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상선을 탄 지 6개월.
태평양을 세 바퀴째 돌고 있다.
태평양 뱃길 따라 선원들이 뿌려대는 잡담들, 이것이 해상생활을 지탱한다.
소금기가 조금씩 피부 속으로 스며든다.
뱃놈으로 단단하게 만들어져가고 있다는 증거다.
핑퐁 외교를 시작으로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다녀가는 세상.
그후 세계는 이념의 색이 바래져가고 있는 중.
상선을 타고 일본과 미국을 핑퐁 항해하다보면
세상과 직업을 보는 눈도 달라지겠지.
태평양에 뿌린 잡담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
송대길, 벌써 지쳤나?
선내의 생활도 그렇고, 일본-미국 왕복하는 배의 항로도 그렇다.
승선 후 일본-미국 간은 두 번 왕복했다. 그동안 달력 여섯 장이 떨어져 나갔으니 반년이 지났다는 뜻. 이제 일본을 출항해 세 번째 미국으로 항해하고 있다.
도쿄만을 벗어나니 따라오던 갈매기가 슬그머니 육지 쪽으로 돌아간다.
"빌어먹을! 서로 외로운데 태평양 한가운데까지만 따라오지…."
괜히 갈매기한테 원망을 뿌려대는 자신이 우스꽝스럽다.
직업의 무대를 바다로 택한 이상 바다와는 각별히 친해져야 한다. 갈매기와 시비할 일이 아니다. 적어도 최근 자주 건너는 태평양은 회사에 출퇴근하는 길쯤으로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배 뒤로 멀어져 가는 일본을 보면서 참으로 괜찮은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지진과 화산으로 땅이 뒤집혀도 오뚝이같이 일어나는 나라. 적도 부근에서 열기를 품은 공기 덩어리가 태풍으로 변해 북상하여 일본 섬을 휩쓸고 지나가도 사워 한 번 한 것처럼 깨끗하게 단장하고 일어서는 나라. 상황파악에 민첩하여 일찌감치 메이지유신을 구축한 나라.
산들의 어디에도 흙이 보이지 않는 나라. 녹음에 파묻혀 있는 천국이라 할까.
섬들 사이로 잘 정비된 항로는 마치 육지의 포장도로를 연상시킨다. 그 항로를 따라 지나가는 배들은 마치 스포츠카가 지나가는 것 같이 경쾌한 모습이다.
전쟁에서 패배해 주저앉을 뻔했던 일본이 다시 일어난 것은 운칠기삼(運七技三)의 행운 때문이다.
1950년 한국의 6.25전쟁이 기사회생의 명약. 군수보급기지로서 경제적 특수를 누렸고, 특히 해운에서는 예상치 않은 군수물자 수송으로 좋은 기회를 얻어 해운대국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은 1969년에 벌써 GNP가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위로 비약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일본이라는 나라는 결코 만만치 않다. 연안으로부터 12해리 내의 영해와 200해리 안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을 합치면 일본 영토의 12배인 450만km2로서 전세계 6위에 속한다.
1960년대 한국은 정말 궁상스러웠다. 70년대 역시 빈궁으로부터 멀어지지를 못한다. 필리핀만 하더라도 시골촌락의 초등학교는 부자다운 모습을 했다. 우거진 야자수 나무 숲 속에 자리한 학교는 그림 속의 전경으로 보였고, 학교 안의 찻집에서 손님에게 파인애플 차를 대접하는 여유도 있었다. 신동파를 유난히 좋아하던 필리핀 사람들, 농구를 즐길 만큼 생활의 넉넉함도 있었다.
배가 대양으로 들어갈수록 송대길은 어쩐지 쓸쓸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갈매기가 동행해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처음 승선했을 때의 긴장감이 뭉개지고 있기 때문이다. 빵빵하게 부풀어 있던 긴장이라는 풍선이 조금씩 바람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삼항사 역할을 끝내고 이항사 역할로 원대 복귀했다. 그동안 업무를 바꿔서 일해준 삼항사가 마냥 고맙다. 일이란 기본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인즉, 삼항사 업무를 건너뛰었더라면 기둥의 주춧돌이 빠진 것처럼 불완전한 항해사가 되었을 뻔했다. 자신이 항만청장이라면 삼항사에게 이등항해사 면허장을 그저 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대양에 들어서면서 침로를 자동항법으로 바꿔놓았다.
