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알래스카 항해

알래스카 항해(상)

오선닥 2012. 11. 11. 18:51

80년대 후반

한국과 알래스카를 배로 왕래하면서

젊은 선장은 알래스카에 대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감동했다.

약 150년 전 러시아는 알래스카를 미국에

720만 달러를 받고 팔았다.

매각 후 30년 만에 동토의 땅에 금광이 터지고……

러시아는 땅을 치고 통곡?

알래스카의 신비를 파고 들어가는데…….

 

세 번에 걸쳐 연재합니다.

 

 

 

 

 

알래스카 항해(상)

 

 

알래스카 하면 우선 빙하, 화산, 북극곰, 에스키모, 백야 등의 단어가 떠오른다.

누군가 비행기에서 알래스카를 내려다보면 감탄사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툰드라와 강우림 위에 펼쳐지는 풍요롭고 아름다운 경관은 속세의 땅임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수천 마리의 바다사자 울음소리는 해변의 파도 부서지는 소리를 능가하고, 가파른 바위산 절벽에서 놀고 있는 산양은 오히려 침착함을 보이며, 해안 멀리 얼음덩어리 위에 앉아 있는 북극곰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사색자임을 자처한다.

 

“관광 온 게 아니고, 똥 푸러 왔는데…….”

 

오선덕의 직업의식이 발동하여 또 감동의 분위기를 깨뜨린다.

암모니아 화물을 실으러 온 것을 누가 모르나. 아름다운 경치를 논하고 있는데 하필 오물 얘기를 해서 분위기에 재를 뿌릴 게 뭐람.

 

누구는 오선덕을 밥맛없는 선장이라고 하겠지만 그도 낭만에 동참할 줄 안다. 오로라를 보고 감탄하고 있는 선원이 있다면 조용히 옆에 가서,

 

“극광, 기똥차지!?”

 

한 마디 해 줄 수 있다.

 

다만 지금은 선박을 안전하게 몰아 알래스카 항구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신참 선원 한 명이 오선덕 선장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에스키모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사뭇 궁금해요.”

 

처음 배를 타고, 그것도 첫 항해지가 알래스카인 선원에게는 모든 것이 신비롭게 느껴지는가 보다.

오선덕은 엉뚱했다.

 

“그렇게 궁금해할 것 없어. 지금 당장 거울에 가서 자신의 얼굴을 봐. 그게 바로 에스키모인이야.”

 

눈치는 빨라 선원은 싱긋이 웃었다.

 

에스키모 조상이 정말 한국 쪽에서 왔을까?

거울에 보이는 선원의 얼굴은 물고기를 날것으로 먹을 것같이 보이진 않았다.

 

 

46억 년 전 지구는 이글거리는 불덩어리로 태어났다고 했지.

그러던 것이 지금으로부터 60만 년 전 최초의 빙하기를 맞이했다. 대략 10만년 주기로 빙하가 일어나다가 마지막 빙하기 때 시베리아와 알래스카가 대륙붕에서 연결된 것이다.

 

알래스카의 원주민은 알래스카 인디언이라고도 한다. 그린란드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인 일만 년 전 베링해협의 빙원을 건너 온 황색계의 몽골 인종이다. 그들의 후손이 지금의 이누이트(Inuit)족과 알류트(Aleut)족. 한국인과 비슷한 면이 많고, 남미로 내려간 인디언도 이들의 후손일 거라고 추측한다.

 

에스키모인은 이누이트인이라고도 한다. 큰 도시에 사는 원주민을 제외하고는 알래스카 서부 및 북부에 산재해 있다. 에스키모인은 전세계 6만 명 정도로 알래스카, 그린란드 및 캐나다에 각각 3만, 2만 및 1만 명이 사는 것으로 전해진다. 알류트인은 해양인으로서 알류샨열도에 팔천 명 정도 산재해 있다.

 

오늘날 에스키모인은 카리부 고기를 뜯으며 얼음이 깨진 물길 리드를 따라 고래잡이에 나간다. 잡은 고래는 육지로 끌고 와서 고래 등위에 올라가 해체작업을 한다.

