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기회의 땅 러시아

기회의 땅 극동러시아(제27회)

오선닥 2016. 10. 28. 16:28

화산은 죽은 듯

살아 숨쉬는 듯

느낌은 각자의 몫입니다


 



제27회

 

 

툰드라 에소 마을

 

페트로에서 북쪽으로 600킬로미터요, 톨바치크(3,682미터) 화산에서 서북쪽으로 직선거리 100킬로미터 지점에 에소 마을이 있다.

 

에소는 겨울엔 완전 혹한의 땅, 순록의 땅 툰드라이다.

얼음과 눈을 핥고 불어오는 찬바람이 스치는 동토의 벌판.

산은 활화산과 만년설의 공존.

낮에 녹은 눈은 밤에 얼어붙는다.

 

그러나 지금은 여름이다.

 

일행 다섯 명이 안개 낀 자작나무 숲길을 따라 비포장도로를 끝없이 꼬박 10시간을 달리니 특장차 안은 저녁이 오고 땅에는 그림자가 길어졌다. 이윽고 에소 마을에 들어섰다. 겨울이면 눈길이 험악하여 헬기로 와야 하나, 여름철은 차로 오면서 타이가 숲과 툰드라를 경험할 수 있다.

 

타이가 침엽수림지대는 남쪽 온대지대와 북쪽 툰드라지대 사이의 독특한 삼림지대이다.

 

어디든 길은 없고 어디든 떠나면 길이 된다. 이 말이 진리다. 군용탱크를 개조한 차량은 어디든 갈 수 있다. 한번 지나간 자리는 길이 된다. 군용탱크는 만든 길로 원목을 실어 나르기도 한다.


“마을에 오셨으니 먼저 방문할 곳이 있습니다.”

 

마을 대표가 안내한 곳은 숲속 돌더미.

형형색색의 헝겊조각이 나무에 걸려 있는 게 한국의 성황당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은 바닥에 모닥불을 피웠다.

 

“이걸 건너야 마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피로한 몸은 쉴 사이 없이 이런 절차에 짜증이 날 만하지만 호기심과 인내심으로 기꺼이 참여한다. 의식에는 주술이 따르기 마련이다. 무당굿을 하듯 할머니의 입에서 신만 알아듣는 말을 쏟아낸다.

 

원주민 마을을 이동하여 에벤 전통마을로 갔다. 거기에는 전통생활 체험 및 민속박물관 관람이 가능하다. 캄차카 원주민의 전통무용과 민속공연을 볼 수 있다. 곰이나 순록의 소리를 흉내 내는 놀이는 자연스럽다.

 

에소 마을에는 560여 명의 에벤족이 살고 있다. 순록과 연어가 그들의 삶을 지탱해 준다. 캄차카에는 순록 목장이 6곳 있다. 러시아 정부가 툰드라 자연보호를 위해 숫자를 제한하기도 하지만 순록 유목민 수가 줄어드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밧줄을 던져 순록을 잡는 기술은 그들만이 터득한 노하우다. 그들이 이동할 때는 여름에는 폐 군용탱크, 겨울에는 순록썰매를 이용하기도 한다.

 

에소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잠자리는 남녀 각각 두 무리로 나누었으니 낯선 사람이라도 어쩔 수 없다. 몇몇 원주민 에벤족도 함께 잠자리를 하며 밤을 보냈으니 참 희한한 경험이다. 사공박과 홍기연은 원주민과 비슷한 얼굴이라 같은 방을 쓰는 게 어색하지 않았으나 러시아인은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는 눈치다.

 

“지금부터 우리 조상 이야기 해드릴게요.”

 

잠자리에 들어가기 전 에벤족 여성이 이야기를 풀기 시작하자 통역 가이드가 알아듣게 잘 설명해준다.

 

에벤족에게는 신의 아들 곰에 대한 신화가 많다. 곰 노래만 하더라도 200가지나 된다. 사냥한 곰을 잡을 때는 나름의 의식이 있다. 곰제사를 지내고 거기에 희생양으로 순록을 바친다. 죽은 곰은 우선 눈을 막는데 이것은 사람이 죽였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다. 또 입에 재갈을 물리는데 이건 사람을 해치지 말라는 뜻이다.