대권(大圈)에다 항로를 얹어 놓은 침로 설정이다. 대권을 어떻게 긋느냐고? 지구본을 갖다 놓고, 출발점과 도착점을 찍고는 먹줄로 퉁기면 최단거리 대권이 그어진다. 물론 항로에 장애물이 있으면 둘러 그어야겠지만.
태평양 멀리 조업하는 몇 척의 어선을 제외하고는 시계(視界) 내에 들어오는 배는 없다. 망망대해는 전쟁터와 같다. 많은 시간 동안 고독과 싸워야 하는 싸움터. 특히 넓은 바다에서, 한밤중 당직 시간이 치열한 싸움이 될 것이다.
선교(Bridge)라는 작업장은 앉아 있는 것을 불허할 뿐만 아니라 야간에는 빛의 침입을 불허한다. 바깥 전후좌우에서 접근하는 선박이나 물체의 불빛을 최대한 신속히, 정확하게 식별해야 하므로 선교 안의 어둠은 필수적이다. 불빛이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해도실의 전등을 커튼으로 가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차 안을 소등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부의 불빛이 견시(見視, Lookout)를 방해하니까.
삼항사 업무에서 이항사 업무로 옮긴 후 크게 달라진 점의 하나는 무엇보다 근무 시간의 변화이다. 독자를 위해서 당직근무 시간을 적어본다.
삼항사: 08~12시, 20~24시
이항사: 12~16시, 00~04시
일항사: 16~20시, 04~08시
신기하게도 이러한 당직시간의 프레임은 세계 어느 나라의 선박을 불문하고 만고의 진리처럼 지켜진다. 항해부서뿐만이 아니라 기관부서도 마찬가지다. 해운의 프론티어 영국이 사용하기 시작하자 세계가 따라하고 있다. 이제 글로벌 제도로 굳어져버렸다. 하루에 4시간 당직(Shift)을 두 번씩 서는 것에도 변화가 없고, 국제운수노조(ITF)가 이 3교대 제도에 시비를 걸지 않는 것은 해운의 특수성을 감안한 탓일 것이다.
그러니 이항사의 당직시간은 한낮과 한밤 두 번이다.
***
밤 당직시간.
“2항사님, 로맨스 스토리 좀 들려주세요. 멋쟁이라서 여자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어둠 속, 퍽 조용한 분위기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조타수 김씨가 슬그머니 이항사 송대길의 입을 열도록 유도한다. 낮 당직시간에는 각자의 일 때문에 한가하게 잡담할 시간이 없다. 밤 당직 시간은 대화하기가 좋고, 또 대화 없는 침묵은 고독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 여자들이 많았음을 인정한다. 많은 여성들이 호감을 베푼 것도 거짓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딱 부러지게 만들어낸 사랑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어쩌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실속 없는 사랑을 한 탓일까.
“어차피 하루 여덟 시간 같이 있게 될 터인데 내 이야기는 천천히 풀어내도록 하죠. 오늘은 김씨 이야기부터 들어봅시다.”
송대길은 자신보다 여섯 살 많은 조타수를 김 씨라고 불렀다. 김씨는 기다렸다는 듯 본인의 신상 보따리를 푸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어릴 때 호기심이 많았던 탓인지 어머니한테 내가 어디서 태어났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지요.” 김씨는 이야기의 테이프를 이어간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의 대답이 내가 다리 밑에서 났다고 하는 거예요."
"좀 서운했나요?" 송대길이 동정심을 보이며 물었다.
"내가 거지였던가 생각하니 참 서운했지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말을 해놓고 김씨는 피식 웃었다.
송대길이 김씨가 말한 의미를 파악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괜히 농담하시지 말고 지나온 이야기 한 번 해보세요."
"눈치를 챘군거려. 그럼 농담 따먹기 집어치우고 한 인간의 진지한 역사를 얘기해 볼게요."
김씨는 배를 타기 전 육상에서 어느 포장지 제조회사의 지게차 기사로 근무했다. 연말 어느 날 야근을 마친 경리 여직원을 집에 데려다주려는데 통행금지에 걸려 하는 수없이 가까운 곳으로 간다는 것이 여관이었다. 처음에는 따로 이불을 사용하였으나 미워하지 않았던 두 사람은 자는 중에 한 이불을 덮고 말았다. 결국 아이를 얻었고 결혼은 의무적으로 따라오게 된 것이었다. 회사의 사장과 직원 보기에 민망하여 직장을 그만두고 원양상선을 타게 된 동기였다고 동화구연처럼 풀어놓는다.