 

알래스카인들은 여름철에 연어잡이, 가을철에 무스사냥, 겨울에서 봄까지는 덫으로 잡는 다양한 작은 동물들이 있다. 동면중인 곰 사냥은 이 무렵에 이뤄진다.

 

 

옛날 에스키모인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참으로 궁금하다.

그들의 전형적 주거 형태는 툰드라(동토)의 잔디가 입혀진 흙을 네모나게 잘라 쌓아올린 방 하나의 반지하식 흙담집 ‘이글루’다. 여름에는 대개 텐트에서 산다. 눈움집은 아주 추운 지방만 가능하고 남자들이 사냥이나 어로에 나갈 때 임시 거처지로 한 시간 만에 만들 수 있는 집이다.

 

그들의 옛 생활은 1982년 북빙양 해안에서 발견된 다섯 구의 시체가 잘 말해준다.

 

때는 오백 년 전.

겨울이 깊어감에 낮은 짧아지고 수평선 위로 해가 뜨지 않는다. 폭풍은 높은 파도와 강한 조류를 몰고 와 얼음덩어리를 해안으로 밀어 올려놓는다. 마을 사람들은 겨울폭풍에 대비해 램프를 준비하고, 저장 창고에 식량을 비축하며, 부엌마다 식수얼음을 녹이기 위한 나화를 준비한다. 그러던 중 폭풍이 몰아치는 어느 겨울밤, 해안으로부터 몰려온 커다란 얼음덩어리가 해변의 집 한 채를 덮어버린다.

 

얼음과 눈에 덮인 채 오백 년이 흐른 후 이곳을 팠을 때 다섯 구의 시체가 반듯이 누운 채 발견됐다. 사십 세가량의 여자, 이십 세가량의 처녀, 사춘기의 남자애, 그리고 여자 어린애 두 명이었다.

 

두 성인의 시체는 하층에서 발견됐고 보존 상태는 좋았으나, 어린 아이 세 명은 상층에서 발견됐는데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았고 뼈 조각만 남았다. 지표 부근 시체는 영구동결이 되지 않아 부식한 걸로 여겨진다.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은 옷을 입지 않은 채 짐승가죽털 담요에 덮여 있었다. 시체 주위에는 사슴가죽 옷, 뿔빗, 가죽신, 뿔곡괭이, 비녀장, 머리핀, 공예품 등이 있었다. 당시 원시생활을 엿볼 수 있다. 시체 중에 남자 어른의 것이 없는 것은 아마 사냥을 나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던 것 같다.

 

시체의 검사 결과 어른은 영양실조에 걸려 있었고, 폐가 검었으며 이빨이 닳아 있었다. 폐가 검은 것은 겨울 램프 연기를 장시간 들이마신 탓이고, 이빨이 닳은 것은 가죽이나 실을 너무 많이 뜯은 결과가 아니가 생각한다. 당시 여자들은 바느질과 물바켓 및 흙항아리를 만들었고 남자들은 수일간 사냥을 나갈 때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혼을 두 번이나 경험한 조리사 박 씨는 이제 아예 알래스카에서 살고 싶단다.

오선덕에게는 그의 말이 농담으로 들릴 수밖에.

 

“하필 그 혹독한 곳에서? 차라리 냉장고 속에서 살지 않고?”

 

배를 오래 타다 보면 정신이 따로 노는 경우가 있다. 더구나 심각한 가정 문제가 겹치면 정신은 이성의 구심력을 잃고 감성의 원심력만 작용할 뿐이다.

 

“이제 결혼은 절대 안 합니다. 그렇다고 섹스를 포기하진 않을 거고요.”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에스키모인의 성생활이 부럽다고 했다.

 

에스키모의 전통적 성생활은 사랑과 섹스는 무관한 것이라는 데 근거한다. 남자가 한 여자만을 고집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여자의 입장도 남자들에게 쾌락을 안겨주는 것이 즐거울 뿐이다.

 

혹한에서 옷을 자주 빨지 못해 이를 잡는다든지, 단벌옷을 손질할 때 알몸이 되는 경우가 많아 어린 시절부터 벌거벗은 남녀를 서로 보는데 익숙해져 있다. 알몸뚱이와 육체의 욕구는 수치스런 것이 아니라는 관념을 심어주었다.