 

순록을 잡을 때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 망치로 골을 때리고 예를 갖춘다. 이에 비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고통을 늘이는 유대인은 너무 잔인하다. 죽은 곰과 순록의 머리는 나무에 매달아 혼이 하늘에 올라가도록 한다.

 

곰과 순록은 고기와 가죽을 제공한다. 채소를 대신하기 위해 생식을 통해 영양을 보충한다. 여름에는 툰드라의 산딸기나 블루베리를 따먹고 차도 끓이고 잼도 만든다. 순록의 뼈로 수프를 만든다.

 

이튿날은 헬기로 순록목장을 찾았다. 툰드라 목장은 마을에서 1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 겨울에는 날씨 악화로 헬기가 뜨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한 달 동안 보급품이 떨어져 목동들이 고충을 겪기도 한다. 순록은 툰드라 이끼 목초지를 따라 다니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천막을 ‘쳤다 헐었다’를 되풀이한다. 때로는 목초지를 따라 마을에서 2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도 가야 한다. 순록 목동은 곰과도 싸워야 한다. 사내들의 인기는 힘겨루기에서 나온다.

 

겨울 폭설의 경우, 목동들은 작은 천막에서 한 달 동안 고립되기도 한다. 헬기에 싣고 온 썰매를 타고 순록을 찾아간다. 목초지가 에소 마을에서 100킬로미터까지, 때로는 이끼 목초지 따라 200킬로미터 이상 멀리 가기도 한다.

 

원주민에게 순록은 반은 짐승이요 반은 가축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길을 잘 들여야 한다. 풀을 뜯는 순록에게 소금은 맛을 돋우는 조미료다. 겨울에는 포대에 넣은 소금을 사료에 뿌려주기도 한다. 순록을 주인에게 돌아오도록 길들이는 것은 소금이다.

 

여름에 순록 목동들은 호숫가 오두막에 산다. 순록 외 연어를 잡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이끼를 통째로 캐서 나른다. 모기를 쫓기 위해 불을 지펴 연기를 피운다. 순록조차 모기를 피하기 위해 이끼불 쪽으로 모여든다. 툰드라 여름은 모기와의 전쟁이다. 또다른 퇴치의 방법은 순록이 떼를 지어 원형으로 계속 움직이는 것이다.

 

수컷 순록은 암컷을 두고 맹렬히 싸운다. 그래서 거세를 한다.

 

“순록 거세 시범을 보이겠습니다.”

 

일행이 모인 자리에서 목동은 순록의 발을 묶고 눕혔다.

 

“놀라지 마십시오.”

 

그는 순록의 생식기를 입으로 깨물었다. 고통으로 퍼덕거리는 것은 순록뿐만 아니라 관객 일행들도 놀라 퍼덕거렸다. 특히 홍기연은 억, 소리 지르고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목동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태연히 손등으로 입을 닦는다.

 

이튿날은 에소강으로 간다.

 

특이한 체험이 기다리고 있다. 강을 따라 뗏목체험과 래프팅을 하며 원시자연과 만나는 시간이다. 3시간 래프팅은 신선한 재미를 준다. 일행 한 명이 래프트에서 떨어져 옷을 젖기도 했으나 그것조차 깊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곰과 참수리와 독수리 등 각종 야생동물을 탐사했다. 그들이 서로 먹이를 나눈다는 사실은 신선한 발견이다. 곰이 연어를 잡아서 먹다 남긴 것은 참수리와 독수리가 먹음으로써 깨끗이 청소한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두면 깨끗하게 자정되는 법이다.

 

한나절 강에서 낚시하고 야영하며 훈제요리와 샤슬릭을 먹는 체험은 홍기연에게 잊을 수 없는데,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퍼덕거림에 생명력의 매력을 느낀다.