농담의 분위기에서 인생 탐조 분위기로 바뀌는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만물이 어둠을 머금고 잠잠한 시간에 김씨는 육지에 둔 아내와 아이를 떠올리는지 잠시 생각하는 로댕으로 변했다. 당시의 통행금지를 감사하는지, 불찰행동을 원망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꽤 재미있는 친구임에 틀림없다. 입심 좋기로 뛰어난 위인이라 할까. 먹물 같은 어둠과 고요가 덮인 선교에서 단 둘이 있기에는 세상에 이만한 동행은 없을 것 같다.
“아, 벌써 두 시군요. 야식 끓일 시간이네요.”
이야기를 멈추고 김씨는 야식 준비를 위해 주방으로 내려갔다.
칠흑 속에 혼자 남은 송대길, 주위의 뭔가로부터 포위된 느낌이다. 고독 대응법을 처칠한테서 배워야 한다. 고독한 나무가 자라기만 한다면 강하게 자란다는 것. 위안을 주는 말이다. 늘어진 신경이 있다면 탱탱하게 당겨야겠다.
측면선교(Wing Bridge)로 나가서 바람을 받는다. 별장의 발코니에 선 기분이다. 소금기 묻은 상쾌한 바람이 가슴을 밀친다. 베링해 밑에 활 모양을 하고 있는 알류산열도에서 화살로 쏜 찬바람 때문인가.
사위의 바닷물은 짙푸른 색으로 비친다. 시선 아래, 배가 해면을 가르고 지나가는 길에 튕겨 나오는 허연 물살이 보인다. 몇 달 전 모 선박의 기관사가 갑판 난간에서 물에 뛰어든 사건의 소식이 기억에서 살아난다. 생과 사의 갈림은 나노미터만큼이나 얇은 두께이고, 마이크로초만큼이나 짧은 시간인가 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두 눈으로 밀려들어오는 별들 가족!
충돌하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제 위치를 지키고 있는 별들이 감탄스럽다. 과학이 주는 가지런함이요, 문학이 주는 아름다움이며, 신이 주는 경외로움이다.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2차원에 해당하는 땅을 차지하려는 전쟁에 여념이 없었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희생됐다. 콜럼버스와 마젤란 같은 탐험가들이 대양을 횡단함으로써 지구가 편평하지 않다는 걸 직접 몸으로 체험했고, 곧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 케플러 같은 과학자가 잇따라 나타나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논증했다. 지구를 편평한 2차원의 생각에서 둥근 3차원의 생각으로 바꾸게 되었고, 여기서 더 나아가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으로 3차원의 사고를 전복시켰다. 그는 절대적인 시간이나 공간은 없으며, 상호관계 속에 변화하는 시공간이 존재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중력장의 힘에 의해 휘어지는 우주공간이 실제로 관측되면서 세상은 그의 주장을 수용했다. 이제 시공간의 4차원으로 사물과 인간과 사회를 보는 관점이 발전하게 됐다.
책에서 읽은 것이다.
어쩌면 과학자들이 지동설을 까발리는 바람에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불안은 더 커졌는지 모른다. 천동설을 믿도록 그대로 놔뒀더라면 별들이 움직이다가 자기들끼리 충돌을 하든 말든 지구는 무관심으로 지낼 수 있었을 터인데 말이다.
선교 안으로 들어왔을 때 은은한 된장 냄새가 코끝에 걸린다. 김 씨가 야식을 갖고 온다는 신호다. 계단통로가 굴뚝이 되어 냄새를 선교로 밀어 올리고 있다. 김씨가 야식을 간이테이블에 내려놓자 송대길은 정말 감격해 마지않았다.
“이 맛 때문에 야간당직 선다니까. 행복이 따로 없네!”
삼항사 당직엔 이러한 야식 시간이 없었다. 밤(Midnight) 당직의 묘미가 이런 데 있다. 누군가 행복을
공식으로 표시하는 지혜를 보였든가.