 

오 선장은 박 씨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 싶었다.

 

“그래도 그들에게 룰은 있는 거여. 몰래 뒷문으로 찾아다니는 일은 없었다구. 가령 사냥을 나간다든지 손님을 맞이할 때만 아내를 빌려주는 거여.”

 

“대가족을 이루기 위해 의도적으로 아내를 바꿔 잔다고도 하던데요.”

 

박 씨는 꽤나 많이 알아봤던 모양이다.

멀리 사냥을 나갈 때 다른 아내를 대동하곤 한다. 같이 자는 것은 물론이다. 부인의 교환은 엄격한 합의 하에 이뤄진다. 부락 간에도 상호 합의 하에 부부를 바꿔 잠자기도 하며 이때 생긴 자녀는 한가족으로 만들었다. 자녀들에게 이복동생이 있음을 알리는 것은 자랑이기도 했다.

 

“박 씨, 꿈 깨요. 그런 풍습은 마을에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사라졌다구.”

 

“열여섯 살 무렵이면 결혼한다는데 방 하나에 어떻게 잘까요?”

 

걱정도 팔자. 제일 큰딸이 벽 쪽으로 해서 막내딸이 엄마 옆에 눕고, 엄마 옆에 아버지, 그리고 아들들이 차례로 눕는다는 건 상식 아닐까.

 

서로 웃고 말았다.

 

 

 

인디언 말로 ‘거대한 땅’을 의미하는 ‘알래스카’는 한반도의 여섯 배나 되는 면적인데도 문명인이 발들여 놓기가 어렵다고 생각되었던 땅이다. 미국 50개 주의 하나인 알래스카는 미국 면적의 2할을 차지한다. 인구 60만에 그치지만 대부분이 백인이고 원주민은 13퍼센트에 불과하다.

 

지형의 이름이 에스키모어, 러시아어, 영어 등의 여러 형태로 된 것은 당시 발견한 사람들의 사용 언어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단군의 디아스포라가 이곳에 건너가지 않을 리 없다. 김치 인구가 이미 육천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잘 살아보자’의 꿈을 안고 이 추운 곳까지 온 것이다.

 

자고로 해양의 역사는 해양탐험가들이 바다에 매골하거나 원주민에게 피살된 경우가 많다. 덴마크의 탐험가인 조나센 베링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그는 1741년 러시아 황제 표트르 1세의 의뢰를 받아 북태평양을 탐험하다가 알래스카를 발견해 전세계에 러시아 영토로 인정받았다. 베링이 알래스카의 남동부에 있는 앨리아스 산을 발견하고 돌아가다가 캄차카 부근 작은 섬에 좌초하여 그는 죽고 나머지 생존자들은 수달가죽을 갖고 러시아로 돌아가서 상인들을 끌어들였다.

 

1784년 러시아인이 처음 정착한 곳은 알래스카 남부 코디악(Kodiak) 섬이었다. 그 후 80년 동안 알래스카는 러시아 식민지로 남아 있었다.

 

이 거대한 땅을 러시아는 왜 미국에 팔아먹었을까?

쿠릴 네 개 섬이 그렇고, 센카쿠도 그렇고, 심지어 눈곱만한 독도도 서로 차지하려고 기를 쓰는 판에 이 큰 땅에서 땅따먹기 경쟁을 포기하다니.

 

알래스카가 미․영․소의 상업 경쟁지가 되고 알래스카 인디언의 공격이 심해지자 러시아는 골머리를 앓다가 1867년 미국에 팔아버렸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이 태동할 무렵이랄까.

 

720만 달러에?

당시에는 큰돈이었던가 보다.

매입 당시 백인은 500명에 불과했고 미국인은 150명뿐이었다.

그런데 많은 원주민의 권리를 무시한 채 땅을 백인 마음대로 팔아먹어도 되나?

 

거래는 백인 잔치로 이뤄졌다.

그런데 매입 반대자들은 북위60~70도에 위치한 툰드라 동토를 비싸게 매입한 것을 ‘실패한 거래’라고 하면서 빗대어 곱씹었다.

 

“슈어드 아이스박스!”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윌리엄 슈어드(William Seward)는 지금 하늘나라에서 이 비난을 재생해서 듣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고 웃으면서 말하겠지.

