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기회의 땅 러시아

기회의 땅 극동러시아(제13회)

오선닥 2016. 5. 24. 12:58

한국호랑이의 보존지

연해주 시호테알린산맥

탐사팀은 여기에서

기풍당당한 호랑이를 만났다


 

 

 

제 13회

 

 

시베리아 호랑이

 

정작 시베리아에는 호랑이가 살지 않는다.

호랑이가 살기에는 너무 춥고 먹이가 없다.

단지 시베리아호랑이는 호랑이의 아종일 뿐이다. 한국호랑이, 백두산호랑이, 조선호랑이, 만주호랑이, 우수리호랑이, 아무르호랑이 등으로 불리는 것이 자연스럽다.

 

아무르강 탐사를 끝내고 이번에는 연해주 시호테알린산맥을 찾았다. 백두대간의 뿌리이기도 하며 ‘호랑이의 숲’으로 불리기도 한다. 극동러시아 동해안을 따라 펼쳐진 산맥이다.

 

“우린 ‘호랑이 굴’이 아니라 ‘호랑이 숲’으로 들어가는 건가요.”

 

“잡으려면 굴로 가고 탐사하려면 숲으로 가야지.”

 

윤금조와 박호준 간의 대화는 농담에 불과하다.

 

일행 4명은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시호테알린산맥의 루체고르스크로 향했다. 전통적으로 숲을 근거지로 살아가던 우데게이족이 사는 마을이다. 그 많던 집들이 거의 다 사라지고 이제 800명 정도만 남아 어렵게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며 하룻밤 숙박까지 제공할 정도로 친절하다.

 

“호랑이를 어떻게 찾아가죠?”

 

윤금조가 물었으나 박호준은 ‘우린 따라가면 되는 거다’는 식이다. 겨울에는 눈에 박힌 호랑이의 발자국을 따라 가면 되지만 여름에는 좀 어렵다. 이럴 땐 초식동물의 흔적을 따라 가면 된다. 호랑이가 먹잇감으로 초식동물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숲이 깊어감에 긴장감이 더해진다.

이 숲은 신성한 곳으로 러시아인이라면 한번쯤 가고 싶어 하는 곳이다.

세계자연유산으로 야생보호를 위해 최소한의 방문객만 허락한다.

 

“우린 선택받았군요.”

 

“잡아먹히지만 않으면…….”

 

“오빠는 의미 있는 일에 초칠을 하구 그래.”

 

사공박은 두 사촌 간의 실랑이를 즐길 뿐이다. 호랑이는 가장 큰 고양이과 맹수이다. 전체 길이가 3미터가 넘고 몸무게는 300킬로그램이 넘는다. 아무르 호랑이는 기록된 수컷이 총 길이 3.5미터 몸무게 384킬로그램으로 단연 현존하는 6종의 호랑이 중에서도 가장 큰 걸로 알려져 있다.


 

“일주일 전에 호랑이가 지나갔습니다. 나무를 보면 알아요.”

 

원주민 감시원이 말했다.

수백 년 된 아름드리나무에 호랑이의 발톱 흔적이 보였다. 이런 나무에 발톱으로 긁어 영역 표시를 해놓는 것이다. 이런 것은 나무에 카메라 트랩 설치로 포착할 수 있다. 동물의 흔적이 나타나면 자동적으로 촬영된다.

 

우데게이족과 이야기해 보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20킬로미터 떨어진 마을에 사는

토착민으로 누구보다 아무르호랑이를 잘 안다. 그들은 말 그대로 호랑이 옆에 붙어살기 때문에 호랑이의 성격과 습성에 대해서 많은 것을 말해줄 수 있다.

 

그들 중에서도 호랑이를 본 사람은 많지 않다. 호랑이는 사람을 두려워해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숲에서 산책을 하다 갑자기 호랑이와 맞부딪혔다면 호랑이는 공격하지 않고 단지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려 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숙련된 안내자가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만약 사람이 숲에서 길을 잃으면 어떡하죠?”