행복지수=가진 것/원하는 것
행복해지려면 분자를 늘리든지, 분모를 줄이든지 해야 한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분모를 줄이는 방법을 쓸 것이나 현실은 인간의 욕심 때문에 분자를 늘이는데 집중할 것이다. 도적질이나 부정한 짓을 하거나 거짓말을 해서라도 더 가지려는 마음. 사회적 성공은 조건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이지만 인간의 행복은 자기 속에 있다는 것을 왜 모르나.
“실력 발휘 좀 했습죠. 양파, 마늘, 멸치에다 꽁치 통조림, 그리고 계란을 확 풀어 넣고, 또 묵은 김치와 감자를 썰어 넣었습죠. 오늘 야식은 특별 요리이니 많이 드슈.”
서울말만 쓰던 김 씨가 갑자기 충청도 말씨로 바꿔 요리 레시피를 열거한다.
고향 생각과 더불어 가족 생각이 났다는 뜻인가. 김씨는 첫 휴가 갔을 때 시골 동네 어르신네들에게 커피를 대접한 것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앗다, 종지에다 따를 것이 아니러 사발에 부어라우.”
동네 어르신은 커피를 사발에 받고 마시다가,
“에그, 왜 이리 쓰디?” 결국 마시기를 포기하더라는 얘기를 거침없이 풀어 놓았다.
송대길 역시 풀어 놓을 만한 이야기는 많다. 극적인 사건들은 없지만 배에서 심심풀이로 떼우기에는 충분하다. 간혹 스타카토로 단락을 조절하고 포르테로 강조하면 흥미를 터뜨릴 수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엿가락 늘리듯 해서 시간을 메울 수도 있고. 장소팔과 고춘자를 흉내 내면 좌석의 분위기를 띄울 수도 있을 것이다.
***
하늘에 떠돌아다니는 구름은 자유 그 자체다. 도연명(陶淵明)은 특히 여름의 흰 구름을 두고 천산만봉(千山萬峰)을 마음대로 떠도는 광경으로 묘사했다. 구름은 막히는 데가 없이 넓은 하늘에서 마음껏 떠다니며 조화를 부린다. 용이 하늘에 올라가려면 구름을 타야 한다고 동화책은 말한다. 손오공도 구름 타고 마음대로 주유천하(周遊天下) 했다.
머리 위 떠도는 구름을 보며 망망한 바다 위에서 함께 배를 타고 가는 운명…. 이것은 결코 범연한 인연이 아니다.
구름을 상대하고 있는 낮 당직 시간에 후배 삼기사가 선교로 놀러왔다. 기관실에서만 있다 보니 바깥 공기가 그리웠다고 하면서 말벗 해드리겠다는 것이다.
굉장히 고마운 녀석이다. 뱃놈이 예의를 아는 것만으로도 되먹은 놈이다.
나이가 아직 새파란 그가 운명에 이끌려서인지 혹은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인지 그와 함께 같은 철판을 딛고 있다는 것은 보통의 인연이 아니다. 옷깃만 스치는 인연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송대길은 그래서 개인적인 질문을 던진다.
"삼기사, 애인 있어?”
“있었는데 부담 될까봐 자유세계로 풀어줬습니다.”
“무슨 말이야? 서로 떨어지면 자네의 의지와 관계없이 자유는 저절로 주어지는 거야.”
다소 사유가 포함된 철학적인 말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송대길이 주석을 붙인 말이다.
“그래도 선언을 해둬야 본인에게 덜 부담이 될 테니까요.” 젊은 친구가 꽤 사려 깊은 척한다.
“그래 잘했어. 부뚜막에 애 올려놓으면 걱정되는 건 당연해. 자꾸 생각하면 수면에 지장이 될 테고….
더구나 동쪽으로 항해할 때는 시차에 시달려 잠도 설치게 되니까.”
위로의 말을 잘하는 사람이 좋은 선배일 거라는 착각에 사로잡힐 만하다.
“일 년 후 휴가가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뭐?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군. 그렇게 쉬이 재회한다면 슬픈 마도로스 노래 앨범이 제대로 팔리겠어? 그냥 추억으로만 싸둬.”
“냉각펌프 소제할 때마다 자꾸 머리에 떠올라요.”
“냉각펌프가 갑자기?” 송대길이 연관성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해수욕장에서 본 그녀의 구릿빛 피부가 윤활유같이 환상적이었어요.”
“직업을 속일 수 없군. 좋은 환상을 생각하며 기계 기름칠은 잘하겠군.”