 

“지금 다들 내 덕에 큰 땅 차지해서 잘 살고 있으면서…….”

 

그의 공로를 기념하여 남부 석탄 수출 항구는 ‘슈어드항’으로 이름 지었다.

 

매각 후 순수 러시아인은 알래스카를 떠났으나 미국은 아직 정식 정부 관리를 두지 않았고 1884년 금광이 발견될 기미가 보이자 알래스카를 오레곤주의 관리 하에 둔다고 선언했다.

드디어 1904년 놀라운 일이 터져버렸다.

 

“금광? ~대박!”

 

알래스카 남동부의 클론다이크(Klondike)라는 곳에서 채굴한 금이 무려 10억 달러어치나 되었다. 동토에서 돈이 쏟아지자 1912년 알래스카는 미합중국으로 편입되고, 인구는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1914년 남부 슈어드(Seward)와 내륙 페어뱅크(Fair Bank) 간에는 알래스카철도가 부설됐다.

 

철도건설 현장이 쿡만의 앵커리지(Anchorage)였다. 앵커리지라는 이름도 철도부설 장비를 적재한 선박이 묘박한 곳이라는 데서 따온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 때 미 본토로부터 200여 가구가 앵커리지 부근에 이주해 왔다. 앵커리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전략방위기지로 사용되면서 알래스카 고속도로 2400킬로미터가 건설되기도 했다. 1943년경에는 미군 및 군속이 14만 명가량 거주했다. 알류샨열도 최서단 아투섬에서는 일본과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알래스카는 1959년 미국의 49번째 주로 탄생했고, 같은 해 하와이가 50번째 주가 됐다.

 

알래스카 인구의 반이 앵커리지 부근에 거주하고 나머지 반은 대부분 알래스카만에 연한 마을에 살고 있다.

 

그 후 러시아가 더욱 배 아파하는 부분은 1968년 북극해에 연하는 노스슬로프(North Slope)에서 원유매장량 96억 배럴의 대유전이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노스슬로프에서 태평양 연안의 부동항 발디즈에 이르는 1300킬로미터의 알래스카 종단 송유관을 1977년 준공 개통하여 하루 200만 배럴의 원유 수송이 가능하게 됐다.

 

“이제 석유도 팔아먹게 됐으니 원주민 보상을 좀 해줘야지.”

 

선심이라도 쓰듯 미국 정부는 1982년부터 일 년 이상 거주자한 원주민에게 매년 이천 달러씩 나눠주고 있다. 알래스카의 천연가스와 원유 생산량이 미국 전체의 25퍼센트나 되니 이제 선심 쓸 때도 됐다는 것이다. 비록 돈을 주고 샀지만 거저 얻은 것과 다름없으니까.

 

원주민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 금액을 받는다. 나이나 직업의 유무에 관계없이 무조건 머릿수를 기준으로 평생 지불받는다. 원주민들이 국제결혼을 해서 혼혈아를 낳을 경우 그 아이에게는 절반 금액을 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4인 가족 기준 연간 일천만 원 상당의 돈으로 인해 원주민이 더 게을러졌다는 통계는 원주민 지도자로 하여금 걱정거리로 만든다. 신은 공평하기 짝이 없어 일하는 자만 먹으라고 했는데.

 

“차라리 원주민과 결혼해 보상금으로 먹고 살까요? 어차피 몽골 피를 이어받았으니 유전자 차이는 별로 없을 테니 말일세.”

 

나이 지긋한 기관장이 이런 농담을 하다니.

단군의 피로 원주민 형세 하는데 그다지 지장 없다는 것.

 

미개발의 광물자원은 지금 계속해서 탐색되어 개발되고 있다. 아마 이 때문에 알래스카는 혼란과 갈등에 처해 있는지도 모른다. 석유회사들이 돈보따리와 기계뭉치를 갖고 속속 들어오고 있다.

 

지역문제뿐만 아니라 개인의 복지문제로 주와 연방조직 간에 싸움이 일어나고 있다. 연방정부의 간섭, 생태학적 논쟁, 원주민의 권리, 개발권, 심지어는 연안에 어로하는 외국 선원들도 주가 당면하고 있는 골칫거리 중의 하나이다.

