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기회의 땅 러시아

기회의 땅 극동러시아(제19회)

오선닥 2016. 8. 3. 17:29

골드러시가 아닌 석유러시

메이저의 각축장

사할린의 바다 밑은 뜨겁다



  

 

제19회

 

 

사할린 스키장

 

“방 장로님, 아무래도 개발의 시작은 부동산이죠?”

 

“사공 사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지금 여기가 바로 그런 곳이에요.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고 있어요.”

 

“추운 지방이라 개발 열기는 빨리 식겠지요?”

 

“그렇진 않습니다. 지금 오호츠크 바다 밑에서 석유가 펑펑 솟고 있어요. 벌써 열다섯 곳이 뚫렸답니다.”

 

일행이 미니합승을 타고 산길을 올라서는데 사공박과 방노찬 장로가 나눈 대화였다. 서울 강남의 개발로 돈뭉치께나 만져본 방 장로가 부동산에 일가견이 있음을 아는 사공박이 그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일행이 향하는 곳은 보즈두흐 스키리조트이다. 사할린 주정부가 스포츠 관광단지로 개발한 야심작이기도 하다. 주정부와 국제석유메이저들이 공동 투자하여 이룬 것인데, 이렇게 되기까지는 곡절도 많았다.

 

“원래 제가 한국의 S석유회사를 업고 투자하려다 포기했지요.”

 

사공박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왜 그랬나요? 그때 했더라면 대박이었을 텐데…….”

 

방 장로가 아깝다는 듯 말했다.

 

“그렇지요. 투자의향서까지 교환하고도 접었어야만 했으니까요.”

 

옆 좌석의 박영진 박사가 듣고 있다가 답답했던지,

 

“한국 재벌의 안목은 아직은 짧아요.”

 

대화에 끼어들었다.

여러 사람이 관심을 보여주니 사공박은 신이 난다.


“S사 부사장이 최종 확인을 위해 현장에 가 보더니만 시설물 여기저기에 거미줄이 쳐진 것을 보고, 입을 다물어 버렸지 뭡니까. 가격을 반의반으로 후리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 거죠.”

 

소련 붕괴로 투자자를 찾지 못했던 스키장은 아무 조건이라도 받아들일 태세였다. 한국의 외환위기 때와 똑 같은 상황이었고 외국인 투자라면 더 환영이었다. 국영 스키장은 잘 운영됐으나 개방 후 지자체의 재정 악화로 폐쇄돼 삽시에 시설물과 건물은 녹슬고 유령이 즐겨 드나들 정도가 됐다.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으면 산신령이 차고앉을 일이지요.”

 

이사라 여사가 안타까워한 것은 의외였다.

 

차는 어느새 스키장에 도착했다. 낮게 누운 산으로 올려다본 본 스키장은 근사했다. 3개의 리프트와 9개의 슬로프가 깔끔하게 갖춰져 있다. 2.5킬로미터 길이의 최신형 곤돌라는 밤 10시까지 손님을 받는다. 석유메이저가 외국인 유입과 직원의 여가 이용을 예상하여 적극 투자한 결과 근사한 최신식 스키장이 된 것이다.

 

사할린의 2월은 늦지 않은 오후임에도 어둠이 내려앉는다. 하얀 눈으로 덮인 설면이 약간 밝긴 하지만 스키장은 훤히 불이 켜져 있다.

 

“목사님, 여기까지 오셨으니 스키 한번 타실까요?”

 

사공박이 유학준 목사에게 제안했다. 그리고 한민희에게도 눈짓을 하며 동참을 유도했다. 다른 일행에게도 권했으나 그들은 사양했다. 스키 경험이 없으니 커피숍에서 구경만 하겠다는 것.

 

유학준 목사는 확실히 스키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미국 유학 중에 스키를 즐겼다는 증거가 장비 대여에서 활강 자세까지 완벽함에서 나타난다. 한민희는 젊으니까 스키 경험이 많은 편이다. 사공박은 아이들 데리고 몇 번 스키폴을 잡아봤을 뿐, 미숙하나 천천히 따라갈 정도는 된다.

 

“혹시 목사님이 스키 선수 아녀?”

 

커피를 마시고 있던 이사라 여사가 창 너머 유 목사의 노련한 스키 실력을 보고 깜짝 놀라며 커피를 쏟을 뻔했다. 다른 일행도 놀라기는 마찬가지다. “목사님이 언제 스키를 배웠어? 선수처럼?” 하는 눈치다. 스키복, 털모자, 장갑, 고글…… 모두가 앙상블.