“기계는 다루는 대로 동작하니까 열심히 기계와 친해지려고 합니다.” 그는 덧붙인다. “이항사님은 애인 없어요? 애인 얼굴은 예뻐요?”
“사귄 여자들은 많지. 떠도는 구름처럼 지나가 버린 예날 이야기라구. 간혹 기억 속에 별처럼 떠오르는 여자들도 있지만 날이 밝아지면 별이 사라지듯 떠나버리지.”
“혹시… 이항사님은 시인이세요? 아니면 바람둥이?”
반격을 당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선배를 감히…농지거리로?”
굴밤은 이런 때에 필요한 것. 삼기사는 머리를 긁적인다.
그러면서 배에서 하는 대화가 다 그렇지, 송대길은 속으로 웃었다.
***
지난 항차에 있었던 일.
일항사는 새로 승선한 갑판원을 선교 측면갑판으로 불러올렸다. 처음 배를 탔으니 일항사가 교육을 겸해서 뭔가 가르쳐주기 위해서다. 부서장으로서 승선경력이 많으니 가르쳐줄 것도 많을 것이다. 교육 전에 대화는 여담으로 시작됐다.
일항사가 먼저 질문을 던진다.
“취직은 금방 되었어? 요즘 배타기가 쉽지 않을 텐데….”
“선원계장님한테 조금 인사를 했습니다.”
뇌물을 줬다고 태연하게 말하다니 꽤 대담한 친구로군.
“인사 값이 얼만지 모르지만 그걸 갚기 위해서도 열심히 근무해야 되겠구먼.” 일항사가 근엄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갑판원은 근엄한 충고로 받아들였다.
“부모님한테도 편지를 자주 쓰도록 해. 그게 효도야. 집에 비바람만 불어도 바다에 보낸 자식 걱정하시는 거야.”
일항사는 자식한테 이야기하듯 말했다. 부모는 자식이 항상 가까운 데서 근무하는 줄 생각하는데 익숙하다.
“그렇지 않아도 편지를 써가지고 왔습니다. 180도 통과할 때 우체통에 넣는다고 조타수께서 써가지고 오라고 해서요.”
황당하기도 하지만 일항사는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태연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우체통이 어떻게 생겼다고 하던?”
“빨간색으로 일반 우체통과 같다고 합디다. 180도 지날 때 방울소리가 나면 그때 편지를 넣으면 된다고 했어요. 180도는 날짜가 바뀌는 선인데 지구상엔 하나밖에 없다고 했어요.”
뒤에 말은 맞는 말이지만, 앞의 말은 해괴한 장난이다.
조타수는 처음 배에 오르는 선원들에겐 한 번씩 놀려먹는 묘한 심보가 있다. 그날도 한 순진한 사람을 완전한 바보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만우절은 아니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웃음거리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 남자만의 세계에서 있을 법한 일이다.
누구나 처음 배를 탈 때는 어리둥절해진다. 알 듯 하면서도 모르는 바가 많은 것이 배이기도 하다. 적어도 6개월은 지나야 배의 구석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빌딩만한 배안에는 선실이나 창고, 기관실 하며 찾아가는 복도들이 좁은 골목길 같기만 하다. 24시간 쿵덩 방아를 찧어대는 기관실은 왜 그리 소음이 큰지…. 모든 게 초보에겐 겁이 나면서 생소하기만 하다.
***
배는 설정해 놓은 침로대로 계속 항해를 하고 있다. 일본 출항 후 지금까지 쿠로시오(黑潮) 해류가 밀어준 덕분에 스피드를 얻어 순조롭게 달려왔다. 지구를 돌아다니는 한 이 날짜변경선을 수없이 횡단할 것이다. 날짜변경선이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태평양을 지나가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만약 이것이 여러 나라에 복잡하게 걸쳐 있었더라면 같은 마을을 두고 하루가 완전히 달라지는 혼선이 발생했을 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도(經度)의 시작을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로 하고 날짜변경선을 사람이 한적한 태평양 한가운데로 정한 것은 선견지명 있는 일이다.
이번에 새로 부임한 선장의 달력에는 날짜변경선 통과 예정일에 큰 동그라미가 둘러져 있다. 고사(告祀)를 지내는 날로 표시해 놓은 것이다. 출항하기 전에 조리장으로 하여금 잘생긴 돼지머리를 주문토록 한 것은 이해가는 일이다.