 

그동안 알래스카는 토지개발이 상당히 제한돼 왔다. 주요한 원인은 주(州)로 편입되기 전 한 세기 동안 토지가 연방정부 단독 소유였다는 점이다. 최근 땅 소유 양태는 급변하고 있다.

 

원주민은 토지권 주장을 강력히 해오다가 1971년 주장을 철회하고 대신 얼마의 토지와 수역을 얻음과 동시에 10억 달러 상당의 보상을 받았다. 이 보상금은 원주민정착법에 의해서 원주민의 촌락 및 지역의 관리공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1994년 토지선정작업이 완료돼 알래스카 전역은 대체로 주정부 30%, 원주민 12% 소유로 되고, 나머지는 연방정부용으로 국립공원, 국립야생산림보존지, 군사기지 등으로 사용되게 됐다. 개인 소유는 0.5%에 불과하다.

 

 

 

알래스카로 가는 중 조업 중인 한국 오징어채낚기선에 해상급유를 실시했다.

 

홋카이도 동쪽, 캄차카 남쪽 수역이 오징어잡이로는 괜찮은 어장이다. 채낚이는 일본, 러시아, 미국의 경제수역 내에서도 허락되었다. 보통 6월에서 11월까지 조업한다.

 

냉동화물 운송도 취급하는 회사로서 수산회사들의 요청을 종종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디젤유 백 톤을 이송하기로 했다.

 

몇 달 동안 어장에 머물면서 조업하는 어선은 식료품이 부족하거나 때로는 환자가 발생할 수 있다. 이때는 가져온 신선한 야채를 넘겨주거나 환자를 후송해주기도 한다. 적절한 비용 계산이 이루어짐은 물론이다.

 

알래스카로 가는 길목 북태평양에서 어선과 랑데부했다.

배끼리(Ship to Ship) 접안할 때는 작은 배가 큰 배에 접근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갑자기 비상식이 등장했다.

 

“지금 조업중이라 귀선이 이쪽으로 와주실 수 없습니까?”

 

400톤급 어선 선장이 4만톤급 화물선 선장에게 목소리 당당하게 요청한 것이다.

화물선 선장 오선덕은 이런 비상시에는 필시 무슨 연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생겼습니까?”

 

“예, 갑자기 오징어 떼가 몰려 조업을 중단하기가 곤란해졌습니다. 죄송하지만 이쪽으로 와주시겠습니까?”

 

배의 안전은 양해 사항이 아니다. 손익계산에 의해서 좌우돼선 안 되고, 룰이 정한 안전매뉴얼대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안전에 저해되지 않는 선에서 오 선장은 양보하기로 했다.

 

“항로에서 많이 벗어났지만 일 킬로 정도까지만 접근하겠습니다. 접선 조선은 귀선에서 해주십시오.”

 

오징어 떼를 놓치기가 무척 애석하지만 어선 선장은 자신이 접선하겠다고 동의했다.

성어 시간대인 한밤중에 조업을 중단하는 것만으로도 용기 있는 결단이다.

 

연료가 이송되는 동안 상선에서 낚시하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미리 준비해온 가짜 미끼를 달아 낚시한다. 작업등 여러 개를 선측에 걸쳐놓고 낚시를 내리면 오징어가 바쁘게 물려 올라온다.

 

가짜 미끼를 쓰는 루어낚시(Lure Fishing)의 재미가 여기에 있다. 생미끼와 같은 냄새를 내거나 빛을 보이며 루어의 움직임을 잘 결합하면 진짜 먹이로 착각하여 오징어는 줄줄이 매달린다.

 

인간의 꾀에 오징어는 잘도 속여 준다. 세월이 지나면 오징어의 지능도 진화할지 모른다. 그때는 어떤 루어를 사용해야 하는지 인간도 연구해 나가야만 한다.

 

두 선박의 접속이 완료됐을 때 어선 선장이 상선으로 건너왔다.

차 한 잔 하면서.

 

“그러고 보니 군대 3년 선배시군요. 말씀 놓으세요, 선배님.”

