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들의 비행술이
대단하지만
여행 중 그들은
상당한 낙오를 각오해야 한다
제 15회
철새의 비행술
다음날
하바롭스크 조류연구소와 조류박물관, 동물원을 찾아 조류들을 조사 관찰했다. 그리고 한 자리에 모여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국경이 없는 새들의 보호를 위해서는 국제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아무르강의 저녁은 일찍 찾아온다. 둥근달이 비치고 뭉게구름은 그림자 되어 강물 위로 흐른다. 사공박은 시선을 올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기러기는 야간에 많이 이동한다던데…… 아마도 낭만파인가 봐.”
“새에게 낭만?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새들은 목숨 걸고 비행한답니다.”
윤금조는 이어서 설명해 나간다.
철새의 이동은 경영원리에 따른다. 사망률과 번식률의 비용편익 차원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찾아서 이동한다는 것. 대부분의 철새는 밤에 비행한다. 철새 영화 '위대한 비상'은 ‘야간비행’을 강조했다.
대체 이유가 뭘까?”
새들의 생리나 항공역학에 초점을 맞춘 해석이다. 계속 날갯짓을 하다보면 몸에 열이 발생하여 휴식 때보다 5도나 오른다는 것이다. 밤은 기온이 낮고 난기류가 적어 수평으로 안정적으로 날 수 있다. 야간 이동이야말로 철새들이 과거부터 배워온 생존 전략의 일환이라고 추정한다. 낮에는 먹이를 잡아야 하는 이유도 있고.
체온 조절은 어떻게 할까?
피부 표면을 타고 흐르는 공기로 냉각하고 지방 대사로 생기는 물의 증발로 발산한다고 한다.
철새들의 민족 대이동
해마다 10월 말쯤이면 거대한 이동이 일어난다. 시베리아에서 번식을 하는 겨울철새들은 혹독한 추위를 피해 한국으로 오고, 한국에서 겨울을 견디기 어려운 여름철새들은 10월이면 선선한 태국이나 필리핀 등으로 떠난다.
“시기를 잘 맞추는 게 신기하네.”
가만히 있던 박호준이 모처럼 한마디 했다.
여름철새 제비들은 긴 여행 준비를 위해 집합한다.
그들끼리 말하겠지.
“제비들이여, 모두 전신줄에 모여라!”
기온과 낮 길이의 변화는 새들의 생리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이때 새들은 모여 있는 동료들의 무리에 자석처럼 끌리게 된다.
이동할 때는 경험이 많은 새가 앞장을 선다. 기러기는 V자형의 대형을 이뤄 바람의 저항을 적게 받고 앞에서 날던 기러기가 지치면 선두를 교대한다.
비행 높이는 새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작은 새들은 땅 위에서 불과 수십 미터, 큰 새들은 수천 미터의 높이에서 난다. 높이 날면 공기의 흐름에 몸을 실을 수가 있어 에너지 절약에 도움이 된다.
“독수리와 같은 대형 맹금류는 날개짓을 하지 않고도 상승 기류를 타고 높이 올라간답니다.”
물론 하강 비행에도 에너지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절약한 에너지로 먼 거리를 이동한다.
“고것들 영리하네. 그래서 지구 양쪽을 왔다 갔다 하는군.”
사공박은 윤금조의 설명에 점점 빠져 든다.
여름 동안 이동 거리에 맞게 지방의 양을 모은다. 지방분은 비행 연료에 해당한다. 대개 몸무게의 2배에 달하는 지방을 몸속에 모아둔다. 어떤 새들은 중간 지점에서 먹이를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주로 낮에 이동하는 제비는 중간에 쉬었다가 먹이를 먹고 다시 이동한다. 낮에는 먹이를 찾는데 시간을 보내고 잔잔한 바람이 부는 밤에 이동하쇠재두루미,제비,는 새들도 있다.
대부분 이동 속도가 하루에 200~600킬로미터에 달하지만 열흘 동안 수백 킬로미터밖에 이동하지 못하는 새들도 있다. 대개가 작은 새들로 중간 지점에서 먹이를 먹고 이동한다.
“새들의 여행은 그리 쉬운 게 아니랍니다. 희생이 따르죠.”
윤금조는 그렇게 말하면서 설명을 덧붙인다.
겨울철새 쇠재두루미는 몽골 초원에서 지내다 겨울이 오면 8000미터 히말라야를 넘어 따뜻한 인도로 간다. 그 과정에서 죽기도 한다. 그래서 공기주머니를 두 개로 나눠 호흡하도록 체질을 바꾼다. 여름철새인 백로나 제비는 무리에서 뒤떨어져 무인도에 착륙하기도 하는데 쇠약하고 어린 것들은 먹이와 마실 물이 충분치 못하여 죽기가 쉽다. 제비의 경우는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게 겨우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나름대로 재해를 줄이고 날씨 변화를 예측하는 적자생존의 지혜를 터득하는 거죠.”
“벼룩은 자기 키의 100배 이상 뛰고, 쇠똥구리는 자기 몸무게의 50배나 짐을 나른다고 하는데 나름의 생존법이 있는가 보더라구.”
