높은 산이 많고, 신이 입김을 불어넣어 화산과 툰드라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마치 창세기 천지 창조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자연 보호구역 강, 연어잡이는 20km 나가야 함
▲연어가공 공장
▲강 양쪽에서 그물을 쳐서 연어를 잡는다
쿠릴 호수
강의 상류에 있는 쿠릴호수는 러시아의 9개 세계자연보호 유산지역중 하나로 야생곰이 가장 많이 서식하는 지역이다. 곰이 많다는 것은 먹거리 물고기가 많다는 뜻이다. 이곳에서 곰들이 연어와 숭어들을 잡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곰이 정말 많은가 봐요. 안전 표지판이 여기저기 보이네요.”
홍기연은 안전요원이 옆에 있는데도 경계심이 발동했다.
관광객은 항상 안전한 장소에 머물러야 한다. 전기 철조망으로 울타리가 처진 지역 내에 있어야 한다. 울타리 밖에 나갈 때는 총을 든 레인저의 보호 아래 단체로 철조망 밖을 나가 곰들을 관찰한다.
빵과 잼과 소스와 커피로 아침을 때운 배는 꼬르륵 소리를 낸다. 헬기가 쿠릴 호수에 도착하자 먹거리부터 찾는다. 혹시 만날지도 모르는 곰과 싸우려면 에너지를 비축해야 한다고 이유를 대야 하나.
투어회사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는 야생곰들이 연어 잡는 것을 관찰하기로 했다.
“쿠릴호수와 이로스키화산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읍시다.”
사공박의 제안에 홍기연이 조용히 그의 옆에 섰다. 두 사람은 같이 있는 일에 익숙해져 이제 눈빛만 봐도 다음 행동을 예측할 정도다.
사공박 뒤로는 화산, 홍기연 뒤로는 호수가 보이도록 구도를 잡았다. 화산과 호수를 함께 관광했다는 인증샷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뜻인가.
여기에 곰이 정말 많이 산다. 오죽하면 사람보다 곰이 더 많다고까지 할까. 먹이인 연어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인구가 희박하고 자연이 잘 보존돼 있다는 이유일 수 있다. 화산의 영향으로 비옥해진 원시림으로 뒤덮여 있어 곰이 살기에는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고 하겠다. 인명피해 방지를 위해 주민은 매년 수십 마리의 곰을 사살하는데 이 정도는 허락되는 부분이다.
원주민인 이텔멘족의 전설에 의하면 인간과 곰은 ‘형제’였었는데 총기가 도입되면서 그 관계가 깨졌다고 한다.
“결국 우리 인간이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리는군요.”
홍기연이 말하자, 사공박은 그녀가 살금살금 자연보호주의자로 변모돼 가는 걸 보는 느낌이었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불곰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연어가 강에 알을 낳기 시작하는 6월이 되면 무리 지어 나와 연어 잔치를 벌인다.
곰은 매일 30마리의 연어를 먹어치운다. 매일 2킬로그램의 몸무게를 늘여 겨울잠에 들어가기 전에 몸무게를 4분의 1정도 더 늘여서 200킬로그램 가량은 만들어야 한다. 암컷들은 새끼들을 위해 더 열심히 연어를 잡는다. 새끼는 두세 살이 될 때까지 어미와 함께 다닌다. 그러면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아늑한 굴에 들어가 잠을 자며 겨울을 보낸다.
자연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은 먹이 경쟁이다.
캄차카에 아무리 연어가 많아도 먹히는 수는 한정돼 있다. 많은 곰들은 서로경쟁이다. 강한 자만이 먹이를 취한다.
곰은 깊은 물속에서는 연어 잡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곰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 연어들이 산란을 위해 쿠릴호수로 올라오므로 이를 기다린다. 얕은 물가에서 기다렸다가 잡을 수 있지만 여름이 가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곰의 개체수는 줄지 않는다. 연어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수에서 매년 10만 마리의 연어가 불법 포획되고 있다. 곰의 개체수 유지를 자신할 수 없다.