 

서로 인사를 나누는 중 오 선장이 선배로 확인됐다. 학교는 다르지만 같은 해군학군단 소속이었으니 선후배 따지는 것이 어색하진 않다. 한국 사람이 선후배 따지는 집착은 미국이 멀지 않고, 태평양이 넓지 않다.

 

큰 배에 작은 배가 붙어 있으니 고목나무에 매미 붙은 격이다.

그런데 매미 같이 작은 배의 선장 연수입이 큰 배의 오 선장 것보다 다섯 배가 넘는다. 오 선장으로선 상대적 위축감이 들 만하나 24시간 악조건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보합제 보수로서 합당한 수준이라고 이해하려 했다.

 

어선 선장은 오징어 잡는 법의 이야기에 들어가자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신이 났다.

 

한밤중이면 오징어 떼도 잠을 청한다. 그러다가 날이 밝기 시작하면 서서히 먹이사냥에 나선다. 바로 이때 내려놓은 수중등을 조금씩 끌어올린다. 오징어 떼의 판별은 어군탐지기 모니터에 나타나는 수십 가지 색깔의 황금빛 모양에 의한다. 물속에 흩어져 있는 생명체가 모이는 모습이 화려한 색깔로 발산되기 때문이다.

 

 

갑판 위에 걸어놓은 공중집어등을 모두 켜면 북태평양 밤바다가 한순간 대낮으로 바뀐다. 그 빛을 보고 주광성어족인 오징어가 배주위로 몰려든다. 공중집어등의 규모는 놀랍다. 좌현과 우현으로 이백 개의 전등을 매달은 모양은 법당의 연등처럼 장관을 이룬다. 각각의 전력이 2킬로와트나 되는 고촉광 전등들이다.

 

“불나비처럼 오징어가 집어등 쪽으로 모여들지요.”

 

선원들은 오징어의 주광성을 비웃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능지수가 세 자리나 되는 남성 인간이 꽃뱀의 유혹에 말려드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공중집어등 빛이 닿지 않는 백 미터이상 수심의 어군을 유인하기 위해 뱃바닥으로 길게 늘어뜨린 한 가닥의 전선줄, 그 끝에 수밀로 보호된 전구를 달아 불을 밝힌다. 그것이 수중집어등이다. 그러면 불빛에 플랑크톤이 모여 들고 그 플랑크톤을 먹이로 하는 먹이사슬에 의하여 오징어가 모여든다. 십 미터씩 낚시줄을 천천히 감아 올려 어군을 수중등을 따라 천천히 부상시킨다. 날이 밝기 전 어군을 삼십 미터 수심까지 부상시킨다.

 

급유가 거의 끝날 무렵 두 배의 선장 간에 서명이 교환됐다. 서류를 전달하기 전에 어선 선장은 뭔가 빠뜨린 듯 머뭇거리는 표정이다.

 

“화려할수록 좋은데…… 가져오셨습니까?”

 

오 선장의 눈치가 뒤질 수 없다.

 

“한 상자 가져왔습니다. 비디오 반, 그림책 반입니다.”

 

몇 달 간 해상에서 소일하는 데는 이만한 볼거리도 없을 것이다.

한국은 아직 순진한 문화국이어서 화려한 것들은 제작도, 수입도 안 되는 나라다. 그러니 알음알음으로 주선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일에는 수산회사들이 귀신이다.

 

몇 달 동안 바다에서 어로작업을 하다보면 떨어지는 것이 수두룩하다.

야채, 술, 담배, 물…….

유일하게 떨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

 

♂ 남성의 힘 ♂

 

상자에 든 내용물이 그 넘치는 남성을 어떻게 해결해줄까.

 

어선은 포클랜드 조업을 마치고 한국에서 보름간 수리를 한 다음 북태평양으로 온 지 한 달이 지났다. 작은 공간에서 30여명이 어로 작업하고 잠을 자는 고통을 감수한다.

 

배꼬리 쪽에는 한 트럭분의 만화가 가득 실려 있다.

비디오와 그림책 보기를 마치면 만화 쪽으로 옮겨갈 것이다. 무협만화가 대부분이다. 기공을 쌓은 무림인이 되어서 하선한다는 게 거짓말이 아니다.

