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기회의 땅 러시아

기회의 땅 극동러시아(제 1회)

오선닥 2016. 1. 14. 13:17

2007년 무렵은 러시아 전성기

사공박(司空博)은

기회의 땅 극동러시아로

사업의 영역을 확장키로 했다

비밀의 땅 극한의 땅

두루두루 다니겠지만

과연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이야기가 소진될 때까지 이어집니다

 

극동러시아 지도

 

 

 

제 1회

 

 

사공박

 

그의 이름은 사공박(司空博)이다.

 

사공 씨를 성(姓)으로 둔 것이 간혹 오해를 불어 일으키곤 한다. 성 탓인지 모르지만 그는 마도로스가 되었다. 이 네덜란드어가 통용되지 않았더라면 그의 성은 평범하게 뱃사공으로 불렸을 것이다. 이제 사공박을 ‘마도로스 박’이라 불러도 전혀 무리가 없다. 이쯤 되면 작명가는 네덜란드어를 알았단 뜻인가. 아니면 17세기 동인도회사 해적선 조난으로 조선에 귀화한 박연이나 표류기를 쓴 하멜로부터 네덜란드어를 배웠단 말인가. 그럴 리 없으니 이런 걸 두고 우연의 일치라고 한다.

 

조상이 당나라에서 신라로 넘어와 이 땅에 정착한 것은 고마운 일이다.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근원이니까. 조상이 바다를 건너 조선으로 왔듯이 사공박은 바다를 건너 러시아로 동진하는 모험을 감행하기로 했다. 날로 발전하는 러시아에서 희망의 광선을 보았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인생은 좀 볼 줄 안다.”

 

자주 그렇게 말하는 사공박은 기어코 ‘인생’의 단어에 ‘러시아’를 대입하더니 러시아 진출의 꿈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그가 지경을 넓히기로 한 곳은 기회의 땅, 극동러시아이다. 그곳을 중심으로 수산업, 농업, 임업, 석유업 등에 관심을 가지고 무역업을 곁들여 사업의 영역을 확장하기로 했다. 경제 성장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주택사업과 여가산업은 한국의 경제성장 모델에서 학습한 사업 종목으로서 당연히 그의 관심사에 포함된다.

 

2007년은 러시아의 황금기에 속한다.

 

2000년 푸틴이 집권한 후 7년간 러시아는 국내총생산(GDP)이 4배나 불어났다. 주가지수는 12배 상승했으며 실업률은 5퍼센트 떨어졌다. 소련 붕괴로 쇠락하던 러시아를 다시 강국 반열로 끌어올린 것이다.

 

현재 러시아 경제 수준은 GDP 규모가 약 1조5000억 달러로 세계 11위다. 한국의 GDP는 1조 달러를 조금 웃도는 15위다. 기초과학 강국이면서 보유 자원과 에너지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하다. 한반도의 78배 면적에 1억4천만 인구를 가진 러시아는 푸틴을 앞세워 옛 소련의 영광을 다시 꿈꾼다.

 

푸틴은 2012년 APEC을 계기로 자원의 보고인 극동을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꿈에 부풀었다. 이 지역 인구를 늘리고 러시아 대륙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기로 했다. 동북아의 중국과 일본, 한국의 경제 발전을 최대한 이용하면 러시아 극동지방도 동시 성장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현대 기술과 기후온난화로 극한 지역의 개발 가능성을 낙관하는 상황이다.

 

푸틴의 동진론에 완벽하게 공감하는 사공박.

 

“그럼 극동러시아로 가자!”

 

극동러시아는 비밀의 땅이요 극한의 땅이지만 한편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몽골 타타르족의 시비르 칸국이 15세기 말까지 시베리아를 230년 지배하는 동안 러시아는 동진을 꿈꾸지 못했으나 16세기 후반에 러시아 황제 이반4세의 지원 하에 카자크 원정대를 용병으로 사용하여 칸국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19세기부터 개발되기 시작한 극동러시아는 연해주(프리모스크주), 아무르주, 하바로프스크주, 유대인자치주, 마가단 주, 축치자치주, 캄차카주, 사할린주, 사하공화국 등 9개 연방 주체가 있다.

 

러시아가 1867년 알래스카를 720만 달러 헐값에 미국에 팔아먹었다고 비난받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지 잘된 일이다. 땅을 지키지 못해 점령당했더라면 더 큰 피해만 입었을 테니까.

 

러시아는 우랄산맥을 넘어야 한다.

