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극지 탐사 항해

21.기지 예정지 탐사

오선닥 2020. 7. 23. 18:10

▲장보고기지 건설을 위한 지질조사


남극기지를 건설하는 과정을
호기심으로 들여다보면
남극을 더욱 친근하게 알 수 있죠




21. 기지 예정지 탐사

 

2011년 2월 7일, 입항 5일째
전일 짙은 안개와 눈보라는 지금 활짝 개어 쾌청하다. 바다는 잔잔하고 바람도 적어 남극의 날씨가 갑자기 얌전해졌다.
아침에 지질조사팀이 먼저 현장으로 출발했다. 오후부터 바람이 초속 13미터로 불고 날씨가 며칠 동안 심한 저기압으로 들어간다는 예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쾌청하다. 대륙에는 어제의 눈보라로 현장에는 50센티미터의 눈이 쌓였다. 온통 순백의 세상이 됐다.
본관동 중심점의 시험굴착 결과 예상과 달리 지표 아래 4미터에서 암반이 나왔다. 작년 1차 조사 시 2미터 정도에서 암반이 나온 것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
“가설화장실을 설치해야겠네요.”
건설팀원이 말했다.
어차피 설치할 것이라 미리 말해둬서 불안 심리를 제거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컨테이너 안에 텐트 세 개를 설치하고 각각에 특수 제작한 좌식 화장실을 설치했다. 추후 오물은 밀폐 플라스틱 드럼에 넣어 국내로 반입하여 폐기 처리할 예정이다.
쌓인 눈을 헤쳐 가며 측량작업은 계속됐다. 측량작업은 3차원 지상레이저 스캐너 장비로 지도 작성을 마무리하는 단계이다.
지질조사, 측량, 건설팀 등 16명과 안전요원 2명은 대륙기지 현장에 남아 육상에서 기상여건을 보아가며 작업을 진행하기로 하고, 나머지 전체 인원은 배로 철수했다.
남극은 얼면 어는 대로, 얼지 않으면 얼지 않은 대로 주변 풍광이 아름답다. 언 바다에는 하얀 빙판, 얼지 않은 바다에는 출렁이는 물이 아름답다. 빙벽 위쪽의 하늘이 여명으로 벌겋게 불타오르는 모습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주위에 펭귄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은 다행이다. 펭귄이 있는 지역은 환경보호 차원에서 기지 설치가 금지되기 때문이다.

 

2011년 2월 12일, 입항 열흘째
앞으로 작업 가능한 일수는 이틀 정도뿐이다. 오늘 무조건 부두 예정지의 지질조사를 마치고 다음으로 풍력발전기 위치를 조사하고 마무리해야 한다.
현장의 지질조사 굴착장비는 정비동 위치에서 정리한 후 부두예정지의 조사를 위해 이동했다. 굴토 결과 지표 아래 3.4미터까지는 빙하퇴적층이고 그 아래부터는 연암층이다. 시추하여 토사가 밀린 정도를 알아내야 한다.
주변해안 수심탐사가 거의 마무리됐다. 수심측량 결과를 바탕으로 건설지 연안 200미터까지 접근하여 선저에 장착된 멀티빔 해저지형탐사기(음파 이용)를 이용해 해저의 모습을 3차원으로 생성하여 해저 지도를 완성한다.
해양조사팀은 건설지 부근 암초부분 정밀탐사와 해안빙벽 높이 탐사 후, 조디악(고무보트)으로 생물팀의 해양탐사를 지원했다.
특수연구 시설로 지자기 관측동, 지진계, 중력계, 풍력발전기, 대기구성물질 관측동, GPS 타워, 지구물리장비 시험동을 위한 위치를 설정해야 한다.
남극 현지조사 작업일정 13일 중 4일은 기상 불량으로 이미 까먹어버렸다. 풍력 초속 10미터 강풍에다가 날씨가 흐리고 안개가 끼고 눈보라까지 쳐 오늘 작업 일정이 취소됐다.
“남극에는 왜 남풍이 강한가요?”

양외란은 극지연구소 기상연구원에게 질문했다.
“남극 대륙 안쪽 고지대의 찬 공기가 저지대로 가장 짧은 경로를 찾아 하강하기 때문이라고 봐요.”
“그럼, 왜 해안의 날씨가 특별히 나쁜가요?”
양외란의 질문은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하강한 공기가 바다의 덜 차가운 공기를 만나면 대륙을 감싸는 좁은 폭풍대를 만든답니다. 이 폭풍대에는 세찬 바람이 불고 심한 안개가 끼며 극심한 눈보라가 치지요.”
지구자전이니, 마찰력이니, 전선이동이니 하는 일반적 기상 이론은 별로 적용이 안 되는 곳이다.

 