 

어선 선장은 답례로 오징어 두 상자를 건넸다. 오징어는 타우린이 풍부해 콜레스테롤을 줄여주고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켜줄 것이라고 하면서 생색을 냈다. 단, 머리와 다리는 먹지 않는 게 좋다고 첨언했다. 전문 용어로 라운드(Round)는 피하고 튜브(Tube)를 취하라나.

 

그는 오징어 회를 비롯해 생선회에 대해서도 한참동안 전문가의 견해를 피력했다.

 

생선회는 손에 닿는 촉감도 좋아야 하려니와, 낚시에 걸렸을 때의 생동적인 맛을 느끼기 위해선 겨자조차 곁들이지 않는다.

 

회로 말하면 다랑어 회가 많이 회자된다.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 뉴질랜드 동남쪽, 하와이 북부 파도 밭에서 잡히는 참다랑어(Bluefin Tuna)는 참치류 중에서도 가장 고급으로 쳐준다. 일본에서 황새치나 눈다랭이보다 훨씬 비싸다.

 

참치는 기름기가 많고 구수하고 씹을수록 쫄깃쫄깃하다. 등 부분보다 흰색 배 쪽이 맛있고 미용식으로 인기다. 일본 국내 연간 참치소비량은 35만톤이란다. 동경시내에서만 하루 삼백톤가량 소비된다고 하는데 선원 30명이 승선한 400톤급 독항선이 9개월 동안 죽자하고 잡는 양이다.

 

원양어선들이 잡는 어종은 70여종.

한 마리 0.5톤이나 나가는 흑새치에서 불과 20그램의 새우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망망대해에 20만촉광의 불을 밝히면 오징어 손님이 찾아든다. 낚시 한 개에 두서너 마리가 함께 달라붙는 오징어잡이의 재미는 트롤어선을 능가한다.

 

그러나 북양 트롤어선은 오징어채낚이를 우습게 여긴다. 한 번 투망에 130톤씩 끌어올리는 그 기분을 모를 거라고 자랑한다. 오징어잡이나 참치연승 어법은 원시어법에 불과하다고 공모트롤 선장은 거드름을 피운다.

 

어선 선장은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꼭 한 마디를 해야 되겠다는 것.

 

“아까 이쪽으로 건너올 때 선수 오른 쪽에서 오줌을 누는 선원이 있던데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해주세요.”

 

이유는 선수우현 소변은 재수가 없다는 것이다.

 

원양어선에선 금기 사항이 더 있다.

동서양 모두 13일 금요일 출항은 삼간다. 러시아 어선은 월요일에 출항하지 않는 풍습이 있다. 배에서 뱀 얘기는 입 밖에도 내지 말고, 피리소리나 괴성을 지르면 안 된다. 불길한 일이 생긴다. 어창 뚜껑 위에 드러누우면 고기가 안 잡힌다.

 

언제부터 이런 금기들이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의 힘이 너무 미약하다는 걸 의미한다.

 

 

 

연안국의 수자원 자국화가 세계적으로 강화돼 갔다. 미국이 먼저 칼을 들었다. 해양환경 보존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명분을 앞세웠다. 공해상 조업을 왜 규제하느냐고 따지면 한국산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시키겠다고 위협했다.

 

금지의 경우 미국향 연간 2억달러 이상의 수산물수출이 막히게 되고, 실제 굴통조림 등 대미 의존도가 절대적인 업종은 결정타를 맞게 된다.

 

북태평양 공해에서 서식하는 연어는 미국에서 이동한 어족이므로 그 포획을 감시하기 위해서 한국을 비롯해 대만, 일본 등의 명태잡이와 오징어잡이를 제한해야겠다는 트집이다. 바로 그 미국으로부터 한국은 연간 70만톤을 사온다. 이는 국내 명태 수요량의 65%에 해당한다.

 

미국이 1988년부터 200해리 경제수역의 어획쿼터 배정을 완전히 중단했을 뿐만 아니라 공해상의 자유조업에까지 규제의 심통을 부리기 시작했다.

 

어선의 갑판장이 흥분했다.

 

“그라문 북태평양 전체를 쟤들 바다로 선포해버렸을라문!”

 

생선회를 유난히 좋아하는 어선의 기관장도 가만있지 않았다.