고사를 지내는 날에는 하루 쉬기로 했다.
쉬는 날을 상쾌한 기분으로 보내기 위해 오전 시간에 거주구역 대청소가 실시됐다. 남자 냄새가 찌든 침실을 한없이 넓은 바다의 공기로 전환시키고 방바닥과 벽과 천정을 깨끗이 닦으며 침대 시트를 당기고 책상도 정리했다. 이만 하면 해신과 즐겁게 놀아줄 준비가 된 셈이다.
모두들 배의 사령탑인 선교로 모였다.
선장은 선교를 신성하게 해두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선장용으로 별도로 마련해둔 의자는 평소에 다른 사람이 앉는 것은 신권 도전으로 간주한다. 100킬로그램의 거구답게 권위의 무게도 대단함을 선원들은 알고 있다. 선장이 의자에 앉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는 뭔가 무너질 것 같은 불안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실제로 의자가 무너지는 것일 수도 있고, 그의 권위가 손상 받는 일일 수도 있다. 그는 매일 갑판에서 4km를 뛰는 감량헬스에 들어갔지만 밤에 배가 고파 라면을 두 개씩 끓여 먹음으로써 다이어트는 실패하고 말았다.
돼지머리를 앞세워 제사상이 선교 중앙에 차려졌다.
“바다 신령님, 우쨌든 좋은 날씨 주이소. 오늘은 잘 익은 돼지머리 바칩니더.”
고향이 경상도인 선장은 일항사로 하여금 잔에 술을 붓도록 하고 먼저 절을 한다.
다음은 기관장이 잔을 붓고 기관부서를 대표해서 몇 마디를 얹는다.
“이러쿰 거시기한 날에 엔진 핑핑 돌아가게스리 해주심쓰그나잉. 한잔 쓱 시원혀 받으시라우.”
해신이 전라도 말을 잘 알아듣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기관장은 전통 사투리로 해신에게 읍소한 것을 만족하게 생각하는 듯 어깨를 울렁거렸다.
당직을 제외한 선원들이 일렬로 돼지머리 앞에 엎드렸다. 선장은 이항사 송대길을 예수쟁이라 하여 절하는 부분에서는 열외로 인정하는 배려를 보였다. 평소 식사 전 몇 초 고개를 숙이곤 하는 것이 고작이었는데도 예수쟁이로 제켜놓은 것이다.
송대길은 제사 후 돼지 골수육 먹는 것은 양보했다. 선장이 너무 좋아하는 부위일 뿐만 아니라 돼지머리에 절도 하지 않은 자가 젓가락 내밀기가 미안해서이다.
고사의 핑계로 술잔을 돌리는 것은 자연스런 과정에 속한다. 선장은 이런 때의 술은 정도가 조금 과하더라도 용인한다. 그러나 술주정으로 몸싸움 같은 것은 곤란하다. 회사에서 가장 엄하게 다루는 부분도 선내 쟁투이다. 아차 하는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주위 어디를 봐도 뛰어내리기를 유혹하는 퍼런 물뿐이다. 뛰어내린다고 해도 구경꾼이 없을뿐더러 구조해줄 119대원도 없다.
제사 후 탁구시합은 건강증진 핑계로 선원의 단합에 초점을 두고 있다. 스포츠맨십이라는 것이 배(Ship)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배를 타고 있는 것만으로도 합당한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고 선장은 그럴듯하게 해석을 갖다 붙인다.
경기가 너무 격렬하여 탁구라켓이 탁구장 천정을 치곤했다. 이애리사가 일전에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에서 몰고 온 탁구 붐은 파도를 타서 태평양 한가운데까지 온 느낌. 땀으로 젖은 옷은 비옷이 되어 나중에는 팬츠만 남기고 시합에 몰입한다.
‘아! 남자들, 스트레스는 이런 식으로 푸는군!’
대체로의 진단이다.
탁구대회를 마치고 저녁을 끝낸 후에도 열정을 가라앉힐 겨를이 없다. 오락시간을 갖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오늘 저녁은 내 사무실에서 자리 한번 펴봄세. 자릿세는 받지 않을기라.”
선장이 자기 사무실로 안내한 것은 나름대로의 의도가 있다. 본선에 부임한 후 다같이 모여 차분하게 업무를 의논해본 적이 없었다. 인계인수에 바빠 그럴 시간이 없었고, 사무적인 모임보다는 자연스런 모임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카드놀이는 충분히 부담 없는 자리를 조성해줄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당직시간에 걸려 카드놀이에 참석하지 못하는 일기사가 시기 반, 농 반으로 끼어든다.
