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뒤바뀐 신랑

뒤바뀐 신랑

오선닥 2021. 10. 19. 17:34

청년 동악이 장가를 든 날 친구들과 모임을 가지면서 한밤중까지 술을 거나하게 마셨다.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종로 골목의 한 대문 앞에 기대어 있다가 깜빡 잠이 들어버렸다.

잠시 후 그 집의 하인이 나와, “에구, 신랑이 취해서 여기 쓰러져 있군 그려.” 동악을 둘러메고는 신방에 뉘었다.

동악은 비몽사몽간에 깨어나서 옆의 신부를 보았다.

아이구, 우리 어여쁜 부인!”

신부를 끌어안고 다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깨어난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여기가 뉘 집이오? 그대는 누구시오?”

동악이 낯선 여자를 보고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근데, 나으리는 대체 누, 누구시오?

여자도 놀라 말을 제대로 이을 수 없었다.

서로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여자의 신랑이 전날 밤 친구들을 만나러 나간 것이고, 하인들이 집 앞에 쓰러져 있는 동악을 그 집 신랑인 줄 착각하여 데려다 눕힌 것이다. 그 집 역시 혼인을 한 지 사흘밖에 되지 않아 신부집 하인들이 신랑의 얼굴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신부 또한 불 꺼진 방에서 신랑을 분간하지 못했던 것이다.

 

외간 남자와 잠을 잔 신부로서는 난감할 지경이었다.

난감하기로는 동악도 마찬가지였다.

이를 어찌하면 좋소?”

남자의 당황함에 신부는 침착하게 말했다.

이것도 하늘이 내려준 연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녀자의 도리로 본다면 한 번 죽으면 그만이지만 무남독녀 외동딸인 제가 죽으면 훗날 우리 부모는 의탁할 곳 없는 신세가 돼 버리니 제가 그대의 소실이 되어 후일을 기약함이 어떠한지요?”

그 말도 참으로 일리가 있소. 하지만 내 나이 아직 약관 20세인데 장가든 지도 얼마 되지 않고, 집안의 교훈이 몹시 엄하고, 나 또한 과거시험에 아직 급제하지 못한 터라 난감한 일이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혹시 낭군께서 홀로 계시는 이모나 고모님이 계신지요?

이모님이 한 분 계시옵니다만.”

그렇다면 속히 길을 재촉하여 저를 이모님 댁에 두십시오.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 서로 만나서는 안 되며, 급제 후 시간이 흐른 뒤 양가의 부모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한 집에서 지내는 것이 어떠하신지요?”

그럼 그러하지요.”

동악은 신부와 함께 말을 타고 이모댁으로 달려가서 그녀를 내려주었다.

마음이 고운 분이시니 친어머니처럼 대해주실 거요. 바느질이나 도우며 기다려주시오. 내 곧 기필코 찾아오리다.”

동악은 그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시각 신부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신부 아버지가 급히 사람을 보내 본래 신랑집을 알아보니 그 신랑은 어제 밤에 술이 떡이 되어 취한 채로 본가에 들어가서 자고 있었다.

엉뚱한 잠자리로 신랑과 도망친 신부의 집은 엉망진창, 난장판이었다.

신부의 어머니는 거의 실신해 한탄을 계속했다.

그 이쁘고 착한 애가 어찌 이런 일을 벌였단 말이오.”

한탄을 받으며 신부의 아버지는 부인을 위로하기에 바빴다.

현명한 아이라 분명 무슨 사연이 있을 터이니 너무 걱정 마시오.”

신부집에서는 이 일을 숨기기 위해서 신부가 밤사이 갑자기 괴질로 죽었다는 소문을 내었다.

가짜 염을 하고 헛장사까지 치렀다.

 

동악은 지난 일을 만사 잊고 밤낮없이 공부에 매진했다.

본래 명석한데다가 노력까지 더해지니 문장이 날로 진보하여 몇 해가 지나지 않아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했다.

동악은 연로한 부모님께 그간의 자초지종을 설명 드리고 이모집에 있던 그 신부를 데려와 소실로 삼았다. 신부의 집에 알리려고 떠나는 동악에게 고운 빛의 비단 한 조각을 내어주며 신부는 말했다.

말만으로는 우리 부모님이 믿지 않으실 것이니 이 비단 조각을 보여주십시오. 이건 통역관인 저희 집안에서만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귀한 비단이라 분명 알아보실 겁니다.”

동악이 신부의 집에 가서 비단 조각을 내보이며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궁금한 것을 알게 된 신부의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로군. 이제 우리 늙고 병든 내외가 죽어서 제사상이라도 받아볼 수 있게 되었네. 허 허.”

그가 동악의 풍채를 보니 훗날 재상이 될 관상이었다.

외동딸을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집안의 모든 전답과 노비 등 전 재산을 동악에게 건넸다.

졸지에 동악은 조선의 갑부가 되었다. 장인에게 물려받은 모든 재산은 외동딸인 소실부인이 관리토록 하였는데 부인은 어질고 현명하여 가산을 다스림에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남편 받드는 일에도 모든 정성을 다했다.

 

장인의 선견대로 동악은 훗날 형조판서 겸 홍문관대제학 자리까지 올랐다.

운명이 바뀌는 찰나의 순간에 한발 물러서서 참고 기다리는 지혜가 행운의 길을 들어서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는 말과 일맥 상통했다.

버리고 떠나는 사람보다 남아서 버티는 삶에 점수를 더 주고 싶은 마음.(퍼온 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