 

설면과 빙판을 구분하며 체중이동을 조절하는 것은 프로급이다. 슬로프 읽는 능력과 무릎과 발목의 터닝 타이밍과 서스펜션이 절묘하고, 숏턴에서 매끄러운 동작도 돋보인다.

 

미끄러지지 않고 열심히 따라가는 사공박.

그런데 한참 거리 앞에서 앞서 활강하던 유 목사와 한민희가 슬로프 옆으로 머뭇거리는 것이 보였다. 한민희가 커브를 도는 순간 넘어진 것이다. 여자의 손을 잡고 일으킨 유 목사는 뒤로 쳐다보며 사공박이 따라오는 것을 확인했다. 한민희가 부끄러운 제스처를 취했다.

 

“빙판을 만나 엣지가 먹지 않아 미끄러졌어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시위하듯 그녀는 발목을 접는 시늉과 통증을 느끼는 얼굴을 했다. 통증의 진위 여부를 떠나 이 장면이 유 목사와 한민희가 함께한 마지막 개인적인 순간이었을 것이다.


 


사할린 석유개발

 

사공박의 사할린 지사 사무실에서 따끈한 엽차를 마시고 있는 일행.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던 한민희가 시선을 준 곳은 가가린 공원이다.

 

“사무실 위치가 참 좋네요. 공원의 숲이 아름다워요. 마치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는 것 같아요.”

 

그렇다. 눈으로 덮여 있는 침엽수림은 그림 그대로다. 최초 우주인 유리 가가린의 이름을 딴 공원은 숲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겨울이라 공원 안에 있는 길과 호수는 모두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다. 여름이면 숲길이 아베크족을 불러들인다. 사무실에서 보는 것으로 공원 구경은 충분하다.

 

사람들은 사할린의 미래가 어떨까에 관심이 많다.

사공박의 개인적인 견해는 뚜렷하다.

 

“사할린은 30년 일거리가 쌓여 있습니다.”

 

하나의 유전에서 원유가 소진될 때까지 통상 30년이 걸린다. 이 기간에 유전을 관리할 인력과 물품이 필요하다 .

 

쉘, 엑손 등 석유메이저의 비즈니스 모델은 독특하다. 그들은 석유 시추에서 운송, 판매까지 모든 과정에 개입한다. 그 과정은 엄청난 자금이 소요되므로 시장은 철저히 분업화되고, 자연히 많은 분야의 사업체가 끼어들고 대규모 인력이 동원된다.

 

“인력 동원과 물품 공급이 저의 일거리에 속하죠.”

 

사실상 메이저는 석유 탐사가 하는 일이 전부이고, 원유를 뽑아 올리는 플랫폼은 중공업 기술이 뛰어난 한국이, 해저 채굴 작업은 인도나 필리핀이, 육상에서 원유를 수송하는 파이프라인은 일본이 맡는 식이다.

 

사공박이 경영하는 ㈜극동연구회는 필요한 인력과 물품을 공급해주는 전문 업체로 등장했다. 개발에 필요한 장비는 물론, 전문 인력을 제공하고 이들의 숙소, 식사, 차량 제공과 월급 세금계산까지 해준다. 석유업계의 ‘원스톱 서비스 업체’라 할 만하다. 물론 비용은 메이저가 지불한다.

 

“2005년 초부터 쉘과 인연을 맺어 왔습니다.”

 

사공박이 말하자 방노찬 장로가 특별히 관심을 보이는데,

 

“계약을 어떻게 했습니까? 꽤 까다로울 텐데.”

 

그는 석유 메이저의 생리를 좀 아는 것 같다.

 

“처음에 책 한 권 분량에 해당하는 견적양식을 보고 깜짝 놀랐지요. 일주일간 씨름 끝에 견적서 제출에 성공했답니다.”

 

쉘이 안전소방 장비 및 보급품 견적을 요구해 왔을 때 사공박은 그저 멍멍했다. 크기, 모양, 재질, 가격, 사용시간 등 너무 구체적인 요구여서 작성에 애를 먹었다.

 

거대한 플랫폼을 바다 한가운데 세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만톤급의 배를 움직일 수 있는 예인선 두세 척이 플랫폼을 끌고 당기며 안착시켜야 한다. 이런 배의 임대는 사공박의 업무 영역이기도 하다.

 

“내년에는 BP와도 일하게 되는데, 매출이 600억 원쯤 예상돼요.”

 

영국의 BP는 사할린 진출에서 후발업체에 속한다.

사실 엑손과 쉘이 사할린에 들어오기 전 일본 업체들은 일찌감치 이곳의 사업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개발할 유전이 더 이상 없다는 엉뚱한 판단을 내리고 일본이 사할린을 대거 철수해 버렸다.