“선장님, 도박장 제공은 3년 이하의 징역, 2,000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일기사가 이런 것까지 알고 있다는 것은 상상 밖이다.
여기에 이기사가 옆구리에 반창고 붙이는 말을 한다.
“여긴 하우스 도박이 아니니 범죄 문제는 참작이 될 수도 있겠죠.”
일기사와 이기사는 학창 때 ‘도박’학점을 얻었냐고 조크하기도.
선내도박은 걱정 바깥이다. 선원들이 돈을 구경할 수 있는 것은 급료의 10% 정도밖에 안 되는 상륙수당뿐이다. 그것도 항구에 입항하여 대리점이 바꿔줘야 손에 쥘 수 있다.
***
날짜변경선을 지나 일주일을 더 항해하니 멀리 멕시코의 연안이 레이더에 나타난다.
아직 겨울이 접어들지 않은 계절이라서 그런지 지나온 태평양 뱃길은 그야말로 태평했다. 태평스럽게 연안을 따라 일주일 정도 더 가면 파나마 운하에 이를 것이다.
의논한 듯 조용한 하늘과 바다 사이로 배는 예정했던 길을 부지런히 피스톤을 돌리며 불평 없이 가고 있다.
돌고래들이 가까이 와서 배와 함께 헤엄쳐 간다. 배에 부딪힐듯하면서도 잘 따라온다. 도대체 이것들이 어디까지 함께 가려나?
멕시코 연해 바람은 배의 마스트를 친절하게 쓰다듬고 지나간다. 상쾌하다.
별은 하늘에 총총하고, 달은 구름 안에 반쯤 가려져 있다. 오리엔트 하늘이나 아메리카 하늘이나 다른 점이 없다.
승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리원 정군이 도무지 일손을 잡지 못하고 고향 생각에 정신을 팔고 있는 일이 잦다. 고향에 무엇을 남겨 놓았기에 멍하게 시선을 내리고 있는지 물어봐도 반응을 사양할 뿐이다. 어둠 속에서 갑판 난간을 잡고 오랫동안 뱃길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위험을 예고하기도 한다.
때때로 물은 사람의 혼을 흡입하는 마력을 보인다. 조리원의 경우 더욱 걱정되는 것은 빈 위스키 병이 침실에 자주 보인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는 조리부서를 총괄하고 있는 일항사가 무언가 조언을 해줘야 하는 상황이다.
“미스터 김, 요즘 술을 많이 마신다고 하던데 주량을 줄이도록 해봐. 혹시, 걱정이라도 있어?”
배에서 가장 어린 그에게도 어떤 고민이 있었을까?
“술 마시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어요.” 평소 말이 적은 그가 즉각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기적 중에 기적이다.
일항사는 어물정 넘어갈 수 없었다.
"여자 때문이야?"
"네. 그렇습니다. 자꾸 생각나요."
“애인의 나이는?”
“제보다 다섯 살 많아요.”
이봐라! 일항사는 점차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리고 태연하게 질문을 잇는다.
“많이 예뻐? 나이를 극복한 사랑이니 굉장한 미인인가 봐.”
“네, 아주 예뻐요. 울 엄마보다도 더 예뻐요.”
“어떻게 엄마와 비교하니? 그럼 엄마도 예쁘겠군.”
여기서 조리원은 대답을 늦추었다. 한참 후
“저의 이모예요. 절 많이 좋아해요. 저도 이모가 좋아요.”
했다.
일항사와 조리원 간의 진기한 상담 내용이다.
그동안 많은 선원들과 상담을 해봤지만 이처럼 난처한 경험은 처음이라는 것이 일항사의 표현이다. 사랑은 땅의 국경뿐만 아니라 혈연의 국경도 없나? 망망대해에서 쉼 없이 고독에 쌓여있는 것은 분명 문제의 소지가 있다. 그의 사랑 문제에 대하여 일항사가 해 줄 수 있는 조언은 거의 없었다는 것. 다만 술과 난간을 조심하라는 말만 하고 침실로 보냈다나.