 

“그래서 하루씩 전투식량을 준비해야 합니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는 사공박의 질문에 대한 원주민의 대답이다.

 

억새밭이 눈으로 덮이는 겨울세상이 오면 숲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동면을 위해 반달가슴곰은 여름 동안 먹이를 잔뜩 먹어둔다.

 

한반도에서 사라진 스라소니를 여기서 볼 수 있다. 두만강과 연해주에 걸쳐 조선잣나무(케드로)가 우거져 있는데 호랑이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호랑이가 사라지면 마을에 평화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착각이다. 늑대와 멧돼지 등이 더 성가신 동물임을 당장 알게 될 것이다.

 

마침 검은 물체 하나가 지근거리를 스쳤다. 원주민은 재빠르게 총을 잡아 쏘았다. 꼬꾸라진 것은 멧돼지였다. 그는 즉석에서 고기를 반으로 잘랐다.

 

“통째로 가져가면 쉽지 않은가요?”

 

사공박이 물었다.

 

“반은 호랑이 몫입니다.”

 

잡은 포획물의 반을 숲에 남기면 호랑이가 먹게 되는데 이렇게 나눠 먹으면 그에게 행운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곰이나 멧돼지를 사냥하나 일 년에 몇 십 마리로 필요 이상 사냥하지 않는다. 생태계를 위해서다. 물고기 잡더라도 밤에 강으로 나가 작살질로 몇 마리만 잡는다.



“표범이 호랑이보다 숫자가 왜 적은가요?”

 

사공박이 원주민한테 물었는데 대답은 박호준한테서 날아왔다.

 

“자네 같은 사람이 모피 장사에 열을 올리니 그렇지.”

 

“난 모피 장사를 한 적 없어. 마누라가 밍크코트 노래를 불러도 여우 꼬랑지 하나 사준 적이 없다니까.”

 

“이제 동물보호단체 가입하셔도 되겠네요.”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윤금조가 응원해줘서 고마웠다.

 

호랑이와 표범은 무늬가 다르다. 호랑이는 줄무늬가 있고, 표범은 점무늬이다. 표범은 털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일제강점기 때 많이 포획되었다. 명분은 해수구제(害獸驅除) 작전이었지만 실제는 고가의 호피를 노린 것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사냥된 호랑이는 100마리, 표범 600마리, 반달가슴곰 1100마리, 늑대 1300마리쯤으로 통계되고 있다.

 

한국호랑이는 다행히 멸절되지 않고 중국에 20마리, 러시아에 300마리, 북한에 10마리 정도 있다고 한다. 멸종된 발리, 자바, 카스피 호랑이에 비하면 운이 좋다.

 

“멸종, 멸절을 자꾸 얘기하는데 차이가 뭔가?”

 

사공박의 질문에 박준호은 명쾌한 설명을 했다.

멸종(Extinction)이란 어떤 종이 지구에서 완전히 사라진 상태이고, 멸절(Extirpation)은 특정 지역에서만 사라진 상태를 말한다. 그러니까 한국호랑이는 남한에서 멸절된 상태이지 멸종된 것은 아니다. 다만 살아남은 것들이 밀렵, 산불, 개발로 인한 서식지와 먹이 감소 등으로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호랑이와 표범은 같은 종이 아닌가? 생김새도 비슷하니…….”

 

“종이 다르다네. 같은 표범속에 속하지만.”

 

“거참. 크기는 다르지만 다들 고양이 닮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고양이과에 속한다는 거지.”

 

듣고도 어떤 차이인지 고개만 갸우뚱해진다.

궁금증을 더 이상 남기지 않기 위해 보충 설명이 가해진다.

 

“같은 종이라면 교배가 가능하다는 거지. 말하자면 새끼를 계속 낳을 수 있다는 뜻이지.”