 

늦은 오후 일행은 서둘러 헬기로 동남쪽 1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톨바치크 화산으로 향한다. 거기서 일박 야영할 예정이다.



▲툰드라 지역 에소 에벤족



▲에소 마을 에벤족의 곰 잡는 의식(여름)



▲에소 강 래프팅



▲캄차카 참수리



▲에소 목장의 순록이 모여 원을 그리며 모기를 퇴치하는 모습



▲왼쪽은 툰드라, 오른쪽은 타이가 숲


 

톨바치크 화산

 

눈을 들면 가까이 보이는 톨바치크(3,682미터) 화산.

헬기에서 내린 일행은 산 아래 미리 준비된 캠핑 텐트에 등산 가방을 내렸다.

 

바깥은 어둠이 내리지 않은 밤이지만 모두가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내일 화산 등반은 최상의 컨디션에서 감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니까.

 

텐트에서 잠을 자는 데 이미 익숙해진 가상부부.

남녀가 지켜야 할 취침규칙 같은 것은 필요 없다. 차가운 밤 기온을 견디려면 각자의 침낭을 최대한 말아 당기면 족하다. 남은 일은 목석같이 잠에 빠지는 일이다.

 

“화산 폭발 염려 놓고 안심하고 자요.”

 

사공박의 필요 없는 인사였지만 홍기연의 필요 없는 반응 “굿 나잇!”이었다.

 

아침은 유황 냄새를 맡으면서 시작된다.

 

톨바치크는 캄차카반도 중동부에 있는 활화산이다. 정상부는 뾰족하게 생긴 봉우리와 납작하게 생긴 봉우리 등 2개로 이루어져 있고 만년설이 조금 발달해 있다.1975년 6월부터 1년 반 동안 용암이 분출했을 때는 산 남쪽 28킬로미터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후 2014년에도 용암이 흘러 내렸다. 그때 몇 개의 화산봉우리가 새로 생성되기도 했고, 마그마를 비롯한 화산분출물이 식생을 완전히 파괴하기도 했다.

 

주위를 둘러봐도 초원이나 숲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화산재와 용암 분출물뿐이다.

 

용암지대에 올라가면 까맣고 빨간 화산분출물이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넓게 펼쳐진다. 용암지대의 가장자리에서 처음 눈에 띄는 나무는 키 낮은 잣나무다. 누워서 자라는 1미터의 잣나무는 톨바치크의 만년설과 잣나무의 진한 녹색이 대비를 이루어 멋진 풍광을 자아낸다. 설악산 대청봉 등에만 조금 남아 있는 북방계식물이지만 캄차카에서는 어느 산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다. 덤불오리나무와 가는잎백산차를 제외하면 모두 풀처럼 작은 나무들이다. 열매가 까맣게 익는 홍월귤도 야생풀꽃들과 함께 자라고 있다.

 

캄차카 반도의 거의 3분의 1은 사스래나무로 덮여 있다. 줄기와 가지는 강풍과 폭설에 시달려 구부러지고 뒤틀려 있으나 뿌리가 튼튼하고 생명력이 강하여 어디에서나 서서히 자랄 수 있는 나무다. 심지어 절벽에서 수평으로 자라기까지 한다.

 

“저의 삶이 저 나무 같은가 봐요.”

 

홍기연의 뜬금없는 독백에 사공박은 어깨가 움찔했다.

그녀는 사공박 앞에서만은 모질게 자라는 사스래나무나 야생화가 되고 싶었던 걸까.

남편의 친구가 많았지만 진정으로 어려움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사공박뿐이라는 생각은 그가 정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인지도.

 

해안 지역은 겨울에도 비교적 온화한 데 반해 일부 내륙 지역은 눈이 6미터 이상, 때로는 거의 12미터나 온다. 여름에는 캄차카 반도에 바다 안개가 자욱이 끼고 강풍이 불어 닥칠 때가 많다. 화산성토에 비가 많이 내려 식물이 울창하게 자란다. 관목과 키 큰 풀, 화려한 야생화도 있다.