송대길은 그가 제발 슬리퍼를 신고 나가지 않기를 기원했다. 시원한 물이 좋아 달리는 배 위에서 물속으로 뛰어든 사람들은 대부분 슬리퍼를 벗어두었다는 이야기다. 유언과 다름없다. 구두를 벗어둔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 연구가 더 필요하다.
다행히 그는 갑판에 슬리퍼를 벗어두지 않았지만 승선계약기간 10개월의 반도 채우지 못하고 자원하여 다음 일본에서 하선하고 말았다.
이모와의 사랑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신문에 실리지 않아 아무도 모른다.
***
지난 항차 하선한 선원 중에 유난히 친한 두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조리수와 조리원이다. 항상 취사장에서 칼을 잡고 일하고 있었음에도 칼날을 상대방에게 보인 적이 없이 절친한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두 사람은 같은 날에 고향 완도 섬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미군 등 외국 사람이 많은 이태원 주위에서 맴돌다 소피텔 호텔의 벨보이로 일하게 되었다. 그러자 나이 많은 조리사가 먼저 조리사 면허를 취득하여 호텔의 조리사가 되었고, 조리원은 그 선배의 권유로 호텔 주방에 합류했다.
같은 배에 탄 것은 우연이라기보다는 치밀한 작전의 결과이다. 외항선을 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소문에 선배가 먼저 배를 타고, 후배는 선배의 로비 루트를 제공 받아 배를 타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조리수는 미모가 부족해 혼기를 놓친 여동생을 조리원에게 떠맡겨 치통에 시달리던 이빨 하나를 빼버린 것 같다고 노골적으로 고백했다. 그래도 후배는 마냥 좋았다. 송금한 월급을 꼬박꼬박 챙겨주는 색시가 고맙기 때문.
타 선박에서 구타사건으로 감봉처분을 받은 갑판원이 승선했다. 친한 동료와 신상 이야기를 하는 중에 자기 부인이 부산 다방 세계에서는 이름난 미인이었다고 한 게 화근이었다. 자랑이 좀 과하다고 생각한 동료는 고의적인 말실수를 했다.
“맞아! 그날 저녁 Y동 여관에서 내가 데리고 잤던 그 여자인가 봐.”
대답 대신 주먹이 날라 왔다.
즉시 선내 선원인사위원회가 열렸고, 머리 뚜껑 열릴 만한 당시 상황을 감안하여 가해자에게 3개월 감봉조치를 회사에 건의했다고 한다.
자랑을 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잊었던가. 물오리 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사소한 일로 인해 미운 오리새끼로 따돌려질 때가 있다. 밤낮으로 돌아가는 엔진의 소음, 시차로 인한 불면이 선원들의 정서를 예민하게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누군가 4 '척'을 하지 말라고 했던가. '아는 척, 가진 척, 잘난 척, 있는 척' 말이다.
전임 이기사의 경우는 시한부 승선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약혼자에게 3년만 승선하는 것으로 각서를 써주었기 때문에 지난 항차를 마지막으로 하선했다. 약혼이 무효가 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것. 항차의 길이가 맞지 않거나 선원교대가 불가한 항구에 입항했을 때는 교대 타이밍이 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 선박증서처럼 6개월 연장도 가능한지 물어볼 일이다.
한 사람 한 사람 다 귀한 존재다. 육지에 발붙일 곳이 없어 바다로 나왔으니 그들의 숨은 이야기들은 들을수록 가슴을 후밀 것이다. 애정을 갖고 서로를 격려하지 않을 때 선상생활은 고민을 덮어쓰고 하선할 날만 기다려야 한다. 제각기 자신이 옳고 똑똑하다고 생각할 때 부닥치는 일이 많다. 오히려 자신의 한계, 즉 능력의 한계든, 육체의 한계든, 두뇌의 한계든 혹은 인간관계의 한계든 스스로 그 한계를 느낄 때 창조의 힘과 회복의 관계가 나타날 것이다.
배도 사람이 머무는 소공동체인지라 인간 이야기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뱀이 간 길은 뱀이 더 잘 안다. 배가 가는 길은 배가 기록해나갈(Log) 것이다.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정자로 들어가듯 폭풍우를 만나면 피항지로 들어간다. 들어가고 나오는 길에 이야기가 묻어나고 역사가 엮여질 것이다.
출항한 지 20여일이 지나다 보니 어느덧 파나마가 가까워졌다. 파나마 운하를 지나는 동안 또 다른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