 

“호랑이와 사자가 교배하여 타이곤이 나왔다는데…….”

 

“물론 가능하지만 아주 드문 경우이고, 이럴 때 부모와 새끼는 종이 다르다고 봐야지.”

종의 의미를 이제 알았다고 선언하는 순간이다.

궁금증은 생존 방법이 어떠냐는 것이다.

 

“시베리아호랑이는 먹잇감이 부족해 생존이 어렵지 않나?”

 

“일제 때 목포 해남 등에서 호랑이가 잡혀 미국 하버드대 박물관에 호피가 보관돼 있지.”

 

호피에서 얻은 DNA로 아무르호랑이와 비교했더니 백퍼센트 동일하다는 것이 2012년 증명되었다고 박호준은 말한다.

 

먹이로 말할 것 같으면 벵골호랑이는 행복하다. 먹이가 많아 암컷 한 마리에 20제곱킬로미터면 되나 시베리아호랑이는 450제곱킬로미터의 영역이 필요하다. 벵골에는 사슴, 물소, 가젤, 새끼 코끼리 등 큼직한 먹이와 수가 풍부한데 비해 극동러시아에는 사슴, 노루, 멧돼지 등으로 먹잇감 수량이 적다. 계절에 따라 곰이나 너구리, 오소리 등 잡식성 동물을 잡아먹지 않을 수 없다. 꿩이나 토끼 등 작은 동물도 먹잇감이 된다. 하루 50제곱킬로미터 이상 돌아다니는 호랑이지만 영역이 좁으면 덜 피곤할 것이다.

 

시베리아호랑이는 호랑이 중에서 몸집이 가장 크지만 무게로는 벵골호랑이와 비슷하다. 일 년에 100킬로그램짜리 먹잇감 30마리 이상 먹어야 한다.

 

1920년대 조선호랑이는 한반도에서 사라졌지만 죽어서 가죽을 하버드에 남긴 것이다. 미국인 의사가 1902년 목포 인근에서 사냥한 것이니까 100년 넘게 보존되어 온 셈이다. 세 마리를 잡아서 한 마리는 목포 유달초등학교, 두 마리는 하버드대가 보존해 왔다. 한국에 소장된 박제는 탈색되어 조선호랑이의 원모습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지키려는 포수에 관한 이야기는 영화<대호>에 잘 담겨져 있다. 야생 호랑이 수명이 15년 정도라는 것을 고려하면 하버드대에 가죽을 남긴 호랑이는 실제 조선 마지막 호랑이의 조부모 세대에 해당할 것이다.

 

참 신기하게도.

 

“호랑이가 염소를 마다하다니?”

 

언젠가 빅뉴스로 등장한 호랑이가 윤금조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극동러시아의 한 동물원에서 시베리아호랑이가 먹잇감으로 넣어준 염소와 한 달간 우정을 키웠다는 것. 염소에게 잠자리까지 비켜주는 호랑이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외로워서 동반자로 착각했나.

 

언젠가는 잡아먹힐지 모르지만 카메라에 찍힌 염소는 완벽한 동행자였다. 아니면 “호랑이에게 물려가더라도 정신은 바로 차리자”는 염소의 뚝심이었을까.

 

“먹잇감을 산채로 넣어주는 것은 잔인하지 않아요?”

 

조류를 연구하는 그녀에게 다가온 염려였다. 그러나 몰랐던 사실은 동물원 맹수들에게는 살아있는 동물을 먹이로 주곤 한다. 일주일에 한번 토끼 한 마리 정도랄까. 죽은 동물의 고기로는 얻을 수 없는 영양소를 얻게 하기 위함이다.

 

우데이족은 숲과 더불어 산다. 호랑이는 산신이다. 그들은 캄차카 등에서 바다를 건너온 사람으로 샤먼을 찾아 굿을 하며 숲의 영혼을 불러들인다.