 

“일본인이 버렸던 사할린 북동쪽에서 2005년 엑손이 거대한 제1 유전을 발견했답니다. 일본은 땅을 치고 후회했죠.”

 

메이저들은 유전을 발견하기 전 대략 10년 정도의 탐사 활동을 한다. 그렇다면 일본은 분명히 성급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좀 지긋했어야 하는데…….”

 

박영진 박사가 안과 수술대에 누워있는 환자가 그래야 된다고 말하듯 사공박의 설명에 반응했다.

 

“더 후회스런 일은 같은 해 쉘이 제2 유전을 발견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때 일본 업체가 줄줄이 들어와 투자하기 시작했죠. 미쓰이, 미스비시가 다시 들어온 거죠.”

 

이리하여 사할린은 제6 유전 광구까지 개발이 된 것이다. 세브론까지 참여했으니 메이저들은 거의 대부분 오호츠크해에 발을 담가 놓은 것이다.

 

사할린에 들어온 한국 기업들은 거액의 투자비가 소요되는 유전개발에 뛰어들기보다는 유전개발업체의 호주머니를 공략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대우, 삼성, SK, 풍림……

삼성중공업은 쉘에게 해상플랜트 2기를 8억 달러에 납품.

대우건설은 남부 해안에서 LNG 플랜트 건설.

풍림은 엑손이 발주한 항만 원유터미널을 3억 달러, 가스 파이프라인 승압 플랜트 2억 달러 수주.

 

풍림은 이미 2002년 유즈노사할린스크 쉘 지사 건물을 지은 바 있다. 리조트와 아파트 건설업체인 풍림이 해외에 진출한 것은 여기가 처음이다.

 

그런데 사할린에 석유 관련 사업에 가장 먼저 발을 들여 놓은 사람은 분명 사공박이 아닐까.

 

“처음 사할린 진출에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유학준 목사는 사공박의 사업이 염려되어 질문했다.

 

“용역업으로 처음 진출하다보니 예상 밖의 비용이 많이 들어갔죠.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동절기엔 눈을 치우는 데만도 엄청난 돈이 들어갔답니다. 겨울이 길어 공사 가능 기간이 짧은 것도 문제였고요.”

 

“한국의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의 활약은 없었나요?”

 

정부의 태도가 어땠냐는 면을 고려하면 방 장로가 충분히 질문할 만한 부분이다.

 

“그들은 유전을 개발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요. 단지 러시아 가즈프롬과 석유 및 가스의 수입 관계만 관심을 갖고 있었지요.”

 

이후 한국가스공사는 2015년부터 30년간 천연가스를 매년 750만 톤씩 들여오기로 양해각서를 교환했으나 양국 정부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그 양은 국내 연간 소비량 3,400만 톤의 22퍼센트에 해당한다. 중동의 카타르와 오만, 동남아의 말레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했다.

 

천연가스는 블라디보스토크-북한-한국을 잇는 가스관 매설로 수입하려 했고, 북한을 통과하는 게 어려워지면 배로 나르기로 했다. 대체로 수송 거리가 3,000킬로미터 이하면 가스관으로 운반하는 게 경제적인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휴전선까지는 약 700킬로미터다.

 

가스관이 완공되면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매년 약 1억 달러의 통과료를 받는다. 판매국이 국경까지 수송책임을 지는 것이 관례여서 러시아가 통과료를 지불한다.

 

“MOU대로 진행하면 양국의 경제교류 규모가 얼만지 아십니까?”

 

사공박이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질문을 던져보았다.

 

각자는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어?”, “휴전선이 뚫리겠어?”, “가스 가격이 떨어지면 어떡해?” 등 의문을 표시하는 것으로 반응을 보였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천연가스 구매 900억 달러, 석유화학단지 건설 90억 달러, 가스관 건설 30억 달러 등 총 1,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에너지자원들도 많지요. 러시아는 매장량 기준으로 천연가스 세계 1위, 니켈 1위, 우라늄 4위, 석탄과 철광석 각각 5위인 자원부국예요. 협력의 가능성이 보이죠.”

 

"중간에 불가측 나라가 있잖아요." 이사라 여사가 맥을 짚었다.

 

“바로 그건데, 북한이 걸림돌입니다. 시베리아횡단철도와 한반도종단철도, 시베리아가스전 모두가 그런 상황이에요.”

 

그는 말하면서 러시아도 답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계 경제의 어려움 속에서도 러시아는 2000년대 10년간 고도성장을 한 국가에 속한다. 석유가격 폭락만 없었더라도 러시아는 2016년에도 경제에 날개를 달았을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