캄차카의 계절은 순환하면서 생명체를 불러들인다.
지금부터 정확히 6주 후면 캄차카 반도는 아름다운 황금색으로 변하고, 새끼 여우들은 처음 세상 구경을 한 후 가을이 되었을 때 독립하게 된다. 추위 속에서도 붉은여우는 사냥하기 때문이다.
가을이 지나면 기온은 서서히 떨어져 영하 30도의 잔인한 겨울이 시작되고 그 기간은 7개월간 이어질 것이다.
곰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면 털을 닦기 시작한다. 그리고 물에 뛰어든다. 물에서 나온 곰은 신선한 식물을 찾아서 첫 식사를 한다. 시간이 흐름에 봄이 오고 생명체가 기지개를 켠다. 따뜻한 간헐천에서 새들이 둥지를 튼다.
계곡은 천국이다. 새로운 땅은 새로운 식물이 솟아나고, 그 식물을 좇아 초식동물이 모여들며, 이를 좇아 육식동물이 따라온다.
산양들은 이천 미터 높이의 산에서 햇볕을 즐긴다.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포식자가 없다. 수컷들은 독립할 때가 되면 자신의 무리를 만든다.
참수리는 매년 같은 둥지를 이용하는데, 3미터나 되는 둥지를 새로 만드는 것은 큰 공사이기 때문이다. 양쪽 날개를 폈을 때 폭이 2.5미터나 되고, 무거운 나머지 둥지를 받치고 있던 사스래나무가 쪼개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참수리는 영하 30도를 견딘다. 곰이 먹고 남긴 먹이를 챙긴다.
쿠릴 호수에서 보트를 타며 마지막 캄차카 관광을 즐겨보는 가상부부.
반시간의 짧은 보트놀이였지만 같은 배를 탔다는 것만으로 두 사람은 즐거웠다.
“캄차카 여행 행복했습니다.”
예의를 갖춘 홍기연의 감사 표시였다.
이런 인사에 익숙하지 않은 사공박은 결국 적합한 우리말을 찾지 못하고,
“유어 웰컴(You're welcome).” 예의를 갖추는 정도였다가, 뭔가 허전해서, “저도 행복했어요.” 덧붙였다.
헬기에 몸을 싣고 페트로 숙소로 가던 중, 환한 날씨 속에서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는 화산들과, 연어가 귀향본능으로 돌아오는 강을 내려다보며 십여 일간의 캄차카 여행을 마음속으로 정리하는 두 남녀.
인생 계획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험지의 여행이었지만 두 사람에게는 잊히지 않는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페트로 호텔에서 마지막 밤도 ‘처음처럼’이었다. 소주를 마셨다는 뜻이 아니라 여행하는 동안만큼은 망자의 친구로 예를 다하기로 약속했던 바를 잘 지켰다는 자부심이 사공박의 마음속에 엄숙하게 자리잡았다. 그의 자부심은 언젠가 온천 사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게 이번 여행 목적의 일부분이기도 하니까.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는 어떻게 될는지 모른다. 내일을 꿰뚫는 능력은 아무에게도 없다. 세상은 ‘불확실’로 꽉 채워져 있을 뿐이다.
“사공 사장님, 저를 위해서 너무 희생하신 것 아니세요?”
“기연씨한테 도움이 된다면 구정물인들 못 뒤집어쓰겠습니까.”
홍기연은 사공박을 바로 보지 못하고 돌아섰다.
거울 앞에서 돌아섰기 때문에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사공박의 눈에 비춰지고 말았다.
“물 들어왔올 때 왜 노를 안 저으셨나요?”
홍기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바 아니다.
사공박이 지금 고백하지만, 그녀는 침대를 따로 쓰기에는 너무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그러나 마음이 거짓말했다.
거짓말하면 당연히 아프다.
하지만 된통 아프고 나면 강해진다.
짐을 챙기고 페트로 공항으로 가는 두 사람.
어떤 관계인지 제삼자는 무관심해도 좋다.
▲호수보호관리소
▲연어 한 마리 포획했어요
<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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