 

“숲에 사는 동물들은 다 고마운 것들입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표범이 먹다 남은 것을 황금색 검독수리가 말끔히 먹어치운다. 이렇게 숲은 깨끗하게 유지된다는 것이다.


 

새끼 때 구조되어 야생화 훈련을 받아 다시 야생으로 방생된 아무르호랑이 한 마리가 야생에서 짝을 지어 다시 자신의 새끼를 낳은 것이 최근 확인되었다.


“조금씩 복원이 되면 대호가 한반도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겠네요.”

 

윤금조는 새보다 호랑이에 더 애착이 가는 모양이다.

 

도대체 호랑이는 어디서 왔을까.

1만 년 전 실크로드의 좁은 생태통로를 이용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러시아 아무르 지역과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정착하게 된 것으로 추측한다.

 

아무르호랑이가 먼저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90퍼센트의 경우 사람의 잘못으로 일어난다. 먹이를 빼앗겼을 때, 새끼를 보호할 때, 사람이 먹이사슬 경쟁자인 개와 함께 있을 때, 사람이 호랑이를 쏠 때 등을 지적한다.

 

살금살금 먹잇감에 다가간 후 승용차와 비슷한 속도로 달려들면?

시속 80킬로미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70킬로미터 떨어진 연해주사파리공원에는 아무르호랑이 성체 세 마리가 살고 있다.

 

시호테알린 자연보호구역 안에 있는 5킬로미터 길이의 생태 관광로가 해변으로 이어진다. 이곳에 살고 있는 20마리의 아무르호랑이들과 함께 보호구역을 산책한다고 생각하면 감동이다.

 

이 길 따라 바다로 나가면 바위 위에서 햇볕을 쬐는 바다표범을 볼 수 있다. 길이 2미터나 되는 바다표범이 일광욕을 즐긴다. 여름에는 물속을 100킬로미터 이상 이동하며 물고기를 채취를 한다.

 

생태길을 가면서 윤금조는 사공박의 뒤만 따랐다.

야생동물들의 영역으로 들어가니 겁이 슬슬 나는 모양이다.

 

“동물보다 사람 보호가 우선 아녜요?”

노골적 보호본능이다.

 

“뒤에 간다고 안전한 게 아냐. 호랑이는 맨 끝에 가는 사람을 공격하고, 곰은 맨 앞에 가는 사람을 공격한다니까.”

 

박준호는 동생에게 악인의 꾀를 좇지 말라고 성경 말을 인용했는데 상황에 적절하지는 않은 것 같다. 결국 그녀는 중간 위치로 들어왔다.

 

“호랑이의 움직임은 새를 보고 대충 알 수 있습니다.”

 

원주민은 새들을 주목하라고 강조한다. 만약 까마귀가 보인다면 아마도 목표물에 매우 가까워졌다고. 호랑이가 어딘가 멀지 않은 곳에서 사냥을 한 것이다.

 

침착하라.

 

마침내 호랑이와 맞닥뜨렸다. 호랑이와 마주쳤는데 절대로 원하던 바는 아니었다. 달아나거나 땅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싶어진 것은 현실이다.

 

호랑이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거나, 등을 돌리거나, 도망가려 해서는 안 된다. 떨리고 끊기는 목소리는 호랑이를 겁주지 못하고, 사냥감이 죽기 전에 내는 비명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 호랑이가 떠나지 않는다면 천천히 뒷걸음질 치기 시작하라. 급할 때는 점퍼나 배낭을 버려서 호랑이의 주의를 돌리는 게 좋다. 호랑이가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뒤로 물러나라. 그 다음에는 도망쳐라.

 

사전에 교육받았던 내용들이었다.

 

호랑이 훈련시설인 동북호림원은 일반 동물원이 아니다.

극동러시아의 대형 야생동물 멸종을 막기 위한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이런 식으로 불곰 터전을 조성해 10만 마리까지 늘어났으니 호랑이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사람이 조금만 신경 쓰면 죽어가는 것도 살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