 

극동으로 진출하지 않으면 러시아의 발전은 제한적이다. 지난 20년간 러시아의 유럽지역이 발전한 반면 극동지역은 경기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로 인하여 인구는 25퍼센트나 줄었다. 그 틈새를 중국이 호시탐탐 넘보고 있다. 극동지역은 유라시아와 아시아·태평양을 잇는 전략적 요충이다. 푸틴이 ‘강한 러시아’를 위해 공을 들이는 배경이다. 동시에 중국의 부상을 적극 견제한다. 외국인 투자를 갈구하면서도 중국 자본은 몹시 켕겨 하는 이유다.

 

“중국을 싫어하면 한국은 좋아하겠네.”

 

사공박의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기회는 잡을만한 거리에 있음을 느낀다. 많은 한국인이 극동러시아에 진출했지만 단타 잽을 날리다가 돌아온 경우가 많다. 망원경과 현미경으로 함께 봐야 제대로 보아지는 곳임을 깨닫는다.

 

극동러시아로 진출하기 전에 먼저 러시아의 두 도시를 알아봐야 한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모르고는 러시아는 이해되지 않는다.

 

모스크바

 

수도 모스크바가 처음으로 러시아의 연대기에 나타나는 것은 1147년이다. 그 뒤 모스크바공국의 수도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러시아 역사의 주무대이자 러시아정교의 구심점이 되어왔다. 크렘린의 기원인 목조 성채를 구축하여 이미 도시의 기능을 갖추었으나 13세기 중반에 몽골의 침입으로 거리가 불탔다. 14세기 중반에 석조성벽이 구축되고 15세기에 전 러시아의 수도가 되어 크렘린에 대성당을 짓기도 하며 러시아의 최대도시가 되었다. 16세기에 들어와 모스크바는 세 차례의 화재를 입었으나 시장 간의 긴밀화에 힘입어 도시는 팽창을 계속했다. 1917년 볼세비키의 10월혁명 승리 이듬해 수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다시 모스크바로 옮겨졌다.

 

모스크바의 중심 크렘린과 바로 옆에 위치한 붉은광장과 성바실리성당, 궁백화점과 지하 아케이드는 모스크바를 가장 먼저 느끼는 곳이다. 인구 1000만의 도시 내로 유유히 흐르는 모스크바 강과 레닌언덕에 위치한 모스크바 국립대학, 러시아 정교회의 원형 첨탑들이 오색 빛을 발한다. 레닌과 스탈린 시대의 암흑의 흔적이 남아 있는가 하면, 체홉과 푸쉬킨, 톨스토이가 무한한 상상력을 펼쳤던 자랑스러운 도시다. 모스크바강은 모스크바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흘러 볼가 강과 합류해 카스피해로 흘러 들어간다. 이 강을 따라 많은 문학이 탄생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표트르 대제가 1703년 설립한 도시는 1713년 모스크바에서 천도하여 1918년 다시 모스크바로 옮기기까지 약 200년간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다. 인구 450만의 도시는 러시아에서는 수도 모스크바 다음으로, 유럽에서는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북방 수비를 목적으로 건설한 이 도시는 원래 습지여서 돌을 부어 석조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유명하다. 가혹한 자연과 고된 노동으로 죽은 노예를 습지로 던져버려 뼈 위에 세운 도시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있다.

 

러시아 최대의 무역항으로 공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1851년에 모스크바와 연결하는 러시아 최초의 철도가 부설되었다. 세계 3대박물관 에르미타주로 유명한 이 도시는 러시아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지위가 흔들리지 않는다.

 

러시아의 사회주의 잔재는 아직 깊다.

 

볼셰비키 혁명 이후 박힌 인이 하루아침에 빠질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의미 있는 전진은 계속한다. 1991년 소련 붕괴 후 독립국가로 된 13개국이 다시 끈끈하게 뭉치려는 시도가 있다.

 

세상은 변한다.

 

91년 데뷔한 신동엽과 92년 데뷔한 서태지는 각각 개그계와 가요계 판 자체를 흔들어 놓았다. 괘씸죄의 욕을 먹었던 자들이다. IT계의 이해진과 김택진, 이재웅 같은 젊은 창업자가 혜성같이 나타났다. 조용하게 세상이 바뀐 적은 없다.

 

사람들은 세상이 어렵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언제는 안 어려웠나.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해야 한다. 배란 정박하는 것이 아니라 파도를 뚫고 항해하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다. 어려움을 만남으로써 진실에 다가가는 법을 배운다.

 

전진하는 자여 참으로 아름답구나!

 

스토리가 시작됩니다.

 

극한의 땅 극동러시아

 

<계속>