 

“차라리 물고기에게도 여권을 발급해 비자를 받아야겠구먼.”

 

미국이 강력한 규제를 고집하는 것은, 길이가 50킬로미터에 이르고 바다밑 20미터까지 내려가는 오징어유자망에 알래스카로 돌아가는 연어를 비롯, 물개 등 포유류 동물, 바닷새 등까지 혼획하는 현장이 미 감시선에 의해 적발되는 등 미국 측의 우려에도 일면 수긍할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힘의 논리’에만 의존한다는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유자망어업은 1993년부터 모든 공해상에서 전면 금지하는 유엔 결의안이 통과됐다. 유자망은 환경단체들로부터 해양자원을 몰살시키는 ‘죽음의 덫’으로 국제적인 비난을 받아온 바 있다.

 

북태평양에서 유자망조업은 금지되나, 여러 개의 낚시바늘을 줄에 달아 오징어를 잡는 채낚기는 가능하므로, 배를 채낚기어선으로 바꾸거나 꽁치잡이어선으로 개조토록 했다. 그러나 채낚이는 일일 척당 평균 3톤이상, 연간 척당 700톤을 어획해야 채산성이 있다.

 

한편 한국정부는 낡은 배는 매입해 바닷속에 가라앉혀 인공어초로 사용하고, 오징어잡이어장을 아르헨티나 수역 등으로 적극 확대, 유엔결의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로 했다.

 

소련이 1990년 독립국가로 해체됨에 따라 러시아도 미국을 닮아 오호츠크공해 조업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명태잡이도 공동어로사업과 합작사업에만 가능하게 했다.

 

북양오징어 유자망어업이 전면중단돼 오징어잡이는 남대서양 포클랜드 채낚이어장에 의존할 뿐이다. 그러나 이곳도 점차 자원이 고갈되는 추세여서, 새로 페루어장을 뚫기 시작했으나 입어료가 비싸 오징어잡이는 갈수록 어려워졌다.

 

 

원양어업이 사양길로 들어선 것은 시대의 조류이다.

한때 한국을 부강케 한 원양어업은 1962년 5척에서 시작, 점점 증가해 1987년 700여척이 됐다가 2010년대 400척 이하로 꾸준히 감소했다. 단지 어선의 규모만 대형화했을 따름이다.

 

원양어업은 주로 참치어업, 오징어어업, 트롤어업 등이다. 참치어선은 남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중서부태평양 해역에서, 오징어 선단은 남대서양(포클랜드), 페루, 북태평양 등에서, 명태트롤은 북서베링해 등에서 조업한다. 한편 해외기지를 두고 있는 트롤어업은 인도네시아, 뉴질랜드, 서부아프리카, 인도양, 남빙양 등에 출어하여 조업한다.

 

한국의 원양어업 생산액은 한때 65만여 톤에 이르렀고 금액도 1조원 이상이었다. 가정의 식탁이 풍성해졌고 회집의 회도 고급화됐다.

 

그런데 지난 70년대말 미국 소련 등이 200해리 경제수역을 선포한 이후 90년대 들어 세계주요 연안국들이 어획허용량과 조업기간의 감축, 입어료 인상 등 규제를 강화해 수산물어획량 세계7위까지 도약한 한국어업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있다.

 

원양어선 취업기피현상마저 나타나 선원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전체 2만여 명이 필요한데 60%도 채우지 못한다. 외국인 선원이 부족분을 메워야 한다. 원양업계는 공해상의 자유조업원칙의 붕괴와 함께 이중고를 치르는 셈이다.

 

타국 영해를 통과하는 것은 국제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타국 영해에서 조업을 하면 그 나라의 순시선의 제지를 받고 나포된다.

 

70년대말 아프리카연안국들이 잇따라 200해리 경제수역을 선포한 이후 각국에 입어료를 지불하고 조업을 해왔던 트롤어업도 지난 87년 모로코와 모리타니가 한국정부와 맺은 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 어장성이 가장 좋은 이들 어장에 한국어선의 입어를 전면 금지시켜 타격을 받았다.

 

트롤어선 선주는 때로는 고액의 입어료를 지불하면서 감비아, 앙골라 등의 해역을 오가며 겨우 조업을 해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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