배는 건설지 아래의 만 안쪽까지 최대한 들어갔다.
정박위치는 74°38S, 164°14E.
카모프 헬기를 이용하여 육지의 컨테이너 철수작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다.
안개가 어느 정도 걷히자 헬기는 건설지 북쪽 23킬로미터 지점에서 눈시료 채취를 위해 이틀간 야외생활을 한 극지연 빙하팀원 3명을 데려왔다.
전체 지질조사를 위한 시추작업을 마친 뒤 각각의 측량점을 확인한 측량팀도 데려왔다.
이후 순차적으로 건설지로 향해 철수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건설지에 남은 팀은 컨테이너 4개를 선상으로 옮기기 위해 짐을 싣는 작업을 하였고, 다음배가 이태리 기지 앞으로 이동해 카모프헬기로 이태리 기지의 철수 컨테이너 3개를 배로 이송 선적했다.
철수 컨테이너를 헬기로 선수 화물창에 내리는 것은 많은 위험이 따른다. 선수창이 너무 협소하여 경험이 많고 노련한 헬기 기장으로서도 난간에 부딪히고 얹히는 등 위험하고도 어려운 작업이다. 20미터의 줄에 매달린 컨테이너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은 아찔한 느낌을 준다.
건설지에 있는 컨테이너 2개와 시추장비 및 연구장비, 개인물품 등을 일찍 정리하여 계속 헬기로 아라빙호로 이송하고 선적하여 전체 현장조사 작업은 마무리됐다.
“건설지 주변 청소를 완료했으니 이제 전체 사진이나 한 번 찍읍시다.”
멋진 사진이 나왔다. 눈에 잘 띄는 주황색의 작업복이 돋보였다.
이제 이탈리아 기지 마리오쥬켈리를 방문하는 것으로 이곳 남극에서 모든 일정은 마무리될 것이다.
마리오쥬켈리(Mario Zucchelli) 기지가 참고대상으로 지정된 것은 우선 장보고기지와 가깝기 때문이다. 배우겠다는 자세는 사자성어가 잘 말해준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지혜이기도 하다. 먼저 것을 배움으로써 시행착오를 줄이겠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건설팀은 까모프 헬기를 이용하여 마리오 기지를 방문했다. 이 기지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장보고기지 건설에 많은 참고가 되기 때문이다.

 

장보고기지 예정지에서 서쪽연안을 따라 8킬로미터 떨어진 이탈리아 소속 마리오쥬켈리 기지는 해수면 위 15미터의 풍화암층에 건설돼 있다. 1985년의 하계에 시작한 공사는 2000년에 완공되었는데 매년 조금씩 증축해 왔다. 최대 수용인원 90명 사용의 하계기지이다.
생활지원 시설 2,000제곱미터를 포함한 전체 연면적이 8,000제곱미터이다. 본동은 컨테이너(20ft)를 이어 붙인 형태로 건설되었으며, 창고동 및 정비동은 샌드위치 판넬로 건축되었다. 상당히 실용적이며 잘 다듬어진 기지로서 풍광이 아주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본동 건물이 땅에서 떠 있군요.”
처음 남극에 온 건설대원이 보는 이탈리아 기지의 숙소 건물은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이다. 바닥에서 1.5미터 정도 높이 지은 것은 땅바닥의 냉기가 건물에 스며들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세차게 휘날리는 눈이 건물 아래로 지나가는 효과가 있다.
온통 얼음으로 덮인 남극 내륙에서는 건물을 어떻게 짓는지 궁금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아무래도 얼음 위에 집을 지을 수밖에 없을 테지요?”
양외란이 물었다.
“그렇지. 해안가를 제외한 대부분 남극지역은 얼음으로 덮여있어 특수공법이 필요하지.”
설명하는 건설팀장은 남극기지 건설 베테랑이다. 세종기지를 건설한 경험이 있다.
이탈리아 기지 건물의 형태는 복도 양편으로 컨테이너를 연결하여 조립한 것으로, 기초 PC콘크리트 위에 원형 철제 기둥으로 받치고 있는 모양이다. 디자인이나 장식이 거의 없는 실용적인 형태의 고상식(高床式) 건물이며 내부의 배치도 사용에 편리성을 위주로 설계되어 있다.
건물 중앙의 복도 모듈의 폭은 1.9미터로 넓은 편이며, 각 방은 4인실로 옷장을 중심으로 양 옆에 2층 침대를 배치하고 맞은편 벽으로도 옷장을 중심으로 양 옆에 책상을 배치한 형태이며, 휴게실과 식당은 바닥은 비닐타일, 벽체는 목재 판재, 천정은 사각 흡음판으로 마감했다.

 

식당 뒤로 외부 공간에 통로를 두고 식당관련 창고용 컨테이너를 여러 개 배치하여 활용했다. 외부공간의 천정은 식당과 창고 컨테이너 상부에 작은 스텐레스로 트러스트를 만들어 설치하고 그 위에 투명한 아크릴판을 설치하여 자연채광이 되게 하는 등 매우 실용적이고 경제적으로 배치 설계했다.
건물 외부에서 각 건물로 배관 배선을 인입하기 위한 트렌치(바닥 도랑)로 지면에 목재로 된 뚜껑이 설치되도록 콘크리트 트렌치를 설치하고 배관했다. 히팅케이블 관련 시설이 보인다.
해수를 취수하여 발전기 폐열을 이용 15도로 온도를 올려 담수화 장비로 보낸다. 일일 담수 생산량 3톤으로 최대 40톤까지 가능하다.
해수 취수장을 부두 옆 돌출 암벽 위에 설치하고 암벽을 경사지게 뚫어 해저면으로 배관을 부설한 것은 파도와 해빙에 취수관이 파손되지 않도록 했다. 취수장에서 취수관로를 철골 가대 위에 설치하여 본관동 옆 담수화시설실로 인입한다.
발전기실은 350킬로와트 2대(1대는 대기)를 설치했다.
소각장과 오수처리장을 뒀고, 소각기는 일일 약 8톤 소각한다.
차량정비실, 목공실. 옥외 배관자재 적치장, 옥외 각종 가스 보관소, 고무탱크형 유류저장시설, 해상유류이송 Floating 배관, 롤 원통형 유류저장탱크 3기(각각 600입방미터 용량)가 부지 위 언덕에 설치돼 있다.
“기름은 일 년에 600킬로리터 사용하는 걸로 생각하면 됩니다.”
안내자의 설명이다.
이탈리아 기지에 대한 설명을 들음으로써 우리나라 기지 건설에 참고가 될 것이다.

 

▲이탈리아 마리오주켈리 남극기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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