어디서 들었는지 사공박이 잡상식을 열거하여 여자를 어리둥절케 한다.
“타고난 체질이나 학습에서 익힌 생존법이겠지요.”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하는 철새는 제비갈매기라던데?”
들은풍월이 있어 사공박이 말했다.
“북극제비갈매기가 그러한데 상승기류를 잘 타는 선수들이죠.”
그린란드를 출발한 북극제비갈매기는 남아프리카의 더반까지 가고, 러시아의 북극 해안에서 날아간 북극제비갈매기는 호주 앞바다에서 잡혔다고 한다. 편도 2만 킬로미터를 날았으니 왕복하면 지구 한 바퀴가 될 것이다.
비둘기를 차에 태워 한참을 달리다 놓아 둬도 복잡한 골목길을 정확히 추적해 집을 찾아 간다.
“신기하지 않아요?”
설명을 하면서 윤금조가 듣는 자의 반응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새들의 길찾기는 오랫동안 과학자들에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명확한 해답이 아직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질문하고 대답해 나간다.
낮에 이동하는 새들은 주로 태양을 나침반으로 이용하고 밤에는 별이나 달의 위치를 보고 방향을 찾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흐린 날은? 몇몇 새들에게는 지구의 자장이 방향을 가르쳐 준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비둘기의 머리에 한 쌍의 코일을 씌운 후 전류의 방향을 바꾸었더니 자기장의 극이 바뀌어 비둘기는 둥지의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태양 아래에서는 그 코일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
비둘기는 자주 다니는 길은 건물이나 산, 나무 등을 보고 집을 찾아 간다.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는 거의 일직선으로 찾아가지만 보다 먼 거리에서는 회전 비행을 하며 주변을 탐색한 뒤 집의 방향을 알아낸다. 그러나 복잡한 골목길을 정확히 추적하여 집을 찾아가는 것은 온 길의 직선거리에다가 굽은 길을 기억해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본다.
“이 가설도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최근의 연구에선 집을 찾는 데 냄새를 이용한다는 것도 밝혀졌지요.”
지나온 길의 냄새 표본을 수집하여 집을 찾아갈 때 단서로 이용하는 것이다. 넓은 널빤지로 바람의 방향을 바꿔버렸더니 집을 찾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맑은 날에는 바뀐 방향으로 향했지만 흐린 날에는 집을 찾아왔기 때문에 결국 이 냄새 가설도 완전한 것은 되지 못했다.
“결국 비둘기가 길을 찾는 것은 사람처럼 오감을 이용한다고 봐야겠군요.”
“그게 해답일 것 같네요.”
비둘기는 지도와 나침반을 사용하는 것이 사람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교하다. 청각이 예민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 볼 수 없는 자외선을 볼 수 있고 아주 미세한 진동을 느낄 수 있다. 동물들의 초감각 세계는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달 밝은 밤 기러기 떼가 질서정연하게 날아가는 모습이 궁금했던 사공박이 그녀에게 묻는다.
“V자로 날 때 훨씬 힘이 덜 든다는 사실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이런 걸 연구한 사람이 있었죠.”
그녀의 설명이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박사팀의 연구에서 펠리컨(크기 1.5미터 부리가 긴 대형 물새)이 혼자 날 때와 V자 대열로 날 때 심장박동수와 날갯짓 수를 측정하였는데 V자로 날 때가 둘의 횟수가 훨씬 적었다고 한다. 그만큼 에너지를 덜 쓴다는 뜻이다.
앞의 새가 일으키는 날갯짓으로 뒤에 상승 기류가 생겨 날갯짓을 덜해도 된다. 그 덕을 보려면 앞의 새의 바로 뒤쪽이 아니라 날개 끝에 자리 잡아야 한다. 기러기 새끼를 어릴 때부터 프로펠러 소리 들려주면서 헬리콥터와 함께 반년 동안 비행 훈련을 했더니 편대 비행이 가능했다. 새는 헬리콥터가 만드는 상승기류를 타는 법을 배운 것이다.
“그래서 대열이 자동적으로 V자가 되는군요.”
사공박이 이럴 때는 눈치 빠르게 잘 알아먹는다.
선두가 힘드니 대열의 맨 앞자리를 바꾸는 이유도 알았다.
내친 김에 궁금한 것을 하나 더 묻는다.
“같은 종의 새는 이동 루트가 같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요?”
그러면서 윤금조의 옷차림을 슬쩍 훔쳐보았다. 남색 슬랙스 바지와 분홍색 블라우스의 조화가 매력적이다. 어느 책에선가 철새이동의 하늘 길을 색색으로 구분한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 몇 종의 이동 루트는 발견됐다고는 하나 대부분이 미지수로 남아있어요. 대체로 같은 종은 비슷하긴 한데 한 번씩 다른 종의 것과 겹치거나 가던 길에서 벗어나는 개체들도 있어요.”