 

화산 주변의 생태계를 열심히 관찰하며 산을 오를 때는 그들은 마치 환경운동가나 화산학자라도 되는 듯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지구 속의 마그마가 빙하를 녹이는 느낌을 가지며 그들은 이제 그리 멀지 않은 클류체프스카야 화산으로 향한다.


▲톨바치크 화산을 보며 캠핑


▲톨바치크 화산과 가까운 툰드라 지역


▲톨바치크 화산을 바라보는 툰드라 지역(여름)


▲톨바치크 화산 만년설과 공존하는 산 밑의 여름 야생화



▲화산 폭발로 황폐화된 산



▲톨바치크 화산(세상에서 가장 장대한 화산 폭발)



▲톨바치크 화산

 

 

클류체프스카야 화산

 

클류체프스카야(4,750미터) 화산은 유라시아에서 가장 큰 활화산이다. 캄차카 중동부에 솟아 있는 활화산으로 톨바치크 화산과 비교적 가까이 있다. 1697년 분화 이후 약 60여 회 분화했고, 근래 거의 매년 분화하고 있다.

 

1994년 클류체프스카야 화산은 7,500만 톤의 용암을 거의 넉 달 동안 흘러내렸다. 수증기가 배출구를 찾지 못해 폭발한 것이다. 정상에서 18km까지 용암이 흘러 20킬로미터 이내 모든 것이 타버렸다. 낙엽송 숲이 전소해 앙상한 가지로 남았다. 화산재 두께가 70센티미터나 됐으니, 이천 년 전 폼페이 시를 삼켜버린 베수비오 화산을 생각게 한다.

 

캄차카반도 북동쪽에 있는 클류체프카야 화산군(5개)은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화산이다. 대부분 반경 15킬로미터 내에 있다. 페트로 시 북쪽 500킬로미터 지점이다.

 

부근에는 타이가 숲 지대가 넓다. 타이가보다 고도가 높은 지대는 나무가 자라지 않는다. 대신 툰드라 지대이다. 이천 미터 이상 고도는 빙하로 덮여 있다. 황새풀이나 순록이끼로 돼 있다.

 

“제대로 된 화산을 본 것 같아요.”

 

강렬한 활화산을 본 홍기연의 느낌 일성이다.

 

1952년 가을 새벽에 캄차카 반도 동남쪽 지역에서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했다. 그 외에도 여러 차례 대규모 지진이 발생한 지역이 이 부근이다. 캄차카 반도 동쪽 지역이 판 경계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놀라울 만큼 아름답고 완벽한 원추 화산.

 

탐험대장 베링이 캄차카에 첫발을 들여놓은 후 300년 동안 캄차카반도에서는 600여 회의 화산 분화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70년대 중반 2.5킬로미터까지 불꽃이 솟아오른 화산은 거의 1년 반 동안 폭발이 수그러들지 않았는데, 그 결과 화산이 4개나 더 생겼다. 호수들과 강들이 사라졌고, 뜨거운 화산재로 인해 숲 전체가 뿌리까지 바싹 말라 버렸다. 광활한 시골 지역이 사막으로 변했다. 대부분의 폭발이 거주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 인명 피해는 매우 적었다.

 

봄철 해빙기에는 화산의 유독 가스가 계곡에 정체되어 야생 생물에게 죽음의 덫이 된다. 곰 10마리와 작은 동물 여러 마리의 시체가 계곡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던 적이 있다.

 

화산에서 정상 빙하 200미터 두께를 뚫고 연기가 보이곤 한다. 이때 얼음동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에소의 툰드라와 부근의 화산에서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것을 철저히 느끼고 그들은 페트로 시로 돌아왔다. 여행의 피로는 샤워 물줄기 앞에서는 미미한 존재인양 말끔히 사라졌다.

 

다음날은 오호츠크해 바닷가 옥차브르스키 마을의 이텔멘 어부족을 찾아간다. ‘


▲클류체프스카야 화산군 베이스캠프 2,700m


▲클류체프스카야 화산



▲클류체프스카야 화산 용암이 1km 상공까지 치솟은 적이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