그녀는 철새의 이동경로가 늘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한다. 도요새의 경우 호주에서 시베리아를 향하는 길목에서 중간기착지로 한국의 금강하구나 다른 곳에서 잠시 쉬기도 하고 혹은 논스톱으로 가기도 한다.
“앞으로 GPS장치를 달아 많은 조사를 하면 평균적인 이동 루트를 알아낼 수 있겠네요.”
“그럼요, 사공 사장님.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조류연구소에 후원 많이 해주세요.”
“힘닿는 데까지. 철새도래지가 앞으로 훌륭한 관광지가 될 수 있겠지요.”
“철새가 돈이 되는 시대가 옵니다. 철새가 온다는 것은 환경이 좋다는 의미죠.”
“먹이 문제만 해결되면 힘들여 이동하지 않아도 되겠는데…….”
먹이가 철새의 이동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사공박은 들었기 때문이다.
“철새의 이동에는 기후 영향이 크지만 먹이만 풍부하면 그냥 우리나라에 주저앉아서 텃새가 되기도 합니다. 요즘 꾀꼬리, 후투티, 삼색조 등이 그런 셈이죠.”
이들 철새의 이동형태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황금새처럼 한 마리씩 떨어져 직선적으로 이동하는 것도 있고, 직박구리처럼 수백 수천 마리의 떼가 한 덩어리가 되어 이동하는 것, 또 기러기류, 오리류처럼 막대 모양이나 열쇠 모양이 되었다가 정연히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것도 있다.
딱새나 붉은허리개개비 등이 이동할 때에는 일반적으로 수컷이 앞서고 중간에는 암수가 함께 가며 뒤에는 어미새와 어린새가 뒤따른다.
“고것들 약자를 보호할 줄 아네.”
그러나 고니류처럼 가족 단위로 양친이 인도하여 이동하는 것, 또 부비새처럼 양친이 모두 이동하고 나서 새끼새만으로 이동하는 것도 있다.
낮에 이동하는 새에는 제비, 칼새, 직박구리, 쇠찌르레기, 여새류 등이 있다. 그러나 솔새를 비롯한 작은 새들은 야간에 이동하는 것이 많은데 매류 등 천적의 공격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동속도는 대체로 자동차 경제속력 정도이나 작은 새들이 시속 40, 매류 60, 도요물떼새류는 70, 오리류는 90킬로미터 정도 된다.
고도는 대부분 100미터 이하로 나는데, 최근의 레이더관측에 의하면 수천 미터 높이로 이동하는 것도 있다. 최근 히말라야 상공을 비상하는 두루미떼를 관찰하고 촬영에 성공한 일도 있다.
일반적으로 작은 새는 어느 정도 이동하여 채이(採餌)하고, 이것을 되풀이해가면서 이동한다. 그런데 도요·물떼새류의 대부분은 몸무게의 절반이 지방질이어서 한번에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것도 있다.
이동에 소요되는 시간은 봄 이동이 가을 이동보다 약간 빠르고, 3~4주일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유가 궁금하네요.”
봄 이동은 번식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빠르고, 가을 이동은 번식이 끝나고 어린 새도 섞여 있어서 이동 일수가 길어진다고 보고 있다.
철새는 기후에 따른 이동이기 때문에 이동 경로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또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경로가 정해져 있다.
“새끼 키우기에서 역할 분담이 잘 돼 있다는데?”
사공박이 윤금조에게 물었다.
“암컷은 돌려가며 알을 품는데, 품는 동안 수컷은 먹이를 구해 오지요. 물총새의 경우 20일 후 새끼가 탄생하구요.”
“새끼에게 먹이는?”
“물고기나 개구리 등 큰 먹이를 잡으면 새끼에게 먹이지요. 모성애가 대단하죠.”
알을 옮겨 놓고 인공부화해도 새끼는 같은 목적지로 이동한다. 아마도 노련한 성조(成鳥)에 의해 유도되거나 유전적 생태적 습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동시기가 되면 일정방향으로 머리를 향해 퍼덕인다. 이유에 대해서는 더 연구가 필요하다.
북아메리카에서 멕시코만 흰기러기 철새는 매년 500만 마리가 대이동을 한다. 굶주리고 지친 상태로 북국권 툰드라에 도착한다. 남쪽에서 출발하는 흰기러기는 5000킬로미터 대장정을 감행하는데 도중에 흰머리수리에 포획되기도 하여 험난한 여정이다.
지구상 동물 이동은 철새뿐만 아니다. 가장 거대한 동물, 대왕고래는 길이 30미터, 몸무게 150톤 이상도 있다. 지느러미만 5미터나 되다니. 이 거구를 이끌고도 4000킬로미터 이상을 이동한다. .
지구상 동물들은 마치 이동 경쟁을 하는 것 같다.
탐조 답사를 마친 일행은 러시아 전통식당에서 저녁시간을 가졌다. 조류연구원과 통역이 동석한 것은 그들의 수고를 위로하기 위함이다.
메인 메뉴 선택에서 치킨보다는 돼지고기를 하자는데 합의가 이뤄졌다.
“날개 달린 것은 오늘은 좀…….”
윤금조의 의견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새를 워낙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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